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0화
바다 건너 미국.
음악 다큐 에 신규 에피소드가 등록됐다.
최신화까지 다 본 사람들에게 ‘새로운 에피소드를 감상하세요!’ 하는 알림이 뜰 때.
“Oh?”
무엇을 볼지 스트리밍 사이트를 뒤적거리던 유저들이 메인에 뜬 다큐를 클릭했다.
그중에서 최신 에피소드 ‘7. Nostalgia’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작년에 히트 친 영화네.’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도 엄청 유명하지만 작년에 메가히트를 쳤던 영화였다.
자동으로 다큐 예고가 흘러나왔다.
-대개 피땀을 흘려 무언가를 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출연진과 오케스트라를 향해 무엇인가 말하던 미남이 갑자기 입가에 무언가를 주륵 흘렸다.
‘뭐야. 진짜 피야?’
하이틴 무비에 나올 법한 미청년이 입가의 피를 스윽 훔치며 웃었다.
-…말하다 보니 진짜로 피가 나왔네요.
그러곤 예고가 뚝! 끝났다.
해당 영상에 대한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재생]이란 아이콘을 누르는 건 같았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본다.’
두둥! 하고 ‘N’이 나타나면서 음악 다큐가 시작됐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에미상(Emmy), 그래미상(Grammy)을 비롯해 EGOT을 달성한 작곡가 프랭크 차우가 메인이 되어 <노스탤지어>란 뮤지컬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음악의 뿌리가 무엇인지 흥미롭게 펼쳐 가는 과정이었다.
[ Frank Chau / Composer ]
노스탤지어는 제가 궁핍했던 시절에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도서관에서 반쯤 폐인처럼 책에 몰두해서 살았던 시절이었어요.
뉴욕 공립도서관 앞에서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자신이 도서관 어느 지점에서 어떤 영감을 얻었는지 보여 주기도 하고.
지하철역이나 베트남 음식 레스토랑 등등.
원작의 넘버들이 탄생한 배경과 영감을 짚어 주던 다큐가 중반부에 이르렀다.
[ 내레이션 ]
그리고 작년, ‘노스탤지어’는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존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판 장면이 흘러나왔다.
수천 개의 별이 쏟아지거나 책들이 춤추는 등 영상미 끝내주는 장면들이 나오고.
노스탤지어가 다시 뮤지컬로 부활하는 장면이 나왔다.
흥겹게 안무를 연습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나올 때.
[ 내레이션 ]
한편, 이번 리부트에는 새로운 넘버도 함께하죠. 바로 ‘Thousand Dreams’입니다.
루퍼트 딘이 연기한 주인공을 둘러싸고 춤을 추는 외국어 서적들의 장면이 흘러나왔다.
전년도 박스오피스 10위 안에 등극한 영화인 만큼 익숙한 넘버였다.
‘아, 이거…!’
책들의 무도회에 온 것처럼 풍부한 소리로 가득찬 노래였다.
흥얼흥얼하며 따라 부르고 있을 때.
‘어?’
예고편에서 봤던 인물이 부하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다.
‘Hey!’ 하며 프랭크 차우가 미남을 끌어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미국의 시청자들이 해당 인물의 정체를 궁금해할 때, 5인조의 인터뷰 첫 인사가 흘러나왔다.
[ The New Black ]
(한국어)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보이밴드 느낌이 나는 5인조의 모습.
망고차트 어워즈, KMA를 비롯한 시상식에서 Nine의 댄스 브레이크를 추는 영상이 나왔다.
[ 내레이션 ]
‘Thousand Dreams’의 원곡자인 뉴블랙은 한국에서 유명한 5인조 보이밴드입니다. 이들은 다른 말로(a.k.a) ‘Kukmin Idol’로 한국에서 불립니다. National hero란 뜻이죠.
뉴블랙이 표지를 장식한 한국의 주간잡지가 나오고.
달봉이 두 개를 쌍검처럼 흔들며 광기 어린 검무를 선보이는 수플레들이 등장했다.
[ 내레이션 ]
‘National hero’인 만큼 이들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귀감의 대상이자, 닮고 싶은 우상입니다.
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개쩌는 가수라는 뜻이군.’
그러면서 또 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근데 여기에 왜 온 거지?’
뮤지컬 버전으로 녹음을 하는데 굳이 원곡자들이 와서 지켜 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에 답하듯 진지하게 디렉팅하는 우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 내레이션 ]
그는 Thousand Dreams의 작곡가입니다.
존 에드워즈 감독과 프랭크 차우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정말 다재다능한 친구죠. 이 친구를 직접 만나고 음악 얘기를 하면서 5분 뒤에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젠장, 이 녀석 진짜 끝내주는 천재구나.’
-음악적인 능력이 나이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죠.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친구예요. 나중에 아버지가 누군지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납득했죠.
과거 유럽과 미국에서도 재즈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선명주의 자료화면이 스쳐갔다.
하지만 굳이 천재라고 띄워 주지 않아도,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음악의 흐름을 표현하듯 연필로 구불구불한 선을 스으윽 그리던 우주가 심을 뚝 부러뜨렸다.
-멈춰요.
-왜?
-음이 어긋났어요.
미세한 파형의 차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전문가들이 모니터를 보고는 ‘어’ 하곤 곧바로 수정이 들어갔다.
그걸 시작으로 디렉팅을 하는데 무슨 30년차 작곡가 같았다.
게다가 조무래기처럼 앉아있는 다른 멤버들까지 능숙하게 디렉팅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이래서 한국에서 선망의 대상이구나.’
간단한 인터뷰를 포함해 뉴블랙의 분량은 얼마 안 가 끝났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다.
-끼요오오옷! 끼욧!
-자기 자신을 익룡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분노를 이용하세요. 내면의 다크사이드를 끌어내는 시스처럼…….
……엄청 재미있었다.
중간에 리얼리티 쇼나 시트콤으로 장르가 바뀐 줄 알 만큼 흥미진진한 장면들이었다.
다큐 시청을 끝낸 유저들이 검색창을 켰다.
‘누군지 찾아 봐야지.’
‘미튜브의 뉴블랙 TV? 여긴 뭐 하는 곳이기에 구독자가 천만이나 되지?’
‘연관 동영상에 이 소 울음소리 밈은 왜 뜨는 거야.’
다큐멘터리가 서비스되는 미국, 캐나다의 일반인들에게 뉴블랙이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당연하게도.
“푸흡-!”
그런 시청자에는 북미의 수플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뭐야. 왜 뉴블랙이 여기에…?’
뉴욕 콘서트 떡밥만 들었지, 브로드웨이에 가서 녹음까지 하고 왔다는 소식은 처음 들은 터였다.
흥분한 팬들이 SNS를 통해 소식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지금 다큐에 뉴블랙 나옴!!
미국 팬 계정이 홀린 글을 한국 팬이 옮기고, 그게 또 다른 나라 팬들에게 퍼지고.
수플레들이 본업 떡밥이라며 흥분할 때.
@Burning_Souffle
(피 흘리는 우주선과 ‘Kukmin Idol’ 내레이션이 담긴 영상)
내가 진짜 우리 애들 때문에 돌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뭔일이냐고
누군가 자막을 단 영상이 퍼지면서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들에 웃음이 터지고 있었다.
-피 흘리는거 보고 기절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피야??ㅋㅋㅋㅋ
-내가 저기 뮤지컬 스탭들이면 개쫄렸을듯 ㄷㄷ
-옆에서 김중현 놀라서 캔 위아래로 짜부시킨 거 개웃기네ㅋㅋㅋㅋ 저러니까 더 무서워하지
-빵과 서커스는 옛말이다. 이제는 피땀과 음료캔임
┕피땀(진짜 흘림)과 음료캔(이었던 것)
-ㅉㅉ 우주선 인성 어디 안간다 ㅡㅡ
-어찌보면 일관성 있는 거지 ㅇㅇ 외국인이라고 봐주고 그러는 거 없음
-혀 씹은 거 맞지..? 일부러 피 낸 거 아니고?
-아니ㅋㅋㅋㅋ 왜 생각이 그런 쪽으로 가냐고 당연히 일부러 피 흘린거지 ㅇㅇ
평소처럼 누군가의 인성이 회자되는 가운데.
가장 큰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은 바로 ‘Kukmin Idol’이었다.
-아니야 미국놈들아 그거 아냐ㅋㅋㅋㅋㅋ
-자료조사 누가 했냐 진짜ㅋㅋㅋ
-굳이 의미를 말하자면 national friend에 더 가깝긴 한데.. 갑분 국가적 영웅ㅋㅋㅋㅋㅋ
-자료화면에 미튜브는 안 나와서 다행이야
-미국인 : 한국에서 워너비가 되려면 물구나무 서고 뜀뛰고 그래야 되는 건가..?
-정말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아이돌
유쾌한 드립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해당 키워드에 대해 반발하는 네티즌은 없었다.
아이돌 커뮤니티라는 예외가 있을 뿐.
[진짜 ‘국민 아이돌’이라 불렸던 1세대 그룹들]
[객관적으로 보는 ‘국민’ 시리즈 기준]
[대중성은 진짜로 아이돌의 중요 성공지표인가?]
틴스피릿과 뉴블랙의 라이벌 구도에서 비롯된 견제였다.
싸움이 벌어진 아이돌 커뮤니티를 제외하고,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영상을 보고 있을 때.
해당 영상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넘어 쭉쭉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게살버거의 비밀을 탐내는 미생물 사장처럼 뉴블랙을 염탐하는 KM 엔터의 대표도 있었다.
“훌륭한 정신이야. 피땀을 흘릴 각오로…….”
그날.
KM 엔터 직원들의 문자함에 [분골쇄신 : 녹음 작업에는 피땀 흘릴 각오로..] 하는 메시지가 수신됐다.
“으아아아!”
“누가 제발 대표님한테 뉴블랙 좀 그만 보라고 해 주세요!”
“걔네는 사람이 아니라고!”
당사자들로서는 의도치 않은 피해자들이었다.
* * *
TJ 엔터 회의실.
노트북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이게 뭔 일이래.”
다큐가 빠른 시일 내에 나올 거란 소식은 들었다.
필요한 촬영분을 이미 찍은 뒤에 Thousand Dreams에 관한 추가분만 찍는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이 와중에 쿡민 아이돌은 또 뭔데…….”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한 모 씨가 웃었다.
평소였으면 이런 다큐를 보고 웃어재꼈을 텐데, 픽 웃는 모습에 내가 물었다.
“넌 이미 봤어?”
“봤지.”
“언제…?”
“뉴블랙 알림봇이 알려줬거든.”
태현이가 SNS상에 뜬 알림을 보여 주었다.
보아하니 나랑 동생들 빼고 모두가 본 것 같다.
동생들에게 ‘실검 확인해 봐’ 하는 톡을 보내고는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 겁에 질려 있는 A&R팀 직원들에게.
“오해예요.”
“…….”
“제가 실수로 혀를 씹어서 생긴 상황이에요.”
“그럼 익룡처럼 소리 질러 보라고 시킨 건…?”
“…….”
조용히 시선을 외면했다.
원조 졸개가 쿡쿡대며 웃는 동안, 헛기침을 하며 회의실 상석에 앉았다.
“그럼 회의 시작할까요?”
“예-!”
“……그렇게 크게 대답하실 필요는 없어요.”
기합이 잔뜩 들어간 직원들이 일렬 종대로 촤라락 앉았다.
자리에 있는 서류를 슥슥 살피는 동안 태현이가 빨대를 꽂은 초코음료를 공손하게 내밀었다.
“고마워.”
웃으며 자료를 꼼꼼하게 살폈다.
솔로앨범이 어떤 식으로 기획되었는지 보여 주는 문서였는데, 꼭 확인해야 하는 내용이었다.
전반적으로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해야 전체적인 일관성을 줄 수 있으니까.
“이번 앨범의 컨셉은 감성 섹시 컨셉이에요.”
뮤직비디오 촬영에 쓰인 셔츠와 조끼 등이 자료사진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잘생긴 바텐더 같은 복장이었다.
A&R팀 직원들이 말했다.
“타이틀곡의 제목은 ‘Mood’인데 R&B 장르의 곡이고요. 거기 설명으로는 ‘현대인의 불안과…’ 하는 게 있을 텐데, 쉽게 말해서 ‘분위기에 취하는 밤’이 주제입니다.”
“한 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바로 재생됐다.
그루브한 리듬에 몸을 까딱까딱이며 귓가에 흘러들어오는 멜로디를 느꼈다.
분위기에 취하는 밤이라는 설명이 딱 적절했다.
‘mood, smooth’ 같은 단어가 들어가 운율 있는 가사와 감성적인 보컬이 어우러진 노래였다.
태현이가 물었다.
“어때?”
“진짜 좋다. 이미지가 딱 그려지네.”
파란 꽃, 파란 새들. 온통 파란 것이 어우러져 있는 밤의 정원이 연상된다.
블루문 아래서 잔잔한 밤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실루엣이 그려지는 듯하다고 할까.
“다음 곡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수록곡들을 감상하는 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나를 인간 판독기처럼 보는 시선이었다.
“흠흠.”
TJ 엔터 직원들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고.
“…….”
턱받침을 한 채 달봉이처럼 반짝반짝!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탑 아이돌에게 말했다.
“저기 선배님.”
“응?”
“부담스러우니까 시선은 적당히 좀….”
“죄송합니다. 하핫.”
그러면서 다음 곡을 들을 때였다.
눈썹을 슬쩍 모으자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상대가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래. 어디가 문제야?”
“네가 문제예요. 네가.”
“…….”
“가려워서 찌푸린 거라니까. 저기… 실례지만 누가 얘 좀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내 말에 직원들이 눈을 피했다.
자기들 직급으로는 회사의 대들보 같은 존재를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지나치게 성공해 버린 원조 졸개에게 내가 말했다.
“노래에 조금 집중해 보고 싶은데…….”
장난기는 살짝 뺐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하자, 태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앉았다.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는 A&R팀에게 내가 말했다.
“계속해 주세요.”
쭉 이어지는 수록곡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TJ 엔터였다.
TNT의 멤버로서가 아니라 솔로 한태현의 매력을 살린 곡들이었다.
댄스에 가려져 있던 다채로운 음역대도 조명해 주고, 태현이의 매력을 잘 살릴 만한 장르를 택했다.
“어떤 식으로 디렉팅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질문을 이어 갔다.
“솔로 데뷔가 언제라고 했죠?”
“음원 발매는 7월 18일이고, 음방 데뷔는 7월 21일이야.”
발매일이 수플레 결성일이네.
달력을 살피면서 침음성을 흘렸다.
“진짜 얼마 안 남았네.”
“시간상으로 힘들 것 같아서 미리 안무가를 섭외해 놨어. 안무부터 연습을 하려고.”
“……너무 힘들 것 같은데. 그냥 더블 타이틀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안 돼. 이건 꼭 무대를 해야 된단 말이야.”
A&R팀 직원들이 웃으며 말했다.
“태현이가 이건 너무나 자기 노래라고. 꼭 무대를 해야 되는 노래라고 했거든요.”
“으음…….”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다.
살짝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옛날의 그 연습생이 아니란 걸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력만 따지면 나보다 4년이나 더 경험이 많으니까.
컨디션 관리는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Survivor’의 디테일에 대해 질문하는 A&R팀 직원들에게 답을 해 주었다.
“색상으로 말하자면 남색 계열이 잘 어울릴 거예요. 그 은하수 뒷배경 같은 색깔 있잖아요.”
무대를 준비할 때 어떤 측면을 강조하면 좋을지 말했다.
“조금 무거운 느낌을 주면 좋을 거예요. Survivor란 곡은 중저음이 포인트인데, 해당 음역대에서 이 친구 목소리의 매력이 제일 배가되거든요. 워낙 섬세한 목소리라.”
“그치. 내가 한 섬세하지~”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그렇게 이야기를 하나씩 하니 TJ 엔터 직원들이 웃었다.
“저희보다 태현이를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연습생 때 오래 봐서 그런가 봐요.”
태현이가 신이 나서 끼어들었다.
“제가 말했죠? 괜히 Survivor 같은 노래가 나온 게 아니라고. 나 되게 잘 안다니까요.”
“얘 거짓말할 때 버릇도 알아요. 제가.”
알려 드릴까요? 하고 웃으며 물으니 절대 알려 주지 말라고 누군가 아우성을 쳤다.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한 후.
우리는 녹음실로 자리를 옮겼다.
“오오…!”
국내 최고의 대형기획사다운 최신 장비에 시선이 팔린 것도 잠시.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오래됐죠?”
“진짜 요만할 때부터 봤는데, 다 컸네.”
Yo 하며 TJ 엔터의 프로듀서, 엔지니어들과 주먹을 콩 하고 찍었다.
내게 작곡을 가르쳐 준 선생님도 있고, 연습생 때 왕래하면서 안면을 튼 사람들이었다.
에구 하며 자리에 앉는 내 모습에 그들이 웃었다.
“꼬맹이가 지금은 늙은이가 됐네.”
“무슨 소리예요? 저 아직 어려요.”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눈빛을 보내는 직원들의 모습에 웃었다.
잠시 옛날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았다.
댄스 레슨에서 춤 때문에 온갖 욕을 들어먹었을 때, 이 사람들과 함께 있던 작업실이 내 유일한 안식처였으니까.
프로듀서들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우리는 네가 잘 돼서 정말 좋다.”
“감사해요.”
“그 6층 멍청이들 때문에 진짜….”
기획팀이 나를 방출하자고 했을 때도, 이 사람들은 나를 작곡 쪽으로 키워야 한다고 꼭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들었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감사한 일은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주야.”
“네.”
“그러니까 옛정을 봐서라도 좀 살살…….”
“…….”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그들이 눈을 피했다.
“아니, 아까 다큐 보니까 피까지 토하면서 미국인들 고문하길래….”
“저저 봐. 옛날의 그 귀여운 꼬맹이가 아니라니까. 우주선 표정 나오네.”
“야! 조용히 해. 심기 거스르지 마. 무슨 꼴을 당하려고.”
“얼마 전에 TV에 상윤이 나온 거 봐봐. 안 그래도 얼굴이 반쪽인 애가 레몬 가더니 반의반이 됐잖아.”
대체 내가 이 바닥에서 어떤 이미지인 건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 때.
-저 준비 됐어요~
녹음 부스에서 몸을 풀고 있던 태현이가 헤드폰을 쓰고 말했다.
내가 웃으며 토크백 버튼을 눌렀다.
“준비됐으면 갈게.”
심호흡하며 숨을 고르던 태현이가 OK 사인을 보내면서 음악을 재생하는 버튼을 눌렀다.
Survivor의 첫 녹음이었다.
* * *
처음에는 산뜻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선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태현 씨.”
-네.
“다시 갈게요. 지금 호흡 흐트러졌습니다.”
어찌나 완벽을 추구하는지, 조금만 엇나가면 바로 끊고 디렉팅을 준다.
그들이 듣기에는 어느 정도 괜찮다 하는 수준인데도 마음에 안 들 때마다 가차 없이 잘라 냈다.
하지만 기준이 명확했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거 알아요. 한 번 더 가 볼게요~”
-네, 다시 부르겠습니다!
방금 것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자르는 듯하다고 할까.
‘빡빡하네.’
방긋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더~ 하며 수백 번을 시켜대는데.
차라리 정중하게 쌍욕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역시 태현이야. 잘하고 있네.’
프로듀서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녹음 과정을 지켜보고 있을 때.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한태현이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방금 거 한 번 더 갈 수 있을까요?
“왜요? 잘한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요?”
-더 잘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 번 더 갈게요.”
다시 한번 녹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안 되겠어요. 또 한 번 갈게요. 방금 어땠어요?”
“고음이….”
-제 생각엔 고음이….
둘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작곡가님이 저랑 통하는 게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러고는 신이 나서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프로듀서들은 지금까지 주목하고 있던 우주선을 벗어나 녹음부스 안의 인물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있는 인물이 TJ 엔터 최고의 독종으로 유명하다는 걸 깜빡했다.
일요일 새벽에도 연습실 불이 안 꺼져서, 개인 연습실에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환상의 조합이네.’
지금 토크백 버튼을 누르고 있는 인물도 연습생 시절에 춤 연습을 하다가 근육이 녹아 내릴 뻔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궁합이 잘 맞으니 다행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푸근하게 웃고 있을 때.
“어……?”
“어……?”
프로듀서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불과 불의 조합, 그리고 여기 잘 타게 생긴 장작들이 있었다.
화르륵! 불타오르는 녹음실 공기.
‘어?’
‘우리 망한 건가?’
아주 긴 밤을 예상하며 그들의 눈가가 촉촉해질 때였다.
침울해진 작업실 분위기를 깨듯이 밖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음?”
다다다다!
녹음실 밖에서 누군가 쿵쿵쿵! 하면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데없는 소음에 그들 중 하나가 상황을 살피고 돌아왔다.
“보안팀이 출동했는데?”
“보안팀?”
“무슨 일 생겼나 봐. 놀래서 미친 듯이 뛰어가는데…? 누가 뭐 침입을 했다고.”
“그래?”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다시 녹음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사에 이상한 사람들이라도 들어와 있나…?’
오늘은 회사에 뉴블랙도 찾아오고, 별일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