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00)화 (40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00화

PBS 방송국.

다양한 인물들이 ‘미스터 프로듀서’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작곡가님! 멋지게 차려 입고 오셨네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명곡단 잘 보고 있습니다. 실물이 더 훤칠하시네~”

‘도전! 명곡 발굴단’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작곡가 표형원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유명 뮤지컬 감독과 보컬 트레이너가 입장하고.

맵시 좋은 옷에 한쪽 귀의 귀걸이가 인상적인 여성도 들어왔다.

“안무가님도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한아윤 안무가였다.

프로듀싱에 있어서 드림팀이라 불려도 무방한 라인업이 한 자리에 모이고 있을 때.

마지막 인물이 입장했다.

“잘들 지냈냐?”

미프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한 남자.

40대지만 패션 감각이 좋아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인물이었다.

바로 4대 기획사 중 하나인 KM 엔터의 대표이사이자 책임 프로듀서인 허강민이었다.

“금방 온다면서요? 오래 걸리셨네요.”

“지금 올림픽대로 엄청 막히더라. 하도 갑갑해서 그냥 내려서 걸어오고 싶었다니까.”

스냅백을 고쳐 쓴 허 대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500원에 곡 써 준다고 할 때는 거들떠도 안 보더만… 프로듀싱은 필요하다 이거지?”

“하하하!”

“에휴. 내가 바쁜데 좀 와 봤다.”

“많이 바쁘세요? 그럼 가셔도 되는데?”

못 들은 척하며 잽싸게 의자를 빼는 허강민의 모습에 출연진들이 웃었다.

한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끼리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김의지가 운을 뗐다.

“저희 미스터 프로듀서, 아니 신인 보이그룹 ‘에이텐’의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이렇게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에이텐?”

“먼저 인사드리죠.”

여섯 멤버가 검지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하나 둘 셋!”

“It’s 10’o clock! 안녕하세요! 에이텐입니다!”

다 같이 박수를 치는 가운데 안무가 한아윤이 ‘이름 잘 지었다’ 하며 웃었다.

추기석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잘 지었죠? 우리 뉴블랙 쌤들이 지어 줬습니다.”

“오.”

“평균 연령 33.5세인 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허강민 대표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들자 모범주가 물었다.

“대표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저희 이름.”

“진짜 잘 지었는데? 일단 작명만 따지면 100점 만점에 100점이야.”

“오오오!”

“좋네. 귀에 쏙 감기고.”

어떤 이름이든 유명해지면 멋져 보이는 게 진리긴 하지만 1회성 그룹이기에 임팩트 있는 이름이 중요했다.

허강민이 에휴 하며 말했다.

“이름을 잘 지어야 돼, 이름을. 가수들 인생 노래대로 가는 것처럼 그룹도 이름처럼 가는 경우가 있어서.”

“아. 그…….”

다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이름을 떠올렸다.

과거 TNT와 함께 투탑 아이돌이었지만 막말 녹취록으로 연예계에서 퇴출된 식스티 세컨즈.

허강민이 슬픈 얼굴로 말했다.

“아이돌은 인성이야. 인성.”

실력만 보고 뽑았더니 영 아니었다는 이야기에 다들 웃픈 표정을 지을 때.

안무가 한아윤이 본론을 꺼냈다.

“일단 프로듀싱을 논하기 전에 실력부터 볼 수 있을까요?”

“실력이요?”

“네. 어느 정도로 하는지 알아야 세세하게 디테일을 잡아줄 수 있으니까요.”

보컬 트레이너와 다른 관계자들이 동의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면서.

‘설마 춤이 그때 그 상태는 아니겠지…?’

3주 전에 제작진이 보내 준 안무 영상을 떠올랐다.

목각인형이 ‘어휴’ 하며 식겁하고 도망칠 수준의 춤 실력.

긴장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앞에 최근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관계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야?’

3주 만에 춤이 미친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안무가 한아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야. 레슨 선생님 바뀌었어요?”

“……네?”

“어쩜 이렇게 단기간에 좋아졌지…?”

놀라워하는 반응에 미프 멤버들이 뿌듯한 웃음을 보이며 설명했다.

“트레이너 쌤도 도와주셨지만 뉴블랙 쌤들이 확 끌어올려 주셨죠. 특히 비주 쌤이.”

“뉴블랙……?”

뉴블랙이 누군지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다.

가장 잘나가는 보이그룹 중 하나인데 업계인으로서 모를 수가 있나.

거기다 비주도 알고 있었다.

‘관계자들이 꼽는 아이돌 댄서 랭킹’에서 늘 순위권에 드는 멤버이자 엄청 예쁘게 생긴 길치.

그런데…….

‘뭘 어떻게 했다는 거지?’

어떤 트레이닝을 시킨 건지 의문을 품을 때, 김의지가 말했다.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실 거 같아서 그간의 연습 영상을 준비했습니다.”

관계자들이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흐하하하!”

움직이는 TV가 인간들을 굴려대는 광경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다시 봐도 웃겼던 탓에 출연진과 스탭들도 같이 웃었다.

-으아아악!

-거기 서세요~!

상냥한 목소리를 내뱉는 TV가 혼비백산한 인간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어지는 TV의 조언에도 웃음이 또 나왔다.

-저희 주, 죽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선배님.

-으아아아!

-응원의 의미에서 영화 다이 하드의 OST를 틀어 드릴게요.

적절한 제목의 영화 BGM이 흘러나오는 동안 정신없이 웃는 관계자들에게 멤버들이 말했다.

“정말 그 말씀대로 쉽게 죽지 않더라고요.”

“휴식 시간도 정해진 대로만 쉬었어요. 1초라도 초과하면 TV에서 막 리코더 소리가 나오고.”

“완전 스파르타식으로 했죠. 하핫.”

허강민 대표가 혀를 내둘렀다.

“스파르타에서도 저렇게 하면 잡혀갔을 거 같은데. 노동법 위반 그런 걸로…….”

그의 농담에 다들 웃을 때.

턱을 괴고 지켜보던 한아윤이 TV 속 비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혹사하는 건 아니에요.”

“네?”

“혹사시키는 게 아니고 루틴을 엄청 촘촘하게 짠 거뿐이에요. 힘든데 할 만했죠?”

“네…….”

안무가가 웃었다.

“비주 씨가 루틴을 정말 잘 짰네.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도록 짰어요.”

미프 멤버들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굉장히 흥미로워하시네요.”

“저렇게 예쁘게 짠 연습 루틴을 오랜만에 봐서 그래요. 어때요? 하다 보니까 재미있었죠?”

“…….”

“와, 루틴 진짜 이쁘게 짰네.”

고생하는 멤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원래 댄서들은 다 이런 건가 의문을 품으며 출연진들이 시선을 피할 때.

작곡가 표형원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전망이 밝은데요? 안무 실력이야 더 향상될 거고. 다들 보컬 실력도 좋잖아요.”

“그러네. 조금 난이도 있게 가도 되겠어요.”

안무가 부족하면 무대를 꾸미는 데 한계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문제가 해소되어 있었다.

“그럼 자잘한 디테일을 우리가 손 봐야 할 텐데.”

허강민 대표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컨셉이 디스코 풍이지? 누군지 몰라도 아이디어 좋았어.”

“맞아요. 제작진 분들이 보내 주신 기획안 보고 ‘이거 딱이네!’ 했거든요. 나이대도 적당하고, 안무 난이도도 적당하고, 대중들에게 생소하지도 않고.”

“누가 정한 거예요? 멤버분들이 정하셨어요?”

안재희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것도 우리 뉴블랙 쌤들이 정해 줬습니다.”

“……이것도?”

“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 쌤이 정말 딱-! 짚어 주셨죠.”

컨셉까지 정해줬다는 이야기에 허강민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너희는 뭘 한 거야…?”

“시키는 대로 죽어라 연습을 했죠. 연습생이 뭘 아나요. 형님도 기획사 대표니까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아니, 연습생들이야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맞기는 한데….”

잠시 예능인들의 뻔뻔한 페이스에 말렸던 그가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늙은이들이 어린애들의 등골을 뽑아 먹었구나. 아주.”

“어린애들이라니요. 말씀을 삼가 주시죠. 모두가 존경하는 저희의 프로-듀-서입니다.”

우리 뉴블랙 선생님한테 감히! 하는 태도로 눈을 부라리는 이들에게 허강민이 눈을 깜빡였다.

‘왜 이래.’

특히 리더인 우주에 대해서는 흡사 우주교 1기 신자들이 보일 법한 수준의 경외심이었다.

왜 저러는지 의아할 때.

우주가 공동 작곡했다는 타이틀곡 ‘Attention’을 들으며 바로 납득했다.

“이래서 내가 보낸 곡이 까인 거였구나…….”

씁쓸하게 웃는 작곡가 표형원의 대사에 모두가 웃픈 표정을 지을 때.

KM 엔터의 대표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와…….”

“왜 그러세요?”

“너희 얼마 주고 가져온 거야? 이 곡?”

“5만 원이요.”

“에라이.”

눈으로 욕을 하는 기획사 대표의 표정에 멤버들이 민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방송만 아니었으면 내가 억 주고 넘기라고 했어. 이거.”

과장해서 말했지만 반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억을 몇 개를 줘도 남는 장사지.’

가수가 성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노래다.

소속 아이돌을 띄우기 위해 몇 억도 기꺼이 쓰는 판에 이런 곡이 있다면야…….

일반인들에겐 ‘음, 듣기 좋네’ 하고 들릴지 몰라도 전문가에겐 이 노래의 가치가 보였다.

‘뉴블랙이 레몬이었던가? 아이고… 남의 집 애들이라 어떻게 데려올 수도 없고.’

프리랜서 작곡가였다면 당장 본부장과 함께 도장 들고 집을 방문했을 텐데.

다른 회사 아이돌이란 사실에 안타깝게 마음을 접는 허강민 대표였다.

그러곤 껄껄 웃는 미프 멤버들을 얄밉게 바라보았다.

‘이러니까 좋아 죽으려고 하지.’

춤 연습시켜서 사람 만들어 놨지. 컨셉 잡아 주지. 노래까지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지.

거의 신무록 PD의 조상신이 ‘후손아! 시청률 나오거라아아!’ 하며 뉴블랙을 점지해 준 수준이었다.

‘아무리 얘네라고 해도 너무 아까운 곡인데.’

이웃집이 석유 나오는 땅을 산 것처럼 배가 아파올 때, 김의지가 허강민에게 물었다.

“그렇게 아쉬우세요?”

“내가 그냥 솔직히 말할게.”

허강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희한테 진짜 과분한 곡이야. 이거.”

최소 연간 차트 5위였다. 이 곡은.

눈을 크게 뜨는 멤버들에게 그가 말했다.

“너희는 딴 건 모르겠고, 앞으로 곡 써 준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매일 아침마다 절해.”

“이미 하고 있어요.”

“세 번 해. 삼세번.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절은 세 번’ 드립에 웃음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처음에는 TV 출연을 목적으로 나왔던 관계자들의 눈이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만져 보고 싶다. 이거.’

곡의 퀄리티와 컨셉이 너무 좋았다.

간만에 일을 해 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는다고 할까.

뉴블랙이 기본 틀을 기가 막히게 짜 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 한 번 섞어 본 적 없는 그룹에게 프로로서의 호감을 느끼는 한편, 전문가들이 의욕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

미프의 멤버들까지 가세해서 기나긴 회의가 이어질 때.

“일단 우리끼리 합의는 된 것 같고, 프로듀서님들한테 전화해서 의견을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허강민 대표의 제안에 따라 뉴블랙에게 협의 사항에 대한 의견을 묻기로 했다.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관계자들의 모습에 출연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사실 다 핑계고. 그냥 뉴블랙이랑 얘기해 보고 싶으신 거죠?”

“흠흠…….”

관계자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할 때, 영상 통화를 받은 매니저가 뉴블랙을 바꿔 주었다.

“뮤비 촬영장인가 보네.”

“앨범 준비하는구나.”

뉴블랙 멤버들이 화면에 가까워지면서 전문가들의 눈에 호기심과 호감이 깃들었다.

‘궁금해.’

예능이나 미튜브 이미지야 차고 넘치도록 알지만 실제로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대체 평소에 어떠하기에 전문가들이 감탄할 만큼 밑 작업을 다 해 놨는지.

그리고 이 곡은 어떻게 쓴 것인지, 여러 가지 의문이 맴돌고 있을 때.

“……허어.”

뉴블랙의 리더가 화면에 나타났다.

새하얀 피부와 음영이 질 만큼 입체적인 이목구비.

뮤비 촬영용으로 진한 아이라인을 그려서 그런지 난초가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였다.

짙게 분장한 미인의 등장에 감탄사를 흘리고 있을 때.

“음?”

어딘가 촉촉한 눈동자를 발견한 배우 남도훈이 물었다.

“우주야? 눈이 왜 그래? 뮤비 찍으면서 우는 연기 했어?”

-아뇨.

처연한 표정의 미인이 답했다.

누가 봐도 울고 난 뒤의 표정이었기에 다들 당황할 때.

곁에 있던 멤버들과 함께 우주가 손에 든 특제 도시락 통을 보여 주었다.

울적함이 아니라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제육볶음이 너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여어어…!

-행복을 1부터 10까지 매기면 11 정도.

새하얀 화장 때문인지 다섯 솜뭉치가 몽실몽실거리는 듯한 풍경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KM 엔터의 대표이사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고기 좋아해요?”

-어어…?

뉴블랙 멤버들이 그를 알아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맞아요. 나 KM 허강민입니다. 우리 회사 구내식당에 와 볼래요? 호텔 뷔페처럼 소고기를 무한으로 구워 주는… 구와악!”

말을 끝마치려던 KM 엔터의 대표이사가 급류에 떠밀리듯 밀려났다.

“비주 씨! 댄스 스튜디오 와 본 적 있어요?”

“다들 오랜만에 보네요. 명곡단에서 심사 보던 표형원인데…….”

“천 개의 꿈 정말 잘 들었어요. 뮤지컬을…….”

말을 나눠 보고 싶어서 타이밍을 노리던 차에 KM 엔터의 대표이사가 예능 재미를 빌미로 튼 물꼬였다.

“우와아악…!”

물론 당사자는 비집고 들어오려다 밀려나고 있었지만.

프로듀싱은 뒷전이고 각자 자기 용건을 꺼내는 아수라장에 촬영장이 웃음바다로 뒤덮였다.

*   *   *

갑자기 인맥이 늘었다.

“……뭐지.”

에이텐의 프로듀싱을 위해 모인 전문가분들이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여 주셨다.

나중에야 출연진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지만 처음엔 진짜 당황했다.

다들 내가 TJ에서 연습생일 때부터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분들이었으니까.

아마 ‘Attention’을 인상 깊게 들은 덕에 과분한 반응을 보여 주시는 것 같은데 부담스러우면서도 은근히 좋았다.

특히.

“우와아아…….”

평소 존경하던 안무가의 연락처를 받은 비주는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했다.

“춤 너무 잘 춘다고, 나중에 커버 영상 같은 거 찍고 싶으면 놀러 오라고 하셨어요.”

“오…….”

“진짜 재미있을 거 같죠?”

그건 글쎄였다.

그 안무가 선생님도 고되고 빡센 걸 사랑하시는 분 같던데.

다른 동생들과 말없이 따스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근데 라인업이 엄청 화려하네요.”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프로듀싱 참여 명단에 리혁이가 말했다.

“표형원 작곡가님부터 유영하 감독님, KM 엔터 대표님까지. 이런 분들이 한 자리에 뭉친 건 처음 봐요.”

“그러게여. 근데 말이에여, 형들. KM 구내식당에 뷔페 있다고 하셨는데 진짜일까여?”

“잠시.”

중현이가 잔상이 남을 만큼 빠르게 핸드폰을 톡톡거렸다.

그러곤 사진을 보여 주며 말했다.

“확인.”

“……진짜네.”

“뭐여, 애슐리여?”

“가본 척 하기는, 빕스 세대인 거 다 알아요. 아저씨.”

“캔모아도 모르는 게…….”

회사 구내식당이 프랜차이즈 뷔페 같았다.

무한 리필 고기를 구워 주는 셰프 앞에서 블링크의 멤버들이 채소를 든 채 부들부들 하는 SNS 인증샷이 있었다.

그걸 보며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중에 회사에 그거 만들자. 고깃집 불판이랑 식탁.”

“좋네요. 그럼 안 나가도 되고.”

숙성 냉장고에 싱싱한 한우까지 쟁여 둬서 레몬 엔터를 거대한 고깃집처럼 만들자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너무 재미있는 농담이라며 웃는 가운데, 석환 형만이 침을 꿀꺽 삼킬 뿐.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뮤비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독님!”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이러면 꼭 만나게 되더라구요~”

‘낙화’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훈훈하게 마무리한 우리는 본격적인 콘서트 준비에 들어갔다.

중간중간 미프의 팬송 녹음도 진행했다.

“그 부분에서 더 반 박자 빠르게 들어오겠습니다.”

-네!

“발음 중에서 송을 숑이라고 하시는데, 그 부분도 유의 부탁드릴게요. 선배님.”

-네!

다들 녹음은 여러 차례 해 본 적이 있다 보니 제법 순조로웠다.

촬영 분위기도 좋고.

거의 한 소절에 2시간을 쏟는데도 예능인들의 표정은 맑음 그 자체였다.

김의지가 너스레를 떨었다.

“예감이 좋아. 3년 전에 컬링 특집했을 때 딱 이 느낌이었는데.”

“맞아요. 그때랑 완전 데자뷰라니까.”

“노래도 너무 좋고.”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3년 전 초대박 특집 때와 같은 기시감이 든다는 말에 웃었다.

우리도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긴 했다.

제작진으로부터 ‘편집하기 너무 아깝다’고 할 만큼 분량을 뽑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렇게 미스터 프로듀서의 1회가 다가오고 있는 한편.

우리는 다른 프로그램에도 이름을 올렸다.

-[매니저를 부탁해] 틴스피릿이 숙소 1층에서 마주친 의문의 인물들은..?

TBC 방송국에서 예고편으로 올린 클립이었다.

물론 우리 얼굴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저마다 동물 이모티콘으로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뭐야. 왜 나만 생선이에요?”

“근데 난 왜 맨날 곰이지.”

“곰곰이 생각해 봐여. 형.”

헌데 얼굴도 안 보이고 목소리도 안 나오는데도, 모두가 우리를 알아보았다.

-ㅋㅋㅋㅋㅋㅋㅋ차라리 모자이크 하려면 기다란 핫도그 그런 걸로 전체를 가리라고

-넘나 뉴블랙ㅋㅋㅋㅋㅋ

-웃으면서 몸 들썩이는 것부터가 뉴블랙인데

-전국민이 다 아는 실루엣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구독자라서 아는데 구도가 딱 뉴블랙이다. 선우주 중심으로 좌우 2인씩 졸개 모드잖아.

-하찮은데 묘하게 간지나는 워킹

-이보게,, 내가 리더가 될 상인가?

내가 슬그머니 웃는 가운데 동생들이 반발했다.

“졸개 모드라니.”

“저 댓글 말도 안 돼요. 우리가 언제 양옆으로 2인씩…….”

“…….”

“……지호야! 얼른 이리로 옮겨 와!”

1대3 구도를 만들다가 불편하다며 2대2가 된 동생들을 보며 웃었다.

어쨌거나 다들 ‘뉴블랙 1초 나오는 거 안다’ 하면서도 출연 분량을 기대해 줘서 좋았다.

그리고.

-‘이 손이 아닌가벼..’ 우주, 달걀귀신과의 어색한 만남

-뉴블랙의 보물찾기 (feat. 카드캡터 곰중현)

-뉴블랙의 첫 번째 담력체험! “영원히 함께해요! 우리!” → “흐아아악!”

……힐링 컨셉으로 찍은 여행 리얼리티의 반응이 지나치게 좋았다.

본편 시청률도 리얼리티 치고 굉장히 잘 나오는 편이라고 들었지만 포털에서 인기가 엄청 좋았다.

대부분 1분 30초 정도의 클립이었는데 주간 영상 랭킹에 ‘뉴블랙의 여행일기’란 키워드가 가득하다고 할까.

피디님도 중간에 재미가 들렸는지 갈수록 제목 짓는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수플레들 보라고 만든 잔치인데, 손님들이 ‘허헛, 맛집이로구나’ 하며 찾아오는 게 묘한 기분이긴 했지만.

팬분들이 즐겁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특히 제주도 여행에서 마지막 날 밤에 내 사전 미팅영상이 나왔던 파트가 반응이 좋았는데.

“어…….”

다들 댓글창에서 너무 울고 계셔서 당황했다.

현장에서 동생들이 대성통곡하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 감동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뾰로롱~ 하는 아련한 편집과 잔잔하게 흘러나온 ‘밤바다’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분위기 잡는 데는 사기적인 노래니까.

“어흐흐흑…….”

“흐흡.”

영상을 보며 뭉클해지려고 했다가 훌쩍이는 녀석들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때 막내가 포크로 푸성귀를 콕 찌르며 물었다.

“그나저나 귀신은 편집됐나 보네여.”

“그런 듯?”

“이상하다. 그때 현장에서 스탭 분들이 폰카로 촬영장 돌아가는 거 찍고 있었잖아여.”

안 그래도 여행일기 3화 담력체험 편의 댓글창에서 그런 댓글이 보이긴 했다.

-근데 자꾸 쟤네 어디다 손 흔드는 거임??? 불길하게..

-저거 뭔지 안 나옴?

-뭐 지나가는 거 같은 느낌인데.. 아 이거 뭐지?

-공포영화도 아닌데 왜 무섭냐

하도 다른 영상이 많아서 지나가긴 했지만 이상한 느낌을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제작진분들이 따로 비하인드로 푸시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안 내보낸 걸 수도 있고.”

“흐으음.”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그렇게 회사 휴게실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동생들과 오붓한 저녁 식사를 즐길 때.

TV를 흘깃거리던 비주가 나를 톡톡 치며 불렀다.

“형, 이제 시작하나 봐요.”

“오, 시작한다! 시작해여!”

TV 화면에 미스터 프로듀서의 로고가 떠 있었다.

토요일 저녁 7시.

마침내 대망의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 그 첫 번째 본방송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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