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93)화 (39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393화

40장. 미스터 프로듀서

4월 5일 화요일.

촬영장비가 분주하게 오가는 가운데 눈꼬리가 쳐져 시무룩한 남자가 다가왔다.

메인 PD 신무록이었다.

“대본 보고 있어요?”

“네!”

“너무 대본에 몰두하지 않아도 돼요. 어디까지나 방향만 잡는 거라.”

그건 그랬다.

‘멋지게 등장한다’ 같은 지문과 MC 멘트 정도만 있을 뿐, 대부분 비어 있었다.

“우리 프로는 즉흥적으로 재미를 뽑아내는 프로라서, 차라리 지금 보는 대본은 잊어버리는 게 더 좋을 거예요.”

“아, 네.”

“슥슥 보고 잊어요. 부담 가지지 말고.”

신무록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리액션만 잘 부탁할게요. 상황은 우리 출연진들이 만들어 줄 테니까.”

“네!”

슥 웃던 신무록 PD가 능숙하게 현장 스탭들을 통솔했다.

국민 예능이라는 호칭 때문인지 스탭들의 팀워크마저 범상치 않게 보였다.

회사 공용 휴게실이 순식간에 스튜디오처럼 탈바꿈될 때.

비주가 내게 속삭였다.

“저 긴장돼요. 형. 미프 녹화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떨려.”

“형들 떨려여? 저도 엄청 떨리는데 우리 같이 떨어여.”

셋이 꽁꽁 뭉쳐 오들오들 떨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진짜 떨리긴 했다.

우리가 미스터 프로듀서에 나온다니.

군대 생활관에서도 토요일에는 미스터 프로듀서, 일요일에는 주세한을 보는 게 국룰이었다.

옛날부터 워낙 유명한 예능이기도 했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설문조사하면 주세한과 함께 늘 1위와 2위에서 엎치락….

“엎치락 달싸락인가. 뭐였더라?”

“덮칠락? 아니에여?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여…?”

옆에서 지켜보던 리혁이가 ‘뒤치락이요’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아. 뒤치락.

오랜만에 긴장을 해서 그런지 단어도 잘 안 떠오른다.

“안 되겠다. 긴장도 풀 겸 만두나 하자.”

“리혁아. 이리 와. 만두 타임이야.”

비주의 손짓에 리혁이까지 왔다.

다 같이 ‘만두만두만두’ 하며 긴장을 푸는 동안 주변에 웅성거렸다.

회사 직원들이 어머어머 하며 구경을 나와 있었다.

우리가 준 제주도 과자까지 들고 나와 우적우적하며 구경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무슨 레몬 마을 잔치 같다.

“이게 뭔 난리래.”

“그러니까요. 다들 출연진분들 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나 봐요.”

연예인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직원들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직원들이 ‘아’ 했다.

서운해하는 표정에 직원들이 와아아 하며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찍는 시늉을 해 주었다.

“흠흠.”

전광판 앱을 킨 홍보팀 대리님이 ‘뉴블이 분량 대박’을 흔들었다.

‘너무 멋있어요!’ 하고 장난스럽게 환호하는 직원들에게 우리가 거만한 연예인 행세를 하며 손을 흔들어 줄 때.

“뭐야. 아침부터 분위기 좋네~”

어깨 깡패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 체격 좋고 훤칠한 미남이 웃으며 걸어 들어왔다.

‘우와’ 하는 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모든 관심을 빼앗겼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추기석이에요.”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우와아’ 하는 직원들에게 미프의 멤버, 추기석이 웃으며 팬서비스를 해주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안중에서 바로 밀려나 슬쩍 침울해질 때.

배우가 고개를 돌리더니 우릴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

“뉴블랙이다! 미친!”

작년 연예대상에서 만난 것 같은데.

굉장히 반가워하는 반응에 어리둥절함을 느낄 때였다.

살짝 흥분한 것처럼 미남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진짜 신기하다! 내가 한 번 꼭 실물로 보고 싶었거든요.”

……이미 만났는데 기억을 못하신다.

큼지막한 손이 대뜸 악수를 청하는 한편 엄청 쾌활한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와. 생각보다 다들 키도 크고.”

어딘가 수플레들과 비슷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기에 ‘아’ 하며 말했다.

“…혹시 저희 팬이신가요?”

“아뇨! 구독자예요!”

티 없이 해맑은 웃음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상대의 프로필이 떠올랐다.

나이는 38세.

미스터 프로듀서의 여섯 멤버 중 둘째이자 ‘바보 형’ 캐릭터를 맡고 있는 추기석이었다.

*   *   *

1등으로 도착한 추기석을 시작으로 미프의 다른 멤버들이 하나둘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막내인 홍석까지 도착한 후.

멤버들의 비주얼에 직원들과 우리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큰 인기를 끄는 미프의 인기 비결이 출연진들의 비주얼인 만큼 다들 대단했다.

전직 국가대표부터 모델까지 다양한 출신의 미남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하나, 둘!”

FD가 슬레이트를 치자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눈초리가 몹시 매서운 인상의 40대 남자가 화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MC이자 전직 국대 축구선수였던 김의지였다.

예능인으로 전환했던 2000년대 초에 ‘의지 되는 김의지입니다’ 하는 구호를 읊었던 걸 본 기억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활기차게 4월은 가정의 달 같은 멘트를 읊어 주고 멤버들이 ‘뭔 교훈이야’ 하며 싫증을 냈다.

그러곤 자기들끼리 만담을 나누기 시작하며 시계를 보았다.

“그런데 언제 오신대? 새 프로듀서님들은.”

“올 때 다 된 거 같은데?”

“어휴, 진짜 모시기 힘드네. 이분들.”

진정한 발연기들에 쪼꼬미 예능인으로 유명한 모범주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저는 정말 저희가 연기 특집을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했으면 엄청 혼났어요.”

그 동안 카메라가 [이미 기다리는 중이었음] 하는 자막을 넣기 위해 우리 쪽을 찍었다.

손을 반짝반짝 흔들며 웃었다.

그러곤 PD님의 신호에 맞춰 차례대로 휴게실에 입장했다.

(멋지게 등장한다)는 지문에 맞춰 모델처럼 워킹하며 등장하자, 모델인 홍석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오오!”

출연진들이 와아아 하며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며 반겨 주었다.

어찌나 반응이 열렬한지 유치원에 강림한 뽀로로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고! 뉴블래액!”

MC 김의지가 우리 어깨를 팡팡 치며 껄껄 웃자, 가수 안재희가 태클을 걸었다.

“형님은 뉴블랙 보신 적 별로 없지 않으세요? 왜 갑자기 분위기 절친이야?”

“뭐. 친분이 시간으로 정해지나.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끼리 만나면 친해지는 거지. 맞지?”

MC가 윙크를 하며 떠는 너스레에 우리가 ‘맞아요!’ 하고 손을 흔들었다.

안재희가 우리에게 말했다.

“조심해요. 이 형님 별명이 ‘대세 콜렉터’인데 잘나갈 때만 친한 척하기로 유명해.”

“조금 삐끗하면 바로 연락처에서 지우고.”

“아니. 내가 아니, 너희는 말을 해도…….”

맏형이 쩔쩔매는 분위기 속에서 생글생글 웃었다.

분위기가 진정된 후 6인조와 우리가 서로에게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만났던 추기석이 다시 감탄했다.

“와. 근데 진짜 잘생겼어요.”

“기석이 형이 뉴블랙TV 열혈 구독자예요. 새 영상 업로드 된다 하면 바로 챙겨 본다니까.”

“아. 정말요? 그 정도이신 줄은…….”

그런 우리 반응에 추기석이 잔뜩 신이 나서 동료들에게 말했다.

“제가 그겁니다!”

“어떤 거요. 형님?”

“뉴블랙 TV 팬클럽이에요. 짭플레!”

‘짭플레’라는 근본없는 네이밍에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프 멤버들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맏형 김의지가 물었다.

“수플레 아니야? 미미 작가가 준 거에는 수플레라고 되어 있었는데?”

“아뇨! 완전히 다릅니다. 그… 수플레 님들은 성골 진골 같은 존재고, 저희 짭플레는 6두품 같은 거죠.”

“흐힛.”

역사 드립에 심쿵한 리혁이가 꺄르르 좋아했다.

보아하니 짭(짝퉁) + 수플레 해서 짭플레인 모양이었다.

오늘도 새로운 걸 하나 알았다.

“우리 짭플레들은요. 수플레 님들처럼 티켓이나 굿즈 구매는 안 하지만 나머지는 다 합니다.”

“그건 그냥 보탬이 안 되는 팬이잖아?”

“아니죠!”

추기석이 손으로 돈을 표시하듯 OK 모양을 그리며 해맑게 웃었다.

“이걸 드리죠! 돈!”

“돈?”

“미튜브 광고 시청 수익!”

진짜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작부터 터지는 추기석 씨의 미친 드립에 구경하던 회사 사람들과 스탭들까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추기석 씨가 기세를 몰아 손을 들었다.

“나, 나! 그것도 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그 대머리 선생님께서 지었던 표정.”

“아, 이혼당합니다. 그거?”

출연진들도 다 아는 모양이었다.

일명 ‘마에다복음’이라고 불릴 만큼 명언 짤이 되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때문인 듯했다.

추기석이 입을 앞으로 모으며 ‘이혼당합니다! 반드시!’ 하고 외쳤다.

못난 퀄리티에 모두가 탄식하는 가운데 비주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핡!”

“……비주 씨? 이게 웃겨요? 진심으로?”

“네!”

“그… 취향이 몹시 독특하시구만.”

‘기석이 형은 배우가 표정도 못 따라하냐’ 하며 구박이 이어질 때, 추기석 씨가 그래도 비주를 웃겼다며 만족했다.

그때 내가 끼어들었다.

“저희 중현이도 그거 잘해요.”

“오?”

“중현아.”

“네에-”

중현이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오고는 코난처럼 손가락을 카메라에 향하더니.

성악가처럼 입을 모으고 ‘이호오온-!’ 하고 외쳤다.

에코로 효과음이 들어갈 거 같다.

짙은 구름처럼 사방으로 뭉게뭉게 퍼져 나가는 웅장한 목소리에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가수 출신 안재희가 흐느끼듯 웃으며 외쳤다.

“야! 전혀 다르잖아!”

“흐하핫!”

“산신령인 줄 알았어.”

병맛 대결 1승.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MC인 김의지가 말했다.

“일단 시청자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다시 한번 박수가 나온 후, 시청자들을 위해 각자 이름과 포지션을 설명했다.

예능인 모범주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근데 뉴블랙 분들은 워낙 유명해서 개인 소개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 할머니도 아시거든요.”

“진짜 요즘은 전국 어딜 가든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 내 고향에 나왔잖아요. 어쩌다가 나오게 된 거예요?”

소극장 투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후.

전반적으로 우리를 띄워 주기 위해 빌드업을 하는 멘트들이 이어졌다.

MC 김의지가 제작진에게 큐카드를 건네받고는 말했다.

“그래도 자료화면이 안 나오면 또 섭섭하니까 소개를 해야겠죠?”

“와아아아!”

“자, 읽어 주세요!”

“……저희가요?”

당황해서 바라보니 출연진들이 짓궂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뒤에서 큐카드에 써 있는 내용을 쏘옥 바라보던 동생들이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리혁 씨는 이미 토마토가 됐네.”

“제가 구독자라서 압니다! 저게 바로 리혁 씨 진실의 귀거든요! 부끄러울 때 저렇게 됩니다!”

“기석이는 들어가.”

“이거 진귀한 장면이에요!”

“끌고 가라.”

저기도 끌고 가네.

맏형 김의지의 매서운 눈초리에 힘캐를 맡고 있는 남도훈이 추기석을 데려갔다.

그 동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리혁이가 말했다.

“아, 아니에요. 저 토마토 아니에효…….”

“입술까지 오그라들었네.”

귀여워하는 어른들의 반응에 리혁이가 더 으어어 할 때, 내가 큐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 이걸 어떻게 읽죠…….”

눈앞이 캄캄해져서 내뱉은 말에 출연진들이 박장대소했다.

일단 열심히 읽어야지.

“2014년 2월에 콜라보 음원 ‘Something’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뉴블랙! 올해로 3년차 꼬, 꽃미남 5인조 최정상 그룹으로서…….”

“으아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호령하는 월드 스타… 으아아.”

“느아아아아…!”

진짜 부끄러운 게 많았다.

작가님들 왜 뉴비어천가를 써놓으셨어요.

“초등학생들이 존경하는 인물 4위에 랭크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역대 최단 기간으로 ‘Nine’의 뮤직비디오가 1억 뷰를 달성했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얼굴만 고려하였을 때 사귀고 싶은 남자 아이돌’ 설문조사 1위, 오호…….”

바로 뒤에 괄호가 있었다.

“그런데 성격 포함하니 10위권 밖으로 광탈… 광탈?”

“뭐야. 왜 성격 포함하면 10위권 밖으로 아웃인데요?”

“광탈이 뭐야…?”

“왜여! 우리 성격이 어때서! 이렇게 귀여운데…!”

실시간으로 안색이 변하는 우리 모습에 출연진과 스탭들이 귀엽다는 반응을 보였다.

리혁이가 비주 손바닥에 광탈 뜻을 손가락으로 써 줄 때.

내가 큐카드를 다시 읽자 동생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가렸다.

“2016년 들어 마침내 ‘국민 아이돌’로 불리고 있는 뉴블랙은…….”

“으아. 국민 아이돌이래여! 나 이제 학교 어떻게 가…….”

막둥이의 학교 발언이 취향 저격이었는지 출연진들이 자기들끼리 속삭이며 키득거렸다.

어느새 큐 카드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이런 뉴블랙의 광폭 행보를 저희 미스터 프로듀서가 응원하며, 뉴블랙을 이번… 여기 같이 읽어 달라고 되어 있네.”

“이번 아이돌 프로젝트에 Mr. Producer로 위촉합니다! 어, 여기 (팡파레)도 있네?”

“잠시만요. 아. 원 투 쓰리 포.”

메인보컬의 주도에 따라 빰빠라바라 밤밤밤! 하면서 아카펠라처럼 화음을 맞추며 자체 축하를 할 때.

신나서 곰돌이 5형제 율동을 추고 있던 우리와 제작진의 눈이 마주쳤다.

“……?”

“……?”

축하용 폭죽을 들고 나오려던 작가님들이 당황하고 출연진들이 엎어져서 흐느끼듯 웃었다.

설명 담당인 안재희가 말했다.

“흐하하! 팡파레는 우리가 해 주는 거예요.”

“아앗……!”

“차우현 선배한테 노래 제일 잘하는 후배라고 엄청 얘기 들었는데, 진짜 잘 부르네요. 와, 화음이… 감탄했어. 진짜.”

리혁이의 얼굴이 마치 빈 잔에 차오르는 토마토 주스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추기석이 흥분해서 일어났다.

“또! 또 나왔다! 진실의 귀!”

“기석이 좀 데려가라. 저거 중증이야. 구독을 끊어버리든지 해야지.”

다시 한번 부끄러워서 몸부림치는 우리 모습에 웃음이 감돈 후.

MC인 김의지가 제작진에게 건네받은 상패를 우리에게 내밀었다.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

프로듀서 위촉 - The New Black

by 김의지, 추기석, 남도훈, 안재희, 모범주, 홍석 총 6인

근데 이거 모양이…….

“흑염소 모양이네요.”

“프로듀서마다 커스터마이징을 해서 주거든요.”

“중현아.”

중현이가 세리머니를 하듯 상패를 들고 메에에- 해 주었다.

위촉식을 마치고 앉자 제작진이 편안한 담소를 위해 음료를 돌렸다.

“흐하핫!”

훨씬 더 편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흘러갔다.

이제 와보니 다 설계 같다.

대개 어느 게스트든 간에 처음에는 미프의 이름값 때문에 긴장하기 마련인데.

아까처럼 큐 카드를 읽게 해서 분위기를 편하고 즐거운 쪽으로 유도한 듯하다고 할까.

동생들과 출연진이 수다를 떠는 동안 슬쩍 돌아보니 신무록 PD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면 뉴블랙은 지금 앨범 준비 중이고?”

“네.”

“하필이면 제일 바쁠 때 왔네. 이거 타이밍이 참… 야, 우리가 팬들한테 욕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때 피디님이 말했다.

“안 그래도 뉴블랙이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시청자 게시판이 난리가 났습니다.”

“정말요?”

“우리 애들, 오빠들 좀 많이 놀려 달라고…….”

“……네? 분량을 늘려달라고요?”

“‘놀려’ 달라고요.”

우리가 귀양 가는 신하들처럼 눈을 감고 파르르 떨자 출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안재희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팬분들이 배우신 분들이네.”

“저희가 마음껏 놀려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처량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 프로듀서 아니었나요…?”

“맞다. 프로듀서님이었네.”

예능인 모범주가 말했다.

“근데 놀리면 안 되는 건가요?”

“역시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이제 우리가 프로듀서다. 이 연습생들아 이런 거죠.”

“아뇨! 아뇨오오! 아이고! 아니…….”

“울 프로듀서님들 무서운 분들이었네.”

짓궂게 놀리는 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다들 경력도 긴 데다 막내인 모델 출신 홍석마저도 29살로 우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기 때문이었다.

출연진들끼리 몇 번 합을 주고받더니 이런 식으로 가기로 결정한 듯했다.

“아, 우리 뉴블랙TV 그만 괴롭혀요~”

바보 형 역할인 추기석만 모르고 방어해 줄 뿐.

그에 맞춰 우리도 열심히 몰려갔다.

아무래도 20대 초반 애들이 평균연령 33세에다가 ‘아이돌은 말이죠’ 하면서 선배처럼 나서면 ‘니들이 아이돌로 뜬 거지, 뭔 인생 선배라도 되냐?’ 하며 반감을 가지기 십상이라.

짓궂은 삼촌들에게 당하는 막내 이미지를 잡아 주시려는 듯해서 우리도 좋았다.

“자, 이제 아이돌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

MC 김의지가 운을 띄웠다.

“작년에 우리 멤버 중에 정동진에서 ‘아이돌 꼭 해 보고 싶다’고 소원을 빈 멤버가 있어요.”

“진짜요? 어떤 분이요?”

“저예요.”

맨 왼쪽에 있는 빨간 머리의 미남이 손을 나긋하게 들었다.

홍석.

수려한 미모로 유명한 모델로 지금은 미프에서 비주얼 막내로 활약 중이었다.

말수가 적은 편인데 낯을 가리고 수줍어하는 성격 때문인 듯했다.

“10대 때, 잠깐 대형기획사에서 아이돌 연습생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데뷔조 발탁을 앞두고 우여곡절 끝에 방출이 됐는데…….”

마시고 있던 음료가 목에 걸릴 뻔했다.

표정은 웃고 있지만 동생들의 눈동자가 나를 세밀하게 훑고 지나갔다.

홍석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소곤거렸다.

“물론 퇴출이 될 만한 이유가 있긴 했어요. 동기들에 비하면 춤 실력이 턱없이 모자란 편이기도 했고. 그래서 납득하고 살고 있었는데…….”

결연한 눈동자가 보였다.

“그런데 이게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한때 아이돌이 제 꿈이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이번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내가 진지하게 듣고 있을 때, 가수 안재희가 쌍화차를 홀짝이며 물었다.

“그나저나 석이랑 우주는 만난 적 없어?”

“네?”

“석이가 TJ 엔터에서 연습생을 했거든.”

“아. 정말요?”

잠시 홍석과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아는 이름들은 있지만 시기도 그렇고, 수준에 따른 반 편성 등으로 마주친 적은 없는 듯했다.

“뭐야. 둘 다 그럼 TJ 출신이었네.”

“그러고 보면 태준이 형님이 원석 많이 놓쳤어. 연예계에 그 형님이 놓친 원석이 몇 명이야? 한 다스는 될걸.”

“일단 여기 선우주부터 시작해서…….”

이내 연예계에서 잘 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내 이름이 섞여 나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할 때.

김의지가 우리에게 경칭을 쓰며 물었다.

“참, 이번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의 프로듀서로서 어떻습니까? 우리 뉴블랙 쌤들이 진단하기에 저희가 가능할까요?”

“네? 어떤 거요?”

“저희가 평균을 내보면 33.5세인데, 연예계에 이런 아이돌은 없잖아요. 나이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아. 말씀하신 대로 제약 요인이 있을 수 있긴 해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요.”

“……?”

“일단 다방면에서 정말 재능이 뛰어난 분들이 모여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고. 무엇보다….”

동생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었다.

“미프잖아요.”

“흐하핫!”

당연히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맞다. 하지만 국민 예능이면 뭐든 가능하지.

괜히 겸손한 소리를 하려고 했던 김의지가 웃음을 터뜨리고 다른 멤버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컨셉 등에 있어서 여러 제약이 있을 순 있지만 충분히 다른 요소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오. 우리 선생님들만 믿으면 되는 건가요?”

“저희가 이번 프로젝트의 멘토로서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오오오.”

그때 작가님 한 분이 ‘우주 씨, 테스트 언급’하는 스케치북을 들었다.

“하지만 1차적으로는 곡을 소화하는 가수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가 선배님들의 실력을 볼 수 있을까요?”

“네! 선생님!”

“한 달 동안 연습해 오셨다고 들어서 정말 기대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지하 연습실로 촬영 장소를 옮겼다.

*   *   *

덩실덩실~

“…….”

여섯 개의 목각인형들이 흥겹게 몸을 흔들기 시작하면서 나와 동생들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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