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1화
‘Survivor’의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태현아!”
-우주 형!
“진짜 그리웠다. 이 분위기.”
-나도. 진짜 나랑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랑 작업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야.
보기만 해도 행복 바이러스를 뿜뿜하는 두 미남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이 밝아지는 듯했다.
아니. 밝다 못해…….
“으어어어….”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우욱!”
녹음실 분위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작업실 공기에 헛구역질을 하던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들이 두 미남을 바라보았다.
‘악마 같은 것들….’
‘귀신은 뭐하냐. 저것들… 아니다. 귀신이 잡혀오겠네.’
귀신이 잡으러 왔다가 오히려 포획당하곤 우주선에게 ‘제대로 안 해요? 귀곡성 녹음 Take 1 다시 갈게요’ 하며 갈릴 게 뻔했다.
“10시간 동안 모니터만 보니까 토할 것 같다. 진짜로.”
“난 저녁으로 먹은 짜장면이 속에서 올라오려고 그래. 어지럽고.”
“아이고, 허리 아파. 늙은이 죽네.”
오후 11시.
벌써 10시간을 넘긴 장시간의 녹음에 고통을 호소하던 프로듀서들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들보다 한참 젊은 작곡가 때문이었다.
“끄응…….”
어찌나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가 똑바른지 저도 모르게 척추를 세워야 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시선은 유리창 너머 가수를 바라보고, 손으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필기하고 있다.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집중력이었다.
“작업 속도 봐…….”
“우리가 가르치던 애는 어디로 간 거야. 이제는 우리가 보고 배워야 될 것 같은데?”
“커리어상으로도 이제 쟤가 한 수 위라니까.”
다른 사람들이 일주일은 걸려야 할 작업을 단 10시간 만에 해내는, 그야말로 미친 속도였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2010년도와 비교해도 천지차이라고 할까.
작곡가 업계의 전설인 조규환을 비롯해 피아니스트 하승주, 싱어송라이터 장소원 등등.
업계의 굵직한 인물들을 거치며 그들의 노하우와 작업방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자기 식으로 바꾼 선우주였다.
‘발전 속도가 무슨….’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던 프로듀서들이 이번에는 유리창 너머 한태현을 바라보았다.
‘우주도 우주지만, 태현이도 참 대단해.’
10시간 가까이 서서 노래를 부르는데도 힘든 내색을 않고 있었다.
우주가 토크백 버튼을 눌렀다.
“태현 씨, 혹시라도 힘들면 말을 해 주세요. 휴식 시간이야 조율할 수 있는 거니까.”
-아니에요. 더 할 수 있어요.
땀에 푹 젖은 얼굴로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걱정 말라는 듯 씩 웃는 한태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탈진해서 엎어졌을 텐데, 이쪽도 정말 무시무시한 정신력이었다.
프로듀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러니까 무대에서 날아다니지.’
생긴 거는 천재적인 재능을 믿고 연습을 게을리할 법한 느낌의 능글맞은 인상인데.
상대는 연습량 많기로 소문난 TNT에서도 압도적인 연습량을 자랑했다.
다른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이구동성으로 ‘태현이는 항상 연습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할 만큼.
그리고 그렇게 연습에 시간을 쏟고 나면, 나머지는 SNS로 팬과 소통하거나 팬서비스를 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신기한 애야.’
감성적인 보컬과 함께 천재적인 춤꾼이라고 칭찬 받지만, 정작 당사자의 재능은 평범한 편이다.
그걸 노력으로 지금의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그들보다 반절은 어린 나이지만 여러모로 존중할 만한 점이 많은 가수였다.
어쨌거나…….
‘겉보기로는 참 훌륭한데.’
미친 듯이 노력하는 천재 작곡가와 미친 듯이 노력하는 범재의 조합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 편의 청춘영화 같다.
문제는 그들이 영화에서 뒷배경으로 나오는 엑스트라들이란 것이었다. 그것도 활활 불타는.
‘살려 줘…….’
‘과거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꼭 써놔야지. L.E.A.V.E…….’
세인들이 칭송하는 선씨와 한씨의 조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이것 좀 들어 보세요.”
-의견 청취 좀 할게요. 다들 어떠세요?
시도 때도 없이 어떠냐고, 의견을 제시하라고 닦달하는데. 대답 한 번 잘못하면 눈치와 구박이 쏟아졌다.
그러곤 자기들끼리 깨가 쏟아졌다.
-방금 밴딩이 너무 빠르게 한 것 같은데. 너무 조급하게 한 것 같죠?
“정확해요. 느리게 간다고 불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이 곡은 밴딩 타이밍이 그렇게 중요한 곡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다시 녹음 준비를 하려던 한태현이 웃으며 말했다.
-작곡가님이 오셔서 너무 좋네요.
“저도 이렇게 찰떡같이 제 요구사항을 받아주는 노… 노련한 가수는 오랜만이에요. 태현 씨와 곡 작업을 하기로 결정한 게 정말 잘한 선택인 것 같아요.”
-하하핫!
“꺄르륵!”
근처에 앉은 프로듀서들과 엔지니어들이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연예인들의 시선에 웃었다.
“와하하하하!”
“와하하하! 행복해!”
TJ식 사회생활 웃음이었다.
우주선이 꺄르르 웃었다.
“그럼 이어 갈게요~”
그렇게 밤이 무르익어 12시를 향해갈 때.
휴식시간을 맞이해 소파에 반쯤 시체처럼 쓰러져 있던 프로듀서들에게 우주가 다가왔다.
방긋 웃는 모습에 그들이 놀라 벌떡 일어났다.
“왜, 뭐… 왜, 왜요.”
“네?”
“아니야. 갑자기 헛것이 보여 가지고. 막 네 눈 아래에 점이 보이고….”
어찌나 시달렸는지 우주선을 상징하는 유혹의 점이 착시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이들의 모습에 상대가 키득거렸다.
“저랑 작업한 게 그렇게 힘드셨어요?”
“아니, 뭐…… 응.”
용건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그들이 고개를 갸웃하자, 우주가 소파 맡에 있던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각자 이름이 붙은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TJ 엔터를 방문하는 김에 선물 드리려고 준비했거든요. 저 연습생 때 챙겨 주셨던 분들께 드리려고.”
“야. 뭘 이런 걸 다…….”
“감동이죠?”
장난스럽게 웃는 미남의 모습에 그들이 따스한 미소를 머금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괜히 그들이 눈앞의 인물을 예전부터 좋아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이런 아이였다. 예전부터.
꼬꼬마 시절에 그들로부터 작곡을 배워 온 모습이 눈앞의 인물과 겹쳐져 콧잔등이 시큰할 때.
“우주야…….”
“네.”
TJ 엔터의 프로듀서들이 미소와 함께 물었다.
“……혹시 선물로 귀가는 안 될까?”
“안 돼요.”
“부탁이야. 토끼 같은 딸내미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어? 휴식 시간 끝났네요. 자자! 다들 모여 주세요!”
……씨알도 안 먹혔다.
정말로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선우주였다.
* * *
새벽 1시.
TJ 엔터 소속의 프로듀서들을 귀가시켰다.
“흐아아암~”
“아우, 우리가 가도 될런지 모르겠네. 정말 너희 둘이 남아 있어도 괜찮겠어?”
내가 답했다.
“괜찮아요. 중요한 부분은 다 끝나기도 했고.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래? 다행이네. 그래도 진짜 가도 될지….”
대답을 하던 프로듀서 하나가 걸레로 얼굴의 땀을 슥슥 문질렀다.
넋이 나간 얼굴로 걸레를 문지르는 모습에 내가 말했다.
“그거 걸레인데요.”
“아, 그래? 미안. 내가 빨아서 줄게…….”
“…….”
얼른 귀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이 빠져나간 사람들처럼 비척비척 손을 흔들던 사람들이 ‘수고해~’ 하며 도망쳤다.
태현이가 외쳤다.
“복도 불은 끄지 말아 주세요! 화장실 갈 때 무서우니까~”
“뭐래?”
“태현이가 불을 끄라는데?”
“불, 불… 불이라는 게 맞는 단어인가? 헷갈리네.”
좀비들처럼 ‘불을 끄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모습에 태현이가 입을 다물었다.
“아, 불 끄면 화장실 갈 때 무서운데.”
“너 아직도 그런 거 무서워 하냐?”
“뭐래. 자기도 공포영화 같은 거 잘 못 보면서.”
“……나는 그래도 제주도에서 달걀귀신이랑 데이트도 해본 사람이야. 너 같은 원조 겁쟁이와는 다르다 이 말이지.”
내 변명에 상대가 픽 웃었다.
그러곤 소파에 누워 ‘으어어어’ 하며 흐느적거렸다.
“힘들지?”
“이렇게 장시간 녹음을 해 본 건 오랜만이라서. 조금 있으면 적응할 거야.”
“잠깐 쉬어. 아까 말한 대로 중요한 부분은 다 끝났으니까.”
거기 누워서 아까 녹음한 거나 들어보라고 했다.
팔베개를 하고 누운 녀석이 고개를 까딱까딱 하면서 녹음본을 감상하고는 말했다.
“형.”
“응?”
“다 좋은데, 후렴 부분이 조금 어려워.”
“어떻게?”
“감정을 잡는 게 어렵다고 해야 되나. 아까 다른 분들 있을 때는 물어보기가 좀 그랬는데….”
태현이가 몸을 세우고는 물었다.
“후렴구에서 어떤 감정으로 불러야 될까?”
“으음…….”
“‘Survivor’가 어떤 생각으로 만든 노래인지는 알아. 형이 저번에 얘기를 해 줬으니까.”
‘Survivor’는 태현이를 상징하는 의미로 쓴 곡이다.
한글로 하자면 생존자.
나에게 눈앞의 인물은 언제나 ‘생존자’였다.
위태로운 순간들도 많지만,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는 살아남아 있는 생존자.
-안녕하세요! 저는 한태현입니다!
어수룩한 연습생이 하나 있었다.
처음에 TJ 엔터의 임원인 한영준 총괄이사의 빽으로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것 같다.
실력도 보통이고, 눈치도 없어서 남들한테 ‘우리 큰아버지가 여기서 일해요~! 신기하죠!’ 말하고 다녀서 초장부터 미운털이 박혔지.
-쟤는 금방 잘릴 거 같은데.
모두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얼마 안 가 월말평가에서 아웃될 거라고.
눈치 없이 미움을 사는 성격인 터라 굉장히 겉돌았는데, 또 노력은 열심히 하는 희한한 타입이었다.
-저기… 저 뭐 물어봐도 돼요, 형?
-응.
-저 노래 조금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조금? 조금이면 얼마나?
장난도 못 알아듣고 어… 하며 어버버 하던 그런 애였다.
뭐. 열심히 하는 동생을 보면 또 기특하고 그런 마음도 있고 해서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정말이지 신기한 녀석이었다.
TJ 엔터에서 나만큼 연습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한 연습량을 보여 주기도 했고.
게다가 먹으면 바로 살로 가는 사람이 있듯이 얘는 연습하면 바로 실력으로 이어지는 케이스였다.
‘얘 뭐지……?’
처음에는 보통이었던 춤도 어느 샌가 ‘그거 아냐, 형…’ 하며 나를 가르쳐 줄 정도가 되었고.
보컬도 무난히 데뷔권에 들 정도로 실력자가 됐다.
물론 TNT로의 데뷔과정이 무난한 건 아니었다.
데뷔조가 7인이든 8인이든, 그런 풍문이 돌 때마다 늘 8번 아니면 9번 정도로 꼽히던 녀석이었다.
누구보다 노력하긴 하는데 그렇다고 재능 있는 다른 애들도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좁힐 듯 안 좁혀지는 격차였다. 데뷔조에 들 때까지.
처음 데뷔조에 뽑혔을 때도 나보다 후순위에 있던 녀석이었다.
나는 솔직히… 부족한 춤을 노래로, 특히 얼굴 때문에 안정적으로 연명하는 케이스기도 했고.
하지만 돌아서서 보면 죽은 건 나였고, 살아남은 건 얘였다.
-헐! 형, 나 월말 이번에 상위권 먹었음! 대박 아냐!?
-작게 얘기해…. 월말평가 망친 애들이 다 듣고 있잖아.
최하위권이어서 내가 늘 챙겨 주었던 녀석이 어느 순간 월말평가 상위권에 들었고.
-뭐야?! 나 데뷔조야! 미친!
-떨어진 애들이 듣고 있잖아……. 너 언제 철 들래.
-우와씨! 그럼 우리 같이 데뷔하네? 형이랑 지한빈이랑, 장한별이랑…. 아아악!
상위권이지만 간당간당해서 내가 케어해 주었던 녀석이 데뷔조에 들더니.
-연예계 밥 한두 번 먹나. 벌써 4년차인데.
어느 순간 최정상 아이돌 그룹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멤버가 되어 나타났다.
뭐. 갑자기 꼬꼬마에서 최종보스로 진화한 것 같은 급변화긴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처음에는 TNT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멤버였는데, 그것도 노력으로 또 커버해서 올라온 녀석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살아남아 성공하는 능력.
그런 인물에 대해 감탄을 담아 쓴 곡이 Survivor였다.
“궁금한 건 그거야. 후렴구에서 나는 ‘생존’에 대해서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쓸쓸해야 할까?”
“너는 어떤데?”
“글쎄, 깊게 생각은 안 해 봐서. 우리 직업이 깊게 생각하면 정신이 못 버티는 직업이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
고민하는 태현이에게 내가 말했다.
“굳이 한 가지 감정만 담을 필요는 없어. 마지막에 남아 있다는 건 여러 감정이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런가.”
“쓸쓸할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고, 떠나간 사람이 기억날 수도 있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각날 수도 있고. 혹은 그 무엇도 아닌 공허함일 수도 있고.”
“……으음.”
“한번 고민을 해 봐.”
그러곤 조언했다.
“작곡가로서 한 가지 조언하자면, 어떤 상황이든 솔직하게 부르는 게 최고야.”
“솔직하게?”
“거짓 없이 진솔하게.”
태현이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작업 파일의 몇 가지 부분을 수정하고 있을 때.
지이잉, 울리던 핸드폰을 바라보던 태현이가 말했다.
“어? 지한빈한테 톡 왔다.”
“뭐래?”
“형이랑 아직도 작업하고 있냐고, 자기 지금 놀러 와도 되냐는데?”
“……이 시간에?”
“걔 스케줄이 지금 끝났거든.”
아. 그러고 보니 얘네 TNT지.
멤버 하나하나 개인스케줄이 엄청나게 빡센 최정상 아이돌이었다.
“뭐라고 해? 오라고 할까?”
“피곤할 텐데.”
“오늘 아니면 형 언제 보겠냐고 난리야. 이따 서울 오면 바로 사옥으로 오겠대.”
“그럼 맛난 거나 사 오라고 해.”
“오키. 아우~ 간만에 동창회 하네.”
한태현이 신이 나서 같은 그룹 멤버에게 톡을 보내는 동안 나도 뭔가를 깨달았다.
“아.”
일에 미쳐서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김덕순 여사와 동생들의 톡을 확인하기 위해 폰을 켰다.
“참.”
태현이가 물었다.
“형네는 개인 스케줄 안 해? 이제 이 정도 위치 찍었는데, 슬슬 개인 활동 시작할 때잖아.”
“이미 계획하고 있어.”
“오? 뭔데?”
“그건 비밀이야.”
딱 잘라 말한 대답에 상대가 개드립을 날렸다.
“선 잘 긋네. 그래서 선우주인가?”
“헛소리할 거면 거기 쿠션에다 속삭여.”
“쿠션아~ 너는 저런 못된 말 듣지 마렴.”
애가 좀 많이 힘든가.
쿠션의 귀를 눌러 주며 대화를 나누는 태현이를 떨떠름한 눈으로 바라볼 때.
상대가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웃었다.
“혹시 비주 솔로 나올 거면 좀 늦게 나와 달라고 해.”
“왜?”
“너무 빡세. 3년차에 춤 그렇게 추는 아이돌 처음 봤어.”
거기다 내 노래까지 합쳐지면 못 이길 것 같다며 엄살을 부리는 녀석이었다.
비주의 솔로라.
아직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생각하고 있는 거긴 했다.
그래서 오늘 태현이와 작업하면서 TJ 엔터의 솔로앨범 노하우를 머릿속에 메모해 두기도 했고.
그렇게 동생들 생각을 하며 톡을 확인할 때.
“…….”
“왜 그래, 형?”
“…….”
“뭐라고 톡이 왔길래 그래? 뭐… 흐하하핫! 흐하하하!”
첨부되어 있는 사진들과 톡의 내용을 바라본 태현이가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휴게실 사진.
그곳에서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는 동생들의 사진에 내가 중얼거렸다.
“……얘네 여기서 뭐 하고 간 거야?”
* * *
12시간 전.
“라라라라라~ 라라~”
“라라라라~ 라라~”
러브하우스의 BGM을 절찬리에 깔며 걸어 다니는 4블랙이었다.
셀카봉을 들고 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에 TJ 엔터 직원들이 ‘어!’ 하며 놀랐다.
“네! 맞습니다! 4블랙이에여~!”
“포블랙~!”
연예인처럼 훗훗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이들.
위풍당당하게 걷던 그들이 지나가다가 거울을 보고는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그러곤 눈을 깜빡거렸다.
‘허전하네.’
본능적으로 2:2 구도로 섰는데, 가운데가 휑하니 비어 있다.
마치 투명 선우주가 힝 하고 끼어 있는 느낌.
왕지호가 감탄했다.
“와, 우리 이렇게 보니까 진짜 하찮네여. 머리를 잃어버린 도마뱀 같아여.”
“우리 진짜 용두사미의 사미였구나.”
“이 아저씨가 그래도 생각보다 중요한 존재긴 해요. 거지들의 왕초 같은 느낌이어서 그렇지.”
“리혁아. 우주 형 욕할 때는 조금 작게 해야 돼. 여기 우주 형의 첩자들이 꽤 많다고 들었어.”
서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이야기야.’
레몬 엔터에서도 재물을 뿌려서 환심을 사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선우주에 대해 ‘나쁜 인간!’ 하면 바로 그날 밤에 선우주의 귀에 소식이 들어가곤 했다.
그러니 TJ 엔터에서도 우주교의 잔당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논리였다.
“흐으으음…….”
언행을 조심하며 걷는 4블랙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TJ 엔터 내부의 시설을 탐방하며 영상을 촬영했다.
삐빅-
TJ 엔터에서 어디든 들어갈 수 있는 출입증을 건네주었기에 사옥 곳곳을 탐방하는 중이었다.
“쉿. 여기는 업무공간인가 봐.”
4블랙이 유리창 너머로 [안녕하세요..☆] 하는 전광판 앱을 띄우고 지나가자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바깥에선 어렴풋하게 보이지만 안에서는 훤히 밖이 보이는 특수 유리창.
김비주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전광판 앱을 들었다.
[세상에..☆ 저희가 보이시나요..!]
업무를 하던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왜들 웃으시지?”
“원래 잘생긴 사람 보면 기분 좋아지고 그러잖아여.”
“그래서 우주 형을 보면 사람들이 미친 듯이 웃는 거구나.”
리더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TJ 엔터 사옥을 돌아다니는 졸개들이었다.
그렇게 업무공간을 지나 회사 휴게실 등을 둘러볼 때.
“우와아아아…….”
국내 최고의 엔터사를 자부하는 TJ답게 즐길거리가 엄청 많았다.
당구대도 있고, 카페처럼 꾸며진 독서 공간도 있고. 여기저기 예술적인 그림도 걸려 있었다.
“책이다…!”
읽을거리를 보면 정신 못 차리는 누군가 책들이 꽂힌 서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 볼 때.
“나 손 씻고 싶은데 화장실 같이 갈 사람~”
“형들! 이거 봐여.”
“나 손 씻을 건데…….”
“여기 리혁이 형을 닮은 물고기 초상화가 있어여!”
“어디?”
멤버들이 정신이 팔린 모습에 잠시 입을 비죽이던 김비주가 고민에 빠졌다.
‘우주 형이 절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 사람들도 착한 것 같고. 설마 이런 곳에서 길을 잃겠나 싶었다.
굳은 결심을 마친 김비주가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있는 동안.
“이거 리혁이 형 닮지 않았어여?”
“하나도 안 닮았거든?”
어딘가 못생긴 물고기가 그려진 수묵화.
미묘하게 닮은 느낌이었다.
서리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 앞에 설 때.
“흐하핫!”
어딘가 닮은 모습에 김중현과 왕지호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웃던 중현이 벽을 톡 쳤을 때.
달그락, 달그락.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쿵! 하고 떨어지면서 액자의 유리가 와장창 깨졌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
그리고는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웠다.
“!!!”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들이 뇌를 위탁한 리더에게 ‘그림이 폭발했어여!’ 하는 톡을 보낼 때.
“……어어?”
간단한 복도를 전설의 미궁처럼 헤매던 김비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화장실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키카드를 여기저기 찍고 들어와 보니 이상한 곳이었다.
IT회사의 서버실 같은 공간.
‘여기는 어디지…?’
그리고 그가 발을 내디딘 순간.
“어어?! 어?”
닫힌 문이 잠기고 사이렌이 울리면서 김비주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 * *
TJ 엔터 보안팀.
CCTV를 살피던 직원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TJ 엔터에서 중요한 문건이나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에 보안 경고가 떠 있었다.
보안시스템이 철저해서 어지간하면 출입이 쉽지 않은 곳에 외부인이 들어와 있다는 알림에 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다른 직원들에게 얼른 가 보라고 무전을 치는 한편.
“…….”
CCTV 속에서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실루엣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킬 때였다.
전문 스파이처럼 우아한 몸 동작.
핸드폰으로 우아하게 메모를 하는 듯한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할 때였다.
“……?”
핸드폰을 두드리던 상대가 고개를 들고는 CCTV와 눈이 딱 마주쳤다.
“……비주다.”
“뭔 소리야, 비주가 왜… 비주다!”
“비주네!”
철통 보안을 뚫어낸 스파이의 정체에 보안팀 직원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뭐를 쓰는 것 같은데?”
눈치를 살피던 미소년이 핸드폰 전광판 앱을 소심하게 들었다.
[실례지만.. 여기가 어디인가요?ㅠㅠㅠ]
보안팀 직원들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