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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3)화 (45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3화

웃음이 잦아든 후에 본격적으로 대본 리딩이 시작됐다.

황정구 감독이 마이크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연출을 맡은 황정구 감독이라고 합니다.”

다 같이 박수로 맞이했다.

뒤이어 황정연 작가를 시작으로 감독님의 소개 멘트와 함께 배우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외계인 가족의 할머니 양옥분을 맡아 주신 양옥분 선생님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어유, 반가워요~ 근데 이거 나이순으로 하는 거예요?”

“아뇨, 자리순입니다. 선생님.”

“어쩐지, 여기 송 선생님이 계신데 왜 나부터 일어나라고 하나 했어.”

그 정도로 나이 먹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떠는 양옥분 선생님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양 테이블로 나뉘어 서로를 마주보는 구조.

양옥분 선생님에 이어 맞은편에 있는 서노을이 일어났다.

“여기는 외계인들의 리더, 송노을을 맡아 준 우리 노을 씨. 정말 어렵게 섭외했어요.”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꾸벅 인사하는 서노을에게 박수가 날아들었다.

송훈 선생님, 정인우 등 주조연 배우들의 소개가 이어진 후에 바로 내 옆에 있는 아라까지 차례가 왔다.

“송아라 역할을 맡아 준 우리 아라 씨, 여러분도 많이들 알고 있는 얼굴이죠?”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90도로 인사하는 아라에게 배우들이 박수를 쳤다.

그런 다음, 황정구 감독님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기서 혼자 양복을 입은 멋쟁이 신사 분.”

“…….”

내가 머쓱하게 웃는 모습에 다들 키득거렸다.

“사실 소개가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실 거라… 요원 김우주 역할을 맡아준 우리 우주 씨.”

“안녕하세요, 우주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라에 이어서 90도로 직각 인사를 하는 나에게 웃음과 박수가 돌아왔다.

시작 전부터 분위기가 밝아서 다행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TNT의 지훈이에게도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대본 리딩 들어가면 엄청 떨려. 주조연들끼리 리딩은 괜찮은데, 전체 리딩 들어가면 선생님들도 오시고….

연기 내공이 어마어마한 분들 앞에서 자기 대사를 읊으려니 엄청 떨린다고 들었다.

게다가 분위기도 엄숙해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면서 떨린다나.

하지만 아무래도 시트콤이라 그런지 부드러운 공기가 감돌았다.

황정구 감독님이 말했다.

“자, 그럼 1화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씬 1부터…….”

그 순간 진지하게 가라앉는 공기.

대본이 바스락바스락 하며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배우들의 눈동자가 대본에 고정된다.

……부드러운 분위기는 나의 착각이었네.

내 옆에 앉은 아라도 펜을 들고 대본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습에 나도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본 리딩의 방식은 간단했다.

“씬1, 불시착하는 UFO의 안. 송노을 대사부터 시작할게요.”

황정구 감독님이 대본 설명을 읽어 주면 배우들이 바로 대사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첫 장면은 바로 기기 고장으로 추락하는 UFO.

정신없이 흔들리는 UFO 안에서 외계인 가족들이 비명을 지르고 데굴데굴 구르는 장면이었다.

아마 TV 화면상에서 빨간 사이렌이 위이이잉 돌고.

스파크가 파지직 튀고, 화면이 흔들리면서 계기판에 온갖 오작동 표시가 뜰 장면이었다.

“시스템 고장! 시스템 고장!”

엑스트라를 전담한 황정구 감독님의 발연기에도 주연 서노을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거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러운 게냐? 원 잠을 잘 수가… 아니…!]

[누구야? 누가 여기 음료수 쏟았어?! 어떤 미친…!]

[너야.]

[나야?! 미안!]

핑퐁처럼 오가는 대사를 들으며 입을 멍하니 벌렸다.

눈앞에서 장면이 그려진다.

실제 촬영을 하는 것처럼 실감나게 오가는 대사라서 그런지 몰입이 엄청 잘 된다.

‘아! 진짜! 누가 소파에 음료수 쏟았어요? 이거 패브릭 재질인데!’

‘너임.’

‘뭔 소리에요. …나네?’

‘결정했어여. 리혁이 형이 새가 되면 안면 홍조라고 이름을 붙여줄 거예여.’

어쩌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고.

어쨌거나 옥신각신하던 외계인 가족들이 마침내 불시착을 하게 된다.

관악산에 착륙한 UFO.

[……이거 추진 장치가 고장 났는데요?]

[동력원은?]

[거기도 지금 문제예요. 아, 이 망할 놈의 기계. 내가 그래서 진즉에 신제품 사자고 했잖아요!]

다른 기계는 멀쩡하지만 추진 장치와 동력원이 고장 나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외계인 가족.

[UFO 놀이 한 번 하려다가 이게 뭔 고생이야. 정말.]

‘지구인들 까꿍!’ 하고 싶어서 UFO 놀이하려고 왔다가 계기판에 음료수를 쏟아서 망한 설정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은 설정이긴 한데, 배우들 연기를 보면 또 말이 된다.

결국 서로에게 탓을 하고 데굴데굴 구르며 싸우다가 막내인 아라가 산비탈에서 굴러 절벽으로 떨어진다.

[막내야!]

[막내야…! 아이고!]

인간보다 짱 세다는 설정인 외계인이라 찰과상 하나 없이 절벽에 떨어진 아라.

그런 아라를 지구인 등산객 아저씨들이 발견한다.

“흐악!”

감독님의 발연기를 더 이상 못 보겠는지 작가님이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귀가 뾰족하고 눈이 세 개인 외계인에 식겁해서 도망치는 등산객 아저씨들.

막내를 찾아온 가족들이 결국 대책을 세운다.

[일단 구조 신호는 보내 놨고.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야 할 테니… 일단 위장을 하는 게 좋겠어요.]

[그게 좋겠구나!]

이 외계인 종족은 과거 지구에 몇 차례 탐사를 온 적이 있었기에 마침 데이터베이스가 있었다.

일단 UFO를 초가집으로 변신시킨다.

[이게 바로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더구나.]

[자연스러운데요?]

[이거… 맞는 자료예요? 아까 인간들 옷이랑 안 맞는 것 같은데.]

관악산 중턱에 을씨년스럽게 차려진 초가집 한 채와 그곳을 보며 꺄르르 웃는 외계인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고장이 난 UFO가 잘못된 데이터베이스를 내놓은 것이다.

배우들 중 몇몇이 뺨을 꿈틀거렸다.

[자, 그럼 이제 변신을 하자꾸나!]

지구인의 외모에 맞도록 변신을 한다.

귀는 짧아지고, 눈은 2개가 되어 현재의 배우들과 같은 외모.

‘조선시대의 가족 - 7개체’라는 데이터베이스에 맞게 그들의 외모가 변할 때.

“펑!”

작가님의 효과음과 함께 할아버지 역할의 송훈 선생님이 ‘어이쿠!’ 하는 추임새를 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아버님!]

[할아버지가 이상한 짐승이 됐어요…!]

[이건 뭐람…?]

그렇다.

송훈 선생님이 말티즈가 되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초반의 몇 장면 이후 송훈 선생님은 말티즈의 텔레파시 목소리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인간들이 ‘개’라고 부르는 짐승이래요.]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아버님, 일단 입 좀 다물고 계세요. 인간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어쨌거나 그렇게 조선시대 6인 가족+개로 변신한 외계인 가족.

조선시대 양반들의 복장을 한 외계인들이 ‘너무 자연스러운데?’ 하며 자화자찬을 하며 내려가고.

그런 그들을 멀찍이 산을 오르던 등산객들이 발견한다.

[등에 봇짐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보부상이로구나!]

[호랑이 조심하시구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지식과 말투가 패치된 가족들.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이들에게 등산객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미친 사람들 같은데…?]

[얼른 손 흔들어 줘. 해코지 할라.]

[뭔 등산로도 아닌 길을… 한복은 왜 입고 있는 거래?]

등산객들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데, 이 때문에 정보당국에게 발각되게 된다.

그 다음 씬은 요원 김우주가 화면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는데, 대사 없이 뒷모습만 나오는 장면이기에 넘어갔다.

내가 시트콤에 나온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르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서프라이즈를 주기 위한 장면이라고 감독님도 의도를 밝혔다.

-이따가 나오면서 어?! 하고 사람들이 놀라는 거지.

그러는 동안 조선시대 양반들이 되어 서울 시내를 누비던 가족들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여고 앞에 다다른 가족들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묻는다.

[이보시오. 이곳이 한양이 맞소?]

[뭐래.]

[야, 가자. 미친 사람들인가 봐.]

야멸찬 외면에 아버지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 때, 양옥분 선생님의 품에 안긴 말티즈가 극대노한다.

[고얀 것들! 요즘에는 서당에서 예법도 안 가르치더냐!]

[…….]

말티즈의 텔레파시에 고등학생들이 눈을 크게 뜬다.

[미, 미친……!]

[말티즈가 말을 했어!]

[야야! 찍어!]

[그 물건을 치우거라!]

[치우라는 말도 알아! 대박…!]

이어서 ‘개가 말을 한대!’ 하는 말이 퍼지면서 고등학생들이 추격을 하게 되고.

양옥분 선생님의 품에서 탈출한 송훈 선생님이 ‘내게 맡기거라!’ 하면서 헥헥 달리며 그들을 따돌리는 내용이었다.

겨우 숨을 돌린 외계인 가족들.

그제야 그들은 뭔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시기가 안 맞아.]

서노을이 휴대용 기기를 조작하며 말한다.

[우리가 칩으로 전달 받은 내용은 최소 500년 전이에요.]

[이런…….]

[그래서 젊은이들의 언행이 그랬던 것이로구만.]

[안 되겠어요. 일단 최근으로 갱신하죠. 옷은 몇 가지만 빼요. 지금도 이런 옷은 입는다고 하니까…….]

갓이라든가.

조선시대스러운 물건은 빼고, 결혼식장에서 사돈끼리 입을 법한 한복으로 변한 외계인 가족.

[말투가 괜찮은 것 같지요~?]

주연배우 서노을의 능청맞은 연기에 벌써부터 다들 뺨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고.

운송수단을 발견한 가족들이 반가워할 때, 한복을 입은 서노을이 사뿐하게 올라타 단아하게 웃는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운전수 동무. 평양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

[동무? 왜 그러십니까?]

다들 웃음이 터졌다.

어딘가 익숙한 한복에 수상한 말투를 쓰는 가족.

돈이 없다는 말에도 일단 버스에 태워 준 버스기사가 조심스럽게 신고 전화를 한다.

그 동안 버스가 이동하고 뒤이어 탄 승객들에게 가족들이 웃으며 인사한다.

[반갑습니다~]

[……!]

해맑게 웃는 외계인 가족들의 모습에 승객들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고.

식은땀을 흘리던 버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승객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리하여 다음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국정원 요원들에게 인계가 되는 가족들이었다.

[놔! 놔라!]

[도와주세요! 지구인들이 저희를 붙잡고 있습니다!]

행인들이 그들을 피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취조실로 끌려갔을 때.

“다음 씬, 요원 김우주가 등장합니다.”

황정구 감독님의 말에 배우들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심호흡을 한 차례 짧게 하고는 요원 김우주의 대사를 읽어 나갔다.

*   *   *

배우들의 시선이 선우주에게 집중됐다.

‘잘하려나…?’

잘할 것 같다는 예감이 막연하게 들기는 했지만 섣불리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간 보아 온 것들이 있으니까.

업계에서 아이돌 배우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비슷하다.

‘시청률은 잘 나오게 해 주니까…….’

썩 마음에 드는 연기력은 아니지만 아이돌 배우가 나올수록 시청률이 올라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요즘은 처음부터 배우를 노리고 아이돌로 진출해서 연기력까지 겸비한 멤버들도 있고.

하지만.

‘레몬에서 배우로 키우는 애는 지호 아니었나…?’

여기는 연기 쪽이 아니었을 텐데.

선우주를 바라보는 배우들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우주야. 제발 잘해줘, 제발…….’

선우주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불과 얼마 전이었다.

‘대박! 대박 소식입니다!’

‘뭔데?’

‘출연하기로 했던 드라마 말이에요. 뉴블랙에 걔! 우주선, 아니 우주가 나온답니다!’

‘뭐?’

뉴블랙이란 키워드에 절로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좋은 쪽으로.

‘살았다……!’

대본이 좋아서 출연하기로 한 드라마였지만 솔직히 흥행 여부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시트콤이 유행했던 시기도 한참 지났고.

1화, 3화가 끝나고 입소문으로 2화, 4화에서 상승할 수 있는 미니 시리즈와 달리 주1회 시트콤이다.

초반에 화제성을 얻어서 치고 나가지 못하면 ‘비운의 명작 시트콤’으로 꼽히게 될 수도 있는 상황.

거기에 뉴블랙 우주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시청률은 보장됐어.’

국민 아이돌로 꼽힐 만큼 한창 잘나가는 뉴블랙, 거기서도 가장 화제성 높은 멤버의 출연이었다.

만나면 어떻게 잘해줄지 고민할 때.

갑자기 대본이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뭐야, 김우주는 또 누구야?’

배역에 이름이 생기더니.

‘얘 비중이 왜 이렇게…?’

주조연과 짧게 얽히는 요원 K의 배역이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비중은 카메오 정도지만 주연들과 서사로 얽히는 캐릭터가 된 걸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이었다.

인지도 높은 유명 아이돌을 섭외하기 위해 제작사가 분량을 넉넉히 주겠다는 조건을 내건 듯했다.

그래서 납득은 갔다.

‘뉴블랙 우주 정도를 부르려면…….’

이 정도 출혈은 감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배역의 임팩트가 여간 커진 게 아니니까.

잘하면 문제가 없지만, 못할 경우에는 극 전체가 캐릭터 하나의 발연기로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잘할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엄청 준비해 왔네.’

‘못하는 게 더 이상하긴 한데…….’

현장에 참석한 배우들의 시선에는 간절함이 있을 뿐, 불안함은 많이 가셔 있었다.

배우의 준비성 때문이었다.

다들 야구모자에 맨투맨 하나씩 후줄근하게 걸치고 온 리딩 자리에 혼자 미남 스파이처럼 정장을 차려 입고 온 우주.

「배역이 요원이라서 정장을 입고 왔어요.」

「아, 이거 인터넷 쇼핑몰에서 샀어요. …공무원 역할이잖아요.」

제 딴에는 진지하게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배역대로 준비했습니다!’ 하는데 배우들 입장에선 귀여운 웃음이 나왔다.

이 자리에서 제일 어려서 그런지 엄청 성실한 막내를 보는 느낌.

그 엉뚱함이 귀엽기도 하고, 준비성이 기특하기도 하고.

굉장히 좋았던 첫 인상에 배우들의 눈에도 잔뜩 호감이 감돌았다. 그랬기에 바람이 더욱 간절했다.

‘중간만 가자. 우주야. 중간만.’

제발 이상한 연기만 안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면서 배우들이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당 지문에 요원 김우주가 걸어오고 있었다.

# 국정원 심문실

김우주가 ‘의문의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걸어온다. 그가 국정원 요원들에게 향한다.

무미건조한 표정.

김우주 : 사건 관할을 이전하러 왔습니다.

대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듣기 좋은 발성에 또렷한 발음이 귀에 들어왔다.

[사건 관할을 이전하러 왔습니다.]

배우들이 대본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요원 김우주가 된 것처럼 대사를 읊는 우주가 있었다.

‘……어라?’

분명 선우주의 목소리이기는 한데, 톤이라든가 말투 등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연기는.

[안녕하십니까. 저는 관리국에서 나온 요원 김우주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조사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좋았다.

일부러 오버 액션이 들어가 과하지도 않고, 너무 힘이 없어서 본인이 나온 것 같지도 않고.

극에 어울리는 적절한 연기에 참석한 배우 전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양옥분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송훈을 바라보았다.

“…….”

“…….”

두 원로 배우가 말없이 웃으며 눈빛을 교환한 후, 송훈이 감독을 바라보며 ‘예끼 이 사람아’ 하는 눈빛을 보냈다.

‘이렇게 잘하는 거면 진즉 말해 줬어야지.’

장난기 어린 눈총에 황정구 감독이 멋쩍게 웃었다.

그 동안 다른 배우들이 비질비질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잘한다!’

‘괜찮은데? 아니, 괜찮은 게 아니라 잘해.’

‘아이고, 잘하는구만. 핫핫.’

대본에 시선을 고정한 우주가 대사를 읊어 나갔다.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말에 배우들도 대사 합을 맞춰 주었다.

[지구라니요. 저희 지구인이에요!]

[지금이 몇 년도입니까?]

[서기 2016년 아닌가요?]

현대 지식을 업데이트한 외계인들이 착착 대답하지만, 김우주는 차분하게 유도 심문을 하며 그들을 궁지에 몬다.

동시에 배우들도 몰입하기 시작했다.

좋은 맞상대를 찾은 탁구 선수들처럼 대사가 통통 튀면서 테이블 사이를 쫄깃하게 오갔다.

그리고.

5억에 대한 무반응에 ‘외계인입니다’ 하던 김우주가 무능한 상사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흘러나올 때.

배우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왜 이렇게까지 잘하지?’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연습을 엄청나게 철저히 해 온 것도 맞고.

하지만 지금 선우주의 연기에는 연기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진짜 외계인을 상대해 본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실감나게 잘하지?’

진짜 외계인을 다뤄본 실력자 같다.

그때, 배우들의 시선이 우주 옆에서 훈훈하게 웃고 있는 스칼렛 아라에게 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외계인들을 다루는 무미건조한 요원 캐릭터를 연기하는 선우주의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거렸다.

네 개의 그림자가 우하하하하! 하며 일렁이는 느낌.

어디선가 환청처럼 자동으로 따라붙는 꺄르륵! 꺄르르! 하는 소리에 배우들이 끄덕였다.

‘맞다. 얘, 뉴블랙이었지.’

평소에도 외계인을 대하고 있었구만.

정장이라는 멀쩡한 옷차림과 빛나는 미모에 홀려서 잠시 잊었던 사실이었다.

배우들이 허허 웃으며 우리 우주 참 잘 왔구나 하고 있을 때.

“이제 1화를 끝내고 2화로 넘어가겠습니다.”

회당 50분 구성으로 된 시트콤에서 첫 25분짜리 1화가 끝나고, 다음 25분 분량인 2화로 넘어갔다.

그러는 동안 2화에 나오는 장면들에 배우들의 호기심이 더해졌다.

‘이것도 잘할 것 같은데?’

2화부터 초심자에겐 다소 고난이도의 장면들이 있었다.

1화에서는 무미건조하게 심문만 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2화에서는 이제 요원 김우주가 외계인들과의 대화를 나누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들이 있었다.

회색빛 무미건조한 캐릭터로 시트콤적인 재미를 뽑아야 하는 장면들.

이것까지 잘한다면 정말 대박이었다.

“다음 씬, 김우주와 외계인 가족들의 대화 장면입니다.”

기대 어린 시선 속에서 우주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예?]

요원 김우주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울려 퍼지면서 배우들이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무허가 건축물이요?]

2화의 오프닝은 산 중턱에 초가집으로 위장한 UFO가 무허가 건축물로 적발되는 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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