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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7)화 (44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7화

멍하니 바라보는 나에게 석환 형이 말했다.

“우주야.”

“응?”

“주말 시트콤이잖아.”

우리 TF팀장님이 한숨을 쉬었다.

“요즘에 사람들이 시트콤 잘 안 보는 거 알지?”

“응.”

“그리고 이거 방영 시간은 주말인데, 이런 주말 시트콤에서 네 비중이 어때?”

“엄청 작지.”

거기까지 대답한 나에게 매니저가 생각해 보라는 듯 말했다.

“제작사 입장에서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드라마인데, 비중이 적은 배역에 네가 들어오겠대.”

“……좋은가?”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지! 바보야.”

“아니. 바보라니.”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내가 출연한다는 걸 가지고 온갖 홍보를 할 수 있는데, 출연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나, 떨어질 수가 없었던 건가?”

“그래, 인마.”

“…….”

왠지 모르게 허망했다.

우리 TF 팀장님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설마 못 붙을 거라고 생각했어?”

“오디션은 볼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너희도 슬슬 자기 위치를 깨달을 때가 됐어.”

머쓱하게 웃는 내 모습에 석환 형도 웃었다.

“뭐, 그래도 잘됐네.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 해도 제작사 입장에서 네가 얼마나 기특하겠어.”

“그건 그렇지.”

제작사 입장에서 그냥 온 연기자와 준비하고 온 연기자는 다르니까.

첫 인상을 좋게 주기 위해서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지금처럼 밤을 새워서까지 다급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너무 과하게 연습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얼마나 연습을 했는데 그래?”

“연말 무대 준비하는 것처럼 연습했거든.”

“…….”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왜 거기서 그런 연기 톤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네. 정말 거기서 그 톤으로 해야 될 거 같아여? 우주 형, 형이 저한테 말했던 것처럼. 정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여? 깔깔깔!

-에이, 내가 시청자면 방금 장면에서 채널 돌렸다!

-이게 왜 이해가 안 되는 거예여? 형이 K가 됐다고 생각하고 대사를 치면 되는데… 이게 안 돼여?

정말 스파르타식 훈련이었다.

왜 동생들이 나와 작업을 하는 걸 두려워하는지 깨달았다고 할까.

리혁이가 거울 치료라며 키득거리고. 비주와 중현이가 열심히 팝콘을 뜯으며 구경했다.

-내가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지?

-네. 형은 되게 자상하게 설명해 주는 편이기도 하고… 이 정도는 아니에요.

비주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의 두 배 정도?

여러모로 나 자신에 대해 잠시 돌이켜 보는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단기간에 막내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아 ‘요원 K’의 연기를 어느 정도 완성시킨 터였다.

제작사 입장에서 좀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을까 싶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얼마나 준비를 했는데 그래?”

“좀 많이…?”

석환 형이 대본을 건네주었다.

오디션을 본다고 생각하고 그중에 대사 하나를 쳐 보라는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요원 K의 대사를 읊었다.

“…….”

처음에는 살짝 놀란 듯 바라보던 석환 형의 얼굴에 이내 미소가 가득해졌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땠어?”

“글쎄다. 내가 연기 보는 눈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석환 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제작사 사람들이 보면 깜짝 놀랄 거 같긴 하네.”

*   *   *

드라마 제작사, 곤 픽처스.

지금 이곳에선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 거기 먼지 안 보이게 깨끗하게 닦아 놓고. 화분 좀 예쁘게 정렬 좀 해 봐봐.”

“아유! 먼지! 이거 얼른 좀 치워요.”

“언제 온대요? 오기 전에 여기도 치워 놔야 되는데…!”

사무실 직원들이 바닥을 쓸거나 화분을 예쁘게 정렬하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이따 찾아올 귀한 손님 때문이었다.

김우용 대표가 종종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누볐다.

“빗자루 좀 줘 봐.”

손수 빗자루까지 들고 청소를 한 후, 김 대표는 설레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우주가 우리 드라마에…!’

뉴블랙의 멤버가 이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소식은 아직도 믿기가 힘들었다.

그야말로 대박.

대형 제작사였다면 인기 아이돌의 출연이 어느 정도 반가운 수준이겠지만 그들은 경우가 달랐다.

‘이번이 첫 지상파 드라마다.’

지금까지 그들은 대부분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를 제작했다.

참신하다고 인터넷에서 호평을 받긴 했지만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는 상황.

그런데 이번에 운 좋게 TBC와 시트콤 계약이 됐다.

그 덕에 인지도 있는 배우들을 섭외할 수 있었고, 투자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도 현재 제작하는 드라마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이건 된다!’

감독의 역량이 뛰어나고 각본도 재미있다.

문제는 홍보였다.

-요즘에 시트콤 누가 보냐ㅋㅋㅋㅋㅋ

-이것도 또 뭐 막화에 다 죽고 그러겠지

-사회풍자한다면서 이도저도 아닌 교훈 주려고 그런 것만 아니었음 좋겠음

-주말 시트콤 간만에 하네 화이팅

시청자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1화만… 진짜 딱 1화만 봐 주면 되는데!’

일단 1화를 최대한 많이 보게 하는 게 중요한데, 주말 시트콤 특성상 홍보할 수 있는 게 적었다.

몸값이 억대인 톱스타를 기용할 수도 없고, 스타 작가도 없고. 장르물처럼 소재로 어필하기도 힘든.

그래서 보도자료 돌릴 건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감독님, 그런 의미에서 요원 K 배역 말이에요.

뉴블랙에게 섭외 제안을 한 건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인지도 있는 유명인을 카메오처럼 이 배역에 넣어 보는 건 어떨까요?

-괜찮네요. 그렇게 진행하시죠.

그리고 그들이 제일 먼저 떠올린 1번이 바로 뉴블랙 우주였다.

온갖 기상천외한 묘기를 부릴 줄 알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모까지.

거기다 현재 미스터 프로듀서로 인해 국내 아이돌 중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친구가 우리 걸 할 리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해도 다른 데 가지 않을까요? 밥만 먹어도 기사가 나는 애들이잖아요.

-만약에 한다고 하면, 그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죠. 어떤 식으로 절을 할지.

설마 되겠냐 하면서 제안만 넣어보자 했는데…….

갑자기 ‘오디션을 보겠습니다’ 하는 그쪽 매니저의 전화가 왔다.

하늘에서 황금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었다.

‘무조건 붙잡는다……!’

입에 구강 스프레이까지 뿌리며 결의를 다지는 김우용 대표였다.

그 동안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인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감독과 작가가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이야, 진짜 잘생겼네.”

“실물도 이렇게 잘생겼으려나? 카메라 빨은 잘 받는 것 같은데, 구도 잡기 좋게 생겼어.”

기대 가득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일명 ‘황 남매’, 황정연 작가와 황정구 감독이었다.

예능 작가를 하다가 드라마 각본가로 전향한 황 작가와 케이블 드라마를 몇 차례 작업한 황 감독.

실제로도 남매 사이인 둘이 노트북 속 우주를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근데 누나.”

황정구 감독이 누나에게 말했다.

“이 친구 연기는 좀 괜찮으려나?”

“왜?”

“K라는 배역이 뭐, 큰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솔직히 기본은 해야 되잖아.”

“마법학교인가 그거 CF에서는 잘하던데?”

“그건 CF고. 정극은 다르지.”

홍보 효과 때문에 무조건 OK 하긴 했지만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기본만 해도 좋을 텐데…….’

뉴블랙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자꾸만 기상천외한 발연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제 본 영상 때문이었다.

[진정한 발연기]라는 뉴블랙 TV의 영상인데, 발바닥에 얼굴 표정을 그린 중현이 근육을 꿈틀거리며 발연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해당 영상의 best 댓글은 다음과 같았다.

-뭐야? → 왜 이런 영상이 존재하는 거지? → 하지만 일단 본 이상 나만 봐선 안 된다 → 너 이거 봐봐 (무한반복)

애써 고개를 흔드는 황정구 감독이었다.

‘출연 자체에 감사하자.’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돌이지만 일단 우주가 나온 이상 시청률이 어느 정도 확보된 셈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망을 보고 있는 직원이 도도도 달려와 말했다.

“대표님! 차 왔습니다!”

“왔어?”

“네! 대박…!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차예요!”

“준비해야겠군.”

곰처럼 커다란 덩치의 김우용 대표가 종종걸음으로 대표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곤 픽처스의 관계자들이 자세를 정돈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날카로운 인상의 매니저가 들어온 후, 길쭉한 비율을 자랑하는 인물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

그들이 여태까지 본 사람 중 제일 잘생긴 청년이었다.

*   *   *

화기애애한 웃음이 감도는 대표실.

“하하하하!”

“하하하!”

김우용 대표가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다 우주 씨가 우리 드라마랑 연이 닿았을까요? 그게 너무 궁금했는데.”

“아, 대본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서, 출연 기회를 놓치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어요.”

우주가 화사하게 웃는 모습에 황정연 작가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그리고 저희 멤버 중에 연기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감독님 작품 중에서 <초록별>을 너무 좋아한다고 추천해 줬거든요.”

“지호 씨가 그래요? 핫핫.”

“네, 제가 여기 나온다고 엄청 질투했어요.”

그들을 추켜세워 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끄는 우주였다.

TV 속에서는 발랄하게 작곡가들을 조지고 다니는 우주선인데 실제로 보니 완전 딴판이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던 우주가 농담처럼 말했다.

“혹시 저희 멤버 중에 감이 좋은 친구가 있는 거 아시나요?”

“아! 그 마법의 젤리 성경!”

“네, 그 친구가 이 드라마가 정말 잘 될 거 같다고 말을 해 줬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왔어요~”

비밀 얘기를 하듯 소곤거리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점쟁이에게 ‘대박 날 것이다!’ 하는 말을 들은 것처럼, 성공이 절실한 입장에서 너무나 기껍게 들렸다.

<우리 가족은 외계인> 관계자들의 호감도가 +100씩 상승하는 가운데.

황정구 감독이 말했다.

“그나저나 발성이 진짜 좋네요. 발음도 정말 좋고.”

“감사합니다.”

“이래서 뉴블랙 노래는 가사가 잘 들렸던 거구나.”

배우로서 가장 기본인 대사 전달력, 발성과 발음에서 합격점을 넘어 만점 수준이었다.

화제가 거기까지 이르렀을 때.

김우용 대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준비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미팅 자리에서 연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우주가 산뜻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제작사 인원들은 자세를 정돈하면서도 눈매를 좁혔다.

‘괜찮으려나?’

무의식적으로 말투나 표정에 다정함이 묻어나는 타입이다.

반면에 요원 K는 딱딱하고 표정이 없는 무미건조한 타입.

대개 초심자가 자신과 정반대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너무 다르게 하려는 나머지 뻣뻣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것이다.

“어떤 장면을 해볼까요?”

황정구 감독이 물었다.

“특별하게 준비한 게 있나요?”

“혹시 몰라서 다 연습했습니다.”

“그러면 씬23을 가볼까요? 요원 K가 외계인 가족을 심문하는 씬으로.”

“네!”

감독이 대본을 보며 말했다.

“외계인 가족이나 상사들의 대사는 제가 칠 테니까, 오디션 본다는 생각으로 연기해 봐요.”

“네.”

“그럼 시작하죠.”

우주가 테이블을 향해 몸을 슥 기울이며 깍지를 꼈다.

씬 23.

어두운 취조실에 외계인 가족들이 앉아 있고 요원 K가 그들을 바라본다.

‘대사를 암기해 왔나 보네.’

황 감독이 기분 좋게 웃으며 연달아 세 대사를 쳤다.

“무, 무슨 일이죠?”

“왜 저희가 여기 있는 거죠?”

“저희 이상한 사람들 아닌데….”

몹쓸 발연기였지만 상대의 표정에는 미미한 꿈틀거림조차 없다.

그리고 우주의 표정 변화를 본 제작사 인원들이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K다!’

그들이 딱 원하는 요원 K가 앞에 있었다.

다정함 따윈 찾아볼 수 없는 회색빛 인간이 외계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차갑지만 동시에 무언가 열망이 끓어오르는 눈빛.

“안녕하십니까. 저는 관리국에서 나온 요원 9762-1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조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사무적인 어조가 몹시 자연스럽다.

제작사 인원들이 ‘합격이다!’ 하며 흐뭇해할 때, 황정구 감독은 연기를 중단시키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

‘더 보고 싶다.’

왠지 모르게 더 보고 싶은 연기였다.

황정구 감독이 침을 꼴깍 삼키며 외계인 가족의 대사를 이어 가고, 우주가 그에 대해 응수했다.

전반적인 대화는 ‘너희 외계인인 거 안다’ 하고 외계인들이 뜨끔해서 ‘아닌데! 아닌데!’ 하는 내용이었다.

대사를 완벽히 암기한 우주가 요원 K처럼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일단 이걸 보시죠.”

가상의 007 가방을 꺼내는 사람처럼 완벽한 마임으로 테이블에 투명상자를 올리는 우주였다.

진짜 상자가 있는 듯한 착시를 느낄 때.

K가 가상의 가방을 열자 달칵, 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

극중에서는 해당 가방에 현찰 5억이 담겨 있다.

외계인의 정체가 발각되는 코믹한 장면을 그리기 위해, 외계인 가족들에게 심박 측정 장치를 부착하고 5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아무 변화 없는 심박수.

요원 K가 뒤에서 보는 특수 유리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일 때, 관계자들은 저도 모르게 끄덕였다.

그 다음 장면은 대본과 같았다.

무능한 상사들이 역시 ‘K야!’ 하고 K가 예의바르게 응수하는 그런 장면.

하지만 외계인 가족들을 상대할 때와는 또 미묘하게 다른, 안에 색감이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쯤에서 끝났을 때.

“아이고오오오! 우주 씨 어디 있다가 이제 왔어요!”

김우용 대표가 박수를 치며 크게 기뻐했다.

마찬가지로 눈을 크게 뜨고 있던 제작피디, 감독, 작가의 얼굴에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미소가 샘솟았다.

*   *   *

한 10분 정도 잘한다, 잘한다 하고 칭찬을 들었다.

열심히 준비한 보람이 있다고 할까.

예상외의 준수한 연기력이었는지 감독님이 연신 ‘진짜 K를 보는 줄 알았다’ 하며 칭찬해 주었다.

“근데요,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황정연 작가가 내게 물었다.

“아까 보니까 외계인 가족을 심문할 때랑 상사들이랑 얘기할 때가 표정이 좀 달라보였거든. 이유가 있어요?”

“아. 그거요.”

지호가 내게 말해 주었던 씬23을 내 방식으로 해석한 연기였다.

“대본 속의 장면을 제 식대로 한번 해석해 봤거든요.”

“해석…? 이걸요?”

“네. 잘하고 싶어서.”

어머 하는 황 작가님에게 설명했다.

“보통 어느 조직이든 간에 유능한 사람이 보이면 자기 라인으로 포섭하려고 하잖아요.”

“그렇죠…?”

“근데 여기서 요원 K는 어느 라인에도 속한다고 볼 수 없는 사람이고요.”

이상했다.

이 정도로 유능한 캐릭터라면 저 상사 중에 하나가 자기 라인으로 포섭하거나 챙길 텐데 그런 반응이 없다.

입에 발린 칭찬은 해 주지만 공식적인 보상은 없다고 할까.

“말은 최고의 요원이라고는 하는데, 실질적으로 유용한 도구 취급이잖아요. 그런데 주인공은 어떠한 불만도 없어 보이고요.”

“그렇죠.”

“제가 생각하는 K는 출세 욕망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는 캐릭터예요.”

진지하게 경청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말했다.

“만약에 부와 명예에 연연했다면 다른 일을 했을 것 같거든요.”

무슨 일을 하든 지나치게 유능한 캐릭터.

수박 장사를 해도 몇 년 뒤에 워터멜론 코퍼레이션을 세울 인물이 바로 요원 K였다.

그런 그가 조직 내의 성공도 마다하고 일에 집착하는 이유.

“제가 생각한 합리적인 이유는 이거예요. 요원 K에게는 반드시 이렇게 외계인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외계인을 따라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

“그래서 외계인과 인터뷰할 때는 눈이 약간 이글거린 거였네!”

“네. 그 부분에 차이를 주고 싶었어요.”

“어쩐지.”

그쯤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황정연 작가를 바라보자, 상대가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정답을 찾아서 대견한 제자를 바라보듯 조용히 웃던 작가님이 말했다.

“우주 씨.”

“네?”

“정말 잘 왔어요. 우리 드라마에.”

내 손을 덥석 잡는 곤 픽처스 사람들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다가 이내 나도 같이 웃었다.

미팅 분위기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   *   *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하하하!”

그렇게 계약을 하고 기념 꽃다발까지 품에 안고 내려왔을 때.

차량 문을 열자 네 얼굴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땠어여? 뭐래여?”

“연기하라고 시켰어요? 뭐래요?”

“형! 잘 됐어요?”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생들에게 내가 꽃다발을 내밀어 보이며 근엄한 표정을 풀었다.

“세 글자.”

“……?”

“대성공.”

“……!”

우아아아 하는 환호가 돌아왔다.

“야! 나 연기 잘하나 봐!”

“거봐여! 제가 하면 된다고 했잖아여! 아이고, 우리 맏둥이 잘했다!”

“뭐라고 했어요? 칭찬 엄청 받았어요?”

미팅 자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고는, 흥분 상태로 막내에게 말했다.

“지호야. 네 말이 맞더라. 내가 해석한 거 말하니까 작가님이 바로 그거라고 하던데.”

“진짜여? 허어어어! 그게 진짜 핵심이었다니!”

“진짜 신기하더라.”

“저도 그게 맞는지 긴가민가했는데 진짜였네여!”

막내와 내가 대박 하며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정말 힘들게 준비한 보람이 있었다.

*   *   *

곤 픽처스의 대표실.

황정구 감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친구 완전 물건인데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주연 쪽을 줘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어쩜 저렇게 K랑 찰떡이래요? 저거 마냥 쉬운 배역도 아닌데.”

김우용 대표가 우아하게 커피를 들이키는 황정연 작가를 바라보았다.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저 친구가 말했던 K의 해석이 정말 맞아요?”

“아뇨.”

딱딱한 응수에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 불만 가득한 황정연 작가.

“예? …아니라고요?”

“전혀 아니에요. 저 친구 해석이…….”

눈매를 좁히던 그녀의 모습에 다들 침을 꿀꺽일 때.

황 작가가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너무 좋았어요…!”

“……?”

“아니! 이게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쓴 배역이 아니거든요! 그냥 요원 하나 필요해서 쓴 건데.”

“엇…….”

“내가 별 생각 없이 쓴 걸 말이 되게 해 왔다니까요. 어떻게 여기까지 생각을 해 왔지? 연기 선생이 코칭을 해 줬나?”

황정연 작가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요원 K 비중 말이에요. 조금 더 늘리는 게 좋을 거 같죠?”

모두가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였다.

“동의합니다. 메인 스토리랑 좀 더 엮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저 정도 연기면 다른 배우들이랑 붙여 놔도 케미가 살 것 같고.”

그렇게 요원 K의 비중에 대해서 제작사 관계자들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요원 K의 서사와 분량이 생겨나는 가운데, 이름 없던 K란 배역에 이름도 붙었다.

“K…면 김 씨겠죠?”

“다른 배역처럼 이름은 원래 이름으로 쓰는 걸로 하고.”

“김우주. 딱 좋네!”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특수요원, 김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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