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20)화 (42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20화

일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나는 호텔 근처에 있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작은 재즈 바였는데, 우리가 도착하자 바텐더가 손짓으로 테이블을 가리켰다.

“오오.”

영화처럼 손수건으로 잔을 문지르는 바텐더를 보며 감탄했다.

옷매무새를 점검하는 동안, 옆자리에서 바짝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석환 형과 통역사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

“아까 얘기 듣고 나서 폴 로랑이라는 이름을 알아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분이더라고.”

“내가 말했잖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고.”

Top 5를 꼽을 때 반드시 언급되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였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고.

젊은 나이에 커리어의 모든 것을 이룬 만큼, 프랑스 국내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예술인이었다.

통역사 분이 말했다.

“저는 얘기 듣자마자 음반 가게에서 CD 사 왔어요. 제가 진짜 클래식 팬이거든요.”

“허어, 사인 CD라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혹시 몰라서 세 장 사왔는데, 하나 드릴까요?”

“진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CD를 받는 한편,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가게에 재즈 음악만 울려 퍼지고 있다.

“그나저나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모양이네.”

“그쪽 에이전트가 그러는데 아예 오늘 하루 전세를 냈나 봐.”

“…….”

확 부담스럽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런 재즈 클럽까지 전세를 내고 부른 것인지.

아빠와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게 도무지 무슨 용건인지 감도 안 온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Bonsoir.”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들려온 인사.

잘생긴 얼굴의 피아니스트, 폴 로랑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   *   *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오갔다.

「폴 로랑입니다!」

「선우주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악수를 나누자 연주자 특유의 굳은살과 함께 악력이 느껴졌다.

유쾌한 웃음을 흘리던 폴 로랑이 자신이 함께 데려온 인물들을 소개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그중에는 한국인 통역사도 끼어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이미 통역사가 있었네요.」

통역사들끼리 당혹스런 시선 교환이 이어졌다.

서로 ‘님이 왜 여기에?’ 하는 느낌인데, 두 분 다 업계에서 유명한 분들인 듯했다.

폴 로랑이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일단 목부터 축여 볼까 하는데. 음료로 뭘 마시겠어요? 내가 한 잔씩 돌리죠.」

“술이 아닌 것도 있나요? 제가 술을 못 마셔셔.”

「있죠.」

나에게는 무알콜 칵테일이 한 잔 나왔다.

‘자네가 마신 칵테일, 무알콜일세!’

노재현 선생님, 제 머릿속에서 나가 주세요.

안 좋은 기억을 떨쳐 내며 무알콜 칵테일을 조심스럽게 맛보자, 맞은편의 상대가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랑 똑같네요.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못 댔거든요. 와인 향만 맡아도 취한다고 하셨어요.」

“맞아요. 저도 그래요.”

중학교 때 알콜 램프 향 맡다가 갈 뻔했다.

칵테일을 홀짝이며 물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와 어떤 사이신지 여쭤도 될까요?”

「어린 시절에 큰 은혜를 입은 사이라고 해 두죠.」

“도움이요?”

「내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 바로 선명주 씨입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여기 없었겠죠.」

폴 로랑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어디서 그를 알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해야겠군요. 아주 오래 전 일인데….」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대략 20년 전쯤의 일이라는 듯했다.

「당시 그분이 보육원 아동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공연을 해 주곤 했습니다. 거기서 첫 만남을 가졌죠. 나에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그때 연주는.」

상대의 시선이 먼 곳을 향했다.

「유연하고 아름다웠죠. 원장님이 가끔 쳐 주던 피아노가 그토록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 현장의 아이들 모두가 재즈라는 음악에 매료됐죠.」

지금도 그 연주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억만금을 낼 수도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때 결심했어요. 저 사람과 반드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저 연주에 대해서 꼭 뭔가를 물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뭔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대기실 앞에서 기다렸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아뇨.」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문을 열었을 때, 우리 아빠는 이미 스케줄 때문에 이동한 상태였다고 했다.

내가 멈칫했다.

혹시 이거 ‘그때 짓밟힌 동심으로 내가 피아니스트가 됐지!’ 하는 빌런 스토리는 아니겠지.

「대신 대기실에 연습용 피아노가 한 대 있었습니다. 실망한 마음을 달래려고 건반을 더듬더듬 눌렀죠.」

그날 아빠가 연주했던 곡을 떠올리면서 연주를 해 보았다고 한다.

더듬더듬이라는데.

이 사람의 재능을 생각했을 때, 처음부터 어떤 연주가 나왔을지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그렇게 한참 보육원 선생님들이 찾는 것도 모르고 있을 때.

뒤에서 우리 아빠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두고 온 물건을 챙기기 위해 왔다는데, 내 연주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몇 가지 질문을 하셨고.」

폴 로랑이 씩 웃었다.

「그날로 난 보육원을 나왔죠. 유명한 피아노 선생님의 집에 살면서 피아노를 배우게 됐고.」

이미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제법 늦은 나이였지만, 워낙 재능이 넘쳐흘러서 순식간에 유망주가 됐다고 한다.

그 뒤로도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어요. 종종 찾아와서 음악에 대해 조언도 해 주었죠.」

“그렇게 해서 알게 되신 거네요.”

「그렇습니다!」

폴 로랑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손뼉을 치자 우리도 부드럽게 웃었다.

워낙 훈훈한 이야기기도 했지만.

이 앳된 얼굴의 30대 초반 피아니스트가 보여 주는 성격 덕분이었다.

엄청 쾌활하다고 할까.

긍정적인 에너지를 무한 발산해서 주변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꺄하핫. 저 말하는 거예여~?’

막내는 들어가.

왠지 모르게 성숙한 지호처럼 보이는 인상을 애써 지우며 화제를 돌렸다.

「저와 만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 있죠.」

폴 로랑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조금 여유롭게 대화를 나눠 보는 건 어떤가요? 시간이 된다면….」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시간 있지? 있다고 말해 줘!’ 하면서 눈을 반짝반짝이는 것만 같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여유 있죠.」

「다행이네요. 개인적으로 선명주 씨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신이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뭔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특이하다.

만나본 적 없는 동생을 대하는 듯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저 사람은 나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상당해 보였다.

「뉴블랙의 음악은 많이 들어 봤어요. 한국에서 가수 활동 중이란 소식을 들어서.」

「정말요? 저희 노래를요?」

「피아니스트라고 클래식만 들으라는 법은 없잖아요. 관심사를 다양하게 유지해야 음악에 건강한 도움이 되기도 하고.」

‘뉴블랙의 팬입니다’ 하며 웃던 상대가 말했다.

「그런 의미로 건배할까요?」

폴 로랑이 내민 잔에 짠하고 부딪혔다.

살짝 취기가 올랐는지 흥이 돋은 상대가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대화를 옮겨 갔고.

나도 한국어에서 영어로 옮겨갔다.

「매번 음악이 진보한다는 느낌이 좋던데요. 기존의 형식을 부수고 새롭게 만들어 내는.」

「맞아요. 그런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그중에서 Masquerade라는 곡이 제일 좋았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 빨강이라서.」

서로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맞장구를 쳤다.

나도 연주회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로랑 씨가 국내에서 했던 피아노 연주회에 한 번 참석하고 싶었거든요.」

「못 왔어요?」

「못 가서 너무 아쉬웠죠. 저도 팬이에요.」

「여기 내 에이전트의 연락처를 적어 줄 테니까, 나중에 말해요. 제일 좋은 자리로 티켓 보내줄 테니까.」

메모를 한 냅킨을 건네받으며 웃었다.

그렇게 분야가 다른 음악인과 대화를 나누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어……?”

다들 언제 테이블에서 일어났지.

폴 로랑의 에이전트 측과 우리 측 사람들이 멀찍이 구석진 테이블을 자리 잡아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도록 배려한 모양이었다.

「다들 없어진 줄도 몰랐네요.」

「나도.」

폴 로랑과 내가 웃음을 교환했다.

상대가 말했다.

「이렇게 편하게 음악 이야기를 해 본 건 오랜만이라, 신선하고 좋네요.」

「저도요.」

「정상에 오르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나누기도 쉽지 않고.」

저쪽도 덕분에 힐링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폴 로랑이 운을 뗐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었네요.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내일 공연이 있다고 들어서.」

「맞아요.」

상대가 아쉽다는 얼굴로 말했다.

「이제 슬슬 용건을 말해 볼까 하는데….」

「아, 네.」

「오늘 만나자고 한 건 내 연주를 들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에요.」

연주를 들어달라고?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부탁일 수도 있지만…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약속을 한 게 있거든요.」

「마지막이요…?」

「99년 10월쯤이었는데.」

사고가 일어나기 1달 전이었다.

「당시 연습하던 곡 하나를 들려줬는데, 재능을 믿고 연습을 조금 게을리하던 시기라 그가 실망했거든요. 말은 안 하고 웃기만 했지만….」

폴 로랑이 그늘진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연습해서 들려주기로 했죠.」

「아….」

「조금 괴상하게 들린다는 건 압니다만, 그때의 그 곡을 당신에게라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저는 좋아요.」

내 말에 상대가 안도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곤 잠깐 기다려 달라는 듯 무대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손가락을 부드럽게 놀리며 음을 확인해 보는 모습에 재즈 바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와…….”

잠깐 음을 눌러보는 그 솜씨에도 석환 형이 감탄했다.

클래식 팬이라는 우리 통역사 분과 다른 통역사 분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음계를 들으며 웃었다. 미리 조율까지 다 해놓고 기다리셨던 모양이다.

소소한 박수가 줄어들 무렵, 재즈 바의 조명 아래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

시작부터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몸이 부드럽게 흔들리면서 피아노에서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마치 별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다.

눈앞에서 오로라처럼 아름다운 색채의 끈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내가 들어본 피아노 연주 중에서 가장 완벽했던 5분이었다.

“와아아아.”

신들린 듯한 연주를 끝내고 손을 스윽 떼자, 우리가 박수를 쳤다.

조명 아래서 어딘가 후련하다는 미소를 짓고 있는 폴 로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근사한 연주였어요.」

「다행이네.」

폴 로랑이 콧잔등에 난 땀을 훔치며 말했다.

「매일 연습했습니다. 되새기려고.」

「너무 좋았어요.」

「마음에 들었다니 안심입니다. 이걸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낸 것 같기도 하고.」

그가 미소를 지었다.

「희한한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저도 감사합니다.」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이제 내일 공연을 하기 위해서 호텔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작별인사를 건넬 때.

「이건 내 연락처인데, 종종 시간 날 때 연락해요.」

「정말요? 저는 진짜로 연락해요.」

「진심으로 주는 게 아니었으면 애초에 주지도 않았어요.」

손에 담긴 ‘Paul Laurent’라는 이름의 명함을 보며 웃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음악인의 연락처를 받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일본에서 어느 잡지 에디터 분과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행적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할까.

자신이 발굴해 냈던 영재가 이렇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걸 보면 아빠도 기뻐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폴 로랑이 물었다.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긴 합니다만 혹시 ‘Snowy Day’라는 곡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Snowy Day요? 처음 들어 봐요.」

「으음….」

「왜 그러세요?」

「지금 막 떠오른 건데.」

그가 오래 전 일을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내게 들려줬거든요. 아들에게 줄 곡인데 어떠냐고 물어봤죠. 혹시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글쎄요.」

「안타깝네요. 곡의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아직도 기억에 남았거든요.」

흥얼거리듯이 들려주었지만 나는 처음 듣는 멜로디였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것도 다른 곡들처럼 사라진 거겠죠.」

생전에 아빠가 작곡했던 곡들의 상당수가 행방불명인 상태였다.

특히 아빠가 육아를 이유로 몇 년 정도 잠적하고 곡만 쓰던 시기의 노래들도 그렇고.

대체로 비행기와 함께 곡들의 원본이 사라졌을 거라는 추측이 무성하긴 하지만, 17년 전 일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군요.」

폴 로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타까워하는 표정 뒤로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는 석환 형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마침 떠오른 게 있었다.

「사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어디에다가…?」

통역사님 것까지 해서 사이좋게 사인 CD를 얻었다.

마커펜을 건네주던 폴 로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프랑스에서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시길. 내일 공연도 잘하길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내가 도와줄 일이라든가, 그런 일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요. 내 일처럼 도와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이번 프랑스 방문과 관련해서 내가 뭐 도와줄 일은 없어요? 오늘 일도 보답할 겸 뭔가 해 주고 싶은데.」

“으음…….”

아니라고 대답을 하려고 하다가 내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아.”

고개를 갸웃하는 피아니스트를 향해 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요.」

*   *   *

다음 날.

뉴블랙 TV의 구독자들에게 새로운 미튜브 알림이 떴다.

‘뉴블랙 월드?’

해외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뉴블랙의 미튜브 계정이었다.

최근에는 디자이너와 함께 한복 의상을 소개하기도 하고.

안무를 비롯해 뮤비에 넣었던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하는 채널.

“……?”

그런 계정에 인터뷰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썸네일에 ‘허억!’ 하는 표정의 뉴블랙과 함께 잘생긴 외국인이 미소를 짓고 있다.

구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눌러볼 때.

“푸흡-!”

클래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입에서 무언가를 뿜어냈다.

‘아니, 이… 사람이 여기 왜 나와?’

신비주의로 유명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30대 초반에 역대급 커리어를 쌓고 있다고 알려진 피아니스트 폴 로랑이 뉴블랙 TV에 나와 있었다.

그것도 편안한 복장으로.

[안뇽하세요.]

프랑스인이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했다.

[싸랑해요. 뉴블랙TV.]

……연예가 통신이야?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와아아아!]

그런 피아니스트를 선우주와 졸개들이 ‘We love you too’ 하면서 반겼다.

클래식 매니아들의 동공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세, 세계관이 무너진다…….’

지금까지 구별하고 있던 두 세계의 경계선을 허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란 말인가.

국내에서 개구리 잡고 소처럼 울던 아이들이 유명 피아니스트와 함께 있는 투샷이 너무나 이상했다.

-지금 영상 보는 중인데 자꾸 눈 비비는 중

-형이.. 아니 당신이 여기서 왜 나와?

-폴 로랑이 미튜브에 나와? (1차) ???? 근데 그게 뉴블랙 TV라고? (2차) ???!??

-저분 많이 유명함?

┕세계에서 탑으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중 하나임

┕아니 그렇게 귀한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혹시나 김치 먹이거나 한국의 명물을 물어보는 건 아닐까 걱정이 컸지만.

[뉴블랙의 음악을 평소에 듣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눈을 깜빡거렸다.

평소에 뉴블랙 노래를 듣고 있다는 수플레 인증에 오히려 당황하는 사람들이었다.

‘왜?’

어째서, 하는 의문이 나왔지만 뉴블랙의 노래 중에서 뭐가 좋았는지 먼저 꼽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즉흥적으로 찍은 컨텐츠인 듯했지만 내용이 알찼다.

과거 일본에서 마에다 신과 나눴던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우주 클래식도 박식하구나;

-난 저기 있었으면 와우 유아 핸섬 이런 거밖에 못했을 거 같은데ㅋㅋㅋ

-우주선이 음악은 참 잘해

-되게 포인트 잘 짚어주는듯. 클래식 덕후로서 엄청 행복하게 보고 갑니다~

-뉴블랙 컨텐츠가 이래서 좋음. 되게 웃긴데 이 짧은 시간 동안 폴 로랑이란 피아니스트가 뭘 지향하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듯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이가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지고.

피아니스트가 서글서글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연주에 대해서 이런저런 코멘트를 해 주었다.

왠지 모르게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우주가 어떤 질문을 할 때마다, 피아니스트가 엄청 행복해하는 표정으로 받아 주었다.

‘저런 거 얘기해 보고 싶었구나.’

아티스트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부분에 대해서 콕 찝어 준다고 할까.

가려운 부분을 누군가 대신 긁어 준 것처럼 폴 로랑이 반짝이는 미소와 함께 음악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경청하는 뉴블랙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는지 그가 선배로서 조언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꼭 기억해야 돼요. 인간은 예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예술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그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 장면도 나왔다.

음악에 대해 배워 보는 시간을 잠시 가지기로 할 때.

피아노 앞에서 뉴블랙의 낙화를 즉흥으로 연주하려던 폴 로랑이 멈칫했다.

비주가 묻는다.

[왜 그러세요?]

[아.]

피아니스트가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쓴 곡을 연주해 보는 건 오랜만이라.]

[……!]

[다들 이미 돌아가셨거든요. 400년 전에 돌아가신 분도 있고, 단두대에 가신 분도 있고.]

화면 속의 뉴블랙과 함께 보고 있던 사람들까지 박장대소를 할 만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9:17 틀린 말은 아니네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최애가 처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에요..!

-공룡 덕후로서 이해가 가는 마음이다

-ㅋㅋㅋㅋㅋㅋ 반가워하는 표정 왜 이렇게 웃기지

-그치ㅋㅋㅋㅋ 저분이 연주하는 곡의 작곡가들은 살아있을 수 없지ㅋㅋㅋ

-팬미팅하려면 ㄹㅇ 저세상 가야되네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선우주..

그렇게 마에다 신의 1탄에 이어 2탄도 좋은 반응과 함께 막을 내리는 가운데.

뉴블랙 World의 새로운 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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