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04화
태현이가 모른 척하며 말했다.
“8번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예능인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선배님! 그럼 9번은요?”
“정말 궁금하네요.”
“다른 건 몰라도 10번은 알려 주셔야죠. 시작과 끝이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삽시간에 궁지에 몰린 태현이가 자연스럽게 앞머리를 쓸어넘긴 후.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흐하하핫!”
“아주 큰 잘못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예능인들과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아, 나 왜 눈물 나지?”
“흐하핫!”
“저 나오면 잘해 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짐짓 서글픈 얼굴로 눈가를 콕콕 찍는 태현이의 모습에 예능인들이 미안한 웃음을 터뜨렸다.
“와. 시작부터 엄청 말리네요. 올 때부터 자신 있게 이거 7개 딱 지르고 가야지 했거든요.”
“우리도 깜짝 놀랐다. 태현아. 네가 우주 쌤이랑 완전히 똑같은 얘기를 해 가지고.”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네요.”
한숨을 쉬는 태현이를 보고 다들 웃는 한편, 먹잇감을 찾은 예능인들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조언도 그렇고. 대선배님께서 찾아오셨다는데 영 신뢰도가…….”
“솔직히 못 미더운 거 같아요, 저는. 오자마자 이렇게 표절부터 하시고.”
“멘탈 조언하려고 오셨는데 본인 멘탈이 지금 깨지시고 있잖아요.”
모범주의 드립에 다들 빵 터졌다.
태현이가 해명하겠다는 듯 양손을 들고 말했다.
“이게 오해가 조금 있을 수 있는데.”
“예, 한 번 말씀하세요.”
“사실, 원조는 저예요.”
그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스윽 돌아갔다.
“……예?”
조금 어이없어 보이는 표정이었는지 예능인들과 동생들이 깔깔 웃었다.
“우주 쌤 표정이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그런 표정인데요?”
“진짜 당황했나 보다.”
“우주가 저렇게 황당해하는 거 처음 봐. 진짜.”
태현이가 워워 하듯 손을 들었다.
“원조가 저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이 이야기를 최초로 들은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그래서 소유권이 있다? 논리가 없네요. 리혁 쌤 보세요. 아직 이해를 못하고 있잖아요?”
눈을 깜빡이고 있던 리혁이가 카메라 포커스에 급 빵긋한 표정을 지었다.
사회생활 하는 우리 애의 표정에 다들 웃을 때, 태현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제가 해당 명언을 만들 때 나름대로 기여를 한 바가 있습니다. 설명은 못하지만.”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예능인들에게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저 혼날 거 같은데 이거 어떡해요?
-형, 근데 이거 하면 혼나려나? 아 어떡하지. 근데 진짜 이대로 하면 안 되나? 하고 싶은데.
-나 석지훈이랑 싸웠는데 어떻게 화해할지 조언 좀…….
연습생 시절에 우리 막둥이보다 더 눈치가 없었던 누군가 때문에 나온 조언이긴 했으니까.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
아련한 미소를 짓는 나에게 절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눈빛이 돌아왔다.
그때 MC 김의지가 웃으며 정리했다.
“확실히 연이 깊긴 했나 보네. 연습생 시절부터 서로 조언도 하고.”
“제가 신세 좀 많이 졌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지금의 한태현 선배님을 만들어준 멘토 중 한 명이군요. 우리 우주 쌤이?”
“그렇죠.”
“멘토의 멘토가 이미 우리 옆에 있었구나.”
미프의 출연진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태현 선배님은 왜 나오신 건지……?”
“아앗…….”
그럼 왜 나온 거냐며 구박하는 출연진들에게 태현이가 ‘말리네…’ 하며 입을 달싹일 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에 내가 나섰다.
“아닙니다. 선배님께서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거지, 사실 저도 데뷔하고 정말 많은 도움을 얻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 이것저것?”
대충 얼버무리는 내 모습에 예능인들이 박장대소하고 태현이가 눈을 감고 부르르 떨 때.
다시 말을 이었다.
“존재만으로도 정말 도움이 되는 선배님입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사람 약 오르게 하고.
“정말 경험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자꾸 자기 연차 들먹이고.
에이텐이 호오 하고, 행간의 맥락을 알아들은 태현이만 눈을 가늘게 뜨며 웃을 때.
지호가 냉큼 서포트를 해 주었다.
“맞아여. 저희도 무대 준비할 때 태현 선배님 영상 많이 보면서 춤 공부했습니다.”
“저도 월말평가 때 춤 참고하려고 많이 봤어요.”
이어지는 중현이의 칭찬에 태현이의 왼쪽 어깨가 으쓱하고, 비주의 칭찬에 오른쪽 어깨가 으쓱했다.
“격한 춤을 추면서도 노래를 너무 잘 부르시고…….”
마지막으로 리혁이의 칭찬에 턱끝도 살짝 올라갔다.
엑조디아를 모은 것처럼 칭찬을 완성하고 기분이 좋아진 태현이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그러곤 춤이란 키워드에 뭔가 떠올랐는지 물었다.
“참, 태현 선배님도 아까 저희 안무를 보셨잖아요.”
“네.”
“어떠셨어요, 저희 안무? 10점 만점에 몇 점 정도인지…?”
“으음…….”
잠시 고민하던 태현이가 비주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비주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태현이가 손가락을 폈다.
“8점 정도.”
“오…….”
감격하는 이들에게 태현이가 생긋 눈웃음을 보였다.
“물론 합계입니다. 20점 만점에.”
“야! 그럼 둘이서 4점씩 준 거잖아!”
예상 못한 반전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 그건 모르는 거죠. 제가 3점을 준 걸 수도 있고. 비주 씨가 3점을 준 걸 수도 있고.”
“아이고, 마. 됐다.”
이내 실력이 좀 늘었다고 자찬하던 에이텐의 멤버들이 한숨을 쉬었다.
“갈 길이 멀었네요. 저희가.”
“더 연습해야지.”
“그래도 이렇게 객관적인 평을 들으니까 좋네. 우리끼리만 있었으면 잘한다고 게을리했을 거예요.”
슬퍼하는 이들의 모습에 내가 ‘얼른 위로해 드려’ 하듯 눈빛을 보낼 때.
졸개1과 원조 졸개가 말귀를 알아들었다.
“근데 지금 엄청 많이 발전하신 거예요. 가야 할 길의 절반 정도? 지금까지 하신 것만큼 한 번만 더 하시면 돼요.”
“아이고…….”
“같은 생각이에요. 뭘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한 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아이고오!”
태현이가 곡소리를 내는 에이텐의 멤버들을 보며 갸웃했다.
그러곤 우리를 둘러보았다.
나로 시작해서, 푸근하게 웃는 중현이, 사근사근하게 웃는 비주.
하찮게 웃는 리혁이와 발랄한 지호까지.
“아…….”
대체 무슨 ‘아’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특히 중현이와 나를 번갈아 보고는 납득한 반응이었다.
그러고는 출연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세하겐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하게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건 알겠네요.”
“선배님은 정말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아닙니다. 저도 알아요. 미튜브 구독하거든요.”
“오! 태현이도 뉴블랙 TV 아는구나!”
눈치 없이 해맑게 웃던 추기석 씨가 멤버들에게 응징을 당한 후.
힘들고 짠해 보이는 에이텐에게 7년차 아이돌이 말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견디셔야 돼요.”
“으흐흑…….”
“데뷔곡으로 이 정도로 좋은 곡을 받으셨으면 뼈가 부서질 각오로 하셔야죠.”
“아. 인정합니다.”
바로 슬픔에서 벗어나 수긍하는 에이텐의 멤버들이었다.
그러고 있을 때, 태현이가 한참 궁금했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곡은 어디서 받으셨어요?”
아직 방송에 나오지 않아 누가 작곡가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추기석이 물었다.
“둘이 친하다며. 태현이는 몰라? 이거 우주가 쓴 곡인데.”
“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뇨. 전혀 몰랐어요. 이분이 일이나 비밀 유지에 있어서는 완전히 철저한 사람이라서…….”
“저희 할머니도 아직 제가 곡 쓴 거 모르세요.”
내 대답에 출연진들이 웃었다.
카메라 뒤에선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늘상 동분서주하는 스탭들이 엄지를 들었다.
그 동안 눈을 휘둥그레 뜬 태현이를 보며 모범주가 농담을 던졌다.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요.”
“작곡가마다 특징이라는 게 있잖아요. 뉴블랙 분들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작곡가의 색깔을 아는데, 거기서 느껴지던 게 이 노래에서는 하나도 안 보였거든요.”
“진짜요?”
“네. 완전히 다른 사람 노래 같아요. 부르는 사람에 맞춰서 이렇게 특징을 바꿀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새삼 감탄했다는 모습에 동생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머릿속으로 뭔가를 상상하던 태현이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내게 공손하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선배님.”
악수를 나누며 조무래기들도 소개했다.
“여기 저의 작곡 조수들도 있습니다.”
“조수님들도~”
다 같이 친목을 도모하는 모습에 출연진들이 웃었다.
“태현이 지금 내가 얼굴 봤어. 이미 머릿속에서 앨범 발매까지 싹 다 끝난 거 같은데?”
“내가 봤을 땐 앨범 홍보 기사 타이틀까지 지나갔어. 예능 나가서 풀 앨범 비하인드 에피소드로 뭘 고를지 고민하고.”
“우리도 Attention 받았을 때 망고 실시간 차트가 눈앞에서 아른거렸잖아요.”
다들 이해 간다는 반응이었다.
멋쩍게 하핫 웃던 태현이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손뼉을 치며 정리하듯 말했다.
“차 타고 오면서 무슨 조언을 해 드릴지 고민을 했는데, 와서 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요?”
“네, 굳이 제가 뭘 조언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미 프로듀서 분들이 잘해 주셔서.”
우리를 둘러보던 태현이가 말했다.
“지금까지 하셨던 것처럼 뉴블랙 분들을 믿고 가시면 정말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이 보시기에도 그런가요?”
“무대 잘하는 후배 분들로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프로듀싱이나 코칭에도 뛰어나시더라고요.”
태현이가 내 옆에 선 비주를 보며 말했다.
“춤 진짜 잘 가르치세요. 아까 봤는데 코칭을 너무 잘하시더라고요. 춤선도 너무 좋고.”
“허어… 감사합니다!”
“저한테 늘상 안무가처럼 춘다고 다들 칭찬해 주시는데, 사실 그런 칭찬은 비주 씨에게 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심지어 몸까지 춤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너무 나간 거 아니냐며 예능인들이 놀릴 때.
우리가 비주의 길쭉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긴 해요. 비주 손이 크거든요.”
“맞습니다. 손이 크면 무대에서 같은 손짓을 해도 훨씬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거든요.”
“참고로 저도 커여~”
“저두.”
여섯이 단체로 길쭉한 손가락을 쭉 뻗자 에이텐 멤버들이 자신들의 손을 내려다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발라드 가수 안재희도 동의한다는 듯 말했다.
“근데 다 분야별로 자기 거 잘하게 생긴 관상이긴 해. 리혁이도 노래 잘 부르는 상이고.”
“……흠흠.”
“저 봐. 입꼬리가 사악 올라가잖아. 저게 잘 되야 소리가 유지가 잘 되거든.”
그런 이야기가 오간 후, 태현이가 말을 이었다.
“지호 씨도 표정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가끔 미튜브에 알고리즘으로 뜨는 직캠 보고 감탄하고 그래요.”
“어떤 거 보셨나여? 마스커레이드?”
“네, 마스커레이드요. 보고 나서 나중에 볼 동영상에 저장해 놨어요.”
지호가 팔짝 뛰며 좋아했다.
이윽고 중현이까지 랩에 대한 칭찬이 끝나고, 내 순서가 됐을 때쯤.
“이상입니다.”
자연스럽게 끊어먹고는 동생들과 웃음을 교환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사실대로 말한 건데요, 뭘. 하핫!”
“흐하하하핫!”
다섯이서 얄밉게 웃는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내가 입맛을 다실 때.
‘이 선생님들이 대단하다!’ 하며 칭찬 폭격을 퍼붓던 태현이에게 김의지가 말을 걸었다.
“근데 태현아.”
“네.”
“녹화 끝나려면 한참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엔딩 멘트를 치니?”
“아. 그게.”
태현이가 시계를 찾기 위해 벽을 두리번거렸다.
안재희가 말했다.
“우리도 찾았는데 여긴 시계가 없더라.”
“그러네요.”
그러곤 손목시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제가 이제 갈 시간입니다!”
“간다고? 어디?”
“작가님들께 미리 말씀 드렸는데 못 들으셨나요…? 보라카이로 화보 찍으러 갑니다. 3시 비행기로.”
“뭐야. 진짜 가는 거야?”
우리가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신무록 피디님이 맞다는 듯 OK를 그렸다.
에이텐의 멤버들이 당황했다.
“야, 그럼 멘토링은…?”
“특별하게 드릴 조언은 없고요. 말씀드렸다시피 뉴블랙 분들을 믿고 가시면 됩니다~!”
“태현아…!”
“그럼 저는 이만~!”
“……야아! 네 친목만 도모하다 가냐!”
‘뉴블랙이랑 수다 떨러 나왔냐!’ 하며 원성을 자아내는 이들에게 태현이가 손을 흔들었다.
너무나 얄미운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태현아~! 너 진짜 그대로 갈 거야?”
“쟤는 팁을 주러 나온 게 아니라 뉴블랙이랑 놀러 나왔네.”
“진짜 가냐, 이 민트 초코야!”
‘저는 민트 초코 좋아합니다!’ 하고 외치던 태현이가 연습실을 나가기 전에 멈췄다.
“팁 하나만 드리고 갈게요!”
“뭔데?”
“무대 끝나면 포털 기사 올라올 텐데, 댓글은 꼭 공감순으로 보세요…! 최신순으로 보지 마시고…!”
너무나 공감 가는 꿀팁에 출연진들과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는 태현이를 모두가 손을 흔들며 송별했는데, 갑자기 녀석이 머리를 쏙 내밀었다.
“다들 연락할게요!”
“네!”
“형도 이따 비행기 타기 전에 톡할게~!”
“예에….”
예능인들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야! 얼른 가!”
“선배님들도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올린 태현이가 짠- 하고 윙크를 하고는 임팩트 있게 퇴장했다.
‘뭐야, 쟤’ 하는 모범주의 중얼거림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멘토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떠난 후.
잔망스런 존재감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우리와 여섯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황당한 걸로 따지면 역대급 게스트긴 하네요.”
“열심히 사심을 채우고 가셨어요.”
“이것도 재능 아닐까요. 얄밉긴 한데 왠지 모르게 웃기잖아요.”
예능인 모범주가 말했다.
“저희가 처음에 예상한 건 그런 거잖아요. 캠프파이어처럼 둥글게 앉아 있고 태현 선배님이 연습생 스토리를 들려주시고.”
“우리가 눈물 흘리고.”
“아이돌 세계가 이만큼 힘들다. 그런 신파극을 예상했는데, 하라는 조언은 안 하고 뉴블랙이랑 뉴친소를 찍고 갔어요.”
적절한 요약에 다들 웃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데뷔 프로젝트를 하면서 믿을 건 우리 쌤들밖에 없다.”
“저희가 더 잘하겠습니다. 쌤들.”
“네, 그럼 더 잘해 주세여~”
그렇게 서로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진 후.
당분간 만날 수 없기에 길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제 저희가 콘서트가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앞으로 뭘 더 봐드릴 시간이 없어요.”
뺨을 씰룩이는 여러 명을 포착한 연기파 막내가 내게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지금 좋아하는 표정 지으신 선배님들, 잘 기억했습니다. 꼭 시간 내서 확인할 거예요.”
“왕지호. 저 간신배…….”
“저는 황지호라서 왕지호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여~”
첫 방송에서 성씨를 틀렸던 일 때문에 꽁한 막내를 보며 다들 삼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웃으며 분위기를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감시하겠다는 건 당연히 농담이고요. 그만큼 정말 연습 열심히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에 꺼낸 말이에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네, 지금까지 정말 고생하셨고요. 이제 저희가 컴백하고 난 후에야 뵙게 될 텐데…….”
각자 분야별로 담당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 당부의 말을 전했다.
리혁이가 강조하듯 말했다.
“안무도 중요하지만 노래 연습도 빼먹지 마시고요.”
“넵!”
“연습량이 부족하면 녹음하실 때 지옥을 맛보게 될 수도 있어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에이텐 멤버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막내가 증언했다.
“맞아여. 제가 마스커레이드 때 한 소절 녹음하는데 9시간 썼거든여.”
“……!”
“나중에 가서는 녹음 부스에 널브러져 있는 상태 그대로 흘린 땀이 하얗게 변해서 사람 실루엣으로 남았어여.”
다잉 메시지도 썼다는 막내의 증언에 내가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실루엣만 남았다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보컬 연습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멤버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중현이가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도 건네고.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 대한 디테일을 하나하나 챙긴 후, 마지막 말을 전했다.
“1분 1초가 소중하니까요. 시간을 정말 아껴 쓰셔야 돼요.”
“네!”
“MBTI 검사 같은 걸로… 시간을 보내시면 안 되고요.”
“네…….”
그때 추기석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선배님들도 시간 나실 때 검사 한 번 해 보세요. 제가 겪었는데 정말 과학입니다.”
“선배니임…….”
우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있을 때, 리혁이가 말했다.
“그리고 사람 성격이란 게 몇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맞아여.”
“얼마나 사람 성격이 다양한데요……!”
그런 우리를 보며 출연진들이 묘하게 웃더니 나중에 한 번 해 보라며 링크를 보내 주었다.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런 거 잘 안 믿어요.”
* * *
그날 저녁.
“대바아아악! 리혁이 형, 이거 설명이랑 겁나 잘 맞어여!”
“야야! 왕지호 조용히 해 봐. ISTJ의 주요 특징으로는 근면, 성실, 열렬한 노력파… 그래. 이거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리혁이의 눈이 번뜩였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이거 딱 난데요? 그죠? 의젓한 성격에다가 와…….”
“형, 형. 제 것두 볼래여? 어른들한테 엄청 이쁨 받는대여.”
“나도 지금 검사 끝났어. 나 ESFJ래!”
“청렴결백하다고 되어 있네. 이거 딱 나 아니에요?”
“나는 ESFJ인데~ ESFJ인데~?”
저마다 자기 MBTI를 이야기하며 대박을 연호하는 가운데.
“아니야…….”
“안 돼…….”
핸드폰 화면에서 시선을 뗀 나는 중현이를 바라보며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져 있었다.
“어째서 내가 너랑…….”
“이거 잘못 검사한 거 같아요. 제가 형이랑 같을 리가 없잖아요.”
되게 단호하네.
“중현아, 이건 아니지. 이건 너보다 나한테 더 큰 문제야.”
“맞아요. 저보다 형이 더 큰 문제예요.”
“아니이…! 이거 봐. 이렇게 대화부터 안 통하는데 어떻게 이… 이게 같냐고?”
화면에 떠오른 ENFP를 보며 현실을 부정했다.
끝이 다르긴 했다.
“이거 T랑 A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큰 거겠지? 큰 거?”
“그럴 거예요. 그래야 해요.”
우리 중에 유일하게 A인 중현이를 보며 침착하게 마음을 유지하고 있을 때.
지호가 켜둔 영상통화 화면에서 밉상 얼굴이 말했다.
-음? 나도 A로 끝나는데. ESTJ.
“너는 화보나 마저 찍어.”
-야박하…….
종료 버튼을 눌렀다.
띠록 하며 사라진 한 모 씨를 치워 버리고는 중현이와 ‘으아아’ 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때.
“왜 그렇게 소란이에… 어?”
우유처럼 허여멀건한 누군가가 우리 검사 결과를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그러곤 흥분한 토마토처럼 외쳤다.
“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항상 둘 보면서 하던 생각이 있었다니까! 내 이론이 맞았다니…!”
“…….”
“진짜 과학인가? 이거?”
“뭔데여. 뭔데?”
이내 나머지 둘도 관심을 보였다.
나와 중현이의 스마트폰에 떠오른 글자를 보던 비주와 지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
“뭐가 아- 인 건데? 무슨 의미야?”
“아아……!”
큰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나와 중현이를 바라보는 동생들의 모습에 정말이지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