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9)화 (46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69화

KM 엔터의 구내식당은 천국이었다.

“우와아아. 진짜 뷔페 온 거 같아여.”

“실제로도 사옥 설계할 때 참고를 했어요. 내가 워낙에 뷔페식을 좋아해서.”

허강민 대표님이 우리에게 뷔페를 소개해 주었다.

신선한 과일과 야채가 담긴 코너를 지나서 치킨, 튀김류가 있는 곳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고.

그 뒤를 넘어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중현이가 침을 꼴깍이며 물었다.

“펴,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 나오나요?”

“평소에는 이거의 절반 정도고. 오늘은 우리 뉴블랙이 온다고 특별히 더 준비를 많이 했지.”

그가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기획사 다 가 봐도 우리 회사처럼 이렇게 밥에 공을 들이는 회사가 없어.”

“오오오.”

“TJ랑 비교하면 어때? 여기 식당이.”

역시 KM 엔터가 최고라고 해 주니 플랑크톤 사장님이 몸을 젖히고 껄껄껄 웃었다.

그러곤 무한 리필 음료수 코너도 소개해 줬다.

“대신에 여기에는 음료가 제로밖에 없어.”

“오, 제로 칼로리~”

“희한하게 입사할 때는 날씬했던 직원들이 몇 달 지나면 이렇게 몸이 동그래지고 그러거든.”

“제로로 바뀌고 변하셨나요?”

“좀 덜… 동그래졌지.”

허강민 대표님의 뒤에 서 있던 직원들이 동글동글한 얼굴을 자랑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허 대표님이 우릴 불렀다.

“그리고 여기가 우리의 메인 코너! 직화 스테이크.”

“아아아아아!”

우리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위생모를 쓴 요리사가 소고기 스테이크를 굽고 있었다. 고기를 보는 순간 눈이 몽롱해지는 기분.

허강민 대표님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회사 직원들은 1인당 1개씩으로 제한이 있는데, 손님이고 하니까.”

꿀꺽.

“마음껏 리필해서 먹어요.”

“감사합니다!”

“많이 먹고, 이제 나중에 우리 잘해보는 거다?”

상대의 농담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접시를 양손에 하나씩 챙겨들고 고기를 마음껏 퍼 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아직 본래 점심시간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구내식당에는 우리와 허강민 대표 일행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잘들 지냈어?”

“네!”

“얼굴 진짜 오랜만에 본다. 에이텐 쇼케이스 때 만나고 나서 또 못 본 거 같은데.”

“그게 벌써 두 달이나 됐네요.”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가볍게 이야기의 물꼬를 틀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지긋했던 박태준 회장보다는 비교적 젊기도 하고, 또 나이대에 비해서도 더 젊게 사시는 분이라 대하기가 편했다.

“밥은 맛있어?”

“네, 진짜 맛있어요.”

고기를 먹으면서 동생들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저 분 연락처를 알아갈까 봐요.”

“그냥 우리 회사로 자주 놀러와. 내가 5명 다 출입증도 주고 그럴 테니까.”

우리가 키득거리며 웃을 때, 허강민 대표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얼마나 좋아. 밥도 먹고. 그러다가 가끔씩 식당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그리고 정도 붙고. 여차여차 하다가 노래 얘기도 나오고. 작업도 같이 하고!”

“으음, 역시 우주 형을 노리시는 거였네여.”

막내의 말에 허강민 대표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곤 나를 바라보며 눈가를 촉촉하게 빛냈다.

“우주야.”

“예……?”

내 손을 잡으며 상대가 말했다.

“우리도 곡 작업해 보자. 아저씨가 억이 좀 많아요. 억을 줄게.”

“제가 뭐라고…….”

“딱 한 번, 진짜 딱 한 번만 TJ 이겨 보자. 내가 TJ 시가총액으로 이겨 보는 게 소원이야.”

너무나 솔직하게 욕망을 오픈하는 허 대표님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이건 편집이에요, 하며 우리 측 촬영팀에게 말하던 허강민 대표가 농담이라며 말했다.

“진짜로 탐이 나서 그래. 우주뿐만 아니라 다들 보면 내가 탐이 나. 막 채 가고 싶어.”

“순위를 매겨 보시면 어떤가여? 누가 1번인가여?”

“에이. 이런 걸 순위를 어떻게 매…….”

그 순간 허강민 대표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정가운데 딱 꽂히면서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이분도 진짜 특이한 캐릭터였다.

학교 만화에서 1등을 시샘하는 2등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근데 대표님.”

“응?”

“저 뒤에서 촬영하는 분들은…?”

허강민 대표 일행 뒤쪽에서 캠코더를 들고 식사 장면을 촬영하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상대가 미소를 지었다.

“외부 손님이 온 김에 우리도 컨텐츠 만들어 보려고. ‘뉴블랙 TV 만나 보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썸네일이네요.”

“아니면 ‘이거 실화냐? 뉴블랙 TV는 전설이다’ 하는 식으로 해 보세여. 조회수가 두 배 돼여.”

좋은 아이디어라며 허강민 대표님이 메모를 슥슥 하는 한편, 뒤쪽에 선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마 컨텐츠용은 아니고 우리를 찍기 위해 부른 카메라인 듯했다.

게살버거… 아니, 우리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언제나 동분서주하는 분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컨텐츠를 진행하는 한편, 게스트를 상대로 Q&A 시간도 가졌다.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저희의 매력 포인트는 뭔가요?”

“뉴블랙의 매력 포인트라.”

상대가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무한동력.”

“무한동력이요?”

“일반적으로 10을 들여서 10이 나왔을 때 정말 잘한 투자라고 하는데. 우리 뉴블랙은 1만 들여도 거의 무한대로 나오니까.”

“연비 좋은 아이돌인가요, 저희?”

“이런 가수가 없지. 그래서 탐나.”

가수가 곡을 만들고, 컨셉을 짜고. 전반적으로 앨범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흔치 않아 부럽다는 듯했다.

“자, 식사들 했으면 이제 회사 나들이해 볼까? 내가 우리 회사를 자세하게 소개해 줄게.”

“잠시만요. 저분 연락처 좀 받아오고요.”

신들린 솜씨로 고기를 구운 요리사 분의 연락처를 따온 후에 허강민 대표님을 따라 나갔다.

1층부터 시작해서 6층까지.

TJ 엔터와 다르게 몇 번 정도 미디어에 비춰진 터라 큰 신비감이 있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신축이라 그런지 회사 건물 자체가 굉장히 깔끔했다.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다녀온 리혁이가 굉장히 눈이 초롱초롱해진 걸 보면 거기도 깔끔한 듯했다.

“그리고… 여기는 우리 A&R팀.”

“오.”

기대감을 품고 A&R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여긴 어떨까.

그리고.

“…….”

어딘가 꾸리꾸리한 공기가 감도는 듯한 공간이었다.

약간 어두운 조명.

마치 황색빛 냄새가 돌아다니는 듯한 공간에 리혁이가 코 쪽으로 손을 슬쩍 올렸다.

타닥타닥.

눈에 핏발이 선 작곡가들이 뭔가를 깎아내듯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히히 웃고 있다.

이내 인기척을 눈치챘는지 다들 부산스럽게 일어났다.

“오늘 뉴블랙 TV에서 촬영 나온다는 건 이야기 들었지? 인사들 나눠요.”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작곡가들이 힘없이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하더니 고개가 스스슷 돌아가기 시작했다.

바로 내 쪽으로.

“……?”

작곡가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너구나…?’ 하듯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에 중현이가 내 앞에 슥 섰다.

A&R팀장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우주 씨.”

“아, 네. 안녕하세요.”

“늘 이야기 많이… 듣고 있습니다…….”

A&R팀 직원들이 좀비 떼처럼 슥슥 모여들었다.

“정말 얼굴 보고 싶었어요.”

“여기 있으셨네…….”

“너무 반가워요. 으흐흐흐흐.”

뭔가 반갑게 인사는 하시는데, 엄청 피곤해서 그런지 다들 눈이 풀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강민 대표가 다들 하던 일 하라고 손을 슥슥 휘둘러 물리치고는 말해 주었다.

“요새 온더스 음원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다들 눈코 뜰 새 없이 밤새 작업을 하니까.”

“아, 엄청 바쁘시겠네요.”

정말 그것뿐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 비주가 나를 콕 찌르고는 눈짓으로 누군가의 데스크를 가리켰다.

잔뜩 붙어있는 포스트잇 쪽지.

그리고 그곳을 본 순간 그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대표님 지침 : 뉴블랙처럼]

[대표님 : 뉴블랙 우주라면 이런 음악을 할까?]

[노래는 만드는 것보다 발굴하는 것에 더 가깝다 - 선우주]

위인전에 실린 사람처럼 문구 인용까지.

KM 엔터 A&R팀 직원들을 보며 왠지 모를 웃음이 나왔다.

*   *   *

KM 엔터의 방문기 촬영은 짧게 끝났다.

“어머! 어머!”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우리와 마주친 직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거나, 사진 요청을 하는 것 정도 외에는 특별할 것 없이 무난한 일정.

애초에 방문기는 부수적인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메인은 조금 이따가 녹화하게 될 <온 더 스테이지> 멘토링.

촬영을 끝내고 KM 엔터 회의실에서 HBS 온더스 제작진과 만나 설명을 들었다.

“길게는 아니고요. 짧게 한두 시간 정도 촬영하고 가시면 될 거예요.”

“네.”

“아무래도 뉴블랙 분들이 오래 얼굴을 비추게 되면…….”

“주 시청자 분들이 안 좋아하시겠네요.”

우린 어디까지나 원곡자로서 잠깐 출연하는 것이기에 오래 얼굴을 비출 경우 좋지 않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주 시청층은 KM 엔터 연습생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테니까.

우리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온더스의 메인작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고 프로그램 톤이 바뀔 수 있어서.”

“톤이요?”

“지금 내 고향에서도…….”

말을 생략했지만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아차렸다.

우리의 게스트 분량이 많아지면 주말 예능처럼 톤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멘토로 출연해 보는 건, 또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긴장이 되네요.”

“긴장하실 필요 전혀 없고요.”

제작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평소 하던 대로 해 주시면 돼요. 연습생들과 만나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무대에 대해서 조언도 해 주고.”

“조언이라면 어느 정도 선까지 OK인가요?”

“글쎄요.”

리혁이의 질문에 그들이 답했다.

“편하실 대로 하면 돼요. 이번에 뉴블랙 분들이 출연하는 건 어디까지나 이벤트성 장면이니까요.”

“편한 대로…….”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거네여.”

특별하게 우리로 분량을 뽑겠다는 것보다는 등장 자체에 의의를 두는 모양이었다.

깜짝 등장!

그런 느낌으로 나오는 것이니 편한 대로 하라는 게 화자의 의도겠으나, 동생들에게는 앞 말만 들린 모양이었다.

“일단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편집할 때 어떤 포인트를 살리고 싶으니, 이런이런 장면을 희망한다는 제작진의 설명을 들었다.

하도 예능을 많이 뛰어서 그런 걸까.

제작진이 요청하는 상황 조성은 눈 감고도 할 만큼 익숙해서 충분히 소화가 가능했다.

물론, 그중에서 몇 가지는 거절했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건 저희가 성격상 잘 못해서요. 초등학생도 저희를 안 무서워하거든요.”

“맞아여. 만만한 아이돌 하면 1위라고 하잖아여~”

“저 노려보는 거나 화내는 거 진짜 못해서.”

적당하게 거절했다.

서바이벌 프로의 흔한 멘토들이 그러하듯 ‘이게 최선이야? 정신 안 차려?’ 이런 걸 해 달라는 모양인데….

별로 안 좋은 생각이었다.

우리가 2세대 선배들 연차쯤 되면 모를까. 3년차가 눈에 불을 켜고 사람 잡고 그러면 모양새가 웃긴다.

“아… 보통은 이런 장면이 나와야 쫄깃해지거든요.”

“맞아요.”

살짝 아쉬워하는 제작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방송을 보니 그런 건 트레이너 분들께서 담당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저희가 잘 하는 걸 해 볼게여.”

그 이야기는 더 나오지 않게 마무리를 지었다.

그때 같이 참석해서 미팅을 지켜보던 허강민 대표가 손뼉을 치며 화제를 돌렸다.

“연출부랑 이야기는 된 것 같고. 이제 우리 애들 볼래?”

“네!”

“여기 이게 비공개 영상 자료.”

일주일 동안 연습했다는 다섯 곡의 연습 영상들이었다.

잔잔하고 아련한 노래인 스페셜 앨범의 ‘겨울잠’이 빠지고, 퍼포먼스 위주인 나머지 다섯 타이틀.

이름표를 단 연습생들이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영상이었다.

“오…….”

KM 엔터 스타일로 편곡한 불꽃놀이에 맞춰 연습생들이 손을 스윽 흔들었다.

“어어…….”

흔들흔들.

메인보컬 포지션으로 보이는 연습생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저길 봐~’ 하며 음을 높였다.

목소리로 탑을 쌓는다면 피사의 사탑이 흔들흔들하는 느낌.

“어으으음…….”

리혁이가 표정을 수습하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연습생들이 불꽃놀이의 안무를 추며 손을 흔들흔들~ 할 때마다 제작진들 사이에서 민망한 공기가 흘렀다.

‘이래서 따끔하게 뭐라고 말을 해 달라고 한 건가…?’

‘아니, 이건…….’

다소 놀라운 퀄리티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을 때.

불꽃놀이 영상이 끝나고 허강민 대표님이 말했다.

“저쪽이 유독 팀워크가 조금 삐걱대는 편이어서.”

“아하…….”

“그래도 다른 팀은 괜찮아. 하하!”

…라는 말에 안도하면서 다른 영상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허강민 대표님의 말대로 다른 팀들은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몇 가지가 조금 부족한데….’

‘이대로 무대 올라가면 아까울 거 같지 않아요?’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괜찮기는 한데 아쉬운 퀄리티였다.

KM 엔터답게 연습생들의 역량도 뛰어나고, 트레이너 분들도 방향을 잘 잡아줬지만 몇 가지 아쉬운 포인트들이 보인다고 할까.

“잠시만요~”

양해를 구하고 동생들과 잠시 떨어진 곳으로 가서 회의를 시작했다.

원래는 간단하게 멘토링만 할 예정이었다. 완성된 케이크 위에 포도 한 송이 올리는 정도로.

근데 막상 와 보니 전체적으로 손을 댈 부분이 많아 보였다.

“일단 불꽃놀이 팀부터 이야기를 해 보자.”

30분 정도 동생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식으로 조언을 해 줄지 의견을 모았다.

막내가 말했다.

“이번에는 진지하게 멘토링만 하고 와야겠네여.”

“시간이 빠듯하니까 최대한 진지하게 도움을 주고 와야지. 우리가 트레이닝은 어떻게 할 줄 몰라도 원곡 부른 가수니까.”

“맞아요.”

기왕 나온 거 원곡자로서 최대한 연습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가고 싶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후.

멀찍이서 우리를 관찰하며 메모를 하던 허강민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

“응?”

“혹시 저희 멘토링 시간을 좀 더 늘려도 되나요?”

곧바로 푸근한 미소와 함께 승낙이 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생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   *   *

남양주 <온 더 스테이지> 촬영장.

그곳에 난리가 벌어졌다.

우르르르르르.

우르르르.

“……?”

여기저기 우다다 뛰어다니는 연습생들을 바라보던 싱어송라이터 장소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쟤들이 왜 저러지? 오늘 누구 오나?”

“뉴블랙 온대.”

발라드 가수 윤찬혁의 대답에 장소원이 아, 맞다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오늘이었구나. 그게?”

얼마나 흥분한 건지 심지어 어디선가 욕설까지도 아련하게 들려오는 모습에 윤찬혁이 혀를 내둘렀다.

“어휴… 쟤들은 어려서 힘이 넘치나. 하루 종일 연습하고도 뛰어다닐 힘이 있나 보네.”

“으휴, 꼰대. 연예인 본다고 신날 수도 있지.”

HBS <온 더 스테이지>에 보컬 멘토로 출연한 두 가수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번 주에도 엄청 시끌시끌했는데. 오늘도 엄청 시끌벅적하겠네.”

KM 엔터의 선배 가수들이 찾아왔을 때도 흥분해서 난리가 난 연습생들이었다.

그들이야 이제는 별 감흥도 없지만, 아직 데뷔도 안 한 연습생들에게 TV에 나오는 이들은 신비하기 마련이다.

다만…….

“쟤네 지금 뉴블랙이 온다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응. 아마도?”

윤찬혁의 물음에 장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그것이 미스터리였다.

뉴블랙이 원곡자로서 멘토링을 하러 온다는데, 저렇게 신이 나서 방방 뛸 일인가 싶었다.

‘저승사자가 실시간으로 내비 찍고 찾아오는 느낌이어야 할 텐데.’

‘갈리고 그러는 걸 좋아하나…?’

관계자들에게는 이미지가 확고한 뉴블랙이었다.

장소원도 얼마 전에 친하게 지내는 트윙클의 란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비주라는 애… 뉴블랙에서 제일 착하고 귀여운 애라고 하지 않았어? 이건 얘기가 다르잖어…….

-안 귀여워. 비주?

곧바로 거센 항의가 날아왔었다.

댄스 경연을 같이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그 순한 얼굴로 사람을 달달달달 닭볶음탕처럼 볶는다는 모양이었다.

장소원이 미소를 지었다.

‘얘네가 신인 때 작업해서 다행이야.’

연습생이나 신인 때만 해도 순하게 네, 넹 하며 열심히 하던 아이들이었는데.

데뷔를 하고 성공하더니 갑자기 과하게 성실한 본색을 드러냈다.

“근데 오빠는 뉴블랙 잘 알아?”

“같은 소속사잖아. 같은 소속사…. 딱히 만날 일은 없다만.”

같은 회사이기에 윤찬혁도 소식은 자주 듣고 있었다.

앨범 얘기하러 A&R팀이나 프로듀싱팀을 들를 때마다 흐느낌과 통곡이 들려오고.

대표실이나 재무팀을 방문할 때면 온갖 화사하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식이었다.

‘최대한 엮이지 말자.’

윤찬혁이 그런 결심을 하고 있는 동안.

연습생들은 잔뜩 신이 나서 방방 뛰는 중이었다.

‘뉴블랙……!’

현재 가장 잘나가는 보이그룹을 직접 본다는 소식에 기대감에 부푼 연습생들이었다.

연예인이 온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다고 할까.

핸드폰도 제출하고 TV도 없는 이 한적한 스튜디오에 흥미진진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박.”

“아. 개떨리네. 만나면 뭐라고 인사해야 되지.”

“인사할 시간은 있으려나? 격려의 말 한 마디 해 주고 바로 갈 듯.”

“그래도 쫌 오래 있다 갔으면 좋겠다….”

저마다 뉴블랙에 대해서 이야기를 수군수군하고 있는 동안.

[안내 방송 드립니다. 지금 강당으로….]

뉴블랙이 왔으니 강당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연습생들이 우와아아 하면서 뛰고, 보컬과 댄스 트레이너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모두가 공통적으로 기대감을 안고 갔을 때.

“어……?”

“뭐, 뭐여. 이게?”

뉴블랙이 없었다.

그 대신에 자리 잡은 것은 다섯 개의 칸으로 나눠진 상자였다.

마치 방송국에서 가짜 모창 가수를 잡아낼 때 쓰는 박스 같은 물건이 늘어선 가운데.

“닭?”

“호랑이…?”

“뱀?”

귀여운 동물 이모티콘이 각 칸마다 앞에 붙어 있었다.

연습생들과 트레이너들 모두가 눈을 끔뻑끔뻑하고 있을 때.

-꺄하하핫!

-내가 누구게~?

헬륨을 마신 듯 발랄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

상자 위의 전광판에 자막이 뚠 떠올랐다.

온더스의 표어와 비슷한 문구였다.

[☆당신의 멘토를 골라 주세요★]

연습생들이 벙 찐 표정으로 바라보는 동안 음성변조된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아~~

-여러분! 정말 반가워요! 슈우우웁! 아아아아~ 꺄

-내가 누구일까~? 꺄꺄꺄!

……정말이지 남다른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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