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74화
무대에 널브러진 연습생들이 끙차 끙차 하며 일어나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안쓰러웠다.
“저런…….”
연습 좀 살살 시키지.
무대 위로 올라간 비주가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광경에 내가 말했다.
“역시 나의 승리인가.”
분명히 Nine도 훌륭한 무대긴 했다.
하지만….
“윤리와 도덕 점수까지 따지면 우리 마커 팀이 이겼다고 봐야겠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리혁이의 태클을 무시하며 우리 팀의 승리라는 것을 어필했다.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트레이너들이 웃을 때, 연습생들을 케어한 비주가 돌아왔다.
여전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이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몰랐거든요. 분명히 연습할 때만 해도 다들 멀쩡해 보였는데.”
“정말? 정말로 멀쩡했을까?”
“……네, 당연…….”
그렇게 말을 하던 비주의 눈동자가 위로 슥 이동하더니 눈꺼풀이 깜빡깜빡했다.
무언가 스쳐 가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간과하고 있던 연습생들의 손 떨림이라든가.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렸던 비명소리라든가.
“어어…? 아닌가……?”
비주가 멈칫했다.
“아… 아까 그게 아… 아아, 그거였구나.”
이내 깨달음을 얻은 비주의 표정에 우리가 웃었다.
막내가 말했다.
“모두가 형처럼 연습하는 거 좋아하는 게 아니에여. 체력도 생각하고 그래야지.”
“……나 바보인가 봐. 눈치 없게.”
“야. 괜찮아.”
중현이가 비주의 등을 톡 치며 말했다.
“너는 그래도 춤 잘 추는 바보잖아. 나는 그냥 바보인데.”
중현이의 순박한 위로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동안 뺨을 꿈틀거리던 허강민 대표님이 마이크를 들고, 숨을 돌리는 연습생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좀 괜찮니?
-예… 허억… 허어어억… 예, 괜찮습니다.
-물 좀 마실래? 다들 숨넘어가겠다.
생수병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연습생들에게 허강민 대표님이 말했다.
-아까 마스커레이드 팀도 정말 잘했지만, Nine 팀도 정말 잘했어. 아주 인상 깊은 무대였고. 만약에 점수를 주자면… 마스커레이드 팀이 100점 만점에 95점.
그러곤 Nine 팀을 바라보았다.
-이번 Nine 팀이 97점이야.
-…가, 감사합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마스커레이드 팀과 내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 동안, 비주와 나인 팀이 화사하게 웃었다.
-물론.
허강민 대표가 말을 이었다.
-이건 중간 평가 점수라는 걸 기억해. 이게 최종이었다면 여기서 10점씩은 깎았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내려가 봐.
무대에서 내려오는 Nine 팀의 연습생들에게 카메라가 달라붙었다.
중간 평가 소감이 어땠는지 인터뷰를 하는 것 같은데, 웃고 있는 연습생들의 눈길이 비주에게 향했다.
입모양을 슥 읽어 보고는 비주에게 알려 주었다.
“너한테 고맙대. 비주야.”
“진짜요?”
눈을 빛내고 좋아하는 비주의 모습에 나도 기분 좋게 웃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확실히 Nine 팀도 임팩트가 강렬했다. 연습생들의 기량이 더 뛰어나기도 했고.
“이제 다음 순서는 누구예여?”
“우리 팀.”
리혁이가 거만하고 웃고 있는 동안, 냉랭한 표정의 리혁이 미니미들이 무대에 쏙쏙 올라왔다.
“뭐. 나는 특별하게 준비한 건 없어요.”
리혁이가 으스대듯 말했다.
“하지만 나도 예측을 다 했죠. 분명히 1번이 임팩트 있게 나올 거고, 비주 형도 안 지려고 임팩트 있게 나올 거다. 그러니까 우리 팀은 다른 방식으로 가기로 했어요.”
무대 위에서 자세를 잡는 낙화 팀을 바라보며 리혁이가 말했다.
“우리 팀의 테마는 정석이에요. 춤과 노래 모두 정석적으로 깔끔하게.”
“오호.”
“보면 알 거예요.”
이윽고 편곡된 낙화의 전주와 함께 연습생들이 몸을 움직였다.
정적으로 시작한 낙화의 초반 파트.
리혁이의 말마따나 보컬도 기교 하나 없이 깔끔하고, 춤선도 몹시 깔끔했다. 앞선 두 춤이 화려하고 임팩트가 강했다면 이쪽은 담백한 맛으로 오히려 시선을 끌어모았다.
좋은 전략이었다.
이미 강렬한 자극에 노출된 관객들에게는 또 자극을 줘 봐야 임팩트가 없는 법이다.
처음에는 내가 외발자전거를 타기만 해도 놀랐던 구독자들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기듯이.
그런 까닭에 담백한 낙화의 무대가 오히려 집중이 잘됐다.
트레이너들이 평가지를 끄적였다.
“춤선 진짜 깔끔해졌다. 잔가지를 싹 쳐 냈네.”
“호흡도 훨씬 안정적인데요? 봐봐요. 고음 파트 올라갈 때 불안한 게 좀 많이 가셨잖아.”
“확실히 원곡자만 손댈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있어.”
멘토링에 대한 칭찬이 이어지면서 곁에 앉아 있는 리혁이의 귀가 계속 쫑긋거렸다.
그러면서 뺨을 꿈틀꿈틀하는데 벌써부터 승리의 미소가 감돈다고 할까.
막내가 내게 속삭였다.
“저 형, 자기 맏형 되면 뭐뭐 할지 리스트 적어 놓은 거 알아여?”
“…그걸 리스트까지 적어 놨어?”
“이상해여? 그거 보고 저도 좀 적었는데.”
그냥 나이 있다고 붙는 호칭이 맏형인 건데, 뭘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였나. 분명 같은 물건을 쓰는데도 내 거가 좋아 보인다고 탐내던 애기들이 떠올랐다.
뭐. 우리 애들은 애기라고 하기에는 좀 늙은 애기지만.
그렇게 집중해서 무대를 보고 있을 때.
-허억… 허어억…….
낙화의 엔딩 포즈를 취하던 연습생들도 숨을 몰아쉬다가 허우우 하면서 드러누웠다.
트레이너들이 혀를 내둘렀다.
“저기도 쓰러지네?”
“빡세다. 빡세.”
“어우, 애들 괜찮나? 왜 이렇게 힘들어… 할 만했구나. 할 만했네. 응. 그랬지. 아까.”
연습 강도 조절에 실패했는지 리혁이의 낙화 팀도 비주네 팀과 마찬가지로 쓰러져 끙차 끙차거렸다.
연습을 대체 얼마나 시킨 걸까.
리혁이 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 리혁이가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것도 예상했던 바였어요.”
그러더니 손뼉을 두 번 짝짝- 쳤다.
그리고 그 순간.
“……?”
번쩍, 하고 연습생들이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몸에 아드레날린이라도 들어온 것처럼 거의 덤블링할 기세로 일어나는 연습생들.
얼굴에도 활력이 돈다.
“…….”
트레이너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갑자기 또 힘이 돌아?”
“박수쳐 줘서 힘이 나나…? 애들 얼굴에 생기가 도네.”
“애들 환하게 웃는 거 봐. 우리 서바이벌이 아니고 장르 바꿔야 할 거 같은데? 주말 예능으로.”
박수 두 번에 활기가 돋는 얼굴의 연습생들을 바라보던 우리가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 했냐.’
‘대체 뭘 한 거예여…?’
리혁이가 훗 하며 주머니 속에서 작은 초콜릿을 하나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러곤 눈빛으로 말했다.
‘조건반사.’
밥 먹을 때마다 종을 땡땡 치니 파블로프 씨의 강아지가 어맛 밥이다 했다는 바로 그 실험.
초콜릿을 줄 때마다 손뼉을 친 모양이다.
얼굴에 활력이 도는 연습생들의 모습에 리혁이가 흐뭇하게 웃으며 연습생들을 바라보았다.
“후후후후…….”
실험에 성공한 연구자처럼 손목시계의 시간까지 확인하는 모습에 동생들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노래를 해서 진짜 다행이다.’
‘좋은 길로 빠져서 다행이에여. 나쁜 길로 빠졌으면 희대의 악당이 탄생했을 듯.’
‘공부 안 해서 참 다행.’
공부를 했으면 분명 나쁜 길로 빠졌을 아이가 그나마 노래 쪽으로 와서 이렇게 사람이 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막내가 말했다.
“대단해여, 형.”
“뭐, 그래.”
이 동생 감탄했습니다! 하는 얼굴로 웃던 막내가 말했다.
“크으, 근데 사람 마음은 정복했는데 본인 귀는 정복을 못했네여.”
“…….”
금세 몽실몽실한 토마토처럼 변하는 누군가의 모습에 우리가 키득거렸다.
* * *
같은 시각.
-낙화 팀도 굉장히 인상 깊었어. 앞선 두 팀이 너무 잘해서 눈에 띌까 싶었는데도, 그걸 이겨 내고 눈에 들어오더라. 솔직히 나로서도 점수를 어떻게 매겨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허강민 대표의 칭찬에 무대에 선 연습생들이 냉랭한 얼굴로 미소를 감추고 있을 때.
카메라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작진들이 수군거렸다.
“허 대표님 저렇게 신나서 말씀하시는 건 오랜만에 들어 봐요.”
“하긴… 저번 주에 틴스피릿 곡 평가했을 때는 장난 아니긴 했지.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때려치우라고.”
“살벌했잖아요. 내가 다 떨렸다니까.”
분명히 지난주만 해도 눈에서 레이저를 뿜어내던 허강민 대표였다.
-너네 이런 식으로 하면 나도 데뷔 인원을 다시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어. 10등 안에만 들면 된다 이거야? 1등 안 해?
-춤도 못 추는데 끼를 부려? 끼를…? 끼르으으을?!
-실수하는데 웃어? 웃어어어?! 무대에서 실수를 해 놓고 웃는 정신머리는 어디서 배운 거야?
가슴을 치며 아이고, 아이고 동네 사람들! 하던 허강민 대표가 지금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제작진들 모두가 그 이유를 납득했다.
일반인인 그들에게도 2시간 전후의 차이가 크게 보였으니까.
일단 안무 퀄리티가 확 좋아졌다.
전체적으로 몇 계단을 상승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사소한 부분의 차이가 전체적인 인상을 바꾸었다고 할까.
약간씩 어긋났던 안무의 합이 찰떡같이 맞고, 안무의 연결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마치 이미 존재하는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린 화가 지망생들에게 원작자가 나타나 몇 가지 붓 터치 등에 대해 조언을 한 듯한 느낌.
“이야. 이게 2시간 만에 달라지는 게 가능하긴 하구나.”
“신기하지 않아요?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는 게?”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성과였다.
제작진이 기대했던 뉴블랙의 역할은 그저 깜짝 등장하는 멘토 정도였으니까.
나와서 연습 한 번 둘러보고 진지하게 네 꿈을 기억해, 하고 연습생들 인터뷰 컷으로 ‘와 진짜 감동이었어요’ 하는 정도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뉴블랙이 진지하게 멘토링을 해도 되냐고 물으면서 방향이 조금 바뀌…….
-당신의 멘토를 골라 주세여~
-내가 누구게? 슈우우우웁~ 아아아~ 꺄핫!
-엄마가 섬그늘에~ 어저께고요~
…아닌가? 좀 많이 바뀌었나?
제작진의 시선이 피디에게 향했다.
“끄으으응… 끄응.”
대본을 바라보다가 현장을 보고, 그리고 아까 뉴블랙의 촬영분을 보면서 고민하는 피디.
‘피디님도 고민이 많겠지.’
이걸 어떤 식으로 편집을 해야 할지 각이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기사 그들이 PD라고 생각해도 굉장히 난감한 상황.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톤과는 거의 상극인 뉴블랙이었다.
등장할 때는 주말 예능이었다가 중간에 훈훈하고 유쾌하고 감동이었다가, 또 웃겼다가….
“어? 웃으신다.”
“웃네.”
고민을 하던 피디가 이내 허허 웃는 모습에 제작진도 웃었다.
‘포기했구나.’
빠르게 포기한 모양이다.
본래 프로그램의 톤에 맞게 편집하려면 얼마든 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웃기고 재미있는 컷을 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니까.
‘포기하면 편하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제대로 활용하기만 할 수 있다면 본방송 분량뿐만 아니라 무편집 2시간 멘토링 씬, 비하인드로 주구장창 우려먹을 수 있는 소재가 뉴블랙 아니던가.
소머리국밥부터 시작해서 곱창과 사골까지, 마치 예능계의 소 한 마리 같은 존재.
‘분량은 뽑았다.’
그렇게 제작진이 훈훈하게 웃고 있을 때.
낙화 팀에 이어서 중현 팀의 바람꽃 무대가 이어졌다.
“와, 랩 진짜 맛깔나네.”
“무대가 재미있다, 여기는. 보고 있기만 해도 신나네. 막 흥겹고.”
“재미만 따지면 여기가 제일 재미있는 거 같긴 해요.”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누군가 물었다.
“근데 쟤네 아까부터 뭐 쓰고 있는 거예요?”
누군가의 손가락을 타고 뉴블랙의 단체컷이 나오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심사위원석 옆에 붙은 의자에 옹기종기 앉은 뉴블랙이 무언가 쓰고 있다.
무대를 진지하게 바라봤다가 종이에 무언가를 끼적이기를 반복하는.
“저기 보이네요.”
다른 모니터에 뉴블랙이 쓰고 있는 메모지가 보였다.
그중에서 왕지호의 메모 패드 위에 깨작거리는 글씨들이 보였는데, 바람꽃의 무대를 모니터링하는 모양이었다.
자기가 멘토링한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까지 살피는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끝까지 철저하네.”
감탄이 나오는 프로 정신이었다.
이제 멘토링도 끝났으니 가볍게 보고 가면 될 텐데, 끝까지 하나라도 더 알려 주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성공한 애들 보면 다 이유가 있어.’
살짝 웃으며 무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뉴블랙.
그 안에 담긴 따스한 시선은 확실히 서바이벌 프로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보기는 좋았다.
그리고 무대 사이마다 자기들끼리 꺄르륵 웃으면서 소곤소곤하는데 엄청 즐거워 보인다.
다들 비슷했다.
“오늘 다들 웃음이 많긴 하네요. 연습생들도 활짝 웃고. 트레이너들도 계속 웃고.”
제작진인 그들도 계속 웃고 있었다.
프로그램 톤이 안 맞는다고 계속 말하고는 있지만, 은근히 이런 상황이 좋은 느낌.
심사평이 이어지고 있을 때, 작가 중 하나가 속삭였다.
“근데 중간 평가 1등은 누가 할 거 같아요? 낙화? 나인?”
“마스커레이드도 괜찮았는데… 솔직히 나인 팀 연습생들이 좀 세기도 했고.”
“난 바람꽃. 이게 제일 좋았어. 오랜만에 00년대 힙합 듣는 기분 나더라.”
“난 솔직히 다 좋았어요. 노래가 워낙 다 좋아서.”
어떤 노래를 고르든 간에 음원 사이트의 연간 랭킹 최상위권에 있는 대중성 좋은 곡들이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때였다.
“어? 마지막 팀이다.”
지호가 멘토링을 했던 불꽃놀이 팀이었다.
지금까지 호인처럼 웃고 있던 허강민 대표의 안색이 살짝 굳고, 트레이너들도 눈매를 좁힌다.
-불꽃놀이 팀…? 노래가 터져야지 너네가 터지면 어떡해?
-지금 이 무대 그대로 가면… 레몬 엔터 법무팀에서 너네한테 연락이 올 거야.
최초 평가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불꽃놀이 팀이었다.
다른 팀은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은 한다는 느낌이었는데, 흔들흔들하며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렸던 불꽃놀이 팀.
방송에 나오면 헬꽃놀이, 지옥불 등으로 조롱을 받을 퀄리티.
“…….”
불꽃놀이 촬영에 참여했던 스탭들을 제외한 제작진이 으으 하며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청량한 멜로디와 함께 무대가 시작됐다.
-여긴 지금 어디인 걸까, 낯선 바다 낯선 공기
우주 파트를 맡은 연습생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듯 나온다.
“어……?”
잘한다.
분명 첫 평가 때는 시작되자마자 탄식을 부르는 파트였는데, 자연스럽고 괜찮게 흘러갔다.
뒤이어 지호 파트를 소화하는 연습생도 잘하고.
“어어……?”
“괜찮은데? 진짜로.”
합이 안 맞았던 무대의 합이 맞고 있다.
저번에는 들어오다가 동선이 엇갈리며 부딪혔던 파트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을 맞대고 있고.
화면에 잡히는 트레이너들도 처음에는 그들과 같은 표정이었다가 지금은 이것 봐라? 하는 얼굴로 웃고 있다.
연습생의 고음에 그거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이는 장소원의 장면과 함께 댄스 트레이너가 집중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장면이 지나갔다.
그 뒤를 이어….
반짝반짝.
잇몸이 만개한 미소를 짓고 있는 허강민 대표의 이빨이 플랑크톤처럼 반짝거렸다.
그리고.
<온 더 스테이지>의 메인 피디의 얼굴에서도 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서사다! 서사!’
누가 봐도 꼴찌가 확연했던 팀이 중간 평가에서 치고 올라오는 모습에서 어떤 식으로 연출을 해야 할지 감이 왔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는 한편.
허강민 대표, 트레이너들, 그리고 제작진들 사이에서 비슷한 공감대가 오가고 있었다.
‘……오늘 1등은 불꽃놀이다.’
다른 팀에 비해서 월등한 실력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최종 평가에 가면 얼마든 뒤집힐 수도 있고.
하지만, 단기간에 급속도로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오늘의 1위는 결정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잘했다.
다소 긴장된 얼굴로 모여 서 있는 불꽃놀이 팀의 연습생들에게 허강민 대표가 말했다.
-진짜로, 잘했다.
연습생들의 뺨이 꿈틀거렸다.
-잘했어. 어휴, 이렇게 잘할 수 있는데….
-너네 울어?
트레이너들이 잘했다면서 칭찬을 한마디씩 얹을 때마다 연습생들이 눈을 비볐다.
윤찬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누가 보면 너네 경연 끝난 줄 알겠다. 중간 평가인데.
그간 설움이 좀 있었는지 연습생들이 후우웁 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왠지 모르게 지호 같은 표정.
지호 미니미들이 안 울려고 눈을 동그랗게 뜨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다들 웃었다.
허강민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뽑는 오늘의 1등은 너희다.
-…감사합니다!
꺼이꺼이 우는 햄스터처럼 무대를 내려가는 지호 미니미들을 보며 다들 웃을 때.
“감독님.”
누군가 뉴블랙을 가리키며 오디오 감독을 불렀다.
막내를 둘러싼 네 형이 상대의 귀에다가 뭐라고 소곤소곤 속삭이는 모습.
마치 막내 펭귄을 괴롭히는 형 펭귄들 같은 장면에 질문이 나왔다.
“지금 저기서 뭐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에 헤드셋을 낀 오디오 감독이 답했다.
“형이라고 부르는데?”
“네?”
* * *
“형.”
“형아.”
“형님.”
“야. 형. 야.”
덩실덩실.
“형. 왜 대답 안 해요.”
“형아야~”
“형님~”
“야, 형 대답해요. 야.”
덩실덩실~
마치 오징어 다리처럼 팔을 넘실넘실거리며 깔깔대는 형들의 모습에 왕지호가 눈을 감았다.
‘와. 진짜 극혐…….’
에베베 하면서 귓가에서 형~ 형님~ 하는 목소리들에 눈을 감은 왕지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들이 아니라 혐들이었다.
스스로 불러온 고난에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형~”
누군가를 따라 하듯 우주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저 그럼 이제 형만 믿고 가면 돼여?”
“으아아아!”
인내심의 한계가 왔다.
뒤이어 리혁이 ‘안녕하세요, 형’ 하면서 생긋 웃기까지.
속에서 뭔가 올라왔다.
“……으아아아, 제발…!”
혐들이 꺄륵 웃었다.
“안 돼~”
“어딜 도망가려고? 형 해야지?”
“지호 형~”
견디지 못한 왕지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건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형이라고 하지 마여. 저 그냥 막내 할래여, 막내. 나 평생 막내 할래….”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괴로워하는 막내의 모습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