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33화
“미안하게 됐어.”
-에이, 뭘~ 행님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죠. 쪽수가 차이 나는 걸 어떡해요. 저희 중에 하나가 뒤질 수도 없고.
“그, 그건 그렇지.”
영상통화 화면 너머로 순하게 생긴 미소년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걍 재미난 일 하나 생겼다 치고 넘기려는 중이에요.
그때, 휘연과 내 통화에 소란스러운 목소리들이 끼어들었다.
-시발! 공동 1위 할 수 있었는데, 한 장 차이라니! 한 장 차이라니!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 걍 한 놈을 없애자!
-엎어라 뒤집어라~!
데덴찌로 희생할 제물을 고르는 목소리들의 향연에 휘연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만요. 행님.
‘닥쳐’, ‘싫은데’ 같은 고성이 오간 후에 휘연이 숙소 방으로 옮겨와 통화를 마저 이었다.
그러곤 방긋 웃었다.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넘기고 있슴다. 보시다시피.
“그냥 다음부터는 서로 한 장씩 사는 걸로 하자.”
-예…….
휘연이 아련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넘기려고 한다는 말과 다르게 살짝 의기소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공감 가는 기분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번에 정규 앨범 엄청 팔릴 것 같더라. 미리 축하해.”
이번 틴스피릿의 정규 3집은 역대 초동 1위를 달성할 것이 유력해 보였다.
대개 초동 판매량이란 것은 실제로 까 봐야 알 수 있긴 하지만, 우리와는 추이가 조금 달랐다.
최소 40만 장에서 50만 장을 팔 거라는 예측을 들었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화력에 그야말로 감탄만 나왔다.
-감사합니다. 행님. 노래는 들어보셨어요?
“들어봤지, Demonic. 나오자마자 뮤비도 보고, 노래도 다운 받고.”
-어떠세요?
상대방의 눈빛이 반짝였다.
“퍼포먼스 진짜 화려하더라. 이미지 변신도 잘된 것 같고.”
-크으.
“너희 팬분들이 진짜 좋아할 것 같던데.”
자칭 타락 천사가 개빡치는 컨셉이라고 했던가.
뮤비 속에서 붉은 컬러 렌즈를 낀 틴스피릿 멤버들이 매혹적인 악마처럼 춤을 추는 그런 내용이었다.
날개 잃은 천사들이 불의 악마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그간의 청량하기만 한 컨셉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기획인 듯한데, 퀄리티가 몹시 좋았다.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곡은 아니지만 내가 틴스피릿 팬이라면 엄청 좋아할 만한 그런 노래였다.
휘연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행님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조금 안심이 되네요. 차트야 팬분들 덕에 존나게 선방하긴 했지만….
“그래?”
-저희가 일간 4위입니다. 행님.
“오오오.”
-뭐, 곧 있으면 존나게 떨어질 것 같긴 한데. 꼭대기에서 디지는 거랑 밑에서 디지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흐뭇한 미소를 짓는 휘연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곤 졸고 있는 동생들 너머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안개 낀 영종대교 너머로 인천공항이 곧 나타날 거라는 표지판이 지나갔다.
-근데 행님들은 어디 가세요?
“이번에 우리 뉴욕 스케줄.”
-아, K팝 콘서트.
“그것도 있고. 노스탤지어가 이번에 미국에서 뮤지컬로 나오는데. OST 중에 Thousand Dreams 뮤지컬 버전으로 녹음해야 되거든.”
-와우.
눈을 크게 뜨며 감탄하던 휘연이 농담을 던졌다.
-무슨 브로드웨이 뮤지컬, 뭐 그런 거예요?
“맞아. 브로드웨이.”
-하긴 브로드웨이가… 예? 행님? 브로드웨이요? 레알 브로드웨이? 고양이들 춤추고? 오페라 유령 나오고?
“응.”
상대방의 눈이 더 휘둥그레 떠졌다.
그때, 비명 같은 소리를 낸 휘연 때문에 틴스피릿 멤버들이 방에 들이닥쳤다.
-시발!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아니면 뒤진다, 진짜!
휘연이 머리를 감싸쥐는 게 보였다.
-형이라고, 이 새끼들아아…….
그러고는 틴스피릿 멤버들에게 방금 전에 내가 했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녀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브로드웨이? 레알 브로드웨이? 고양이들 춤추고, 오페라에 유령 나오고? 마녀 빗자루 타고?
-진짜라니까.
-와…….
그 정도로 대단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아랫집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모양이었다.
그냥 녹음 하나 하러 가는 건데.
해외 시상식에 상이라도 받으러 가는 사람처럼 바라봤다.
머쓱하게 웃는 나에게 반짝이는 눈들이 돌아왔다.
-다녀와서 썰 좀 부탁드립니다. 행님.
-와, 우리 이웃집에서 사는 사람이 그런 데랑 일하고 있었어.
-대박이네. 진짜 우리랑 다르구나. 어른이시네요. 행님.
어른 같다는 칭찬에 내가 고맙다며 웃어 주었다.
-야야! 다시 꺼져! 얘기 좀 마저 하게.
-맨날 꺼지래. 사람 존나 응원봉 취급해.
리더에게 눈을 흘기던 미소년들이 화사한 미소로 90도 인사를 올렸다.
-행님, 잘 다녀오세요!
“너희도 잘 지내.”
방을 나가는 멤버들과 방의 주인이 서로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훈훈하게 인사를 한 후.
나도 슬슬 통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동생들처럼 부족한 잠을 채우려고 하는데….
-저기….
얘가 안 끊는다.
밍기적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을 보던 내가 눈매를 좁혔다.
꼭 고민이라도 상담할 것 같은 표정에 바로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휘연아.”
-네, 행님.
“이번 일 때문에 긴장돼서 그래?”
-네…….
휘연이 한숨을 쉬었다.
-개쫄려서 와이앱을 못하겠어요. 한 장 차이 이거 가지고 팬들이 욕하면 어떡하죠?
“그런 걸로 욕은 안 하실걸.”
-그것도 그건데 좀 많이 미안하거든요. 이걸… 어떤 식으로 언급을 해야 될지도 고민되고.
아무래도 이런 기묘한 사건은 처음 겪어봐서 고민이 되는 듯했다.
-아무래도 행님들이 저보다는 이런 쪽으로 더 경험이 많고 늙, 아니 노련하시니까.
“늙?”
-늘 존경하고 있다는 말이죠.
“글쎄, 차라리 멤버들이랑 얘기해 보는 건 어때?”
-보시면 알겠지만….
말끝을 흐린 휘연이 씁쓸하게 말했다.
-구구단도 틀리는 놈들이에요. 하여튼 사람 새끼가 없어….
마지막 말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곧바로 몇 가지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알려 주었다.
* * *
지이잉.
틴스피릿 팬들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깜짝 라이브 시작]
여러부운..ㅠㅠㅠ
팬들이 빠르게 알림을 눌렀다.
이윽고 Y앱 라이브 화면에 숙소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여섯 미소년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안녕하세요….
의기소침해서 눈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의 미소년들.
머리에는 하얀 토끼귀 머리띠를 쓰고 있었다.
-앨범 때문에 혹시 여러분이 화 나셨을까 봐… 이거라도 보고 좀 화를 풀었으면 해서.
틴스피릿 멤버들이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우리가 한 명 더 많아서….
-다음부터는 한 장씩만 살게요. 한 장씩.
어딘가 귀여우면서도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는 한편.
‘미안, 내가 존나 미안….’
왠지 모르게 이런 느낌으로 들리는 듯한 대사였지만 팬들은 꺄아 소리를 내며 캡처를 누를 뿐이었다.
‘우리 애들 너무 순수하다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다만 윗집 사람들이 봤다면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만한 생각이었다.
* * *
뉴욕까지 가는 길은 평소와 같았다.
“으아아아악!”
연예부 기자들이 떠내려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우리가 인천공항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이 급류에 휩싸인 연어 떼처럼 떠밀려 갔다.
공항 측에서 나온 사설 경호업체 직원들도 떠내려가고.
“자기야!”
구경을 나온 어느 커플도 견우와 직녀 실사판을 찍었다.
홍콩 갈 때는 그래도 사람이 적은 시간대였는데, 뉴욕 가는 비행기 시간대가 사람이 한창 붐빌 때였다.
“우주 씨! 우주 씨이이익!”
“잠시 지나가겠습니…아아악!”
정말이지 미프 아이돌 특집의 인기를 실감했다.
데뷔 쇼케이스가 나온 6회가 30%를 찍고 난 후, 7회가 다시 20%대로 돌아갔다고 그랬던가.
떨어진 수치조차도 요즘 TV에서 보기 힘든 시청률.
그런 만큼 내 몸을 건사하기 힘들 만큼 벅찬 공항 여정이었다.
“흐아아아….”
비행기 좌석에 앉은 막내가 땀을 훔치며 말했다.
“저 이따가 옷 갈아입어야 할 것 같아여. 형.”
“땀 났어?”
“넹?”
“나도.”
막내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다 땀에 흠뻑 절어 있었다.
리혁이는 아예 난파당해 무인도에 표류한 사람처럼 옷이 젖어 있었다.
죽은 건 아닌가 싶어서 코에 손을 대 보니 숨은 잘 쉬고 있다.
“휴.”
우리 셋째가 스포이트 한 방울 정도의 땀을 훔칠 정도로 힘들었던 출국길이었다.
그나마 좌석이 1등석이었기에 편하게 가긴 했다.
비행이야 늘 불안하긴 하지만, 확실히 좋은 좌석에 앉으니 불안해도 좋게 불안하다고 할까.
그 덕에 14시간 동안 푹 자고 일어나니 비가 내리는 JFK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저번에 오고 또 언제 올까 싶었는데, 벌써 두 번째네요.”
“우리 몇 달 만에 오는 거지? 3개월 됐나?”
“아마 그쯤 됐을걸요.”
시간상으로는 3개월 만인데 한 1년 만에 온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와본 곳이다 보니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덜하다. 몇 가지 요령도 붙었고.
리혁이가 지호를 불렀다.
“왕지호, 너 이번에 입국 심사할 때 brother라고 하지 마라. 괜히 의심 받지 않게 하라고.”
“아, 알았어여.”
막내가 투덜거렸다.
“저는 미국이 이게 불편해여.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고. 제가 무슨 고길동도 아닌데.”
“홍길동, 멍청아…. 아으으, 나 얘 때문에 못 살 것 같아요.”
“헷갈린 거예여. 헷갈린 거.”
중현이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건강해서 다행이야.”
“아, 혀엉…….”
“젤리 먹을까?”
“넹.”
젤리를 오물거리는 두 녀석을 보며 웃는 한편.
“비주야!”
“네.”
“자꾸 이상한 쪽으로 걸어가지 말고, 나한테 딱 붙어 있어.”
생글생글 웃으며 고장난 로봇 청소기처럼 이동하는 둘째를 붙잡았다.
일본에서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는 만큼, 해외 공항을 돌아다닐 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렇게 입국 심사를 할 때.
내 얼굴을 바라보던 직원이 미소를 지었다.
「오! 관광을 하러… 아니, 일하러 왔군요.」
비자를 보고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났을 때, 내 뒤를 따라 온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핫!”
“형,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당연히 관광객인 줄 알죠.”
“누가 봐도 관광객이긴 하네.”
여름 날씨에 어울리는 명품 꽃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을 뿐인데.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멋 부린 패션이 관광객 패션으로 오해를 받았다.
깔깔 웃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아니, 이게 솔직히 관광객 패션은 아니잖아.”
“누가 봐도 관광객 같은데여.”
매니저 형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관광객 같다. 우주야.”
“아니…….”
“아니라고 생각하면 목에 카메라 하나 걸어 봐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중현이에게 건네받은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걸었다.
최대한 모델처럼 워킹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 공항 경비원으로 보이는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웃으며 인사하자, 상대도 고개를 끄덕였다.
“Have a nice trip!”
뒤따라오던 동생들과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슬쩍 흘긴 후.
내게 인사한 경비원에게 양손을 흔들며 환히 웃어 보였다.
“예이~ 아이 러브 뉴욕!”
다음에 올 때는 다른 패션을 고려해 봐야겠다.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JFK 공항에서도 기다리는 팬들이 있었다.
백여 명 정도가 플래카드를 흔들며 반기고 있었는데 생각 이상의 규모에 꽤나 놀랐다.
작년에 LA에 팬미팅 겸 콘서트로 방문했을 때는 십여 명 정도였던 것 같은데.
“……미국에도 팬이 많이 늘긴 했구나.”
공항 밖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올라타면서 밖에서 손을 흔드는 미국 수플레들을 바라보았다.
플래카드 하나가 눈에 띄었다.
[비주를 챙겼는지 확인하시오!]
화살표와 함께 미아 전단처럼 비주의 사진이 붙은 플래카드.
“수플레들도 참….”
“우리가 비주 형을 잃어버렸을 리가 없죠.”
그걸 보면서 하핫 웃고는.
홱!
네 명이서 고개를 돌려 비주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있네.’
‘있네요.’
눈을 가늘게 뜨는 비주의 모습에 다 같이 웃었다.
이내 팬들에게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서 차량이 이동했다.
일정이 널널해서 그런지, 여유 있는 기분으로 뉴욕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
“일단 오늘은 관광하면서 푹 쉬어. 본격적인 일정은 내일부터 시작하니까.”
간만에 스케줄에 동행한 석환 형이 일정을 말해 주었다.
“뮤지컬 녹음 관련해서는 우주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넘어가고. 인터뷰 준비는 됐어?”
“응. 미리 멘트 정리해 놨어.”
브로드웨이에서의 일정은 뮤지컬 녹음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노스탤지어’의 뮤지컬 제작자인 프랭크 차우로부터 들어온 제안이 있었다.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해 볼 생각이 없냐는 이야기였다.
명곡들을 탐구하는 프로그램이라는데.
거기서 노스탤지어의 넘버들을 다루면서 Thousand Dreams도 언급할 예정이라는 듯했다.
얼마 전에 한국에도 진출한, 세계 최대의 OTT 업체에서 만드는 다큐인 만큼 좋은 일이었다.
막내가 히힛 웃었다.
“크으, 미리 결제해 놓고 있기를 잘했네여. 이제 거기서 우주 형의 얼굴을…!”
“한국에는 안 나오는 프로그램이라던데.”
“…왠지 그럴 것 같긴 했어여. 뭐 볼려고만 하면 한국에는 안 들어오지롱 하더라구여.”
막내의 말에 웃는 동안 석환 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뉴욕 K팝 콘서트에 맞춰서 팝업 스토어를 잠시 개설할 거야.”
“팝업 스토어?”
“몇 가지 조사할 게 있어서.”
우리가 귀를 기울였다.
“동남아시아를 제외하고 너희 미튜브 반응이 가장 큰 곳이 바로 이쪽이거든. 캐나다, 미국, 멕시코 같은 북미.”
“확실히 미국 사람들이 많이 보이긴 하더라.”
“지표상으로는 굉장히 높은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직접 눈으로 봐야 할 것 같더라고.”
이번 해외 투어는 작년과 다르게 투어를 도는 지역이 일본, 동남아와 호주 지역이다.
본래 북미 쪽도 예정에 있었으나 K-net에서 주최하는 LA와 뉴욕의 합동 콘서트로 대체했다.
단독 공연보다 합동 공연 쪽이 압도적으로 인원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북미의 팬덤이 어느 정도인지 수요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내가 물었다.
“근데 그게 조사하는 게 어려워여?”
“이게 다 너희 때문이야.”
우리 TF팀장님이 웃으며 타박했다.
“제대로 조사하려고 할 때마다 수치가 계속해서 달라지는데 원….”
10+17은 27이다, 이런 식으로 해야 되는데 17을 쓰고 있을 때, 10이 촤르륵 하면서 13 이렇게 변한다는 듯했다.
그래서 13을 수정하고 났더니 뒤에 숫자가 또 달라지고.
낙화 이후로 또 한 번 급속히 커져 가고 있는 터라 해외 수플레들의 규모가 짐작하기 어려운 듯했다.
“어차피 공연 끝난 다음에 또 살펴야 되긴 하다만….”
“공연 끝나고서는 왜?”
“저번에 파리에서 합동 콘서트 끝나고 나서 직캠 올라오면서, 유럽 쪽에 달봉이 주문량이 확 늘었거든.”
“역시 본업이 제일 중요하구만.”
동생들과 함께 따스한 미소를 나누었다.
춤추다 쓰러질 각오로 공연 준비를 했는데, 확실히 그렇게까지 했던 보람이 있었다.
“스케줄 관련해서는 여기까지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관광하거나 놀면서 푹 쉬도록 해. 너희가 이렇게 자유롭고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데가 흔치 않으니까.”
“안 그래도 여행 계획 빡빡하게 세워 놨어. 태현이한테 뉴욕 맛집도 엄청 추천 받았고.”
“여행까지 열심히 할 필요는… 됐다. 알아서 해라.”
포기한 얼굴로 손을 휘휘 젓는 매니저였다.
“자, 계획 숙지했는지 확인할게요.”
리혁이가 지도를 펼쳐서 계획을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뉴욕을 즐길 수 있을지 비주와 리혁이가 머리를 맞대고 세운 계획이었다.
그렇게 어디어디를 갈지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을 때.
“맞다.”
석환 형이 품을 뒤적거리고는 말했다.
“혹시 몰라서 미리 구해 놓기는 했는데, 너희 뮤지컬 볼 생각 있니?”
“대박…!”
다 같이 눈을 빛내며 기뻐했다.
귀하디귀한 브로드웨이 티켓의 등장에 가슴이 설렜다.
“오늘 진짜 뉴욕에서 끝장을 보자.”
“다 같이 신나게 놀아요! 우리!”
“아무도 잘 생각하지 말아여. 저는 오늘 밤을 샐 거예여!”
“다들 눈 크게 뜨고 다니자. 피곤하다고 막 졸고 그러면 안 돼.”
다 함께 환호하며 뉴욕에서의 첫날을 기대하는 우리였다.
* * *
3시간 후.
뮤지컬이 한창일 때.
대개 수학여행에서 오늘 밤 새자고 제안한 사람이 1번 타자로 잠에 빠져들듯.
“…….”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서리혁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이 인간들….’
밤을 새니 뭐니 하더니 사이좋게 자고 있는 4형제였다.
시차 적응과 그간 쌓였던 피로, 영어로 이뤄져 못 알아듣는 뮤지컬 대사들이 합쳐진 콜라보.
옆자리에서 막내가 츄릅츄릅 침을 삼키며 머리를 기대려고 할 때마다 손으로 막아내는 한편.
“어휴.”
한숨을 쉬며 수첩에 뮤지컬의 내용을 적는 서리혁이었다.
이따가 저녁 식사 시간에 대강의 줄거리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집중하며 내용을 필기하고 있을 때, 어느덧 뮤지컬도 끝나 있었다.
“…….”
츄릅 하며 여전히 꾸벅 조는 4인조와.
“흐에엥…….”
알 수 없는 잠꼬대를 하는 매니저 2인조까지.
지나가면서 키득대는 사람들의 모습에 서리혁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창피해서 정말.’
한국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귀와 뺨을 문질문질하며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누르고 있을 때.
근처 좌석을 지나가던 관객이 웃으며 물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아.」
서리혁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일행이 아니에요. 다들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거든요.」
「아…….」
이대로 그냥 모르는 척하고 가려고 할 때.
서리혁은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한 상대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다.
이내 말을 걸었던 관객이 멋쩍게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지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뉴블랙, 맞죠?」
「……!」
「이번 주에 콘서트도 가는데.」
푸화아악 하며 서리혁의 얼굴에 홍조가 돌기 시작했다.
턱 끝부터 귀 끝까지 온통 적색경보를 온몸으로 울리고 있던 서리혁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는.
「저, 저기요!」
얼굴을 가린 채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토마토의 뒷모습에 관객이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