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4)화 (45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54화

1화에서 정체가 들통난 외계인 가족들은 결국 외계인 관리국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행성에 돌아갈 때까지 보호해 준다는 건가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요원 김우주가 당부한다.

[현재 지구인들에게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비밀입니다. 그러니 절대 정체를 들키시면 안 됩니다.]

[아, 뭐 그런 것쯤이야…….]

[그런 거야 우리한테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

[하하하하하!]

[…….]

관리국에 잡히기도 전에 국정원에게 인계된 외계 가족이 자화자찬하며 웃는다.

실시간으로 식어 가는 김우주의 눈빛이 포인트였다.

[그리고 지구에 체류하는 석 달 동안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지내셔야 합니다.]

[그건 자신 있죠. 그럼 악수할까요?]

…하면서 1화가 끝나게 되는데.

2화 시작부터 관악산 중턱에 초가집으로 변신한 UFO가 관청으로부터 적발된다.

[여기 무허가 건축물이 있다고 누가 신고를 했어요.]

[…….]

김우주가 외계인 가족들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외계 가족이 사고 친 강아지들처럼 시선을 피하는 장면.

적절한 표정 연기에 배우들이 작게 웃음을 흘렸다.

무미건조한 캐릭터의 평정심이 일순간 흐트러지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살린 연기였다.

시트콤에서 표정만 봐도 웃길 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주연배우 서노을이 우주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 진짜 잘 쓰네.’

무허가 건축물이란 이야기에 김우주의 눈썹이 미묘하게 솟는다.

‘정말 한심하고 할 말은 많지만 일단 급한 일이 있으니…’ 하는 대사를 표정 하나로 처리한 우주였다.

분명 첫 작품일 텐데 표정에 있어서는 중견 연기자처럼 자연스럽다.

다른 배우들도 감탄했다.

‘……아이돌의 장점만 모아 놨네.’

기존 발성과 발음에 무대로 인해 연습한 표정연기, 그리고 방송 경험이 많아서 현장 분위기 적응도 무리가 없는 것까지.

시트콤적인 재미까지 잘 잡아내는 표정연기에 관계자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이건 된다. 될 수밖에 없다.’

시청률을 위해 데려온 구원투수가 코믹한 연기까지 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동안.

UFO를 옮기기 위해 김우주가 여러 방법을 고민한다.

[이동은 어렵습니까?]

[동력이 없어서.]

[아니면 다른 걸로 변신이라도 한다거나…….]

[그것도 동력이 없어서.]

[아니… 대책도 하나 없이……!]

평정심을 잃고 순간적으로 울컥한 김우주의 모습에 외계 가족이 눈치를 본다.

속닥거리는 가족들.

[이럴 때 쓰는 말을 제가 알고 있어요.]

[그래?]

[가서 얼른 말해 봐.]

[요원님! 삐졌어요~?]

[…….]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회색빛 인간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색이 돌아왔다가 사라진다.

그러곤 고개를 저었다.

[……화 안 냈습니다. 저는 화 같은 거 안 냅니다.]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게 된다.

외계 가족의 막내, 아라가 천진난만하게 말한다.

[근데 이거 그냥 들고 움직이면 되잖아요.]

[아! 그러네.]

김우주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게 무게만 해도 최소 몇 톤이 넘어가…….]

[하나 둘 셋! 으쌰!]

초가집이 들린다.

[…….]

순간적으로 눈에 초점이 사라지는 김우주의 표정연기에 황정연 작가와 황정구 감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2화의 초반부가 지나갔다.

어두운 새벽녘.

주택가들이 밀집한 지역에 외계인 가족들이 초가집을 들고 이동하고, 중요한 조연인 동네 고등학생이 커튼 사이로 그걸 목격하고 놀라는 장면 등이 지나갔다.

그렇게 이사가 해결이 됐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초가집이 생겼어?]

[이사 왔나 봐!]

다음 날 아침에 이웃들이 집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고등학생이 의심스런 시선으로 보고.

그와 함께 2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우리 가족은 외계인 - 2화 : 좋은 이웃이 되고 싶어요!」

2화의 내용은 외계 가족들이 이웃과 친해지려다가 동네가 개판이 되는 내용이었다.

[내게 복종하거라. 미천한 것들아!]

[왈왈왈왈!]

송훈 선생님이 연기하는 말티즈가 동네 개들을 정복하면서 강아지들의 골목대장이 되고.

[저긴 왜 저러고 있나요?]

[아, 새댁은 모르는구나. 오늘이 작년에 저집 영감님이 돌아가신 날이거든.]

[그렇군요. 어디로 돌아가셨나요?]

[……?]

작은 오해가 커져서 ‘인간들은 기체 상태가 되어서 이동을 한대요’ 하는 대화가 나오고.

외계인들이 우리도 해보자며 기체 상태로 돌아다니면서 이웃집을 방문하게 된다.

에피소드의 배경은 추석.

제사를 지내는 이웃들에게 몽실몽실한 연기가 된 외계인 가족들이 손을 흔든다.

[안녕하세요~]

[흐아아악!]

조상님이 나타났다며 경찰서에 신고가 속출하게 되고, 그걸 수습하기 위해 외계인 가족이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과거로 가는 것이 2회 내용이었다.

점점 웃기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웃음이 흘러나온다.

“자, 다음 화로 넘어가겠습니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대본 리딩이 쭉쭉 진행됐다.

다 같이 모여 흐름을 점검하는 자리이기에 대개 3~4시간 정도 소요되는 자리.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가 누적되어 힘들어지는 게 보통인데.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대본 리딩 현장에서는 연신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터진다.’

대본만 보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가 리딩을 하고 합을 맞추면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주조연 배우들의 합이 좋고.

장면마다 감독이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머릿속에 그려지고.

무엇보다….

[귀신을 부르는 방법이요?]

외계인들이 세상을 누비고 다닐 때마다 중간중간 나타나 연기를 적절하게 해 주는 감초가 있었다.

만능 캐릭터 김우주.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연필을 들고 주문을 외우면 귀신이란 존재와 컨택할 수 있다는데요?]

[그게 될 리가 있겠습니까.]

[요원님도 해보세요!]

귀신을 불러내는 방법을 쓰자마자 소복을 입은 귀신들이 김우주에게 달려들기 시작한다.

[대박! 이게 되네…?]

[숨… 숨이, 저 좀 도와주…!]

배우들이 키득거렸다.

무엇이든 잘하는 설정이라 진짜 귀신 소환까지 해 버리는 김우주.

그의 화려한 이력들이 중간중간 등장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수학 과목을 담당하게 될 김우주라고 합니다.]

외계인들의 학교 적응을 도와주기 위해 선생으로 위장해서 잠입하지만.

[선생님! 저희 비투스와 계약을…!]

[저희 대박스터디와 함께…!]

엄청난 강의력으로 학원가와 인터넷 강의 업계에 소문이 퍼져서 난리가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잠시 위장 취업한 치킨집에서도.

[여기가 바로 대박 소스로 유명한 마약통닭입니다!]

[미튜브 여러분, 미하. 그 유명한 마약통닭, 제가 한번 먹어보러 왔습니다!]

[실례합니다. 관악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마약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혐의를 받아 경찰 조사까지 받는 김우주였다.

같이 연루되어 마약 조사로 모발 100개를 뽑히는 외계인들이 눈을 흘기고, 김우주가 외면한다.

[……미안합니다.]

외계인들을 지근거리에서 감시해야 하는데, 쓸데없이 부업을 잘해 버려서 방해받는 캐릭터.

외계인들에게 늘 사고 치지 말라고 강조하지만, 본인도 사고를 은근히 치는 게 김우주란 배역의 매력이었다.

회색빛 인간이 다채로운 색의 외계인들에 물들어 가끔씩 색이 돌아오는 장면도 그리고.

[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동시에 외계인들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늘어나는 경위서에 괴로워하는 공무원의 애환도 그렸다.

그렇게 김우주란 캐릭터가 어떤 인물인지 잘 보여 주는 연기에 모두가 미소를 지을 때.

대본 리딩 후반부에 다다라 배우들이 우주의 특이한 점을 캐치했다.

‘대사를 다 외워 왔네?’

떡볶이 국물에 페이지가 붙었는지 대본이 안 넘어가는 우주를 기다려 주려고 할 때였다.

우주가 딜레이 없이 대사를 읊었다.

모두가 눈에 이채를 띠는 동안 턱을 괴고 있던 원로 배우 양옥분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성실하네. 애가 참 됐어.’

주세한에서 봤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저 정도 급의 아이돌이면 밤낮없이 바쁠 텐데 3~4회 분의 대사를 통으로 암기해 온 노력이 기특했다.

방문하기만 해도 좋은 손주가 예쁜 옷도 사 오고 안마까지 해 주는 느낌.

마음속에서 우주선이 우리 우주가 되었다가 이제 귀염둥이 막내로 진화하고 있었다.

‘아이고, 물도 잘 마시네.’

‘저런 소품은 또 언제 준비해 왔을꼬~?’

‘역시 방송 이미지는 믿으면 안 돼. 회사 사람들 괴롭히고 그러는 것처럼 보이던데, 엄청 착하고 성실하구만.’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하는 콩깍지들이었다.

*   *   *

“자, 그러면 이것으로 대본 리딩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와아아아!”

황정구 감독의 선언에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 선배들에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아으으…….”

거의 3시간 넘게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다.

같이 하품을 하던 아라가 웃으며 물었다.

“피곤하지?”

“조금요. 저 오늘 처음 해 본 거였거든요.”

“원래 처음 리딩할 때가 제일 떨려. 차차 하면 적응되기는 흐아아암….”

“누나, 입에 모기 들어가는데요….”

“괜찮아~”

나보다 연기 경력이 많아서 그런지 아라는 익숙한 듯한 분위기였다.

“근데 저 혹시 실수한 건 없었죠?”

“어어어어엄청.”

“엄청?”

“엄청 잘했어. 너무 잘하더라.”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연습한 대로 한 것 같기는 한데, 이게 무대가 아니다 보니 잘했는지 못했는지 감이 안 온다.

내 말에 아라가 멈칫하고 뭐라고 말을 해 주려고 할 때.

“우주 씨. 비하인드 캠 인터뷰 좀.”

“아, 네.”

배우들을 찍으러 돌아다니던 비하인드 캠이 내게 왔다.

“오늘 대본 리딩 함께 한 소감이 어떠세요?”

“정말 TV에서만 보던 선배님들과 한 자리에서 리딩을 하니, 제가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 잘하신 것 같나요?”

“글쎄요. 그럭저럭 한 것 같기는 한데…….”

그때 뒤에서 외계인 아들 역을 맡은 배우 정인우가 소리쳤다.

“뭐가 못해? 너 엄청 잘했는데!”

“흐하하핫!”

“방금 쟤 말하는 거 들었어요? 자기가 못했대. 아니, 내가 어이가 없어 가지고.”

떠들썩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딘가 모르게 대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배우들의 모습에 내가 카메라를 보고 웃었다.

“그렇다네요.”

그쯤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배우들이 내게 다가왔다.

송훈 선생님이 껄껄 웃으며 내 볼을 쭉 잡아당겼다.

“아이구! 우리 주선이~ 어디서 있다가 이렇게 왔어~”

“가, 감사합니다.”

우주인데요…….

볼을 잡아당겨질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80대 선생님이라서 나를 손주를 보듯 귀여워하시는 눈빛이다.

옆에 선 양옥분 선생님이 말했다.

“얘 너무 잘하더라. 내가 2년 전에 만난 사람이랑 아예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감사합니다.”

“대사도 다 외워 왔드만.”

“네, 열심히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본인이 봤을 때 잘했다 싶으면 자신 있게 잘했다고 해. 겸손 떤다고 꼭 좋은 게 아냐.”

진심어린 조언에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노을을 비롯해서 다른 주조연 배우들도 다가와서 잘했다고 등을 한 번씩 두드려 주었다.

그런데 뭔가 다들 눈빛이 익숙하다.

어디서 많이 본 눈빛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 배우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자! 근처 고깃집에 예약 잡아 놨으니까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셔야 합니다!”

“예에-!”

이제 리딩이 끝나서 그런지 행복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TBC 방송국 근처 고깃집으로 이동한 후.

“오늘 법인 카드의 영광을 내려주신 김희용 예능국장님께 박수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

“한 말씀! 한 말씀!”

“어, 음…….”

TBC 예능국장님이 잠시 고민하다가 장난기 어린 멘트를 던졌다.

“원래는 삼겹살 예정이었는데, 리딩 현장을 보면서 이건 소고기다,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와아아!”

“오늘 마음껏 드십시오!”

고기가 준비되는 동안 나와 아라가 휴지와 수저를 꺼내 선배들의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어린 후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늘 하던 대로 집게까지 집을 때.

“우주야.”

정인우가 내 손에서 집게를 슥 빼 갔다.

“이런 건 어른이 구워 주는 거야.”

“아…? 네.”

“그래. 그냥 구워 주는 거 먹어~”

서노을이 말을 얹듯 톡 말했다.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외계인 가족 역할의 배우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손은 닦았니? 물티슈 좀 가져다 달라고 할까?”

양옥분 선생님이 물티슈를 건네주시고.

“주선이~ 우리 주선이는 야채 많이 먹니? 이 야채를 많이 먹어야 몸이 건강해지지!”

대뜸 야채 소쿠리에 담긴 당근을 권해 주시는 송훈 선생님이었다.

부부 역할을 맡은 중견배우 둘도 내게 말을 걸었다.

“연기는 어디서 배웠어?”

“전 기획사에서 잠깐 좀 배워 보긴 했는데… 대부분은 독학으로 해결을 했어요.”

“그래? 누구한테서 배웠는데?”

“김석문 선생님께….”

“그분 엄청 까다로우신데. 성에 안 차시면 아예 안 가르치시지 않나?”

TJ 때 잠깐 특강처럼 연기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 계셨다.

내 연기를 보고 봐줄 만하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고 두 중견배우가 훈훈하게 웃었다.

“역시 우리 우주네.”

“우리 우주가 연기 재능이 있었구나.”

……우리 우주?

다들 따스하게 웃는 모습에 그제야 뭔가 이상했던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주야, 고기 좀 먹어.”

“네. 선배님.”

“형이라고 불러. 형이라고.”

내 접시에 분주하게 고기를 올려주는 정인우.

“주선이, 아 해 보거라.”

“예, 옛, 선생님.”

엄청나게 거대한 쌈을 내미는 송훈 선생님.

“선생님, 얘는 야채보다 고기를 더 좋아할 나이에요.”

“그래? 주선이 몇 살이야?”

“저 올해로 스물넷입니다.”

“아가네, 아가! 아이고 아기님이었어!”

손뼉을 치며 아가라고 부르는 송훈 선생님의 말에 스탭들까지 웃음이 터졌다.

나와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아라도 고개를 돌리고 웃고 있다.

그때부터 익숙한 대사들이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

-지호야. 야채 좀 먹어야지.

-지호야. 아~ 해봐. 형이 쌈을 싸 봤어.

-어유, 그거 만지지 마! 지지! 어휴 지지!

-저 애기 아니라구여!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웃잖아여! 저 이래 봬도 열아홉이라구여!

-흐하하하하! 열아홉이래! 열아홉! 아주 어른이다~!

이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느낌으로 인식되는지 알 것 같다고 할까.

내게 슥 다가온 황정구 감독이 웃으며 물었다.

“우주야, 너도 술 한 잔 안 할래?”

“아이이이!”

외계인 가족들이 단체로 노발대발했다.

“감독님! 우리 애는 알콜 못 먹어요~!”

“황 감독은 왜 어린애한테 왜 술을 먹이려고 그래.”

“쯧쯧. 황 감독도 참, 이 한국 사회에서 술 권하는 분위기가 없어야 돼. 사장님요, 여기 소주 두 병 더 주이소!”

사정을 모르고 말을 걸었다가 본전도 못 찾고 돌아간 황 감독님에게 내가 아련하게 웃어 보일 때.

송훈 선생님이 유리컵에 콜라를 따라 주었다.

“콜라 마시거라.”

“예, 선생님.”

“아이고, 우리 주선이는 콜라도 이쁘게 마셔~”

대본 리딩에서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그냥 서너 시간 합을 맞추고 나오니, 갑자기 우리 막내~ 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눈을 깜빡거렸다.

되게 기특해하고 좋아하는 느낌.

영문은 모르겠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흐흐흐흣… 흠흠.”

“……?”

“선배님, 제가 그래도 고기를 구워야…….”

“아이! 집게 만지지 마!”

“흐흐흣! 흠흠….”

자꾸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맞다.

사실 난 어리다.

늘 노인 대접하는 동생들 때문에 그렇지, 사실 나 정도면 어딜 가든 이런 포지션이었다.

“주선아!”

“네!”

“입 벌리거라!”

“네!”

송훈 선생님의 말에 맞춰 새처럼 입을 쏙 벌리고 쌈을 받아먹었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엄지를 들었다.

“너무 마히허요!”

“하하하하! 좋쿠나!”

떠들썩한 웃음이 오갈 때.

고기를 보다 보니 동생들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켰다.

아니나 다를까. 단톡방에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응원부터 시작해서 저주까지 하나둘 보고 있을 때, 톡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기분이 침울해졌다.

“……아.”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내 방에서 인증샷을 찍은 동생들의 사진을 보여 주며 주변 배우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게요…….”

이윽고 설명이 끝나자 울상이 된 내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빌라 701호.

그곳 2층에 있는 선우주의 방에 도착한 뉴블랙 멤버들이 심호흡을 했다.

김중현이 말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지.”

“그래도 우리가 이겼어여.”

승리자처럼 방을 차지한 졸개들이었다.

저마다 쓰레기를 줍는 집게와 함께 커다란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봉사활동을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비주얼. 그들이 바닥에 늘어진 옷들을 집게로 주울 때.

“어? 우주 형한테 답장 왔다!”

오매불망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김비주가 환히 웃으면서 졸개들이 사사삭 모여들었다.

고깃집에서 잔뜩 예쁨받는 얼굴로 있는 선우주.

“뭐야. 혼자 고기 먹네.”

“겁나 잘 지내는 거 같네여. 고기도 먹고. 에이~ 그냥 우주 형은 거기서 살라고 그래여.”

“고기 먹어서 참 좋겠네요~ 라고 보내주세요. 비주 형. 아니, 형이 보내면 선플 같으니까 안 되겠다. 내가 보낼게요.”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선우주 [난 막내다!]

선우주 [이제 우주는 집에 안 갈꺼에요 ~_~]

선우주 [맏형 안 할래]

뭐라는 거야. 정말.

동생들이 짜게 식은 얼굴로 헛소리하는 맏형의 톡을 무시했다.

“뭐, 첫인상은 좋게 잡혀서 다행이긴 하네.”

“그게 다 우리 덕분이에여. 평소처럼 꽃무늬 후드 입고 갔어 봐여. 첫인상은커녕 마지막 인상이 됐을걸여.”

“그거 인정.”

꽃무늬 옷을 입고 배우들에게 안냐세요 하는 선우주의 모습.

대충 멀쩡한 옷이 없어서 정장을 입고 가라고 한 건데, 사진 속 분위기를 보니 나름 잘 먹힌 모양이었다.

“자, 그러면…….”

서리혁이 종이를 내밀었다.

그 위에 선우주의 친필 사인이 담긴 서약서가 있었다.

“본인 동의도 있었으니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오늘부로 우리는 이 쓰레기 같은 옷들을 불태워 버리는 겁니다.”

“예!”

불꽃놀이가 음방 1위를 한 이후로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넷이서 선우주를 둘러싸고 압박한 결과물.

‘둘러싸니까 무섭져? 겁나 무섭져? 얼른 사인해여.’

‘형. 지금 팬분들이 노하고 있어요. 꽃무늬 No하면서.’

‘하, 할게… 사인할게.’

서리혁의 OK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멤버들이 선우주의 옷장에 담긴 온갖 테러리스트 복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꽃무늬 선글라스 압수.”

“대체 핑크 바지는 왜 있는 건데? 이거 입는 거 본 적 있어요?”

“몰라여. 근데 버리지 말래여. 걸어두면 이쁘다고.”

불결한 물건을 대하듯 집게로 딱딱 옷을 집는 멤버들.

그와 함께 김비주와 서리혁이 오늘 다 같이 쇼핑을 하면서 산 옷들을 빈자리에 채워 넣었다.

김비주가 물었다.

“이거 바지랑 윗도리는 따로 정리해야겠지?”

“형.”

“응?”

“그 인간을 가볍게 보지 마요. 같이 진열을 안 해 놓으면 최악의 믹스매치를 할 사람이니까.”

“……아. 맞아.”

“그냥 인간이 아니고 움직이는 마네킹이라고 생각해요.”

상암동에 있는 리더가 콜라를 홀짝이며 ‘아디오스, 꽃무늬…’하며 눈가가 촉촉해질 때.

다가올 한여름을 대비해 리더의 패션을 정비해 주는 멤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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