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1)화 (46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1화

8월 초.

현재 연예계를 달구고 있는 소식은 스타들의 열애 소식이나 곧 나오는 기대작 영화, 드라마 등이 아니었다.

바로 뉴블랙과 해외 유명 가수와의 콜라보였다.

-헤일리 블루, SNS 라이브서 뉴블랙과 ‘깜짝 콜라보’ 발표

미국에서 팔로워수가 Top 10 안에 드는 가수인 만큼 해당 소식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고.

연예부 기자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게 무슨 소식이지?’

그냥 가수도 아니고 무려 헤일리 블루였다.

미국과 태평양을 두고 떨어진 한국에서도 일반인들이 얼굴을 보고 알아보는 정도의 인지도.

음원 사이트의 Pop 부문에 넘어가면 늘 몇 곡 정도가 차트인 되어 있는 가수였다.

당연하게도 기자들의 눈과 귀가 레몬 엔터로 향했다.

‘콜라보가 어떻게 성사된 것이냐. 레몬아!’

…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네?’

홍보 담당자들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답을 해 왔다.

그러더니 10분 정도 지나서 ‘아마 사실인 것 같다’는 아리송한 대답을 해오는 레몬 엔터였다.

공식 입장이 나올 때까지 걸린 게 무려 1시간.

한 연예부 언론의 데스크가 짜증을 냈다.

“그래서 레몬은 이 콜라보가 맞대, 아니래?”

“제대로 확답은 못 들었거든요? 근데 분위기상… 그게 맞아요. 비밀리에 진행하다가 헤일리 블루가 엠바고 깬 거죠.”

“오, 설득력 있네.”

“대단하네요. 이 정도 사이즈면 몇 달 동안 말이 오가고 그랬을 텐데, 하나도 새어 나온 게 없잖아요.”

철통 보안이라며 감탄하는 기자들이었다.

실제로는 30분 정도 곡을 쓴 다음에 헤일리 블루가 라이브 방송~ 하면서 이뤄진 일이었지만.

설마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됐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쨌거나.

파급력 있는 소식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 헤일리 블루

곧바로 연예란의 기사 상위권을 차지하고 실검에는 관련 키워드가 하나씩 떠올랐다.

일반인들의 반응도 기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게 뭔 투샷이지…?’

기사 사진 왼쪽에서 뉴블랙이 가재를 잡고 있고, 오른쪽에선 헤일리 블루가 파파라치를 패고 있다.

사진에서부터 왠지 모르게 환장의 호흡이 느껴지는 듯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합에 모두가 눈을 깜빡였다.

-만우절인지 날짜부터 확인함

-ㅋㅋㅋㅋㅋㅋㅋ어그로 오지네 하고 들어왔는데 사실이었습니다..

-어떻게 성사된건지 나만 궁금한가..?? 나만 궁금한거야??

-헐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림체가 안 맞는,, 아 이거 뭐라고 설명해야될지 모르겠는데 느낌 진짜 이상하네ㅋㅋㅋㅋ

-저 다른건 다 됐으니까 어떻게 성사된건지나 좀;

도무지 접점이 없는 조합이었다.

SNS를 통해서 너님 노래 좋더만~ 하고 좋아요를 누른 것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는 사이일 텐데 어떻게 성사가 된 걸까.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러 가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미튭에서 뉴블랙tv 영상 보고 연락했다는게 정설

-정설이 없다는게 정설

-대충 어찌어찌해서 성사됐다는 정설임

-보니까 뉴블랙이랑 인터뷰한다고 하던데ㅋㅋㅋ 그거 하면서 급 콜라보 성사된 거 아님??

┕시간상으로 절대 말이 안된다는 게 정설

맞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돌에 맞고 있었다.

어떤 추측을 해도 어긋나는 상황에 네티즌들의 궁금증이 더욱 더 증폭되어 갔다.

얼마 안 가 또 다른 공식 입장으로 ‘미튜브 인터뷰 중에 즉흥적으로 성사..’ 라는 설명이 올라왔지만, 궁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존나게 쩌는 곡을 만들었어~!]

…인터뷰 도중에 성사가 됐는데, 인터뷰를 할 시간에 곡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요상한 상황.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뉴블랙이 뭐 했겠지.’

어찌 됐든 간에 콜라보가 성사됐다는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할로윈에 공개된다는 정보를 기억하며 대충 나머지는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할 때.

고척돔에서 내한 공연을 마친 스타의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져 왔다.

[경복궁에서 헤일리 블루 봄ㅋㅋㅋㅋ]

[부대찌개 집에서 헤일리 블루 봤어요~~]

[후기) 한강에서 헤일리 블루봤습니다]

무슨 삘을 받은 것인지 즐기는 자의 모드로 서울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해외 스타였다.

마치 한국을 수십 번 방문한 사람처럼 알짜배기 코스로 다니는 모습.

현장에서 어떻게 서울을 이리 잘 아냐고 질문한 한국인들에게 그녀가 답을 해주었다.

「닥터 피쉬가 알려 주던데.」

지호가 알려준 닥터 피라루쿠를 요상하게 기억하고 있는 헤일리 블루의 답이었다.

당연하게도 한국인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아, 리혁이요?」

「애들이 유명한 데를 알려 주니까, 막 지도에 자를 대고 선을 슥슥슥 긋더니…….」

알짜배기 코스를 최단 경로로 구상하고는 가이드북까지 뽑아서 건네줬다는 이야기였다.

「리혁이가 좀 그렇죠.」

「아는 사이야?」

“……어? 아니었네. 나 모르는 사이였네.”

당사자인 헤일리 블루에게 ‘뉴블랙은 친구가 존나 많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이제는 대학로에서도 그녀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등장했다.

[혜화역에서 헤일리 블루 봄]

지하철 내리다가 눈 딱 마주침 ㅠㅠㅠㅠ

덜덜덜 떨면서 막 물어봤는데 되게 친절하게 답해줬음

옆에 경호원 아저씨가 째려봐서 무섭긴했는데 직ㅁ 무슨 한국 드라마 촬영 나온다고했어

-드라마? 뭔 드라마???

-지하철은 왜 탔대?

-타고 싶어서 탔대!

-드라마는 무슨 드라마인지는 나도 몰라; 말실수해서 맞을까봐 무서워서 못 물어봄ㅠ

-ㅋㅋㅋㅋㅋㅋ일리 있다

-그래도 일반인은 안 때리는듯..? 기자만 때리자너

-사실 때리는 건 아님 (달라진 가슴 크기를 묻는 기자에게 헤일리 블루가 침을 뱉는 짤.gif)

-드립이지만 미국에서 1년 내내 민사소송 중이라는 말 있음ㅋㅋㅋㅋㅋ

-[글쓴이] ?? 근데 지금 누가 답변하고 있는 거?

곧바로 다른 목격담이 올라오면서 어떤 드라마인지도 정체가 밝혀졌다.

-헤일리 블루, ‘외계 가족’ 카메오 출연 성사.. 네티즌들 “아낌 없이 주는 나무냐”

-<우리 가족은 외계인> 황정구 PD, “나는 아마 전생에 우주 씨를 도왔던 것 같다”

-특급 카메오 연일 출연, ‘우리 가족은 외계인’ 방영일은 언제?

이제는 안 볼 수가 없는 시트콤이 된 ‘우리 가족은 외계인’이었다.

-대체 선우주가 무슨 말로 낚은 건지 궁금하다

-이쯤 되면 감독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지.. 멀리서 우주 보면 그랜절 몇 번할지

-나 같으면 GPS 켜놓고 삼보일배하면서 만나러 간다ㅇㅇ

-망할수도 있는 시트콤을 이렇게 멱살 잡고 가네ㅋㅋㅋㅋㅋ

-이쯤이면 멱살이 아니고 공사장 크레인으로 지이잉 하고 들어올리는거임

-캬.. 이 정도 능력이 되야 김중현을 부하로 거느릴수 있는거구나

시트콤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왠지 모를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우주선이 다가와서 기웃기웃하면서 안 볼 거야? 이래도? 하면서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방영된 후에는 시청률이 어찌 될지는 몰라도 1회 시청률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확보되고 있었다.

@Haley Blue

(3개의 마술 상자에 상하체, 머리가 분리되어서 즐거워하고 있는 헤일리 블루의 사진)

3등분이 되어도 멋진 나

당사자의 SNS에도 몹시 만족스러워하는 반응이 올라올 때.

모두가 기다리던 뉴블랙 월드의 인터뷰도 업로드가 되었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콜라보부터 시작해서 드라마 출연까지 성사가 된 것인지.

미튜브 영상을 확인하려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특별한 게 없는데?’

우당탕탕 천방지축 쾅쾅쿠쾅쾅 하는, 평소의 흔한 뉴블랙 컨텐츠였다.

내한한 스타도 질문이 나올 때마다 환히 웃으면서 답변하고, 즐겁게 노는 것을 빼면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해외 연예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나 헤일리 블루의 팬들에게는 눈을 휘둥그레 뜰 법한 컨텐츠였다.

‘이 언니가 욕을 이렇게 적게 하는 사람이 아닌데…?’

1분에 한 번 꼴로 F가 나와 줘야 되는 사람이 청산유수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지하다.

[창작 일을 하면서 고갈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야. 하지만 방법이 있나. 그저 곡을 쓰고 또 쓰는 거지. 수백 개의 쓰레기를 만들어도, 그 속에서 꽃이 한 송이 필 테니까.]

[내 음악을 듣는 리스너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목표는… 오래 살고 싶어. 남편이랑 같이.]

음악에 대해 본인이 어떠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지. 이번 앨범에서 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살면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이는 답변들이 이어지고, 질의응답이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하기도 전에 자신의 개인사를 말하며 인터뷰를 종종 이끌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코를 찡긋하는 미소도 계속해서 보였다.

시청자로 하여금 보았을 때 굉장히 깊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루블리라니. 진짜 러블리한 별명이네. 사랑해.]

K하트를 하는 모습에 팬들이 식겁했다.

‘깜짝이야.’

손가락 하트 밑으로 ‘이게 너의 남은 목숨이다’ 하는 자막이 있어야 어울릴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별로 본 적이 없었던 색다른 면모에 놀라던 헤일리 블루의 팬들은 얼마 안 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미국에선 이런 인터뷰가 없었구나.’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늘상 음원 탑을 달리고 있고, 화제성도 탑을 달리고 있는 셀럽이지만.

현지에서는 이런 이미지가 아니었다.

매일 같이 사건사고를 일으키면서 어이구 또 사고쳤네, 하는 이미지.

-인터뷰 너무 좋다ㅠㅠㅠㅠ

-헤일리 블루 말하는 건 이걸로 처음 봤는데 진짜 생각 깊은 사람인게 느껴짐

-이게 인터뷰지

-팬으로서 진짜 감동입니다. 진짜 뉴블랙 분들이 얼마나 질문을 열심히 준비한건지도 눈에 보이고, 인터뷰어로서 배려하는 모습도 정말 눈에 쏙 들어오네요.

-갑자기 영어 공부 자극온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팬이 많은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고 있었다.

해당 인터뷰 영상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폴 로랑 인터뷰 영상의 조회수를 순식간에 뛰어넘는 한편, 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북미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미디어 새끼들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이걸 보고 나면 헤일리 블루라는 사람이 다시 보임

-사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함. 먼저 미디어가 무례한 질문이나 자극을 해놓고 거기 반응하면 조롱하고.

-인터뷰어 태도가 진짜 마음에 든다. 스타라고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배려하는 거 같아.

┕그게 아니고 쟤네가 저 나라 최고 셀럽이야.. 우리로 치면 네브라스카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름을 아는 급임

┕아하

곧이어 헤일리 블루가 SNS로 깜짝 콜라보 공개를 한 가수가 인터뷰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검색 엔진에 ‘The New Black’이란 키워드가 일시적으로 검색량이 급증하고.

북미의 수플레들도 유명 가수와 뉴블랙의 콜라보에 duck soon 하면서 기쁨을 표현할 때.

‘호오…….’

이미지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헤일리 블루의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사고뭉치로 유명한 셀럽들의 에이전트들이었다.

‘한국에 갈 일을 만들어 볼까?’

‘마약도 끊었고. 이제 필요한 건 이미지 전환이다.’

‘그래도 감옥엔 안 갔으니까.’

당사자인 뉴블랙이 듣는다면 으아아아 오지 마세요 할 법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었다.

*   *   *

일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처음에 곡을 쓸 때도 매끄럽게 진행이 되어 그런지, 마무리 작업도 손쉽게 해결이 됐다.

「여기에는 조금 으스스한 효과음을 넣어 볼게요.」

「좋아.」

우리 작업실에서 헤일리와 앉아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몇 시간 정도 수정 작업을 한 게 끝이었다.

평소 하던 대로 어마어마하게 수정을 하고, 또 하는 식으로 작업을 할까 고민했는데.

헤일리와 나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건 과하게 힘을 주면 안 되는 노래예요.」

「힘을 빼야지.」

그리하여 ‘Blue Moon’의 초반부 스케치를 깔끔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작사는 그녀가 하기로 했고.

녹음을 비롯해서 남은 작업은 이메일이나 영상 통화를 주고받으며 진행하기로 했다.

이게 진짜 곡을 쓴 게 맞나? 싶을 만큼 얼렁뚱땅 끝났지만, 곡 퀄리티에 대해선 큰 걱정이 없었다.

“굿! 베리 굿!”

“이야! 나이스 작곡!”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리액션을 선보이며 엄지를 연신 치켜들었으니까.

세계적인 싱어송 라이터를 바라보는 눈이 초롱초롱했다.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던 직원들이 내게 통역을 요청했다.

“곡이 너무 멋지다고 말해 줘. 이런 곡 작업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애절한 눈빛이 읽혔다.

「저를 이곳에서 탈출시켜서 미국으로 데려가 주세요, 라네요.」

「나약하네. 나약한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수 없지. 일단 탈출부터 자력으로 하라고 해.」

「훌륭한 정신이에요. 헤일리.」

그러고는 다시 통역을 해 주었다.

“저랑 평생 작업하래요.”

“아아아…!”

“다들 어딜 가려고 그래요? 그리고… 형섭아, 너 정말 미국에 가고 싶어?”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우리는 한 가족, 레몬 엔터 하는 구호를 외치며 탈주하려는 조직원들을 붙잡았다.

「사이가 좋네.」

「가족 같은 사이에요.」

「너를 아끼는 게 눈에 보여. 부럽네.」

대충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어깨를 으쓱으쓱하는 직원들에게 내가 통역을 해 주었다.

“제 덕분이래요.”

가짜 통역을 눈치챈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헤일리와의 작업은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부터 수익 분배 협상이라든가, 프로모션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저쪽 레코드사와 우리 회사가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큰 틀에서 이미 합의를 본 만큼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다.

「그럼 또 연락하자고.」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헤일리는 쿨하게 떠났다.

한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다른 버전으로 입고 있었는데.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막내가 물었다.

“근데 말이에여.”

“응.”

“이제 일본 공연하러 출국한다고 하지 않았어여? 저대로 입고 가면…….”

“…….”

석양을 배경 삼아 휘적휘적 사라지는 한복 여인의 모습에 훈훈하게 웃었다.

우리 편이어서 정말 다행인 사람이었다.

“일본 TV에서 또 엄청 난리 나겠네여.”

“그러게.”

벌써부터 헤드라인이 보인다.

초인기 가수, 헤일리 블루 전격 일본 상륙. 한복을 입고 입국한 저의는 과연?

…하면서 반일 가수 뉴블랙의 노림수, 정부의 한복 지원 등등의 어쩌고 할 그림이 눈앞에 그려졌다.

“……뭐, 갈아입겠지.”

별일 없기를 바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헤일리와의 곡 작업을 마무리하는 한편, 다른 프로젝트들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내 시트콤은 이번 주 일요일에 방영을 앞두고 있고.

KM 엔터의 오디션 서바이벌 <온 더 스테이지> 측과도 출연을 두고 사전 미팅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주 중요한 스케줄이 하나 있었다.

“중현아. 비주는?”

“지금 자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곧 일어날 거 같아요.”

“방에서 못 나오게 해.”

“안 그래도 방문 앞을 막아 놨어요. 절대 못 나올걸요.”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새벽 5시.

평소라면 비주가 일어나서 눈을 비비다가, 콧노래를 부르며 냉장고의 재료를 살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주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은 비주가 출연하는 춤 경연 예능 의 첫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쿵쿵쿵!

-야! 김중현! 너 이거 문 어떻게 한 거야!

2층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고함에 중현이 보고 올라가서 말동무를 해주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요리 기구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식사 준비를 이렇게 해 보는 건 오랜만이긴 한데, 그래도 백반집에서 귀동냥하고 직접 이것저것 도왔던 솜씨가 남아 있었다.

비주가 좋아하는 메뉴를 준비하는 한편.

“리혁아. 애플파이는?”

“거의 다 돼 가고 있어요.”

리혁이가 미튜브에서 비주의 레시피를 보고 만드는 애플파이가 오븐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냄새가 안 좋다.

“……버려야겠죠?”

“응.”

“이상하네. 아니, 이거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거든요? 이게 망할 리가 없는데.”

“그거 못된 마음으로 구워서 그래여. 형. 빵 분자가 형의 마음에 모양이 바뀐 거져.”

역시 우리 막내였다.

유사과학이 들어간 드립으로 리혁이를 아침부터 분노케 만드는 막내였다.

소파에서 엉켜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보며 계란말이를 예쁘게 사과 모양으로 접었다.

“오, 이게 되네.”

미튜브에서 봤던 대로 요리들을 예쁘게 데코레이션을 했다.

무드등까지 켠 가운데.

준비가 끝났다고 말을 하자, 2층에서 쿠르릉! 하는 소리가 났다. 문을 막고 있던 뭔가가 치워지는 모양이었다.

지호가 우리에게 물었다.

“저거 알리바바와 30인의 동굴에 나오는 소리 같지 않아여?”

“40인의 도둑들이겠지….”

이윽고 중현이의 등에 업힌 비주가 계단을 내려왔다.

안대를 하고 데려오라고 했더니 아예 업어서 오는 모습에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김중현. 대체 뭔데…… 어? 음식 냄새가 나네.”

“맞아. 누가 했게.”

“지호는 일 안 하고, 리혁이는 못하고. 넌 터뜨리니까. 우주 형밖에 없는 거 아니야…?”

그야말로 정확한 추리였다.

“……저도 일할 때는 해여!”

형들이 일하는 내내 놀았다.

“나도 시간이 주어지면 잘할 수 있다고요.”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다.

“내가 뭘 터뜨린다고 그러냐.”

아침에 계란 두 개 터뜨렸다.

너무나도 정확한 추리에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마침내 바닥에 내려선 비주가 안대를 푸는 동안, 우리가 테이블 뒤에서 짜잔 포즈를 준비했다.

“짜잔-!”

“허어…! 뭐야. 이거 뭐예요?”

비주의 얼굴이 엄청 환해졌다.

식탁 위에 차려진 계란말이, 불고기, 제육볶음, 조기구이 등등 백반집에서 나올 법한 요리들을 보고 눈이 동그래지고.

비주네 어머니가 보내준 김치에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저 오늘 녹화한다고 준비해 준 거예요?”

“응.”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었는데…….”

말은 그리하면서도 좋아 죽으려고 하는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앉아.”

“얼른 앉아여. 형.”

내가 시트콤 사전 미팅을 하러 갔을 때처럼 막내가 의자를 빼 주고, 중현이가 젓가락을 세팅했다.

이윽고 비주가 젓가락질을 하며 반찬을 집어먹고는 으으음~ 하는 콧소리를 냈다.

“맛있어?”

“네!”

“좋아할 줄 알았어.”

“진짜 맛있다. 이거 형 어떻게 요리한 거예요?”

“궁금해?”

“네, 신기해서요.”

비주가 맑게 웃으며 물었다.

“저번에 저한테 계란말이 같은 건 할 줄 모른다고 했는데. 요렇게 하트 모양까지…….”

“내가 그랬나?”

“네. 불고기는 잘 모른다고 했고. 생선구이는 생선 눈이랑 자꾸 마주쳐서 마음이 아프다고.”

“…….”

이어지는 업보의 향연에 동생들이 웃음을 참는 동안,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비주야.”

“네, 형.”

“……미안해.”

빠른 사과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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