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08)화 (50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08화

뮤직 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니 난리통이 벌어져 있었다.

“워우.”

레몬 엔터 앞에 연예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모르는 외국인들도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 파파라치가 아닐까 싶다. 거기에 헤일리 블루의 한국 팬들과 늘 있는 사생들까지 겹쳐서….

“사람 진짜 많네요.”

중현이가 흐음 하며 말했다.

“우리 내릴 수는 있을까요? 리혁이는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리혁이가 부들부들하고 있을 때, 다 같이 썬팅된 창문 밖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중현이가 살짝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조심스럽게 뚫어 볼까요, 형?”

“중현아.”

“네.”

“그러다가 우리 사회면에 올라가.”

“제가 그 정도는 아니에요.”

중현이가 흥 하고 다른 동생들이 키득거리고 있을 때.

조수석에서 바깥 풍경을 관망하던 민기 형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뚫을게.”

“오오!”

“내가 괜히 팀장이냐.”

민기 형이 훗 하며 웃고는 야구모자를 쓰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회사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트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지금……!”

웅성웅성 하던 기자들이 우르르르 몰려들면서 민기 형이 살수대첩의 수나라 군처럼 인파에 휩쓸려 갔다.

“우와, 떠내려간다아…….”

멍하니 멀어지는 민기 형을 바라보고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 회사 앞에 이렇게 난리가 난 이유는 바로 미국의 톱스타 때문이었다.

-헤일리 블루, 한국 방문하자마자 레몬 엔터 직행? ‘뉴블랙과 협업 예고’

-뉴블랙과 콜라보 발표한 헤일리 블루는 누구? ‘포브스 선정 가장 수입이 많은 여성 가수’

-[포토] 헤일리 블루 “내 한복 찍어라. 내 핏은 **하게 끝내준다”

한복까지 입고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포토 뉴스까지 떴다.

그 때문에 회사도 비상 상황인 듯했다.

-헤일리 블루가 온다고? 아니, 얘들아. 그걸 지금 얘기해 주면.

-저희도 지금 알았어요.

-오.

다른 사람들은 ‘미국 가수의 전격 방문?’ 하면서 마치 뭔가 계획된 것처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그냥 이분이 좀 자유로운 영혼인 거다.

“근데 형, 이거 어떻게 나가죠?”

차량 근처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헤일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영상 통화 화면에 파란 머리카락의 요정 같은 얼굴이 나타났다.

-Hey~ 왜 이렇게 안 들어와?

「헤일리, 지금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 문제?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차량 바깥을 비춰 주자 헤일리가 오 하면서 웃었다.

-잠깐만 기다려. 내가 도와줄게.

「헤일리.」

-응?

「험한 방법은 안 돼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건 헤일리 블루가 나와서 ‘꺼져라, 이 ***들아!’ 하는 풍경이었다.

우리의 말에 헤일리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는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괜히 걱정돼서 이야기한 거예요.」

-후, 그럼 내가 나가는 건 포기해야겠군.

그러더니 전화 통화를 뚝 끊었다.

얼마 안 가 회사 사옥 정문이 열리더니 키가 190이 넘는 건장한 체구의 경호원 둘이 등장했다.

모세의 기적처럼 쫘악 갈라지는 통로.

“내리자.”

동생들과 함께 차에서 내리자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평소 낯이 익은 연예부 기자들이 질문했다.

“오늘 헤일리 블루와 어떤 작업을 하기로 한 거예요?”

저희도 몰라요.

“헤일리 블루와 약속했던 콜라보 음원이 정말 10월 31일에 나오는 거 맞나요!? 그것 때문이죠?”

대충 맞는 것 같긴 한데.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말없이 회사로 얼른 들어갈 뿐이었다.

“허억, 허어억…….”

숨을 고르고 있는 민기 형도 함께.

우리는 길을 터준 헤일리의 경호원들에게 영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구의 경호원들이었다.

그렇게 중현이를 꼬꼬마처럼 보이게 하는 경호원들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을 때.

삐이이이이-

“…….”

엘리베이터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경호원 둘이 슬픈 얼굴로 내렸다.

지호가 이따 보자고 해맑게 손을 흔들어 주니, 시무룩해하면서도 손을 흔들어 주는 경호원들이었다.

그렇게 최상층까지 올라가 대표실에 들어가니.

“얘, 얘들아! 왔구나!”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우리 대표님과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헤일리 블루가 있었다.

“Hey!”

「오랜만이에요. 헤일리.」

반갑다는 듯 웃는 파란 머리칼의 가수가 우리를 차례대로 포옹해 주었다.

그러는 동안 대표님은 우리에게 마침내 살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영어를 알아야 소통을 하지. 서로 말도 안 통하고 그래서.”

“고생하셨어요, 대표님.”

대표님이 이마의 땀을 훔치시는 동안, 우리가 대표실 소파에 앉으며 헤일리에게 물었다.

「대표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헤일리 블루가 하품을 쩍쩍 하면서 소파 뒤로 목을 젖혔다가 이리저리 팔을 돌렸다.

단아한 검은색 한복.

비녀를 꽂은 물빛 머리카락에 요정 같은 얼굴인데….

「아. 시차 때문에 존나게 졸리네.」

그렇지 못한 행동이 겹치니 실시간으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는 기분이다.

다행히 아랫집 사람들 덕분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우리가 소파에 앉아 하품을 하는 헤일리를 바라보는 동안 대표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뭐 줄까?”

“저희가 마실게요.”

“이런 건 대표가 따르는 거야.”

…그런가?

대표님이 고개를 저으며 레몬이 담긴 물병을 들고 와 우리에게 물잔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헤일리 블루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이 사람은 너희 보스야, 에이전트야?」

「한국은 시스템이 조금 달라요. 레코드사랑 에이전시가 한 회사에 있다고 보면 돼요.」

「수수료는 덜 들겠네.」

우리의 대화에 호기심을 품은 대표님에게 리혁이가 통역해서 설명해 주었다.

대표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끄덕이자 헤일리가 씩 웃으며 나이스 가이 같다고 말해 주었다.

소파에 앉은 대표님이 영어로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허허 웃었다.

“대표님, 통역해 드릴까요?”

“괜찮아. 대충 분위기가 읽히는구나. 그럼 된 거지.”

그러곤 다시 허허허 웃으셨다.

우리가 물을 마시며 지금의 당황스러운 상황을 정리하는 동안 헤일리가 말했다.

「Blue Moon 프로젝트 때문에 직접 왔어.」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뉴블랙 TV 인터뷰를 하면서 즉석으로 할로윈 송 ‘Blue Moon’을 작곡한 이후로 꾸준히 이메일을 주고받긴 했다.

수정, 수정(1), 수정(2). 이런 식으로.

마지막으로 답장했을 때 헤일리가 조만간 한국에 방문해서 곡 작업을 마무리하자고 하긴 했다.

「근데 이렇게 바로 올 줄은 몰랐어요.」

「내가 계획하고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이렇게 와서 너희를 바로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거든.」

그러고는 헤일리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에이전트랑 홍보 담당자들이 난리네.」

「보통은 당연히 난리가 날 상황 아닐까요…?」

리혁이의 말에 다들 공감했다.

LA랑 시차 생각하면 아마 에이전트도 잠에 빠져들 무렵인데, 갑자기 ‘헤일리가 한국 갔다는디요?’ 하며 소식을 전해 받지 않았을까.

홍보 담당자들이 식은땀을 흘릴 모습이 눈에 선했다.

턱을 매만지던 헤일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해 보니 미안하긴 하네. 나중에 페라리 한 대 뽑아 주지 뭐.」

「…….」

에이전트가 주먹을 쥐고 기뻐할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헤일리가 우리에게도 미안할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 온 건 Blue Moon의 녹음 작업 때문이긴 해. 원거리로 진행하는 녹음은 한계가 있으니까.」

「그건 맞아요. 현장감이 아무래도 중요하니까.」

「녹음이야 어느 정도 진행됐고, 몇 가지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을 좀 수정하고 싶어서. 참, 스케줄은 가능해?」

「네, 오늘 괜찮아요.」

잘 됐다며 웃던 헤일리가 말했다.

「그리고 프로모션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 부분도 있고.」

「프로모션이요?」

「너희도 알겠지만 내가 곡을 고르는 선구안이 좀 뛰어난 편이거든.」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을 때 빌보드 등의 음악 잡지들로부터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은 가수가 말했다.

「그런 면에서 Blue Moon이라는 곡에 투자를 좀 해야겠어. 이 곡에는 뭔가가 담겨 있거든. 써니, 너도 알지?」

「좋은 곡이라는 건 동의해요.」

Blue Moon이 좋은 곡이라는 건 인정한다.

다만 이 정도까지 좋은 곡인지는 감이 잘 안 오는 것 같다. 상대가 이 정도까지 확신하니 그런가 보다 하기는 하는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미국 차트에서 반응이 좋을 만한 곡이긴 하네요. 복고풍 멜로디가 들어가기도 했고.」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에게 먹힐 만한 노래긴 했다.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헤일리가 미국의 과거 유행곡들에서 레퍼런스를 삼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고전적인 할로윈 느낌이 들도록 함께 설계한 곡이었다.

80년대나 90년대 미국 영화에서 나오는 할로윈 느낌.

여기에 가야금 같은 전통 현악기 사운드를 인트로에 배치해서 독특한 느낌을 줬다.

「맞아.」

상대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온 거야. 평소 같으면 에이전트나 레코드사에게 맡겼을 텐데, 그랬다가는 일이 어그러질 것 같거든.」

실무적인 협의는 추가로 하되 당사자들끼리 어느 정도 합의를 보자는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 공감했다.

조 이사님이 스무스하게 협상을 하긴 했지만, 정말 저쪽에서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헤일리.」

내가 웃으며 말했다.

「와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우리도 이 자리에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그런 건 아니라서….」

「그래?」

그때 리혁이의 통역을 들은 박규호 대표님이 말했다.

“우주야. 네 마음대로 하거라. 하하하!”

“…….”

나도 모르게 저, 대표님은 가만히 계세요… 하고 말이 나올 뻔했다.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헤일리의 모습에 헛기침을 하고는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 웃으며 손짓했다.

「그럼 프로모션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볼까요?」

*   *   *

헤일리가 말한 프로모션은 크게 두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뮤직 비디오.

「Thriller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아주 shibal 존나게 무서운 괴물을 등장시키는 거지!」

「헤일리, 저 고운 말 좀……. 그리고 shibal은 어디서 배웠어요?」

「한국 팬들이 트위터에서 자주 쓰던데. 감탄사로.」

한국에서 절대 쓰면 안 된다고 말을 하려고 하다가 말을 바꿨다.

‘뉴블랙이 쓰지 말라고 해서 계속 쓰기로 했다. I’m shibal 소인배.’ 하는 멘트가 나갈 것 같아서 돌려 말하니 알아들었다는 답이 왔다.

곧바로 헤일리가 말을 이었다.

「배우도 필요 없지. 너희 뉴블랙 TV 보니까 지호가 연기도 하던데, 크리피한 탁구공 레이디 나오는 거.」

「헤일리도 내가 나오는 거 봤어요?」

「아니, 무서운 거 못 봐서 끄긴 했는데.」

지호가 힝 하는 동안 헤일리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괴물들을 등장시키는 뮤직 비디오를 찍는 거지. CG도 듬뿍 얹고. 춤은 B, 네가 추는 거야.」

「엇, 제가요?」

「난 존나게 못 추니까!」

그러고는 씩 웃었다.

「배우들도 있고, 댄서도 있고, 래퍼도 있고. 종합적인 선물 세트 같은 너희가 있으니 그걸 써먹는 거지.」

「헤일리는 거기서 노래만 할 거예요…?」

「난 돈을 댈 거야.」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돼요. 우리가 다 할게요.」

잔뜩 신이 나서 자기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가수의 설명을 들었다.

아까는 냉철한 사업가 같더니 지금은 마치 장난감을 눈앞에 둔 아이처럼 엄청 흥분한 표정이었다.

파란 눈동자가 ‘재미있을 거 같지? 이거 진짜 재미있을 거 같지?’ 하며 빛나는 듯한 느낌.

「뭐, 그런 얘기야. 라디오 프로모션 같은 따분한 얘기는 레코드사들이 알아서 할 거고.」

대충 이야기를 들어 보니 라디오가 우리나라의 음악 방송 등과 비슷한 그런 위치인 듯했다.

헤일리가 음? 하며 말했다.

「근데 어쩌면 어려울 수도 있고…?」

「왜요.」

「저번에 라디오 DJ들이랑 좀 대판 싸웠거든.」

「때리진 않았죠?」

「응. 욕만 했어.」

「그럼 됐어요.」

헤일리가 웃으며 끄덕끄덕 했다.

그때 지호가 물었다.

「미국에는 그러면 음악 방송 같은 게 없어요?」

「음악 방송…?」

한국에서 어떤 식으로 노래를 홍보하는지 대충 설명해 주니 헤일리가 아 하며 말했다.

「토크쇼가 있긴 하지. 대충 나가서 사회자랑 노가리 까면서, 이번 앨범이 최고라고 거짓말하다가 막판에 노래 한 곡 불러 주고 가는 거야.」

「그렇군요.」

「근데 이것도 어떻게 될지 잘 몰라.」

중현이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싸웠군요.」

「응.」

우리가 하하하 웃고, 대표님도 분위기를 살피다가 하핫 웃었다.

뮤직 비디오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프로모션은 저쪽의 실무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긴 했다.

아마 곡이 어떤 성적을 거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그저 잘 되기를 바라며 웃은 후.

안무가 섭외를 비롯해 Blue Moon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는 손뼉을 쳤다.

「그럼 마무리 작업하러 갈까요?」

*   *   *

나상윤 PD를 비롯해 레몬 엔터의 프로듀서들이 작업실에 입장했다.

‘뭔 일이래.’

갑자기 헤일리 블루가 입국한다더니, 지금은 Blue Moon의 녹음 수정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나상윤 PD가 우주에게 물었다.

“우주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헤일리가 조만간 찾아온다고 어제인가 메시지를 보냈거든요.”

“응.”

“근데 오늘 왔어요.”

“…….”

먼 곳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뉴블랙의 모습에 프로듀서들도 훈훈하게 웃었다.

어찌 된 일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작업실 안에 먼저 들어와 있던 수염투성이의 외국인에게 시선이 갔다.

“오……!”

미국의 유명한 앨범 프로듀서 중 하나였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은 아니지만, 업계인 사이에서는 굉장히 잘나기로 유명한 프로듀서.

두 가수의 프로듀서들이 서리혁의 통역 하에 서로 인사를 나눴다.

「반가워요. 난 에디 그린입니다.」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남자가 끄덕이며 말했다.

「그쪽도 지금 불려왔나 봐요?」

“네.”

「난 새벽에 일어났어요.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니까 헤일리가 비행기 타야 한다고 차에 타라고…….」

“…….”

괴로워하는 미국 프로듀서의 모습에 레몬 엔터의 작곡가들이 뉴블랙을 바라보았다.

‘사랑스럽다.’

‘갑자기 사랑스럽네.’

‘못된 우리집 둘리가 선녀…!’

갑작스러운 따스한 눈빛에 뉴블랙이 꺄르륵 행복하게 웃었다.

헤일리 블루가 묶었던 머리를 풀면서 녹음 부스에 들어가고, 우주가 콘솔 기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에디 그린이 인사했다.

「그쪽이 Blue Moon의 작곡가?」

「아, 네.」

「여기 내 명함이에요. 잘 되면 날 데려가줘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인 터라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녹음 부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던 지호가 말했다.

“헤일리가 뭐라고 하는데여?”

그러자 그 안에서 대화 분위기를 짐작했는지 헤일리 블루가 입모양으로 말하고 있었다.

-****, ***!

역동적인 입모양에 대충 욕이라는 거 알 수 있었다.

익숙하다는 듯 꺄르륵 웃는 뉴블랙의 모습에 에디 그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독특한 친구들이군.’

보통 헤일리 블루의 괴팍한 성격을 접하고 나면 움츠러들거나 그러기 마련인데.

마치 친근한 이웃을 대하듯이 웃고 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토크백 버튼을 쥔 우주의 말을 시작으로 녹음이 시작됐다.

가야금이 음산하게 퉁, 퉁, 튕기다가 서서히 잦아들고, 그 자리를 레트로한 감성의 사운드가 채운다.

빠른 비트의 음악에 작곡가들이 절로 고개를 까딱였다.

‘다시 들어도 좋다.’

몽환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팝송이었다.

에디 그린에게는 80년대의 네온사인 가득한 오락실 같은 분위기, 혹은 야간 놀이동산을 연상시키는 음악이었다.

색상이 있다면 빨간색, 노란색, 보라색.

그리고 아주 선명한 파란색.

겪어 본 적 없는 과거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노래의 감성에 감탄한 미국의 작곡가가 눈을 빛냈다.

‘이 친구랑 같이 곡을 썼다고 했나?’

평소의 헤일리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감성이었다.

그랬기에 어떤 부분에서 상대의 솜씨가 들어갔는지 보였는데 그때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헤일리 블루의 선명한 음색이 물빛으로 빛나고.

뉴블랙의 파트와 자연스럽게 교차해서 넘어가는, 곡 전체에서 세련미까지 느껴진다.

‘최소 못해도 차트 진입은 할 거야.’

헤일리 블루가 일부러 본인의 이름이 아니라 ‘Blue Black’으로 발표하는 별도의 곡이기에 초반 흐름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무명의 가수가 발표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둘 만한 곡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헤일리 블루가 현재의 자리에 오른 건 단순히 음악 때문만은 아니었다.

트렌드를 읽고, 비즈니스적으로 무엇이 도움이 될지 동물적으로 캐치하는 능력.

그런 그녀가 특별하게 공을 들인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헤일리는 어디서 이런 친구를 알아낸 거지?’

이번 작업을 계기로 친분을 쌓아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닫힌 서랍에서 삐죽 튀어나온 종이가 보였다. 음표로 가득해 보이는 터라 강한 호기심이 깃들었다.

조심스럽게 서랍을 슬쩍 당겨 보는데.

[애오오오오오옹-!]

메인 보컬이 녹음한 음성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

사람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마치 ‘너는 포위되었다’ 하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다급하게 서랍을 닫았지만 소용없었다.

[도둑이다아아아! 도둑이야아아아!]

[이 사람이 우리 형 거 훔쳐 간다아아아!]

막내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영화 속에서 라이트를 비추며 추격하는 경찰 헬기와 맞닥뜨린 범죄자의 기분이 이럴까.

모두가 그에게 시선이 옮겨 갔다.

「엇, 아니, 이게……!」

혼비백산한 미국의 작곡가가 손사래를 치고 있을 때, 리혁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서랍 안에 손을 넣었다.

딸깍.

스위치가 꺼지는 소리와 함께 소리가 잦아들었다.

‘뭐였지. 방금……?’

그에 대한 답을 하듯 리혁이 말했다.

「보안장치예요.」

「…….」

「워낙에 중요한 자료들이 많아서.」

보안장치가 왜 서랍에 되어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자동으로 작업실 문까지 잠겨 있었다.

헤일리 블루가 ‘shibal great’ 하며 감탄의 박수를 치고 있을 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디 그린에게 레몬 엔터의 작곡가가 따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곤 투박한 영어로 말했다.

“웰컴 투 더 레몬 엔터테인먼트.”

그 말과 함께 꺄르륵 웃는 뉴블랙 멤버들과 껄껄 웃는 레몬 엔터의 직원들.

그리고.

그들의 중심 속에서 마치 사이비 컬트의 교주처럼 섬김 받고 있는 우주의 얼굴이 보였다.

“…….”

에디 그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이나 하고 가자.’

왠지 모르게 오래 있어선 안 될 곳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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