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02화
김형섭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연예인 기획사….’
너무나 낯선 공간에 와서 그런지 초조하고 긴장됐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눈에 ‘프로듀싱팀’이란 팻말이 들어왔다.
“믹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아, 네.”
수더분한 인상의 작곡가들이 믹스 커피를 타서 건네주었다.
‘……다들 엄청 친절하시네.’
귀동냥으로 이 바닥 A&R이나 프로듀싱은 업무량이 장난 아니라고 들었는데.
어째 레몬 엔터 사람들은 인상이 푸근하고 웃는 것도 따스했다.
무엇보다 그를 굉장히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고 있었다.
“어제 미프 보고 깜짝 놀라셨겠어요.”
“아, 네….”
사건의 발단은 바로 어제.
평소처럼 라면을 끓여 먹으며 미프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만든 Nine의 리믹스가 흘러나왔다.
-어… 어어……?
어찌나 놀랐는지 냄비에 젓가락을 떨어뜨릴 정도였다.
국물이 옷에 튀는 동안에도 Nine의 리믹스에 맞춰 춤을 추는 비주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러더니 뉴블랙의 리더가 그런 말을 했다.
-너무 잘 만드셨는데요? 와.
순간적으로 얼굴이 화끈해지는 칭찬과 함께.
-농담이 아니고, 정말 이 리믹스를 만드신 제작자분께서 이걸 보신다면 꼭 연락해 주세요.
연락을 달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이야기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해당 영상의 댓글을 확인하니 ‘미쳤다ㄷㄷㄷ’, ‘공중파 진출ㅋㅋㅋㅋㅋ’ 같은 댓글이 셀 수 없을 만큼 달려 있었다.
대부분 ‘얼른 연락하세요! 님! 기회임!’ 하는 댓글들이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연락해 보자.’
그 결과물이 지금 신사동에 있는 연예 기획사에서의 미팅이었다.
‘내가 생각한 거랑은 분위기가 다르긴 한데…….’
회사라서 뭔가 정해진 복장을 상상했는데 작곡가들이 모인 부서답게 자유분방했다.
수염은 기본이고, 귀걸이를 낀 사람도 있고, 힙합 반지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직원도 있고.
눈앞에 앉아 있는 나상윤 피디도 해골이 그려진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김형섭 씨?”
“네.”
“형섭 씨라고 불러도 되죠?”
“네. 물론입니다.”
나상윤 피디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취업 면접 같은 게 아니니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어디까지나 형섭 씨는 우리가 초청한 손님이니까.”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어요. 편하게~”
뒤에서 조무래기처럼 옹기종기 서 있는 작곡가들이 웃었다.
“미튜브에 올린 리믹스는 우리도 다 봤어요. 정말 맛깔나게 만들었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베플 중에서 ‘이거 들으면 원곡 심심해서 못 듣는다’ 이런 게 있던데, 다들 동감했어요.”
리믹스에 대한 칭찬에 김형섭이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내 다른 직원들도 칭찬으로 그의 긴장을 풀어 주고는 작업 과정에 대해 물었다.
“어떤 식으로 발상을 한 거예요?”
“아, 그게요.”
작업 과정에 대해 더듬더듬 설명했다.
워낙 말로 하는 설명에 재능이 없는 터라 이해가 됐을지 싶었는데 베테랑 작곡가들답게 바로 알아들었다.
“후렴 가기 전에 쪼개자고 생각한 거죠?”
“어, 네…. 어떻게…?”
“들으면 알죠. 와, 근데 아이디어가 정말 좋으시네.”
다들 아이디어가 좋다며 칭찬을 해 줬지만 그는 오히려 상대의 내공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주변에 친한 작곡가 형들이 몇 있긴 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직원들만큼 단수가 높은 사람들은 처음 봤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말씀 안 드린 부분까지….”
“그죠? 우리가 좀 해요. 하필이면 근처에 대마왕 같은 애가 하나 살아서 그렇지…….”
짐작 가는 인물이 하나 있었다.
“뉴블랙 우주 님…이요?”
“네.”
그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보면 알 거예요. 걔는 진짜… 뭐라고 해야 되지? 하늘에서 뭘 내렸다니까. 정말.”
“우주 얘기는 나중에 해요. 팀장님. 도망칠라.”
다른 직원들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때, 김형섭이 멈칫했다.
‘도망? 무슨 도망?’
그런 의문을 품으려고 할 때 나상윤 피디가 눈치 빠르게 화제를 돌려 버렸다.
“작곡 공부는 어디서 했어요?”
“중고등학교 때 밴드부 활동을 했는데, 그때 기타 치면서 좀 공부했습니다. 주변에 작곡하는 형들도 있었고.”
“혹시 지금은 하시는 일이……?”
“제대하고 작년부터 알바나 노가다 뛰고 있습니다.”
“아하….”
정확히 말하자면 삼수를 하다가 실패하고 군대에 다녀온 케이스였다.
이런저런 사정을 듣던 나상윤 피디가 물었다.
“그럼 진로는 생각한 게 있어요?”
“진로요?”
“미래에 뭘 하고 싶다거나.”
“……아직 딱히 생각은 해보진 않았는데, 기왕이면 음악 쪽으로 좀 생각을 해 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그쯤 갔을 때, 김형섭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본론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기대하던 쪽의 방향으로.
“흐으음.”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나상윤 피디가 그에게 물었다.
“형섭 씨.”
“……네?”
가슴이 핑크빛으로 콩닥콩닥할 때.
그토록 기다리던 질문이 들려왔다.
“혹시 우리 회사에서 음악 배워 볼 생각 있어요?”
“음…….”
“일도 하고 음악도 배워 볼 수 있는 기회인데.”
겉으론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김형섭의 귀에 천상의 팡파레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올해 스물넷.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황금색 동아줄이 몽실몽실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거 실화인가? 진짜 실화?’
그만큼 행복했기에 몸을 부르르 떨던 24세 청년은 알지 못했다.
‘잡았다……!’
전설의 포켓몬을 낚은 것처럼 기뻐하고 있는 작곡가들의 눈빛을.
* * *
프로듀싱팀 사무실 밖.
“흠흠.”
근엄한 표정으로 걸어 나온 나상윤 피디님이 복도에서 대기하던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호가 속삭였다.
“잡았어여?”
“산 채로 잡았다.”
동생들과 내가 작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상대방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듣고, 나상윤 피디님에게 물었다.
“피디님이 보시기엔 어때요?”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타고난 센스가 좋아. 특히 리믹스나 편곡 쪽으로 재능이 있어 보이고.”
“오오…….”
“솔직히 지금 바로 투입해도 무방해.”
“오오오오.”
점점 밝아지는 내 표정에 나 피디님이 웃었다.
“그렇게 좋냐?”
“제가 요즘 정말 필요로 하고 있던 인재가 나타나서요.”
“그건 그렇긴 하네.”
Nine의 리믹스를 듣자마자 꼭 초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랑 동갑이라고 했나.
사무실 안에 있는 형섭 씨는 특정 곡의 분위기를 강조하는 데 있어서의 재능이 돋보였다.
신나는 노래는 더욱 더 신나게, 잔잔한 노래는 더욱 잔잔하게.
나는 곡을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지만 그런 쪽에는 좀 약하기도 하고 해서, 늘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오늘 중으로 계약을 할 거 같아. 일단은 임시직으로 일하고 그 다음에 본인이 결정하도록 해야지.”
“괜찮네요.”
그러곤 고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을 체크했다.
“인터넷은요? 이상한 글 쓴 거 없어요?”
“미튜브 계정으로 영상 몇 개 올린 걸 빼면 완전 깨끗해. 보면 알겠지만… 관상에 인터넷이 없어.”
“잘됐네요.”
일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에 만족스런 기분을 느꼈다.
“그럼 들어가서 인사해도 될까요?”
“좋지.”
동생들과 함께 프로듀싱팀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히끅!”
까무잡잡한 피부의 20대 청년이 우리를 보고 놀라 딸꾹질을 했다.
체대생을 연상시키는 외모에 큰 키.
자리에서 일어난 형섭 씨가 허둥지둥했다.
“아, 안… 히끅! 안녕하세요홓끅!”
“안녕하세요. 작곡가님.”
“자, 작곡가는 아니힣끅! 아후, 제가…….”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현아.”
“네. 형.”
“멈춰드려라.”
“알겠습니다.”
치과에 온 어린아이처럼 경계하는 형섭 씨에게 괜찮을 거라고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3초 후.
“……헐.”
딸꾹질이 귀신같이 멎었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형섭 씨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첫 인상을 좋게 남긴 것 같아 뿌듯했다.
“와, 연예인…….”
“안녕하세요.”
“너무 신기해서 놀랐어요. 어제 TV에서 보다가…….”
놀라서 횡설수설하던 이가 물었다.
“혹시 이따가 끝나고 사진 한 장.”
“당연히 되죠.”
“안 그래도 부모님한테 일자리 얻었다고 하면 안 믿으실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텐데요. 뭘.”
계속 얼굴을 보게 될 거란 말이 나름 큰 의미였는지 뭔가 머릿속에 이것저것 지나가는 표정이었다.
리믹스 정말 잘 들었다고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말해 주니 상대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춤 출 때도 평소보다 더 신이 나더라고요. 리믹스를 정말 재미있게 해 주셨어요.”
“아…….”
“저희랑 같이 일을 하신다고 해서 기뻐요.”
우리 둘째의 진심 어린 말에 상대가 손에 쥔 종이컵을 둥글게 매만졌다.
다른 동생들도 웃으며 인사를 하고.
그렇게 프로듀싱팀에 임시직으로 합류하게 된 김형섭 씨에게 환영 인사를 건넨 후.
“첫 만남부터 일 이야기를 하면 너무 정이 없나 싶긴 한데…….”
“아, 아뇨! 괜찮아요! 일하고 싶어요. 정말로.”
“얼마 있으면 저희 콘서트거든요. 거기 MR 중에서 몇 곡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네!”
“부담 없이 조언 정도만 부탁드릴게요.”
콘서트 버전으로 쓸 MR 중에서 신나게 편곡한 곡들을 완전 더 신나게 하고 싶었다.
수플레들이 ‘오늘 여기가 내가 누울 곳이다’ 하며 쓰러질 만큼 방방 뛰게.
원곡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곡의 분위기를 조금 강조할 수 있는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아뇨, 아직…….”
“그럼 요 앞에 소고기집 있으니까요. 프로듀싱팀 분들과 가서 고기 드시고 오세요.”
“소고기를요?”
돼지고기가 아니고 소고기를 사 준다는 말에 상대가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 내가 얍삽한 얼굴로 서 있는 나상윤 피디님께 물었다.
“제가 누구죠. 피디님?”
“레몬 엔터 최고 존엄 선우주 님이십니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말고요…….”
민망해하는 나를 보며 직원들이 키득거렸다.
이내 왕에게 검을 하사받듯 카드를 받아드는 피디님의 모습에 동생들과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한 분위기가 좋았는지 우리 신입 직원도 활짝 웃었다.
좋다.
처음에 프로듀싱팀도 저런 얼굴이었는데. 불현듯 작년 생각도 나고 좋았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이리 와요. 형섭 씨, 오늘 점심 소고기로 배를 꽉 채웁시다!”
신이 나서 일찍 식사를 하러 떠나는 프로듀싱팀 직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우리는 TF팀 사무실로 향했다.
홍서영 과장님으로부터 미프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었다.
“고생이 많으세요. 과장님.”
“왔어?”
“네, 어떻게 잠은 좀 주무셨어요?”
“아니.”
그 말과 함께 우리에게 홍삼을 건네받은 홍 과장님이 웃었다.
“좋아서 잠이 안 오더라.”
“오오…….”
“지난밤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뭐부터 들어볼래? 좋은 소식과 좋은 소식 중에서.”
“좋은 소식이요!”
다 같이 웃으며 답했다.
* * *
가장 좋은 소식은 바로 대중들의 호감 섞인 반응이었다.
대개 인기 예능은 연예부 기자들이 공감 수 많이 받을 듯한 내용을 기사로 쓰기 마련인데.
제목부터가 대호평이었다.
-뉴블랙 멘토로 세운 ‘미프’, ‘시청률+화제성’ 두 마리 토끼 다 잡았다
-“TV가 사람을 쫓아가네”, 뉴블랙 비주의 TV 추격전에 시청자 폭소
-‘여태까지 이런 멘토는 없었다’, 뉴블랙 참여한 프로젝트가 기대되는 이유
홍 과장님이 스크랩한 기사들을 보여 주셨는데 댓글이 몇 천 개가 달린 것도 있었다.
“흐어…….”
거의 연예인이 주말 농장에서 대마를 재배하는 급의 스캔들이 터져야 달리는 댓글 수였다.
베스트 순으로 내려도 선플만 가득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겼음 진짜
-간만에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하루 종일 웃었네요
-어제 미프 출연진들이랑 합도 너무 좋았고 진짜 보는 내내 침 질질 흘리면서 웃었음
-tv ppl 준 담당자 누군진 몰라도 지금 겁나 칭찬받고 있을듯
-아부지 TV 굴러가유
-진짜 이런 식으로 웃길 줄은 몰랐는데.. ㅋㅋㅋ 진짜 간만에 재밌는 특집 나와서 너무 행복하네요
-요즘 tv 보면서 연예인들 웃을 때 무표정이었는데,, 간만에 tv에서 웃을 때마다 나도 같이 웃음ㅋㅋㅋ
-뉴블랙 평생 고정해
-짭새였나? 짜파게티인가 하여튼 나도 그거 하고 싶다ㅎㅎ
베스트 댓글 하나당 찍힌 공감수도 어마어마했다.
리혁이가 감탄했다.
“국민 예능이라고 말로만 들었지, TV를 안 봐서 몰랐는데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네요.”
“그것도 있지만 너희가 어제 너무 웃….”
“저희도 인정합니다. 웃겼죠?”
“엄청 웃겨서 그런 것 같아. 특히 비주가 큰일했어.”
“감사합니다. 과장님.”
양손으로 브이를 하고 고개를 꾸벅하는 비주의 모습에 홍 과장님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 커뮤니티를 들어가든 지금 베스트 게시물에 비주 움짤이 하나씩은 있거든.”
전반적으로 재미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마지막이 가장 임팩트가 강한 듯했다.
“그게 제대로 터져서 화제성 몰이를 한 거 같아.”
“확실히 그렇겠네요.”
“맞아여. TV가 살아나서 인간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데 누가 안 궁금하겠어여.”
인터넷 특유의 ‘저게 뭐냐?’ → ‘나만 볼 수 없지. 이거 보셈.’ → ‘저건 뭐냐?’ 하는 아름다운 선순환 덕이었다.
어느 영화와 합성되어서 ‘넌 TV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하면서 자전거 탄 비주 인형이 길을 잃는 짤도 봤다.
“시청률은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고 들었는데, 아마 다음 주부터는 확 치고 올라갈 거 같아.”
“피디님이 엄청 좋아하셨을 거 같아요.”
“비하인드 영상들도 미튜브에 올리는 거 보니까 제작진도 엄청 신난 거 같더라고.”
제작진뿐만이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한 프로젝트인 만큼 출연진들도 엄청 설레고 들떴다는 게 보였다.
지금도 미프 멤버들이 단톡방에서 뉴블랙 이모티콘을 쓰며 광란의 톡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 건데….”
홍서영 과장님이 말했다.
“너희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잘 받아들인 거 같아.”
“새로운 이미지요?”
“프로듀싱이나 작곡 같은 거.”
“아…….”
“명곡단에서 보컬 실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솔직히 여태까지 일반 대중들이 주목한 건 그런 부분이 아니었잖아.”
뿌듯하게 웃는 우리에게 상대가 말했다.
“이대로 프로듀싱에 대해서 조명이 되면 어떤 쪽으로든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해.”
“네. 저희도 그게 너무 좋아요.”
재미있는 걸로 받는 주목도 좋지만 이렇게 본업과 관련된 쪽으로 받는 주목이 최고였다.
이제 1회이니 앞으로 더 많은 걸 보여 줄 수도 있고.
두 달 동안 대중들에게 우리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미프 출연을 망설였던 게 이해가 안 될 만큼 좋은 결과였다.
“정말 잘했어. 지금 너희가 나온 방송 출연만 해도 앨범 홍보비를 몇 십억은 써야 낼 수 있는 홍보 효과를 누린 거니까.”
홍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말을 하던 상대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참.”
“네?”
“혹시, 그 움직이는 TV 가지고 싶니?”
“아뇨.”
“제조사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비주한테 정말 감사하다고 말 좀 전해달라고 했거든.”
지호가 등을 두드리며 ‘우와아’ 하자 비주가 좋아했다.
“혹시 움직이는 TV 가지고 싶으면 몇 대 보내 주겠다고 하던데 관심 있니?”
“그건 정중히 사양할게요.”
전혀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근데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하신 거면, 앞으로 판매량이 늘 것 같다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 거 같고… 2위 브랜드가 임팩트 있게 이미지 홍보한 걸로 만족한 거 같아.”
출시하고 지금까지 전국에서 20대 팔리고 끝났다는 말에 납득했다.
오히려 움직이는 TV를 스무 대나 산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할 정도였다.
대체 그게 왜 개발된 것인지 궁금할 뿐.
“자, 그럼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홍 과장님으로부터 앞으로 인터뷰에서 미프와 관련된 질문이나 SNS 업로드에 있어 조심할 포인트들을 코칭 받은 후.
“틴스피릿이 나오는 TBC 프로그램에 대해선 미리 언질해 줄 거 있니? 알아두면 좋은 거라든가.”
“내용은 문제가 없는데 조금 걸리는 게 하나 있긴 해요…….”
“뭐? 무슨 일인데 우주야?”
살짝 놀란 얼굴로 묻는 홍 과장님에게 말했다.
“얘네는 그나마 비비라도 발랐는데, 제가 쌩얼로 나왔거든요.”
“에이…….”
“…….”
“바쁘다고 했지? 가서 얼른 연습해.”
“아니, 저…….”
엄청 밉다는 얼굴로 손을 휘휘 젓는 과장님의 모습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TBC의 ‘매니저를 부탁해’에서 나온 우리 분량은 정말 걱정할 필요가 없긴 했다.
후드를 뒤집어쓴 채 민낯으로 등장해서 바짝 긴장했는데.
“오. 생각보다 괜찮다, 그치?”
“…….”
“쌩얼 치고는 잘 나왔는데?”
[형들이 왜 거기서 나와..?] 하는 자막이 깔리는 가운데 등장한 5인조의 모습에서 내가 제법 괜찮게 나왔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히려.
“눈치 챙겨여, 선우주…….”
“자긴 살았다 이거지. 아, 진짜 어떻게 저래?”
“난 왜 김비주보다 키가 커서 얼굴이 안 가려지는 걸까.”
“김중현, 너 조용히 안 해?”
묘하게 꾀죄죄한 숯덩이들처럼 등장한 자신들의 모습에 탄산수 병을 깡소주처럼 들이키는 동생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살겠다고 비비 크림을 발랐던 게 떠올라 쌤통이었다.
“한잔해. 우리 비비크림즈.”
치얼스 하듯 병을 들어보이자 네 명이 망고 어워드 때의 콧물 사진을 들먹이면서 또 당했다고 분개했다.
그런 동생들에게 얄밉게 웃어 줄 뿐.
어쨌거나 우리와 틴스피릿이 공손하게 대화를 나누며 풍선을 주고받는 장면은 소소하게 화제가 됐다.
딱히 별 내용이 없었지만 틴스피릿 멤버들이 Y앱을 통해 이야기한 내용 때문이었다.
-네, 뉴블랙 분들이 윗층에 살아요. 첫날 이사 오셔서 와파 공유도 해 드리고…….
-그날 풍선을 드린 거 미프 녹화 때 쓰셨다고 해서 되게 뿌듯했어요. 본방송 보면 알 거라고 하시던데.
-많이 친하다기보단 서로 호감을 가지고 알아 가는 사이…? 더 친해지고 싶어요.
‘존나’ 같은 어휘를 봉쇄당해서 그런지 우리 관계를 표현할 적절한 표현이 안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렇게 연후가 내뱉은 발언이 화제가 됐다.
-틴스피릿 연후, 라이브 방송서 뉴블랙 언급 “호감 갖고 알아가는 단계.. 지켜봐 달라”
묘하게 열애설 같은 기사 제목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결별 기사는 언제쯤 내면 좋겠냐고 농담 톡을 보내니 미안하다는 답장과 함께 다들 극렬하게 연후를 디스했다.
최종학력 드립이 그렇게 바리에이션이 많은 줄은 처음 알았다.
“국적 중고나라는 처음 보네.”
“확실히 책뿐만 아니라 생활에서 쓰는 표현도 가치가 있긴 하네요. 볼 때마다 언어의 연금술사 같아.”
“굳이 따지자면 흑마술사 아닐까여.”
어쨌거나 의도치 않은 틴스피릿과의 해프닝도 잠시.
“안녕하세요!”
중간 안무점검을 위해 에이텐 멤버들이 레몬 엔터의 연습실을 찾아오기로 한 날.
방송 녹화를 앞두고 깜짝 게스트가 회사를 찾아왔다.
물론 오기 전부터 3일 동안 ‘갑니다. D-3’, ‘D-2’ 하며 오두방정을 떨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안녕하세요! 뉴블랙 여러분!”
“와아아아!”
“콘서트를 앞두고 많이 지치셨을 거 같아서 저 한태현이 이렇게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동생들의 환호를 독차지하며 양팔을 벌리고 있는 누군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양손 가득히 든 선물 보따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보부상이냐.”
“보부상이라니, 취소 안 하면 이거 다시 가져간다.”
“환불할 자신은 있고?”
환불도 못해서 옛날에 나한테 매번 부탁한 게 누군데.
상대가 입맛을 다셨다.
“아, 방송 시작 전부터 말리네.”
“잘 왔어.”
“나 잘 왔지?”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좋네.”
팔을 툭 치며 웃자, 꽁한 표정을 짓던 민트 머리의 아이돌이 씩 웃었다.
한태현.
7년차 보이그룹 TNT의 메인댄서가 바로 오늘 미스터 프로듀서의 깜짝 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