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5화
뮤직카페 녹화 다음 날.
여전히 일간차트 1위에 머물러 있는 낙화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흐힛.”
1위에서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독특한 분위기로 만든 곡이다 보니 일반 대중들이 좋아할지 미지수였는데.
차트 추이도 좋고, 어제 녹화 때도 현장 반응을 보건대 다들 낙화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오오.”
더 좋은 건 수록곡들이 일간 차트 100위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중이라는 거였다.
스페셜 앨범 이후로 새롭게 보이는 추이라고 할까.
Nine 때까지만 해도 다들 수록곡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 양상이 달랐다.
“내 마음에 저장~”
스크린샷 캡쳐 버튼을 누르며 좋아하고 있을 때, 핀잔이 돌아왔다.
“지금 뭐 해요? 이거 안 돕고.”
“예, 갑니다.”
“빨리 와서 도와요! 나 여기 안 닿는단 말이야.”
연습실 높은 곳에 예쁜 방울들을 매달려고 끙끙대는 리혁이었다.
나와 고작 3, 4센티 차이인데, 저기가 안 닿는 게 신기하다.
가만히 팔짱을 끼고 바라보자 팔을 벽에 붙인 채 버티던 리혁이가 눈을 부라렸다.
“뭐 해요?”
“어떻게 하면 최대한 치욕스럽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
“이이익!”
“막내야! 중현아!”
폭죽과 함정을 세팅하고 있던 중현이와 지호가 다가왔다.
“뭔데여?”
“왜 그래요. 형?”
“쟤 봐. 손 안 닿는데.”
이윽고 둘의 시선이 팔을 쭉 뻗고 있는 리혁이에게 향했다.
“이이익! 웃으면 죽일 거야!”
중현이가 콧잔등을 씰룩이며 딴청을 피우는 가운데, 막내가 살랑살랑 웃으며 다가갔다.
리혁이의 머리에 손을 얹은 막내가 드라마 남주인공처럼 웃었다.
“저런, 거기까지 키가 안 닿아요. 우리 아기 고양이? 악!”
“야아아아악!”
언제 봐도 정겨운 풍경이었다.
바닥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막내들이 먼지를 풍기기에 케이크를 멀찍이 옮겨 뒀다.
누가 이길지 중현이와 내기하면서 말했다.
“근데 쟤 언제 저렇게 또 컸냐. 이제 나랑 거의 비슷한 거 같은데?”
“성장기잖아요.”
곧 180쯤 되려나.
불현듯 팀 내 장신 2위로서 위기감을 느꼈다.
“저기서 더 크진 않겠지…?”
“흐으으음.”
“빨리 견적 내봐라. 인간 BMI.”
“손목이랑 발목을 만져 봐야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지호 최종 키는 아마도.”
중현이가 내 머리 위로 손가락을 얹더니 말했다.
“저보다는 작고 형보다는 조금 큰.”
“안 돼…!”
벌써부터 ‘우주 어린이 차캐차캐’ 하며 능글맞게 웃어댈 누군가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니. 저렇게 안 좋은 거 많이 먹고, 게임 많이 하고, 밤늦게 자고 하는데 어떻게 크냐고.”
“스트레스가 없잖아요.”
“아.”
행복한 웃음이 머릿속에 스친다.
“제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무념무상으로 살면 키가 잘 자라요. 형.”
“그런 비결이…….”
명언에 감탄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내 핸드폰을 힐긋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뭐예요. 형? 오늘 차트?”
“응, 오늘자야. 여기 수록곡 순위도 봐봐.”
“오호.”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폰을 꺼내 들었다.
“저도 그 순위에 기여하고 있어요.”
“응?”
“실시간 스트리밍 중이거든요.”
“오오…….”
플레이리스트에 낙화 수백 개가 보였다.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나도 중현이처럼 낙화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스트리밍을 돌렸다.
그 동안 싸움을 마친 막내가 사이좋게 벽에다 ‘경축! 비주 오신 날!’ 현수막을 걸었다.
“준비 됐어여. 형!”
“모이자.”
손뼉을 치며 케이크를 든 채 동생들을 불러 모았다.
연습실에 불을 끄고, 케이크를 든 채 비주가 오기만을 열심히 기다렸다.
5월 25일.
오늘 비주의 생일을 맞이해서 몰래 준비한 생일 파티였다.
-우주 형, 오늘 팬카페 들어가 봤어요…?
-어제 다들 녹화 하느라 많이 피곤한가? 피곤한 거겠지…?
-나 늦게 잤어. 어제 새벽까지 기다… 아니 잠이 잘 안 와서.
어제 자정부터 지금까지 계속 우리한테 ‘너희 기억 못해…?’ 하며 은근히 삐진 비주였다.
이제 내려오면 깜짝 놀라게 해 줘야지.
안무 영상 건으로 잠깐 불려 나간 틈을 타서 열심히 준비한 파티였다.
이제 비주가 들어오면.
‘어맛!’ 하면서 도미노가 촤라락 움직이고, 대기하고 있던 미니 폭죽이 표표푱 하고 터지고.
마지막으로 돌돌 말린 현수막이…….
“온다. 온다.”
발자국 소리에 숨을 죽인 것도 잠시.
중현이가 급하게 나를 부르려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 환히 웃으며 등장했다.
“뉴-하! 뉴블랙TV!”
추기석 씨였다.
그리고 3초.
“……!”
“……!”
추기석 씨의 발에 걸린 도미노가 눈에 들어왔다.
“아, 안,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
촤라라라락 하면서 무너지던 도미노가 하트 모양을 그리는 것도 잠시.
생일 폭죽이 팡팡! 하며 터지고 마무리로 현수막이.
“어어! 중현아!”
“네. 형!”
“아니!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왜요?”
수습하려고 달려 나가다가 모든 것을 갈아 버리는 우리 셋째였다.
삽시간에 도미노 하트가 도미노 피자가 됐다.
“불! 현수막에 불 붙었어여!”
“아니, 바보들아. 케이크를 왜 거기에 들고 가냐고! 거기다 불 붙이는 게 더 어렵겠다!”
“잔소리 하지 말고 얼른 도와요!”
생일 파티가 아니라 범행 현장처럼 변해 버린 연습실을 수습하려고 할 때.
눈을 휘둥그레 뜬 추기석 씨의 뒤에서 누군가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다들 지금 뭐하는… 흐어!”
숨을 삼키며 난장판이 된 연습실을 둘러보던 비주와 바닥에서 웅크려 있던 우리가 눈이 마주쳤다.
“…….”
내가 케이크를 들고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생일 축하해…?”
끄덕끄덕.
쪼그린 상태 그대로 환히 웃으며 케이크를 들어 보였다.
“생일 축하해!”
이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불이 켜진 연습실.
케이크 조각을 하나씩 나눠 먹고 있을 때, 비주가 안도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다들 내 생일을 깜빡했을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여. 이거 한 달 전부터 주문한 거예여. 엄청 유명한 케이크 가게에다가.”
“진짜? 어쩐지 너무 예쁘더라.”
사과 케이크를 음미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한편, 도미노 조각을 열심히 치우고 있는 죄인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선배님도 와서 드세요.”
“……먹어도 돼?”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잖아요.”
허헛 웃으며 동참하는 미남 배우를 보며 웃고는 다시 비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선물을 줄 시간이었다.
“일단 이건 편지랑 꽃.”
“어? 이거 제 탄생화 맞죠?”
“응.”
비주에게 손 편지랑 꽃 한 송이를 건네주고는 핸드폰을 가리켰다.
“나머지 선물은 계좌에서 확인해 봐.”
“계좌요?”
“현금 보냈어.”
“……!”
좀 확인하고 기뻐하지.
기쁨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비주가 계좌를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형.”
그때 막내도 끼어들었다.
“저두 선물 준비했어여!”
“고마워!”
“일단 확인하고 고맙다고 해 줘여. 형.”
“그렇지만 일단 준비해 준 게 너무 좋은걸 어떡해.”
이어서 동생들도 각자 준비한 선물을 건네주기 시작했다.
너무 기뻐하는 비주의 모습에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SNS에 올릴 단체 셀카도 찍는 한편, 구석에서 케이크를 먹고 있는 미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선배님, 굉장히 일찍 오셨네요.”
녹화 시작하려면 5시간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아. 오늘 녹음 날이잖아. 몇 가지 미리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었거든. 혹시 시간 괜찮으면…….”
“아, 괜찮아요.”
“다행이다.”
히힛 웃던 추기석이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이것도 전해 주고.”
“……?”
백팩을 뒤적거리던 상대가 비주에게 짠 하고 뭔가를 건네주었다.
앙증맞은 화환 리본이 붙어 있는 나침반.
웃음을 터뜨리는 우리에게 추기석이 말했다.
“찾아보니까 꽤 비싼 거래. 나침반 계의 뉴블랙이라고 그러던데.”
“선배님이 사신 게 아니었나요?”
“음… 이거는 나를 포함해서 우리 짭플레들이 십시일반 보태서 마련한 선물!”
“흐하핫!”
우리의 미튜브 팬덤인 짭플레가 준비한 선물이라는 듯했다.
고맙다고 인사하는 비주에게 추기석이 흐뭇하게 웃었다.
“거기 보면 쪽지도 있어.”
“문구요?”
“우리 짭플레들의 영혼이 담긴 응원 멘트.”
궁서체로 인쇄된 글씨가 가득했다.
-뉴블랙아, 우리다. 짭플레.
-삼촌들이 지켜 주진 못하겠고 잘 지켜보고 있다
-건드리는 놈 있음 말해 확 담가 버리..진 못하고 같이 욕해 줄게
-아조씨가 취직하면 앨범 사 줄게.. 좀만 기다려ㅠㅠ
-공무원 합격은 뉴블랙
광고 문구까지 패러디해서 멘트를 쓴 정성에 미소를 지었다.
수플레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이렇게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좋다고 해야 되나.
고급진 나침반을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 메인댄서가 금세 축축해진 눈을 비비며 말했다.
“너무 감사하다고… 아니, 나중에 이거 인증 영상 올려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마음에 들어?”
“네!”
“좋아해서 다행이다.”
행복하게 웃던 상대가 이내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이게 아까 말한 질문 목록인데… 이따가 언제쯤 물어보면 될까?”
“지금 물어보셔도 돼요.”
“그래? 그러면…….”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는 Attention의 가사지를 보며 감탄했다.
영화계에서도 엄청 노력하는 스타로 유명하시다던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와 닿았다.
‘숨 조금 참기’, ‘억양 조절’ 같은 문구를 하나하나 읽어 내렸다.
상대가 어떤 부분에서 막히고 있는지 대강의 맥락이 눈에 들어오는 듯하다고 할까.
진지하게 질문하는 배우에게 리혁이가 설명을 해 주었다.
“일단 이 파트에서 느낌이 안 산다고 하신 거죠? 이유는 모르겠는데.”
“응.”
“제 추측으로는 선배님 직업이 배우라서 그런 것 같아요. 배우는 대사 전달을 위해 정확한 발음이 중요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여기는 또박또박 말하기보다는 발음을 흘려 줘야 되거든요.”
“아, 그래서…! 잠시만.”
피드백을 수용해서 바로 노래를 현장에서 불러 보는 추기석 씨였다.
꼼꼼하게 듣던 리혁이가 나한테 ‘괜찮아진 거 같죠?’ 하듯 시선을 보내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더 나아졌어?”
“훨씬요.”
활짝 웃던 추기석 씨가 침을 삼키며 종이를 바라보았다.
“리혁아, 리혁아. 나 그럼 또 하나…….”
확실히 데뷔가 임박해서 그런가.
요즘 들어 종종 전화하는 다른 에이텐 멤버들도 그렇고 눈에 진득한 독기가 서려 있다.
한참 동안 질문을 하고 답을 듣던 추기석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으…….”
어깨를 빙빙 돌리던 이가 히죽 웃었다.
“아, 이게 노래도 쉽지가 않구만~”
“많이 긴장되세요?”
“첫 영화 촬영 들어갔을 때만큼 긴장된다니까. 시작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일이 커질 줄은 몰라 가지고.”
“……일이 엄청 커지긴 했죠.”
미프의 멤버와 우리가 웃음을 교환했다.
3회차 만에 25%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 때문인지, 모두들 부담이 이만저만 아닌 모양이었다.
막말로 전 국민이 데뷔를 지켜보는 상황이니까.
‘후우’ 하며 딱딱해진 뒷목을 주무르는 상대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이쿠, 벌써 1시간이나 지났네. 내가 우리 뉴블랙TV의 귀중한 시간을 이렇게…….”
“괜찮아요. 선배님. 이런 거 하려고 저희가 출연한 거잖아요.”
“맞아여.”
막내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해 오셔서 너무 좋아여.”
“그래?”
“이 정도 열정이면 녹음하실 때, 쉽게 지치지 않으실 테니까~”
흐흣, 흐흐흣 하며 웃는 동생들의 모습에 추기석 씨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녹음을…? 네가?”
“네. 제가 진행해요. 선배님.”
“어째서……?”
허망한 표정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나를 본 추기석 씨가 수습을 시도했다.
“아니, 싫은 건 아니고. 전해 듣기로는 네 컨디션을 배려해서… 나상윤 피디님이 진행하신다고 했는데.”
“원래는 그랬는데 제가 같이 하겠다고 했어요.”
“……!”
“제가 책임져야죠.”
“아니야. 안 져도 돼…….”
벌써부터 앞이 막막하다는 표정을 짓는 추기석에게 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녹음 관련해서는, 동생들이 과장하는 거예요.”
“…….”
“얘네가 이상하게 얘기를 해서 그렇지. 녹음할 때 전혀! 전혀 그런 상상하시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
“선배님?”
몇 번이고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벌써부터 질겁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상대방이었다.
아니, 진짜 그 정도는 아닌데.
* * *
그날 밤.
레몬 엔터의 신입 작곡가 김형섭은 2층을 걷는 중이었다.
‘아직도 촬영 중인가?’
촬영 장비와 연결된 전선이 복도에 늘어서 있는 가운데, 작업실 안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PBS 미스터 프로듀서의 녹화가 한창 중인 모양이었다.
‘……뉴블랙 분들 내일 음방 사전녹화 있지 않나?’
콘서트도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런 강행군이라니.
자신이었다면 몇 번을 쓰러졌을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대단한 체력에 새삼 감탄이 나왔다.
노가다판의 베테랑 아저씨들을 보며 감탄했던 그 기분이라고 할까.
‘연예인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작업실을 지나갈 때.
“음……?”
특식으로 주문해 준 것인지 텅 빈 짜장면 그릇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어찌나 굶주렸던지 양파 조각 하나 없이 깨끗한 그릇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짜장면 국물에 젓가락을 그어서 만든 글씨.
[살려줘]
“……!”
등골이 오싹하다.
짜장면이 섬뜩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누군가 남몰래 보낸 구조신호를 본 김형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피했다.
‘엮이면 안 된다.’
한 달 남짓한 레몬 엔터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바로 뉴블랙과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최대한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형섭 씨,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날은 참으로 운수가 안 좋은 날이구나, 하며 깨닫는…….
“형섭 씨.”
“…….”
복도에서 선 채로 죽은 김형섭이었다.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우주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중현이가 그러더라고요. 밖에서 형섭 씨 걸어 다니는 소리가 난다고.”
“……하하핫, 그, 그래요?”
“네. 잠깐 여기 와 보실래요?”
쭈뼛쭈뼛 걸어간 김형섭은 작업실 안에서 좀비처럼 허우적대는 미프의 멤버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어색하게 서 있을 때, 우주가 그를 소개했다.
“잠깐 소개해 드리려고요, 여기는 이제 이번 Attention의 편곡을 일부 맡아 주실 작곡가 김형섭 님이에요.”
“……예? 제가요?”
금시초문이었다.
그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눈치 빠른 예능인들이 바로 끼어들었다.
얼굴에 잔뜩 화색이 돈 표정으로.
“아이고, 우리 편곡 맡아 주시는 분 중 하나구나.”
“예? 아니 저는…….”
“고마워요!”
카메라 앞에서 ‘흐하핫, 어딜 도망 가!’ 하며 그를 수렁으로 빠뜨리는 이들이었다.
우주가 웃으며 소개했다.
“이 분이 바로 선배님들께서 저번에 들으셨던 Nine 리믹스를 만드신 분이에요.”
“아아! 결국 잡혀 오셨네!”
추기석의 멘트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작곡가님도 엄마 편지 써 볼래요?’ 하며 드립을 치는 이들에게 김형섭이 쑥스럽게 웃었다.
“엄마, 사랑해요.”
떠들썩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살짝 당황스럽긴 한데 TV 예능에 얼굴을 비출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소개를 시켜 준 후.
뉴 페이스의 등장에 시끌벅적해져 있는 작업실에서 우주가 그에게 말했다.
“곧 있으면 녹음 다 끝나거든요.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이따가 작업실로 찾아갈게요.”
“아, 네.”
그리고 그로부터 1시간 후.
-흐아아아악!
-꺄르륵! 꺅!
-저, 저는 오늘부로 선언합니다! 뉴블랙 TV는 이제 탈덕이에요! 탈더어어억!
비명과 웃음이 가득한 마녀의 성 같은 BGM을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떠는 것도 잠시.
제작진과 출연진을 배웅하고 온 우주가 그를 찾아왔다.
“아. 녹화 끝나셨어요?”
“네.”
우주가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후우…….”
옆자리에 앉아 의자에 몸을 파묻는 미남의 모습에 김형섭이 살짝 긴장했다.
한 달을 봤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미모였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도자기나 미술품이 살아서 숨을 쉬는 듯한 인상이었다.
우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 아뇨.”
“배고프진 않아요? 뭐 시켜드릴 수 있는데.”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그럼 이거라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내서 건네주는 초콜릿을 받았다.
가벼운 대화로 그의 긴장을 풀어준 우주가 USB를 노트북에 꽂고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수정을 일부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아, 네.”
“몇 가지 톤을 좀 바꿔야 될 것 같은데. 막상 선배님들 목소리를 녹음하니까 예상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고요.”
종이에 선을 반듯하게 그은 우주가 구간을 표시해 주며 대략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서 여기에…….”
“네, 거기 들어오는 부분에서 톤을 올려 볼게요.”
척하면 척으로 알아듣는 그에게 상대가 환히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얘기가 너무 잘 통하네요. 좋다.”
“아니에요. 설명을 워낙에 잘해주셔서…….”
“다 우리 작곡가님이 유능하셔서 그런 거죠.”
서로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공치사를 주고받은 후.
이번에 ‘Attention’이라는 곡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갈지 그와 길게 토론을 나누었다.
1시간 가까이 곡에 대해서 눈을 빛내며 설명하던 우주가 기지개를 쭉쭉 켰다.
너무나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일 음방 녹화인데 들어가 보셔야 되지 않아요?”
“조금만 더 일하고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괜찮아요.”
슥 웃던 우주가 화제를 돌렸다.
“참.”
호기심을 담은 눈동자가 그에게 향했다.
“회사 생활은 어떠세요? 할 만해요?”
“음…….”
“A&R팀이나 프로듀싱 팀 분들이 되게 잘해주죠?”
“엄청요.”
혹시 나가기라도 할까 봐, ‘형섭아~!’ 하며 매일 눈으로 하트를 보내 주는 프로듀싱팀 직원들이었다.
뭔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아직 적응하는 중인 거 같아요. 회사 생활은 처음이라…….”
“맞아요. 일단 적응하는 게 어렵죠. 특히 프로듀싱팀 분들과 나이 차이도 있으실 테고.”
“네, 너무 형님들이셔서… 좀 조심스러워요.”
“그죠? 저도 이렇게 프로듀싱 관련해서 제 또래 직원 분이 있는 건 처음 보긴 해요.”
우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좋네요. 이야기도 더 잘 통하는 것 같고. 이게 나이대마다 공유하는 게 있잖아요.”
“네, 그건 그런 거 같아요.”
“음악 취향도 되게 비슷하잖아요. 저랑 형섭 씨랑.”
확실히 그렇긴 했다. 음악적으로 잘 맞는다고 해야 되나.
프로듀싱 팀의 다른 작곡가들과 음악 이야기를 할 때도 좋긴 하지만, 우주랑 이야기할 때가 더 신나긴 했다.
군대를 비롯해서 공감대도 많고.
살짝 지친 얼굴로 속내를 드러내 보이던 우주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네?”
“우리 나이도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할까요?”
“어어… 그래도…….”
“동갑이잖아요.”
우주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악 이야기를 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거든요.”
“…….”
“그런 의미에서 말 편하게 하는 건 어때요?”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그림 같은 미소에 김형섭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했다.
* * *
30분 후.
김형섭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섭아. 형섭아. 그게 맞을까?”
“형섭아…?”
“그렇게 하면 완성이 안 될 것 같은데…? 형섭아, 너 완성을 하고 싶어?”
“아이고, 형섭아……!”
노트북으로 Attention을 손 보고 있는 그의 곁에서 쉴 새 없이 잔소리가 날아들었다.
“형섭아…? 벌써 피곤해? 아직 11시인데.”
김형섭이 부르르 떨며 눈을 감았다.
‘친해지고 싶다는 게 친근하게 굴려 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이고오오! 형섭아아!”
나이 스물넷에 새로 사귄 친구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최고로 악독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