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23화
VCR에 나온 것은 한 남자였다.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남자가 고층 빌딩의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검은 수트에 검은 넥타이.
첩보 요원이나 젊은 CEO 같은 인상을 주는 외모가 VCR에서 빛을 발했다.
모델 같은 워킹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미쳤다…!’
프랑스의 수플레들은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뉴블랙에서 가장 수트가 잘 어울리는 멤버답게 옷맵시가 그야말로 미친 수준이었다.
워킹을 하는 손의 흔들림, 안정적인 발걸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어깨 선까지.
“으어어어어-!”
거의 통곡하는 수준으로 허공에 손을 뻗으며 환호하는 팬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담았다.
그동안 VCR을 보는 팬들의 눈에는 설렘이 가득해졌다.
‘무슨 컨셉이지?’
회사원 컨셉인가?
아니면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힙합 패션으로 Nine을 시작하는 건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호기심을 품고 있을 때.
VCR 속에서 걸어가던 중현이 어떠한 방에 들어가더니 벽에 있는 금고에 다가갔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칸에 ‘999’를 입력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관객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제 곧 Nine의 무대를 하는 것이 분명했다.
뉴블랙의 해외 팬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곡의 예고에 함성이 커져 갔다.
달봉이를 미친 듯이 흔들던 두 팬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뻐할 때.
서류 봉투를 챙겨든 중현이 다시 복도를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
화려한 야경이 보이는 바깥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와 함께 헬기의 조명이 흩뿌려졌다.
‘첩보요원 컨셉이구나!’
금고에서 비밀을 훔쳐 달아나는 첩보요원 컨셉인 듯했다.
그리고 그때.
봉투를 정장 안주머니에 넣은 중현이 넥타이를 헐겁게 만들고는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가 가리키는 것은 8시 55분.
누군가의 미소를 끝으로 조명이 암전됐다.
“와아아아아아아-!”
핀 조명이 무대 위의 래퍼를 단독으로 비췄다.
검은 수트에 검은 넥타이.
VCR과 같은 복장으로 등장한 중현에게 환호가 쏟아지면서 새로운 곡이 시작됐다.
미니3집 ‘Neon Black’에서 중현이 쓴 ‘11:55’라는 제목의 믹스테잎이었다.
본래 ‘자정 5분 전’이었던 가사가 개사되어 나왔다.
벌써 9시 5분 전
수없이 되뇌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때론 넘어졌던 날들을
마이크를 든 래퍼가 묵직한 저음으로 랩을 부드럽게 쏟아 냈다.
중저음으로 랩을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관객들이 리듬감 있게 몸을 들썩였다.
가사를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내용을 알고 있는 수플레들은 환호로 답했다.
‘횡재했다…!’
공연 영상이 별로 없지만, 팬들 사이에서 좋다는 평을 듣고 있는 수록곡이었다.
자정을 앞둔 시각.
멤버들이 없던 시기에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
다가올 고난이든 주변의 시선이든, 지금의 다섯이 있다면 무엇이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담은 곡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솔로로 랩 퍼포먼스를 하는데도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화려한 불빛 아래서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던 중현이 중앙으로 다가갔다.
랩을 마치는 한편.
고개를 젖히면서 땀을 털어 낸 뉴블랙의 래퍼가 ‘yeah’ 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음악이 멈추고, 긴장감 있는 정적이 공연장에 감돌 때.
마이크를 든 래퍼의 입이 다시 열렸다.
It’s the new black
다른 멤버들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카메라를 향해 씩 웃는 표정에 함성을 지르고 있을 때.
마이크를 내려놓는 중현의 뒤로 문이 열리며 네 멤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Nine의 인트로가 흘러나오는 동안 여유 있는 걸음으로 걸어 나오는 4인조였다.
래퍼와 마찬가지로 검은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다.
멤버들이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Paris!’ 등을 외치며 흥을 돋우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Make some noise!’ 하며 마이크를 내민 서브보컬을 향해 함성이 쏟아졌다.
바로 그때.
전주가 끝날 타이밍에 맞추어 리더가 마이크를 든 손의 손목시계를 톡톡 치며 능글맞게 웃었다.
‘알지?’ 하는 듯한 표정에 수플레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구를 외쳤다.
It’s nine nine nine-
곧이어 시작되는 격한 안무에 함성이 흘러나왔다.
거의 달려가는 속도로 무대 대형이 펼쳐지고, 팔다리가 생동감 있게 쭉쭉 뻗어진다.
도입부밖에 안 지나갔는데도 벌써 땀을 뻘뻘 흘릴 만큼 격한 안무.
그 와중에도 세상에서 제일 신이 난 사람들처럼 웃는 가수들의 표정에 팬들도 방방 뛰며 흥분했다.
‘내가 Nine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다니…!’
바다 너머에서 늘상 직캠이나 음방 영상 등으로만 접하던 Nine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감격해서 눈물이 나올 듯한 기분이었다.
한국인 친구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있던 어느 관객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러는 한편.
‘Nine의 새로운 버전이다!’
또다른 팬들의 눈이 반짝였다.
어워드나 특별한 무대가 있을 때마다 매번 뉴블랙은 편곡이 된 곡을 선보이곤 했다.
팬들 사이에서 ‘나인이랑 마스커레이드는 어느 라이브 버전이 최고존엄이냐’ 하는 토론이 종종 오갈 만큼.
공연장이나 관객 특성에 따라 자주 바뀌는 게 뉴블랙의 곡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선보이고 있는 Nine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첩보 요원 같은 테마로 무대를 꾸며서 그런지, 흥이 나면서도 묘하게 관능적인 안무였다.
007 영화에 나올 법한 분위기라고 할까.
앞서 마스커레이드에서 보여 주었던 전통 복장의 청년들을 21세기 버전으로 바꾼 느낌이었다.
거세게 안무를 추던 뉴블랙의 리더가 답답하다는 듯 넥타이를 헐겁게 푸는 동작에 귀청을 찢을 듯한 환호가 터졌다.
‘미쳤다. 이 무대는 미쳤다.’
KMA 때와는 또 다른 정장 패션으로 펼치는 Nine의 무대에 환호를 보내는 한편.
프랑스의 팬들은 리더에게 주목했다.
실물을 보고 충격적이라고 느낀 비주얼도 비주얼이지만, 무대를 그야말로 주인공처럼 휘젓고 있었다.
‘우주의 무대를 실물로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현실감이 없다.
메인 보컬이 압도적인 성량으로 고음을 내거나, 메인 댄서가 화려한 독무를 선보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포지션상으로는 리드보컬과 리드댄서지만 어느 그룹을 가도 앞자리에 리드 대신 메인을 붙여도 어울릴 실력.
거기에 비주얼까지.
골고루 분배된 능력치가 무대 위에서 하나로 조합되니, 그야말로 시선을 빨아들일 만큼 근사한 퍼포먼스가 탄생했다.
“와아아아아아!”
사이드에 빠져 쪼그려 앉을 때도 팬들을 향해 눈을 찡긋거리는 모습에, 해당 스탠딩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3절에서 메인 댄서가 화려한 군무를 이끌어 낸 후.
‘어…?’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뉴블랙의 리더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외투를 벗어 객석을 향해 던졌다.
그와 함께 셔츠 차림의 멤버들이 모여서 웨이브를 탔다.
마지막의 댄스 브레이크였다.
“와아아아아아아!”
탄성력 있게 점프한 리더가 발을 놀리며 몸을 흔들었다.
검은 넥타이가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고 쓸려 내려가는 동안, 30초간 군무가 이어졌다.
같이 방방 뛰던 사람들도 흥분해서 숨을 거칠게 토해 낼 만큼 격한 안무가 끝난 후.
서로의 어깨에 팔꿈치 등을 올리고 숨을 헐떡이는 멤버들 속에서 리더와 래퍼가 팔을 내밀었다.
조명이 암전되며 어두운 실루엣이 남은 곳에서, 두 남자가 총을 쏘듯이 검지를 탕 튕기며 무대가 끝났다.
그와 함께 14,000여 명의 함성이 공연장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뉴블랙의 팬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공연장에 있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환호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 * *
같은 시각.
엔딩 무대를 기다리면서 대기실에서 몸을 풀고 있던 아이돌 그룹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와…….”
대기실 TV 화면에서 Nine의 무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이지 현실감 없는 미모에 시선이 갔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걸그룹 미스티의 리더가 마시던 생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 이따 엔딩 올라갈 때 쟤네 옆에는 안 설래. 비주 쟤가 나보다 더 예쁘게 생겼어.”
“언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
“이 정도지.”
멤버들이 손을 어마어마하게 크게 펼치며 말했다.
“이~만~큼!”
“야!”
“하하하핫!”
리더가 이를 가는 가운데, 박수를 치며 웃던 미스티의 멤버들이 말을 꺼냈다.
“근데 진짜 투샷은 피해야 되긴 하겠다. 다 얼굴도 요만해 가지고.”
“선우주를 제일 피해야 돼.”
“저 옆에 붙어 있으면 가는 거지. 그냥.”
뉴블랙이 불꽃놀이 활동을 했을 때, 당시 음방에 선배 아이돌로 있었던 미스티였다.
그때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연차가 오르면서 더 미모가 살더니, 이젠 엄청난 수준까지 이르렀다.
전문적인 관리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대에서 보여 주는 실력의 영향이 컸다.
관객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생동감 있는 무대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진짜 잘한다. 얘네.”
콘서트에 참석한 모든 가수들이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생각이었다.
‘완전 오늘의 주인공이네.’
마지막 순서로 등장해서 관객들을 거의 탈진 수준으로 만들 만큼 흥 나는 무대를 선보이는 뉴블랙이었다.
보고 있자면 왜 국내와 해외 가리지 않고 많은 수의 팬들이 뉴블랙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노래도 노래지만,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퍼포먼스였다.
“체력이 대박이네. 저 춤 추면서 라이브로 저게 되나?”
“어우, 난 저거 못해.”
“근데 쟤네는 이런 무대하는 것도 무슨 데뷔하는 신인처럼 하네.”
두 눈에 가득한 독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3년차.
연차만 따지면 이제 신인 티를 벗은 정도지만, 현재 뉴블랙이 거둔 성공은 그 이상이었다.
얼마 전에 거둔 초동 36만 장이라는 역대 1위 기록도 그렇고.
넓게 봐도 TNT, 틴스피릿과 함께 가장 잘 나가는 그룹 중에 하나다.
대중적 인지도를 빼도 사실상 틴스피릿과 투톱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이런 친선 공연에서 이 정도로 힘을 줄 필요는 없을 텐데.
무대에 대한 완벽주의가 느껴졌다.
발 구르는 동작의 소리까지 하나하나 맞추는 집요한 장인정신이 엿보인다고 할까.
“살벌하게 준비해 왔네.”
등을 맞댄 채 춤을 추는 뉴블랙 멤버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분을 느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한 준비였다.
“준비 너무 많이 한 거 아닌가? 어워드 급으로 준비를 해 왔어.”
“VCR 장난 아니긴 하더라. 원래 레몬이 그 정도로 돈이 많은 회사였나…?”
“쟤네들 작년 거 정산만 수십억 받았을걸.”
“…….”
“쟤네 회사는 말할 것도 없지.”
어디서 이런 기획을 뒷받침하는 자금력이 나온 것인지, 단박에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근데 부내 나는 것도 그렇고. 진짜 뭔가… 대표팀 무대 같긴 하다.”
“그러게.”
한복을 개량한 의상을 입고 무대를 펼친 것도 그렇고.
지금 정장을 입고 펼치는 Nine 무대도 어딘가 모르게 그 연장선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기획자라면 반드시 모델이나 홍보 대사로 초청하고 싶을 정도.
‘진짜 멋있게 하네.’
그러는 한편.
모든 가수들이 와 하며 감탄하는 동안, 멍하니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흐어…….”
대기실에 모인 험상궂은 9인조가 탄식했다.
‘졌네.’
무대에 이기고 지는 게 어디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막 비주가 휠릴릴리 날아다니고 선우주가 얼굴 쓰고 막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는데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들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이번엔 이긴 줄 알았는데.”
“근데 저 스케줄에 어떻게 연습이 저게 되지? 콘서트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몰라. 그냥 진 거지, 뭐.”
이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납득하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그저 상대가 뉴블랙일 뿐.
‘외계인 같은 놈들….’
‘저거 이기려고 들었다가는 우리가 과로사로 먼저 간다.’
‘대신에 우리가 더 장수할 거니까.’
실시간으로 수명을 갈아 넣은 무대를 보여 주는 뉴블랙을 보며 박수를 쳤다.
“잘하긴 진짜 잘해.”
“이따가 내려오면 부채 춤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진짜 신기하다. 이렇게 손으로….”
빠악!
“아아악!”
“엇. 아닌데. 이게 아닌데.”
비주를 따라 하며 손을 휘두르다가 멤버의 머리통을 때린 LB였다.
당사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가운데, 한조가 냉엄한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태워라.”
“안 돼! 살려 주세효-! 흐캭캭캭! 흐꺅!”
멤버들이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TV 속에서 Nine의 무대를 끝낸 뉴블랙이 프랑스의 관객들에게 멘트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을 하기 전의 인사였다.
근처에서 시계를 흘깃 보던 박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올라갈 준비하자. 뉴블랙 끝나면 엔딩 무대야.”
“잠시만요. 팀장님. 이것까지 보고 나서요.”
TV에 나오는 뉴블랙 리더의 멘트를 유심히 듣는 한조였다.
‘몇 개 기억해 둬야지.’
나이는 동갑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어른스럽기도 하고.
‘흐하하핫! 쌍쌍바 9대 1로 분리 성공! 지호야, 여기 1 가져가렴.’
…아무튼 순발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라든가, 그룹을 이끄는 데 여러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가.
우주 뒤에 충성스럽게 서 있던 졸개들을 부럽다는 듯 보던 한조가 고개를 돌렸다.
“…….”
뚱하고 하찮은 여덟 얼굴이 그를 마주했다.
“왜. 뭐. 왜.”
“아니다.”
싱긋 웃은 한조가 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를 따라 TV를 보면 스트릿 보이즈의 멤버들도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단장님 완전 독기 품고 나왔던데.”
“우주선인 줄.”
“진짜 같은 그룹 멤버가 아니어서 다행이지.”
상대 팀의 리더는 포지션 뺏기의 대가였다.
호시탐탐 메인의 자리를 노린다고 할까.
자신들이 리혁이나 비주였으면, 매번 무대 할 때마다 섬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잘하게 된 건가?’
눈 밑에 점을 찍은 미친 사람이 으아아 하며 칼을 들고 쫓아오면 누구나 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깐 쉬고 싶어도, 그 쉬는 순간에도 으아아 하며 달려오는 거니까.
‘느아악! 꺼져요!’ 하며 달리는 리혁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환상적인 팀워크를 이끌어 내는 상대 팀의 리더를 존경스럽게 바라보던 스트릿 보이즈가 고개를 돌렸다.
“…….”
이번에는 리더가 삐딱한 표정으로 답했다.
“왜. 뭐. 왜.”
“뭐, 암것도 아니에유.”
‘다른 집 리더는 저렇게 잘하는데’하는 눈빛과 ‘근데 우린 멤버들이 너희야’하는 시선이 오갈 때.
“…….”
“…….”
이내 흐핫! 하면서 정겨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 * *
엔딩 공연이 끝난 후.
흩날리는 꽃잎과 함께 무대 인사가 이어졌다.
“Thank you!”
동생들과 무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손을 맞잡고 꾸벅 인사를 올렸다.
스탠딩석에서 방방 뛰던 두 명이 ‘We love you!’ 하며 외쳤다.
“고마워요!”
스탭에게 건네받은 달봉이를 흔들자, 우리에게 화답하듯이 달봉이들이 흔들렸다.
누가 보면 우리 단독 콘서트인 줄 알 정도로 수가 많다.
동생들에게 속삭였다.
“근데 다들 어디서 구한 거지? 해외에도 파나?”
“직구하신 거 아닐까여.”
객석 중간에 수줍게 왕봉이를 꺼내든 프랑스 팬의 모습에 감탄사가 나왔다.
“저게 통관이 되는구나.”
“우리도 저번에 공항에서 왕봉이 압수당할 뻔했잖아요. 이 자이언트 스틱은 뭐냐고.”
“어, 저기도 왕봉이 하나 더 있어요.”
“진짜네.”
대표님이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 법한 광경이었다.
그때, 9인조 그룹이 다가왔다.
“헤이 헤이!”
“고생했어~!”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스보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웃었다.
객석에서 손을 흔드는 양쪽 팬들에게 우리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
그 속에서 스보의 응원봉을 보고 신기함을 느꼈다.
민트색 망치.
영화 속 주인공이 비밀 상자를 꺼내기 위해 차고의 콘크리트 바닥을 부술 때 쓰는 망치 같다.
“보이느냐, 우리의 스트릿 해머가.”
발광력이 좋다며 자랑하는 이들에게 중현이가 달봉이를 내밀었다.
탓.
리미터를 해제하자 ‘으악’ 하며 로켓단처럼 퇴치당하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여기저기서 즐거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객석을 빠져나가는 관객들에게 같이 인사를 마치곤, 대기실로 향하는 길에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양쪽 멤버들의 눈에 콘서트의 흥분이 가득했다.
“진짜 잘 돼서 좋다. 너희도 우리도.”
한조의 말에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처음 데뷔했을 때만 해도, 이런 그림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은데. 신기하기도 하고.”
“진짜 상상도 못 했지.”
“디스를 한 사이에 이렇게 친해질 거라고는.”
“야야야야-.”
“‘썸씽이 별거냐…, 선우주는 천재 작곡가….’”
“야아! 그거 내가 원해서….”
과거의 흑역사를 거론하는 내 말에 다급하게 말을 막는 한조였다.
당황해서 얼굴이 벌게진 이를 보며 웃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다는 건, 현재 우리도 스트릿 보이즈도 잘됐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들끼리 신이 나서 ‘예이!’ 하고 있는 민초단의 동생들을 보다가 한조에게 시선이 갔다.
불현듯 폴 로랑의 말이 떠올랐다.
-정상에 오르면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나누기도 쉽지 않고.
그런 말을 생각하며 조용히 웃을 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우리가 대기실 앞에서 멈춰 섰다.
“잘 있어요! 단장님!”
“모두 잘 지내요! 앨범 준비 잘하고!”
“대박 나세여! 대박!”
“대박! 대박!”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보고 싶을 거예요!”
“우리도 엄청!”
“이제 한국 가면 언제 보냐~!”
“그러니까 말이야!”
아쉬움 가득한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 *
몇 시간 후.
“…….”
“…….”
비행기 좌석에 사이좋게 붙어 앉은 뉴블랙과 스트릿 보이즈가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망할.’
‘이거 12시간 어떻게 버티지.’
‘나는 중현이 형이다. 아무렇지 않다. 민망하지 않다.’
돌아가는 비행기가 같다는 사실을 모른 채 찐하게 인사를 나눈 두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