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19화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놓는 막내를 보며 우리가 뒤에서 웃음을 삼켰다.
「인상적인 답변이네요.」
기자의 반응에 막내가 히힛 하고 웃었다.
‘거봐, 미리 준비하길 잘했지?’ 하는 내 표정에 지호가 눈짓으로 감사를 표했다.
“와아아아!”
그 동안에도 근처에서 지켜보던 팬들이 우리를 보고 환호하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연출자가 그쪽을 가리키며 카메라맨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와아아!”
카메라가 향하자 사람들이 물결쳤다.
‘우젠민’ 같은 한글 슬로건이나 ‘NBLK’ 등의 약자가 영어로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흔들렸다.
공항을 지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멈춰서는 동안 우리도 손을 잠시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이번 콘서트와는 연관이 적은 별도의 질문이긴 합니다만….」
미리 허락을 구하겠다는 듯 기자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님인 선명주 씨에 대해 질문을 해도 될까요?」
「그럼요.」
어느 정도 예상하던 질문이긴 했다.
90년대에 아빠가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때, 유럽에서 가장 반응이 컸던 곳이 프랑스라고 들었다.
애초에 일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프랑스에서 큰 관심을 끈 덕분에 일본 인지도로 이어진 거라나.
「우주 씨도 지금 음악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잖습니까. 그런 것에는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지….」
「당연히 영향을 받았어요.」
구체적으로 답변을 원하기에 답을 해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곁에서 피아노를 비롯해 다양한 악기를 접하기도 했고. 부모님께서 새로운 음악을 연주할 때면 가장 먼저 들었던 관객이 저였거든요.」
「그게 현재의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군요?」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라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지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싶네요.」
웃으면서 두 손을 들어보였다.
「무엇보다 지금의 제가 이렇게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건, 두 분이 제게 남겨 주신 재능 덕분이니까요.」
제대로 답변이 되었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는 거기서 마무리를 지었다.
멈춰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일 봐요!」
프랑스어로 준비한 인사말을 건네며 손을 흔들자, 수플레들이 방방 뛰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공항 밖에서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타는 동안 입을 틀어막으며 울먹이는 팬들의 얼굴들이 보였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자 눈물 섞인 환호가 돌아왔다.
“와…….”
출발한 차량에서 저마다 손부채질을 하며 열기를 식혔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서 가시지 않는 느낌이었다.
“고생했다.”
조수석에 앉은 석환 형이 웃으며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배어 나온 땀을 훔치는 동안, 리혁이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좋을까요? 보기만 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그럴 만큼 우리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네가 인천공항에서 만 원짜리 흔들고 있는데 세종대왕님이 입국하셨다고 생각해 봐.”
“아.”
리혁이가 바로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말했다.
“납득이 가네요. 눈으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을 실제로 보게 된 거니까.”
“그렇지.”
그런 말을 하면서 방금 공항에서 마주했던 팬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나저나 아까 프랑스 말고 다른 나라에서 온 분들도 꽤 있는 것 같던데.”
동생들도 하나둘 대답했다.
“아. 맞아여. 저 영국 국기 들고 있는 팬분 봤어여.”
“저도 봤어요. 노르웨이, 덴마크 막 그런 느낌 나는 십자가였는데. 이케아 색깔이었어요.”
“스웨덴일 거예요. 그러면.”
내일 있을 공연을 앞두고 미리 프랑스로 들어와 공항에서까지 우리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비주가 보고 있는 유럽여행 지도를 같이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죄다 거리가 꽤 된다.
“내일 공연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비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해야지.
여기는 이런 일 아니면 다시 오기 힘든 곳이라서 이번이 아마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워낙 유럽은 K팝 수요가 적기로 유명하니까.
낯선 땅에서 한 번 하고 끝내는 거, 몸을 불사르고 가야지.
“얘들아.”
석환 형이 너털웃음을 보였다.
“시차 적응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 과하게 힘 빼지는 마.”
“알겠습니당.”
“하루 일찍 온 건 너희 좀 쉬게 해 주려고 한 것도 있으니까. 오늘은 편하게 관광 좀 하고.”
우리 팀장님이 웃으며 물었다.
“너희한테 지금 가장 부족한 게 뭔지 알아?”
“고기?”
“휴식이야. 휴식.”
휴식이라는 키워드에 우리가 멈칫했다.
막내가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후식으로 들리는 것 같아여.”
“나도.”
“후식 냉면 땡긴다. 벌써부터 빙초산 맛이 그리워.”
프랑스에 온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고기가 땡긴다는 대화를 하는 우리 모습에 석환 형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점심 식사할 곳으로 미슐랭에 올라온 스테이크 집으로 골랐으니까 기대하고.”
“예이!”
“아까도 말했다시피 오늘 하루는 푹 쉬어.”
매니저의 강권에 우리가 환한 미소로 답했다.
제주도 여행을 떠났을 때처럼 오늘 하루는 푹 쉬자고 다짐하면서 리혁이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우리 플랜 마스터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잠깐 기다려들 봐요. 내가 오늘을 잊지 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도와줄까, 리혁아?”
“아. 비주 형, 이리로 잠깐 와 봐요.”
둘이 차 안에서 관광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있는 동안 나머지 셋은 창밖의 파리 풍경을 감상하며 젤리를 나눠 먹었다.
“우주야.”
석환 형이 내게 손짓했다.
“이따 저녁 늦게 누가 잠깐 너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답변을 전달해 줄까?”
“누군데?”
“폴 로랑이라고 프랑스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라고 하던데.”
“어?”
“누군지 알아?”
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자 석환 형이 신기해했다.
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인지는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야. Top 10 꼽으면 반드시 들어갈 정도로 유명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었어?”
“엄청 유명하지. 얼마 전에 한국에서 연주회도 했거든.”
시간 되면 한 번 보고 싶었던 공연 리스트에 넣어 놨었는데.
그런 인물이 만나자고 하는 말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의구심이 들었다.
“근데 갑자기 나는 왜…?”
“아버님 관련해서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나 봐. 아주 짧게 만나도 된다고 하던데….”
“그래?”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음악 관련해서는 아는 사람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좋지.
“흐흐흐.”
“만나서도 그렇게 웃지는 말고.”
“흐흣, 흠. 알았어.”
“아. 진짜 만나게 해도 되나. 이거.”
담당 가수 말고 상대편을 걱정하는 모습에 눈을 흘기자, 매니저가 시선을 슥 피했다.
* * *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친 후.
“자.”
인솔자로 임명된 리혁이가 노란 고무손 지팡이를 들고 말했다.
“비주 형이랑 나랑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계획을 짰어요.”
“와아아!”
“이따 호텔 돌아올 때까지 그야말로 완벽….”
계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리혁이의 설명을 한 귀로 흘려 넘겼다.
리혁이가 눈을 부릅떴다.
“좀 제대로 설명을 들어요. 다들. 이따가 ‘엥? 우리 여기 왜 와여?’ 이런 거 하지 말고.”
“제가 언제 그랬어여? 근데 아까 뭐라고 했져?”
“이 보탬 안 되는 사람들 같으니. 내가 이걸….”
“제가 설명할게요.”
흥분한 리혁이를 진정시킨 비주가 당일치기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설명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여기서 서쪽이니까 왼쪽으로.”
“비주야. 지도 거꾸로다.”
“어헛, 그렇네요.”
“…….”
이동 루트에 대한 설명은 리혁이로부터 들었다.
자꾸 제대로 들었는지 팝업 퀴즈까지 내고, 틀리면 지팡이로 옆구리를 막 쿡쿡 찌르고.
덕분에 엄청나게 잘 숙지가 됐다.
“고마운 줄 알아요. 우리 둘이 짠 계획이 없으면 얼마나 여행이 힘들었겠어요?”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우리도 각자 능력이 있다고.”
“뭔데요.”
중현이와 지호, 내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답했다.
“힘.”
“막대한 돈이여.”
“얼굴.”
이어지는 말에 그러려니 듣고 있던 리혁이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
“응.”
“아니, 대체 얼굴이 여행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되는데요?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 리혁이에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 * *
몇 시간 후.
서리혁은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여기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거의 3단 높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온 선우주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푸근하게 웃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선우주가 프랑스어로 인사를 건넸다.
「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어요.」
「그래요? 어머…!」
「꺄르륵!」
「어머! 하하핫!」
중간중간 영어까지 섞어 가면서 꺄르륵! 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
리더를 바라보는 가게 주인의 표정에는 순도 100프로의 행복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어 발음은 또 언제 저렇게 된 건데…?’
문법이나 문장이야 자신과 똑같은 기초 수준이지만 발음이 무슨 프랑스인 같다.
우주가 영어를 섞어서 말했다.
「저는 한국에서 뉴블랙이라는 그룹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기는 저의 동료들이에요.」
「오오!」
“얘들아. 얼른 손 흔들어!”
멤버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아이스크림을 추가로 사 오는데, 남들이 받는 아이스크림보다 배는 양이 많았다.
멍하니 아이스크림을 받는 동안 얄미운 미소가 보였다.
“리혁아.”
“왜요.”
“어떠니. 별점으로 따지면 몇 점 같아? 큰 도움이 되고 있니?”
“……!”
아이스크림을 들고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막내와 함께 꺄륵대는 소리가 돌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안녕하세요! 길을 좀 물어보고 싶은데.」
길이 헷갈려서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더니 아예 동행해서 안내해 주겠다고 그러질 않나.
「안녕하세요!」
웃으면서 인사만 했는데, 가게에서 주는 샐러드 양이 수북하게 쌓여 올라갔다.
묻기만 해도 정보가 쏟아지고 웃으니까 서비스가 쏟아졌다.
지리와 언어가 달라져도 미모는 통하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안락한 도보 여행은 처음이에여. 거의 무빙 워크 타고 여행하는 느낌.”
“나도 처음이야.”
“좋겠다. 우주 형은 무인도에 떨어져도 거기 사람들이 알아서 추장 시켜줄 거 아냐.”
“그거는 형도 하면 되잖아여.”
“나는 내가 힘으로 나무 쓰러뜨리고 그래야 되잖아.”
기념품 가게에서 그런 대화가 오가는 동안, 서리혁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내가 짠 완벽한 계획인데…!’
멤버들이 ‘역시 리혁이야’, ‘리혁이 계획 덕에 잘했다’ 하고 말을 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돈은 선 서방이 벌어 가고 있었다.
내심 시무룩한 기분을 느끼며 멤버들에게 써 줄 편지지를 고르고 있을 때.
“짠.”
큼지막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리더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예요?”
“너 주려고 고른 선물이야. 프랑스 역사를 다룬 팝업북인데 책 넘길 때마다 역사적 사건이 종이모형이 되서 요렇게….”
“허어어…!”
“어때. 취향 저격이지?”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덥석 받았다가 얄밉게 웃는 표정에 헛기침을 했다.
“고마워요. 근데 왜 갑자기 내 선물을…?”
“오늘 여행 계획을 열심히 짠 사람한테만 주는 보상.”
“…….”
“마음에 안 들어? 싫음 말고.”
“그건 아니에요.”
선물을 받으면서 웃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힐링이다. 진짜.”
“알면 됐어요. 흠.”
위에 함께 붙어 있는 Thank You 에펠탑 엽서까지 보며 자꾸 흘러나오려는 미소를 감추고 있을 때.
감동을 느끼던 서리혁에게 상대가 손을 뻗었다.
“자, 이제 돌려줘.”
“왜, 왜요?”
줬다가 뺏는 건 무슨 경우인가.
서리혁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상대가 아련한 미소로 답을 해 주었다.
“이제 결제하러 가야 돼.”
“……이런 건 좀 사고 나서 주라고!”
* * *
당일치기 여행은 완벽했다.
리혁이와 비주가 세운 계획은 완벽했고, 우리의 지갑도 두둑하기 그지없었다.
중간에 비주 지갑이 털릴 뻔하긴 했는데.
「손 조심하시고.」
중현이가 소매치기 손목을 탁 붙잡고 막으면서 그런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여행은 몹시 순조롭고 좋았다.
“와아아. 경치 진~짜 예쁘다! 그져?”
“너무 좋은데? 여기 분수대 앞에서 우리 사진 찍자.”
“다들 모여요!”
좋은 스팟이 보일 때마다 중현이가 가져온 필름 카메라로 화보 같은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든 매니저 형들이 웃으며 외쳤다.
“찍었어!”
“아니에요. 한 번 더.”
“알았어.”
찰칵.
“한 번 더요!”
“알았어….”
찰칵.
“한 번 더!”
“얘들아. 그냥 가면 안 되니?”
“안 돼요. SNS로 팬분들한테 보여 줄 거라고요.”
“이거 화보 아니라고, 얘들아!”
좋은 컷이 나올 때까지 프로답게 찍는 우리의 모습에 매니저 형들이 감동의 눈물을 삼켰다.
그래도 우리 덕분에 좋은 구경 한다며 좋아하는 매니저들이었다.
세느 강에 가서 경치도 감상하고.
“이게 강이야?”
“작네여. 작아. 이거 양재천이 더 클 거 같은데여.”
“여기도 자전거 빌려주나?”
“…….”
루브르 박물관에 들러서 예술품도 감상하며 소곤소곤 대화도 나누고.
‘이거 다른 나라 거 아니야?’
‘와. 진짜 징하게 훔쳐 왔네여.’
“푸흡-!”
콩코드 광장에 가서 매니저 형들의 기념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광장 가운데 선 오벨리스크는 예전에 다른 나라랑 물물교환으로 받아온 거래요.”
“오오.”
“그거 받으면서 답례품으로 시계 줬는데 10년 만에 고장났대요.”
“…….”
민기 형과 원석이 형이 뺨을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
“너희는 정말… 최악의 관광 메이트야.”
“우리가 왜요!”
“외국 오고 그러면 감동해야 되는데, 감동할 시간을 어쩜 1초를 안 주냐.”
“으음. 그랬나…?”
아까도 루브르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눈총을 샀다고 말을 하는 매니저 형들이었다.
그 정도였나?
잠시 생각에 잠긴 우리는 멀리 노을이 지는 하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해, 너희?”
“형들에게 감동할 시간을 주고 있어요. 노을이 예쁘죠?”
“얘들아. 감동이란 게 시간을 두고 찾아오는 게 아니… 어우, 예쁘네.”
다 같이 분위기 좋은 카페를 하나 찾아 앉아서 잡담을 떨었다.
확실히 예쁘긴 예쁘다.
우리 김덕순 여사를 데려오고 싶을 만큼 해질녘이 됐을 때의 골목 풍경이 제법 근사하다.
멀찍이 어두운 골목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호다닥-!
방금 쥐가 지나간 것 같은데.
막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입을 다물자, 커피를 홀짝이던 중현이가 말했다.
“쥐 지나감.”
“푸흡!”
“괜찮아. 한 마리야. 어, 방금 두 마리 됐다.”
“……!”
“우와. 라따뚜이가 진짜였구나.”
초등학생 때 봤던 애니메이션의 비밀이 풀렸다며 감탄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었다.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매니저 형들과 나누기도 하고.
“여자친구 분은 잘 지내세요? 네…? 헤어졌다고요?”
“…….”
“분위기 어떡할 거예여. 책임져.”
“노래라도 한 곡 써 드릴까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민기 형도 달래 주고.
오늘 여행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서로 사진도 보고 감상도 주고받았다.
루브르 박물관 앞의 피라미드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원석이 형이 말했다.
“아까 여기서 너희 때문에 웃음 터져서 너무 창피했어.”
“흐하핫!”
“한국 사람인 거 들킬까 봐 그때부터 말 한 마디도 안 했다니까.”
“형. 그런 걸 왜 숨기려고 그래요.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우리를 흘끔흘끔 보는 옆 테이블의 시선에 멈칫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앉아 있는 남자가 우리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패션 스타일이 근사한, 안경을 쓰고 있는 30대 남자였다.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알아봤나?’
‘알아본 거 같은데요?’
화보를 찍을 때처럼 컵을 우아하게 들고 음료를 홀짝이고 있을 때.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영어로 ‘Excuse me’ 하던 상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굴이 낯이 익어서 물어보는 질문인데.」
「네.」
「맞죠?」
호텔에서 미리 연습했던 ‘맞습니다, 잇츠 더 뉴블랙’ 하는 구호를 떠올리고 있을 때.
상대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소 울음소리를 낸 남자!」
“푸흡…! w, what?”
「맞는 것 같은데. 맞죠?」
당황한 지호가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영어 모릅니다.」
「…?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잖아요?」
“저 지금 영어로 말했어여?”
“응.”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매니저 형들이 웃음을 있는 대로 참고 있는 동안, 내가 대표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군요.」
「그럴 리가…. 어?」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뜨던 남자가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나 당신도 알아요!」
「저를…?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여기 있다! 공중부양 하면서 노래 부르는 남자!」
그가 보여 주는 스마트폰 화면에는 설 특집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와 중현이가 널뛰기를 하면서 차례로 한 소절씩 허공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밑에선 리혁이가 화음을 맞춰 주고 있고.
허공에 붕 떠오른 내가 미륵보살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영상이었다.
“푸흡…!”
동생들이 빵 터져서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남자가 ‘아하!’ 하며 내게 물었다.
「이거 맞죠? 뉴블랙…?」
「저는.」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들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20대 남녀들이 내뱉는 익숙한 감탄사.
“대애애박! 뉴블랙이다!”
“뭔 소리야. 뉴블랙이 왜 프랑스에… 대박!’
“뉴블랙이 여기 있다고? 무슨 파리에서 파리 잡는 예능 찍는 거면 몰라도… 어어어! 진짜다!”
흥분한 목소리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려 주고 있었다.
이내 눈이 마주친 프랑스인 앞에서 동생들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맞습니다. 잇츠 더 뉴블랙.」
「짜-잔!」
그때부터였다.
주변에서 힐끔거리던 손님들이 핸드폰으로 손을 옮기며 미튜브를 켜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달라진 주변의 시선에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안 올 거다.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