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05화
41장. 별(別) : Into the Black
다음 날 연습실.
“이거 봐. 얘들아.”
“뭐요.”
“그 MBTI에 대한 진실을 알았어.”
내가 핸드폰으로 검색한 글을 보여 주었다.
“보이지? 인터넷으로 하는 간이 검사는 실제와 다르다. 진짜 MBTI 검사는 답지 구성부터 다르다.”
“전문가 분이 쓴 글이네요. 그럼 신빙성 있지.”
중현이가 열심히 덧붙이는 가운데 내가 동생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구절을 봐. 재미로만 봐라~ 과몰입하지 말자, 라고 되어 있잖아.”
“글쎄요.”
리혁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과몰입은 지금 둘이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전문가 분 불러서 검사해 봐요?”
“그래봐야 비슷하단 건 바뀌지 않아여~”
나와 중현이가 분노했다.
“캬아아악!”
“ENFP가 화났다!”
리혁이와 지호를 추격해서 붙잡고는 연습실 바닥에 데굴데굴 굴려댔다.
“후…….”
칼로리 소모에 흘러나온 땀을 닦을 때.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비주가 내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런 거에 너무 신경 쓰지 마요. 형. 사람 성격이라는 건 검사로 정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고마워. 비주야. 근데….”
유난히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비주에게 말했다.
“너 지금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흐핫!”
“으이구….”
“그래도 저는 안 놀리잖아요. 형.”
“그게 놀리는 거야.”
눈빛으로는 이미 온갖 농담을 다 던지고 있는 둘째였다.
“우주 형~!”
연습실 화이트보드에 ‘우주-중현=0’이라는 공식을 쓴 막내가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손을 휘휘 젓자 중현이가 처리해 주었다.
“가는 김에 리혁이도 세트로 데려가라.”
“네, 형.”
“아아악!”
끌려가는 막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즐거웠다. 동생들아. 저승에서 보자.”
“느아아아!”
둘이 연습실 밖으로 사라지고 난 뒤에야 조금 편해졌다.
중현이랑 같은 거 나왔다고 어찌나 놀려대던지, 10년치 놀림 당할 걸 일시불로 당했다.
그나저나.
대체 왜 내가 중현이랑 비슷한 성격이라고 나온 건지 모르겠다.
“어째서……!”
비주도 있고, 지호도 있고. 다들 나쁘지 않은 성격들인데 왜 하필 중현이인 걸까.
김덕순 여사한테 전화로 하소연하니 ‘아……’ 하는 못된 반응만 돌아왔다.
한 씨는 자기 MBTI 특징 링크라며 지 할 말만 하고.
하여튼 다들 나빴다.
스트레스 해소 겸 다리를 찢으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비주가 내 곁에 앉았다.
“그래도 덕분에 좀 웃은 것 같아요. 형.”
비주가 몸을 엿가락처럼 쭉쭉 늘렸다.
“안 그래도 요즘 콘서트랑 컴백 준비 때문에 다들 웃을 일이 없었잖아요. 스트레스만 쌓이고.”
“그건 그렇지.”
“이렇게 웃을 일이 잠시라도 생겨서 좋은 것 같아요.”
“맞아. 그건 좋다.”
다들 피로와 스트레스가 한계치까지 솟아오른 상황이긴 했다.
그나마 한바탕 웃으면서 김을 잘 뺀 거지.
뻐근한 몸을 주무르며 말했다.
“다음에는 진짜 하나만 하자. 예능이랑 앨범 준비, 콘서트 중에서 하나만… 몸이 못 버티네.”
“정말 동감이에요. 형.”
“처음에는 할 만했는데 갈수록 힘이 드네.”
하나만 해도 힘든 프로젝트를 세 가지나 동시에 하고 있자니 몸에 과부하가 왔다.
다행히 예능은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었고.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온 콘서트를 마무리 지으면,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이 끝날 터였다.
“비주야.”
“네, 스읍!”
스트레칭을 하다가 그새 잠이 든 비주를 붙잡고 일으켰다.
그러곤 돌아온 동생들까지 불러 모았다.
다들 웃고는 있는데 다크서클이 눈 밑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다.
“자! 이제 콘서트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참고 연습하자. 죽어도 무대 끝나고 죽는 거야.”
지친 얼굴로 끄덕이는 동생들에게 내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콘서트 첫날! 각자 먹고 싶은 음식 화이트보드에 쓰기. 내가 쏜다.”
“……!”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마커들이 휙휙 움직였다.
10초 만에 돌아온 동생들에게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안무 연습하다가 죽겠다 싶을 때마다 저걸 보는 거야.”
끄덕끄덕덕덕!
턱이 빠질 만큼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멘탈 케어를 마치고 다시 콘서트 연습으로 돌아갈 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빼꼼 열렸다.
진후를 비롯해 연습생들이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었다.
“저, 선배님. 저희 들어가도 되나요?”
“들어와~!”
갑작스런 연습생들의 등장에 멤버들이 갸웃할 때.
중학생들이 자기들끼리 눈짓하더니 꼼지락거리며 상자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상자가 열렸을 때.
“허어어……!”
고급스러운 초콜릿들이 광채를 뽐내고 있었다.
“우와아아…!”
우리 막내가 눈이 먼 시늉을 할 만큼 동생들과 내 입꼬리가 끝을 모르고 올라갔다.
리혁이가 웃으며 물었다.
“이건 뭐야?”
“아…….”
진후가 대표로 말했다.
“선배님들, 콘서트 준비하시느라 엄청 힘드실 것 같아서요. 저번 소고기 보은도 할 겸…….”
“고마워. 정말.”
“안에 편지도 넣었는데, 으엉…? 지호 선배님 안 돼요! 그건 나중에 읽어 주세요!”
“미안~ 너무 좋아서.”
‘To. 누구에게~’ 같은 게 쓰여 있는 편지를 보며 우리는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꼈다.
꼬꼬마들 마음씨가 너무 기특했다.
뭘 주러 오고 싶다고 진후가 내게 톡을 하긴 했는데, 이런 선물을 주러 올 줄은 모르고 있었다.
동생들과 초콜릿을 조금씩 베어 먹으며 웃고 있을 때.
“저, 저희도 이번에 콘서트 보러 가요!”
“얘기 들었어.”
비주가 상냥하게 웃었다.
“마지막 날에 대표님이랑 같이 관람하러 온다면서.”
“네! 참관학습인데, 그래서 저희 응원봉도 미리 받았어요. 이번에 나온 김달봉 버전2.”
연습생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녀와서 콘서트 감상문 써야 하는데, 제일 잘 쓴 사람한테는 이번에 출시된 왕봉이도 주신대요.”
“오오…….”
“진짜 꼭 가지고 싶어요. 왕봉이.”
그러고 보니 최근에 왕봉이가 굿즈로 나왔다고 했지.
응원봉인데 안전상의 이슈로 콘서트 반입 불가 물품으로 선정됐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수플레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들었다.
연습생들도 탐이 나는지 ‘왕봉이는 내가 가진다’ 하며 귀엽게 눈을 빛냈다.
“선물 줘서 고마워. 열심히 해야겠네.”
“…마음에 드세요?”
“응. 진짜 마음에 들어.”
조마조마한 표정의 연습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진후가 타이밍 좋게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있는데, 아까 편의점 둘러보다가 산 것들인데요. 선배님들 좋아하실 것 같아서…….”
“왕꿈틀이!”
“중현이 형 눈 튀어나온 거 봐여…어엇! 이건 나의 최애! 이걸 어떻게 알았대?”
동생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간식들이 검은 봉다리에서 쏙쏙 나오고 있었다.
동생들이 꺄악 하듯 비명을 질렀다.
연습으로 인한 피로가 몽땅 날아간 듯 행복한 표정이었다.
“고마워~!”
“이리 와. 같이 강강술래 추자.”
기특한 중학생 무리들이 감격하며 빙글 도는 동안, 내 쪽으로 고개를 슥 돌린 진후와 눈이 마주쳤다.
“으하핫!”
동생들이 신이 나서 어깨춤을 추는 가운데.
‘취향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웃어 주는 녀석에게 조용히 엄지를 들었다.
* * *
뉴블랙이 한창 연습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수플레들은 평소처럼 쏟아지는 떡밥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거 언제 다 받아먹지.’
……뭐가 엄청 많다.
일단 리얼리티와 미스터 프로듀서가 있고.
미튜브는 재고 상품을 방출하는 것처럼 매일 새로운 게 업데이트됐다.
-레몬 홍보팀은 우리가 24시간 내내 뉴블랙 덕질만 한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함
-2222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33 나도 인생이 있다고ㅋㅋ큐ㅠㅠ
-처음엔 무한리필집이라서 좋아했는데 그게 우리집이 되니까 얘기가 다른 거에요..
-그래도 이번에 콘 굿즈도 창고대방출 수준으로 쏟아져나올 삘이라 조음ㅋㅋㅋ
삼삼오오 모여 행복한 불만을 제기하며 웃었다.
말로는 ‘괴롭다’ 하고 있지만 요즘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행복한 수플레들이었다.
-이번 미프 출연에 관한 대중문화 평론가 칼럼 가져옴
-미프 팬들이 우리 애들 보고 친 드립들 가져옴!! (+비주 짤 추가)
-버스 뒷자리에서 커플들이 애들 얘기하는 거 듣고 개터짐ㅋㅋㅋㅋ
미스터 프로듀서에 출연한 뉴블랙에게 대중들이 호감을 보이고 있고.
몇몇 언론에서는 ‘국민 아이돌’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었다.
국민 예능이라고 불리는 프로이기에 대중적인 파급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상황.
“그거 봤어? TV 굴러댕기는 거?”
점심 먹고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뉴블랙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거나, 지하철에서 꾸벅 졸 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미프와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곤 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 진짜 국민 아이돌이라고 호칭이 착 붙는 건 아닌가 하는 행복한 상상이 들 만큼.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부 안티들이 활개를 치고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비주의 굴러가는 TV 짤에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빛나라. 얍.”
화아아아아악-! 하며 온 세상을 홍익인간의 기세로 밝게 물들이고 있는 대형 응원봉이었다.
저마다 불을 끄고 발광력을 실험하던 수플레들이 히죽히죽 웃었다.
‘드디어 손에 넣었다…!’
리얼리티나 각종 컨텐츠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왕봉이를 쓸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에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이걸 쥐고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 처하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처럼 든든했다.
-나도 왕봉이ㅠㅠㅠㅠ 왕봉이 가지고 놀고 싶다ㅠㅠㅠ 옥천에 갇힌 나의 왕봉아..
-새벽에 거실에서 켜봤다가 놀라서 나온 엄마한테 등짝 맞음ㅋㅋㅋㅋㅋㅋㅋ 자고 있는데 문밑으로 존나 화려한 빛이 들어왔대ㅋㅋㅋㅋ
-찐으로 놀라셨겠네ㅋㅋㅋ 거의 무슨 외계인 납치 영화에 나오는 그런 것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밤에 키는거 비추야.. 자다 깬 우리집 고양이한테 개처맞았따..ㅠ
-밤에 키니까 거실이 낮이 되긴 하더라
-우리집 바닷가인데 이거 베란다에 설치해두면 등대 쌉가능?
-ㄴㄴ 간첩으로 끌려감
-배타고 있는 사람들 : 아니 시발 저게 뭐야
-오징어 : 저기인가
여기저기서 인증 영상도 올라왔다.
캄캄한 시골길을 대낮처럼 밝히며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수플레의 영상도 있고.
왕봉이를 들고 걷다가 날벌레들에게 피리 부는 사나이 급으로 관심을 끄는 바람에 쫓기는 영상도 있고.
그 아이돌에 그 팬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화려한 후기들이 이어졌다.
그러는 가운데.
일반인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후기글이 올라왔다.
[후기] 유명한 뉴블랙 1m 응원봉 사보았습니다
(사진)
도시 살다가 시골 살이를 해서 그런지 밤길이 무섭더군요;
시골 사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이게 밤이 되면 진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무섭습니다.
마침 뉴블랙 애들이 1미터짜리 쓰던 게 출시됐다고 해서 한 번 사보았습니다
(사진)
1미터인데 보기보다 앙증맞습니다. 귀엽구요.
불을 켜보았습니다.
(몹시 흔들린 사진)
눈물이 주르륵 쏟아지더군요.. 발광력에 대해선 이하생략하겠습니다. 하하.
[중략…]
하여튼 덕분에 밤길이 안전해진 느낌이네요. 이장님이 농작물들이 밤에 놀라서 광합성하겠다고 쿠사리 주긴 했지만..
밤길 무서운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마지막 사진은 우산꽂이에 거치한 사진입니다. 라이트 모드로 하면 이렇게 빛이 일직선으로 나갑니다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광선을 뿜어내고 있는 사진에 댓글창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저거 완전 반지의 제왕 아닙니까ㅋㅋㅋㅋㅋㅋ
-응원봉 포스 ㅎㄷㄷ 하네요
-멀리서 보면 악마 소환술 쓴줄 알듯
-뭔 남자아이돌 응원봉이야 하고 들어왔는데 인정합니다.. 은근히 구매욕 돋네요
-어디서 사셨나요?
-이거 미튭 보면 뉴블랙 애들이 진짜 쏠쏠하게 써먹더라고요 제6의 멤버 느낌
한때 그거 어디서 파냐고 물었던 울릉도의 사람들도 소식을 전해 받고 구매를 할 때.
왕봉이에 대한 후기가 여기저기서 웃음을 자아내는 동안.
수플레들은 목요일 저녁을 맞아 K-net으로 채널을 돌렸다.
여행일기의 6화이자 마지막 화를 보기 위함이었다.
“흐하하!”
여행 마지막 날까지 훈훈하면서도 웃긴 리얼리티를 감상하며 미소를 지을 때.
마지막 즈음에 시즌2도 같이 하고 싶다는 뉴블랙의 말에 수플레들도 긍정했다.
-시즌2 소취ㅠㅠㅠㅠ 너무 좋았어 정말
-제작진도 ㄹㅇ 따숩고 좋았다..
-보통 리얼리티 가면 애들 미션 주고 고생시키는거 보면 짜증났는데 그런 것도 없고 진짜 좋았어ㅠㅠ
-애들 배려해주는게 정말 보이고
-분위기부터 내용까지 다 완벽했다 진짜.. 애들이 담에 또 하자고 했을 때 나도 고개끄덕함
제주도를 3박 4일 여행하면서 멤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편안하게 쉴 시간을 주었던 제작진에게 호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리얼리티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무렵에 두둥, 하며 [번외편 : 그날의 진실]이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
-잠ㄲ.아니 잠깐만요 피디님 우리 감동적으로 끝났자나 뭐에여 뭐여
-뭐야 갑자기 납량특집 브금???
-ㅋㅋㅋㅋㅋㅋㅋㅋ다들 당황한거 봐
-아ㅋㅋㅋ 근데 이거 진짜 궁금하긴 했어.. 담날 아침에 애들 표정 약간 굳어있었자나
담력 체험을 하고 난 후에 편집되었던 분량이 6화의 마지막에 뜬금포로 등장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싸해지는 공포 BGM.
수플레들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동안 그날의 담력 체험에 나오지 않았던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지호가 고개를 홱홱 돌리며 어둠 속 무언가를 경계하고.
오싹해 보이는 우물가에 선 중현이 멀찍이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고.
마지막으론 멤버들까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으으으ㅠㅡㅠㅠㅠ
-니네 왜 그러는거야ㅠㅠㅠㅠㅠㅠ
-존무 ㅅㅂ
-음악감독 누구세요 왤케 노래 잘 까는데
-아 나 못보겠다.. 다 보고 누가 나한테 설명 좀.. 난 tv 끌래
-껐어?
-아니 그냥 계속 보는 중..
그리고 경비원을 보았다는 이야기에 수플레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이건 진짜였다.
김중현이 저 정도로 리얼하게 연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어지는 카메라 감독을 비롯한 스탭들까지 모여서 ‘이게 뭐지?’ 하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고.
오싹한 BGM과 함께 카메라 감독이 바람 방향과 풀이 흔들리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한 후.
이제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나 싶었다.
[텐트에서는 잘 잤어?]
[네, 저희 (다음 앨범) 노래 만들었어요.]
제작진과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탄 뉴블랙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6mm 비하인드 캠으로 흘러나오는 이어폰 낀 뉴블랙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
앨범 수록곡을 선공개라도 하는 건가 하며 기대가 들었다.
뜬금없지만 관심 가는 떡밥에 수플레들이 볼륨을 높이거나 귀를 기울일 때.
[아-]
0.1초 정도 나오고 재생이 끝났다.
“으아이 씨!”
잡음 섞인 낯선 목소리에 화면 속의 뉴블랙만큼 소스라치게 놀라는 수플레들이었다.
가슴이 쾅쾅 뛰는 걸 들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리모컨을 주울 때.
TV 화면에 [결국 이 소리의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는 자막이 떠올랐다.
진실은 저 너머에… 하는 류의 문구가 이어진 후.
-뭐야ㅅㅂ 이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깜놀햇네 진짜
-옆에서 같이 보던 울 아빠는 좋아하는 중.. 저게 진짜 귀신이면 초대박이다 초대박이래
-ㅋㅋㅋㅋㅋㅋㅋ귀여우심
-난 무서웠어ㅠㅠㅠㅠ
수플레들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때.
최종 인사를 하듯이 일렬로 늘어선 뉴블랙 멤버들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최근에 따로 찍은 영상인 듯했다.
가운데 선 우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섭진 않으셨나요?]
[와, 완전 뻔뻔해. 수플레들 얼른 혼내 주세여. 오싹 BGM 이 사람이 깔았어여!]
너였구나, 선우주…!
그제야 공포에 떨었던 이유가 납득이 가는 수플레들이었다.
우주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보신 것은 저희가 타이틀곡을 만들면서 벌어졌던 일인데요. 우리 수플레와 공유하고 싶어서 제작진 분들과 함께 상의하여 만들었습니다.]
수플레들이 멍하니 바라볼 때.
[저희 리얼리티는 잘 보셨나요?]
[모쪼록 재미있게 보셨기를 바라요.]
한 명씩 리얼리티에 대한 소감 멘트를 마친 후.
[이제 컴백이 얼마 안 남았죠? 저희 뉴블랙이 5월 23일,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을 하게 되었는데요.]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그럼 그때까지 안녀엉~!]
손을 흔드는 뉴블랙 멤버들의 인사 영상이 끝나고, 여행일기의 엔딩 크레딧이 흘러나왔다.
스페셜 앨범의 ‘Winter Trip’이 BGM으로 나오고 스냅샷 같은 사진 모음집이 지나가고 있을 때.
뉴블랙의 공식 SNS에 앨범 프로모션 일정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전달됐다.
“……?”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지는 가운데 누군가의 댓글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
-아니 누가 앨범 떡밥으로 귀신을 던져 주냐
그야말로 역대급 컴백 예고였다.
* * *
앨범 홍보는 성공적으로 한 듯싶다.
-뉴블랙, 곡 작업하면서 ‘귀신’ 만났다..?
-힐링도 잡고, 재미도 잡고, 팬들도 잡았다.. ‘뉴블랙의 여행일기’ 시즌1 종영
-‘뉴블랙의 여행일기’ PD 인터뷰 “귀신이 세상에 어디 있나.. 제주도에 있더라”
마지막화가 끝나자마자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플레들에게 앨범 비하인드를 공개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만든 스페셜 예고편이긴 한데.
솔직히 ‘주작 아니냐’ 하며 욕먹을 것도 걱정하긴 했다.
다만…….
-응 주작
┕중현이 저 정도로 연기 못한다 얘야.. 허공에다 인사하라고 하면 초점부터 흔들릴걸
┕인터넷에서 댓글 쓰지 말고 밖에 나가서 미튭도 좀 보고 그래라
┕뉴블랙 모름..?
첫째로는 우리 셋째가 연기력이 안 된다는 걸 전국민이 알고 있었고.
둘째로는 인지도에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우리이기에 아무도 그런 쪽으로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팬들에게 공개한 깜짝 영상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고 할까.
어쨌거나 그날의 서프라이즈 영상 이후.
수플레들은 앨범 프로모션에 몹시 만족하는 듯했다.
하얀 한복에 검은 두루마기 의상을 입은 우리의 앨범 컨셉 포토가 공개되면서 실트에 올랐단 소식도 들었고.
“형들! 이거 봐여. 뉴블랙을 평창으로…!”
“평창?”
“올림픽이여. 올림픽.”
18년의 평창 올림픽 홍보 대사로 뉴블랙을 내보내라고 팬들이 얘기한 걸 보며 기분 좋게 웃기도 했다.
뮤비 티저까지 뜨면 반응이 더 좋겠다 싶었다.
팬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컴백 기분을 내며 들떠 있을 때, 아이돌 프로젝트 2화도 방영이 됐다.
그리고…….
“뭐야. 나 또 왜 실검 1위야?”
“진짜네여.”
“제발 좋은 일이어라…….”
콘서트 연습을 하느라 본방송은 못 봤는데.
실검 1위에 떴다는 지인들의 연락을 보고 확인하니 정말 1위가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검색할 때.
“흐하하핫!”
굉장히 미묘한 썸네일의 클립이 떠올랐다.
“이게 뭐야……?”
아마 컨셉을 정해 줄 때 섹시 컨셉을 하면 어떠냐고 물어본 출연진에게 해 준 대답 같은데.
묘하게 같잖다는 듯 바라보는 내 눈빛과 표정 아래로….
굉장히 도발적인 색상의 핑크 자막이 몽실몽실 떠올라 있었다.
[가능하시겠어요. SEXY..?]
“이거 뭐야?”
“흐하하학!”
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바닥을 굴렀다.
그 속에서 내가 벙찐 얼굴로 물었다.
“아니, 진짜. 이거 뭔데?”
정체불명의 영상에 급격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