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3화
늦은 밤.
PBS 공개홀에서는 한창 뮤직카페가 녹화 중이었다.
“와아아아아…!”
무대에서 열창하는 인디가수 홍샛별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훌륭한 라이브에 절로 박수를 보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무대 진짜 좋다.’
방청객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유명 가수들로 이뤄진 라인업에다 토크도 지루할 틈이 없었고 무대도 훌륭하다.
그랬기에 이 뒤에 나올 마지막 가수가 궁금했다.
오늘의 마무리를 장식할 가수가 누구이기에 이렇게 꽁꽁 숨겨두고 있는 것인지.
‘차우현이라도 나오나? 아님 윤찬혁?’
유명 가수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을 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내려가는 싱어송라이터 홍샛별에게 방청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MC 하승주가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정말 멋진 라이브였네요. 그렇죠?
“네에에에!”
-이제 다음 가수를 모셔 볼 텐데요. 여러분이 아주 깜짝 놀라실 만한 분들입니다.
방청객들의 귀가 쫑긋했다.
큐 카드를 내린 미남이 짐짓 장난스럽게 웃었다.
-일단 힌트를 드리자면 어제 컴백을 하셨고요.
“어……?”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어제 컴백했다는 키워드에 바로 떠오르는 그룹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서로를 보는 20대 커플을 카메라가 담았다.
관객들의 눈이 기대감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독특한 분위기의 타이틀곡으로 돌아온 분들입니다.
“와아아아아아!”
확실했다.
오늘 일간 차트 1위에 등극한 곡을 이 자리에 있는 대다수가 듣고 온 터였다.
전통악기 사운드가 가미된 특이한 분위기의 노래.
‘뉴블랙 보는 건가? 진짜 뉴블랙?’
객석의 분위기가 후끈후끈하게 달아올랐다.
역대급 시청률을 찍고 있는 미스터 프로듀서에서 멘토를 맡고 있는 그룹이 바로 뉴블랙이었다.
작곡부터 시작해서 자체 프로듀싱을 하는 유명 아티스트.
그런 연예인들을 코앞에서 본다는 사실에 방청객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객석 분위기를 캐치한 MC가 웃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아직 누구라고 말 안 했는데 벌써부터 다들 알고 계시네요. 제가 지금 누구 얘기하고 있는 것 같나요?
“뉴블랙!”
-누구라고요?
“뉴블래액!”
들썩이는 방청석을 바라보던 하승주가 답했다.
-맞습니다. 차세대 국민 아이돌로 불리는 그룹이죠? 지금부터 뉴블랙의 무대, 만나 보시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방청석에서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20대 커플, 대학 친구들이 서로를 팡팡 치며 ‘와! 와!’ 하며 들뜬 모습들이 카메라에 담기고.
‘뉴블랙’이란 단어에 환히 웃으며 좋아하는 어느 관객의 모습도 원샷으로 담겼다.
자녀들에게 귓속말을 들은 부모 세대가 호감 섞인 눈으로 스테이지를 유심히 바라볼 때.
“와아아아아아아!”
암전된 무대에 실루엣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옷자락이 살짝 하늘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한복을 캐주얼하게 개량한 의상인 듯했다.
스탭들이 무대 위를 바쁘게 세팅한 후.
‘저건 뭐지?’
다섯 명이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옆에 있는 악기에도 누군가 앉아 있었다.
이내 근방의 조명이 밝아지면서 정체가 드러났다.
‘가야금?’
핀 조명 아래서 연주자의 손가락이 가야금의 현을 부드럽게 뜯기 시작했다.
봄의 정취에 어울리는 은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야금 독주가 이뤄지는 동안 조명이 온 무대를 환히 밝히기 시작했다.
“와…….”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검은 두루마기를 외투처럼 어깨에 걸친 미청년들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빛에 둘러싸인 뉴블랙의 모습이 현실감 없게 다가왔다.
꽃놀이를 하려고 하계에 놀러 나온 젊은 신선들 같다.
3분 30초 동안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박수를 쳐 주고 싶을 만큼 미모에 취하는 기분이었다.
‘실물 미쳤다. 카메라가 절반도 못 담는구나.’
최근의 화제성 때문일까.
실물로 보니 어딘가 신비스러운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방청객들이었다.
뉴블랙의 리드보컬이 마이크를 들었다.
고이 피워낸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시조를 읊어 내렸다.
원곡의 분위기와 다르게 가야금 연주가 노래를 정적인 느낌으로 이끌고 있었다.
방청객들이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편곡도 진짜 잘하네.’
많은 수의 방청객들이 ‘이것도 우주가 편곡했겠구나’ 하며 감탄한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편곡을 어찌나 재미있게 해 놨는지, 그저 앉아서 부르는데도 재미가 있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가야금과 대화를 주고받듯.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다섯 명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교감이 관객들에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낙화의 후렴은 다시 들어도 너무 좋았다.
꽃이 필 때 돌아와-
꽃이 필 때 돌아와-
가야금까지 다섯 명과 완벽하게 화음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런 화음을 이끌고 있는 메인보컬의 기량에 관객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순간적으로 몸이 찌르르할 만큼 소름 돋는 고음이었다.
“……!”
미프에서도 보컬 전문가로 활약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틀린 소리 하나하나 짚어 줄 만큼 예리한 청력을 지닌 이답게 음 하나하나 정확히 파고든다.
전문 피아노 연주자가 부드럽게 건반을 쓸어내리면서도 모든 음을 정확하게 연주하듯이.
부드럽고 선명하다.
은은한 조명 아래서 눈을 감은 메인보컬의 목소리가 공연장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게 바로 명곡단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인가.’
압도적인 메인과 리드보컬에 가려서 눈에 잘 안 들어올 뿐.
한껏 끼를 뽐내고 있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고개가 돌아갔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랩을 하면서도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는 래퍼.
가만히 앉아서 몸을 까딱, 까딱 흔들기만 하는데도 우아한 선이 느껴지는 메인 댄서.
고혹적인 표정으로 속눈썹을 부드럽게 떠는 막내에게서 타고난 끼가 느껴졌다.
괜히 이 바닥에서 이렇게 성공한 게 아니구나 싶을 만큼 끼가 넘쳐흘렀다.
돌아와 말하리오
여기 우리의 봄이 있었노라고
리드보컬의 목소리가 낙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와아아아-!”
방청객들의 박수 소리가 공개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뉴블랙을 반겼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하는 뉴블랙에게 박수를 보내며 방청객들이 서로에게 속삭였다.
“대박이다. 진짜….”
“나 생각했던 거랑 인상 완전 다른 거 같아. 대박인데?”
“TV랑 실물이랑 느낌 완전 다르네.”
그간 TV로 뉴블랙을 접했을 뿐, 직접 공연이나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분명 예능에서 보았던 허당 90프로의 미청년들과 생김새는 같은데.
머릿속에서 허당이라는 글자를 지워 버릴 만큼 실물이 주는 충격이 너무나 컸다.
-와아, 진짜 멋진 무대였네요.
하승주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지금 부른 노래가 바로 낙화죠? 어제 발매했던.
-맞습니다.
-일단 정말 축하드린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지금 컴백하자마자 난리가 났죠?
-아유. 아니에요.
구수하게 손사래를 치는 리더의 모습에 방청객들이 웃었다.
우주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들었다.
-완전 난리까지는 아니고요… 쪼끔?
-조금 더 각도 좁혀여. 형.
-…이렇게?
바로 검지와 엄지의 각도를 좁히는 장면에 이번에는 더 큰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승주가 말했다.
-조금 난리 나기는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트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일간 차트 1위에… 뉴블랙의 낙화가 떡하니 있더라고요.
-맞습니다~!
‘1위’ 하며 검지를 동시에 드는 멤버들의 모습에 방청객들이 미소를 지었다.
-아까 반응 좀 몇 개 읽어 주려고 뮤비도 봤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영어 댓글이어서… 참 글로벌하게 성장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수줍게 웃는 뉴블랙에게 관객들이 성공을 축하하듯 손뼉을 칠 때, 하승주가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이런 뉴블랙을 저희 뮤직카페가 키워 냈죠.
-맞습니다. 저희가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정말 뮤카의 도움 덕에 이렇게 성장했죠.
-그래요. 김 피디랑 우리 작가들 이거 봤지? 꼭 편집하지 말고 내보내.
그렇게 만담이 오간 후.
첫 곡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먼저 첫 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데. 편곡이 기가 막히게 됐더라고요.
-네, 저희 우주 형이 했습니다.
자기 형을 자랑하며 뿌듯해 하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웃었다.
-연주자 분이 가야금을 탁- 뜯으며 시작을 하는데.
-아, 맞아요. 안 그래도 지금 연주해 주신 선생님이 국내 가야금 연주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소개를 하려고 손을 뻗던 우주가 눈을 멀뚱멀뚱 떴다.
-어디 가셨지…?
-이미 내려가신 것 같은데요.
-아까 기다려 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중현아.
스탭들이 가야금 연주자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 분주할 때.
래퍼 중현이 마이크를 들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니이이임~
음머어어어 하는 느낌.
오페라 가수의 노래처럼 구석구석으로 퍼져 가는 목소리에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승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미 한참 멀리 가셨을 텐데. 여기서 중현 씨가 말한다고 그분께서….
-죄송합니다!
그때, 가야금 연주자가 부랴부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하승주가 눈을 멀뚱멀뚱 뜨는 가운데 관객들도 비슷한 표정으로 연주자를 바라보았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가야금 연주자 송아랑이 땀을 훔치며 말했다.
-손에 땀이 너무 나서 화장실에 갔는데, 중현 군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더라고요.
-그게 거기까지 갔다고요?
하승주의 황당해하는 표정에 방청객들이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흐하하핫!”
뉴블랙 멤버들이 ‘봤지?’ 하듯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현실 삼촌 같은 말투가 하승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중현아. 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아, 이거 영업 비밀인데….
중현이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소환 마법을 쓰듯이 마이크를 든 중현이 목소리를 착 깔았다.
-선생니이이임
뭉게뭉게 퍼지는 목소리.
방청객들이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얘네 이상하다니까!’ 하며 하승주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의 열기를 식히는 관객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미치겠다. 정말.”
“아, 진짜 웃겨….”
떠들썩한 웃음이 공개홀에 감돌았다.
방청객들은 신비스럽게 변했던 뉴블랙의 이미지가 원래의 친근한 가수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무대가 끝나면 언제나 한결같은, 정말이지 호감 가는 이들이었다.
* * *
관객들에게 잠시 가야금 연주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후.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본격적인 인사와 함께 토크가 시작됐다.
우리를 조카들처럼 바라보며 웃던 하승주가 큐 카드를 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콘서트를 하셨잖아요? 제가 직접 보러 갔었는데 열기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센스 있게 체조경기장 콘서트를 언급해 주며 ‘뉴블랙이 요즘 잘나갑니다~’ 하며 알려 주는 MC였다.
-이번이 네 번째 출연이죠?
“네. 작년에 해외 투어 끝나고 나온 거랑 저번 스페셜 앨범까지 치면….”
-매번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네요. 요즘에는 보고 있으면 뭔가 아우라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막내가 신기해했다.
-진짜루여? 뭔가 느껴지시나여?
-우리 아우라 생겼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승주가 훈훈한 미소로 답했다.
-아우라가 생기려고 하는데… 이럴 때 보면 뭔가 확 깨는 느낌이 드네요.
-네. 사실 한결같은 가벼움을 유지하기 위해 저희 모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저희 노림수예여!
막내 라인의 주고받기에 관객들이 웃었다.
-아무튼 출연을 환영합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뉴블랙을 뮤카에서 다시 보고 싶어 했거든요.
“정말요?”
-저희가 매해 결산을 하는데, 작년도 투표에서 ‘다시 뮤카에서 보고 싶은 가수’ 1위를 뉴블랙이 차지했어요.
“영광이네요. 정말.”
하승주가 큐 카드의 내용을 읽어 주었다.
-투표 사유로는 ‘웃긴다’, ‘단추 폭발 같은 거 보고 싶다’, ‘나의 웃음 치트키’가 70퍼센트 정도였고요.
“나머지는 노래인가요?”
‘제발’ 하는 우리에게 하승주가 고개를 저으며 짓궂게 웃었다.
-30퍼센트가 얼굴이었습니다.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저희 노래 부르러 나온 건데…….”
열심히 준비한 무대인데 정작 70퍼의 개그와 30퍼의 얼굴이라는 말에 짐짓 시무룩한 표정을 지을 때.
이내 농담이라고 정정해 주는 MC의 말에 다시 웃었다.
-이제는 대세, 아니 국민 아이돌이죠? 어때요? 요즘에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요?
“아뇨. 아직은…….”
콘서트 연습이다 컴백 연습이다 해서 거의 실내에만 있었던 터라 외부인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밥도 안에서만 먹었고.
인터넷 포털을 보거나 지인들 메시지를 통해 그 열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뿐.
아. 하나 실감하긴 했다.
‘어, 뉴블랙…….’
‘뉴블랙?’
‘뉴블랙 왔다.’
PBS 방송국에 찾아왔을 때.
지나가던 직원들이 신기하단 표정으로 우릴 돌아보거나 수군거리고 있었으니까.
방송국 사람들한테 그런 반응을 보는 건 처음이긴 했다.
-들으셨어요. 여러분? 아직 이 친구들이 잘 모른다네요. 여기서 미프 보신 분들 손 들어보시겠어요?
수백 명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방청을 올 정도면 유행이나 트렌드에 관심이 많을 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났다.
우리를 진짜 연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는 수백 쌍의 눈동자에…….
-좋네여.
-관심 좋아. 너무 좋아.
뺨을 씰룩거리며 좋아하는 우리 반응에 웃음들이 돌아왔다.
잠시 미프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신무록 피디님께서….
어떤 식으로 섭외된 것인지도 짧게 언급하고.
화제가 됐던 장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재방송과 VOD 시청이 많은 요즘 시기에 시청률 25%를 찍은 예능답게 관객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뜨겁다.
음악 이야기도 아닌데 괜찮나 싶었는데 MC가 끊을 때도 굉장히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미프의 이야기를 짧게 마무리한 후.
-이제 앨범 이야기를 나눠야 할 텐데. 이번에 새로운 컨셉으로 곡을 들고 나왔잖아요.
“네, 이번 낙화는 한국풍의 곡입니다.”
-보니까 가사도 한국어로만 되어 있는데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한국풍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다른 나라 언어가 나오면 위화감이 들더라고요.”
나와 지호가 ‘I’ll be back~ 꽃이 필 때’ 하며 노래를 부르자 모두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
-그럼 곡 소개 부탁드릴까요?
“네. 낙화는 작별을 다루는 곡이고요.”
콘서트에서 이야기 했던 멘트에서 감정적인 부분은 잘라내고, 몇 가지를 취사선택해서 전달했다.
하승주가 웃으며 말했다.
-곡이 정말 좋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뉴블랙의 매력은 ‘우아함과 신비스러움’인데, 낙화라는 곡이 그런 점을 잘 살렸어요.
그가 질문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 부분인데, 매번 180도로 다른 컨셉으로 나오잖아요.
대개 아이돌 그룹은 비슷한 색의 노래를 내기 마련인데.
왜 매번 완전히 다른 느낌의 컨셉을 들고 나오냐는 질문이었다.
“이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요.”
-보여 줄게 달라진 나. 이런 게 아닌가요?
“네, 그런 건 아니고요. 이게 한 번 하면 좀 질려서.”
-질려서?
리혁이가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저희가 컨셉을 한 번 정하면 디테일하게 파고들어요. 작정하고 끝을 보겠다는 각오로.
-호오, 어떤 뜻인가요?
-어떠한 음악 장르의 세부 장르를 하나 정하면, 앨범이 나올 때까지 정말 해 볼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해 보거든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컨대 낙화의 경우 ‘한국풍으로 끝을 보자!’ 하면서 온갖 레퍼런스를 참조하고.
해 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체크하며 공부하다 보니, 한 번 하고 나면 다음에는 같은 걸 건드리기 싫었다.
하승주가 말했다.
-그거네요. 피잣집을 차리려고 몇 달 동안 삼시세끼 온갖 피자를 다 먹어 보는 거잖아요.
“네, 맞습니다.”
-비밀을 하나 알았네요. 컨셉이 매번 다른 이유 : 본인들이 질려서….
센스 있는 요약에 관객들이 웃음을 보였다.
-이게 바로 자체 프로듀싱돌의 위엄인 것 같습니다. 본인들이 질려서 같은 컨셉은 못하는.
웃음 가득한 분위기에서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자체 프로듀싱 아이돌로서, 이번 낙화에 어떤 디테일이 있는지 저와 방청객 분들에게 알려 주겠어요?
“몇 가지 포인트를 신경 썼는데요. 일단 곡선미를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리혁이가 주도적으로 쓴 낙화의 가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냐’ 같은 것보다 ‘왜 떨어져야 하냐’ 하는 식으로 사람 대신 꽃잎에 빗대어 말하고.
직설적인 말투를 온건하게 바꿔서 가사의 곡선미를 살렸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오오오.
보컬 디렉팅을 비롯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쯤에서 몇 가지를 언급했다.
객석에서 반짝반짝이는 눈들을 보며 말했다.
“신기하네요. 지금까지 노래 이야기 하는데 이렇게 반응이 좋았던 적은 처음이에요.”
막내가 힝 웃었다.
-의외의 면모 같은 거져. 평소에는 선우주인데 곡 이야기할 때는 우주선이 나오는 거잖아여.
“지호야…….”
-흐하하핫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너는 끝나고 보자꾸나.”
-그래여? 그럼 기왕 혼날 거 더 크게 혼날래여. 여러부우운~
“지호야. 지호야! 형이 잘못했어.”
능수능란하게 방청객을 선동하는 막내 때문에 다시 ‘가능하시겠어요, 섹시’를 선보여야 했다.
콘서트 장에서도 세 번이나 했는데, 대체 이거 몇 번이나 해야 되는 걸까.
큐 카드로 물개박수를 치며 깔깔 웃는 하승주의 모습을 얄밉게 바라보았다.
너무 웃었다며 눈물까지 훔친 MC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비하인드가 하나 더 있잖아요. 낙화라는 곡에 얽힌.
“아, 맞아요…!”
-그것도 얘기 한 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우리가 환히 웃었다.
안 그래도 연습한 게 하나 있었다.
* * *
관객들이 수군거렸다.
“비하인드…?”
낙화라는 곡에 비하인드가 뭐가 있지?
몇몇 관객들이 ‘아!’ 하기 시작했다.
‘그거구나. 귀신 얘기.’
녹음본에 귀신 목소리가 들어갔다는 영상을 아는 이들은 옆 사람에게 알려 주고.
모르는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때.
뉴블랙 멤버들이 으스스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가 이번에 앨범을 준비하면서 귀신을 봤습니다…!
리더가 말했다.
-이번에 저희가 제주도 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인데요. 조명감독님, 잠시 밝기 좀…….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관객들이 눈을 깜빡였다.
어느새 가야금 연주자도 무대 위에 올라와 띵, 띠리링 하며 음침한 표정으로 현을 뜯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명인의 솜씨.
난데없는 공포 BGM에 방청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 귀신?’
당황하는 관객들에게 뉴블랙 멤버들이 으스스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저희가 지금부터 귀신 얘기 들려 드릴게요.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방청객들이 눈을 깜빡였다.
음악 이야기를 들으러 왔는데 귀신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