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7화
금요일 저녁.
PBS 뮤직On에서 둘째 날 음방을 마친 우리는 스케줄을 위해 이동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오늘의 일정은 팬사인회.
목동 행사장에 모인 백여 명의 수플레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오프닝 멘트를 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팬사인회 하니까 너무 좋네요. 여러분도 좋죠?”
-네에에!
“오늘 우리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놀다 가요.”
환호해 주는 수플레들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한 분, 한 분씩 대기번호에 따라서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다들 엄청나게 긴장한 게 보였다.
침을 연신 꼴깍이는 분도 있고.
땀이 나는지 이마를 쓸어내리는 분도 있고.
우리 쪽을 연신 보면서 ‘어떡하지’ 하면서 가슴을 졸이는 분도 눈에 띄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그 숨소리가.
“후우, 후우우…….”
옆자리에서 들려오네.
고개를 돌아보니 리혁이가 심호흡을 하면서 입으로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팬들과의 멘트를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별로. 내 마음의 별로.”
고개를 슥 기울여서 속삭였다.
“우리 리혁이 마인드 트레이닝하니?”
“조용히 해요. 너와 나 사이의 벽, 그건 완벽…….”
“해리 포터 1편에 나오는 스네이프 같아. 지금.”
“카아아악!”
나에게 불을 뿜는 리혁이를 피하며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얘 지금 긴장해서 멘트 연습한대요!
당사자가 ‘아아아’ 하며 눈을 감는 동안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메인보컬을 희생해서 만든 편안한 분위기로 팬사인회를 시작했다.
“어, 어… 안녕하세요.”
여러 이벤트에서 마주한 분들도 있었지만, 많은 수의 팬들이 우리와 처음 만나는 듯하다고 할까.
우리가 첫 팬사인회 때 그러하듯 굉장히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그런 수플레들을 막내가 지옥의 강아지처럼 반겼다.
“어서 오세여!”
“어엇, 네.”
“팬사인회 처음 오신 거예요?”
“네.”
“우와. 처음이시구나. 저도 처음 할 때 엄청 긴장했는데, 이게 처음에는 다 긴장되는 거 같더라구여. 근데 어디서 오셨어여?”
어색해하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애용하는 화장품 정보까지 공유한 팬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는 얼굴로 넘어왔다.
막내 덕분에 긴장을 쫙 푼 얼굴로….
“……!”
다시 긴장하시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하면서 가까이 다가가자 오히려 더 흠칫한다.
원인을 파악한 내가 머리를 뒤로 쭈우욱 빼면서 물었다.
“어때요? 이제 좀 편하신가요?”
“형, 거기서 좀 더 가면 투턱이에요.”
“아. 진짜?”
비주의 말에 고개를 살짝 앞으로 뺐다.
‘안녕하세요오오’ 하면서 양손을 반짝반짝 흔들자, 맞은편의 팬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히도 금세 편해진 분위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반가워요!”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대화 주제가 참으로 다양하다.
리얼리티부터 요즘 취미나 관심사, 영양제까지.
좋아하는 햄버거 메뉴를 이야기하다가 얼마 전에 없어졌다는 말에 잠시 슬프기도 했지만.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오랜만이라 좋았다.
“우와. 그럼 이번 앨범에서 어떤 노래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나는 ‘안녕’이 제일 좋았어.”
“정말요?”
“들으면서 위로도 많이 되는 거 같고.”
그중에서 가장 기뻤던 이야기는 내가 작곡한 ‘안녕’을 좋아했다는 어느 팬분의 이야기였다.
작년도에 슬펐던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 ‘안녕’을 듣고 큰 위안이 됐다고.
나를 만나면 꼭 그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는 말에 활짝 웃었다.
가수로서 가장 뿌듯할 때가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는 걸 알았을 때.
“좋은 노래 만들어 줘서 너무 고마워.”
“저야말로 예쁘게 들어 주셔서 고마워요. 참, 그리고 ‘안녕’이 좋으셨으면 오늘 뮤카 꼭 봐 주세요.”
“뮤카?”
“거기서 안녕 무대를 했거든요.”
“꼭 볼게.”
악수를 하면서 환하게 웃었더니 상대도 웃으며 비주에게 넘어갔다.
잠시 시간이 비는 동안.
근처에서 눈을 빛내며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생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누군가에게 시선이 갔다.
“리혁아.”
“네.”
“……이별은 어디일까?”
“이별… 이요?”
리혁이가 흐으음 하며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쟤 또 낚이고 있네.
모두가 웃음을 참는 가운데 리혁이가 진지하게 답했다.
“누군가와 인사를 마지막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 바로 이별의 정의 아닐까요?”
“땡.”
훗 하며 웃는 수플레에게 리혁이가 눈을 부릅 떴다.
“땡? 어째서…?”
“어디일까, 라고 했잖아. 리혁아.”
“……!”
“이 별은 지구야. 리혁아.”
흐캭캭 하며 팬이 웃는 동안 리혁이가 멍해 있다가 비웃는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
얼굴이 벌게진 리혁이가 테이블의 쿠션에 코를 박았다.
쿠션에다 대고 말하는데도 공연장 구석구석으로 ‘느아아’ 하는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흐하하하!”
이내 리혁이가 ‘지구는! 별이! 아니라고요!’ 하며 항성과 행성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멘트를 성공시킨 수플레는 쿨한 미소와 함께 빙빙 돌린 가디건을 착 어깨에 걸치며 퇴장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용기를 얻었는지.
내 앞에 사인을 받으러 온 수플레가 주먹을 꼬옥 쥐는 게 흘긋 보였다.
“우주야.”
“네?”
몹시 진지해하는 표정으로 드립이 나왔다.
“너와 나 사이에서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아.”
“정말요?”
“응. 무슨 벽이냐면….”
“이 벽이요?”
‘완벽’을 준비하려는 수플레에게 내가 허공의 벽을 짚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당황한 팬을 향해 스파이를 취조하듯 물었다.
“누가 알려 줬죠?”
“……!”
“여기에 벽이 있다는 걸.”
마임을 하며 벽을 짚어 주자 수플레가 홍합! 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웅크렸다.
새우처럼 꿈틀대며 웃던 팬이 침을 츄릅 흘렸다.
“어엇, 휴지 드릴까요?”
“어… 응!”
“잠시만요. 문 좀 열고.”
허공에서 문을 열고 고개를 쏙 내밀며.
“괜찮으세요?”
하며 휴지를 건네주자, 상대가 눈물을 쏟으며 물러났다.
“야!”
“왜 그러세요?”
“으아흥핳! 저리 가!”
“휴지는 받아가셔야죠!”
실시간으로 괴로워하는 어느 수플레의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그날 밤.
수플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팬사인회 후기들이 올라왔다.
-목동 팬싸 후기 모음
-팬싸 간략 후기임 (초장문)
-대충 ‘당신이 김중현을 들여다본다면 김중현도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짤.gif
-비주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별은 어디인가? 정답 외치고 들어와봐 (틀리면 리혁이)
사녹 후기와 팬사인회 에피소드가 올라오는 가운데,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한 인물이 하나 있었다.
-홍합님 계시나요 똑똑
-ㅋㅋㅋㅋㅋㅋ 홍합님 생존신고 좀ㅋㅋㅋㅋㅋㅋㅋ
-널리 우리를 이롭게 해주신 홍합인간이시여.. 어디 계시나이까
-홍합!
-근데 그건 진짜 누구라도 웃을만 했음ㅋㅋㅋㅋㅋㅋ
-우리판 네임드는 이제부터 오징어공주와 홍합인간 둘이다 이말이야
바로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베스트 게시글까지 진출한 ‘홍합!’의 주인이었다.
[최애에게 벽이 느껴진다고 할 때 반응 (feat. 우주)]
자막까지 붙어 있는 영상이 업로드된 게시글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얘네 진짜 팬싸 원조할머니급 맛집임
-진심 개그맨이냐고ㅋㅋㅋㅋㅋㅋㅋ
-옆에서 메모하는 김중현이랑 김비주가 더 웃김
-(필기하는 독재자짤) 벽이,, 느껴진다고,, 할 때는,, 마임하기,,
-(확대 캡처) 김중현 진심으로 탄복하는 표정ㅋㅋㅋㅋ
-침까지 흘렸다고 해서 ?? 하고 무표정으로 보다가 나도 같이 침 흘림ㅋㅋㅋㅋㅋ
-근데 왤케 잘해? 진짜 모르고 보면 벽 있는 줄
-ㄹㅇ 저기 벽있을 거 같음
-가능하시겠어요, 멘트..?
뜨거운 반응을 얻은 해당 장면은 이윽고 외부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우주선 인성 논란]
(움짤.gif)
팬이 벽이 느껴진다고 멘트하는데 마임으로 받아침
큰일 아니냐
+ 눈에 점은 팬이 준 스티커라고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우주선 또 저러네; 처음에 팬 겁나 반겨주는 거 보고 쎄하다고 생각함
-이쯤 되면 우주선이 본체 아니냐
-우주선 저 사람 마약김밥 먹으면서 스파이더 카드놀이한다는 소문 있음
-마임 존나 잘하네 ㅅㅂㅋㅋㅋㅋ
-가요계의 트-루 광기
그 동안 인터넷에 박제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부로 선우주 탈덕임 말리지 마셈]
나다 홍합
ㅂㄷㅂㄷ
주접 멘트 치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선우주 때문에 침 줄줄 흘리고 옴ㅠㅠㅠㅠㅠ 아오오
처웃다가 돼지소리까지 나서 개쪽팔려 ㅅㅂ
그래도 내츄럴 관종이라 나름 뿌듯했음.
사진은 우주가 준 휴지로 대신 인증
흑의환향한 팬을 향해 ‘홍-하!’, 홍-하!’를 연호하며 반겨 주는 수플레들이었다.
그렇게 음방 떡밥, 팬사인회 후기를 보면서 평소처럼 데굴데굴 구를 때.
-곧 시작할듯
-이제 우리 애들 나올 거 같은데.. 분량 거의 특집 수준 아님??
-뮤카 기대된다ㅠㅠㅠ
-오 이제 나오나 봄 ㄷㄱㄷㄱㄷ
늦은 밤.
PBS의 뮤직카페에서 두루마기를 걸친 뉴블랙이 주인공처럼 등장하고 있었다.
* * *
TV 화면에 등장한 뉴블랙을 보며 수플레들이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바로 관객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와아아아아!
하승주가 소개 멘트를 할 때마다 방방 뛰거나 설레하는 표정들.
대중들에게서 저런 격한 반응을 이끌어 내는 최애가 뿌듯하다고 할까.
2세대 아이돌 중에서 국민 걸그룹으로 불린 데일라잇이 완전체로 출연해야 나올 법한 반응이었다.
뮤카에 첫 출연했을 때의 분량을 생각하면서 감상에 잠기는 것도 잠시.
“와…….”
첫 무대가 시작됐다.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청년들이 하나씩 마이크를 들면서 섬세한 노래를 선보이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가야금 접목시킨거 너무 좋아ㅠㅠㅠㅠ
-규호야 돈줄게 음원다오
-가야금 반주하고 애들 목소리 진짜 잘 어울린다ㅠㅠㅠ
-뮤카도 직캠 올려주나? 제발 올려준다고 해주세요..
-낙화 원곡도 좋은데 나는 이렇게 잔잔하게 부르는 것도 넘 좋다.. 진짜 음원 소취함
뉴블랙의 라이브에 대해 앓는 글들이 SNS와 게시판을 뒤덮는 가운데.
가야금 연주자의 정체를 짚어 주는 팬들도 있었다.
-가야금 연주자 저분 국내 가야금 쪽에서 엄청 유명한 분이셔!
-되게 유명한 분이야??
-젊은 연주자 중에 제일 유명하기도 하고 인간문화재 집안이라고 들음
-와오..
-생각해보면 하승주님을 쇼케에서 피아노 셔틀 시키고 고구마 팔이 시켰던 게 우리 애들임
앨범에 참여했다는 가야금 연주자를 보며 새삼스럽게 감탄하고 있을 때.
낙화의 라이브가 끝나고 이어지는 토크에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니이이임]
소개를 해 주기도 전에 내려간 가야금 선생을 찾기 위해 중저음의 목소리를 내는 래퍼 때문이었다.
“야, 저게 될 리가 있냐.”
“그러니까…어어어? 되네?”
“흐핫!”
다급하게 ‘찾았어요?’ 하며 등장하는 가야금 연주자의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게 가능한가?”
“중현이잖아.”
“그렇긴 하네.”
분명 취지는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데.
시끌벅적한 호프집 한구석에서 TV로 흘러나와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예능 프로그램 같았다.
모두가 유쾌하게 웃었다.
“어으… 술맛 떨어져.”
TV를 보면서 거북해하다가 주변 손님들의 싸늘한 시선에 ‘뉴블랙 조아! 참 조아!’를 외친 프로듀싱팀을 빼면.
수염이 꺼슬꺼슬한 아저씨들이 치킨을 뜯으며 흐느꼈다.
“대중들이 쟤네의 본색을 몰라서 그래.”
“어이쿠. 형섭이, 맥주 그만 마셔야 되는 거 아냐? 왜 이렇게 과음해?”
“딸꾹! 아, 아이헤오. 저 안 취했구. 그냥 TV에서 친구가 나오니까 너무 반가워서으흐흑!”
선배 직원들이 막내를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너만 갈린 거 아냐. 형들도 다 갈려 봤어.”
“저 너무 힘들었어효… 아니 사람이 끝이 없고. 친구는 또 괜히 해 가지고 나는 울고 걔는 웃고.”
“여기 맥주 1000cc 더 주세요!”
프로듀싱팀이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우린 프로듀싱~ 자유가 없네~’ 하며 개똥벌레를 흥얼대는 동안.
“흐하하핫!”
TV에 나온 뉴블랙의 뜬금포 귀신 썰에 모두가 웃었다.
조명까지 어둡게 끄고.
본격적으로 귀신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수플레들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공중파에서 불끄고 귀신얘기하는 건 우리 애들 밖에 없을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야금 저분 왜 저기 계시는 거야
-뉴블랙의 공포썰 BGM : 인간문화재
-방금 음대 다니는 친구가 톡으로 알려준 사실) 저 가야금은 최소 천만원이다
-가야금 : 내가 이러려고 만들어졌나
-다들 재능 낭비 무슨 일이냐고ㅋㅋㅋㅋ
고작 귀신썰 하나를 풀기 위해 온갖 재능이 동원되고 있었다.
중현의 특수효과음.
가야금 명인의 BGM과 드라마 슬립에서 한때 보여 준 바 있는 막내의 연기력까지.
화면 속에서 ‘흐악!’ 하는 관객의 비명에 공감이 갈 만큼 실감나는 괴담이었다.
‘우리는 이미 봐서 하나도 안 무섭지만 말야.’
달달 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쳤다.
-ㅎㅎㅋㅋ.. 하나ㅗㄷ 안..ㅁ ㅜ섭다
-ㅎㅎ이쯤이야 으마암ㅎ 오빠 들어와서 깜놀 ㅅㅂ 보여주니까 야밤에 쪼개는 니가 더 무섭다고 하고 감
-울 엄빠 리모컨 볼륨 미리미리 줄이는거 넘 귀여워
-휴 하나도 안 무섭네 ㅎㅎ (식은땀 줄줄)
그런 이야기를 하며 뉴블랙 멤버들이 풀어주는 앨범 비하인드를 열심히 듣는 수플레들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미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롭겠지만, 팬들에게는 음악이 최대 관심사였다.
[그 부분은 몇 가지 참조한 게 있었어요. 꽃잎이 떨어지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내야 하기에…]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어떤 식으로 곡이 나왔는지 풀어 주는 리더의 모습이 좋았다.
낙화의 새로운 비하인드를 들으면서 눈을 빛낼 때.
‘수록곡 무대다.’
귀가 쫑긋했다.
우주가 ‘안녕’이라는 곡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많은 팬들이 이번 앨범 수록곡 중에서 꽃놀이와 함께 최애곡으로 뽑는 곡이기도 하고.
그 가사 내용 때문에 여태까지 이런저런 짐작을 하고 있었으니까.
‘부모님에 대해 쓴 곡이구나.’
TV 속에서 ‘안녕’이란 곡이 어찌하여 탄생한 것인지 차분하게 말하는 우주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이윽고 피아노 연주와 함께 무대가 시작됐다.
꿈을 꾸었어요
별이 하나 있었죠
작고 아름다운
당신이 살아가는 별
며칠 전에 녹화한 게 아니라 지금 바로 앞에서 무대를 한다고 느껴질 만큼 생생한 보컬이었다.
이어폰을 낀 귓가로 숨소리 하나하나가 아로새기듯 들어왔다.
그리고.
‘아, 눈물.’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킁 하고 눈을 비비는 팬들이었다.
고개를 살짝 젖혔다가 다시 무대를 보려는데 시야가 뿌옇다.
낮과 밤이 없고
모두가 떠나지 않는 별에서
노래가 이어지는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그 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내는 걸 앞에서 듣는 듯한 느낌.
담담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듣는 이가 눈물이 나는 때가 있듯이.
우주가 ‘괜찮아요’ 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부르는 안녕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안녕, 잘 지냈나요
보고 싶었어요
특히나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팬들은 깊이 공감하며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다 끝났을 때.
눈물을 훔친 수플레들은 그들의 가수가 한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후련함을 느꼈다.
동시에 고마움을 느꼈다.
‘우주야.’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속마음을 노래로 공유해 준 가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대면하기 힘든 기억을 용기 있게 대면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서 공유하겠다는 그러한 생각도 고맙고.
곁에서 리더를 지지하듯 화음을 더해 주는 멤버들을 보는 수플레들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 지금 눈물난다
-잠깐 진정시키려고 화면에 내 얼굴 비춰봄
-우주야 데뷔해줘서 진짜 고마워
-얼마 전에 떠나신 우리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되게 나는 너무 좋았어
-지금까지 2n년간 살면서 소통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몰랐는데 오늘 노래 들으면서 알 거 같음
-오늘 뮤카는 진짜 기억에 남는 날이 될 듯..
-아이고 우리 엄마 운다ㅠㅠㅠ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거실에 앉아서 TV로 ‘안녕’이란 노래를 감상한 시청자들도 비슷한 감상을 내고 있었다.
눈앞의 가수 너머로 90년대의 국민적 영웅이었던 피아니스트를 투영하면서.
“……쟤는 좀 더 잘 됐으면 좋겠네.”
“그러게. 애가 된 사람 같아.”
“피아노 치는 거 보니까 제 아빠랑 판박이구만.”
그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물론, 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오고 마지막에는 막내를 놀리는 ‘Yo!’와 함께.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꽃놀이의 무대가 이어지면서 떠들썩한 웃음 속에 마무리를 지었지만.
방송이 끝난 TV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귓가에는 여전히 ‘안녕’의 후렴구가 맴돌고 있었다.
야심한 밤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였다.
‘안녕이라고 했지.’
노래를 검색하자, 때마침 올라온 새 영상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하나는 직접 작사를 맡은 우주가 손 글씨로 쓴 가사가 흘러나오는 Lyrics 영상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뮤직비디오였다.
‘뮤비?’
스케치북에 그려진 듯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안녕’이라는 곡에 담긴 작곡가의 의도를 이미지로 형상화한 영상.
꿈에서 그리워하는 누군가를 보고.
손전등으로 밤하늘을 비추던 꼬마가 일직선으로 뻗은 빛을 손으로 붙잡고 아득바득 올라가다가 떨어진다.
옥상으로 떨어지는 동안 나이를 먹은 꼬마가 어른이 되었다.
다가갈 수 없는 별을 바라보던 주인공이 먼 밤하늘을 향해 손전등을 깜빡이고.
언젠가 나이 든 모습으로 젊은 부모의 품에 안기는 주인공의 상상으로 영상은 끝났다.
“…….”
따스한 느낌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던 사람들이 노래를 듣기 위해 음원사이트를 방문할 때.
많은 수의 손가락들이 여기저기 문자나 메신저를 켜기 시작했다.
‘혹시 자..?’ 같은 문자를 주고받으며 저마다의 소중한 사람을 찾아가는 동안.
군산에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도 조용히 전화를 들었다.
* * *
멋진 밤이었다.
“형들. 이거 봤어여? 갑자기 안녕 차트 순위가 쭉쭉 올라가고 있어여.”
“이거 봤어요?”
“기사에 달린 댓글 봐요. 다들 이 시간에 안 자고 있나? 우주 형?”
숙소 거실에서 움직이는 TV가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
눈시울이 벌게진 동생들이 방송이 끝나고 쏟아지는 뜨거운 반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주 형, 어디 가여?”
“잠시만.”
나를 찾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한편.
2층의 내 방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여.
“방송 봤어. 할머니?”
-아, 봤지이….
물기 섞인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은 나를 위해 만든 노래기도 하지만 나만을 위해 만든 노래는 아니었으니까.
더듬더듬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활짝 웃었다.
테라스로 다가가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밤공기가 옷깃 사이로 스며든다.
그렇게 지금 군산에서도 보고 있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남겨진 사람들끼리 떠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연하게도, 그날의 통화는 몹시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