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2)화 (44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2화

TJ 엔터 최상층.

골동품이 가득한 집무실에 박태준 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 녀석.”

그가 반질반질한 무언가를 쓰다듬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맨들맨들한 감촉.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반사되는 그것은…!

당연히 영롱한 빛깔을 자랑하는 도자기였다.

“드디어 내 품에 굴러들어 왔구나. 이 녀석!”

이번에 미국까지 가서 경매에서 낙찰받은 골동품이었다.

박스에 동봉되어 있는 증서와 도자기를 번갈아 보는 TJ 엔터 회장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어서 이 아빠의 품에 안기렴. 흐흐흐흐.”

도자기 시점에서 상당히 거북할 법한 미소를 흘리던 TJ 회장이 도자기를 품에 안았다.

그가 숨을 내뱉었다.

“호오, 호오….”

헝겊으로 도자기를 문지르던 박태준 회장이 진열장을 둘러보았다.

지진이 나도 견디도록 되어 있는 진열장에는 그가 전세계를 돌며 수집한 골동품이 모여 있었다.

“여기, 너를 위해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단다. 와하하하!”

도자기를 보관해둔 박태준 회장이 땀을 훔치며 웃을 때였다.

똑똑.

노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회장님.”

“어, 윤 비서.”

“보고 드릴 사항이 있어서 왔습니다.”

종종걸음으로 들어온 비서에게 그가 물었다.

“참, 그 친구들은 지금 뭐 하고 있나? 회사 구경 잘하고 있나?”

“예.”

그의 최대 관심사는 회사 사옥을 돌아다니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아직 사옥 구경을 하는 중인데,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곧 있으면 일정도 끝난다고….”

“다 끝나고 나면 이곳으로 부르도록 해. 차 한 잔 내주면서 이야기 좀 나누게.”

“예, 회장님.”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박태준 회장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보고하겠다는 안건은 뭔가?”

“…이것도 뉴블랙 멤버들과 관련된 것입니다만.”

“무슨 문제가 있나?”

“구경을 하는 과정에서 자잘한 소란이 있었습니다.”

뭔가 소소한 해프닝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회장님이 아끼시는 그림이…….”

“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

“중현 씨가 웃으면서 벽을 톡 쳤는데, 진열된 그림들이 모조리 떨어졌습니다.”

“…….”

“다행히 그림에 손상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액자가 망가져서… 그걸 새로 구매해야…….”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비서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박태준 회장이 물었다.

“벽을 얼마나 세게 쳤기에 그게 다 떨어졌다는 건가?”

“……믿기 힘든 일이긴 합니다만 정말로 톡 쳤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회장의 호통에 서글프게 ‘진짠데…’ 하고 속으로 꿍얼대던 비서가 영상을 내밀었다.

박 회장이 혀를 찼다.

“나 원 참. 세상에 무슨 벽을 톡 쳤다고 그림이 떨어져? 내가 일부러 그거 걸 때도…….”

태블릿 PC 속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깔깔 웃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중현이 정말로 톡, 하고 벽을 매만졌을 뿐인데.

3초 후.

소리는 안 나왔지만 액자들이 떨어지며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

박태준 회장이 다시 재생을 눌렀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정말로 벽을 톡, 쳤는데 액자들이 와장창 떨어졌다.

무슨 전설의 도사가 손가락 끝에 기를 담아 쏘아낸 것처럼 액자들이 갑자기 떨어졌다.

“……그림은 무사한 건가?”

“예. 이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레몬 엔터 측에서 변상을 하겠다고…….”

“우리 측에서 해결한다고 해. 이런 자잘한 액자 값 가지고 인심을 잃을 순 없지.”

자잘하다고 하기에는 보통이 아닌 액자 가격이었지만, 뉴블랙의 가치에 비하면 별것 아닌 값이다.

“그림만 문제 없으면 됐어.”

컬렉션이 무사하다는 이야기에 인상이 온화해지는 골동품 덕후였다.

심신의 안정을 위해 허브티를 홀짝이던 박태준 회장이 비서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런데 비서가 망설였다.

“왜 그러나?”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만.”

“조각상까지 부순 건 아니지?”

“예. 그런 건 전혀 아닙니다만.”

뜸을 들이는 비서에게 박태준 회장이 허허 웃었다.

“그럼 별일 아니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자료보관실에 비주 씨가 침입했습니다.”

“푸웁-! 뭐?!”

박태준 회장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거기를 왜 들어가?’

자료보관실.

말이야 자료보관실이지만… 실질적으로 상당히 뒤가 구린 자료들도 보관되어 있는 장소였다.

“거, 거기를 어떻게 들어간 건데? 아니. 그 가기도 힘든 구석진 데를.”

“손 씻으려고 화장실에 가려다가… 길을 헤맸답니다.”

“아니…….”

대체 길을 어떻게 잃어야 거기까지 들어가는 걸까.

이내 박태준 회장의 앞에 영상이 재생됐다.

[여기가 어딘가요?ㅠㅠ] 하고 묻던 김비주가 이내 [죄송합니다ㅠㅠㅠ 제가 바보예요] 하며 핸드폰을 들어 보이는 장면이었다.

“하필이면 높은 등급의 출입카드까지 들고 있어서…….”

“그거 주라고 한 놈이 누구야?”

“…….”

비서가 눈치를 살피며 그를 흘깃 바라보았다.

어떤 미친놈이… 라고 하던 박태준 회장이 말을 삼켰다.

‘나구만.’

와하하하, 와하하.

박태준 회장이 푸근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미친놈이었군.’

허허 웃던 박태준 회장이 목 뒤를 주물렀다.

처음에는 어디서 이런 특별한 녀석들을 얻은 것인지, 레몬 엔터가 행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이 멀찍이 진열장의 도자기로 향했다.

‘규호 군.’

TJ 엔터에서 최고로 유능했던 매니저가 눈앞에 스쳐 갔다.

‘규호 군, 자네가 고생이 많네.’

초탈한 미소를 짓던 박태준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밖에 특별한 건?”

“없습니다. 아직 뉴블랙 멤버들이 사옥 구경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

박태준 회장이 시계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직 대낮이다.

“언제 집에 간다고 했지?”

“저녁까지 먹고 간다고 들었습니다.”

“…….”

해가 지려면 앞으로 대여섯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그때, 박태준 회장의 머릿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스쳐 지나갔다.

“아!”

“회장님?”

“그, 그! 아까 내가 회장 집무실로 오라고 한 거 말이야.”

“예.”

“취소시켜. 절대 들여놓으면 안 돼.”

지진까지 견디도록 만들어놓은 진열장이지만 뉴블랙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사옥이 무너져도 그의 덕질이 무너지게 할 수는 없었다.

“저, 회장님.”

“어?”

“그게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벅저벅.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랄한 걸음소리에 박태준 회장의 뒷목에 난 흰머리들이 쭈뼛 섰다.

“아… 안 돼!”

꺄르륵. 꺄핫.

“이, 이걸 어떡한다.”

“돌려보낼까요?”

“아니. 우린 이 자리에 없는 걸로 하지.”

걸음소리가 회장실 앞에 멈췄다.

똑똑.

“…….”

두 남자가 숨을 삼켰다.

-똑똑~ 계시나여? 건강한 지호가 왔어여!

-야. 넌 예의가 없냐?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서리혁 외 3인이 회장실 방문을 요청합니다.

-안 계시나? 아무 대답이 안 들려오는데?

그런 말에 두 남자가 안심할 때.

-아니야.

굵직한 목소리가 푸근하게 말했다.

-안에 사람 두 명의 기척이 느껴져. 나이 든 남자 하나와 젊은 남자.

-진짜 형이랑 있으면 제 삶의 장르가 더 재미있어지는 느낌이에여. 막 CIA에 수배된 거 같고.

-중요한 이야기 하시나 보네. 그럼 우리 이 앞에서 기다릴까? 남는 게 시간이잖아.

-그래여!

박태준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다리다가 지쳐서 떠나거라.

-우와! 여기 우주 형을 닮은 조각상이 하나 있어여.

-오. 서양 선우주~

-뭔 소리예요. 우리팀 아저씨가 훨씬 더 잘생겼구만.

-이거 되게 신기하다아~ 우와아! 오래된 조각상인가 봐.

박태준 회장은 그의 인생 최고의 스피드로 뛰쳐나갔다.

*   *   *

“……얘네는 대체 뭘 하고 간 거지?”

비주는 무슨 보안팀한테 체포당하지를 않나. 중현이는 염력으로 액자를 깨뜨리지를 않나.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건지, 박태준 회장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보고 황당한 웃음을 터뜨렸다.

태현이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왜 그래? 흐하하핫!”

동생들은 활기차게 웃고 박태준 회장은 굉장히 긴장해 있다.

마치 ‘도와주세요. 이놈들에게 협박받고 있습니다’ 하며 신호를 보내는 듯하다고 할까.

태현이가 말했다.

“회장님 이런 표정 진짜 오랜만에 보네.”

“그래?”

“가끔씩 주가 폭락해서 시총 몇백 억 증발하고 그러면 하루종일 저 표정이거든. 도자기 문질문질 하시고.”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기에 수백 억의 주식 손실에 나온다는 표정을 만들어낸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더 이상 생각할 정신머리가 없기도 했고.

“흐아아암~”

작업파일을 세이브하고, 백업까지 마치고는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소파에 몸을 누이고 있던 태현이가 물었다.

“끝?”

“끝.”

창밖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오전 7시.

‘Survivor’의 녹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나와 태현이가 동시에 ‘으아아아!’ 하며 함성을 질렀다.

“근데 우리 진짜 몰골이 말이 아니네.”

녹음 부스 유리창에 비친 두 얼굴이 꾀죄죄하다.

두 눈은 퀭하고 핏발이 서 있고, 눈가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 있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힘들긴 하지만 작업을 끝내고 나니 홀가분하다.

“옥상으로 가자. 형. 한빈이가 기다리고 있대.”

“옥상?”

“하늘정원.”

TJ 엔터 최상층에 있는 야외 정원이었다.

직원들이 담배 타임으로 쓰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진짜 예쁘게 정원처럼 꾸며 놓은 곳.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자 상쾌한 아침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으으.”

겉옷 챙겨오기를 잘했네.

몸을 부르르 떨며 이슬 맺힌 잔디를 밟으며 걸어가자 울타리 쪽에서 두 인영이 손을 흔들었다.

“여이! 여이!”

“우주선 씨, 웰컴~!”

TNT의 동생라인, 지한빈과 석지훈이었다.

태현이와 ‘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녀석들이 내게 ‘혀어엉!’ 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보네.”

“진짜 반갑다, 야. 근데 지훈이 넌 여기 왜 있어? 드라마 촬영 중 아냐?”

“잠깐 놀러 왔지.”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해 보이는데, 눈과 입은 웃고 있었다.

“나 빼고 다들 파티한다는데 빠질 수가 있나. 짬 내서라도 와야지.”

“촬영은?”

“한두 시간 있다가 문경으로 가야 돼. 사극 촬영이라 세트가 거기에 있거든.”

지훈이가 최고봉으로 힘들긴 했지만, 나를 비롯해서 다들 바쁜 스케줄로 눈이 퀭하다.

한빈이가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녹음은? 잘 됐어?”

“뭐, 잘 된 거 같아.”

내 반응에 둘이 이열 하며 웃었다.

“야, 한태~ 너 이번에 곡 대박 나겠다?”

“뭐래.”

“형. 얘가 형한테 곡 받는다고 겁나게 자랑해댔거든. 나 우주 형한테 곡 받는다~~”

“안 그랬거든?”

“은 그릈그든~~”

태현이가 ‘야’ 하며 장난스럽게 정색하고, 둘이 에베베 하며 놀리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TJ 엔터 시절부터 뭉쳐 다녔던 이들끼리 모이니 분위기가 즐거웠다.

그 속에서 같이 웃던 내가 하늘정원에 차려진 세트를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근데 이게 다 뭐냐. 출장 뷔페라도 불렀어?”

“뭐. 비슷하지.”

한빈이가 말했다.

“편하게 먹으려면 음식점에는 못 가니까.”

“그건 그렇네.”

“회사 앞에 우리 사생이랑 형네 사생이랑 섞여서 지금 난리도 아니더만. 소문 다 나서.”

으으 하며 다들 몸서리를 쳤다.

“그래서 내가 센스 있게 가든파티를 준비했다, 이 말씀.”

“오오.”

“그러니까 나를 찬양해라!”

“한태현! 석지훈! 선우주!”

한빈이 이름만 빼고 연호했다.

떠들썩한 웃음을 흘리며 하늘정원에 마련된 음식들을 살폈다.

무슨 출장 뷔페라도 나온 것처럼 보온장치 위로 음식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삐죽 튀어나온 거대한 갑각류의 다리까지.

“……킹크랩?”

“아. 아까 오는 김에 킹크랩 생각 나서 3kg짜리로 하나 쪄 옴.”

남다른 스케일이었다.

지한빈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자, 이 동생이 멋지게 차려 온 거니까. 마음껏 드셔.”

“오냐.”

음식을 퍼 와서 테이블에 앉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든파티라고 하더니 정말로 무슨 색색의 전구까지 걸어놔서, 어디 유명 음식점에 온 듯했다.

다소 과한 아침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스케줄 어디 가냐. 샵 바꿨냐. 해외 투어 일정은 어떻게 되느냐 등등.

처음에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다가, 오랜 친구들끼리 만나면 그러하듯 과거로 대화 주제가 옮겨 갔다.

“그때 우리 다 더럽게 눈치 없었잖아.”

“흐하핫!”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때 신개팀 직원들이…….”

나도 조금 늙어 가는 건가.

연습생 때도 자주 했던 과거 이야기들인데, 지금 다시 들어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어쩌면 다들 성공해서 그때 그 시절이 미화된 걸 수도 있고.

석지훈이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근데 다시 하라면 못할 거 같아.”

“그건 인정.”

“이 바닥이 진짜 운빨이잖아. 우리도 운 좋게 터져서 그렇지. 또 그 시절로 돌아가서 똑같이 이렇게 될 수 있을지는…….”

나도 공감을 하고 있을 때.

지한빈이 말했다.

“아, 근데 형은 아님.”

“어?”

“형은 일단 성공했을 거 같아.”

“뭔 소리야. 그게.”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에 떨궈 놨어도 나는 성공했을 거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녀석들이었다.

옛날부터 내가 챙겨 줘서 그런지, 얘네는 나를 지나치게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고기를 썰면서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어? 장한별 전화 왔다.”

“받아. 받아.”

5인조 모임에서 지금 유일하게 참석하지 못한 장한별의 영상 통화였다.

곧바로 화면 속에 머리를 넘긴 미남이 나타났다.

-Yo! 형님!

“오랜만이야.”

-아 진짜 꼭 내가 한국에 없을 때만 이런 거 하고 놀더라.

“지금 중국이야?”

-예압. 상하이임.

호텔 창밖으로 상하이의 풍경을 보여 주는 장한별이었다.

원래는 중국의 장씨인데, ‘한’국에 ‘뼈’를 묻겠다고 본인이 택한 예명이 장한별이다.

TNT의 유일한 중국인 멤버이자 중국 인기 담당인데, 언젠가부터 늘 중국에 있다.

-아무튼 얘네랑만 놀지 말고. 나랑도 좀 놉시다. 진짜 내가 한국에 가면…….

“그래. 만나서 밥 먹자.”

한참 동안 통화를 하고는 다 같이 ‘뿅’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른 녀석들도 손을 아련하게 흔드는데, 전반적인 대화 분위기에서 몇 가지가 읽혔다.

……한별이는 아마 재계약을 안 할 것 같다.

“밥 먹을까?”

다시 웃으면서 식사하기는 하는데 공기가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한빈이가 기지개를 켜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형도 알고 있겠지만, 아마 올해가 우리 마지막 활동일 거야. 앨범이야 가끔 내겠지만…….”

TNT란 그룹의 특성 때문에 예견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이돌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하면 TNT란 답이 나올 만큼 TNT는 원탑의 자리에 있다.

틴스피릿이 최정상에 올라왔다고 하지만, 아이돌판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여전히 TNT가 정상급 아이돌의 상징이라고 할까.

객관적인 규모만 따졌을 때도 국내 최대 규모의 팬덤이긴 했다.

다만 그게 우리나 틴스피릿처럼 그룹 팬덤이 아니었다.

TNT의 팬덤 투게더는 동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모인 삼국지의 연합군처럼 개인 팬덤의 연합 같은 형식이다.

태현이 팬과 한빈이 팬이 같은 팀인 그런 느낌으로.

석지훈이 말했다.

“회사도 계산이 다 된 거라.”

TJ 엔터라는 회사의 장점이자 단점은 아티스트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는 점이다.

무조건 돈이 되는 쪽으로만 움직인다는 당연한 논리.

TNT가 벌어 주는 돈보다 멤버들이 개별 활동으로 벌어 주는 돈이 더 클 거라고 계산이 된 모양이다.

“너희는?”

“뭐. 회사에서 우리 의견이야 당연히 신경 쓰지. 근데…….”

의견의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멤버들 사이에서도 다 같이 ‘팀 활동!’ 하는 건 아닌 듯했다.

“한별이 같은 경우는… 솔직히 좀 쌓일 대로 쌓이기도 했고.”

“왜?”

“돈 벌라고 중국에서 자꾸 개인 활동 뺑뺑이만 시켜대니까. 걔는 한국에서 팀 활동 하고 싶어하거든.”

“회사에서도 딱히 큰 미련은 없는 거 같아. 그냥 계약기간 끝날 때까지 최대한 뽕만 뽑고.”

어차피 재계약을 해도 지금과 똑같이 뺑뺑이일 테니 굳이 남을 이유가 없다는 듯했다.

멤버들도 그간의 일을 생각하면 존중한다는 분위기고.

얼마 있으면 나온다는 신규 남자 아이돌의 영향도 있고,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인 듯했다.

“에이~”

태현이가 손사래를 쳤다.

“분위기 우중충하게 만들지 말고. 밥이나 맛나게 먹읍시다.”

“예이~!”

웃으면서 밥을 먹고 있을 때, 지훈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때 진짜 형이랑 같이 데뷔했어야 되는데.”

“응?”

“형이 있었으면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아서. 이런 건 구심점이 있어 줘야 하는 건데…….”

“내가 무슨 구심점이야.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밥 먹어.”

“너무 진지했나. 요새 연기하는 캐릭터가 진지한 인물이라서 나도 모르게.”

TNT의 멤버들이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슬쩍 웃으면서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다들 원하는 것을 얻어 행복한데,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아 보였다.

같은 꿈을 꾸면서 행복했던 녀석들이 더 이상 함께 꿀 꿈이 없어 울적해한다고 할까.

“근데 우리 진짜 꿈을 이루긴 했다.”

태현이의 뜬금없는 말에 우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월말평가 끝나고 나면 맨날 여기서 과자 까 먹었잖아.”

“맞아. 맞아.”

“직원들 눈치 보여서 막 숨어서 과자 먹고 그랬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당시에 여기 조무래기들과 함께 숨어서 과자 먹고 훌쩍이고 그랬는데.

“그때 우리가 그랬잖아. 나중에 성공하면 여기서 가든파티 열자고.”

“맞아.”

흐하하핫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깜빡하고 있던 일이긴 한데 정말로 그랬다.

서로의 소속을 비롯해서 시기가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때의 꿈 중에 하나를 이룬 셈이었다.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여름밤에 몰래 모여 과자를 까먹고, 미래에 어찌 될지 불안감 어린 시선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당시 우리에게 세상의 전부 같았던 이 회사를 바라보며 불안과 설렘을 느꼈던 그런 시절을 떠올렸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여전히 똑같은 하늘 아래, 달라진 서로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진짜 오래되긴 했다.”

“시간이 엄청 지났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저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홀가분하면서도 웃음 가득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식사를 마무리하고선 각자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인사를 나누었다.

“잘 있어. 형.”

“너희도.”

지훈이와 한빈이에게도 인사를 하고.

“오늘 고마웠어. 형.”

“너야말로 서 있느라 고생했지. 혹시나 노래 때문에 궁금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

“옙.”

짓궂게 웃던 태현이가 말했다.

“근데 뭐 어차피 우린 금방 또 만나게 될 거라.”

“금방?”

“뭐, 보면 알 거야.”

아리송한 소리를 하며 웃는 태현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옛날 동생들에게 내가 손을 흔들어 줄 때.

녀석들이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뭐기는. 청구서지.”

“청구서?”

“형이 우리한테 밥 사 주기로 했잖아.”

“응.”

세 녀석이 씩 웃었다.

“이게 바로 그거야.”

“……?”

“고기 사 준다고 한 거에 이자를 좀 붙였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그럼 이만~”

멍하니 청구서를 바라보았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

“야!”

“으아아아악! 작곡요괴다!”

“아니, 밥에다 황금을 뿌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 돈이….”

“돈도 엄청 벌면서 치사하게. 좀 쓰면 어떠냐…!”

“이것들이! 너희 거기 안 서?”

빨빨빨 도망치는 녀석들을 파파팟 추격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얘네부터 지옥으로 보내고 집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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