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2화
48장. Deep Black
믹스테잎 제목들을 보자 옛날 할머니 방에 있었던 자개 무늬 장롱이 떠오른다.
거기에 새겨져 있었던 돌, 거북이, 산, 해 같은 십장생이 연상된다고 할까.
“아니…….”
보통 믹스테잎이라고 하면 근사한 영어 제목들이 들어가고, 뭔가 세련된 느낌을 풍기는데.
눈앞에 있는 것은 뭔가 감성이 다른 느낌이다.
“중현아.”
“네.”
“이거 나한테 들고 왔던 거랑 같은 곡들인 거지?”
“네, 같아요.”
그럼 일단 다행이었다.
“아니, 근데 제목이…….”
“음, 랩은 솔직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제일 말하고 싶었던 걸 담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감자를 담았구나. 앨범 아트로.”
“맞아요.”
몇 가지 부분을 도와주긴 했지만 중현이가 프로듀서로 나선 자체적인 앨범과도 같은 믹스테잎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활동한 것들은 대개 다 그런 식이었다.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도움이나 조언을 구하기는 하지만, 각자가 독립적으로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그, 그래…….”
중현이도 생각이 있어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동생들과 불안한 눈빛을 교환하고 있을 때,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으며 물었다.
“근데 안 들어 볼 거예요?”
“아. 맞다.”
제목 때문에 순간적으로 혼이 나가 있던 상황이었다.
비주가 심호흡을 하며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 누를게요.”
리혁이가 어으 하면서 내 뒤로 쏘옥 숨었다. 귀에 손을 올리는 모습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1번 트랙인 ‘돌멩이’가 바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
동생들과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트로 좋은데여?”
“다행이다. 아직 기회가 있어요!”
아날로그 풍의 사운드가 담긴 인트로에 동생들이 호평하는 동안 나도 귀를 기울였다.
돌멩이란 트랙은 나도 처음 들어 보는 곡이었다.
버스나 지하철에 앉아 노을이 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볼 때 어울릴 법한 느낌의 잔잔한 반주.
그 위에 중저음 목소리가 부드럽게 얹혔다.
돌아가는 길 위로
그늘진 전봇대 아래로
나는 오늘도 졌네
반복된 하루 속에
리듬감 있게 톡톡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가랑비에 젖은 옷처럼 귓가에 부드럽게 스며든다.
해 질 녘에 골목길을 터덜터덜 걷는 감성의 노래.
“형, 근데 제목이 왜 돌멩이에요?”
“더 들어 봐.”
중현이의 말에 우리가 귀를 기울였다.
열심히 달려 보지만 어제와 같은, 반복되는 하루에 서서히 지쳐 가는 사람의 심정에 대해 말하는 랩이었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을 풀지 못해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후에는 돌멩이를 멀찍이 강에 던져 보기도 하고.
물에 떨어져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돌멩이처럼 어서 그 변화가 와 주기를 바라는 가사였다.
“…….”
언제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와닿는 곡이었다.
“연습생 때 쓴 가사야?”
“네, 고등학생 때 공책에 끄적였던 랩 가사예요. 요즘 쓴 거에 비하면 좀 어설프기는 한데….”
중현이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1번 트랙으로 넣을 때, 이거 말고는 다른 곡이 없겠다 싶었거든요. 어찌 보면 초창기에 쓴 거니까.”
“1번 트랙이랑 정말 잘 어울린다.”
“그렇죠?”
중현이가 하하 웃었다.
돌멩이의 가사가 쭉 이어지는 동안 한때 연습생이었던 모두가 그 가사를 조용히 들었다.
비주도, 리혁이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리듬을 타는 걸 보니 아마 다들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기약 없는 데뷔를 기다리며 답답함에 한강 변으로 달려가 자전거도 타 보고.
밤에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내 걱정 따위는 이 세상과 온 우주에 비해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위안을 얻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막상 연습실이란 작은 세상에 들어가면 그게 전부인 것만 같았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우와…….”
1번 트랙이 끝나고 막내가 감탄했다.
“형, 의외로 생각이 깊었네여.”
“응, 나도 내가 의외야.”
푸근하게 답하는 중현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는 제목과 앨범 아트를 보고 심각하기 그지없었는데, 금세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비주가 안심했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다행이다아…. 와, 저 방금 제목 보고 엄청 식겁했거든요. 믹스테잎이 장난이냐고 욕먹고 그럴까 봐.”
“야, 나 잘했지?”
“조금…? 뭐, 인정은 해 줄게.”
비주가 흠흠 하며 내뱉은 칭찬에 중현이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그동안 우리는 말없이 혼자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보고 있는 메인 보컬을 발견했다.
뭔가가 반짝인다.
“리혁이 형?”
대답이 없자 막내가 고개를 숙여서 리혁이를 쏙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빵 터졌다.
“흐하하핫! 이 형 울고 있어여!”
“아, 안 울었거든?”
“중현이 형 믹스테잎 진짜 잘 만든 건가 봐여~ 리혁이 형이 막 이렇게 눈에서 물을 흘리고.”
“안 울었다고!”
“그럼 얼른 고개 들어 봐여.”
리혁이가 고개를 슥슥 흔들고는 얼굴을 들었다.
“울었네. 울었어.”
“운 그 으느르그.”
“괜찮아. 울 수 있지.”
우리가 울 수 있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놀리자 넷째가 아으으 하며 부들부들했다.
진짜 운 것 같지는 않은데, 눈이 촉촉하긴 했다.
다들 깔깔 웃으며 놀리자 리혁이가 해명했다.
“새벽이라서 그래요. 새벽이라서.”
하긴, 감성이 유독 폭발하는 시간대이긴 했다.
일기나 편지를 쓰면 안 되는 시간대.
비주가 리혁이에게 티슈를 뽑아서 건네주는 동안 믹스테잎 트랙 리스트의 2번째 곡에 커서를 올렸다.
“그럼 더 들어 볼까?”
2번 트랙인 ‘붉은토끼풀’이 흘러나왔다.
1번 트랙인 돌멩이가 중현이가 연습생 시절에 느꼈던 것을 담은 곡이라면, 2번은 어린 시절에 대한 가사들이었다.
작고 가는
너의 이름을 찾아
아주 작고 여렸던 어린아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구 얘기야?”
“저요.”
“……?”
동생들과 눈이 마주쳤다.
‘뭔 소리래요.’
‘지금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비주가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누구?”
“나.”
“…….”
중현이가 말했다.
“어릴 때 나 되게 허약했는데. 그래서 할아버지가 맨날 한약 달여 오시고, 보양식 먹이고…….”
“그러니까. 네가?”
“응.”
“네가?”
“왜 자꾸 똑같은 거 묻냐.”
어머님한테서 중현이가 우량아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뭐지? 아기장수 우투리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집인가…?”
“우투리가 누구예여?”
“나 지금 기분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아니, 집안 분들이 대체 어떻길래.”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중현이네 형의 얼굴도 궁금해졌다.
우리가 작고 허약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노래하는 가사에 경악하고 있는 동안, 중현이가 코멘터리를 해 주었다.
“토끼풀이 그거예요. 클로버.”
“아.”
“그런데 붉은토끼풀은 토끼풀 중에서 좀 무리도 적고, 보기 드문 편이거든요.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영어로 정했다면 ‘Red Clover’가 됐을 트랙이었다.
정말 어린 시절에 허약했는지는 의문이긴 했지만 가사 자체에 담겨 있는 진솔함이 눈에 뜨였다.
그 뒤로도 이어지는 믹스테잎 트랙들.
전반적으로 중현이의 믹스테잎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바로 진솔함과 담백함이었다.
“나는 좋은 것 같아요.”
리혁이가 말했다.
“과시하거나 없는 것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되게 솔직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나도.”
그래서 처음에는 뭔 이런 투박한 제목들이 다 있나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별하게 따로 멋을 안 부려서 그런 것 같다.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좀 그렇게 멋 부리고 할까 했는데, 그냥 포기했어요. 원래 랩 네임도 달콤한 감자나 친절한 감자로 하려고 했는데.”
“…….”
“헤이션 선배님이랑 프로듀싱팀 분들이 그건 좀 아니라고 극구 말려서.”
이번에 중현이의 작업에 조언을 해 줬다는 레게 머리의 대선배 래퍼, 헤이션에 대한 감사함이 무럭무럭 일었다.
스윗 포테이토는 그나마 양반이지.
래퍼 이름부터가 친절한 감자였으면 아마 들어오려던 사람도 나가지 않았을까.
“아닌가? 오히려 괜찮은 것 같기도?”
“형의 미적 감각이 괜찮다고 한 거면 영 아니라는 거예여.”
“…….”
어쨌거나, 중현이의 믹스테잎은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아이돌 믹스테잎은 그 특성상 일반인들이 찾아 듣지 않아서 홍보가 어렵긴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던 수플레들에게는 좋은 선물이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마지막 트랙에서는 첫 콘서트를 끝내고 느꼈던 감상이 담겨 있었으니까.
“팬분들이 엄청 좋아하겠지?”
* * *
음원이 공개되기로 예정된 사이트, 사운드 클라우드에 접속한 수플레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당연하게도 좋아서가 아니었다.
“아니…….”
한국인들이 최고로 당황했을 때 나오는 아니 시발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뭔데?”
랩 네임을 보자 정신이 아득해진다.
스윗 포테이토라니.
아니, 스윗 포테이토라니!
-안녕하세요, 고구마입니다.
미프에서 우주선 작곡가와 동행했던 비서 컨셉의 고구마 군이 떠올랐다.
그것 때문에 고구마가 된 걸까?
어쨌거나 자정까지 기다렸던 팬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근데 왜 앨범 아트는 감자인 거지?’
제목도 돌멩이, 토끼풀 같은 식이었다.
안티들이 믹테 병맛 컨셉 어쩌구저쩌구 나서면서 댓글 870개가 붙을 게시글이 등장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능 컨셉에 심취해서 노래도 병맛으로 가냐, 진지하지 못하다, 본업 장난으로 하냐 등등.
‘나도 이런 걸 떠올리는 내가 싫다…….’
팬들이 심호흡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커뮤니티에 모인 다른 수플레들이 올린 글들이 보였다.
-믹테 대박이다ㅠㅠㅠㅠㅠㅠ
-우리 고구마 감성 대박이야
-가사 너무 좋아.. 시적인 감성 느껴지고
-얘드라 얼른 듣고 와ㅠㅠ 듣고 오면 스윗 포테이토라는 글자가 다르게 보임
작업물 퀄리티가 별로지만 애써 좋다고 할 때 나오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좋은가?’
선발대의 평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수플레들이 하나둘 재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
이어폰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감미로운 멜로디와 지친 심신을 위로해 주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
‘와…….’
좋다.
너무 좋다.
평소의 뉴블랙 음악에서 나오는 분위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는 믹스테잎이었다.
게다가 음악에서 시간이 느껴졌다.
‘진짜 오래전부터 작업해 온 거구나.’
Y앱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말해 주기도 했지만, 중현이 정말 오래전부터 작업해 왔다는 게 느껴졌다.
데뷔 이전인 연습생 때부터 준비한 것들.
그것이 어떠한 흐름을 거쳐서 나왔는지 보이지 않았던 과정들이 절로 느껴지는 분위기.
-비트 ㄹㅇ 잘뽑았어
-믹테 진짜 취저다ㅠㅠㅠ
-중현이가 음악하면서 뭘 얘기하고 싶어 하는지 확 와닿아서 넘 좋았어. 확실히 믹테는 또 믹테만의 매력이 있는 듯
-처음에 제목 보고 놀랐는데 지금 보니까 제목들이 찰떡ㅋㅋㅋㅋ
-중현이도 진짜 잘하는구나
-늦게 입덕한 숯불들은 중현이가 쓴 outro 좀 들어 주라 이번 돌멩이랑 느낌 비슷해
평소 그룹 내의 외계인 같은 작곡가 때문에 가려져 있던 중현의 재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유일한 아쉬움은 무료로 공개했다는 것 정도.
물론, 유료 음원으로 공개했으면 그거 나름대로 까들이 성적 가지고 엄청 달려들었겠지만…….
‘이건 진짜 잘 썼다.’
콩깍지를 빼고 들어도 좋은 믹스테잎이었다.
특히나 핸드볼경기장에서 첫 콘서트를 마치고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트랙, ‘들판’은 팬들에게도 다가오는 가사였다.
바람이 불 때면
들판의 풀은 하나 되어
아름답게 물결쳐
너는 나의 아름다움이야
무대 위에서 객석의 물결 치는 관중을 바라보며 느꼈던 가수의 감정이 시적으로 다가온다.
믹스테잎이었지만 팬들에게 팬송처럼 느껴진 가사였다.
-고구마야ㅠㅠㅠㅠㅠㅠㅠ
-들판 지금 대충 2n번째 듣는중
-나 그때 입덕하지도 않았는데 막 어떤 상황이고 기분이었는지 넘나 잘 느껴져서 너무 좋다
-나 왜 뉴블랙 잘 몰랐냐ㅠㅠㅠㅠ
-이쯤 되니 앨범 아트도 다르게 보인다.. 이름은 고구마지만 감자인게 모순을 의미하는 거 아닐까
역시 본업이 최고였다.
트위터와 각종 SNS에서 팬들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안, 멀뚱멀뚱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나쁜 사람들. 순 나쁜 사람들…….’
‘너희만 즐기냐.’
영어 해석본이 없어 끙끙대고 있는 외국의 수플레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문제는 뉴블랙 TV의 공식 채널에 동영상이 올라오면서 해결이 됐다.
그렇게 가사를 읽고 있던 해외의 수플레들은 눈물을 머금고 다른 영상을 클릭했다.
[리혁이와 함께 하는 슬기로운 한국어 생활 I (기초)]
최애에게 농락당하면서 배워 가는 한국어 콘텐츠였다.
그러는 한편.
다음 날, 뉴블랙 TV에 믹스테잎과 그 작업기가 올라오면서 일반인들도 해당 음원을 접하기 시작했다.
‘음, 괜찮네.’
드라이브하면서 들을 때 좋은 곡이었다.
이내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나 급상승 키워드에 ‘스윗 포테이토’, ‘붉은토끼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
-지금 망고 실검 왜이러는지 아시는분??
-붉은토끼풀?
-스윗 포테이토? 지금 피자 얘기야?
-아까 피자집 이벤트한다고 뻥친새기 누구냐 나와
-잠깐만 그니까 늅 중현이 믹테를 냈는데 랩네임이 스윗포테토 제목이 토끼풀이란 거야?
-혼란하다 혼란해
-머글분들ㅋㅋㅋㅋㅋ거기 음원없어욧
난데없는 신인 래퍼의 등장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아이돌 팬들은 침착함을 되찾았다.
‘뉴블랙이었구나.’
혼란스러운 사태를 차분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였다.
* * *
중현이의 믹스테잎은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7개의 곡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당히 놀라운 완성도를 자랑한다. 주목할 만한 작업물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솔직하고 담백한 것이 더욱 매력을 부가시킬 때도 있다.
유명 대중음악 평론가 황호철 씨를 비롯해 여러 평론가들이 보낸 1줄 리뷰에서도 좋은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인터넷 반응을 살피던 리혁이가 말했다.
“우려했던 부분은 별로 없네요.”
“그러게. 다행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개인 활동 중에서 가장 크게 우려를 했던 것이 바로 중현이의 믹스테잎이었다.
우리와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 힙합 쪽의 공격을 우려해서였다.
대체로 인디 음악과 힙합 쪽은 우리를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음원 차트를 점령하는 걸로 꼴 보기 싫어하는 분위기기도 하고, 그래서 미프 때 비난을 들었던 기억도 있다.
어느 힙합 프로에서 우리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는 래퍼도 있다는데, 관심은 주지 않았다.
“울 아빠가 그랬어여. 비즈니스에서 누군가가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그건 돈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이들이 있기도 하고.
믹스테잎 같이 대중들은 접하기 어려워서 잘 모르는 분야는 유독 공격에 취약한 면이 있어서 걱정스러웠다.
단체로 ‘믹스테잎 완전 별로다!’ 그러면서 비판하면 대중들은 ‘음, 랩은 잘 모르겠는데… 좀 그런가?’ 하기 쉬우니까.
중현이가 말했다.
“확실히 헤이션 선배님이랑 작업한 게 도움이 됐나 봐요. 안 좋은 말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런 것 같긴 하다.”
힙합계의 대부로 불리는 헤이션과 함께 작업을 해서 그런지, 함부로 말을 못하는 분위기인 듯했다.
아니면.
“수플레들이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닐까여. 우리도 가끔 무섭잖아여.”
“강하지, 수플레들.”
절로 납득이 갔다.
어쨌거나 그런 걱정할 거리가 없어서 그런지 기분은 좋았다.
“휴우.”
중현이가 안도의 미소를 보였다.
“걱정했는데 말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역시.
아니라고 하면서도 은연중에 걱정이 많았나 보다.
“사람들 반응 안 좋거나 했으면 다들 표정 안 좋고, 슬퍼할 것 같아서 긴장됐는데. 다행이에요.”
“우리 때문에 신경 쓴 거였어…?”
“저는 뭐, 딱히 저에 대해 말하는 건 신경을 안 써서.”
중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제 가치는 절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거지.”
명언 같아서 마음속에 저장했다.
그렇게 차트 순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리혁이의 Walk Again과 중현이의 믹스테잎까지.
해외 투어를 마친 이후로 우리의 개인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거의 다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지호도 얼마 전에 신이의 촬영을 끝냈고, 이제 나와 비주 정도만 드라마와 댄스 예능 촬영이 남았을 뿐.
그리고.
“오.”
“왜여?”
“할머니가 그러는데 절차 다 끝났다는데? 며칠 전에 돈도 좀 받았대.”
출시를 앞두고 있는 뉴불백과 관련해서 법적인 절차가 모두 끝났다는 소식을 김덕순 여사로부터 전해 받았다.
우리 대표님이 소개해 주신 변호사분이 일 처리를 잘했다나.
비주가 화사하게 웃었다.
“할머님도 기분 엄청 좋으실 것 같아요. 백반집에서 만드셨던 불백이 전국적으로 팔리는 거잖아요.”
“톡에 오타 많은 거 보니까 신나긴 했어.”
“그러네요. ㅗ 되게 많다아….”
“아, 그건 그냥 뻐큐.”
“…….”
눈을 깜빡이는 비주에게 하하 하며 웃어 보였다.
말이 나온 김에 김덕순 여사의 소감을 묻기 위해 영상통화를 걸었다.
평소처럼 뚱한 얼굴로 전화를 받으며 ‘왜!’ 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을 때.
-여보셔요~
왠지 모르게 나긋한 목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어……?”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동생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영상 통화 화면 속에서 우아한 코트를 걸친 채 손가락에 보석 반지를 끼고, 선글라스까지 낀 누군가가 있었다.
바보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상대가 머리를 슥 흔들어 보였다.
-네~ 김덕순이여요~
갑작스럽게 변신한 김덕순 여사의 모습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대체 돈을 얼마나 받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