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9)화 (44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49화

소식을 들은 것은 한국행 비행기에서였다.

“하얗게 불태웠다…….”

“돌아가면 진짜 고기 엄청 먹을 거예여.”

“힘이 쭉쭉 빠지네.”

태국 콘서트.

이틀간 2만 8천 명을 동원한 콘서트에서 온몸을 불살라서 그런지 노곤노곤했다.

“좋구나…….”

할아버지들 같은 표정으로 마사지볼을 어깨에 조물조물 문지르니 지나가던 승무원들이 입술을 꾹 말았다.

그런 우리에게 석환 형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

“1위?”

“이번에는 진짜예요?”

1등석이라 우리밖에 없긴 했지만, 듣는 귀를 의식해서인지 석환 형이 기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도 화색이 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틴스피릿이 갔구나…!’

앨범 판매량과 온라인 투표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보여주던 틴스피릿이 빠진 것이다.

만약에 이번에 경쟁하는 곡이 낙화였다면 우리가 앨범 성적까지 더해 바로 이겼겠지만, 안타깝게도 불꽃놀이는 발매한 지 2년이 되어 가는 예전 곡이었다.

그러니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

무엇보다.

“……불꽃놀이가 이제야 좀 이겼네요.”

“힘겨운 싸움이었지.”

“원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짜증나는 거라고 울 아빠가 그랬어여.”

우리 음원을 이기는 게 제일 어려웠다.

불꽃놀이가 낙화와 Attention을 앞지르고 음원차트 1위를 하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보통 이 정도 역주행 추이면 한 달 전에 바로 음방 재소환 되어서 1위! 감동! 그런 스토리로 가야 했지만, 역대급 역주행인데도 낙화와 Attention을 이기지 못했다.

마치 지옥의 수문장이 도끼를 들고 막는 듯한 인상이었다.

“…….”

창밖으로 보이는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풍경을 아련하게 바라보며,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짤을 떠올렸다.

내 얼굴이 합성된 만화 캐릭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나뭇가지를 바퀴살에 넣어서 스스로 고꾸라지는 그런 짤이었다.

자전거에 ‘불꽃놀이’, 나뭇가지에 ‘낙화, Attention’이라고 되어 있는 사진을 애써 기억에서 지우고 있을 때.

-역주행 하려다가 바로 경찰한테 붙잡힌 느낌ㅋㅋㅋㅋ

-역주행도 뉴블랙스럽다 진짜ㅋㅋㅋ

-낙화 특) 제목은 떨어진다인데 절대 안 떨어짐

-키 컸다고 좋아했는데 반 애들이 다 농구부인 거임ㅋㅋ

놀리는 댓글들이 눈앞으로 스쳐 가는 것을 무시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거나 잘된 일이야.”

“그러니까요.”

“진짜 할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차트 1위부터 차례대로 불꽃놀이, Attention, 낙화라고 되어 있는 순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 흐지부지 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불꽃놀이가 이번에는 1위를 할 것 같다.

우리가 여태까지 음방을 나간 타이틀곡 중에서 유일하게 1위를 한 번도 못 해 본 곡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데뷔곡이기에 우리와 수플레들에게 의미가 큰 곡.

“준비 빡세게 합시다.”

동생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1위 후보로 다시 나가는 음방 무대인 만큼 이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보여 줄 생각이었다.

*   *   *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연습실을 찾았다.

대개 해외 콘서트가 끝나면 회사에서 오늘은 오지 말라고, 출입카드에 정지를 먹이곤 했는데.

이번엔 특별하게 허락을 얻어 회사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첫 방문지는 프로듀싱팀 사무실이었다.

“싸왓디 캅~! 태국 건망고랑 쥐포 드실 분~!”

“으아아악!”

“왜 그러세요?”

“……미안. 너희 보면 놀라는 게 습관이 돼서.”

쉬는 날 아니었냐며 우리를 보고 몹시 반가워하는 프로듀싱 팀 직원들이었다.

A&R팀 분들도 중간중간 누워 계시고.

피골이 상접한 나상윤 피디님이 비척비척 일어나 웃었다.

“음원 점검하러 왔어?”

“네!”

다들 얼굴에 다크 서클 하나씩 띄우고 있는 걸 보니 불꽃놀이 음원 개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간식거리를 뜯어서 질겅질겅 씹어먹는 직원들을 보며 웃을 때.

나상윤 피디님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불꽃놀이 작업을 하면서 느낀 건데, 이게 노래가 딱 너희 같더라.”

“그래요?”

역시 타이틀 중에서 모두의 색깔이 골고루 담겨 있는 곡은 아무래도 불꽃놀이가…….

“곡이 천방지축이야.”

“아. 예.”

“베이스 하나를 건드리니까 다른 음들이 길을 잃어버리질 않나. 톡 건드렸더니 사운드 밸런스가 와장창 깨지질 않나. 분위기만 청량하지, 작곡가 입장에서 노래가 어찌나 까칠한지…….”

“…….”

“강아지 떼 산책시키는 것 같다니까. 잠깐 하나 챙겨 놓으면 다른 하나가 저기서 에헤헤! 뛰어다니고.”

말이 한 마디씩 이어질 때마다 찔리는 사람들이 시선을 피했다.

엄청 까다로운 곡이었다며 한숨을 쉬던 나상윤 피디님이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그 어려운 걸 우리가 해냈다.”

“완성됐나요?”

“한번 들어봐. 너희 맘에도 쏙 들 거야.”

그 말은 진짜였다.

예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정말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불꽃놀이가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원곡과 거의 똑같으면서도, 더욱 청량하고 한결 더 세련된 느낌.

“좋다…!”

“좋네요!”

동생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끄덕끄덕하는 걸 보아하니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진 모양이었다.

작곡가들이 웃으며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네!”

환하게 웃는 우리의 대답에 작곡가들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환호했다.

어찌나 기뻐하시는지, 마치 로켓을 발사하고 나서 자축하는 나사의 직원들 같았다.

고생이 그만큼 심하셨던 것 같다.

점심 저녁으로 한우 꽃등심길을 걷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고생했다. 형섭아…! 드디어 저 마귀의 귀를 통과했어.”

“평소 같았으면 여기서 곡이 짜네 마네 했을 텐데… 장인어른 만나는 것보다 더 떨린다니까.”

“웬일로 좋게 넘어가네. 우리가 잘하긴 했나 보다. 하하핫!”

……미국산으로 사 줄까.

잠시 번민에 휩싸였다가 결국 카드를 건네주고, 점심 저녁으로 소고기를 왕창 드시라고 했다.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학교 끝난 초등학생들처럼 뛰쳐나가는 걸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비주가 짠하다는 듯 말했다.

“고생이 엄청 많으셨나 봐요.”

“되게 까다로운 걸 부탁드렸거든. 꾸안꾸 느낌으로 부탁 드려서.”

“뭐, 어지간히 어렵긴 했나 보네요.”

리혁이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메모를 쭉 읽으며 말했다.

“여기에 적힌 메모들 봐요. 곡 프로젝트… 뭐야. 이 작은 글씨들은? 선우주 바보?”

“여기도 하나 있다. ‘나는 오늘 선우주를 묻기로 결정했다. 내가 자기 곡 작업만 하는 줄 아는 모양이지.’”

“우주선이 폭발하는 그림도 있어여!”

내가 새벽 작업을 하다가 벽지 무늬를 따라 그리듯, 작곡가들이 작업을 하다가 정줄을 놓은 메모들이었다.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조용히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연습실로 향했다.

“자! 마무리로 맞춰 볼게요!”

우리 메인댄서님의 지도하에 마지막 안무 점검을 했다.

불꽃놀이가 1위가 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연습을 해 놨기에 특별하게 준비할 것은 없었다.

그저 연습, 그리고 또 연습이었다.

“다들 실력이 엄청 늘은 것 같아요.”

비주가 만족한 얼굴로 웃었다.

“저랑 형도 안무에 더 여유가 붙은 것 같고. 중현이도 춤선이 엄청 예뻐졌어요. 지호도 표정 연기가 한결 더 자연스럽고.”

“엄청 늘었지.”

불꽃놀이로 활동했을 때와 비교해서 다들 실력이 늘었다.

같은 동작도 더 적은 힘을 들이면서도 깔끔하게 선보이고, 관객들과 아이컨택을 할 만큼 여유도 생겼다고 할까.

전반적으로 무대 보는 눈이 생긴 느낌이었다. 이때는 이 표정이 낫고, 시선처리는 어떻게 하는 게 낫고.

굳이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문제점을 알고 개선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실력이 늘은 와중에 가장 현격한 변화를 보인 인물은 바로…….

“……뭘 봐요?”

우리 메인보컬이었다.

전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할 때마다 리혁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잘한다.’

‘엄청 잘하네여…?’

살랑이는 파도의 물결이 잦아들듯이 몸을 서서히 낮추며 부드러운 웨이브를 멈추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처럼 하늘하늘 흔들리는 손.

불꽃놀이랑 곡의 목표인 청량함을 제대로 표현해 낸 춤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아까부터 왜 그래요? 나 뭐 이상하게 했어요?”

“아니. 너무 잘해서.”

“……!”

리혁이가 곧바로 미스터 홍당무로 변신하고 있을 때, 막내가 진지하게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여. 우리 리혁이 형 어디 있어여?”

“야!”

“아니, 너무 잘하니까 그러져. 꼭 진짜 리혁이 형이 어디 갇혀 있을 것만 같단 말이에여!”

나름대로 최상급 칭찬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뺨에 손을 올린 채 민망하게 웃고 있는 리혁이를 둘러싸고 칭찬 퍼레이드를 열었다.

좋은 건 바로바로 축하해 줘야지.

“우리 넷째 춤신 춤왕이다~!”

“하지 마!”

“뉴블랙 메인댄서, ‘서리혁, 춤 그만 춰야 한다.’ 오직 ‘그’만.”

“그믄 흐르그!”

깔깔 웃고는 얼굴이 벌게져서 숨으려는 리혁이를 토닥여 주었다.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이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데뷔했을 때와 비교해서 이만큼 달라지려면.

“뭐, 별거 아니에요. 그냥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연습한 거라…….”

남는 시간 모두를 춤에 투자해야 가능한 성과였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팬들이 보면 진짜 좋아하겠다.”

“정말요…?”

“응. 무대 보면 다들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수플레들이 이번에 리혁이를 보면 굉장히 뿌듯하게 웃을 듯했다.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안무에서 가장 큰 성과를 보여 준 멤버니까.

비주의 칭찬에 리혁이가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동안.

“형.”

“그래.”

연습실 구석으로 가는 바보와 먹보가 눈에 들어왔다.

뭘 하려고 수군수군하나 싶더니, 이내 둘이서 안무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에 그만 웃을 뻔했다.

“넘버 3를 위협당할 순 없어여.”

“맞아.”

그런 대화를 나누는 둘에게 물었다.

“둘 중에 누가 넘버 3인데?”

“그야 당연히…….”

“그건 말할 필요도 없이…….”

“……?”

“……?”

내게 대답하던 둘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에이~ 하는 눈으로 웃었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었다.

“……!”

바로 경쟁하듯이 불꽃놀이를 연습하는 둘.

마치 다큐멘터리 속에서 짝짓기 경쟁을 앞두고 서로의 날개를 펄럭이는 학들 같았다.

“에헤헤헴!”

“으흐흐흠!”

…조금 하찮아 보이긴 했지만 내 입장에선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조용히 웃으며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춤 연습을 하는 리혁이를 목격한 적이 있었다.

-뭐 하고 있었냐고요? 춤… 연습하고 있었는데.

-가르쳐 주겠다고요? 뭐, 나는 좋긴 한데 시간이 괜찮겠어요? …그러면 거창한 거 말고 몇 가지만 좀 알려 줘요.

-…이거! 이거 동작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려 줄 수 있어요? 와. 무슨 미튜브 0.1배속으로 보는 것 같네.

나 스스로가 굉장히 춤을 못 췄던 까닭에 누구보다 자세하게 가르쳐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에헤헤헤헴!”

“으흐흐흠!”

리혁이의 춤 실력이 늘자마자 경계심을 느끼는 두 녀석을 보며 웃었다.

역시 졸개들을 자극하는 데는 다른 졸개를 이용하는 게 제일 좋다.

곳곳에서 펼쳐진 연습 파티를 보며 흐뭇하게 웃을 때, 핸드폰이 지이잉 하고 울렸다.

한태현 [쇼케 준비 중인데 떨린다]

한태현 [응원의 한마디 좀]

나 [내 곡 망치면 가만 안 둬]

한태현 [ㄱㅅㄱㅅ]

한태현 [우리 형님도 힙내십ㅅㅗㅗ]

나 [ㅗ]

한태현 [ㅗㅗㅗ]

훈훈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곧 솔로 데뷔를 앞두고 있는 7년차 아이돌을 응원해 주었다.

뭐.

곡 줬으니 알아서 잘하겠지.

*   *   *

7월 20일.

한태현이 솔로로 데뷔하는 날을 맞이하여 팬들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었다.

-나 오늘 암것도 못할거 같다ㅠㅠㅠ 아오 떨려

-검색어 총공 ㄱㄱ 한태현 무드 한태현 솔로

-검색어 mood로 바꾸는 게 낫지 않나.. 내 혈육이 누드..? 해서 존나 식겁함

-지금 실검 쭉쭉 오르는 중

-쇼케 언제 하냐ㅠㅠㅠㅠㅠ 청심환 먹고 난리났다 누가 보면 내가 무대하는줄

-태준아_굿즈로_청심환_내줘

-이것 땜에 나 연차냄. 얘들아 우리 진짜 잘하자ㅠㅠㅠ

이윽고 저녁 8시가 됐을 때.

Y앱 라이브로 한태현의 첫 쇼케이스가 시작됐다.

‘태현아아아아!’

현장의 비명과 안방의 비명이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시작되는 무대들에 투게더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대박…!’

앨범을 안 내줘서 그렇지, 한 번 냈다 하면 확실하게 덕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TJ 엔터였다.

나른하고 섹시한 느낌으로 춤을 추는 한태현에게 그저 감탄만 나왔다.

‘주접 댓글도 생각이 안 나네.’

바텐더처럼 차려입은 한태현이 잔망스럽게 노래를 부를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그렇게 쇼케이스가 중반에 이르렀을 때.

-다음 곡은… 많은 분들이 정말 기대를 보내 주셨던 곡이에요. 바로, 더블 타이틀 중 하나인 ‘Survivor’입니다. 누가 작곡했는지 여러분도 다 알죠?

-네!

-맞습니다. 바로 성격 나쁜 그분이에요.

소곤거리듯 말하는 한태현의 모습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준비되셨나요?

-네!

-그러면 지금 바로…….

마이크를 들고 의자에 걸터앉는 한태현의 모습에 팬들이 침을 꿀꺽일 때.

가수가 생긋 웃으며 생수병을 들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부를게요. 중요한 노래니까 목에 수분 공급 좀 해 주고~

관객들이 미소를 지었다.

‘많이 떨고 있네.’

능청맞게 대응하고 있지만 그들의 가수가 떨릴 때 하는 자잘한 습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꿀꺽.

그렇게 목을 축인 한태현이 팬들을 향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고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곧이어 조명이 무대용 조명으로 바뀌었다.

“와아아아아!”

오렌지 빛 조명.

소품용으로 설치된 술병들이 늘어서 있고, 칵테일 바 같은 무대 세트를 배경으로 한태현이 앉아 있었다.

느슨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과 함께 R&B 풍의 인트로가 깔렸다.

‘……이건 트렌디함의 결정체다. 진짜.’

이미 6시에 발매된 음원을 한 차례 들었는데도, 여전히 귀에 쏙쏙 들어오는 곡이었다.

비 오는 날,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기울이는 기분을 내는 인트로.

감성 가득한 전주 속에서 한태현이 노래를 시작했다.

한치 앞이 안 보여

안개 낀 여긴 미로 속

나의 정원에서

난 네게 손을 뻗어

허공에 진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손을 스윽 뻗는 한태현이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허망하게 공기를 가르는 손끝.

신기루처럼 사라져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 있던 듯이

허공을 바라보던 가수가 이내 주변을 스윽 둘러본다.

마치 미로 속에서 헤매는 사람처럼.

R&B풍의 리듬에 맞춰 한태현이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기다리진 않아

이곳의 밤은 길어

너를 찾아

밤을 헤매일 테니

언제나

‘언제나’ 하며 읊조린 가사에 맞춰 잔잔한 반주가 조금 역동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놓치지 않아

넌 내게 찾아온 기적이니까

벽을 넘고 넘어

이 아픔을 참을 수 있어

처음에 음원으로 들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라이브로 보니 팬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는 곡이었다.

마치 팬송 같다.

평소 생각하던 한태현이란 가수의 이미지와 딱 맞는 노래였다.

데뷔 당시에도 조금 불안했고, TNT가 대성공을 했어도 초반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멤버였다.

하지만 앨범이 새로 나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언제나 더 발전된 모습으로 돌아오는 가수.

매번 가볍게 웃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어마어마한 노력이 있었다는 걸, 팬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 팬들에게 가수가 말하는 듯했다.

자신이 생존하는 목적을.

I’m a survivor

언제나 나아가

I’m a survivor

너에게 닿도록

살짝 터지듯이 음이 올라가는 구간이었다.

저음에서 시작한 노래라 음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가사가 귀에 박히듯 들어왔다.

오렌지 빛 조명 아래 감성적인 목소리가 후렴을 불렀다.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는 듯하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이야기하는 듯하기도 하고.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가수가 마이크를 슥 내리고 팬들을 향해 미소를 지을 때.

“와아아아아아아!”

팬들이 환호성으로 가수에게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멘트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팬들은 여전히 곡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박…….’

작곡가가 ‘태현이란 사람을 보여 주는 곡을 썼어요’ 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이었다.

‘……오늘부터 우주선 있는 방향으로 두 번씩 절해야지.’

이윽고 또 다른 타이틀곡 Mood의 무대로 쇼케이스가 끝난 후.

음원 사이트의 하트 개수, 라디오 스케줄 떡밥, 뮤비 조회수 등으로 팬들이 달아오를 때.

팬덤 화력에 힘입은 한태현의 솔로 곡들이 실시간 차트로 진입했다.

“음?”

낯선 앨범 아트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일반인들이 차트를 바라보았다.

‘한태현이면 걔 맞나? TNT?’

얼굴을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이윽고 재생을 누른 음원 사이트 이용자들의 귓가에 수록곡들이 지나갔다.

‘이거 괜찮네.’

Mood라는 타이틀곡을 듣고 있을 때, 새로운 노래가 들어왔다.

잔잔한 R&B 곡.

감성적이지만 처지지도 않고 귀에 착착 달라붙는 노래였다.

‘……좋은데?’

스트리밍 하기 딱 좋은 곡이었다.

귀를 사로잡는 파트가 있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귀에 슥 스쳐가면서도 다시 듣게 되는 곡이었다.

왠지 모르게 팝 차트에 있어도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트렌디한 곡.

‘리스트에 추가해 놓을까.’

그런 손가락들이 하나둘 합쳐진 결과.

다음 날, 출근길 차트에서 4위에 나타난 신곡을 발견한 사람들이 눈을 깜빡거렸다.

‘서바이버…? 처음 보는 노래네?’

현재 차트에서 금메달부터 동메달까지 알박기를 하고 있는 노래들을 감안하면 4위는 사실상 1등이었다.

노래가 얼마나 좋기에 4등이나 할까, 하는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 신곡을 듣고 ‘오’ 했다.

그러곤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웬일이래. 뉴블랙 노래가 아닌 게 차트 상위권에도 뜨고.’

‘이건 또 다른 느낌이라 좋네.’

‘곡 되게 잘 썼네. 작곡가가 누군지 몰라도 떼돈 벌겠구만.’

배후에 우주선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었다.

마치 자사 제품이 아닌 것처럼 다양한 브랜드를 내는 대형 마트마냥 뉴블랙이 차근차근 차트를 잠식해 가고 있을 때.

“흐하하하하! 나를 찬양해라! 졸개들아!”

“이거 봐여. 우리 TJ 지점이 4위를 먹었어여!”

“장사 너무 잘 된다…! 형, 우리 다음에는 어떤 분으로 프랜차이즈를 내볼까요?”

K-net 방송국으로 출근하면서 행복한 웃음을 터뜨리는 5인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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