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35화
노스탤지어 캐스트 앨범에 실릴 ‘Thousand Dreams’의 녹음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여유롭게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처음에 생음악과 관련되어 몇 가지 조언을 해 준 뒤로는 특별히 흠잡을 만한 구석이 없었다.
참석자들 대다수가 브로드웨이에서 수십 년간 굴러온 베테랑들이기도 하고.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웃었다.
‘동글동글하네여.’
‘이미 잘 갈려 있구만.’
일반적으로 녹음 과정은 돌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
음악과 잘 어우러지도록 연주자와 가수를 슥슥 갈아 내는 과정인데, 이쪽은 이미 잘 갈려 있었다.
어찌나 맨들맨들한지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감탄한 점이라면.
“여기 사람들 체력 대박인 거 같아여. 이 정도면 거의 0.1 중현이 형 정도 될 거 같은데.”
“그치? 한 0.07 중현이 느낌?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체력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같은 곡을 떠들썩하게 라이브로 부르며 수십 번을 반복하는데 다들 체력이 넘쳐나 보였다.
햄버거를 먹고 살아서 그런가.
비결을 알고 싶었다.
이것만 알아내면 우리 A&R팀과 프로듀싱팀을 개조할 수 있을 텐데….
“Hey, Sunny.”
프랭크 차우가 성씨에서 유래된 내 별칭을 부르며 물었다.
「녹음 과정에 문제라도 있어?」
「네?」
「뭔가 굉장히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길래 그래. 스폰지밥의 플랑크톤처럼 말야.」
…한국에 있는 동료 직원들을 개조할 비법을 찾는 중이에요, 라고 말할 순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녹음은 그야말로 끝내주게 완벽하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로구만.」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과장을 섞어 말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완벽한 녹음 현장이긴 했다.
일을 하러 왔지만 반쯤 견학하는 기분으로 브로드웨이의 녹음 현장을 지켜보았다.
일하는 프로세스를 보기만 해도 속이 꽉 차는 느낌이라고 할까.
한국에 돌아가서 써먹을 만한 팁들이 보일 때마다 열심히 눈으로 훔쳤다.
‘졸개3, 필기해라.’
‘나한테 명령하지 마요.’
리혁이가 열심히 메모장 앱으로 필기를 했다.
그렇게 5인조 산업 스파이 활동을 하는 한편.
전문가들이 일처리를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곤 했다.
「피아노가 조금 튀어요. 그 부분은 소리를 조금 다운시켜 주세요.」
「오케이. 다른 건?」
「누가 들어가서 바이올린 파트에 마이크 위치 좀 조정해 주시겠어요? 조금 더 풍부하게 소리를 담았으면 하는데.」
그렇게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의 방향을 조율하기도 하고.
연주자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배우들과 몇 가지 솔로 파트를 별도로 녹음하기도 했다.
「마이 리틀 존~!」
리혁이를 바라본 홀리 캠벨 씨가 아들 이름을 연호하며 좋아하는 것도 잠시.
메인보컬이 자세한 디렉팅을 시작했다.
「다시 갈게요.」
「다시!」
「지금 거의 완벽했거든요? 다시 한번 갈게요.」
본격적인 K-녹음이 시작되면서 뮤지컬 배우들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죽어 갔다.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릴 것처럼 환히 웃던 홀리 씨도 안색이 안 좋아졌다.
리혁이를 쳐다보는 눈빛이 바뀌었는데, 아마 마이 리틀 존이 뻐킹 존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러분. 제가 아까부터 뭐라고 강조했죠?」
「에너지를 담아 부르라고 하셨습니다아…….」
「맞습니다. 에너지! 잘 와닿지가 않으신 것 같아서 설명을 한 번 더 할게요. 어떤 감정을 담아야 하냐면….」
그중에서 가장 많은 원망을 받는 건 바로 나였다.
「지금 녹음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진짜요?」
안색이 환해진 배우들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시작이 될 수도 있죠.」
「…….」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일단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퀄리티도 상승하고.」
부스 안에서 홀리 씨가 ‘지져스’ 하며 남몰래 성호를 그었다.
그 동안 약이 오를 대로 바짝 오른 이들에게 내가 말했다.
「화가 나죠? 슬슬 열이 오르기 시작하고.」
「…….」
「바로 그겁니다! 지금의 그 기분, 이 강렬한 에너지를 노래에 담는다는 생각으로 불러 보세요.」
곧바로 이어진 노래는 파워풀의 끝을 보여주듯 힘이 넘쳤다.
-크롸라라라락!
어디 용이 울부짖을 법한 샤우팅에 우리가 크으 하며 박수를 쳤다.
옆에서 지켜보던 프랭크 차우가 턱을 매만졌다.
「흥미로운 디렉팅 방식이군. 고양이처럼 목숨이 아홉 개는 있어야 할 수 있는 디렉팅이야.」
「한번 시도해 보실래요?」
「별로. 여기는 총기가 합법인 나라거든….」
너희는 목숨이 한 9개 되나 보구나, 하는 작곡가의 농담에 스탭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프랭크 차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했네. 노래가 더 진정성 있게 들리는 느낌이야.」
「그렇죠?」
「이제야 진짜 Thousand Dreams 같군.」
‘천 개의 꿈’은 분명 꿈을 포기한 사람들의 노래긴 했다.
꿈을 이룰 수 없는 ‘외국어 책’들이 주인공에게 ‘꿈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체념하거나 마냥 초탈하게만 불러야 하는 노래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간 발산하지 못한 에너지를 내면에 가득 담아야 하는 노래다.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곤 있지만 어디까지나 내면에 담긴 감정은 좌절, 실망, 분노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Thousand Dreams는 그런 감정을 유쾌한 방식으로 하늘 높이 던져 올려야 하는 노래다.
“형은 어떻게 글케 잘 알아여?”
“내가 썼잖아….”
“아.”
막내의 뺨을 쭉 잡아당기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에너지 넘치는 노래를 감상했다.
확실히 아까보다 더 나아졌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3퍼센트 정도 아쉬웠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100퍼센트였다.
「완벽해요!」
환히 웃으며 칭찬해 주자 배우들이 환호했다.
홀리 씨가 기도가 통했다며 기뻐하고 있는 동안 우리에게 쏟아진 시선이 느껴졌다.
멍하니 바라보는 연주자들이었다.
“……?”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다급하게 연습을 했다.
파가니니가 빙의한 것처럼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를 보며 웃는 한편.
「완벽해!」
이어지는 배우들과 생음악의 합주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두어 번의 녹음을 더 시도한 후.
마침내 최종 녹음이 끝나고 프랭크 차우가 선언했다.
“And ladies and gentlemen! That’s a wrap!”
환호와 요란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처음 듣는 영어 표현에 고개를 갸웃하니 리혁이가 일을 끝냈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그허… 아아 그렇구만.”
“뭐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박수만 쳐요.”
“웅.”
비주한테 약을 받아서 괜찮아졌던 혓바닥이 다시 쓰려왔다.
유쾌한 웃음과 박수 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프랭크 차우가 손짓을 하며 나를 가운데로 불렀다.
「오늘 Thousand Dreams의 녹음에 참여해 준 원곡자 뉴블랙에게, 다 같이 박수를!」
「멋진 작업이었어요!」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누군가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녹음이 끝나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현장 스탭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뮤지컬 배우 중에서도 홀리 씨가 우리와 포옹을 격하게 해 주고는 푸근하게 웃었다.
「길에서 나를 만나지 않기를 기도하렴.」
유쾌한 농담에 하하하 웃었다.
……절대 호텔 밖으로 안 나가야지.
그렇게 단체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하는 한편, 아까부터 대기 중이던 다큐 제작진이 인터뷰 자리를 세팅하고 있을 때.
「잠깐만.」
프랭크 차우가 우리를 따로 불렀다.
그러고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을 하나 내밀었다.
「한번 열어 봐.」
「오-!」
안에 있던 것은 ‘Thousand Dreams’가 흘러나오는 노스탤지어의 영화 속 장면을 그린 유화였다.
외국어 책들 너머로 우리 얼굴이 아련하게 삽입되어 있다.
센스 있는 선물에 감사 인사를 전하자, 뮤지컬 제작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 작업을 기념하기 위해 주는 선물이야.」
「고마워요.」
「조금 있으면 노스탤지어가 극장에 걸릴 텐데, 그때 한 번 구경하러 또 오라고. VIP에게만 가는 제일 좋은 자리를 줄 테니까.」
그가 짓궂게 말했다.
「그때는 어제처럼 졸지 말고.」
「그걸 어떻게……?」
「브로드웨이는 내 앞마당 같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나오는 모든 소문이 내 귀로 흘러 들어오지.」
그리 말하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브로드웨이 거물이었다.
내가 물었다.
「지호한테 들었죠?」
「젠장, 거의 속여 넘길 뻔했는데!」
「저희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대부분 지호의 입에서 흘러나오거든요.」
상대가 했던 말을 변형시켜 돌려주는 내 모습에 그가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악수를 했다.
프랭크 차우와 작별인사를 한 우리는 인터뷰 자리를 세팅한 제작진을 찾았다.
「자, 이제 그럼 인터뷰를 해 볼까요?」
진행자 레이첼과 노스탤지어의 넘버에 대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질문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이 노래를 만들 때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가. 기존 뮤지컬 넘버와 어우러지도록 어떤 시도를 했는가. 평소 하고 있는 음악 스타일과 이번 곡은 무엇이 달랐나 등등.
말 그대로 음악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라 굉장히 좋았다.
영어에 능통한 리혁이와 내가 주로 답변을 했는데, 내용이 만족스러운지 진행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뷰에 응해 줘서 고마워요.」
음악에 관한 인터뷰는 대략 1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끝났다.
아마 다큐 에피소드에 길어야 3분 정도 들어갈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게 나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고! 고생들 했습니다.”
그렇게 스케줄을 끝내고 돌아가는 차량 안에서 서로 간에 노고를 치하했다.
막내가 뿌듯하게 웃었다.
“진짜 기분 좋네여. 오랜만에 이렇게 일하면서 멋짐 뿜뿜하는 것도 오랜만이구.”
“인정. 우리 아까 멋있었지.”
“이렇게 웃음기 없이 일만 하고 온 것도 간만이긴 하네요.”
동생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비주가 살짝 근심이 된다는 듯 말했다.
“근데 우리 너무 진지하게 일만 하고 온 거 아닐까요? 다큐 분량도 별로 웃기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건 좀 우려되네.”
“……이 사람들아. 우리 본업 가수라고요. 가수.”
“그래도 부업이 예능이잖아여.”
본업만 하고 부업을 너무 소홀히 한 건 아닐까. 다큐에 노잼으로 나오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나누고 있을 때.
“…….”
매니저 형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가득한 눈치였다.
“왜요?”
“아니야. 아무것도….”
매니저 형들의 반응에 우리가 환히 웃었다.
급격히 안심이 됐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매니저 형들은 우리의 재미 판독기였다.
“뭐 또 있나 본데?”
“생각보다는 분량 잘 뽑았나 봐여. 매니저 형들이 저렇게 어, 음, 하면 노잼으로는 안 나가더라고요.”
“다행이다.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판독기의 모습에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 * *
그날 저녁.
다큐멘터리의 PD는 고민에 빠졌다.
‘어떤 컷을 써야 되지?’
촬영분 중에서 어떤 컷을 써야 최대한 다큐스럽게 나올지 고민했다.
애초에 이런 걸 고민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촬영분이 웃겼으니까.
-자! 따라합시다! 끼요오옷! 자기 자신을 한 마리의 프테라노돈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혀를 살짝 깨물었네요. 하지만 아무렇지 않죠. 이것이 바로 Korean spirit이니까.
-여기 창백한 페이퍼맨 친구보다 고음을 낼 수 있다면 바로 집으로 보내드릴 수 있어요.
발랄한 독설.
그리고 혹사당하는 뮤지컬 배우들.
‘니 음식은 똥이야!’ 혹은 ‘베벌리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 리얼리티나 서바이벌 프로에 어울리는 자극적인 장면들이었다.
솔직히…….
‘재밌다.’
팝콘만 가져다 놓으면 리얼리티 쇼 한 편이 뚝딱이었다.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10대 애들이 무슨 10년차 토크쇼 호스트처럼 방송을 하고 있지…?’
수백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미튜버이기에 나온 짬밥이라는 건 모르는 다큐 제작진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고민은 넘겨 버리고.
뉴블랙이란 그룹을 다큐에 어떤 식으로 소개할지 조사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서 천 개의 꿈을 불렀던 영상이나 어워드에서 춤을 추는 영상을 자료로 뽑는 한편.
‘엄청난 유명인사들이었네.’
방대한 검색결과에 절로 혀를 내둘렀다.
척 보기에도 한국에서 제일 사랑 받는 가수 중 하나인 듯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연출인 한나 모건이 영문 위키피디아의 항목을 읽어주었다.
“한국에서 인기가 엄청나다는데요? 별명 중 하나가 ‘Kukmin idol(국민 아이돌)’이래요.”
“쿡민 아이돌? 그게 뭔데…?”
“잠시만요. 포털 번역기 돌려볼게요.”
이내 번역기가 보여주는 결과에 PD가 흠칫했다.
“전 국민의 우상(National idol)…?”
한국 사람들이 ‘오오! 뉴블래액! 뉴블래액!’ 하며 사진을 들고 숭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국민 여동생, 국민 배우 같은 한국의 국민 시리즈를 모르는 미국인들에게는 당혹스러운 번역이었다.
‘이 친구들이 정말 한국 사람들의 워너비라고…?’
꺄르륵 하는 영상과 한국의 신문기사 사이에서 혼선이 오기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이었다.
“흐으음…….”
잠시 고민이 되긴 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뉴블랙은 이번 다큐의 곁다리 중 하나였기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1막에만 20개가 넘어가는 뮤지컬 노스탤지어의 주요 넘버 중 하나로 나오는 것이니까.
“그보다는 단어를 조금 바꿔 보는 건 어떨까요? National hero 정도로 해서.”
“우상(idol)보다는 확실히 영웅(hero)이 더 어울리긴 하군.”
“그럼 내레이션에 이렇게 넣어 볼까요? 뉴블랙, 하고 무대 영상이랑 한국 사람들이 열광하는 장면 하나 넣고. 거기에다 [이들은 한국에서 Kukmin Idol, ‘국가적 영웅’으로 불리우며….]”
“그거 좋군! 좋은 아이디어야!”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정보 왜곡.
한국인들에게 전화나 메일 한 통 돌리면 바로 알 수 있는 정보였지만.
타국 문화에 무관심한 미국의 제작진이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 * *
노스탤지어의 캐스트 앨범 작업을 끝낸 후.
우리는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뉴욕 K팝 콘서트.
이번에 뉴욕에서 열리는 공연은 2일에 걸쳐서 진행하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2일차의 메인 퍼포머였다.
장소는 뉴저지 주에 있는 프루덴셜 센터.
“근데 왜 뉴저지에서 하는데 뉴욕 콘서트예여?”
“오, 그러네.”
“……어?”
“……어?!”
“중현이 형! 우리가 이런 중요한 오류를 찾아냈어여!”
처음에는 그럴싸했는데 두 바보가 짝짜꿍이 맞는 걸 보고 뭔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리혁이가 설명해 주었다.
“공연장이 있는 도시가 뉴어크라는 곳인데. 사실상 거의 붙어 있는 도시나 다를 바 없어요.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부천 같은 느낌으로.”
“진짜 맞은편이네.”
지도를 보니 물줄기를 두 번 건너면 나오는 곳이었다.
“헐, 중현이 형. 우리가 틀렸나 봐여.”
“아니야. 이건 헷갈리게 만든 사람들 잘못이지.”
어쨌거나 1만 명 넘게 온다는 공연을 앞두고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했다.
합동 콘서트지만 북미 투어 대신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결과물이 좋아야 했다.
한편, 우리만 바쁜 건 아니었다.
석환 형을 비롯해서 우리 TF팀 직원들도 팝업 스토어 오픈을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으음, 고민인데…….”
석환 형이 보고 있는 리스트에 적힌 발주 물량을 흘깃 훔쳐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량이 과도하게 많아 보였다.
“다 못 팔 것 같아서 그래?”
“아니.”
우리 TF 팀장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다 팔릴 것 같아서 그래.”
“……?”
“물량이 다 소진된 다음에 분노한 너희 팬에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지 고민 중이야.”
“아앗….”
“민기랑 원석이를 대타로 세울까…….”
근심이 커 보이는 모습에 힘내라고 말을 해 주었다.
그렇게 저마다의 일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주의 깊게 살폈다.
매일 한 번씩 차트를 확인했는데 불꽃놀이가 낙화와 꼼지락꼼지락 하며 사이좋게 순위를 바꾸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불꽃놀이가 Attention이랑 차트 1위 싸움할 것 같네요.”
이제 나온 지 한 달가량 된 낙화가 일간차트의 정상에서 살짝 내려오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불꽃놀이는 대중들 덕에 계속 올라가고 있다.
어텐션이 리혁이처럼 도망가고 있지만, 곧 중현이 같은 불꽃놀이에 따라잡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어……?”
우리는 희소식을 접했다.
“대박!”
“왜?”
“이거 방금 친구가 보내 줬는데여. 불꽃놀이가 K넷 음방에서 1위 후보에 들었대여.”
“진짜…?”
차트에서 눈을 뗀 우리가 막내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K넷 음방 1위 발표의 순간을 담은 영상이었다.
* * *
6월 마지막 주 음악방송.
-네, 이제 1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죠?
-과연 이번 주의 1위는 누가 될지…….
음악방송 MC가 멘트를 하는 동안.
1위 후보인 ATEN이 가운데 서고, 양옆으로 두 보이그룹이 주인공처럼 섰다.
“…….”
동시 컴백을 하게 된 스트릿 보이즈와 틴스피릿이었다.
컴백 첫 주이기에 1위 후보는 들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오늘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번 정규 앨범으로 TNT를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탑 보이그룹과 해외 인기를 바탕으로 뜨고 있는 라이징 그룹.
웃고 있는 두 그룹 사이로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아, 쓰벌 어색해.’
‘친구의 친구랑 서 있는 기분인데. 어색함을 참자. 나는 선우주다. 선우주다….’
‘거북거북해, 거북하면 거북선. 나는 감나무.’
한편, 다음 주의 1위 후보가 유력한 두 그룹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두 그룹 중에 한 팀이 1위를 가져갈 테니까.
하지만…….
-이번 주의 1위 후보를 다시 한 번 볼까요!
그건 일반적인 경우였다.
촤르륵!
전광판에 떠오르는 세 개의 썸네일에 현장에 자리 잡은 걸그룹과 보이그룹이 눈을 크게 떴다.
[낙화(落花) / 뉴블랙]
[Attention / ATEN]
[불꽃놀이 / 뉴블랙]
뒷자리에 선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입을 멍하니 벌리며 ‘와’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네! 축하 드립니다! 뉴블랙의 낙화!
마지막 활동 주차에도 1위에 실패한 ATEN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소감을 전했다.
-강하네요. 우리 뉴블랙 쌤들.
-어떻게든 1위 한 번 해 보겠다고 추하게 버텨 봤습니다만… 선생님들이 너무 강했습니다.
-불꽃놀이로 표가 분산돼서 저희가 1등할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고…….
국민 예능의 출연진이 음방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동안.
깔깔 웃던 틴스피릿과 스트릿 보이즈는 눈이 마주친 순간 어색하게 인사하며 웃음을 멈췄다.
‘잠깐만.’
그 순간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 때문이었다.
‘다음 주의 경쟁자 상태가…?’
뉴블랙이 부르거나 참여한 세 곡의 점수를 바라보면서 계산을 한 두 그룹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지구인들끼리 이제 좀 싸워 볼까 하는데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들이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졸라 힘내 주세요. 소울.’
‘다음 주 1위 후보에는 들어가겠지…?’
기분 탓일까.
왠지 모르게 1위 후보 썸네일 속 우주선과 졸개들이 그들을 업신여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 지금 미국에 있을 텐데, 한국에서도 여전히 존재감이 압도적인 뉴블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