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2)화 (45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2화

44장. 우리 가족은 외계인

실시간 검색어에 뜬 ‘남극의 눈물’에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왜 이런 제목이…….”

태블릿 PC 앞에 모인 동생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누구야.’

‘대체 무슨 드립을 친 거지…?’

‘어떤 수플레야. 나와.’

하여간 우리 팬들 못 말린다는 생각을 할 때.

리혁이가 말했다.

“거울치료라고 생각해요. 수플레들이 우리를 보는 느낌이 딱 이럴 거 아니에요.”

“아. 그러네.”

“팬들은 이런 기분이겠구나.”

매번 우리가 기상천외한 키워드로 실검에 뜰 때마다 이런 심정이었겠거니 하며 훈훈하게 웃었다.

그러곤 검색어를 클릭했다.

곧바로 미튜브 영상 링크가 하나 떴다.

[남극의 눈물 MV]

시작은 감동 BGM이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대박! 저희 1위 후보래요!]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불꽃놀이 쇼케이스.

케이블 음악프로에서 1위 후보가 됐다며 좋아하는 모습.

명동에서 공연을 마치고 펭귄탈을 벗은 우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인사하는 장면.

“오오…….”

“괜찮은데여?”

시간이 흘러 신인 시절을 지나 2년 후의 성숙한 모습이 흘러나왔다.

“와. 우주 형 폭삭 늙었네여.”

“지호야.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해야 돼.”

“아차차.”

“…….”

무시하며 영상을 바라보았다.

다시 봐도 뭉클한 1위 소감을 지나 펭귄 탈을 쓴 우리가 나올 때였다.

갑자기 반주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

목소리는 분명 어제 부른 앵콜 그대로인데, 타이타닉 OST마냥 왠지 모를 처연하고 아련한 BGM이 흘러나왔다.

황제펭귄 머리띠를 쓴 내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긴 지금 어디인 걸까

낯선 바다 낯선 공기

내 얼굴이 아련하게 사라지면서 남극의 황제펭귄 영상이 흘러나왔다.

눈보라 속에서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펭귄들.

그 동안 내 목소리가 아련하게 가사를 읊고 있었다.

“흐하하하!”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민망하긴 한데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황제펭귄 영상이 희미해지고 현장에서 아기 펭귄 머리띠를 쓴 지호가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불쌍하게 몸을 파르르 떠는 아기 펭귄이 나왔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영상이래요?”

편집까지 절묘하다.

갑자기 뒷배경이 남극 CG처럼 변하지를 않나. 중현이가 랩을 할 때마다 펭귄들의 주 먹이인 물고기들이 팔짝 뛰지를 않나.

댓글창도 웃음 파티였다.

[email protected]대한민국_경찰청 / 아저씨들 여기에요 여기! 여기 약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내가 뭘 보고 있는거지

-웃다가 토할뻔ㅋㅋㅋㅋㅋㅋㅋ 레전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뉴블랙tv 편집자들은 고액연봉 받아야 함 ㄹㅇ

이미 업계 최고로 받고 계시긴 한데.

“편집자 분들 얘기가 왜 나오지?”

“그러… 어?”

“뭐야? 이거 공식인데요?”

“공식이라고?”

스크롤을 올려서 바라보니 ‘뉴블랙TV’라는 계정명이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아니, 이걸 몇 시간 만에……!”

“왜 이렇게 쓸데없이 유능하신 거예여, 이분들?”

“이런 건 무능해도 되는데.”

팬메이드가 아니고 공식 컨텐츠였다.

댓글을 슥 올려보니 맨 위에 K-net 계정지기의 댓글이 고정되어 있다.

K-net Official

[∠뉴블랙TV 님이 고정함]

역시 뉴사장이야 일 잘해

거기에 다른 계정들도 모여서 드립을 치고 있는 광경에 우리가 허헛 웃었다.

체념은 빨랐다.

“뭐, 웃겼으면 됐어.”

“맞아여. 뭘 타고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니까.”

“뿌듯하네요. 너무 본업만 하고 온 게 아닌가 싶었는데.”

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웃고는 영상에 비추를 눌렀다.

미튜브가 비슷한 걸 추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미튜브에 뜬 여러 영상을 감상하고는, 다 같이 일어나 거실 진열장을 향해 다가갔다.

마스커레이드의 1위부터 시작해서 망고 차트 어워드 신인상, 올해의 노래상, 낙화의 1위까지.

“한 칸씩 밀자.”

“잠깐만요.”

리혁이가 꼼꼼하게 견적을 내 보고는 조심스럽게 트로피들을 옮겼다.

맨 앞에 마련된 자리.

그곳에 오늘 K-net에서 받은 1위 트로피를 넣었다.

“오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잘 어울린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은 것처럼 모든 게 완성된 듯하다고 할까.

왠지 모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조용히 지켜보는 동생들에게 웃으며 물었다.

“사진이라도 하나 찍을까?”

“좋아요.”

다 같이 불꽃놀이의 트로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   *   *

뉴블랙의 SNS에 장문의 감사 인사가 올라올 때.

음악방송을 보며 같이 울고 웃었던 수플레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오늘은 치킨이다…!’

지호네 아버님이 경영하는 호호치킨을 시켜 먹고, 후식으로는 뉴블랙 빵까지 먹는 뉴블랙 코스.

전국의 수플레들이 얼씨구절씨구 춤을 추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던지 곧바로 안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뉴블랙 역주행은 그냥 별 느낌없는 듯

-222 원래 역주행하면 차근차근 상승하다가 응원 받고 1위 하고 그런 서사가 있어야 하는데 서사가 없음

-걍 방송빨로 차트 올라간 거지

-ㄹㅇ 진짜 역주행은 이런 게 아님

서사 없는 역주행은 역주행이 아니라며 조롱이 나왔지만 수플레들은 푸근히 웃을 뿐이었다.

‘으헤헤헤! 그럼 역주행해 보시든가!’

바닥을 치며 이건 역주행이 아니다! 아니다! 하며 통곡하는 이들 옆에서 레전드 짤을 교환하며 재롱 잔치를 벌이는 수플레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타격감이 없는 이유는 바로.

‘실력 관련해선 하나도 말 못하니까.’

역주행을 할 만큼 좋은 노래이기에 노래 퀄리티를 별로라고 디스할 수도 없고.

실력을 트집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무대도 뛰어났다.

특히나 늘 안무에서 뒤쳐졌던 메인보컬이 이번에 그야말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 줬으니…….

‘할 말이 없지.’

욕을 못하니 뉴블랙 역주행은 서사가 없다는 말만 하는 안티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여러 커뮤니티에서 움짤로 핫해진 남극의 눈물에 이어 미튜브에도 이런저런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꽃놀이, 14년과 16년 안무 변화]

2분할된 화면 왼쪽에서 신인 뉴블랙이, 오른쪽에서 3년차 뉴블랙이 무대를 하는 영상이었다.

-아니 근데 신인 때도 겁나 잘하는데요..?

-멤버들 우주비주 둘 사이에서 춤을 춘다는 거 자체가 보통이 아닌 거ㅋㅋㅋ 내가 아이돌 데뷔했는데 저 둘이랑 같은 팀이면 ㄹㅇ 욕나왔음

-지호 과거 와이앱 발언.. ‘춤 잘 춘다는 말 들어서 메댄 될 줄 알았는데 이상한 형들이 나타났다’

-솔직히 그냥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옛날이랑 비교하니까 더 는 게 보임

-리혁아ㅠㅠㅠㅠㅠㅠㅠ

-근데 리혁이도 첨부터 못하는 것도 아니었음ㅇㅇ 시간 지나면서 스스로 매력 포인트를 찾은 거 같음

-ㄹㅇ 대단한듯 나였으면 저기서 그냥 안주했을듯.. 솔직히 보컬도 차우현이 인정할 정도인데

단 한 차례도 안무 실수를 한 적 없지만 매번 안티들이 욕할 때 썼던 레퍼토리가 리혁의 춤이었다.

객관적으로도 나쁘지 않게 추는 편이지만 옆에 미친 댄서즈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리혁이 진짜 엄청 노력했구나…….’

거기다 청량한 컨셉과 퍼스널 컬러가 맞아서 그런지 유독 시선이 갔다.

여름 같은 막내와 반대로 겨울 느낌이 나는 외모.

다소 서늘하게 보이는 이목구비로 상쾌하게 웃는 리혁의 모습을 볼 때마다 탄산이 톡톡 터지듯 청량했다.

[뉴블랙 리혁 직캠 ‘불꽃놀이(Firework)’]

K-net의 공식 미튜브 계정에 올라온 개인 직캠도 조회수가 슥슥 올라가는 한편.

“와…….”

해당 영상을 수없이 반복 재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자꾸만 보게 되네.’

호감을 가지고 뉴블랙을 지켜보던 이들이었다.

낙화 때도 입덕을 안 하고 있었는데, 멤버들의 노력이 담긴 실력 변화 영상에 치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수플레들이 모인 곳에 뉴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뇽! 신입 받아라~!]

ㅎㅎ 불꽃놀이로 입덕했습니다~~!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엥 불꽃놀이때부터 입덕햇으면 성골 아니신가요..?

-않이.. 이런 귀한분이 누추한 곳에..

-언니 존경해요

-[글쓴이] 그 불꽃놀이 말고 이번 불꽃놀이야! ㅎㅎㅎ

-야이

-똑바로 말해야지 ㅡㅡ

-세상 좋아졌네.. 나때는 신입이 눈팅만 했다 이말이야

-근데 이거 구분 좀 하긴 해야겠다ㅋㅋㅋㅋ 지금 유입 있는거 같은데 구분 ㅈㄴ 안돼ㅋㅋㅋ

수플레들의 커뮤니티에 해당 팬들의 구분을 위해 ‘14놀이’와 ‘16놀이’라는 단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K-net에 이어 지상파 3사의 음악방송에서도 우리는 1위를 거두었다.

스케줄 때문에 직접 못 받은 게 아쉽긴 했지만 정말이지 의미가 큰 일이었다.

HBS에서도 1위 트로피를 보내 줬는데 나름 화해의 제스처 같다고 할까.

-[대중문화 칼럼] 뉴블랙의 불꽃놀이.. ‘왜 역주행했는가?’

-뉴블랙, 불꽃놀이 음악방송 1위 ‘4관왕’

-‘불꽃놀이’ 역주행 → 음악방송 1위.. “사랑해요, 수플레”

그렇게 진열장에 트로피가 3개 더 추가되는 동안.

우리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이틀간 2만 명을 동원한 콘서트를 마쳤다.

이제 이번 주말에 있을 LA K팝 합동 콘서트를 제외하면 해외 투어의 파트 1이 끝나는 셈이었다.

파트 2는 겨울철 일본 투어.

2월에 투어를 한지 불과 6개월도 안 됐기에 이번 여름에 투어를 가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본 쪽도 현재 대관 협의 중이야.”

일본 팬덤이 빠르게 커지고 있어서 어떤 규모로 해야 될지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마침내 시트콤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대본 리딩 날이 됐다.

“잘 하고 와요. 형.”

“다녀올게~”

리혁이가 모닝콜을 해 주고, 비주가 차려 준 진수성찬에 중현이의 마사지도 받고.

아침부터 참으로 호화로운 대접이었다.

중현이가 긴 우산을 내밀었다.

“이따 돌아올 때, 비 올 거 같으니까 우산 챙겨 가요. 형.”

“그래? 기상청에서 오늘 날씨 맑다… 아니다. 네가 챙겨 가라면 챙겨 가야지.”

“공기 중에 비 냄새가 은은하게 나요.”

그렇게 우산을 받아드니 비주가 허어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 되게 신사 같아요. 형.”

“그래?”

좋아서 포즈를 슥 취하고는 거울을 확인했다.

검은 정장에 검은 넥타이.

스파이 영화에 나올 법한 요원의 차림새에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맨날 그렇게 입고 다녀요. 그게 더 낫네.”

“그런가…?”

옷맵시가 좋아서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근데 이거 아무리 봐도 무리수 아니야? 대본 리딩하는 데 누가 이렇게 옷을 입고 가?”

“절 믿어여. 형.”

“대본 리딩 영상 검색해 보니까 다들 편하게 입고 오던데…….”

내가 지금 이렇게 차려입은 건 우리 막내 때문이었다.

“형, 저를 믿어여. 이거 입고 가면 첫 인상 완전 대박이라니까여.”

“요, 로 해봐.”

“첫 인상 완전 대박이라니까요.”

“이제 좀 설득력이 있네.”

옷을 배역에 맞게 입는다고 해서 첫 인상이 정말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막내 말을 따르기로 했다.

연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하니까.

“아, 근데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얼른 가여. 형.”

“그냥 원래대로 내 사복을…….”

“아아아아아!”

고막 떨어지는 줄.

스크럼을 짠 동생들이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

“얼른 가요!”

“얼른!”

대본 리딩에 과연 이렇게 차려 입고 가는 게 맞나 싶긴 했지만 일단 입었으니 어쩔 수 없지.

“다녀올게~!”

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집을 나섰다.

*   *   *

대본 리딩 현장은 TBC 사옥 대회의실.

상암동 TBC 사옥 1층에 들어서자마자 카페나 로비에서 나를 알아본 이들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선우주다.”

“우주선……? 아니, 우주선이래.”

“원래 뒤에 조무래기들 끌고 다니지 않나?”

연예인이다! 하면서 잘생겼다 어머나 하는 반응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슬픈 일이었다.

로비에 서 있던 경비 아저씨가 구수하게 물었다.

“어유, 옷도 엄청 근사하게 빼 입으셨네. 오늘 뭐 하러 왔어요?”

“시트콤 대본 리딩 하러 왔어요.”

“아이고, 그렇구만. 내가 지금 내 고향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는 경비 아저씨가 알려 준 지름길을 통해 대회의실에 갔다.

드라마국인가 싶었는데 예능국 대회의실이었다.

“……시트콤도 드라마 아니었어?”

“원래 시트콤은 예능 쪽으로 취급을 하거든. 연말에 상 받을 때도 연예 대상에서 받아.”

“아하.”

석환 형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대회의실’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예능국 대회의실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 때.

“어?”

회의실 가장자리에서 대본을 읽고 있던 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한 인상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걸그룹 멤버.

반가운 얼굴에 내가 냉큼 문을 열고 다가갔다.

“아이고, 송아라 님!”

“아이고, 김우주 씨!”

매니저와 함께 일어난 스칼렛의 리더, 아라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날 반겼다.

“뭐야~ 진짜 오랜만에 본다. 잘 지냈어?”

“네, 누나는요?”

회사에서 오다가다 마주치는 정도지만 이런 자리에서 보니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상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나 안 그래도 지금 선배님들 오면 아 인사 어떻게 하지? 하고 이러고 있었거든. 네가 와서 다행이다, 야.”

“저도 진짜 안심이에요. 아침부터 긴장하고 있어서….”

“잘 왔어~ 이제 우리 같이 떨자.”

친절하게 웃는 스칼렛의 리더를 보며 웃었다.

이 누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성격이 좋은 사람이다.

본명이 오아라였던가.

우리 대표님이 ‘오아라? 스칼렛 오아라!’ 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이름이 붙어 탄생한 게 스칼렛이었다.

시트콤에서의 배역명은 송아라.

외계인 가족에서 천방지축 딸내미 포지션이었다.

“야, 근데 너…….”

정장 차림의 나를 바라보던 아라가 빵 터졌다.

“양복은 왜 입었어?”

“……지호가 추천해 줬어요. 이러면 첫인상 대박이라고, 배역대로 입고 가라고 그랬거든요.”

“오? 설득력 있는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아냐.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엄청 좋아하실 거 같은데.”

다정하게 웃으며 다독여 주는 이에게 나도 웃어 보였다.

레몬 엔터의 직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라와 나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본 연습 얼마나 했냐. 불꽃놀이 1위 축하한다 등등.

으레 맏이들끼리 만나면 그러하듯 이야기의 화제는 곧바로 각자의 동생들로 넘어갔다.

“이거 저번에 미국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리혁이 되게 귀엽게 나오지 않았어요?”

“우와아 귀여워…!”

“표정 새초롬하게 나왔어요. 은근 귀엽다니까요.”

내가 우리 동생들 좀 보세요! 하고 자랑하자, 상대도 질 수 없다는 듯 동생들의 사진을 내밀었다.

“이거 김나윤 횡단보도 건널 때.”

“흐하하핫!”

“진짜 귀엽지? 얘가 어렸을 때부터 엄청 쪼그매서 어머님이 꼭 손 들고 다니라고 그랬대.”

스칼렛의 막내, 데이지가 손을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진이었다.

“이건 비주가 클레이 타일러한테 칭찬 받을 때.”

“리나가 연말 무대 올라가기 전에 춤춘 건데…….”

“요리하는 비주!”

“고기 네 장 먹는 봄이!”

그렇게 우리가 천하제일 동생 자랑대회를 하고 있을 때.

달칵.

문이 열리고 세 번째 배우가 등장했다.

셔츠 차림의 늘씬한 미인이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아는 얼굴이었던 까닭에 나와 아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배우 서노을이 차분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찬가지로 레몬 엔터 소속.

지호가 카메오로 나왔던 <슬립>에서 투탑 주인공을 연기했던 까닭에 안면이 있었다.

‘나 죽는다, 나 죽어…….’

체력이 약하다고 촬영 현장에서 담요에 돌돌 둘러싸인 채 널브러져 계셨던 기억이 났다.

<슬립> 이후로도 여러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을 하기도 해서, 나 다음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출연진이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 가족은 외계인>에서도 가장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외계인들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

우리를 보고 반갑게 휘어지던 눈이 내 옷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안녕하세요…….”

내 설명에 웃던 배우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나와 아라를 보며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서로 애들 사진 보여 주고 있었어요.”

“……어? 그… 아, 그 애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톡톡톡 하고는 뽀얀 갓난아기 사진을 보여주는 서노을이었다.

“내 조카 사진.”

“허어…! 너무 귀여워요!”

“진짜 예쁘다.”

셋이서 동창회에 모인 사람들처럼 자랑을 할 때.

뒤이어 다른 배우도 등장했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앳된 이목구비를 지닌 20대 후반의 배우였다.

“안녕하세요!”

“안녕… 흐하하하!”

“네, 정장이에요….”

“완전 찰떡인데? 진짜 김우주 같아!”

배우 정인우가 방정맞게 웃었다.

외계인 가족에서 철없는 아들내미 역할을 맡았는데, 정말 딱 맞는 캐스팅 같았다.

사극 아역부터 시작해서 연기 경력이 긴 배우.

얼마 전에 <호텔 로망스>라는 케이블 드라마에서 젊은 호텔리어 역할을 맡았던 걸로 알고 있다.

“엄청 잘생겼네. 출연한다는 기사 나고 기대하고 있었거든.”

“감사합니다.”

“그래, 잘 부탁해.”

서노을에게도 반갑게 인사한 정인우가 물었다.

“누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요?”

“얘네랑 아이들 사진 자랑.”

“네? 그… 아, 그런 아이들이요.”

그러더니 자기도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냈다.

곧바로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의 사진이 등장했다.

“제 딸내미에요.”

“허어어, 세상에……!”

“눈동자 봐요!”

…대본 리딩이 원래 어떤 분위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분위기가 엄청 좋았다.

그 동안 연차 있는 중견 배우들도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어어, 반가우이. 오랜만이네.”

“……네?”

“아이고, 초면이구만! 핫핫!”

외계인 가족에서 할아버지 포지션을 맡은 원로배우 송훈 선생님.

그리고.

“어머, 얘 너는 진짜 오랜만에 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외계 가족의 할머니 포지션이자, 주세한의 출연진인 양옥분 선생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그 뒤로 외계인 아버지 부부, 조연으로 나오는 네임드 동네 사람들과 정부 기관 사람들까지.

드라마의 주조연이 한데 모였다.

하지만 웅성웅성한 분위기는 금세 잦아들었다.

“으흐음…….”

“목이 타네. 누가 여기 차 한 잔 좀 주세요.”

원로 선생님들이 차를 홀짝이며 대본을 뒤적이기 시작하면서 다들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짝 엄숙한 분위기.

“…….”

그 속에서 나를 흘끔흘끔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호감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묘하게 미적지근한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공통적으로 호기심이 담긴 듯했다.

아마 내가 들어온다고 한 이후로 갑자기 배역 비중이 확 커지고, 대본이 바뀌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런 혼재된 시선을 마주하며 슬그머니 웃을 때.

“다들 식사는 하시고 왔어요?”

이 자리의 최고 갑인 황정구 감독과 황정연 작가의 등장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석에 앉은 황정구 감독이 입을 열었다.

“비하인드 영상 돌아가고 있니?”

“예, 감독님.”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를 흘깃 확인한 황정구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이제 대본 리딩 들어가기….”

그때 감독님의 눈이 내게 향했다.

황정연 작가가 빵 터지는 가운데 감독님도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우주야. 왜 정장을 입고 왔어?”

“배역이 요원이라서 정장을 입고 왔어요.”

그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겼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우들이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뒷자리에 앉은 석환 형을 돌아보자 잘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잘된 건가…?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날 바라보는 시선들이 굉장히 부드러워졌다는 건 확실했다.

그때, 배를 잡고 웃던 정인우가 물었다.

“근데 정장 진짜 잘 어울리네~ 그건 어디 브랜드야?”

“아, 이거 인터넷 쇼핑몰에서 샀어요.”

“진짜?”

“네, 비싸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왜 안 되는데?”

내게 시선이 모아졌다.

궁금해하는 배우들에게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공무원 역할이잖아요.”

다시 한번 떠들썩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래 배우들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지고 그러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