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26화
“그래서 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어요. ‘답변이 충분했나요?’ 이러니까 앉으시는 거 있죠.”
“오오오!”
“그 다음 기자 분도…….”
쇼케이스장으로 향하는 차 안.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기자회견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비주였다.
대충 요약하자면 비주가 17대 1로 싸우는 느낌으로 Q&A 배틀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여기서 17은 당연히 우리 애였다.
“형한테 배운 스킬들을 많이 써먹은 것 같아요.”
“그래?”
흐뭇하게 웃는 내게 비주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네! 불리할 때 부드럽게 말꼬리 잡는 스킬, 웃으면서 멕이는 방법, 논점 회피하기, 아닌 척하면서 상대의 허물 짚어내기….”
“…….”
“너무 유용했어요!”
매니저 형들과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는 가운데, 활짝 웃는 비주를 바라보며 말을 삼켰다.
겉보기로는 환히 웃는 미소년 같은데.
왜 오늘따라 악당 유망주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아니, 비주가 대체 누굴 보고 그런 스킬을….”
“유.”
중현이가 나를 가리키며 푸근하게 웃었다.
“유 means you.”
“중현아, 설명해 주지 알아도 안단다. 형은 너처럼 1교시 영어 시간에 졸지 않았어.”
“그래!”
리혁이가 손뼉을 치며 날 가리켰다.
“저거 봐! 웃으면서 돌려 까는 거.”
“사실, 1교시에 졸 수도 없었지. 자퇴를 하는 바람에….”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자 지호가 소리쳤다.
“저거 봐! 저거 봐여! 어두운 역사를 꺼내며 말 못하게 막기!”
“…….”
“제가 아는데, 대충 우리가 안 좋은 거 배웠다 싶으면 무조건 우주 형한테서 유래한 거예여.”
지호네 큰누나의 표정을 따라하며 눈을 흘기자, 막내가 허억 하면서 쭈그러들었다.
다 같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동안 리혁이가 비주에게 잘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수고했어요. 형.”
“나 잘했지?”
“근데 뭐 원래 형이야 잘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잘할 거 예상하고 있었어요.”
“흐힛.”
비주가 눈을 빛내며 좋아할 때.
옆에서 핸드폰을 꼼지락거리던 막내가 뭔가의 재생버튼을 눌렀다. 딱딱한 로봇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리혁어(語) 해석: 비주 형 대처 능력 실화냐. 이거 참 엄청나게 놀랍고 나는 형이 자랑스럽다!]
“흐하하핫!”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리혁이의 얼굴이 벌게졌다.
“야!”
“텍스트 읽어 주는 어플인데, 오늘은 리혁이 형의 본심을 통역해 주는 컨셉이에여.”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으악!”
타이핑 하려는 막내의 멱살을 짤짤 흔들어 대는 리혁이를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약간의 소란이 지난 후.
조수석에 앉아있던 민기 형이 농담을 던졌다.
“기자들이 바보네. 우리 팀 실세가 비주인 것도 모르고.”
“…….”
“반응이 왜들 그래?”
갑자기 차 안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민기 형이 ‘얘네 왜 이러지’ 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내 눈에 동생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제가 실세였대요!”
실세에 등극했다며 좋아하는 졸개1과.
“김비주가 실세였어…?”
“비주 형이 실세였어요?”
“실세…?”
눈을 깜빡이는 동생들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원석이 형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너희들은 실세가 누구라고 생각했는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으음, 저 아니었나요? 제가 곰 젤리로 모두를 길들이고 있잖아요.”
간식거리를 주니까 실세라고 주장하는 졸개2.
“이건 아무리 봐도 나죠. 이 팀에서 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뒤에서도 돌 맞을 소리를 앞에서 뻔뻔하게 하며 실세라고 주장하는 불순분자1.
“제 얼굴을 봐여, 형들. 앞에서 바보 같은데 뒤에서는 흑막인 그런 상이잖아여. 실세는 당연히 저 아니에여?”
“아니야.”
“그렇게 매정하게 얘기할 건 없잖아여.”
입을 비죽이며 중현이에게 손을 내미는 지호였다.
“주세요, 해야지.”
“젤리 주세요.”
“옳지.”
헤헤 하며 젤리를 받아먹는 지호의 모습에 중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세!’ 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금부터 무제한 토론을 신청합니다. 토론 주제는 뉴블랙의 실세는 과연 누구인가예요.”
“산에서 곰을 만났어. 그럼 누구 얼굴부터 볼 거야?”
“저는 비주 형한테 작별 인사 할 거예여. 달리기가 제일 느리잖아여.”
“지호야…….”
“아니지. 희생하려면 왕지호 너를 던져 줘야지. 비주 형은 밥을 만들 줄 알잖아.”
“와, 곰이 잡아먹으려다가 에반데 하면서 거를 인성이네여.”
“이게 다 저 사람한테 배운 거야.”
우정이 파괴되고, 그룹이 파괴되고.
혼탁한 실세 토론 현장 속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라이브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실세는 나다!’, ‘그럼 실세의 실세는 나다!’ 하는 광경을 보며 훈훈하게 웃었다.
운전 중인 원석이 형에게 몸을 돌렸다.
“원석이 형.”
“응?”
“왜 쟤네들은 제가 허수아비라고 생각을 하는 걸까요?”
“……그만큼 네가 그룹 분위기를 편하게 해 주고 있다는 거지.”
민기 형도 끼어들었다.
“맞아. 이렇게 맏형이자 리더가 편하게 대해 주는 거니까, 멤버들도 그룹 분위기도 밝고.”
“맞아. 나도 같은 의견이야.”
“…….”
“…….”
두 매니저가 눈동자를 슥 돌렸다.
“위로가 좀 됐니?”
“아뇨.”
“그래. 그럼 나는 계속 운전할게.”
원석이 형이 운전에 집중하는 동안 민기 형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주야.”
“네?”
“허수아비면 어때. 잘생긴 허수아비잖아.”
내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쇼케이스장에 가서 리사조아라고 소문 낼 거예요.”
“아아! 내가 미안해!”
* * *
광진구의 한 라이브홀.
[ATEN Fan 쇼케이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는 곳 아래로 수많은 화환이 늘어서 있었다.
“오오오.”
PBS 방송국 사장님 명의로 보낸 화환도 있고.
미스터 프로듀서 출연진의 단골 식당 사장님들부터 시작해서 배우, 개그맨, 가수, 방송인들까지.
정말 각계각층에서 축하의 메시지를 담은 화환을 보냈다.
“대박이다. 국회의원도 있어여. 아, 아니네. 국화 의원이래여. 추기석 선배님한테 침 맞으러 오라고.”
“이거 이견우 선배님 거 맞죠? 신기하네요.”
“우와아, 4대 기획사에서 대표님들 명의로 하나씩 다 보냈어요.”
미스터 프로듀서란 국민 예능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거의 정원을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화환들을 둘러볼 때.
우리의 걸음이 한 지점에 멈췄다.
축하 화환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에 전시되어 있는 한 화환이었다.
“밖에서부터 볼 필요가 없었네.”
“은근 기분 좋은데요? 우리 화환이 제일 보기 좋은데 있었네.”
“제일 커서 그런 거 아닐까여?”
지호의 말에 화환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져온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커다란 화환이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냐, 그렇게 큰 건 아니야. 이렇게 한 발짝 물러나면.”
“…….”
“두 발짝.”
“…….”
다섯 발자국쯤 물러나야 전신이 보이는 화환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1인당 하나씩 길게 적은 ‘대대손손 번창하세요’ 하는 문구의 띠가 다섯 갈래로 나뉘어 있다.
사장님한테 무조건 크고! 확실한 놈으로 보내달라고 했더니 거의 꽃나무를 베어오신 듯하다고 할까.
질린다는 듯한 눈빛으로 화환을 바라보던 민기 형이 말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사진 찍는 핫 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그러네요.”
하핫 웃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10미터 정도 물러난 원석이 형이 화환 앞에서 5인조 인증샷을 찍어 준 후.
우리는 가수들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문을 발칵 열고 들어가자, 혼잡한 내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전담하는 스탭들을 비롯해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대기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고.
그 두 배는 될 듯한 숫자의 스탭들이 복도와 방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거기에 미스터 프로듀서의 제작진들까지.
큰 공연을 앞두고 느껴지는 특유의 대기실 냄새에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아이고오!”
소파에 앉아 있던 에이텐의 맏형, 김의지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아그들아! 뉴블랙 왔다!”
“쌤들 왔어요?”
“와아아아아! 우리 쌤들 오셨네!”
에이텐 멤버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연습실이나 녹음실에서 꾀죄죄하게만 있던 이들이 아이돌 같은 모습으로 있으니 낯설었다.
모범주가 씩 웃으며 물었다.
“어때? 우리 연예인 같지.”
“네, 다들 진짜 신인 아이돌 같으세요.”
“하긴 우리가 좀 동안이라….”
“옷이.”
“야! 너무하네!”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하는 멤버들이었다.
퍼억! 퍼억!
“아이고! 우리 우주 오늘따라 너무 귀엽고 예쁘네!”
“컥!”
“이리 와서 안아 보자!”
꾸와아아악!
너무 반갑다면서 나를 꽈악 안아 주고 쿠당탕탕 두드려 주는 에이텐의 멤버들이었다.
키득대는 아저씨들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녹음할 때, 힘들게 해 드릴 걸 그랬어요.”
“하지만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는 거!”
손가락을 까딱이며 웃는 이들의 모습에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끝이긴 했다.
과자나 먹을거리가 가득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에이텐 멤버들과 미소를 교환했다.
추기석이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말했다.
“진짜 이런 날이 오긴 왔네. 우리가 마침내 데뷔를 하는 날이.”
“나는 아직도 실감이 안 나. 기자회견 하고 돌아왔는데도 현실감이 없었다니까.”
“두 달 전에만 해도 농담만 같았는데.”
마지막 말에 우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농담 같긴 했지.
시청자들이 ‘하하하!’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예? 저희가 연습을 시키라고요?’ 하고 있었으니까.
남도훈이 말했다.
“진짜 너희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지.”
“맞아요.”
“물론, 너희는 아니라… 아, 그래! 그렇지.”
우리에게 말려든 남도훈이 근육을 꿈틀대며 민망해할 때.
설렘과 기쁨으로 웃고 있는 에이텐 멤버들 속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모델 홍석에게 시선이 갔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홍석 선배님은 기분이 어떠세요?”
“좋지.”
홍석이 배시시 웃으며 머리칼을 넘겼다.
이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하는 미소를 짓는 건 처음 보는 터라 신기했다.
“내 꿈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기도 하고. 이렇게 아이돌로 데뷔한다고 하니까…….”
상대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좋네. 고마워.”
“아니에요.”
“나중에 다들 시간 될 때, 꼭 연락해. 내가 비싼 고기 사 줄게.”
진심 가득한 감사인사에 우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네가 고생했네’ 하면서 좋은 말들을 주고받고 있을 때.
“여기는 우리 앨범.”
“오오.”
“이건 포토카드인데 종류별로 일단 하나씩 준비하긴 했어.”
에이텐의 데뷔 앨범을 건네받았다.
전반적으로 구성도 알차고, 디자인도 엄청나게 사고 싶게 뽑아 놨다.
그걸 보고 있자니 진짜 이분들이 데뷔를 하긴 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에이텐의 멤버들이 ‘To 뉴블랙’ 하는 사인을 써 주었다.
그런데….
달달달달.
사인을 해 주는 손들이 미묘하게 떨려 나왔다.
대범한 척 앉아 있긴 하지만 다들 엄청 떨리는 듯하기에 웃으며 물었다.
“많이 떨리세요?”
“떨리지.”
발라드 가수 안재희가 말했다.
“노래만 부르면 모르겠는데 춤까지 춘다고 하니까 오금이 저리는 거 같아. 밤에 한숨을 못 잤어.”
“나도. 오늘 공연 생각하다가 정신 차려 보니까 해가 떠 있었다니까.”
“난 밤 샜어.”
긴장이 안 될 리가 없지.
오늘 팬 쇼케이스에서 참석하는 인원이 1500여 명이라고 했으니까.
여태까지의 연습실 트레이닝이나 MV 촬영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다.
그때야 실수를 한두 번 해도 ‘OK! 다시 갑시다!’ 하는 게 됐지만, 오늘은 진짜 관객들 앞에서의 실전이다.
공연을 앞두고 떨리는 건 어느 가수에게나 당연한 일이다.
“저희도 첫 데뷔 쇼케이스할 때, 엄청 떨었어요.”
“밤 샜죠.”
“밤은 리혁이 형만 샜지만여.”
“…….”
누군가의 얼굴이 벌게진 가운데 키득거리는 에이텐의 멤버들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선배님들께서 엄청 긴장하셨을 것 같아서, 저희가 긴장을 풀어 줄 방법을 마련해 왔어요.”
“…….”
“좋은 거예요. 좋은 거.”
“중현이가 막 뒷목 분질러 버리고 그런 건 아니지? 엄청 아픈 곳만 주물주물하고.”
“에이. 그럴 리가요.”
리스트에서 중현이의 강제 명상법은 지우기로 결정했다.
“…신체적으로 몸을 이완시키는 방법 말고, 심리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것들이에요.”
“오오.”
“두 가지를 준비했는데요. 일단 저희 메인보컬이 건네주는 마음의 편지입니다!”
에코백에서 편지 봉투 6개를 꺼내는 리혁이의 모습에 에이텐 멤버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들이 편지를 받으려고 손을 뻗을 때.
리혁이가 ‘아’ 하면서 손을 회수했다.
“……왜?”
“실수했어요. 이건 긴장 적게 하셨을 때 버전이라서.”
가방을 뒤적이던 리혁이가 편지 버전2를 꺼내자 상대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많이 긴장하셨을 때 읽을 용도로 마련한 편지예요.”
“리혁이는 편지도 계획적으로 쓰는구나.”
“엄청 철저하다니까. 집에 막 재난 대비하는 가방 그런 것도 있는 거 아냐?”
있다. 저 혼자만 살겠다고 1인용으로.
우리 메인보컬이 헛기침을 하며 새침하게 편지를 주었다.
“여기 편지 받으세요.”
“고마워. 리혁아.”
이따가 읽겠다며 따스하게 웃는 멤버들이었다.
그때, 뉴블랙TV한테 편지를 받았다며 인증샷을 열심히 찍던 추기석 씨가 물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 뭐야?”
“이게 핵심인데요.”
우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도 멘탈이 상당히 취약한 편이거든요.”
“거의 설탕유리에여.”
“하도 긴장을 많이 해서.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긴장을 풀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을 마련했어요.”
“오오오오.”
“바로 중현이 형의 똥촉을 이용한 방법이에여!”
초콜릿을 먹고 있던 홍석이 멈칫했다.
우리가 말을 이었다.
“중현이의 촉에 대해서 아시죠?”
“압니다! 알아요!”
추기석 씨가 중현이가 얼마나 감이 안 좋은지, 그 유구한 역사에 대해서 3줄 요약을 해 주었다.
“오오오오. 그런 게 있구나.”
“중현이가 진짜 똥촉이네.”
“감이 똥이네. 똥이야.”
홍석이 초콜릿 바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때, 김의지가 이해간다는 듯 말했다.
“확실히 징크스 관리하는 게 진짜 중요하긴 하지. 축구에서도 그런 게 많거든. 잔디를 왼발부터 밟아야 한다거나.”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한다는 건데?”
호기심을 가지고 묻는 이들에게 우리가 쇼핑백에서 두꺼운 백과사전 같은 책을 꺼냈다.
“바로 이거예요.”
“이건…?”
“저희가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책인데요. 이른바 ‘중현이와 마법의 책’이에요.”
마법의 소라고동님에서 유래한 물건이었다.
검은 표지에 ‘JH’s Magic Book’이라고 된 책을 에이텐 멤버들이 살폈다.
“이거 그거구나. 도움 되는 글귀 같은 게 적혀 있어서, 아무 페이지나 쫙 펼치고 보는 거.”
“맞아요.”
중현이가 여기서 그날의 이벤트를 앞두고 책을 촤라락 펼치며, 그날의 운세를 점치는 방식이었다.
“자, 오늘 여러분의 쇼케이스 운세를 점쳐 드릴게여~”
“오오오오!”
“잠시만! 잠시만! 우리 마음의 준비를 좀 하고.”
예능인들답게 촬영 카메라 앞에서 짐짓 심호흡을 하는 시늉을 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맏형 김의지의 주도 아래 마음을 정화하는 호흡을 실시한 후.
눈을 감은 중현이가 ‘젤리젤리 마법젤리’를 암송하면서 책을 촤라라락 펼쳤다.
그러곤 한 페이지를 딱 짚었다.
“……?”
눈을 뜬 중현이와 나머지 10명의 시선이 책 문구에 향했다.
『 때로는 다른 날을 기약해야 할 때도 있다. - 로켓단 』
우리가 ‘대박!’ 하면서 기뻐하는 가운데, 에이텐 멤버들이 ‘안 돼!’ 하면서 책을 붙잡았다.
“아니! 왜 이런 말이 나온 거야.”
“선배님.”
“다른 날을 기약하라니….”
“선배님들.”
“응?”
우리를 바라보는 여섯 쌍의 눈동자를 향해 말했다.
“똥촉이라고 했잖아요.”
“아.”
홍석이 손에 쥔 초콜릿 바를 집어던졌다.
그 동안 우리가 멤버들에게 책의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이게 정방향으로 보면 안 되고, 해석을 볼 때는 역방향을 보셔야 돼요.”
“무슨 타로카드 하니?”
“그러니까 이 책을 돌려보시면… 자! 여기 작은 문구가 보이죠?”
4포인트 정도 사이즈로 글귀가 적혀 있다.
『 그렇다. 오늘이 날이다. - 선우주(1993~) 』
에이텐 멤버들의 눈에 기쁨이 가득 찼다.
“오오오오!”
“대박 징조구만. 좋네에~!”
“길조구나. 길조야.”
물론 진짜로 믿는 건 아닌 듯했지만 나름대로 긴장을 덜어 내는 멤버들이었다.
우리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일본 다녀오고 나서 강제 휴식기를 부여받았을 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만든 책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핫해서 기분 좋았다.
그렇게 웃고 떠들 때, 남도훈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이걸로 한 번 운세 같은 거 점쳐 볼 수 있을까?”
“그럼요. 중현아.”
“네.”
중현이가 눈을 감고 ‘젤리젤리’ 하며 책을 촥 펼쳤다.
[그곳이 당신의 영원한 보금자리이다]하는 훈훈한 문구에 남도훈 씨가 헤벌쭉 웃을 때.
우리가 책을 돌려서 해석을 보여 주었다.
“선배님.”
“아, 역방향.”
『 당장 탈주각을 재세여 - 왕지호(1998~) 』
남도훈 씨가 ‘?’ 하면서 눈을 깜빡이는 가운데, 자리에 있던 모든 기혼 남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진정으로 마법의 책이다!”
“세상에, 마법의 책이다!”
“아니야. 이건 예언의 서야!”
현실을 부정하던 남도훈 씨가 다시 점을 요청했다.
중현이가 다시 한번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다] 하는 문구를 보여 주었다.
밑에서 [전혀 아님. 받아들여라] 하는 해석과 함께.
맏형 김의지와 발라드 가수 안재희가 세상에서 제일 신난 사람처럼 배를 잡고 키득대는 가운데.
마법의 책을 덮으며 내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이래 놓고…?”
“어, 일단 결혼 축하드립니다. 선배님.”
울상이 된 남도훈에게 나중에 축가라도 좀 불러 주겠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선 손뼉을 치며 내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제 2시간 뒤, 6시면 쇼케이스가 시작을 하잖아요?”
“맞습니다.”
“실수할까봐 떨고 계신 거야 알고 있지만, 조금 걱정을 덜고 무대 위로 올라가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까지 연습을 했는데 실수를 한다? 그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말없이 지켜보는 이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들은 정말 두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또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요. 정말 고생 많으셨고, 그렇게 고생을 한 보람을 이제 무대에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
“두 달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잘하실 수 있어요.”
여섯 멤버들이 기특하다는 듯한 눈빛과 함께 한편으론 의지가 된다는 듯한 미소를 보내왔다.
김의지가 농을 던졌다.
“이런 거 보면 우주 네가 괜히 리더 먹은 게 아니구나.”
“하핫.”
“물론 아무 힘도 없지만…….”
“오늘 실수하시면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현미경 가지고 무대를 바라볼 거라는 내 경고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에이텐의 성공적인 데뷔를 기원하며 화이팅해 볼까요?”
“하나 둘 셋!”
“화이팅!”
떠들썩한 웃음과 함께 성공적인 데뷔를 기원했다.
* * *
같은 시각.
입장을 두 시간가량 남겨두고 티켓을 수령한 관객들이 저마다 줄을 서고 있을 때.
관광버스가 도착하고 관계자용 출입구가 열리면서 관객들이 술렁였다.
“어? 저 사람들은 뭐지?”
“관계자인 것 같은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끼어 있는데. 그 엄마한테 편지 쓴 사람 이름 뭐였지?”
“아…!”
정체 분명한 남자들이 입장하는 광경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