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86화
가장 먼저 답장이 온 곳은 민초단의 단톡방이었다.
한조 [우리 뉴블랙은.. 목숨이 여러 개인가봐요..?]
한조 [ㅎㅎㅎㅎ]
LB [석고대죄해]
LB [아씨 오늘 잠 다잤네]
렉스 [아까 잘 자던데 너]
우리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 스트릿 보이즈를 보며 깔깔 웃었다.
분개하는 친구들에게 정 그러면 너희도 지인들에게 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굿 아이디어라며 몹시 좋아했다.
그리고.
우리만 재미있었던 것이 아닌지 스트릿 보이즈도 비슷한 감상평을 전해 왔다.
한조 [진짜 재밌긴 하더라]
한조 [웹드라마 나왔다고 했을 때 예상한 거랑은 완전 다르네;]
기원 [이런 거 처음 봐요 0_0]
스보뿐만 아니라 다들 재미있다, 신선하다 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지호 대단하다며 칭찬하는 답장에 막내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하트 이모티콘을 여기저기 난사했다.
지이잉-
그와 함께 계속해서 울리는 막내의 폰.
“음흠흠~”
친구가 어찌나 많은지 거의 5초에 한 번 꼴로 다른 사람들한테 메시지가 오는 듯했다.
우리가 보며 감탄했다.
“너… 몇 명한테 얘기를 한 거야?”
“글쎄여. 한 300명 되려나? 저도 잘은 모르겠어여.”
인간이 최대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숫자가 100명인가 뭐 그렇다던데.
역시 우리 막내는 여러모로 사람이 아니었다.
신이 나서 친구들에게 답장을 하는 막내를 보다가 나도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디 보자. 돌릴 대로 돌린 것 같고…….”
무서운 것을 질색하는 태현이와 육두문자로 답할 것 같은 이웃집 미소년들을 제외하고 얼추 다 돌린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후 [지호 웹드라마 봄]
연후 [띵작 ㅇㅈ]
얼마 안 가 우리와 틴스피릿의 단톡방에 재미있게 보았다는 격한 후기들이 날아들었다.
“얘네는 어떻게 본 거지?”
“친구들이 보라고 링크 보냈다는데요…?”
자세히 보니 우리가 스보에게 보냈던 링크와 같은 메시지였다.
막내가 후후 웃었다.
“이거 그 여섯 다리의 법칙이잖아여. 여섯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여.”
행운의 편지처럼 퍼져 가고 있는 링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오프닝이 엄청 무섭긴 했지.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미튜브 댓글창에서도 사람들이 으아아아 하고 있었다.
-하나도 안무섭네ㅋㅋㅋ 오늘은 엄마랑 자야지ㅠㅠ
-웹드여서 다행이다.. 이거 극장에서 봤으면 백퍼 팝콘통 엎엇을듯
-무서운 거 하나도 못보는데 넘 재밌자너 ㅅㅂ 하 근데 주인공 이름 뭐인가요
-음향 보소.. 어후.. 이어폰 끼고 보지 마셈 딱딱거릴 때마다 ㅈㄴ 무서움
-별로 안 무서운데? 근데 분위기 자체가 소름인 듯
-이런 거 좋아해서 지금 겁나 두근거린다힣 아 행복해
역시 우리가 겁쟁이인 게 아니었다.
맨 처음에 나왔던 쇼킹한 장면에 모두 오들오들하는 분위기였다.
-근데 이거 작가님 누군가요..? 웹드라마 작가님이 아닌 거 같은뎅
-떡밥 떨구는게 보통 솜씨가 아닌듯
-어지간한 TV 드라마보다 이게 더 낫다ㅋㅋㅋ
-웹드인데 작감배가 완벽한 요상한 이 느낌.. 근데 지호 연기 잘하네
댓글창을 살피는 가운데 우리도 그제야 드라마의 여운에 잊고 있었던 궁금증을 떠올렸다.
“지호야.”
“넹?”
“근데 슬립 작가님이 어쩌다 여기에 오신 거야?”
우리가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슬립>은 2015년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꼽혔기도 했고, 시청률도 굉장히 좋았다.
TV 부문을 수상하는 예술대상에서도 작품상, 극본상을 타기도 했고.
그 정도 커리어를 지닌 작가님이라면 방송국에서도 모셔갈 텐데, 왜 차기작으로 이런 웹드라마를 했는지가 궁금했다.
“아, 그게여.”
막내가 말했다.
“올해 초에 이미 차기작 쓰신 게 있거든여.”
“있어?”
“네, 워낙 시청률이 안 나와서 다들 잘 모르는 드라마인데, 케이블에서 했던 게 있어서. <옴>이라고.”
포털에 검색해 보니 진짜로 올해 초에 나온 퇴마 드라마가 하나 있었다.
옴(Ω).
극본에 ‘배예진’이라고 슬립 작가님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런 드라마가 있는지도 몰랐네.”
“네, 엄청 안 됐거든여.”
그 말대로 시청률을 보니 케이블 채널이란 걸 감안해도 엄청 낮았다.
“이게 처음에는 엄청 평가가 좋았거든여. 되게 유명한 선배님들도 출연하기도 했고.”
“그런데 왜 잘 안 됐어…?”
“6회인가 7회부터 엄청 산으로 갔어여. 갑자기 러브라인 나오고, 대사도 유치해지고.”
어찌 된 일인가 하니 <옴>의 감독이 작가가 쓰는 극본을 멋대로 수정하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툼이 일었는데 제작사와 채널이 감독의 손을 들어주면서 작가님이 교체당했다나.
“그게 가능해…?”
“은근히 드라마판에서 있는 일이래여. 감독님들이 약간 글 쓸 줄 안다, 이러면 간섭 진짜 심하다고.”
“슬립 정도로 성공을 해도 그런 대우를 하는구나…….”
“우리가 다 아는 그런 스타 작가님들 아니면 다 그런가 봐여. 보통은 업계 인맥이 많은 감독이 이기는 구조라고 들었어여.”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8회차에서 감독 입맛에 맞는 새로운 작가로 교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좀 지치셨던 거 같아여. 차기작을 쓰려고 해도 장르물인데, 시청률은 떨어진 상태에서 하차했고.”
“하긴 이 동네는 한 번 삐끗해도 아웃이니까…….”
인맥이 많은 감독이 여기저기 험담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차기작을 하는 데도 지장이 있었다나.
일이 이래저래 많이 꼬인 상황이었는데.
“조 이사님이 찾아가서 계약하신 걸로 알고 있어여. 이번에 제작사 하나 인수하셨잖아여.”
그런 연유로 웹드라마 <신이>가 탄생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물밑 사정들을 흥미롭게 듣는 한편, 지호가 핸드폰을 보더니 웃었다.
“엇, 작가님한테 전화 왔다!”
“가서 받고 와.”
“넹. 작가님~ 네~ 흐하하핫!”
<슬립>의 작가님과 통화를 하면서 우리 대박 난 거 같아여~ 하는 막내의 모습에 다들 미소를 지었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잘돼서 좋네요.”
“그러게. 슬립 작가님도 잘된 것 같고. 대표님도…….”
아마 지금쯤 대표실에서 쑥쑥 올라가는 웹드라마의 조회수를 보며 크하핫 웃지 않으실까 싶다.
회사가 새롭게 진출하려는 사업에서 첫 성공을 거둔 거니까.
물론 아직 첫날이라 설레발을 치기는 이르지만, 인터넷상에서 보이는 흐름이 좋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좋은 부분은…….
“푸흐흐흐.”
막내의 연기력에 쏟아지는 관심이었다.
인터넷에 벌써부터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거 캡처할까요? 누가 블로그에 지호 허 의경이랑 연기 비교한 리뷰 올려놨어요.”
“캡처하자.”
중현이와 비주가 흐뭇한 얼굴로 리뷰를 캡처하고.
리혁이도 새초롬한 얼굴로 미튜브에서 지호 잘한다는 댓글에 좋아요를 하나씩 누르고 있었다.
웹드라마가 잘됐다는 것에 저마다 좋아하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막내가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연기는 나중에 해도 되는 거니까요~
본인이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연기인데. 그 동안 그룹 활동을 하겠다고 연기 활동을 하지 않은 막내였다.
예전에 배우팀 조 실장의 제안을 뿌리치기도 했고.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미뤄두고 있는 막내라 항상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있었던 터였다.
허 의경으로 <슬립>에서 주목을 받았을 때도 이후에 들어오는 대본을 다 거절했으니까.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찾아온 기회를 저버리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랬기에 이번에 주인공으로 재능을 가감 없이 보여 준 막내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더 잘됐으면 싶고.
“으헤헤헤! 제가 뭘여~ 작가님이 다 쓰신 거져~ 아, 형들이여? 형들은 이런 카메오 안 나와도 돼여~! 저만 쓰세여!”
너무 잘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 *
그날 밤.
온라인을 뒤덮고 있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신이>라는 낯선 웹드라마였다.
‘신이는 또 뭐야?’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 접하게 된 사람도 있고.
페북의 오늘 뭐 볼까 페이지 등에서 ‘지금 재밌다고 난리난 웹드ㄷㄷ’ 하는 글을 통해 접한 사람도 있고.
-신이 1화 보고 왔다 존잼ㅋㅋㅋ
-지금 여러 커뮤에서 재밌다고 플 타고 있는 뉴블랙 웹드
-신이 이제 봤는데 대존잼
웹서핑을 하려고 켰더니 곳곳에서 <신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광경에 소식을 접한 이들이 있었다.
‘많이 무서운가?’
하도 무섭다고 하니 오히려 호기심이 든다.
그렇게 17분가량의 시청이 끝난 후.
‘대박……!’
웹드라마를 보고 온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게 합류했다.
특히나 드라마 팬들이 모여 있는 곳에선 거의 흥분의 도가니였다.
-신이 왤케 재미있음???ㅠ
-나 지금 검색해보고 놀란 게 신이 작가가 슬립 작가님이던데??
-갠적으로 슬립보다 이게 더 취향인듯
-내가 웹드에 감기다니
-엔딩이 진짜 임팩트 갑.. 내레이션 나오면서 엔딩 딱 나올때 소름이었음;
-감독 누구야? 화면 구도랑 색감 존좋
그와 함께 보정이 들어간 지호의 짤들이 벌써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시간이 멈춘 남자]라는 자막이 깔리는 움짤.
턱을 괸 채, 아주 오랜 고목을 닮은 눈동자가 정면을 응시하는 그 장면은 자꾸만 반복해서 보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대사 약간 잘못하면 중2병 감성인데 지호가 진짜 잘살린듯
-목소리 톤 변화 진짜 대박같음.. 처음에는 그냥 고등학생 톤이다가 중반부에 확 변하는 거 다시 봐도 신기해
-ㄹㅇ 신적인 존재 같았음
-예전 슬립에 그 허 순경이랑은 또 완전 달라서 신기ㅋㅋㅋㅋ
-지호 왤케 대사 잘 살리냐ㅠㅠㅠㅠ
-근데 지호 배역 이름 아는 사람..?? 나 왜 이름을 모르는 건데ㅠ
누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지호의 연기력이었다.
비밀 조직에서 괴이한 현상을 조사하는, 아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라고 암시하는 캐릭터.
‘뒷내용 진짜 궁금하다.’
왜 고등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과연 정체가 무엇인지, 사용하던 마법 같은 것은 무엇인지.
주인공에 대한 온갖 떡밥이 난무했다.
그런 가운데 아이돌 커뮤니티에는 지호의 연기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뉴블랙 두 연기멤에 대한 주관적 리뷰]
블로그에 어떤 분이 쓰신 건데 차이점이 보여서 가져옴
(누가 더 낫다 그런 거 절대 아님)
마법학교 때와 외계인 가족, 슬립, 그리고 신이 등에 나온 움짤 등으로 두 멤버의 연기를 비교하는 리뷰였다.
- 고작 1화 가지고 논하기는 이른 감이 좀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최근의 뉴블랙 멤버들의 연기 행보를 보면 흥미로운 지점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 우주는 생활연기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배역에 자신을 맞추는 게 아니라 배역을 자신에게 맞추는. 김우주를 보면 알 수 있죠. 반면에 지호는 그 반대선상에 있습니다. <신이>에서 보여 준 손짓이 아주 독특하죠.
뉴블랙의 지호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를 보여 주는 지호.
자기 자신이 배역이 되는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디테일을 짚어주는 리뷰였다.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한 그룹에 연기에 재능이 뛰어난 멤버가 둘이나 있다며 마무리되는 리뷰.
수플레들도 공감했다.
-무슨 말하는지 알 것 같음ㅋㅋㅋ
-결론 : 우리 애들 천재만재다
-이런 식으로 짚어주는 거 진짜 좋다ㅠㅠ 확실히 차이점이 있는듯
-어그로들 다 꺼져
누가 더 잘하는 것 같냐며 살살 긁으며 분란의 조짐을 만드는 어그로들을 처단하는 수플레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걸 기존 웹드라마랑 비교하는 게 맞냐, 불공정한 경쟁이다’ 하는 안티들의 글들이 쭉 올라왔지만 그리 큰 타격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신이’.. 공개 1일만 100만뷰 돌파
-[OH칼럼] <신이>, 웹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 주다
-실시간 검색어 오른 ‘신이’.. ‘뉴블랙 지호 주연 웹드라마’
거의 단편 영화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 준 <신이>에 대해 일반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지호 연기 진짜 잘하네요ㅋㅋㅋ 보는 동안 뉴블랙 생각이 안 남
-간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생겨서 너무 좋네요ㅎㅎㅎ 호러 매니아로서 이런 류 스토리가 행복합니다
-한국 드라마 중에 이런 게 나올 줄은 몰랐음
-방송국들 뭐하냐 당장 데려가라
-1화 봤는데 보자마자 시즌제로 나왓으면 좋겠다고 생각함ㅋㅋㅋ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는 반응을 보며 수플레들이 흐뭇해하고 있을 때.
이런 반응들을 보며 그들만큼 흐뭇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 *
레몬 엔터 대표실.
환한 조명 아래로 반짝이는 이마를 지닌 중년 남자가 웃었다.
“어때요?”
“와…….”
<신이>의 배예진 작가가 태블릿 PC를 살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웹드라마가 이 정도로 반응이 잘 나오는 거였나요?”
“일반적이지 않죠.”
멀찍이 탁자에서 홍차를 만들고 있던 조규환 이사가 웃으며 답했다.
“저도 업계 들어와서 처음 보네요. 이렇게 1화부터 반응이 나오는 건.”
“너무 놀랐어요. 전혀 상상도 못해서.”
본래 ‘신이’는 슬립 이후로 계획한 차기작이었지만 방송국에서 편성을 얻지 못한 드라마였다.
-이런 건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어요.
방송국 CP들은 대개 그런 말을 하며 기존에 성공을 거둔 슬립의 아류작을 원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도 웹드라마로 만든다는 데 동의한 터였다.
유일하게 투자 의사를 밝힌 레몬 엔터의 스튜디오 LM이 웹드라마로 진출하기를 원했으니까.
‘뭐, 어느 정도 화제성은 있겠지…….’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있었던 각본이었는데.
보기 좋게 터졌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1회부터 반응이 오는 웹드라마의 흥행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웹드라마에 안 어울리는 빵빵한 제작비, 뛰어난 감독, 그녀의 각본 등이 아니라 제3의 요소 때문이었다.
박규호 대표가 흐뭇하게 웃었다.
“저희 아이, 인기가 많죠?”
“네, 진짜 대단하네요…….”
진심에서 나오는 감탄이었다.
‘이게 되네?’
지호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1회부터 대박이 난 드라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플랫폼 수준이네요. 뉴블랙 TV가.”
“그렇죠.”
조 이사가 답했다.
“외국 구독자들까지 합치면 거의 구독자가 천만은 될 테니까. 미튜브 안에 있지만 사실상 거대한 컨텐츠의 플랫폼이라고 할까요.”
별도의 홍보 없이 오로지 뉴블랙 TV에 티저나 예고 영상 정도만 올렸는데, 그것만으로도 이 정도가 됐다.
조 이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사업을 하는 겁니다. 매니지먼트 사업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거든요.”
티벳여우 같은 얼굴이 웃음기를 머금었다.
“배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저희가 매니지먼트 사업을 계속해도 뉴블랙 같은 친구들을 만들어낼 확률은 0에 수렴합니다. 그야말로 극히 드문 친구들이라…….”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게다가 여전히 잠재력도 무궁무진해서… 몇 년 후에는 또 어디 있을지 정말 모르겠네요.”
근처에 앉아 있는 본부장이 체감으로는 10년이 지난 것 같다는 농담을 하면서 다들 공감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게 홍차를 내민 미남이 맞은편에 앉아 깍지를 꼈다.
“관건은 이겁니다. 품에 지니고 있는 보석은 나날이 가치를 더해 가는데… 그 보석을 끼울 목걸이도 그에 걸맞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미래의 이 친구들을 품기 위해선 우리도 더 성장해야 합니다. 누구보다 잘 서포트할 수 있는 회사로서, 5년 후에도 이 친구들이 우리를 택하도록.”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계속해서 커져 가고 있는 뉴블랙과 격이 맞도록 회사 또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뉴블랙이 만드는 황금을 그냥 놀려두지 않도록.
“그 시작은 미디어 사업이고요. 아까 말했다시피 우리에게 아주 좋은 플랫폼이 있으니 그것부터 활용해야죠.”
그녀는 상대가 그리는 미래 계획을 들었다.
어지간한 케이블 TV 채널의 영향력에도 비견될 수 있는 뉴블랙 TV에서부터 뻗어나가는 계획이었다.
그 첫 단추가 이번 웹드라마였고, 이후 예능과 드라마 등의 여러 방송 컨텐츠를 다루는.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획대로 된다면 몇 년 후의 레몬 엔터는 단순한 기획사가 아니게 될 것이다.
객관적인 예상 수치와 부드러운 화술이 더해져 홀린 듯이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제대로 일하는구나. 이 사람들…….’
뉴블랙이란 그룹이 더 올라갈 수 있도록 시너지를 내려고 기획하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야말로 윈윈의 정석.
맞은편에 앉은 조규환 이사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물었다.
“어떠십니까, 저희와 함께 일해 볼 생각은?”
“…….”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천천히 생각해 보셔도 좋습니다.”
상대는 그녀에게 제안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앞으로 더 뻗어나가려는 회사의 초창기에 합류하지 않겠느냐는 제안.
바꿔 말하자면 독점으로 묶이는 계약이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던가.’
업계에서 점쟁이처럼 용하다는 소문이 도는 레몬 엔터의 제작 이사를 보며 고민할 때.
눈앞으로 그녀와 갈등을 빚었던 그 감독의 얼굴이 지나갔다.
“…….”
고민은 길지 않았다.
“…좋아요.”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슬립>의 작가에게 그들이 웃으며 새로운 계약서를 내밀고 있을 때였다.
박규호 대표가 하하 웃었다.
“아이고, 좋은 날이네요. 하하.”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 대표가 넉살 좋게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할 때.
지이잉.
근처에 앉아 있던 본부장이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다급한 얼굴로 박규호 대표에게 귓속말을 했다.
“어, 어… 그래. 벌써?”
“예, 대표님.”
“하하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만.”
박규호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종종걸음으로 거울 앞으로 갔다.
물티슈로 열심히 머리를 닦은 박규호 대표가 구강 스프레이를 꺼내 입가에 칙칙했다.
그러곤 옆머리를 경건하게 정돈했다.
셔츠 단추까지 채우는 대표는 마치 데이트를 앞둔 청년처럼 설레 보였다.
“어디… 중요한 손님이라도 오시나 봐요?”
“예. 하하하.”
박규호 대표가 웃었다.
“우리 블랙이들이 앨범 작업하러 왔다고 하네요. 핫핫!”
“…….”
“실례지만 얼른 좀 다녀오겠습니다. 가서 불도 좀 켜 주고, 음료도 한 잔 챙겨 주고 그래야 돼서.”
“아, 네…….”
서글서글하게 웃던 박규호 대표가 마치 VIP를 맞이하는 사람처럼 다다다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뭐여.’
그러곤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여유롭게 웃는 조 이사에게 물었다.
“……대표님이신 거죠?”
“예.”
그와 본부장이 먼 산을 바라보는 동안 <슬립>의 작가는 눈을 깜빡거렸다.
꺄르륵.
어딘가 환청처럼 들리는 웃음소리에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회사의 실세는 뉴블랙이구나…!’
분명히 박규호 대표가 오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째 진정한 회사의 주인은 따로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