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487화
2층 작업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프로듀싱팀 직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왔어?”
“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 우리도 지금 준비하려던 참이었어.”
나상윤 PD와 그 옆에 앉은 형섭이에게 가져온 커피를 돌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동생들도 바퀴 의자를 하나씩 가지고 두 발로 윙윙 밀며 다가왔다.
“어디 보자…….”
녹음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를 포함해, 내가 최종 작업했던 결과물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었다.
오늘 스케줄은 앨범 수록곡 녹음.
타이틀곡인 Empire는 이미 녹음까지 마쳐서 한아윤 안무가님에게 안무 요청을 했고, 남은 것은 수록곡뿐이었다.
“근데 이번에 수록곡이 진짜 많긴 하네여.”
“엄청 많지.”
나상윤 PD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다 너네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
“하핫.”
우리가 머쓱하게 웃었다.
이번 정규 1집 은 지금까지의 다섯 앨범을 집대성하는 의미로 내는 앨범이다.
타이틀곡을 포함해 총 18곡.
중현이가 작사, 작곡한 Intro와 Outro를 빼도 수록곡이 15곡이나 되는 셈이었다.
프로듀싱팀을 포함해 우리가 작곡한 노래도 실렸는데, 비주와 리혁이, 막내의 곡도 하나씩 실렸다.
물론 남은 12곡 중에서 7곡은 내가 쓴 곡이었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
나상윤 피디가 내 노트북의 작업 목록을 보면서 말했다.
“……넌 이걸 언제 다 작곡한 거야?”
“틈틈이 시간 남을 때 만든 거예요. 최근에 만든 게 아니라 옛날에 만들었는데 묵혀 둔 것도 있고.”
[형이 미안해ㅠㅠ] 하는 폴더에 묵혔던 곡을 꺼내 새롭게 단장하기도 하고.
지금도 앨범 컨셉에 맞지 않아서 묵히고 있는 곡이 안에 수십 개 정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바탕 화면에서 뭔가를 발견한 나상윤 피디가 물었다.
“도깨비? 이건 뭐야?”
“요거는 올해나 내년도에 스페셜 앨범으로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어서 쓴 곡들이에요.”
“스페셜이면 겨울잠처럼?”
“네.”
기존 앨범에는 맞지 않지만, 해 보고 싶은 음악들을 도전하는 우리의 스페셜 앨범.
“이번에 헤일리 블루랑 할로윈 곡 작업을 했잖아요.”
“그랬지. 블루문이었나?”
“네, 그거 작업하다가 떠오른 건데… 한국풍의 그런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늑대인간, 뱀파이어같이 전설이나 민담 속의 기이한 존재들을 주제로 삼는 앨범을 생각했다.
타이틀로는 ‘도깨비’로 하고.
뭐. 진지하게는 아니고 심심풀이로 준비 중인 기획이긴 했다.
“하드가 완전 보물단지네.”
나 피디님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우주, 너 이거 조심해야겠다. 누가 훔쳐 가면 진짜 큰일 나겠네.”
“백업도 다 해 놨어요.”
“백업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이런 것도 훔쳐 가서 자기네 곡이라고 주장할 사람이 이 바닥엔 넘쳐흐르니까.”
걱정하는 작곡가에게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방법이 다 있거든요.”
“응……?”
“그 부분은 저희 보안 책임자가 해결을 했기 때문에.”
“너희 보안 책임자도 생겼어?”
내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여기 있어요. 루쿠야.”
“이름 좀 이상하게 부르지 말라니까.”
리혁이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나서는 모습에 나상윤 피디와 형섭이의 눈이 짜게 식었다.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준비하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리혁이 형이 예민충이잖아여. 막 눈만 떨려도 어어어! 나 마그네슘 부족한가 봐! 그러면서 영양제 검색하고.”
“자기 심장이 잘 안 뛰는 것 같다면서 저희한테 만져 보라고 한 적도 있어요.”
“기침만 해도 인플루엔자 그런 거 검색하는 애잖아요.”
핸드폰에 집중한 리혁이의 눈가가 꿈틀하는 동안.
프로듀싱 팀의 두 직원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네. 나 기침 한번 했다고 마스크 두 겹 쓰고…….”
“저번에 저 감기 걸렸을 때, 리혁 씨가 저한테 카드랑 영양제 세트 보내 줬던 거 기억나네요. 그냥 약한 감기였는데.”
손편지까지 줬다고 훈훈하게 웃는 프로듀싱 팀 막내의 모습에 나상윤 피디와 우리가 시선을 돌렸다.
‘놀리는 중인데 이 분위기를 훈훈함으로 망쳐…?’
‘형섭아. 프로듀싱이 하고 싶어?’
형섭이가 눈을 피하는 동안 리혁이가 콧노래를 음흠흠 하면서 훗 웃었다.
“들었죠? 나의 선행.”
“그래서 보안을 어떻게 했다는 거야?”
틈을 주지 않는 나상윤 피디님의 모습에 우리가 그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리혁이가 흥 하며 핸드폰을 조작했다.
“노트북을 도난당했을 시에 이렇게 하도록 만들어 놨어요.”
“……?”
“화면 봐 보세요.”
두 직원이 노트북 화면을 바라볼 때였다.
[에에에에에엥-!]
[에에에에엥-!]
민방위 사이렌 같은 우렁찬 경고음 소리에 직원들이 화들짝 놀랄 때.
스피커에서 지호의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아아아-!]
[이 사람 노트북 도둑이다아아아아-!]
[노트북 훔쳐 간다아아!]
그 순간, 두 직원이 빵 터지면서 웃다가 의자에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흐핡! 흐하하하!”
“어푸, 어흐흣!”
기침까지 하면서 얼굴이 벌게지는 이들이 우리에게 끄허허 손을 저으면서 꺼이꺼이 흐느낄 때.
“지호가 시작이에요.”
경보음 속에서 이번에는 리혁이의 내레이션이 계속됐다.
[당신은 형법 제329조에 해당하는 절도죄를 저질렀습니다. 지금 당장 무단 점유한 노트북을…….]
죄목을 친절하게 읊어 주는 내레이션에 이어 중현이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행복하세요.]
[건강하시고, 돈도 많이 버시고.]
앞날에 축복을 걸어 주는 중현이의 모습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두 직원이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비주의 천사 같은 목소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날 때부터 악한 사람은 어디 있겠어요? 가까운 경찰서에 저를 맡겨 주세요.]
굿캅 배드캅처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목소리에 두 직원이 웃을 때.
다음에는 내 파트가 흘러나왔다.
여기저기서 말을 거는 목소리들에 혼비백산한 노트북 도둑이 들고 있는 가방을 노린 한 수였다.
[사랑해요! 김덕순!]
[영원하자! 김덕순!]
이 정도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쪽팔려서라도 내려놓고 도망치지 않을까.
그런 우리의 보안 장치를 본 두 직원이 눈물을 닦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진짜, 엄청 웃었네.”
“훔쳐 간 사람이 왠지 짠해 보이는 건 처음이네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건 눈속임이고요. 이러는 동안 자동으로 파일이 삭제되도록 장치를 해 놨어요.”
“…….”
“리혁이가 의뢰를 해서 이렇게 만들었거든요.”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지호가 말했다.
“이 정도는 해야 돼여. 이 노트북이 우리 우주교의 성물 같은 거니까.”
“성물이지.”
중현이까지 흐뭇하게 웃는 모습에 둘이 웃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형섭이가 경보음을 들으며 감탄했다.
“근데 음질 진짜 좋다.”
“아, 여기서 녹음했거든.”
녹음 부스를 가리키는 모습에 상대가 아하 하며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에 그제야 나도 본론이 떠올랐다.
“아차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우리 녹음합시다! 녹음!”
“네에!”
곧바로 수록곡 녹음에 들어갔다.
리혁이가 부스에 들어가서 수록곡 ‘Fallen’의 파트를 부르기 위해 몸을 풀고 있는 동안, 나도 가사지에 시선을 집중했다.
-준비됐어요.
“갈게.”
부스 안에서 헤드폰을 낀 리혁이가 눈을 감고,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키가 높고 음이 좀 빽빽해서 숨이 가쁠 파트인데도, 양서류마냥 피부로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부르는 우리 메인 보컬이었다.
“리혁 씨.”
-네.
“너무 잘했습니다. 같은 멤버로서 늘 자랑스럽네요.”
-…됐고 피드백이나 해요.
내 입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리혁이에게 몇 가지를 말했다.
“파트 초반부에 조금 톤이 높게 갔으면 좋겠어요. Fallen은 떨어져야 하는 노래인데 지금 좀 낮네.”
-기억했어요. 그리고요?
“하이라이트도 조금 더 강하게….”
-이렇게요?
곧바로 피드백을 받아들여서 수정하는 리혁이의 노래에 나상윤 피디님과 시선을 교환했다.
바로 좋아졌다.
“그리고 조금만 더 여유롭게 가 볼까요?”
-박자가 빠르다는 거죠? 그것도 바로 수정할게요.
길게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척척 알아들어서 수정하는 리혁이었다.
데뷔 앨범 때만 해도 ‘음… 그러니까 그게 어…’ 하고 내가 어렵게 설명하고, 멤버들도 ‘뭔데여?’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나도 동생들도 경험이 붙어서 그런지 진행 속도가 빨랐다.
“생각보다 빨리 끝날 거 같네.”
“그러네요.”
예정보다 빠르게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흐뭇하게 웃을 때였다.
“음……?”
작업실 어딘가에서 반짝임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작업실 문에 난 창에 손을 망원경 모양으로 한 채 웃고 있는 박규호 대표님이 있었다.
“엇, 대표님!”
문을 열고 맞이하니 양손에 보따리를 주렁주렁 든 대표님이 하하 웃었다.
우리가 허둥지둥 짐을 받았다.
“그냥 들어오시지.”
“녹음을 열심히 하는데 들어오기가 좀 그렇더라고. 나 때문에 방해가 되면 쓰나.”
“간식 사 오신 거예요?”
“응, 살 안 찌는 걸로 가져왔다.”
호주에서 특별주문한 저칼로리 간식들이라며 들고 오셨는데, 우리의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우와아아아아! 대표님!”
“내가 줬다고 그러지는 말고, 몰래 숨겨 두고 조금씩 먹거라. 이 정도는 적당히 먹으면…….”
중현이가 단숨에 프로틴바 두 개를 까서 입안에 쏙 넣었다.
대표님이 말을 바꾸셨다.
“하루 1개씩만 먹거라.”
“네!”
“우리 회사 식구들이 다이어트만 하면 가슴이 아파서… 칼렛이들도, 그 고기 좋아하는 애들이 굶고.”
에고, 살이 뭐라고 하는 대표님의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어색하게 서 있는 두 직원에게 편하게 있으라고 한 대표님이 웃으며 물었다.
“힘든 건 없고?”
“네!”
이제부터 힘들 시기긴 했다.
못 먹고 안무 연습하는.
특히나 이번 정규 앨범 같은 경우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다음 앨범으로 가요계에서 우리 포지션을 더 확고하게 다지게 될 테니까.
히트곡도 많이 내고, 활동도 많이 해서 ‘국민 아이돌’이란 이미지를 얻긴 했지만 이게 또 최고의 아이돌과는 미묘하게 뉘앙스가 달라서.
현재 TNT가 가지고 있는 그 이미지를 우리가 가져오고 싶었다.
사적으로는 친근한 이웃으로 지내고는 있지만, 현재 틴스피릿과 그 이미지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의 테마처럼 우리가 왕관을 쓰고 싶다.
막연하게 ‘뉴블랙이 아이돌 중에서도 제일 잘나간다더라’가 아니라 최고의 아이돌 하면 바로 우리가 떠오르도록.
“앨범 준비하면서 필요한 건 없고? 조 이사에게 들었는데, 몇 가지 진행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네, 저희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좀 있어요.”
대표님과 얼굴을 마주한 김에 몇 가지 기획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데뷔 앨범 때부터 쭉 이어 온 세계관에 대한 몇 가지 영상을 비롯해, 직원들과 회의를 거쳐 논의한 것들.
이야기를 차분히 듣던 박규호 대표님이 허허 웃었다.
“좋은 생각이네. 하고 싶은 거 다 해.”
“정말요?”
“그럼! 돈이 들어야 뭐 얼마나 들…….”
그때 서랍에서 쌀집 계산기를 꺼내 두드린 리혁이가 추정 예산을 보여 주었다.
“…….”
대표님의 눈빛이 흐려졌다.
“대표님?”
“어…? 어…….”
“괜찮으신가요?”
“어~ 어허허허! 괜찮지! 허허헛!”
안 괜찮으신 것 같은데….
내가 예전에 새로운 장비를 말했을 때 지었던 표정과 비슷한 느낌.
눈치를 슥 살피는 우리에게 대표님이 웃으며 말했다.
“돈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다 진행해.”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녹음 잘하고.”
허허 웃으며 떠나는 대표님에게 꾸벅 인사하자, 대표님도 우리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작업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동안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중현아.”
“네, 형.”
“대표님이 뭐라고 하신 거야? 방금?”
“유산슬이랑 양장피는 빼야겠다고 하시는데요.”
“…….”
터덜터덜 슬프게 걸어가는 대표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다 같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돈 많이 벌어 올게여!’
우리의 말에 화답하듯 천장 조명이 아련하게 반짝였다.
* * *
다음 날이 됐을 때.
지호가 출연한 <신이(神異)>는 200만 뷰를 넘어가고 있었다.
“흐어어…….”
국내에서도 핫한 반응이 나오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해외의 구독자들이 엄청나게 유입이 된 듯하다고 할까.
영상이 올라온 게 별도의 제작사 계정인데도 그랬다.
-Indonesia sub plz
-지호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 자막을 봐야 한다니. 이건 너무 애석한 일이야.
-지호를 보기 위해 왔는데 이 드라마와 사랑에 빠짐
-이건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던지 해야돼.
-인도인으로서 개인적으로 뉴블랙이 발리우드에 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음. 정말 잘 어울릴 거야. 우주가 외발자전거를 타고 총을 쏘고 중현이가 그 총알을 잡아내며 춤을 추는 거지. 제목은 다섯 얼간이들 이런 식으로.
-17:31 내 남친의 얼굴
┕17:59 영상 끝날 때의 이 어둠이 너의 미래가 아닐까
엑스 파일 같은 드라마를 비롯해서 외국에는 이런 류의 스토리가 많다고 들었는데.
역시 잘 만든 드라마는 어디에나 통하는 모양이다.
석환 형 말로는 국내 OTT 플랫폼을 비롯해서 여기저기서 계약과 관한 문의가 들어온다나.
한편, 이 웹 드라마는 대중들과 우리의 팬들에게만 화제가 아닌 듯했다.
“이야. 그거 진짜 재미있더라.”
<우리 가족은 외계인>을 찍으러 간 스튜디오에서도 황정구 감독님이 감탄했다며 말했다.
“지호도 연기를 너무 잘하고.”
“그죠? 연기 잘하죠?”
“어, 보면서 깜짝 놀랐어. 웹 드라마로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해서. 내가 무서운 걸 못 보는데도 재미있더라. 보면서 찍어 보고 싶은 장면들도 떠오르고.”
마치 가요계에 색다른 노래가 등장했을 때 나와 프로듀싱팀이 흥분하는 것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리 배 작가님 작품이네. 잘돼서 좋다.”
<슬립>의 주인공 중 하나를 맡았던 서노을 선배가 웹 드라마의 성공을 보며 좋아하는 가운데.
배우들도 큰 호기심을 보였다.
“요즘에는 웹 드라마로 이런 것도 나오나 보네?”
“주선이네 막냇동생이 연기를 잘하는구만. 아주 야무지게 연기를 하네.”
“이거 진짜 재미있겠다. 작품 찍는 동안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 캐릭터도 색다르고.”
지호 연기 잘한다는 칭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죠. 잘하죠.
연기 잘하는 신인 배우에 대한 업계인들의 관심에 내가 키워 낸 아들처럼 뿌듯했다.
물론 실제로 키워 낸 부모님도 기뻐하는 중이었다.
-아들~!
“왜?”
-우리 아들이 너무 기특해서 전화했지.
“흥. 이제 와서?”
21세기 최고의 배우! 하며 껄껄 웃는 아버님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이제 우리 호호치킨이랑…….
“아빠.”
-응?
“우리랑 광고 찍고 싶으면, 치킨 업계 1등부터 하고 와.”
-아빠가 많이 노력할게….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고 계시는 아버님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끼리 있을 때만 으스대고 그러지,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도 막내는 담담해 보였다.
“지호야! 여기 이거 봐. 그, TJ에서 날 가르쳐 줬던 연기 쌤이 쓴 칼럼인데 너를 주목한다고….”
“그래여? 잘됐네여~”
“안 기뻐?”
“그게 형이 노래 만들 때랑 비슷해여…….”
지호가 <신이>의 1화에서 자기가 나온 장면을 모니터링하며 말했다.
“보고 있으면 저기서 더 잘할 수 있는 게 보이고, 저 장면은 저렇게 연기하는 게 아니었는데, 막 그러고.”
“알지.”
“넹, 그런 기분이네여. 더 잘해야 되는데.”
내가 노래를 만들 때와 비슷한 증상인 듯했다.
어쨌거나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 말답게, 칭찬이 쏟아지면서 대본 공부에 더 열을 올리는 막내였다.
그런고로….
“우리가 대신 즐기도록 하자.”
“예이!”
막내를 칭찬하는 반응을 우리가 즐겼다.
그렇게 웹 드라마가 올라온 계정의 구독자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한편.
우리는 금요일 밤에 첫 방송을 하는 를 보기 위해 회사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였다.
“안 봐도 되는데…….”
TV 화면을 세팅하는 우리에게 비주가 민망한 미소를 지었다.
“형, 이거 진짜 안 봐도 돼요. 오늘 경연도 안 나오고.”
“안 나와?”
“네, 다음 주에 나와요. 이게 준비, 경연, 준비, 경연 이런 식이라서….”
고등학생들이 뮤지컬을 하는 미드처럼 준비 과정을 재미있게 보여 주고, 그다음에 무대를 보여 주는 모양이다.
“시간 낭비가 아닐까 싶어서요. 특별한 것도 없는데 그냥 연습….”
“봐야지!”
“형! 연습이 중요해여? 형이 더 중요하져~!”
“엇…….”
입에 손을 올리고 왈칵하는 비주의 모습에 우리가 후들거리는 팔다리를 숨겼다.
“…….”
절대 연습이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뭘 했을 때, 다 같이 우아아 하면서 팀 분위기도 더 돈독해지고 그러는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작해여!”
TBC란 채널명 아래로 의 1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대충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최고의 K팝 어쩌구 하면서 화려한 무대들이 쭉쭉 이어지는 장면이 나오고.
그 최고의 기량을 가진 댄서들! 하면서 경연 장면과 함께, 우아아 하며 놀라는 방청객 표정도 넣어 주고.
예고편의 정석 같은 장면들이 나오는 모습을 지루하게 볼 때였다.
[…기존의 서바이벌은 잊어 주시길]
음?
그리고 그 순간, 긴박감 넘치는 경연 분위기에서 비주가 총총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애니메이션의 빨간 망토 소녀처럼 발랄하게 걸어오는 비주의 모습에 우리가 웃었다.
이어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뽐내던 댄서들의 순박하고 병맛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웃긴 예고편을 보며 우리도 키득거리고 있을 때.
[사사사삭-]
[으아아아악!]
테이블이 출렁이고 바퀴벌레처럼 움직이면서 댄서들이 식겁하는 장면이 1초 만에 훅 지나갔다.
모니터링용으로 켜둔 실시간 채팅창에 미친 듯이 ???와 ㅋㅋㅋ가 올라오고 있을 때.
“…….”
창피한 장면에 우리는 단체로 눈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