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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77)화 (47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77화

TBC 일산 스튜디오.

녹화장은 바쁘게 뛰어다니는 스탭들로 인해 발 디딜 틈 하나 없었다.

“저기요! 누가 저기 조명 좀 트러스 밖으로 치워 주세요!”

“출연자들은? 지금 누구누구 도착했어?”

“지금 사과팀이 제일 먼저 도착해서 몸 풀고 있고요. 다른 팀들도 조금 있으면 도착한다고…….”

본격적인 녹화는 저녁이었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해도 시간이 빠듯했다.

TBC에서 큰 예산을 들이는 경연 예능.

그중에서도 첫 녹화인 만큼 신경 쓸 것이 많았다.

“일단 세팅되는 대로 리허설 들어가자.”

무대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시사항을 전달하던 의 메인 PD가 심호흡을 했다.

‘준비는 완벽해.’

오늘 하루를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밤을 새웠다.

수백 편의 영화 중에서 <에라트리아>를 선정해 줄거리를 분석하고, 경연에 어울리는 출연자를 섭외하고.

뮤지컬 연출에 조예가 깊은 연출가도 불렀다.

“선생님, 오셨어요?”

“좋은 아침이야, 김 감독.”

커피를 챙겨든 꼬장꼬장한 얼굴의 연출가가 긴장으로 굳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많이 떨리나 보네.”

“얼마나 떨리는지 모르실 거예요. 심장이 아니라 안에 야구방망이가 때리는 거 같습니다.”

“긴장할 게 뭐 있어? 출연자들 연습하는 것도 다 봤으면서 내숭은.”

연출가의 말에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상대의 말마따나 준비는 완벽했다.

제작진도 최선을 다했고, 출연진도 미친 듯이 연습을 했다.

다만 그럼에도 긴장이 되는 건.

“이번 프로그램이 잘 됐으면 하는 욕심이 너무 큰가 봅니다. 워낙 간절했던 프로라서….”

대학생 때도 아마추어 댄스 동아리에서 춤을 췄고, 한때 진로를 댄스 쪽으로 꿈꾸었던 그였다.

재능이 없어서 포기하긴 했지만 춤은 언제나 꿈이었다.

댄서가 될 수 없다면 피디로 성공해서 춤을 주제로 한 예능을 만들겠다고 의지를 다졌는데, 오늘 첫 녹화 들어가는 ‘I MOVE’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사람들이 춤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지상파부터 케이블까지. 음악 예능은 수십 개가 넘지만 춤에 대한 예능은 별로 없었다.

I MOVE의 메인 피디는 그런 인식이 이번 프로그램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김 감독.”

연출가가 말했다.

“내가 40년 가까이 이 바닥에서 이 공연, 저 공연 봐 왔는데 이번 건 느낌이 예사롭지가 않아.”

“그렇습니까?”

“흥행하지 못하는 공연은 저마다 다 이유가 달라. 배우들 연기가 안 좋을 수도 있고.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경우도 있고. 음악이 좋지 않기도 하고. 다 제각각이야.”

“…….”

“그런데 뜰 공연은 공통점이 있어. 그냥 재미있다는 거야.”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을 비슷하게 인용하던 연출가가 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린 친구들 연습하는 것도 지켜보고, 리허설도 봤는데 이번 거 재미있더만. 너무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선생님.”

꼬장꼬장한 연출가의 칭찬에 피디가 웃었다.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들어오는 이들은 오늘 경연의 참가자들이었다.

15명이나 되는 연예인들이 들어오면서 촬영장에 활기찬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하!”

“좋은 기운 전하러 왔습니다! 기 받으실 분!”

“감독님, 안녕하세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댄서들이 활짝 웃으며 인사하자 제작진도 웃으며 인사했다.

그런 훈훈한 광경을 보며 웃고 있을 때.

“음……?”

강렬하게 시선을 끌어모으는 팀이 하나 있었다.

‘뭐, 뭐지?’

사과팀이었다.

화사한 미소년 공자처럼 웃고 있는 비주의 양옆에 서 있는 남녀.

‘하루가 원래 저런 얼굴이었나? 아니… 란 씨도.’

정말이지 강렬한 흑백 대비였다.

하얗고 환하게 웃는 비주와 거무죽죽한 얼굴에다 다크서클이 퀭한 란과 하루.

게다가 왠지 모르게 독기 가득한 눈빛까지.

연차가 10년이 넘는 란의 얼굴이 마치 데뷔를 앞둔 신인처럼 보였다.

‘……연습 시간이 좀 심하게 많긴 했지.’

관찰 카메라로 기록한 연습 영상을 보내 줄 때도 다른 팀보다 배는 되는 사과팀이었다.

시계를 떼고.

30대인 란이 나 죽는다 하고 뒹굴거리고, 20대인 하루도 오늘내일했던 영상.

“아이고. 저거저거, 얼굴이 또 반쪽이 됐네.”

그의 옆에 있던 연출가가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가 다른 팀은 들어가도 저 팀 연습하는 데는 잘 안 들어가.”

“왜요?”

“죽겠어 가지고.”

피디가 웃음을 터뜨렸지만 연출가의 얼굴은 진지했다.

“저 친구가 얼마나 독한지 김 감독이 몰라서 그래. 예의 바르고 그런데, 알고 보면 노인 공격하는 친구야.”

“비주 씨가 열정이 넘치긴 하죠.”

“춤을 그렇게 추면서 뭔 욕심이 그리 많은지. 저번에 들어갔다가 못 나올 뻔했잖어.”

말은 그리했지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비주를 바라보는 연출가의 눈에 깃든 호감에 김 피디가 웃으며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기지개를 켜거나 몸을 쭉쭉 풀고 있는 참가자들.

-다들 잠은 잘 주무셨나요?

마이크를 든 피디의 물음에 댄서들이 웃으며 화답을 했다.

“아뇨!”

“어젯밤부터 한잠도 못 잤어요. 긴장돼서.”

“저희끼리 평균을 내 봤는데 한 사람당 3시간 정도밖에 못 잤더라고요.”

반갑게 안부를 나누며 출연진의 긴장을 풀어 준 피디가 대본을 보며 말했다.

-그러면 리허설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프닝, ‘에라트리아의 배경 소개’ 씬이에요.

1950년대 영화 <에라트리아>의 앞부분에 나오는 인형극 파트를 오프닝 공연으로 개조한 파트였다.

사악한 용과 왕의 결투.

그리고 용과의 싸움이 끝나고 새로운 갈등으로 왕국의 후계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파트.

-준비 들어갈게요.

댄서들이 오프닝 대형으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포즈를 취했다.

동네 뒷산 공원에서 볼 법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춤으로 다져진 늘씬한 몸매가 느껴진다.

그들끼리 씩 웃으며 서로에게 잘하자고 할 때.

-음악 깔립니다. 셋 둘 하나.

피디의 신호에 맞춰 순하게 웃고 있던 댄서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무대 분위기로 변했다.

연습 영상으로 수십 번 넘게 봤던 장면이지만, 조명이 더해져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

“와…….”

작가진 사이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오프닝 씬의 중심은 트윙클의 란과 스칼렛의 리나였다.

용을 맡은 리나가 손을 뒤로 힘껏 튕기자 마치 가상의 망토가 펄럭이는 듯한 착시가 느껴졌다.

붉은 날개를 활짝 펼치는 느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환한 조명이 어두워지고, 붉은 조명이 불티처럼 무대를 적셨다.

우아하면서도 위협적인 기세로 상대를 집어삼키려는 모습에 피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아. 춤 좋아!’

그에 대응하듯이 왕 역할을 맡은 란이 고고하게 걸음을 옮겼다.

붉은 조명이 물러나면서 새하얀 서광이 무대를 비춘다.

두 왕이 대치하는 구도.

용은 하늘을 불태우고, 왕의 검이 빛나는 장면을 상징하듯이 박진감 넘치는 음악 아래 댄서들의 손짓이 얽혀든다.

양측 부하를 맡은 다른 댄서들도 전쟁을 벌이듯 군무를 추었다.

한쪽이 우위를 점했다가 다른 쪽이 우위를 점하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때.

스스슷.

우아하게 미끄러져 나온 비주가 용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

‘진짜 잘한다니까.’

마치 머리칼을 휘날리는 숭고한 백색의 기사처럼 보이는 비주였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확 끌어모으는 느낌.

곧바로 용을 물리치고 뒤로 빠져나갔지만 머릿속에서 비주의 춤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용과의 전쟁이 끝난 후.

왕은 용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기사를 새로운 재상으로 임명한다.

‘오케이. 여기까지 됐고.’

이제 용의 둥지가 있던 땅을 두고 이웃 나라와 갈등이 벌어지게 된다.

와일드의 우산이 다른 나라의 왕이 되어 갈등을 빚어내고.

이웃 나라와의 다툼에 왕의 쌍둥이 아들딸은 생이별을 하게 되고, 재상은 부인을 잃게 된다.

그렇게 오프닝의 마지막 파트에 이르렀을 때 무대는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왼쪽에서는 마치 죽은 용이 이런 광경을 관조하며 웃듯이 리나가 서 있고.

가운데는 망연자실해하는 왕.

오른쪽에서는 사랑하는 부인을 잃고 타락의 조짐을 보이는 재상.

그러는 동안.

‘이제 저기서…….’

가운데서 웅크리고 있던 I MOVE의 막내 남녀가 부드럽게 몸을 일으키며 회전했다.

마치 씨앗에서 줄기와 잎이 자라나듯.

갓난아기였던 쌍둥이가 어른으로 커 가는 모습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에라트리아>의 배경 설명은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군무와 독무가 섞인 무대를 정신없이 지켜보던 메인 피디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

‘됐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군무였다.

흥분을 숨기며 차분하게 말했다.

-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음악이 끊기자 댄서들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웃으며 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피디가 웃으며 말했다.

-고생하셨고요. 대기실에서 편하게 기다려 주세요. 팀별로 호출하겠습니다.

“네!”

출연진들이 무대를 내려갔다.

연습을 하면서 정이 싹텄는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안도의 숨을 길게 토해 낸 피디가 고개를 돌렸다.

확인할 것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었다.

“봤어?”

그가 따로 불러낸, 객석에서 앉아 지켜보고 있던 동기들에게 I MOVE의 피디가 물었다.

“어때? 무슨 스토리인지 알겠어?”

“어. 딱히 어렵지 않던데. 용이랑 싸우고, 거기 땅 두고 싸움 벌어지다가 망한 거 아냐?”

“직관적으로 다 이해되더라. 재미있는데?”

피디의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대사나 음악 없이 오로지 춤만으로 이뤄지는 스토리라 바로 이해가 되냐 안 되냐가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 부분은 해결이 됐고.’

그럼 두 번째는.

“재상 어땠어?”

“비주 씨가 춤췄던 배역?”

“응. 어때? 재상이 타락한 게 공감이 가?”

원작 스토리에는 재상이 마냥 사악한 인물이었지만 이번 경연에서는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그게 될까 싶었는데,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 가던데.”

“재상 눈에 눈물 나게 한 사람들 가만 안 둬야지. 어디 저 얼굴을 슬프게 만들어?”

“나 같으면 왕국 멸망시킨다.”

비주얼로 개연성을 확보한 뉴블랙의 메인 댄서였다.

역시 성능 확실하다며 좋아하고 있을 때.

“피디님!”

조연출이 그를 호출했다.

“왜 그래?”

“출연진 동료들 부르기로 한 거 있잖아요. 지금 뉴블랙이 방송국에 도착했답니다.”

“벌써? 빨리 왔네.”

“촬영 좀 일찍 시작할까요?”

피디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김비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인터뷰요?”

“네.”

“지금 가면 되나요?”

“네.”

제작진의 말에 비주가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스를 붙이고 널브러져 있는 란과 하루.

“저 인터뷰 좀 다녀올게요!”

“허으어… 흐어.”

“네. 금방 올게요!”

“허으으으! 허어!”

대답할 기운도 없는지 몸짓으로 대화하는 두 댄서의 모습에 작가가 입을 꿈틀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문을 닫고 나선 비주가 작가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인터뷰인가요?”

“아. 이제 프로그램 출연 계기라든가. 무대 앞두고 소감 같은 거…? 그런 걸 물어보려고요.”

“그렇구나.”

화사하게 웃던 비주가 지나가듯이 물었다.

“근데 저번에 인터뷰하지 않았어요?”

“…네?”

“사전 미팅 때, 테이블 위에 카메라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때 찍지 않았나 해서요.”

“…….”

맞는 말이었다.

살짝 비스듬히 올려다보는 각도로 찍은 카메라로 회의실에서 ‘이 프로에 나오고 싶은 이유는!’ 하는 장면은 이미 얻은 뒤였다.

역시 뉴블랙의 실세답게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듯했다.

‘사실 깜짝 카메라 용입니다. 비주 씨.’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작가는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저희 아이가 눈치가 빨라요. 본인이 되게 잘 속는 걸 알아서 오히려 잘 안 속거든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면….

작가가 주머니에서 애플파이를 꺼내 들었다.

“출출하지 않아요?”

“허어!”

“비주 씨 주려고 준비했어요.”

“감사합니다!”

당나귀에게 당근을 흔들듯이 사과를 흔들어 주면 된다는 조언은 몹시나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애플파이를 흔들며 김비주를 유인해서 데려왔다.

“오. 식탁보 예쁘다. 이거 협찬인가요?”

식탁보를 씌운 테이블이 세팅되어 있는 회의실.

무늬가 예쁘다며 더 들여다보려는 비주의 모습에 작가가 다급하게 애플파이를 흔들었다.

이내 자리에 앉은 비주가 세팅된 카메라를 가리켰다.

“저기 보고 하면 되나요?”

“네.”

“그럼 시작해 주세요~”

이윽고 깜짝 카메라용으로 대충 마련된 질문지를 읊는 작가들이었다.

제작진이 질문하고 비주가 진지하게 답을 하는 동안, 작가들의 눈이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의 식탁보 끝이 살랑살랑 움직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돼요!’

금세 침울해지는 식탁보.

조금 이따가 인터뷰가 끝나고 비주가 방에 홀로 남을 때, 반응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멤버들이 문자로 ‘못 갈 거 같아여! 꺄하하!’ 하는 내용을 보내 주고 비주가 히잉 할 때.

두둥! 하며 등장해서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왜 저기 숨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칸막이라든가. 벽 뒤에 숨는 게 어떠냐고 했지만 거기가 재미있을 거라나.

저 안에 네 명이서 히히힛 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며 웃던 작가가 마지막 질문을 읽었다.

“비주 씨를 아는 분들은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재능도 뛰어난 친구가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한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연습을 한다. 나도 독종이라고 불렸는데 저기에 비하면 그냥 종이다.”

“아하하하…….”

부끄럽게 웃으며 뺨을 긁적이는 비주에게 작가가 물었다.

“연습을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요?”

“음…….”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던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멤버들이 너무 좋아서요.”

“멤버들이 좋아서요…?”

“네.”

갸웃하는 제작진에게 그가 설명했다.

“너무 좋은 사람들과 같은 팀이 돼서 늘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열심히 해서 이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어야지 하는.”

그렇게 순하게 웃던 비주가 아차 한 듯했다.

“조금 오글거렸죠?”

“아뇨, 아뇨. 전혀.”

“멤버들이 다들 분야별로 재능이 뛰어나거든요. 리혁이는 노래를 잘하고, 중현이는 랩을 잘하고, 지호는 연기를 잘하고. 우주 형은….”

그러곤 멈칫했다.

“어? 다 잘하네…. 어, 아무튼 그래서 제 특기인 춤에 더 집중하게 되는 거 같아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춤은 제일이니까, 이걸로 팀의 한 축이 되고 싶다 하는?”

비주가 화사하게 웃었다.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은 제게 의미가 깊어요. 오직 춤만 보여 주는 예능이잖아요. 너무 좋아요.”

“행복하신 거 같아요.”

“네, 이렇게 춤을 추는 사람들끼리 만난 것도 너무 좋고..”

솔직하고 진지한 인터뷰에 제작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월척이구나…!’

아마 테이블 아래 설치된 카메라에서는 뉴블랙 멤버들이 으아아 하며 몸을 배배 꼬고 있을 것이다.

그쯤에서 마무리를 지은 제작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설프게 핸드폰을 보던 누군가가 말했다.

“저, 잠시만요. 비주 씨. 여기서 조금 더 대기해 주겠어요?”

“아. 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런 말을 하고는 카메라를 챙겨들고 나간 제작진이었다.

옆방에 들어가자 숨은 카메라들을 통해 상황을 지켜보던 동료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테이블 아래서 꺄핫 꿈틀거리는 뉴블랙과 발을 동동거리며 TBC 구내 약도를 펼쳐들고 길을 외우는 비주.

제작진이 뉴블랙의 리시버에다 말을 걸었다.

“자, 이제 못 간다고 문자를 보내 주세요.”

곧바로 펼쳐질 장면에 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널찍한 다인용 테이블 아래.

‘후후후후후후…….’

‘후후후후후.’

음소거로 웃으면서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는 우리였다.

나 [비주야]

나 [그 있잖아..]

이따가 있을 경연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메시지 왔어요오오! 받아요오오!]

비주의 핸드폰에 요란한 고양이 목소리 같은 벨이 울렸다.

통. 통.

가볍게 동동거리던 비주의 운동화가 내 문자를 확인하고 토옹… 토오옹… 하고 변했다.

“시트콤 촬영이 지연된 거면 어쩔 수 없지….”

비슷한 시간대에 보내면 의심을 받을 게 뻔해서 다들 시간 차를 두고 조심스럽게 보냈다.

리혁이와 지호가 보내자 지잉 하고 짧게 울렸다.

“리혁이도 OST 때문에 바쁘구나. 지호도 드라마… 어, 왜 그러지? 오늘 무슨 날인가?”

동동거리던 발이 멈췄다.

마지막으로 중현이까지 막타를 날렸다.

“음? 김중현?”

혼자만 무음 메시지에 중현이가 눈매를 꿈틀하는 동안 우리가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놀렸다.

‘무음이래요!’

‘혼자만 무음이래여~! 에헤헤헤!’

‘무음이에요? 풉.’

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중현~ 넌 안 와도 돼.”

“…….”

“넌 내가 기대도 안 했다.”

쫑알쫑알 중얼대는 비주의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그러고는 시무룩해진 비주의 발을 바라보며 동생들과 눈짓을 교환했다.

‘이제 슬슬 나갈까?’

‘그게 좋을 거 같아요.’

비주가 중얼중얼할 때마다 마치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톡을 보내서 놀라게 해 주고.

그리고 우리가 짜잔 등장할 예정이었다.

‘엄청 좋아하겠져?’

‘백 프로.’

매번 I MOVE 촬영을 다녀올 때마다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비주였다.

촬영장 사람들이 잘 대해 준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없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듯하다고 할까.

그렇게 톡을 보내려고 할 때였다.

달칵.

운동화 두 켤레가 들어오더니 같은 팀인 란과 하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주야!”

“아, 선배님.”

“한참 찾았네. 뭐 하고 있어, 아침 먹어야지.”

“제작진 분들이 잠깐 여기서 기다려 달래요. 샌드위치 나왔어요?”

“응.”

란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우와. 여기 방 예쁘다. 인터뷰는 아직 안 끝난 거야?”

“아뇨. 인터뷰는 끝났고, 잠깐 뭐 얘기할 게 남아 있나 봐요.”

“아하.”

“그래서 저 여기서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비주의 말에 하루와 란이 말했다.

“여기서 밥 먹을까요?”

“그거 괜찮겠다. 분위기도 좋고.”

우리가 안 돼, 안 돼… 하고 있는 동안 란과 하루가 냉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

‘…….’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비주네 팀이니까…….

달칵.

“비주 여기 있었네? 밥 같이 먹자!”

“오? 나 심심한데 여기 합석해도 돼요?”

다른 팀 사람도 하나둘 문을 열더니 삽시간에 우르르르 들어오기 시작했다.

테이블 아래에서 우리가 흐뭇하게 웃었다.

‘친구가 없는 게 아니었구나!’

‘역시 우리 둘째다.’

인기가 많아 보이는 둘째의 모습에 좋아서 손뼉을 마주칠 때였다.

곧바로 우리를 포위하듯이 늘어선 신발들을 보며 중요한 문제를 깨달았다.

‘잠깐만.’

내가 물었다.

‘우리 여기서 어떻게 나가냐?’

‘…….’

할 말을 잃은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눈을 깜빡였다.

‘어……?’

우리 지금 망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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