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7)화 (46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7화

주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방송국 주조정실 모니터에서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하는 시청률 그래프의 추이가 어땠을지.

다들 침을 꼴깍 삼키며 감독님의 표정을 살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응? 어, 어. 그리고?”

감독님이 사용하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내 신경망을 타고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삼켰다. 지금 감독님은 최대한 웃음을 참기 위해 광대근을 억누르고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용도로.

이윽고 통화가 종료됐다.

“후우…….”

심호흡을 하는 감독님에게 촬영 감독님이 채근했다.

“아, 뭔데? 대체 몇이나 나왔는데?”

“13프로.”

그 순간 거대한 물결이 감독님을 중심으로 싸악 퍼져 나갔다.

소름이 쫙 돋는다.

10%만 나와도 최고로 잘 나온 거라고 했는데, 감독님이 말한 수치가 너무나 어이없기 때문이었다.

밤 10시. 주말 시트콤 첫 회의 시청률.

“13프로 나왔답니다.”

황정구 감독님이 맥이 탁 물린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간대 1위에요.”

“……!”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악! 하는 소리가 고막을 쩌렁쩌렁 울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흥분한 정인우가 나를 와락 안고 있었다.

“대박……!”

“감독님, 우리 그러면 지금 대박 난 거예요? 진짜로?”

“대박이 아니고.”

감독님이 강조하듯 말했다.

“초대박.”

다시 한 번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얼싸안고, 좋아하고. 심지어 어디서 가져왔는지 샴페인까지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우와.”

주연배우 서노을이 입가를 손으로 틀어막은 채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촉촉한 눈으로 웃었다.

다들 잘 나올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아라와 서노을이 아이고 하면서 포옹하는 가운데, 송훈 선생님이 분위기를 다독이듯 말했다.

“잘 나왔네. 잘 나왔구만. 그렇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다들 너무 들뜨지들 말고.”

“네, 선생님.”

“1회부터 너무 일희일비하면 촬영이 산으로 가.”

…라고 말하면서도 뺨을 꿈틀꿈틀하며 프하하 하는 소리를 내는 송훈 선생님이었다.

곳곳에서 떠들썩하게 잔이 오간다.

매니저들도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고, 황정구 감독님은 벌써부터 걸려 오는 전화의 물결에 가게 밖으로 나갔다.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배우들의 폰에 메시지가 쌓여 가는 게 보였다.

“우주야.”

양옥분 선생님의 주름진 손이 내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너 여기 정말 잘 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처음에 네가 온다고 할 때만 해도, 괜찮으려나 싶었는데. 너무 잘했어. 정말로.”

맞은편에 앉은 중견 배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홍보하느라 엄청 고생한 거 안다. 그 외국 가수도 데려오고.”

“회사 홍보팀이 그러던데. 여러 기획사가 힘을 합쳐도 하기 힘든 걸 너 혼자서 해냈다고.”

서노을의 칭찬에 민망하게 웃으며 콜라를 들이켰다.

내가 물밑에서 SNS로 홍보글도 올리고, 카메오도 데려오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던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가 이어졌다.

외계인 가족에서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오태웅이 유리잔을 내밀었다.

“건배 한 번 합시다. 이제 12부작에서 1부가 나온 거니까, 앞으로 남은 11부 열심히 달려 봅시다.”

“화이팅-!”

1화도 잘 뽑혔고.

시청률도 잘 나왔고.

축제 분위기에서 유쾌한 대화가 오갔다.

갈 길이 멀었지만, 그 길이 가시밭길이 아니라 꽃길이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 기대감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녔다.

그 동안 나도 핸드폰을 살폈다.

김덕순 [드라마 봣어]

김덕순 [연기 야무직 ㅔ하므만]

김덕순 여사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나비, 백반집 주방 이모님과 함께 안방에서 TV를 시청하는 김덕순 여사였다.

TV 속 김우주 옆에서 어색하게 양손 브이를 하는 사진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김덕순 [근데 왜 김우주냐]

김덕순 [나 땜시 그러냐]

톡톡. 답장을 보냈다.

나 [오해 노노해]

나 [세상일이란 게 할머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김덕순 [옘병]

김덕순 [키워나ㅗㅅ더니]

분노의 욕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양옥분 선생님이 내 손을 매만져서 그런지, 불현듯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이따 전화하겠다는 답장을 남긴 후.

태현이, 한조, 은성이 등을 비롯해 드라마 잘 보았다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걸 보고 있을 때.

“형~”

뒤에서 목소리로 예고를 한 막내가 다다다 달려와 내 목에 손을 얹었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동생들이 좋아서 히죽히죽 웃고 있다.

“축하해 주려고?”

“넹.”

지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게 다 제 덕분이니까 감사인사도 받으러 왔어여.”

“아이고, 감사합니다. 우리 막내님.”

비주도 안도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저 진짜 같이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잘 돼서 너무 다행이에요. 저 이거 보라고 홍보 엄청 했거든요.”

“저두여.”

아는 사람들한테 본방사수 하면서 메시지를 보냈다는 모양이었다.

“고맙다.”

“근데 진짜 형한테 연기 가르쳐 준 보람이 있네여. 연기 엄청 잘했어여~ 진짜루. 이게 다 선생님이 좋아서 그런 건가?”

자화자찬으로 끝나는 막내의 말에 웃었다.

리혁이와 중현이도 1화 시청률 잘 나온 거 축하한다며 웃었다.

각자 반응이 조금씩 다르기는 한데, 공통적으로 얼굴에서 빛이 날 만큼 환히 웃고 있다.

“이제 돈벼락이…….”

“우리 이제 우주 형이 또 돈 벌어 오는 거예여?”

“맏형이 일을 잘함.”

…어딘가 불순한 동기가 섞인 것 같기도 했지만 제 일처럼 축하해 주는 동생들에게 기꺼움을 느꼈다.

그러고 있는 한편.

처음에는 왁자지껄했지만, 지금은 어수선한 정도의 분위기로 바뀐 음식점을 둘러보았다.

방송도 한참 전에 끝나서 이제 가야 될 때가 됐는데, 다들 제자리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흥분한 표정들.

“뭐 있어요?”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정인우가 말했다.

“지금 우리 실검 올라왔어!”

그 말에 나와 동생들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실검에 오른 게 신기한가…?’

‘실검이야 당연히…….’

아.

동생들과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우리 기준으로는 당연한 거긴 했지만, 막 시작한 주말 시트콤이 실검에 올랐다는 건 대단한 소식이었다.

“……!”

다 같이 핸드폰을 들어 인터넷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   *   *

TBC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공식 SNS 계정에 감사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을 때.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슷한 글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지금 1회 끝나고 반응 좋은 주말 시트콤]

[1화 만에 난리난 외계가족ㄷㄷ]

[오늘 임팩트 쩔었던 ‘우가외’ 1화 엔딩]

아직 시청률이 공식적으로 나온 건 아니었기에 그 정도 핫한 건 아니라는 반박도 나왔지만.

1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이건 꼭 봐야 한다.’

정신없이 웃을 수 있는 시트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1화에서부터 잘 짜인 극의 완성도가 보인다고 할까.

웃으면서 보면 잘 눈치채기 쉽지 않지만, 다시 돌려보면 떡밥이나 연출 장치처럼 등장하는 것들이 곳곳에 보였다.

[오늘 외계가족에서 보고 감탄한 연출]

(회색 건물들을 배경으로 김우주가 서 있고, 외계 가족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장면.gif)

김우주랑 외계 가족 붙는 씬 나올 때마다 이런 연출이 나옴

회색빛 인간에게 그어진 선이 있는데, 뒷배경에 선처럼 보이는 것들을 외계인 가족이 자꾸 침범함

그때마다 김우주 뒷배경에서 초록 버스가 움직인다거나 하늘을 배경으로 둬서 색채가 등장함

회색빛 인간이 외계 가족과 만날 때마다 그 뒷배경에 색채가 입혀지는 연출이었다.

무미건조한 요원이 외계인 가족에게 물들어, 더 따스한 사람이 되리라는 암시를 주는 씬이었다.

그 외에도 공들인 연출이 여럿 발견되며 드라마 매니아들을 흥분케 만들었다.

‘간만에 볼 만한 드라마가 나왔다…!’

그러는 한편,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엄청 웃기는 시트콤이 나왔다는 데서 큰 만족감을 느꼈다.

[오늘 현웃 터진 말티즈 변신씬ㅋㅋㅋㅋㅋ]

[이사하고 싶어요? 들면 쉬워요 (feat. 외계가족)]

[외계가족 조상님 등장씬]

외계인 가족이 ‘밥이 차려져 있네?’ 하면서 영체 상태로 인간들의 제삿밥을 먹는 씬이라거나.

초가집을 가마처럼 들고 이사하는 장면.

원로 배우가 1화부터 말티즈로 변신해서 내레이션으로만 등장하는 장면 등등.

-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

-아 월욜 출근하는 거땜에 개빡쳤는데 시트콤 보고 ㅈㄴ 쳐웃음ㅋㅋㅋㅋㅋ

-존잼이야 ㄹㅇ

-1화 보고 오늘부터 최애 드라마로 결정함ㅋㅋㅋ

-이대로 쭉 웃기고 결말만 똥 안싸면 인생드 될듯

-이거 재미있어?? 시트콤 안 본지 오래돼서 고민중이었는데

┕꼭 봐ㅋㅋㅋ 진짜 웃겨

┕감독 전작 보니까 결말 이상하게 내고 그럴 거 같진 않음

-이 드라마 최고 단점은 딱 하나임.. 이제 다음주 일요일을 기다려야 한다는거ㅠ

시트콤 결말에 트라우마가 있어 고민하는 시청자들에게 이미 본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러는 한편.

시트콤이 끝나고 가장 화제인 것은 바로 마지막에 나왔던 떡밥의 정체였다.

-UFO 벙커에 있는 구슬이랑 김우주가 가진 구슬 같은 건가??

-지금 가설들 나오는데 가장 유력해 보이는 건 김우주랑 혈연으로 엮였다는 설인듯

-왠지 혈연삘222 그래서 ‘우리 가족’은 외계인 이거 아님??

-대박ㅋㅋㅋ 이마 탁 쳤다

-이건 너무 뻔해서 아닐 거 같은데,, 그리고 막판에 음산하게 웃으니까 약간 다른 걸 수도 있음

-혈연이라고 하면 막판에 무섭게 웃은게 설명이 안 됨

-탁쳤던 이마 다시 복구함

-난 다 모르겠고 ㅇ러다가 떡밥 흐지부지만 안 됐으면 좋겠어. 시청자 추측 다 피하다가 망한 드라마가 한두개가 아니라서

구슬이 김우주와 외계인 가족이 혈연이라는 징표가 아니냐.

구슬이 수백 개나 되는데, 혹시 외계인이 나쁜 짓을 저질러 놓은 범죄의 상징이 아니냐 등등.

벌써부터 이런저런 추측이 오가는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떡밥은 호불호가 갈렸다.

-드라마 재미잇긴 한데.. 쫌 그냥 웃기는 걸로만 하면 되지 않나???

-난 이거 사족 느낌 강함

-대놓고 시청률 모으려는 노림수 같아서 별로

-재미있게 보다가 막판에 떡밥 까는거 보고 튕김ㅠ 그냥 시트콤이면 본연의 시트콤다웠으면

-걍 미국식처럼 가면 좋겠음

시트콤에 메인 스토리 라인이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비율을 비교했을 때, 메인 스토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이들이 훨씬 더 높은 편이었다.

일단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메인스토리 없으면 또 그냥 ㅋㅋㅋ만 하면서 다 vod로 빠지고 재방으로 빠지고 그랬을 거 같은데

-웃긴 움짤로만 소모됐을거 같음

-난 떡밥 좋았음!

-저런 말하는사람들 특) 진짜로 저렇게 되면 안 봄

그렇게 시청자들 사이에서 메인 떡밥의 정체, 그리고 그에 대한 호불호를 두고 토론이 오가는 한편.

모두가 이견이 없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뭐야.. 선우주 왜 이렇게 잘해??

-김우주 ㄹㅇ 찰떡

-비주 나오기 전까지 뉴블랙이란 걸 인지하지 못했음ㅋㅋㅋㅋㅋ 진짜 신기하다

바로 우주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었다.

애초에 기대치가 높았지만, 그 기대치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는 우주의 연기였다.

-여기 김우주 표정 봐봐. 펜던트 볼 때 되게 아련하게 봄

-김우주 펜던트 볼때 표정 보면 애뜻하면 애뜻하지.. 막 이걸 부숴야하고 그런 건 아님

-이 장면 김우주 표정 좋지 않아?? ㅋㅋㅋ

-김우주 본체 이름 갑자기 헷갈린다

연기력에 대한 별도의 칭찬마저 나오지 않고, 벌써 김우주란 캐릭터 그 자체로 인식되고 있는 우주였다.

비주가 나오는 씬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

그런 까닭에 연기력에 대한 말은 한참 뒤 메인 떡밥에 대한 토론이 사그라들 때쯤 나왔다.

[오늘 첫방한 시트콤에서 뉴블랙 우주 연기.gif]

(보정이 들어간 표정연기 짤 모음)

과거 본체였던 표독스러운 우주선은 7급 공무원 김우주로 진화했다고 한다

+7급이라고 써서 미안.. 나도 직급은 잘 모름.

+내가 감히.. 감히 나 따위가..

-기대 이상이었음 ㄹㅇ

-웃기는 이미지라서 큰 관심 없었는데 이번에 감겼다ㅠ

-이쯤되면 규호가 악마한테 머리카락 주고 선우주 데려왔다고 봐야됨

-소화력 진짜 좋더라. 보면서 본체가 아예 안 보였음

-몸을 진짜 잘쓴다는 게 최대강점 같음. 걸음걸이나 그런 거 볼 때 진짜 딱 요원 그 자체더라

-진짜 잘했음

-연기 톤 너무 좋았어.. 시트콤이라서 오버할 수도 있고 오글거릴 수도 있는 대사인데 적절하게 소화하는거 보고 감탄

-진지충 캐릭터가 시트콤에 융합되게 연기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한거 ㅇㅇ

현실에 있는 김우주가 드라마 속에 들어간 듯한 연기였다.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적절한 연기.

시청자가 극을 볼 때, 극을 극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로 인지해도 무방할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에 좋은 평이 나왔다.

-[첫방리뷰] 뉴블랙 우주, ‘공무원 김우주’ 첫 연기로 호평

-첫방 ‘외계인 가족’, 2030 화제성 잡았다.. 이유 있는 호평 세례

-‘외계인 가족’ 우주, 완벽 특수요원 변신.. 안정적인 연기력에 호평

첫 회부터 시트콤에 대한 칭찬과 함께 우주의 연기력을 호평하는 리뷰 기사들이 올라왔다.

수플레들에게는 행복한 주말이었다.

‘오늘은 야식이다-!’

흐뭇하게 웃으며 기사 댓글창이나 아이돌 커뮤니티, SNS를 돌아다녔다.

우주가 연기를 너무 잘해 놓은 탓에 악플러를 때릴 때도 쾌감이 배가 되는 기분.

거기에 더해 행복회로도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우주가 이 정도면… 지호는 어느 정도인 거지?’

아예 연기 지망을 한 지호가 준비한다는 웹드라마에 대해서도 행복회로가 활활 타올랐다.

그러는 한편.

수플레들이 <우리 가족은 외계인>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감독님, 작가님… 당신들 최고야.’

바로 드라마 속 우주의 비주얼 때문이었다.

김우주를 매력적으로 화면에 담아 주는 것도 고마운데, 변장 컨셉을 잡아 주는 게 너무 좋았다.

‘특수요원 김우주, 과일상 김우주…….’

야외 촬영 스포일러로 뜬 사진들에도 앞으로 나올 여러 직업의 복장들이 있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우주도 있고.

파일럿 제복을 입은 우주도 있고, 마술사 복장을 입은 우주도 있고.

제작진이 우주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들을 한 차례씩 체험시켜 주려고 작정한 듯하다고 할까.

팬으로서 흐뭇하기 그지없는 행보였다.

‘스티커 세트 모으는 기분이야.’

오늘부터 매주 일요일이 기대될 이유가 생겨 행복한 수플레들이었다.

*   *   *

드라마 촬영이 더욱 탄력을 받는 한편.

나와 출연진들에게는 새로운 일정이 하나 생겼다.

“…….”

“…….”

‘지구가 당신의 방문을 기다립니다’ 하는 티셔츠를 입은 배우들과 훈훈하게 시선을 교차했다.

그러곤 죄인처럼 수그리고 있는 정인우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웅얼거렸다.

“10프로가 넘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냥 혹시나 해서 던져 본 거지.”

“…….”

“제발회 때 다들 웃으면서 OK 했잖아.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다들 한숨을 내쉬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 카메라를 든 매니저들이 웃음을 참고 있는 이유는 바로 시청률 공약 때문이었다.

-10프로요? 아유! 넘기면 영광이죠. 공약이라… 우리 드라마가 외계인 가족 아니겠습니까?

외계인 춤을 추는 영상을 찍어서 진짜 외계인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찍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낸 정인우였다.

그리고.

다들 웃고 떠들며 하핫 했던 그 공약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후우.”

서노을이 숨을 깊게 들이켜고는 말했다.

“후딱 찍고 끝낼게요.”

“갑시다.”

외계인의 리더 역할을 맡은 서노을이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일단 이 메시지를 찍게 되어서 몹시 영광입니다! 외계인 분들… 저희가 드라마에서 멋대로 묘사를 했는데, 부디 명예훼손으로 고소는 안 해 주셨으면…….”

센스 있는 드립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외계인에게 콜미 에일리언 하는 메시지를 저마다 촬영한 후.

“막내들아.”

못된 어른들이 나와 아라의 등을 밀었다.

“……저희가 앞에 서요?”

“당연하지!”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우리 덕분에 너희가 메인댄서도 다 해 본다?”

“……이런 식의 메인댄서는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저두요.”

“스읍, 막내들이 말이 많구나!”

아라와 처량한 시선을 교환하고는 뒤에서 댄서처럼 선 배우들과 함께 외계인 춤을 췄다.

정인우가 ‘이야! 인싸들이다!’ 하면서 박수를 치는데 정말 얄미웠다.

그래도 기왕 하는 거 잘해야지.

“흐하하하!”

나와 아라가 한 쌍의 홍학처럼 외계인 춤을 추는 모습에 매니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시청률 10프로를 달성해서 기뻐해야 하는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치욕스러운 영상이었다.

입을 가리며 웃는 양옥분 선생님에게 물었다.

“저희 어땠나요? 선생님.”

“잘 추더라. 너네.”

선생님이 덧붙였다.

“외계인들이 보면 열 받고 그래 가지고 침략하고 싶을 거 같기는 한데… 잘 췄어.”

“그럼 구애의 춤으로 바꿀까요? 이렇게?”

“어우! 얘! 숭한 거 좀 하지 마라. 얼굴은 그래 가지고 왜 맨날 이상한 짓만 하니?”

“…….”

뼈 때리는 말에 맞은 내가 눈이 촉촉해지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내 선생님이 으이구 하며 웃더니 내 팔을 톡 쳤다.

“밥 먹으러 가자. 춤 춰서 허기지겠네.”

“네, 쌤.”

우리 막내 뭐 먹고 싶냐고 묻는 이들에게 메뉴를 답하고 있을 때, 음식점으로 향하는 길에 매니저 하나가 말했다.

“저, 우주 씨.”

“네?”

“아까 글 하나 올라와서 지금 여기저기 퍼지고 있는데… 혹시 이거 봤어요?”

“뭔데요?”

인터넷에 후기 글이 올라온 모양인데, 글의 제목에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우주 시트콤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할아버지 둘이 대판 싸움]

나 때문에 싸움이 났다고…?

놀라서 클릭을 한 후.

얼마 안 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외계인 가족’은 젊은 사람들을 겨냥해서 만든 시트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청자가 2030인 것은 아니었다.

주말 드라마 <오! 어머니여>를 보다가 그대로 채널을 고정한 중년 세대도 있고.

그리고….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겄네.”

“저게 긍게… 다른 별에서 온 것들이 지랄 발광을 한단 말이지?”

낮에 재방송으로 해 주는 시트콤을 보는 고연령층도 있었다.

바로 뉴블랙의 우주가 나온다는 사실에 보는 노인들이었다.

‘꼭 봐 줘야지.’

올해 초의 몇 주간 출연을 시작으로.

지금도 매주 금요일마다 ‘지금 내 고향은’에서 3분 정도 출연하는 뉴블랙이었다.

“근데 왜 콩알딱지만큼 나와?”

“어리다고 우습게 보는 거 아녀?”

시청자 게시판에 떠듬떠듬 ‘왜 선우주 씨가 적게 나오는 것인지요?’ 하는 소심한 항의글을 올리는 한편.

어느 마을회관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니까 이름이 김우주라는 거여?”

“아니지.”

“저기서 김우주라는데?”

“저기서만 이름이 김우주라는 거 아녀.”

“근데 송훈이는 송훈이고, 양옥분이는 양옥분인데? 왜 쟤는 김우주여?”

“아니 그니까….”

당연히 선우주라는 건 아는데.

송훈과 양옥분은 그대로 나오고 우주는 김우주라고 나오니 뭔가 혼선이 오고 헷갈리는 한 노인이었다.

사소하게 시작된 말다툼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 칠푼이 같은 놈아! 선명주 아들인데 어떻게 김씨가 되나?”

“말 다했냐? 내가 칠푼이면 네놈은 천치 얼간이다!”

회관에서 과일을 까먹던 할머니들이 한숨을 쉬었다.

“또 지랄이네. 또 지랄이여. 저 영감들.”

“김우주면 어떻고 선우주면 어때. 잘생긴 게 최고지.”

그렇게 노인들이 시트콤을 시청하는 동안.

한국 시트콤의 작명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어르신들 사이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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