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1화
다음 날 오전.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들이 습관적으로 음원 어플의 차트 재생을 누를 때였다.
‘음?’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보통 재생을 누르면 불꽃놀이의 청량한 전주, 아니면 Attention의 흥겨운 비트가 흘러나오기 마련이었는데.
처음 듣는 인트로에 화면을 눌렀다.
‘이건 또 무슨 곡이래?’
‘시댁을 터뜨렸습니다 OST Part.4’ 라는 제목과 함께 드라마의 한 장면이 앨범 아트로 되어 있었다.
불타는 저택 앞에 서 있는 주인공.
‘드라마 OST구나.’
최근에 잘나가는 드라마 중 하나로 제목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곡의 제목과 가수가 눈에 들어왔다.
[리혁 - Walk Again]
낯설었던 노래가 리혁이라는 이름이 붙자 금세 친근해졌다.
‘이것도 뉴블랙 노래구나.’
뉴블랙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음원계의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이었다.
곧이어 가사가 흘러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곡이었다.
출근 시간대라서 그런 것일까. 경쾌한 듯하면서도 비장한 음악의 분위기가 잘 어울렸다.
왠지 모르게 듣고 있는 사람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음악. 압수수색을 하러 가는 경찰이나 검사의 등장씬에 나올 법한 노래였다.
‘좋네.’
역시 괜히 차트 1위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반복재생 버튼에 손가락을 올랐다.
그렇게 일반인들이 노래를 접하며 인터넷을 켤 때.
포털 사이트의 연예란 메인에는 어제 핫한 반응이 나왔던 HBS의 드라마 소식으로 가득했다.
-[어제 TV] ‘최고의 5분’.. “진짜 시댁이 터지네”
-HBS ‘시댁을 터뜨렸습니다’, 시청률도 터졌다.. 4화 ‘최고의 엔딩’
-#4화_하이라이트, ‘복수의 시간’
기사를 보던 사람들이 눈을 깜빡였다.
‘시댁이… 진짜로 터졌다고?’
폭탄으로 시댁을 터뜨리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람들의 귓가에 다시 한번 ‘Walk Again’이 각인되는 한편.
드라마 제작사의 직원들은 행복한 비명을 터뜨렸다.
“이거 리혁 씨가 부른 OST도 평이 엄청 좋은데요? 이야, 보통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데, 뉴블랙은 물을 부어 주네.”
“우와… OST가 1위 먹었어요!”
“이거 봤어요? 뉴블랙 TV에서 라이브 영상도 올려 줬어요…!”
제작사의 공식 미튜브 채널에서 올린 영상이 평범한 조회수 추이를 보일 때.
뉴블랙 TV에 올린 리혁의 ‘Walk Again’ 라이브 영상의 조회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와…….”
놀라운 효과를 체험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진짜 많네요.”
“이게 이런 식으로도 홍보가 될 수 있구나.”
한국인들이 으허어어어 하면서 떠밀려 갈 만큼 영어로 된 댓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오늘부터 내 등교곡으로 정함
-개인적으로 리혁이 이런 스펙트럼의 노래까지 소화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서 기쁘다. 진짜 뛰어난 보컬리스트인 걸 몰라서 가끔 아쉬워
-이게 어떤 드라마의 ost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드라마 제목이 남편의 집을 폭발시킴인 거지?
-몰라 일단 내 마음을 폭발시킴
해석이 불가능한 스페인어나 태국어 댓글 등이 올라오는 모습에 드라마 제작사 사람들이 놀랐다.
“이거, 동남아시아 쪽에도 홍보가 엄청 될 것 같은데요?”
“그, 그러네.”
뉴블랙이 굉장한 인기를 떨치고 있다는 동남아시아 쪽의 네티즌들에게 ‘시댁을 터뜨렸습니다’가 홍보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건 우리가 진짜 운이 좋았다. 섭외가 돼서 다행이지.”
“리혁 씨 내년 상반기까지 OST 일정 잡혔다면서요.”
차우현이나 윤찬혁까지는 아니더라도 OST 쪽에서 떠오르고 있는 샛별 같은 존재가 뉴블랙의 메인 보컬이었다.
국민 아이돌이란 유명세와 명곡단에서도 극찬을 받은, 어떤 곡이든 소화 가능한 가창력.
내년 하반기 런칭을 계획하는 드라마의 제작사들이 레몬 엔터와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이 업계인들 사이에서 들릴 정도였다.
그러는 한편.
아이돌 팬들도 OST가 1위를 차지한 것에 놀라고 있었다.
[지금 불꽃놀이 밀어 버리고 차트 1위한 솔로 가수]
어그로 가득한 제목이 글을 누르는 순간.
(현재 순위가 바뀐 차트, 그리고 서리혁이 새초롬한 얼굴로 서 있는 사진.jpg)
짜라짠짠~
그것은 바로 리혁이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그로인 줄 알고 헐레벌떡 들어왔자나
-어제 엔딩에 딱 깔릴때 무릎 탁쳤음 이거지
-드라마 제작진들 ost 잘뽑혀서 아끼고 아꼈다가 지금 푼거 티나더라ㅋㅋㅋ 오슷 대박이긴 했어
-추이 대박이네ㄷㄷ 늅은 음원 내기만 하면 차트 지붕에서 사는 듯
-음원계의 다락방
-리혁이 목소리 미쳤다ㅠㅠㅠㅠㅠㅠ
-진짜 시원시원해ㅋㅋㅋ 빵터질때 속 대박시원함
-어제 드라마볼때도 넘 좋았어 여주 각성하는 장면이라
-얘들아 이거 늅TV에 올라온 라이브도 봐주라 라이브도 넘 조아ㅠㅠ
일각에서 팬덤 스밍으로 실시간 차트에 진입한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수플레들은 기가 찰 따름이었다.
‘우린 머글이 스밍을 한다고!’
물론, 보통 사람들은 ‘노래 듣기’라고 부르는 행위였다.
어쨌거나 수많은 트집 중에서도 노래 실력에 대한 악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팬들이 뿌듯함을 느낄 때.
많은 아이돌 팬들을 궁금하게 한 질문이 있었다.
-근데 선우주 대박이다 이건 또 어케 썼대
-2016년 저작권료 순위 매기면 일단 1위는 무조건 우주 넣고 시작할듯
-엥 이것도 우주가 썻어??
-ㅇㅇ 리혁이가 부른 거니까 당연
-노래가 딱 선우주가 만든 그런 느낌나지 않나
-레전드긴 하다ㅋㅋㅋ 컴백 준비기간에 ost로 또 1위 먹고
하지만 노래의 작곡가로 지목 당한 당사자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팬들이 보고 싶어서 Y앱 라이브 방송으로 찾아왔다는 뉴블랙.
-여러분! 선리혁이에요.
-왕리혁입니다~!
-김리혁1이에요!
어제 카메오로 출연한 리혁을 놀리기 위해 저마다 특유의 말투를 따라 하며 복수하는 멤버들.
리혁이 으아아아! 하며 도망가고, 카메라를 든 멤버들이 맹추격하며 리혁을 흉내 내는 모습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멤버들이 이내 리혁을 둘러싸며 활짝 웃었다.
-네, 오늘 리혁이 형이 부른 Walk Again이 1위에 올랐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서리혁! 서리혁!
리혁이 수줍어하며 ‘고마워요…’ 하는 소감을 전할 때.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 속에서 ‘우주야 노래 너무 잘 썼어’ 하는 댓글을 본 우주가 답했다.
-어? 제가 그걸 썼다고요?
정말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에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수플레들이 납득했다.
“아하…….”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갔다.
‘이번에도 우주선이 썼다는 설정이구나!’
팬들이 댓글로 ‘선우주 아님 우주선이 썼대요’ 하는 모습에 우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제가 썼다고 오해하시는 팬분들이 계신데, 저는 물론이고 우주선 작곡가도 이번에 Walk Again이란 곡을 안 썼어요.
-이거 나 PD님 작품이에요!
-나 피디님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저번에 미프에서 어머님께 영상 편지 썼던 분이에요~
상냥한 목소리로 당사자가 들으면 눈가가 촉촉해질 만한 설명을 하는 비주였다.
그 말에 음원 사이트에서 ‘Walk Again’ 음원을 검색한 수플레들이 작곡가 이름을 보고 놀랐다.
‘진짜네?’
작사에 리혁, 작곡에 나상윤이라고 되어 있었다.
에이텐이 부른 Attention을 공동 작곡한 레몬 엔터의 고참 프로듀서이자 우주선의 개인 노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나상윤 피디님이 쓴 거였구나.’
리혁이 부른 곡이기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우주가 썼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작곡가가 따로 있었다.
그리고.
Walk Again을 쓴 작곡가는 현재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보고 부들부들하는 중이었다.
“아니…….”
인터넷 기사 댓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주는 진짜 감각이 좋은 것 같아요
-대중성 하나는 ㄹㅇ 끝판왕인 듯
-믿고 듣는 우주선입니다ㅎㅎㅎ
-이번에 ost도 정말 찰떡같이 썼네요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프로듀싱 팀 직원들에게 그가 하소연했다.
“내가 썼는데. 내가.”
“그래요. 팀장님.”
“내가 썼는데 왜 다들 우주가 썼다고 하는 거냐고. 심지어 우주 도움도 안 받고 자력으로 쓴 건데!”
“근데 우주 보고 많이 배워서 그런 거 아니에요?”
“……흠흠.”
한숨을 내쉬던 나상윤 PD가 이내 차트 1위에 있는 Walk Again을 보며 행복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운 기분을 느낄 때.
“어?”
프로듀싱팀의 막내이자 편곡 노비 김형섭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팀장님, 기사 떴어요. Walk Again 작곡가라고.”
“정말?”
화색이 돈 나상윤 피디와 작곡가들이 핸드폰 앞에 모여들었다. 이윽고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음원차트 1위 Walk Again, 작곡가는 누구..? ‘선우주 사단’ 나상윤 작곡가
작곡가들이 납득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
“선우주 사단 맞지. 우리.”
“…….”
먼 곳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나상윤 PD의 모습에 다들 떠들썩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리혁이가 부른 ‘Walk Again’은 차트 1위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불꽃놀이가 다시 올라오려고 하면서 느아아아 하며 다급하게 도망치는 모양새긴 했지만, 드라마의 화력이 대단하긴 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리혁이가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은 드라마 덕분에 1위한 거기도 하고. 노래가 좋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불꽃놀이가 금세 올라올 거예요.”
“으흠.”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거죠.”
그 분석에 내가 다른 동생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그럼 그런 걸로 하자.”
“그래여~”
“리혁이 말이 맞아요.”
우리가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자, 냉정하게 분석하던 당사자가 우리에게 눈을 흘겼다.
‘어서 칭찬해, 어서 아니라고 말해!’ 하며 온몸으로 어필하는 듯한 모습에 웃었다.
“잘했다. 졸개3.”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도 입가를 가리는 리혁이었다.
드라마 OST기는 하지만, 솔로로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보니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인다고 할까.
지호가 속삭였다.
“어제 리혁이 형 방에서 환호하는 소리 들었어여.”
“나도.”
꼭 이불 속에 꼭꼭 들어가서 우와아악 하고 좋아하는 듯한 소리였다.
지금 리혁이의 폰을 열어 보면 저 안에 음원 차트 캡처 샷만 100개가 있을 거라는 걸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 이것도 캡처해야겠어요. 어떤 평론가 분이 리혁이 노래 잘 부른다고 리뷰 올렸대요.”
“차우현 선배님이 SNS에 칭찬 올린 거 봤어요?”
우리의 핸드폰에도 비슷한 사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리혁이에 대해 올라온 기사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칭찬 댓글들에는 좋아요를 누르며 뿌듯하게 웃었다.
“리혁이 형이 드디어 제 몫을 했어여.”
“크으.”
“우리 리혁이 다 컸구나.”
“뭔 소리예요. 이 사람들아. 내가 당신들을 챙기면 챙겼지, 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횡설수설하면서 귀와 얼굴이 벌건 것을 보아하니 우리 넷째가 행복 수치 Max를 찍은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행복했다.
“서우주가 묻혔네.”
드라마 엔딩과 OST가 화제가 되면서 리혁이가 카메오로 나왔던 장면에 대해서는 언급이 많지 않았다.
은성 [여러분 이거 꼭 보세요!!!!!]
은성 [꼭 동네방네 알리시긔]
나 [누가 얘 강퇴좀]
한빈 [엌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임]
한빈 [그냥 형이네]
한빈 [리혁 씨 연기 잘하신다]
그저 단톡방에서 깔깔대는 못된 족속들이 괘씸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리혁이의 OST가 나름의 큰 반응을 얻고 있는 동안, 우리는 정규 앨범의 비주얼 작업을 종료했다.
뮤비 촬영과 컨셉 포토 촬영도 끝났다.
컴백이 20일가량 남아 눈앞으로 훌쩍 다가오면서 활동기 스케줄도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구?”
간만에 만난 우리 TF팀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KG 드래곤스 구단 측에서 시구자로 초청을 했어. 아마 플레이오프 때 진행될 거라 10월 말쯤…….”
“오.”
“거기서 중현이를 시구자로 지목했어.”
전직 초등학교 야구부였던 누군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석환 형이 말했다.
“중현이가 그 팀 팬이라고 인터뷰한 걸 봤다고, 구단 담당자가 그러던데, 어때. 의향 있니?”
“네, 저는 너무 좋아요. 진짜 팬이어서.”
의욕 가득한 얼굴로 답하는 중현이를 보며 웃던 석환 형이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왜……?”
“시타도 한 명 해 줬으면 한다는데, 네가 적임자라서.”
“시타가 뭐야?”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나에게 중현이가 설명해 줬다.
“제가 공을 던지면 형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거예요.”
“……응?”
무슨 개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잠깐만, 석환 형. 나보고 중현이 공을 받아치라고?”
“시타라는 거는 보통 공을 쳐야 되는 게 아니고, 그냥 방망이 한 번 스윽 휘두르고 끝나는 거야.”
“안 쳐도 되는 거구나.”
내 말에 지호가 설렌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대신에 맞을 수는 있져.”
“…….”
내가 침을 꼴깍 삼키자 중현이가 걱정 말라는 듯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
미래에 대한 근심이 일순간 들기는 했지만, 일단 새로운 행사에 대해서는 좋다고 승낙을 했다.
“근데 플레이오프면 준결승전, 그런 거 맞나?”
“비슷해요.”
미리 공부를 좀 열심히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석환 형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원래는 리그 협회 쪽에서 한국 시리즈 시구자로 올 생각이 없냐고 제안이 들어오긴 했거든.”
“진짜여? 결승전에서여?”
“그런데 거절했어.”
“왜여……?”
결승전이면 더 의미가 있는 행사가 아닐까 싶었는데. 석환 형이 거절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다른 시구자들 라인업이 좀…….”
“어떤데?”
“소방관 가족, 패럴림픽 매달리스트, 30년 야구팬, 은퇴하는 야구 해설자…….”
“정말 잘 거절했어.”
내가 기억하던 때만 해도 유명 배우나 가수가 결승전에서 시구를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모양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진행한다나.
저 라인업에 ‘인기 아이돌 뉴블랙’ 하고 끼어들어 있었으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뒷목이 쭈뼛했다.
“우리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게 목적인 건가…?”
“꽃밭에 예쁜 구덩이 파 놓고 들어가라고 하는 느낌이에여.”
그렇게 처음 해 보는 시구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한편.
어워드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안무 팀은 현재 섭외하는 중이고. 예산은… 늘 그렇듯이 대표님께서 제약 없이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어.”
곧 있으면 연말 시즌이었다.
11월에 있는 망고 차트 어워드, 12월의 K넷 뮤직 어워드를 비롯해 방송국 연말 가요제 등등.
최소 한두 달 전부터 준비가 필요한 무대들이었다.
예산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라는 말에 우리가 눈을 반짝였다.
“대표님은 얼마까지 괜찮으시대여?”
“……그런 말씀은 딱히 없었는데.”
“진짜 무제한인가 보네여. 우리 이번에 역대급으로 무대장치 팡팡 터뜨리고 그래 볼까여?”
막내의 말에 우리가 하핫 웃었다.
불안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매니저에게 걱정 말라고 손을 흔들어 주고는 TF팀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근데 기분이 이상하네여. 작년에 어워드 나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어워드 시즌이라고 그러고.”
“그러니까. 시간이 참 빨라.”
작년 시상식들에서 대상을 받았던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리고 무대를 했던 기억들까지.
해외 투어를 마치고 몇 달 동안 없었던 큰 공연들이 곧 다가온다니 하니 가슴이 뛰는 것만 같다.
“다이어트 종료 D-20.”
“후우우우……. 그날이 온다아…….”
뭐, 겸사겸사 그런 것도 있고.
그렇게 매니저와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금 쉴 틈 없이 연습 삼매경에 빠져드는 동안.
리혁이의 OST와 함께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일정도 돌아왔다.
자정이 다가올 무렵, 연습실에 모인 우리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중현아. 어때. 떨리니?”
“아니요.”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믹스테잎 공개를 앞두고 있는 우리 팀 래퍼가 평온한 미소를 짓자, 지호가 호기심을 보였다.
“진짜 안 떨려여. 형?”
“응.”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었다.
“우리끼리 뭐 할 때는 내가 실수하면 우리가 욕먹을까 봐 걱정 돼서 신경 쓰이는데. 나 혼자 한 거라서 괜찮은 거 같아.”
“나는 이 형 멘탈이 진짜 부러워요. 난 안 되던데.”
“형은 뭐 다 안 되잖아여. 아악!”
그 연습을 하고도 체력이 남아도는지 연습실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막내들을 보고는 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믹스테잎은 중현이가 내는 건데, 어째 비주가 더 긴장한 것 같다.
마우스를 딸깍이던 비주가 내게 물었다.
“잘 되겠죠. 형?”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중현이가 작업하면서 나한테 중간중간 들고 왔거든. 믹싱도 잘 됐고. 가사는 나도 안 들어 보긴 했지만 듣기 좋았어.”
“다행이다.”
“근데 사람들 반응을 봐야 알지.”
“아니에요. 형이 좋다고 하면 그걸로 된 거예요.”
비주가 마음을 놓았다는 듯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사이트를 새로고침했다.
중현이가 별도로 랩을 녹음한 결과물인 믹스테잎이 공개되는 곳은 무료 음원들이 올라오는 사이트였다.
“자정 됐어여!”
비주가 마우스를 새로고침하자 곧바로 앨범 아트가 눈앞에 나타났다.
중현이가 그동안 공을 들여서 작업했던 결과물이 세상에 공개되는 감격스러운 순간…….
“스윗 포테이토?”
“제 랩 네임이에요. 달콤한 감자.”
“고구마(sweet potato)가 아니고?”
“어? 고구마가 스윗 포테이토였어요?”
중현이가 큰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 되고, 리혁이도 똑같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지을 때.
신인 래퍼 스윗 포테이토 씨의 앨범 아트를 본 우리가 눈을 깜빡거렸다.
‘감자가 있네여.’
‘앨범 아트가 밭에 묻힌 감자…….’
우리가 생각한 파워 가득한 어둠의 랩이 아니라 마치 농산물 직판장에 나올 법한 로고였다.
그리고 제목을 본 우리 모두가 당황했다.
“돌멩이?”
“붉은토끼풀?”
어딘가 자연주의적인 색채가 가득한 제목들이 즐비해 있었다.
당황한 우리가 중현이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검색하며 당황하는 중현이가 있었다.
“스윗 포테이토가 고구마였다니….”
“형.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여…….”
이 정체불명의 믹스테잎 제목들은 대체 무엇인 건지 우리의 가슴이 다른 의미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