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22화
“와아아아아!”
팬미팅 장소에 입장한 우리에게 환호가 쏟아졌다.
방방 뛰고 있는 수플레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 저기 봐요.”
비주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플래카드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수플레의 본고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
[여기가 원조 Souffle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면 수플레가 프랑스 디저트긴 하지.
원조집을 주장하는 프랑스의 팬들이 든 플래카드에 다른 동생들도 빵 터졌다.
“와아아아!”
해당 플래카드를 든 팬이 어깨춤을 추며 신나 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팬미팅이 시작됐다.
“둘 셋.”
“Bonjour! Nous sommes ‘the New Black!’”
프랑스어로 준비한 인사를 건네며 MC와 함께 토크를 진행했다.
한국에서 방송 활동 중인 프랑스인이라 그런지 의사소통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오늘 공연을 앞두고 기분이 어떤지,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이 어떤지, 프랑스의 음악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지 등등.
미리 예상했던 질문들이 상당수 끼어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거렸다가.
“와아아아아아!”
통역사님이 말을 옮겨 줄 때마다 커다란 함성을 지르는 팬들 덕분이었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주변에서 한국 문화 홍보 부스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들로 보이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는데, 함성이 나올 때마다 움찔하는 게 보였다.
“파도타기~”
막내가 손을 스윽스윽 하자, 팬들이 파도타기를 하듯이 번쩍 일어났다가 앉았다.
“지호야.”
“넹, 가만히 있을게여.”
움찔.
옆에서 파도타기를 시도해 보려던 중현이가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척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가 웃음을 삼켰다.
“자, 이제 Q&A 코너인데요!”
스테이지 위로 포스트잇이 붙은 게시판이 올라왔다.
민들레꽃처럼 후 불면 날아갈 듯 포스트잇이 산더미처럼 붙어 있었다.
MC가 말했다.
“팬들과 함께 하는 특별 이벤트인데요. 뉴블랙 멤버 분들이 직접 질문을 골라 주시면 됩니다.”
“그럼 그분들이 당첨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팬들과 자주 열었던 이벤트였다.
질문 포스트잇을 고르고, 여기서 당첨된 이들은 끝나고 우리와 셀카 촬영을 함께 하는 방식.
워낙 익숙한 이벤트라 그렇구나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때,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벤트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
“이 포스트잇들에는 멤버 분들에 대한 질문이 많은데요. 당사자가 질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
몸을 꼿꼿이 세우는 우리에게 MC가 말했다.
“다른 멤버들이 해당 멤버가 답변해야 할 질문을 하나씩 골라 주시는 겁니다.”
“오오오…!”
“진짜 재미있겠다. 그져?”
“대박이네.”
막 설레서 ‘꿀잼인데?’ 하고 서로를 돌아보았을 때.
“…….”
각자의 눈에 비친 화려한 라인업에 급격히 말이 사라졌다.
내가 골라 줄 때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놈들이 대체 무슨 질문을 고를지 감도 안 온다고 할까.
늘 나를 향해 신뢰 가득한 시선을 보냈던 비주도 지금만큼은 불신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어휴.”
리혁이의 탄식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지금까지 뉴블랙을 사랑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건 모르겠지만, 오늘부로 우리의 우정이 끝이라는 건 확실하네요.”
“우정이 있긴 했어여?”
우리의 드립이 통역되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첫 타자인 비주의 질문을 골라 주기 위해 포스트잇 게시판으로 다가갔다.
중현이가 손을 스윽 올렸다.
“와아아!”
근엄한 표정으로 손을 스윽 움직이는데, 그때마다 자기가 붙인 포스트잇이 있는지 환호가 커졌다가 작아들기를 반복했다.
“뭐해. 중현아?”
“제일 크게 소리 지른 분 거를 고르려고요.”
“다 비슷한 것 같은데.”
“미미한 데시벨 차이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질문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여기다 붙이고 싶다.
“흐으음.”
그나저나 뭘 고른다.
질문들이 다 너무 좋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팬들인 만큼 우리에 대해 잘 모르고 있겠지, 하고 있었는데.
“미튜브의 힘을 간과한 것 같아여.”
“그러니까.”
우리를 몹시 잘 알고 있는 외국 팬들이었다.
[비주의 Kill-chi는 무대에서도 작동합니까?]
[우주가 김밥 오이 빼는 것 보았다. 어째서 오이 먹지 못하는가? 귀엽고 궁금하다]
[뉴블랙의 졸개 2는 누구인가]
[리얼리티에서 유령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이후 유령에 대한 이야기는 없나요]
이런 것까지 알고 있을까 싶을 만큼 질문들이 상세하기 그지없었다.
비주의 질문지를 고르려고 살피는 동안에도 흠칫, 하고 놀라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뉴블랙 학(學)이라는 게 있다면 여기 질문을 쓴 분들은 다들 석박사쯤 되지 않을까 싶다.
“우와.”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비주의 질문을 하나 골랐다.
그러면서 포스트잇을 뗐다가 다시 붙여 가며, 몇 가지 질문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가렸다.
미튜브에서 봤던 마술사의 손동작이 큰 도움이 됐다.
“흠흠, 다 골랐습니다.”
비주에게 우리가 골라온 포스트잇을 하나씩 읽어 주었다.
“프랑스에는 비주(bijou)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비주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까?”
“네!”
비주가 환히 웃으며 답했다.
“좋은 단어와 제 이름이 비슷해서 너무 좋아요.”
“Bijou가 뭐예여?”
“보석이라는 뜻이야.”
리혁이의 설명에 지호가 ‘한국어로 하면 김보석이네여. 김보석!’ 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두 번째 질문.”
중현이가 포스트잇을 읽었다.
“비주는 무대에서도 길을 잃습니까?”
“길을 잃는다니요!”
비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정했다.
“저 그렇게 길 자주 잃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쩌다가 매일 한 번씩 잃고 그러는 건데.”
“매일 한 번은 자주의 범주에 들어가요. 형.”
“…아무튼 그렇게 자주 길을 잃지는 않아요. 가끔 방향이 헷갈려서 다른 곳으로 가고 그러는 정도…?”
MC가 물었다.
“오늘 리허설은 무사히 마치셨나요?”
“두 번 정도 헤맸어요….”
비주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부끄러운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던 비주가 말했다.
“사실, 등장할 때 제일 많이 긴장하긴 해요. 속으로 바로 왼쪽! 왼쪽, 왼쪽 그러면서.”
“그러면 괜찮아지나요?”
“네. 다행히 무대에선 한 번도 실수한 적 없어요.”
그런 모습이 귀여워 보였던지 현장에서도 좋은 반응이 나왔다.
이어서도 훈훈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서로가 너무 어여뻐 보여서 그런 거라기보다는 일종의 보험이었다.
‘좋은 거 합시다. 좋은 거.’
‘눈에는 이, 이에는 눈이에여.’
‘눈치 있으면 좋은 거 하는 거야.’
외국까지 와서 민망한 일을 겪을 수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서로에 대한 훈훈한 질문거리를 고르고 있을 때.
마지막 순서인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생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리혁아.”
“왜요?”
“믿는다.”
“…이제 와서 갑자기요?”
“난 언제나 너를 믿어 왔어.”
되도 않는 소리였기에 역시 통하지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여태까지 좋은 질문들 골라 줬는데, 자기들도 양심이 있으면 좋은 거 고르겠지.
‘근데여, 형들.’
막내가 소곤거리는 입모양이 읽혔다.
‘우주 형이 마지막이잖아여.’
‘그러네?’
‘마지막이니까 이제 우리 맘대로 골라도 돼여!’
양심이 있을 리가 없지. 내 동생들.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훈훈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뉴블랙 최후의 양심이 작동했다.
비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우주 형이 좋은 거 골라 줬는데.’
그런 말을 하며 나를 곁눈질로 보고 있을 때, 게시판을 보고 있던 중현이의 눈이 번뜩였다.
파파팟.
무슨 천수관음처럼 손을 빠르게 움직이던 중현이가 내가 숨겨둔 포스트잇 4장을 꺼냈다.
그걸 보여 주자 비주의 표정이 바뀌었다. 갑자기 눈에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해지는 게 보였다.
“…….”
텄네. 텄어.
의기양양하게 포스트잇을 가져온 녀석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 질문이여!”
“지호야.”
“넹?”
“잠깐 확인해 보게, 그것들 좀 줘 볼래?”
아무 의구심 없이 내게 포스트잇들을 건네주는 막내였다.
슥슥.
손을 가볍게 튕기고는 지호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뭐, 뭐야.”
“왜 그래?”
지호가 내게 받은 포스트잇을 보고 외쳤다.
“아니 우주 형한테 줬던 흑역사 포스트잇이 외모 칭찬 포스트잇으로 변해 왔어여!”
“뭐야. 진짜네?”
“왜 선우주 핸섬이 되어 있어?”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기는.”
내가 마술을 선보였다.
양손 소매에서 원래의 포스트잇들을 촙 꺼내 카드처럼 손에 쥐는 내 모습에 팬들이 뒤집어졌다.
“흐하하핫!”
중현이가 우와 하며 박수를 치는 가운데.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동생들에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부터 너희를 믿지 않았지.”
“아니, 이런 데서 진지하게 마술 같은 거 쓰지 말라고…!”
“이런 걸로 재능 낭비 좀 하지 마여!”
황당해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떠들썩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결국 총 8개의 포스트잇에 답변을 했다.
당첨된 팬들과 함께 하는 셀카 이벤트에서 마술사 컨셉으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귓가에서 포스트잇을 빼내거나 건네주는 시늉을 하며 찍었는데, 다들 반응이 좋았다.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흥분해서 떠나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외쳤다.
「오늘 무대도 기대해 주세요!」
공연 전의 마지막 스케줄.
미니 팬미팅이 끝나고 메이크업을 수정하는 동안 본격적으로 콘서트 입장도 시작됐다.
-와아아아아아아-!
오프닝을 앞두고 라인업이 하나씩 공개되자, 공연장에서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중에서 가장 큰 함성은 두 그룹에서 나왔다.
-Street Boys’!
“와아아아아아아!”
근처에서 긴장을 풀던 스트릿 보이즈가 자기들끼리 와 하면서 웃었다.
-The New Black!
“와아아아아아아!”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우리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그룹들이 둥그런 눈으로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굉장히 신기해하는 표정이었다.
무슨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가 단독 콘서트를 여는 급으로 함성이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화이팅.”
오프닝 공연을 하기 위해 올라가는 스트릿 보이즈에게 행운의 너구리처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스트릿 보이즈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장을 입은 8인조가 양손을 모은 채 리듬에 맞춰 어깨를 하나둘 흔드는 가운데.
한조가 앞을 가로막고 선 이들의 어깨를 밀치고 등장하면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90초반 아이돌 선배님의 곡을 재해석한 무대였다.
K팝의 역사를 보여주는 메들리.
스트릿 보이즈 식으로 바꾼 무대들이 이어지면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 잘한다.”
“진짜 잘해여. 저 형들.”
이를 악물고 나온 듯한 무대 퀄리티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넥타이를 풀며 머리를 가볍게 터는 LB의 모습이 전광판에 잡히면서 함성이 끝을 모르고 올라갈 때.
몸을 풀고 있던 우리도 입장을 기다렸다.
하나둘 등장하는 가수들에게 환호가 쏘아질 때, 인터컴을 끼고 무대를 바라보던 스탭들이 우리에게 손짓했다.
‘올라가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무대에 입장했다.
K팝 메들리 중에서 마지막 순서인 TNT의 히트곡 ‘Boom’의 후렴구를 함께 부르기 위함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악!”
눈을 찡긋하며 눈웃음을 보이는 지호가 전광판에 잡히면서 환호가 터질 듯이 올라갔다.
중앙에 선 스트릿 보이즈가 우리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곳곳의 돌출 무대로 흩어진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스트릿 보이즈의 옆에서 안무를 췄다.
“와아아아아아!”
서로 따로 추는 안무지만, 합이 척척 맞는 느낌이었다.
청재킷을 걸친 비주가 가슴을 튕기듯이 웨이브를 타고, 바로 옆에선 LB가 그 웨이브에 맞춰 어깨를 털었다.
그리고.
‘Boom boom’ 하는 후렴구에 맞춰.
나와 한조가 등을 맞댄 채 객석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면서 오프닝 무대가 끝났다.
“와아아아아아악!”
함성 속에서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한조가 손을 내밀고, 나도 손을 맞잡곤 서로를 잡아당겼다.
어깨를 살짝 부딪치는 동작으로 퍼포먼스가 완전히 끝이 났다.
“와아아아악!”
응원봉을 흔들며 거센 함성을 토하는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오프닝에 대한 반응이 그야말로 끝내준다.
스트릿 보이즈와 우리가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잘했다.’
‘고생했어.’
간만에 무대를 같이 해서 그런지,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긍정적인 의미로 자극이 되기도 했다.
더 잘하고 싶다는 경쟁심이라고 할까.
무대를 잘하는 팀과 합동 공연을 할 때마다 늘상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저쪽도 비슷한 상태인지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무대 위로 올라오는 MC를 바라보면서 심호흡을 하는 한편, 동생들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어떤 각오나 말은 필요 없었다.
오프닝 공연은 잘 끝냈고.
이제 남은 것은 콘서트 마지막에 나올 우리의 본무대였다.
* * *
아코르 호텔 아레나.
14,000여 명의 관객들이 함성을 지르며 퇴장하는 가수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I love you!”
속사포 같은 랩 퍼포먼스를 끝낸 스트릿 보이즈를 향해 응원봉을 흔드는 K팝 팬들이었다.
‘진짜 잘한다.’
눈앞에서 흘러나오는 퍼포먼스에 눈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고 할까.
힙합 컨셉의 짐승돌이 보여 준 거친 안무와 표정연기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콘서트에 온 K팝 팬들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끝내준다. 진짜.”
“너무 좋아! 방금 봤어? 아까 나한테….”
오늘 진짜 소원을 다 이룬 기분이었다.
매번 미튜브나 인터넷으로만 접했던 가수들의 무대를 직접 보니 에너지가 남달랐다.
그리고.
‘이제 뉴블랙이 나온다…!’
가장 기다려 왔던 가수가 이제 곧 등장할 차례였다.
현장의 열기가 기대와 흥분으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뉴블랙의 팬들이 달봉이와 플래카드를 흔들며 침을 삼켰다.
이윽고 공연장이 암전됐다.
“와아아아아아아!”
객석에서 빛나는 달봉이들이 중계 카메라에 담기는 동안 VCR이 흘러나왔다.
달이 밝은 밤.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어스름한 조명에 빛나는 한국의 궁궐이 배경이었다.
‘우와아아아.’
한국의 궁궐이 어찌 생겼는지 이번에 처음 봤지만 근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와아아아아아-!”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가는 모습이 아래에서 위로 비춰졌다.
얼굴이 나오지 않아 누군지는 모르지만, 마치 왕이나 귀족이 걷듯이 기품 있는 걸음걸이었다.
와인 같은 검붉은 색의 소매가 흔들리고.
카메라 각도가 바뀌면서 화면 속 인물의 정체가 공개되려고 할 때.
촤아악-
부채가 펼쳐지면서 그 앞을 가렸다.
“와….”
하지만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한 템포 빠르게 조명이 움직이며 무대 정중앙을 비추었다.
타앗!
그곳에 뉴블랙의 메인댄서가 부채를 들고 서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악!”
진홍색 의상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한국의 전통의상을 개량한 듯한 복장과 귀공자 같은 미모가 그림같이 어우러졌다.
농밀한 미소와 함께 부채로 자신의 어깨를 톡톡 치던 비주가 손을 움직였다.
‘우와아아…!’
수플레들이 기절할 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부채가 춤을 추는 것인지,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화려한 독무가 이어졌다.
부채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동시에 계속해서 얼굴이 잡히려고 할 때마다 눈 밑을 가렸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동자뿐.
안에서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들여다보고 싶을 만큼, 감질맛 나는 눈빛 연기였다.
그 동안 관객들은 직감했다.
‘이게 낙화의 무대구나.’
최근에 뉴블랙이 발매한 한국풍의 음악.
다소 예상과 다른 분위기의 인트로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쪽의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낙화가 아니야.’
예리한 몇몇 팬들은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분명 우주가 편곡했을 이 곡의 분위기는 그들이 아는 다른 곡과 흡사했다.
색깔이 주는 힌트도 그렇고.
혹시 그 곡의 무대를 보는 건가 싶어서 기대를 품고 있을 때.
촤아악-
중앙에 선 비주가 부채로 눈 밑을 가린 채 눈웃음을 흘리면서 현장의 음악이 바뀌었다.
바로 마스커레이드였다.
“와아아아아아아!”
리프트를 타고 네 명의 멤버가 올라오면서 함성이 거세졌다.
이번 앨범의 컨셉에 맞추어 한국풍으로 바뀐 마스커레이드의 인트로였다.
가면무도회 컨셉.
거기서 가면을 부채로 치환한 무대였다.
“와아아아아-!”
처음 보는 무대에 관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Nine 다음으로 해외 팬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마스커레이드이기에 당연히 나올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으로 나올 거란 예상은 못하고 있었다.
난 어둠 속에
지쳐 있어
반복 되는 시간들
반복 되는 공허함
자신의 뺨을 부채로 쓸어내리는 한편, 위태로운 표정을 짓다가 돌연 부채를 펼쳐 표정을 감추는 우주.
전광판에 비친 그 눈빛이 모두의 뇌리에 새겨졌다.
이어서 나온 리혁이 고음을 내면서 그 뒤에 환영처럼 부채들이 촤악 펼치며 흔들렸다.
뜨거운 환호와 함께 반복되는 ‘Masquerade’에 맞추어 떼창이 흘러나왔다.
“Masque-rade-!”
“Masque-rade!”
후렴구에서도 부채를 펼치며 압도적인 춤선을 자랑하는 비주의 모습에 비명이 나오는 한편.
멈춰버린 음악 속
가면을 벗고
날 위해 미소를 보여줘
3절의 브릿지에서 멤버들의 어깨를 짚을 때마다 표정이 스윽 변하는 서브보컬의 파트에서도 비명이 터졌다.
정말 가면을 덧씌운 것처럼 멤버들이 든 부채 앞을 지나갈 때마다 희로애락이 바뀌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도 가볍게 고음까지 올라간 가성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채우는 가운데.
표정연기를 넋 놓고 바라보던 프랑스의 수플레들 앞에 화려한 군무가 펼쳐졌다.
“와아아아아아!”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대였다.
지켜보던 이들이 흥분해서 방방 뛰기 시작하면서 펜스 앞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침을 삼켰다.
그렇게 이어서 Flower Dance와 낙화까지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갈 때.
총 6곡으로 이루어진 세트 리스트에서 절반이 지나갔을 무렵.
‘음?’
암전된 콘서트장에서 서로를 향해 호들갑을 떨고 있던 프랑스의 관객들은 새로운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전광판에 VCR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의 내용에 비명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