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07화
콘서트 리허설은 이틀에 걸쳐 진행됐다.
두 달 동안 연습한 안무는 무대에서 합을 맞추고.
음향이나 조명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다니며 꼼꼼히 체크했다.
“자, 하나씩 되새겨 보자.”
시간이 날 때마다 동생들과 중요 사항을 암기하면서 공연에 모든 것을 맞췄다.
그럼에도…….
“후아…….”
이 공간은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체조경기장.
핸드볼경기장보다 훨씬 더 크고 광대한 이곳을 둘러볼 때마다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되나.
텅 빈 객석을 바라보던 리혁이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진짜 여기서 하는 거 맞긴 한 거죠? 나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너만 그런 거 아냐. 나도 그래.”
“저두여.”
막내가 쏙 끼어들었다.
“그래도 공연은 좀 많이 해서 적응한 줄 알았는데, 엄청 떨린다니까여. 가슴에 손 올려 볼래여?”
“아니.”
거절하고는 각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
기분 좋은 심장박동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공연장 특유의 냄새가 들어오고.
그런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긴 했다.
“진짜 실감 안 나네…….”
체조경기장이야 자주 방문했다.
연습생 때도 선배들 공연을 보러 왔고, 망고 차트 어워드나 다른 시상식 때도 온 적 있고.
여기서 무대도 여러 번 했다.
그럼에도 낯선 건 아마 이곳이 온전히 우리 소유가 된 건 처음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객석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돌출 스테이지를 돌아다닐 때.
“같이 상상해 봐여, 형들.”
막내가 눈을 감고 말했다.
“이제 이따가 저녁에 공연 딱 시작하면 이 빈 곳에 달봉이들이 반짝반짝 하는 거예여. 무려…….”
“만이천 개.”
“만이천 개의 달봉이가 별처럼 반짝이는 거져.”
“흐으음…….”
머릿속에 해당 장면을 그려 보았다.
“좋기는 한데 여전히 상상이 안 가긴 하… 리혁아. 너 벌써 울어?”
“뭔 소리야. 내가 왜 울어요.”
뭔가 복받쳤는지 눈가의 끝부분이 살짝 촉촉해진 우리 애였다.
으이구.
나와 지호가 토닥이며 속삭였다.
“너 여기서 울면 이따가 수플레들한테 울었다고 고자질할 거야.”
“…….”
“저는 SNS에 올릴 거예여. [경축] ‘서리혁 역대 최단 기간 눈물’로 해서.”
감성에 젖으려던 리혁이가 팍 깨진 표정으로 눈을 흘기더니, 양쪽 팔꿈치로 우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악!”
“으악!”
짜증난다는 얼굴로 앞서 가는 녀석을 따라잡아 놀렸다.
그 동안 멀찍이서 산책하고 있던 중현이와 비주도 합류했다.
얘네도 엄청 뭉클한 표정이었다.
“둘이 무슨 얘기했어?”
“아.”
중현이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연습생 때, 회사 옥상에서 김비주랑 메로나 먹으면서 체조경기장 얘기하고 그랬거든요.”
“진짜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그냥 중현이랑 답답할 때마다 하던 이야기라서…….”
내가 연습생 시절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 하게 해 주세요, 제발루…!’ 했듯이 얘네도 같은 소원을 빌었던 모양이다.
아니.
아마 모든 연습생의 소원일 것이다. 이곳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것은.
비주가 웃었다.
“그때 김중현이 예감이 좋다고만 안 했으면 더 빨리 입성했을지도 몰라요.”
“그건 나도 인정.”
“그나마 우주 형으로 상쇄를 해서 이렇게 온 거 아닐까여.”
“진짜 이 사람 덕에 오긴 했어.”
여기까지 오는데 큰 공로가 있었다며 인정해 주는 동생들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생들이 없었으면 이렇게 데뷔하고 2년 만에 체조경기장에서 콘서트하는 일은 없었을 걸.
데뷔할 때였나.
나름 낙관적으로 그렸던 전망이 최소 4년에서 5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웃음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
체조경기장을 둘러보며 다섯이서 잠시 말없이 묘한 감정을 공유했다.
끈끈한 동지애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가족에게 느끼는 고마움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묘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말을 할까 하다가 점점 분주해지는 현장 스탭들을 보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스탭 분들 무대 점검하실 시간인 것 같은데 내려가자.”
“네.”
“메이크업 하고 의상 입어야지.”
“네….”
꾸물대는 동생들을 이끌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다.
누가 뺏어가는 것도 아니건만, 꼭 여기서 서 있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다고 할까.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스테이지를 천천히 내려갔다.
그래도.
이따가 올라왔을 때는 저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을 터였다.
* * *
완벽하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말은 오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우와아…….’
5월 중순.
봄이 한창인 날, 올림픽 공원에 도착한 수플레들은 벅찬 기분을 느꼈다.
북적북적.
축제가 벌어진 것처럼 인파가 바글바글하다.
‘너무 좋아. 이 느낌.’
숨을 들이쉴 때마다 꽃이나 나무 냄새, 주변 커피숍의 커피 향이 섞여 들어오고.
화창한 하늘 아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들이 보인다.
“야! 여기!”
“어어!”
SNS에서 미리 만나기로 한 사람들 혹은 친구들이 곳곳에서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활짝 핀 미소가 오갔다.
“대박이다. 진짜. 사람 왜 이렇게 많아?”
“그니까. 체조라서 그런지 확실히 인파가 작년이랑 비교했을 때….”
12000석 규모니 작년 여름, 5,000석 규모로 열렸던 콘서트에 비해 거의 2.5배는 되는 규모였다.
그랬기에 한층 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카페에서는 뉴블랙의 노래 모음집이 BGM으로 흘러나오고.
만남의 광장부터 체조경기장까지 가는 길에는 온통 콘서트 현수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 나 사진!”
“잠시만…!”
“여기, 비주 머리끝까지 다 나오게.”
중간에 사진도 찍고.
체조경기장을 향해 걸어가면서 펄럭이는 현수막들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어쩜 우리 애들은 매번 더 잘생겨지지?’
모든 팬들이 느끼는 미스터리였다.
이번 앨범 때가 제일 잘생겼다, 정점을 찍었다 싶으면 다음 번에는 더 근사하게 나오곤 했다.
특히 작년 콘서트에 왔던 이들은 묘한 감흥을 느꼈다.
‘그때보다 더 컸나?’
막내인 지호도 작년 콘서트 사진보다 더 성장한 느낌이고.
다른 멤버들도 저번보다 더 연차 있어 보이고, 더 어른스럽게 보였다.
당연하게도, 좋았다.
‘이따가 또 사진 찍어야지.’
그렇게 공연장 앞에 도착했을 때.
그야말로 축제라는 단어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스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서 나눔도 있고.
포토월과 함께 곳곳에 설치된 부스에서 레몬 스탭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야. 줄 왜 이렇게 길어…?”
“포토월 기다리다가 콘서트 끝나겠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줄이 엄청 길었다.
굿즈 산다고 밤샘을 했다는 등의 들려오는 이야기에 감탄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바로 멤버들이 직접 디자인했다는 티셔츠였다.
“와, 진짜 예쁘다…….”
“가운데 꽃 들어간 건 우주가 디자인한 걸 거고, 저거 글씨 예쁜 게 리혁이 거네.”
“글씨 대박인데. 리혁이 인간 프린터설이 진짜였나?”
메인보컬이 영어로 쓴 ‘On Parade’를 보며 ‘맑은 느아체’ 드립을 주고받으며 키득거리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러곤 굿즈 목록을 보며 감탄했다.
‘할인 매장이냐…….’
에코백, 텀블러, 티셔츠, 무드등, 키링 등등.
30여 개에 달하는 리스트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아, 이거 조심해야 되는데. 뭔가 삘이…….”
“조심하자.”
콘서트 분위기에 취해서 이것저것 사다가는 돈 백이 나갈 삘이었다.
그런데 굿즈는 또 레몬답지 않게 잘 뽑아 놔서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 존나 뽐뿌 온다. 나 어떡함?”
“통장한테 세이 굿바이 하셈요. 여기 온 순간부터 우린 이미 끝장났던 것이여.”
콘서트 테마도 작년과 비슷한 놀이공원이나 페스티벌인데.
정말 테마파크에 놀러온 것처럼 이것저것 설치해 놔서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게 점점 짐이 무거워지고.
“받았다…!”
티켓을 현장 수령한 팬들이 인증샷을 찍었다.
시간이 꽤나 남은 탓에 주변 카페나 식당에 자리를 잡아 친구와 뉴블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입장 시각을 앞두었을 때.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신발까지 갈아 신으며 완벽하게 스탠딩 모드로 변한 팬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아, 떨려…….’
초등학생 때 놀이공원을 입장하던 그런 기분이었다.
티켓 확인을 마친 후.
플로어를 둘러싼 스테이지 밑을 통과해 스탠딩석에 진입한 팬들은 ‘와’ 하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자리 좋다.”
“그치?”
펜스 너머로 ‘화약 조심’이라고 되어 있는 문구들이 무섭긴 했지만 일단 좋았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스탠딩석에 들어온 팬들이든, 위층에 자리를 잡은 팬들이든 시야를 보며 감탄했다.
‘체조는 어디든 천국이라더니… 진짜였네.’
저마다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거나, 수다를 떨며 기다리면서 시간을 때울 때.
중간중간 웅성거리는 소리에도 시선을 돌렸다.
연예인 중에서 뉴블랙의 지인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누구 왔대?”
“장소원이랑 리사 왔나 봐.”
“아, 진짜?”
차우현을 비롯해 명곡단 출신 가수들을 봤다는 소식도 있고.
어디 자리에서 하승주를 봤다는 목격담도 SNS에 올라왔다.
어떤 중견 배우가 10대 자녀들을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릴 때.
“어째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이네.”
“그러네. 기분 탓인가?”
작년 핸드볼 콘서트에도 외국인이 보여서 놀랐는데, 이번에는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기는 가족끼리 왔나 본대?”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계시네…?”
3층 좌석 쪽에는 팬들뿐만 아니라 관람을 온 일반인들도 보였다.
뉴블랙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팬들이 아닌 관람객들은 처음이었다.
신기하긴 했지만 이내 관심은 다른 곳으로 넘어갔다.
“와아아아…!”
공연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래에 맞추어 떼창 소리가 점점 커져 가는 한편,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음향이 바뀌었다.
공연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12,000여 명의 함성이 공연장을 뒤흔들었다.
‘시작한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희열과 쾌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와아아아아아-!”
어둠 속에서 점멸하는 만이천 개의 응원봉 앞에 인트로 VCR이 흘러나왔다.
지호. 비주. 중현. 리혁. 우주.
멤버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했다.
다시 완벽하게 암전된 무대.
“와아아아아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BGM과 함께 전광판에 CG로 만든 그래픽이 나오는 한편.
쿠우우웅-
공연장을 뒤흔드는 웅장한 효과음와 함께 전광판 위아래의 조명이 물결치기 시작했다.
조명이 객석을 한 바퀴 훑고 있을 때.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렸던 다섯 명의 실루엣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It’s nine nine nine-
파앙! 하는 폭죽이 별가루를 튀기고 뉴블랙의 멤버들이 손을 움직이며 안무를 추었다.
한 소절에 한 명씩.
반복되는 후렴이 끝나고 다섯 멤버가 걸어와 무대 중앙으로 모인 후.
“와아아아아아!”
작년 말의 히트곡 ‘Nine’이 시작을 알렸다.
불꽃이 솟아오르고 조명이 내리쬐는 무대에서 멤버들이 특유의 신나는 안무를 선보이는 사이.
지켜보던 이들에게서 절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뭐야? 오늘 뭐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존의 Nine보다 더 신이 났다.
처음부터 몸을 실컷 들썩거릴 만큼.
3절에 이르렀을 때, 측면 전광판에서 클로즈업된 뉴블랙의 막내가 씩 웃으며 손을 들었다.
-수플레 다 같이!
“와아아아아-!”
수플레들이 함성을 지르며 즐겁게 몸을 흔들었다.
오프닝을 알린 Nine의 리믹스.
바로 레몬 엔터에 입사한 누군가가 맷돌처럼 갈려 나가면서 탄생한 환상의 결과물이었다.
* * *
Nine에 이어서 격한 안무를 2곡이나 춰서 그런 걸까.
오프닝부터 땀이 뻘뻘 나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와아아아아아아아!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함성에 기분이 좋아졌다.
진짜 개운하다. 정말로.
그 동안 쌓여 있었던 모든 게 함성 몇 번에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응원봉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네…….”
목이 멜 뻔한 목소리를 정돈한 후.
환한 조명 아래 응원봉을 흔들며 반겨 주는 수플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들과 웃음을 교환하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자, 인사드려 볼까요?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거센 환호가 돌아왔다.
“우리 오랜만이죠?”
-네에에!
“저희가 소극장 투어를 하면서 뵙기도 했지만, 이렇게 콘서트로 보니까 느낌이 다른 거 같아요. 봐도 봐도 오랜만인 거 같고.”
맞다는 듯 큰 소리로 화답이 돌아왔다.
기분이 좋아서 슬그머니 웃었는데, 전광판에 비쳤는지 수플레들이 몹시 좋아해 주었다.
머리카락 끝에 맺힌 땀을 털면서 웃었다.
“저희의 두 번째 단독 콘서트 The New Black : On Parade!”
-대망의 첫날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아!
응원봉을 흔들며 웃는 수플레들에게 우리도 같이 웃었다.
“그럼 한 명씩 인사드려 볼까요. 일단…….”
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뉴블랙의 리드보컬이자 리더인 우주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를 시작으로 동생들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메인댄서 비주입니다!
-오늘 점심으로 고기를 먹어서 신이 나고, 지금은 여러분을 만나서 신이 난 중현입니다!
-메인보컬 리혁입니다.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조, 좋아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막내 지호입니다!
마지막 인사에 떨떠름해 하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 수플레들이 웃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친 후.
막내가 함박웃음을 띠며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팔을 활짝 펼친 막내가 말했다.
-여기가 어디일까여~?
-체조오오오오!
-맞아여. 저희 뉴블랙이 드디어… 체조경기장에 왔습니다…!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희희낙락하는 막내를 보며 우리가 마이크를 들었다.
“저 멘트를 하기 위해서 정말 치열한 싸움이 있었어요. 저도 하고 싶고, 동생들도 하고 싶어해서.”
-가위바위보 하다가 대판 싸움 났죠. 이 사람이 또 사기 치려고 해서.
“가위바위보는 랜덤이라니까. 얘들아.”
-형이 하는 건 아니에요!
구박하는 동생들을 보며 입맛만 다셨다.
즐겁게 웃는 팬들에게 이 멘트 하나를 하기 위해 얼마나 설전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한 후.
막내가 제안했다.
-그럼 공평하게 한 명씩 해여.
-아 그럼 되겠네.
한 명씩 근엄하게 ‘체조입니다…’ 하며 내뱉은 멘트에 수플레들이 웃었다.
“이미 네 번이나 들으셨으니까. 저는 다른 멘트를 할게요.”
마이크를 든 내가 웃으며 객석을 향해 물었다.
“저희 잘 컸죠?”
함성이 돌아왔다.
“여러분이 주신 거예요. 여기.”
이어지는 대답에 기분 좋게 웃었다.
동생들도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짧은 소감을 말했다.
-좋네요. 이… 모든 게.
-그러니까여. 저희가 어워드 무대하려고 왔을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에여. 이렇게 팬분들만 있구.
-여기를 통째로 우리가 쓴다니…….
그때마다 큰 환호가 돌아왔다.
솔직히 우리뿐만 아니라 수플레들도 체조경기장에 입성했다는 사실에 엄청 기쁠 거라 생각했다.
엔딩 멘트를 아껴두기 위해 그쯤에서 마무리 짓고는 콘서트에 대해 설명했다.
“On Parade는 저희가 정한 콘서트 제목인데요. 놀이공원 가면 제일 하이라이트가 그거잖아요. 퍼레이드.”
-맞아여.
“여러분을 위해서 저희가 준비한 축제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은 축제가 됐으면 좋겠어요.
비주의 멘트에 팬들이 호응했다.
이어서 저마다 ‘스탠딩석에서 밀지 않기!’, ‘공연은 눈과 귀에만 저장~’ 같은 안내를 한 후.
“오늘 공연은 색깔에 따라 5개의 스테이지로 나뉘는데요. 첫 번째 스테이지는 레드입니다.”
-그러니 5가지 색이 뭔지는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죠~?
‘네!’ 하고 답하는 팬들에게 말했다.
“이따가 저희 신곡도 공개할 예정이니 꼭 기대해 주시고요. 정말 여러분을 위해 많은 볼거리를 준비했어요.”
슬슬 다음 곡을 해야 한다는 신호를 받을 때, 중현이가 센스 있게 마무리 멘트를 했다.
-오늘 여러분의 막차를 끊겠다는 각오로 무대를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오늘 재미있게 놀아요!
다 같이 환하게 웃고는 다음 무대를 위해 움직였다.
기분이 들떠서 그런 것인지, 오늘따라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다.
* * *
뉴블랙 멤버들의 말은 진짜였다.
‘우와….’
최소 억은 들였다 싶은 무대 장치와 특수 효과.
척 보기에도 돈 많이 들었겠다 싶은 VCR과 의상까지.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는 게 절로 느껴지는 무대들이 이어졌다.
고혹적이고 정열적인 무대가 많았던 레드 스테이지.
따스함이 느껴졌던 옐로우 스테이지.
힙합 장르의 곡들로 잔뜩 흥이 났던 그린 스테이지.
차가우면서도 몽환적이었던 블루 스테이지.
각자의 퍼스널 컬러에 맞는 주인공이 무대를 휩쓸며 놀이공원의 퍼레이드 느낌을 연출할 때.
다섯 번째 퍼플 스테이지가 다가왔다.
“와…….”
고귀함과 우아함을 상징하는 색답게 한국풍의 VCR 속 비주얼에 모두가 넋을 잃었을 때.
어두운 무대가 밝아졌다.
그곳에서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장내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함성으로 달아올랐다.
‘미쳤다…….’
우아하면서도 고운 한복 의상을 입은 멤버들이 무대에 서 있었다.
베이지색과 하얀색 계통의 한복 의상 위로 고급스러운 보랏빛 액세서리들이 눈에 띄었다.
검은 두루마기까지 로브처럼 걸치고 있어서 마치 조선 시대의 귀공자들 같다고 할까.
꽃선비처럼 보이는 메인댄서와 처연한 눈빛의 메인보컬.
호위무사 같은 비주얼의 래퍼.
명문가의 도련님 같은 비주얼의 서브보컬.
마지막으로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미인이 정가운데 서 있었다.
“와아아아아아!”
환호성이 끝을 올라가는 그곳에서 Intro인 ‘별(別)’이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가야금 연주에 맞춰 멤버들이 움직였다.
저마다 손에 쥐고 있는 새하얀 천을 휘두르며 옷자락을 너울거리는 안무였다.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동안.
가야금으로 시작한 노래에 다른 전통악기들이 섞여 나오면서 점점 고조되기 시작했다.
작별하기 전 격한 갈등을 보여 주듯이.
“와…….”
가사 하나 없는 Intro였지만 고조되는 음악에서 감정이 읽혔다.
감정의 매듭이 얽히고설키는 듯한 음악과 우아하게 휘돌며 춤을 추는 미청년들과 어우러지면서.
섬세하고 선명한 노래가 좌중을 사로잡았다.
둥- 둥-
빠르게 속도를 높여 가며 최고조에 이른 북소리에 맞춰 춤사위도 같이 격해지고.
지켜보는 관객의 입이 바싹 마를 정도로 빠른 군무가 이어진 후.
무대 위에서 소리가 완벽하게 사라졌다.
펄럭-
무대에서 원을 그리다가 멈춘 이들의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만 울릴 뿐.
다섯 명의 무용수가 허공으로 던진 천이 나풀거리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치 떨어지는 꽃잎처럼.
그렇게 뉴블랙의 멤버들이 허공에 손을 뻗은 채로 멈춰 있을 때.
“와아아아아아아-!”
모두가 기다려 왔던 낙화(落花)의 전주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