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2화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잘 먹을게요. 형.”
“응.”
젓가락질을 하는 비주에게 말했다.
“꼭꼭 씹어먹어.”
“네.”
“불고기 괜찮아? 간장을 많이 넣은 것 같아서…….”
“전혀요. 진짜 맛있어요. 형.”
“조기도 먹어 봐.”
이내 제육도 먹어 보라고 할 때, 리혁이가 나를 말렸다.
“비주 형, 밥 좀 먹게 둬요.”
“맞아여. 그렇게 쳐다보면서 이거 먹어, 저거 먹어 하다가 체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여?”
동생들의 말에 머쓱하게 웃었다.
오늘따라 막 이것저것 먹이고 싶다.
초등학교 때 시험이 있으면 왜 김덕순 여사가 온갖 맛난 요리를 해 줬는지 알 것 같다고 할까.
내가 대신 춤을 춰 줄 수는 없고, 이런 거라도 해 줘서 보탬이 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
나도 모르게 나온 회한 섞인 한숨에 비주가 물었다.
“왜 그래요. 형?”
“초등학교 때 공부 더 열심히 할걸.”
리혁이가 비주에게 그냥 무시하고 밥을 계속 먹으라고 말했다.
대신 막내가 내 말을 받아주었다.
“초등학교 때는 원래 노는 거잖아여. 형, 저를 봐여. 공부를 못했지만 이렇게 뉴블랙이 됐잖아여?”
“그걸 자랑이라고.”
리혁이가 혀를 끌끌 찼다.
“초등학교를 그렇게 다녔으니까 알리바바 제목도 잘 모르지. 너 권장 도서 읽어본 적은 있냐?”
“권장이잖아여. 형은 하루 나트륨 1kg 권장이면 다 먹어여?”
“먹을 건데?”
“그래여? 그럼 어쩔 수 없져.”
유치한 말싸움을 지켜보던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두 막내도 조용히 웃었다.
우리를 둘러보던 비주가 고맙다는 눈빛을 보냈다.
“오늘 녹화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긴장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효과가 있는 거 같아?”
“네. 형이 차려 준 밥도 맛있고. 또 이렇게 다 같이 있으니까….”
비주가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맨날 붙어 다녔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서, 저 혼자 뭘 한다고 생각하니까 긴장도 되고.”
“그냥 편하게 갔다 와요. 형.”
리혁이가 픽 웃으며 몽글몽글해지려는 분위기를 깼다.
“군대 가는 것도 아니고. 하루 녹화하는 거잖아요.”
“군대……?”
그 말에 우리의 눈이 허공으로 향했다.
-저 왕지호, 자랑스러운 대한의 건아가 되겠습니당!
-형들! 너무 걱정하지 마여, 특전사는 금방 다녀오는 거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까까머리가 된 막내의 모습이 그려졌다.
고깃집에서 버섯을 구우면 물이 고이듯이, 벌써부터 눈에 물이 스멀스멀 차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가 특전사라니…….”
“아, 무슨 소리 하는 거예여?! 제가 특전사를 왜 가여?”
“지호가 해병대에…….”
“중현이 형은 왜 저를 해병대로 보내려고 그래여?”
팔짝 뛰는 막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는 동안 화제는 자연스럽게 오늘 녹화하는 프로그램으로 넘어갔다.
태블릿 PC로 검색하는 리혁이에게 모여들었다.
“다시 봐도 라인업 진짜 화려하네요.”
MC부터가 <명곡단>의 진행자이자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백상중 아나운서고.
경연 출연자들의 라인업도 빵빵하다.
2세대 유명 걸그룹 트윙클의 메인댄서부터 시작해서 은성이가 있는 에이플비의 리더 하루까지 총 15명.
연예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춤꾼들이 모여 있었다.
“와. 그래도 다 좋은 분들만 모였네여.”
“그러게.”
다들 순하고 성격 좋기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막내가 합리적인 가설을 제기했다.
“희한하게 메댄들 보면 성격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여. 되게 너그럽고.”
당연히 반례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다수의 메인댄서 포지션은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좋은 편이다.
왜 그런 건지 미스터리지만, 어쨌거나 좋은 일이었다.
“일단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거기 가서 심심할 걱정은 없겠다.”
“네, 안 그래도 어제 나무랑 톡했어요.”
“잘됐네.”
친분이 있는 스트릿 보이즈의 LB도 출연을 하기에 비주가 심심할 걱정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얘도 어딜 가든 사랑 받을 성격이고.
우리끼리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비주를 미워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밥 먹고 있었어?”
비주가 밥을 다 먹어 갈 때쯤 원석이 형이 숙소에 들어왔다.
오전 6시.
멋들어지게 꾸며 입은 비주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그럼 저 다녀올게요.”
“다녀와~”
그러더니 아 하면서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졌다.
길게 리스트가 적힌 노란 메모패드였다.
“제가 없는 동안 해야 될 일들 적어 놨거든요. 헷갈리면 그냥 순서대로 하면 될 거예요.”
뭔가 굉장히 많다.
이걸 다 해야 되나…?
“다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 텐데. 해야 돼요.”
“네…….”
“지호는 양치 꼭 까먹지 말고. 너 충치 생기면 저번처럼 우주 형이 돈까스 사 준다고 해 놓고 치과 데려간다?”
“넹…….”
“리혁이랑 중현이는 지호 신경 써 주고.”
“예에…….”
왠지 모르게 다 같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다녀 와!”
사뿐사뿐 걸어 나가는 비주가 문이 닫힐 때까지 ‘지켜볼 거예요!’ 하듯 웃었다.
도어락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집안의 적막.
“…….”
“…….”
비주가 잘하고 왔으면 하는 아련함과 함께 어딘가 모를 미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리혁이가 말했다.
“이거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꼭 엄마가 외출하는 거 같지 않아요?”
딱 잘라 답했다.
“전혀.”
“무슨 소리에여. 리혁이 형. 비주 형이 나갔는데 왜 엄마가 나와여.”
“그러니까 말야.”
리혁이가 아닌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할 때.
다시금 적막이 내려앉으면서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건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비주가…….’
‘……없다?’
그 순간 무언가 교차하는 감각이 퍼뜩 들었다.
데뷔하고 나서 처음으로 비주 없이 4블랙만 남은 날이었다.
중현이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소파에서 과자 먹어도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리혁이의 말에 중현이가 오래된 파채처럼 시들었다.
하지만 평상시에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해 볼 수 있다는 건 확실했다.
비주가 없어서 서운하면서도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차올랐다.
“얘들아……!”
“형……!”
우리가 껄껄껄 웃으며 서로를 껴안았다.
방방 뛰려고 하다가 방바닥을 바라보았다.
“잠깐만, 얘네 지금 있나?”
“해외 투어 중일걸요.”
다 같이 카펫 위에서 강강술래를 추면서 야야~ 야야야야~ 하면서 으쌰라으쌰를 할 때.
[으으음…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마치 텔레파시처럼 비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아니, 머릿속이 아니라….
[이럴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럴 줄은 몰랐어요.]
거실의 TV가 나님 등장, 하듯이 띠롱 하고 켜졌다.
화면 속 비주가 무언가를 누르자 TV가 지이잉 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비주 형, 지금 어떻게 하는 거예요?”
[혹시 몰라서 내니캠을 설치했거든.]
“…….”
[아무래도 넷만 두고 가는 게 걱정이 돼서요. 제가 이걸로 종종 확인할…….]
내가 중현이에게 눈짓했다.
‘중현아.’
‘네, 형.’
중현이가 젤리 봉지를 뒤적뒤적 하더니, 지렁이 젤리를 부메랑처럼 날렸다.
톡!
숨겨져 있던 내니캠이 떨어지면서 동생들과 박수를 치며 웃었다.
[어엇! 뭐야? 뭐가 날아왔는데…?]
이윽고 지호가 TV 코드 선을 뽑으면서 비주의 얼굴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뭐가 없는지 확인한 후.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강강수월래를 시작했다.
“야야~ 야야야야~”
오늘은 4블랙끼리 알차게 즐겨 보기로 했다.
드라마 촬영 가기 전까지 작곡이라도 해 볼까?
비주가 없어서 동생들을 마음껏 굴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 * *
“너무해…….”
시무룩해하는 김비주의 모습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도원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제가 카메라 숨겨 놨는데 김중현이 젤리로 부쉈어요.”
“젤리로…?”
“중현이잖아요.”
“아. 그렇지.”
벌써 뉴블랙과 만난 지 1년이 넘어가지만 가끔씩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는 매니저였다.
김비주가 유리창을 바라보며 활짝 웃는 연습을 했다.
“무슨 연습하는 거야?”
“인사 연습이요.”
갸웃하는 상대방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어딜 가든 간에 매번 우주 형이 인사를 했잖아요.”
“그랬지.”
“오늘은 제가 인사도 하고, 여러 사람들한테 다가가서 얘기도 하고 그래야 되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하지만, 안 하던 걸 한다는 생각에 조금 어색하다.
손을 꾸물꾸물하는 그의 모습에 도원석이 웃었다.
“잘할 거야.”
“잘하겠죠?”
김비주가 생긋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우주 형이라면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 봐야지.’
이미 좋은 롤모델이 있었다.
가서 할 일을 하나씩 생각하는 동안 얼마 안 가 일산 TBC 스튜디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목적지는 대회의실.
로비에서부터 대기하고 있던 카메라가 따라붙자,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맨 뒤에 서 있는 작가가 물었다.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
“엄청 떨려요. 존경하는 선배님들도 계시고, 평소에 뵙고 싶었던 분들도 많았거든요.”
“특별히 누가 보고 싶었나요?”
김비주의 눈동자가 슥 돌아갔다.
제작진 표정도 무척 호의적이고. 대본을 보았을 때 악마의 편집의 기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방송이 나오기 전 탐색 단계.
“다들 뵙고 싶어요. 춤이란 게 사람마다 특징이 다르잖아요. 순서를 꼽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비주 씨를 제일 만나 보고 싶은 인물로 꼽았는데.”
“…저를요? 왜…?”
납득이 되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작가가 웃으며 메모지를 읽어주었다.
“직접 눈앞에서 춤추는 걸 보고 싶다. 팬이다. 직캠 볼 때마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으아아아!”
“그리고 ‘춤신춤왕’이란 가제를 들었을 때, 1번으로 떠올린 인물이…….”
민망해서 종종걸음으로 도망을 치는 모습에 뒤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엉뚱한 곳이었기에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제작진이 다급하게 만류했다.
“비주 씨! 움직이지 마요! 그냥 우리가 갈게!”
“네!”
머쓱하게 웃으면서 제작진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대회의실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안에서 와글와글한 소리가 들려온다.
‘웃기는 분량 많이 뽑아야지.’
결심을 하며 문손잡이를 잡으려고 할 때였다.
“참.”
카메라 감독이 말했다.
“비주 씨, 빵 잘 먹었어요.”
“빵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 참가자를 맞이하기 위해 돌아가는 카메라 감독의 뒷모습에 갸웃하던 김비주가 문손잡이를 돌렸다.
달칵.
문을 열었을 때, 김비주는 그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비주를 잘 부탁합니다..☆]
회의실 자리마다 4인조가 엄지를 들고 있는 스티커가 붙여진 수플레빵들이 놓여 있었다.
멤버들의 배려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마음 속 날씨는 매우 맑음이었다.
* * *
신개념 댄스 예능 『 I - MOVE 』 1회 편집본.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들어오는 비주의 모습이 느릿하게 재생되고.
자리에 앉아서 빵과 우유를 먹고 있던 출연진들의 눈이 커지면서 인터뷰 소리가 흘러나온다.
[잘 모르는 사이인데 친한 척하면서 인사할 뻔했어요. 하도 익숙해서.]
출연진들의 인터뷰와 사근사근한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비주의 모습이 교차된다.
와일드의 메인댄서 우산이 당시를 회상한다.
[어? 이 친구도 여기 나오는구나! 싶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저는 비주 씨가 나오는지 몰랐거든요.]
[많이 반가웠나 보네요.]
[너무 좋았죠. 아이돌 체육대회에서 종종 마주치기도 해서.]
뒤이어 현재는 개별 활동 중인 2세대 걸그룹 트윙클의 메인댄서, 란이 손을 내밀었다.
[안녕!]
[허어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이고, 선생님 하듯이 양손을 붙잡고 악수하는 비주의 모습에 다들 웃는다.
그러면 시청자들이 늙은 줄 안다며 농담을 하던 란이 비주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이 차이 얼마 안 날 것 같은데… 혹시 몇 살이에요?]
[저 95년생이에요, 선배님.]
[……흐억. 우리 막내가 88년생인데.]
식겁하는 그녀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옆에 있던 다른 고연차 아이돌이 요즘은 99년생도 있다는 말을 하자 기함하는 그녀였다.
인터뷰 컷이 교차된다.
[굉장히 독특한(?) 친구였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밝은 에너지를 주는데… 또 만만치는 않아 보이더라고요.]
[어떤 부분이요?]
[한 분야에 깊게 파고든 사람 특유의 느낌 같은 게 있었어요.]
평소 뉴블랙이 보여 주는 이미지와는 다른 답변이었다.
제작진이 ‘혹시 뉴블랙이 누군지 알고 계시나요?’ 하는 질문에 란이 말했다.
[이 친구들은 북한에서도 알 것 같은데?]
[흐핫!]
[조카가 초등학생인데 뉴블랙 TV를 달고 살아요. 이번에도 이모, 사인 꼭 받아오라고, 안 받아오면 이모 미워 그러는데…….]
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도 흘러나왔다.
편집점은 대체로 비슷했다.
[약간 오바일 수도 있는데, 뭔가 포스 같은 게 느껴졌어요.]
[워낙 춤 잘 추기로 유명한 친구잖아요. 무조건 같은 팀 해야 된다 하는….]
[물 마시는 것까지 우아하더라고요.]
[생각했던 거랑 인상이 너무 달라서 놀랐어요.]
비주에게서 무언가 독특하고, 범상치 않은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화면 속에서도 비주가 우아하게 물을 홀짝이거나 생긋 웃으며 의자에 몸을 기대는 장면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는 뉴블랙의 모습과는 다르게 어딘가 여유 넘치고 전문가 같은 모습.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를 의도하듯 그런 편집이 쭉 이어졌다.
* * *
대회의실.
각 그룹의 메인댄서들이 뒤섞여서 수다를 떨고 있는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출연자들의 시선이 구석에 앉아 있는 비주에게로 향했다.
출연한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왔는데도 신기하다.
‘왜… 나온 거지?’
현재 아이돌판에서 투톱으로 꼽히는 게 바로 틴스피릿과 뉴블랙 아니던가.
이런 데서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기에 왜 출연했는지 의문이었다.
‘신기하다. 나 같으면 안 나올 것 같은데.’
괜히 경연에 나왔다가 다른 출연자와 실력을 비교하는 식으로 말이 나올 수도 있고.
어떻게 저울질을 해 봐도 안 나오는 게 여러모로 더 이득이었다.
‘뭐, 이유가 있겠지.’
각자 그 이유를 추측하는 한편.
뉴블랙의 멤버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본 이들은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김비주라고 합니다, 선배님.”
머릿속에 있던 우당탕탕 쾅쾅 하는 뉴블랙과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분명 TV에서 본 것 그대로 선량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는데, 쉽게 대할 수 없는 느낌.
온화한데 강한 국어 선생님처럼.
멤버들과 같이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나무~ 잘 지냈어?”
“아이고. 형! 만수무강하셨습니까!”
그나마 스트릿 보이즈의 LB와 얘기를 나눌 때 정도만 그들이 아는 비주가 보이는 듯했다.
다들 소심하게 머뭇거렸다.
평소 웃기다고 생각한 그림체가 진지한 극화체로 변한 느낌이라 몹시 낯설었다.
‘나도 말 걸어 보고 싶다.’
‘말 걸어 보고 싶은데… 분위기가 좀.’
‘성격 겁나 세 보이는데.’
상상했던 건 따사로운 해바라기인데, 어딘가 서늘한 꽃 같은 인상에 머뭇거리는 메인댄서들이었다.
그 동안 정작 당사자는 마음속으로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어째서…?’
비주의 눈이 촉촉해졌다.
‘왜 나한테는 말을 안 걸지…? 나무 말고 다른 사람이랑도 얘기해 보고 싶은데.’
그냥 평소에 혼자 하던 대로 했는데 사람들이 말을 걸어 주지 않아 슬픈 비주였다.
먼저 웃으면서 ‘저기’ 해도 다른 댄서들이 ‘헛! 네…!’ 하면서 은근히 낯을 가렸다.
‘친구 새로 사귈 줄 알았는데….’
머릿속으로 사과를 하나씩 세면서 멤버들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의 메인 PD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아이 무브의 연출을 맡은 이재학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일단 인사부터 할까요?”
한 명씩 일어나서 인사를 한 후, 메인 PD의 주도 아래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방송 컨셉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한번 하고.
다과를 즐기며 수다를 떨면서 서로에 대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직 많이 어색하죠?”
개별적으로 사전미팅은 했지만 단체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댄서들이 쑥스럽게 웃고 있을 때.
“이런 어색한 공기를 깨 볼 겸, 제작진이 아주 특별한 영상들을 준비했습니다. 직접 보시죠.”
빔프로젝터가 움직이더니 회의실 스크린에 동영상을 띄웠다
곧바로 화면 속에 다들 알고 있는 얼굴이 등장했다. 트윙클의 멤버들이었다.
“아! 뭐야~!”
란이 질색팔색을 하는 가운데.
-경란아! 언니들이다!
-난 동생이다!
-네가 춤추는 예능 나간다고 해서 우리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른다. 관절이 움직여지긴 하니?
능글맞게 드립을 치면서도 응원을 해 주는 트윙클 멤버들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시작으로 각 그룹 멤버들이 3분씩 시간을 내어 멤버에게 응원을 해 주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계속해서 웃음이 나오고 따사로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번 방송 정말 재미있게 잘했으면 좋겠다는 덕담이 나올 때마다 출연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연차 순으로 흘러나온 영상이 11번째에 이르러 비주의 차례가 됐을 때.
‘어……?’
다른 그룹처럼 뉴블랙 멤버들이 안녕~ 하면서 손을 흔들고 나타날 줄 알았는데.
검은 화면만이 자리를 잡았다.
‘뭐지?’
출연진이 눈을 집중하며 바라볼 때, 화면에 비주의 어린 시절 사진이 떠올랐다.
우주선의 잔잔한 내레이션이 울려 퍼졌다.
[이 귀요미가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저희 아이입니다…!]
팔불출 같은 목소리가 꺄꺄 웃었다.
그 순간, 회의실에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모두의 고개가 구석으로 향하면서 웃음이 또 한 번 터졌다.
‘귀여워!’
비주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웅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