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3)화 (51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3화

“할머니?”

-네, 김덕순이여요.

“진짜 할머니야?”

어떤 외계인이 우리 김덕순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였다.

선글라스를 낀 얼굴이 우리 쪽을 향했다.

-그려.

그 말의 뒤에는 ‘그려, 내가 김덕순이니 더 이상 말했다가는 옘병첨병 욕을 할 것이다’ 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쌍욕의 기운에 우리가 안심했다.

“휴우…….”

내가 안심의 미소를 짓는 동안 비주가 환하게 웃었다.

“너무 멋지세요. 할머님!”

-그르냐? 평소에 하지도 않던 거를 걸치고 그래서 이상하면 어쩌냐 했는데.

“아니에요. 너무 멋져요.”

-옷이 백화점 직원이 골라 준 거라서 그냥 그렇기는 한데. 꽃도 없고…….

옷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표하는 김덕순 여사에게 동생들이 단체로 손사래를 치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그렇게 멤버들의 칭찬을 즐기던 할머니가 날 바라보았다.

-넌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왜 암말도 없냐.

“할머니.”

-뭐.

“배신이야. 어떻게 꽃무늬를 버릴 수 있… 읍읍!”

지호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여! 너무 멋지세여!”

“이 사람 요새 피곤해서 헛소리가 많아져서 그래요. 할머님, 아무 말도 못 들으셨다고 생각하세요.”

“우주 형, 불필요한 말을 하면 제가 기억을 잃게 해 주겠어요.”

나지막하게 들린 중현이의 말에 정신을 되찾았다.

“우리 김덕순 여사님 너무 예쁘시다. 최고 예쁘시다!”

-옘병하고 있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사실 뭘 입어도 예뻐. 할머니는.”

-……뭐. 그, 그른가.

김덕순 여사와 내가 서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피식 작게 웃음이 흘러나오면서, 다 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수다를 떨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예여? 할머님? 옷이 막…….”

-뭐 계약하면서 받은 돈도 있고. 요즘에 백반집에 손님이 옴팡지게 찾아와서 돈이 막 벌린 것도 있고. 복사기에 돈 찍어 낸 것처럼 돈이 나오드라~

그래서 이번에 번 돈으로 이것저것 소비를 한 모양이었다.

이전과는 굉장히 달라진 스타일에 우리 모두 신기함을 느꼈다. 특히나 내가 제일 심했다.

“아니… 할머니, 막 그런 옷들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게 말여. 나도 내가 사치 같은 걸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알았는데?”

-아니었더만.

김덕순 여사가 보석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쓱 넘기며 말했다.

-내 돈으로 부리는 사치는 OK인 겨.

“…….”

-네 돈은 막 못 쓰고 그러겠는데, 내가 버니까 또 다르더만. 다 늙어서 돈 쓰는 게 뭔 재미냐 했는데.

할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엄청 재미있어~ 요즘 사람들 말로 꿀잼이여. 꿀잼.

내가 벌어서 송금해 줄 때는 ‘됐어~’ 하면서 그 돈을 저금하고 아꼈던 김덕순 여사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본인에게 직접 돈이 들어오니 경우가 다른 듯했다.

그렇게 사치에 물든 김덕순 여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형, 왜 울어여?”

“우는 거 아니야. 그냥 좋아서 그래.”

너무 행복했다.

진즉에 저렇게 돈 좀 썼으면 하고 물건 좀 사라, 사라 하고 노래를 불러 댔는데.

물건들을 마음껏 사들여서 꾸민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푸근하고 행복하고, 막 그랬다.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도 말고 그래라. 그 회사 양반들한테 들어 보니까 앞으로 팔릴 때마다 돈이 꾸벅꾸벅 들어온다네.

“꼬박꼬박이요. 할머님.”

-리혁이는 그래서 친구가 없는 겨.

“…….”

-또 어디 가? 으휴, 저거저거 속이 밴댕이만도 못해 가지고.

김덕순 여사가 혀를 끌끌 차고, 벽 쪽에 가서 이마를 콩콩 박아대는 리혁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할머니도 웃겼는지 입가를 씰룩이며 말했다.

-어쨌든 내 걱정은 말구 너그들 일이나 잘혀. 이번에 공식 앨범인가도 곧 나온담서.

“응.”

-이번에도 잘 되라고 내가 절에다 등도 걸고, 지금 기도도 하고 그러고 있으니까.

“응응. 고마워요. 할머니.”

-더 잘될 겨.

뚱한 표정의 얼굴 위로 미소 비슷한 게 떠올랐다.

-아무튼 덕분에 내가 행복혀.

“손주 잘 뒀지?”

-그려.

“사랑해, 할머니.”

되돌아올 말을 기다리며 내가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

띠록!

통화가 끊겼다.

“뭐야.”

내가 눈을 깜빡였다.

“……도망쳤어?”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   *   *

뉴블랙이 컴백을 코앞에 두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을 때.

수플레들은 다가오는 떡밥을 하나하나 음미하고 있었다.

일단은 최근에 다시금 핫한 예능으로 되돌아온 주세한의 ‘장사합시다’ 특집 2부의 방영이었다.

1부가 빌드업이었다면 2부는 본격적인 미식회의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할게요. JMT.]

[접시 닦을 테니까 제발 더 있게 해 주세요…!]

[저는 바닥도 닦을 수 있습니다.]

뉴불백과 옛날 돈까스, 그리고 국민 예능 출연이란 달콤한 먹잇감에 연예인들이 지박령처럼 달라붙는 식당.

그와 함께 출연진들의 수난도 시작됐다.

주세한의 출연진이 무한 돈까스 판매를 이어 가는 가운데, 뉴블랙은 진상들에게 시달렸다.

[음식 나올 때 노래도 불러 주시면 안 되나요~?]

[안 돼요.]

[은무룩….]

[저기, 은성 씨. 귀여운 척하지 마세요. 저 돈까스 망치 들고 있습니다…….]

특히 미친 예능돌로 유명한 케빈의 깐족거림에 우주가 부들대는 모습이 큰 웃음을 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저기서 돈까스망치로 쾅해도 무죄나올거같음

-법원 : 정당방위 ㅇㅈ

-선우주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물 2위

-1위는 누구임??

-반대할 때의 리혁이

-(자체 리얼리티에서 안건 제시할 때마다 무조건 ‘반대’ 팻말을 드는 하얀 얼굴의 메인 보컬.gif)

2회의 내용은 음식을 먹으러 온 게스트들이 눌러 앉아 자기들끼리 게임을 하기도 하고.

마치 둘리 무리가 고길동을 괴롭히듯이 게스트들이 출연진들을 놀리는 내용이었다.

TNT, 틴스피릿, 스트릿 보이즈, 케빈 등이 합세한 공격에 뉴블랙 멤버들이 심호흡을 하는 식이었다.

이견우를 비롯해 각종 스타들의 출연과 뉴불백에 대한 관심도로 인해 저번보다 더 상승한 시청률.

“후우…….”

경쟁 프로그램인 서바이벌 오디션 ‘온 더 스테이지’의 제작진이 아련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폭풍이 지나간다고 생각해야 돼요.”

“폭풍이지.”

“뉴블랙이랑 동시간대에 붙어서 화제성으로 이기겠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니까…….”

안 그래도 비등비등한 시청률을 자랑했던 국민 예능에 뉴블랙이 출연하니 시청률이 쭉쭉 올라갔다.

‘불백은 못 이기지.’

대국민 오디션으로는 한국인들의 먹거리에 대한 관심을 이길 수 없었다.

온더스의 제작진이 어쩔 수 없다며 납득하는 가운데.

주세한의 2부 방영으로 인해 이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앞다리살 지금 다 떨어졌는데.”

“또요?”

“네, 요즘에 토요일쯤 되면 물량이 다 떨어지고 그래 가지고요. 어떡하죠. 다른 거라도…….”

“그럼 삼겹살 주세요.”

바로 정육점 주인들이었다.

뉴불백이 나온 이후에 돼지고기 대란이라고 할 만큼,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맛을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는 중이었다.

‘팔린다. 잘 팔려…….’

불백 재료가 없으면 삼겹살이라도 사 가고, 평소보다 매출이 더 늘어난 정육점들이었다.

그런 소식들에 뉴블랙에게 돼지고기를 무한히 공급하기로 약속한 협회의 대표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난 옳았어.’

게다가 그 얄쌍한 청년들이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주세한 촬영을 끝낸 후에도 뉴블랙이 요청하는 물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5인 가구가 평범하게 먹는 것 정도.

물론, 그들이 현재 다이어트 중이라는 것은 모르는 대표였다.

“하하하!”

그저 말없이 벽에 걸린 뉴블랙과의 기념사진 액자를 호호- 불며 닦을 뿐.

‘고맙습니다! 뉴블랙!’

그렇게 전국의 업계 관계자들이 행복해하고 있을 때.

뉴불백을 출시하기로 계약한 업체에서도 2부 방영이 끝나고 보도 자료를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뉴불백’ 편의점서 만난다.. ‘원조 할매 레시피’ 들어간 도시락 출시

-뉴불백, 이달 중순 ‘뉴블랙’ 출시한다

-[Issue칼럼] “아이돌이 빵이랑 불백을 판다고요?”.. 뉴블랙은 어떻게 ‘국민 아이돌’이 되었나

그런 소식에 한국인들이 해당 업체의 주가를 검색하는 한편.

기다리고 있었던 굿즈 뉴불백의 출시에 환호하던 수플레들에게 가장 중요한 떡밥이 떨어졌다.

뉴블랙의 공식 SNS에 공개된 소식.

[정규 1집 ‘Deep Black’ 프로모션 일정]

바로 정규 1집 컴백 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컨셉 포토, 트랙 리스트, 뮤비 개인별 티저와 하이라이트 메들리 등등.

검은색으로 우아하게 꾸며진 컴백 맵을 바라보는 수플레들의 가슴이 덕순덕순했다.

‘드디어 컴백…….’

예약 구매를 한 상품이 마침내 발송되었다는 메시지가 들어온 것처럼 설레고 달뜬 기분.

특히나 그중에서 첫 번째 일정으로 알려진 ‘스토리 필름’이 올라오면서 그런 기분이 고조됐다.

‘세계관과 관련된 건가?’

그동안 앨범에 은유적으로 녹아 들어가 있었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필름인 듯했다.

마스커레이드가 나오기 전에도 이런 식으로 스토리 필름이 있었는데.

뉴블랙의 앨범이 담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팬들과 해외 팬의 분석이 있었다.

소속사 측에서 특별하게 무엇이다, 하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석들이 있었다.

‘뮤비 속 인물들은 책 속의 인물들이다.’

그것도 저마다 장르가 다른 책들의 주인공.

마스커레이드에서는 무도회 등이 나오는 근세 도시의 분위기였고, 우주가 메인이었던 낙화는 한국풍의 무협.

중현이 주인공이었던 Nine은 SF와 사이버 펑크.

비주의 바람꽃은 종말 이후를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 리혁의 겨울잠은 온통 눈이 가득한 설국의 여행.

각자 장르가 다른 세계의 주인공들이 모종의 이유로 기억을 잃고.

정체불명의 섬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 속에서 각자 자기 세상으로 잠시 되돌아가 하나씩 기억을 되찾는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그간 뮤비의 내용은 각 인물들이 서로의 세상으로 들어가 해당 세계의 인물을 구원해 주는 내용이었다.

‘이제 뭐가 나오는 거지?’

각자 어떤 배경에서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제 그다음 이야기가 나올 차례였다.

[Story Film - ‘Our Next Journey’]

자정.

뉴블랙 TV에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수플레들의 손가락이 빠르게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했다.

그리고 입을 멍하니 벌렸다.

“우와아아아…….”

초장부터 환하게 밝아 오르는 모래사장을 다루는 영상미에 절로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시원한 푸른빛 바다와 따스한 모래사장.

국적을 막론하고 수플레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규호는 뉴블랙에 진심이야…….’

‘리치 볼드맨, 잘했다.’

그러는 동안 본격적으로 영상이 이어졌다.

특별하게 대사는 없었지만, 시트콤과 웹 드라마 활동으로 한층 더 물이 오른 두 연기자를 필두로 멤버들의 연기력이 빛나는 영상이었다.

마침내 저마다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인 것을 깨달은 인물들.

일단 그들이 갇혀 있었던 섬을 탈출하는 게 급선무라는 판단을 하고, 섬에 숨겨져 있던 배를 한 척 발견한다.

‘저것도 떡밥인가.’

배에 새겨져 있는 금색 라틴어가 있었는데, 의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배를 수리한 주인공들이 배에 올라타 항해를 시작한다.

선선히 불어오는 미풍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찝찝한데.’

웃고는 있지만 청년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라든가, 사소한 다툼이 앞으로 있을 큰 다툼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리고.

먹구름과 함께 들이닥친 폭풍우를 뚫고, 그들은 마침내 눈앞에 보이는 다른 섬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

육지에 상륙한 주인공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누군가는 하얀 모래 위에 서 있고.

얼마 안 가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누군가는 검은 모래 위에 서 있다.

이내 누군가가 뒤로 물러서라는 듯 손짓을 하고, 그들이 멀찍이 물러나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주의 얼굴을 시작으로 점점 클로즈 아웃 되면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면서 명확해지는 새로운 섬의 구조.

하얗고 검은 네모칸이 격자로 되어 있는.

[……!]

그곳은 바로 체스판 위였다.

동시에 암전된 화면에 예고가 떠올랐다.

[10.17 ‘Deep Black’]

정규 앨범의 컨셉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   *   *

핸드폰을 들었다.

손을 멀찍이 내밀어서 거리를 벌리고는, 두 눈을 실눈처럼 떠서 댓글창을 살펴보았다.

“……또 뭐 하니.”

민기 형의 목소리였다.

“스토리 필름 댓글 반응 살펴보려고요.”

“보이긴 해?”

“초점 잘 맞추면 보인다던데요, 중현이가.”

매직 아이처럼 눈을 뜨는 내 모습에 민기 형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반응 좋아.”

“좋아요? 다행이다!”

“애초에 너희 팬들이 너희가 나오는 걸 싫어할 리가 없잖아.”

“그건 경험담인가요? 리사조아로서?”

상대가 눈을 감고 부르르 떠는 모습에 내가 사과했다.

“미안해요. 형. 요새 은성이한테 좀 안 좋은 물이 들었나 봐요. 애기들 말썽 부리는 만화 보고 나면 말 안 듣고 그러잖아요.”

“근데 뭐 괜찮아. 이제는 익숙해.”

“정말요?”

“우주야.”

“미안해요. 형…….”

은성이를 원망하라는 말을 해 주며 스토리 필름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민기 형 말마따나 내가 부끄러울 만큼 좋은 댓글들이었다.

-장하다 김중현

-연기를 피우기만 하던 우리 애가 연기를 하는 거예요ㅠㅠ

-영상에는 빠져 있는 부제 : 원하는 예산을 다 쓰라고 한 박규호 대표에 대한 뉴블랙의 답

-This mv is going to be crazy.

-하.. 영상이 끝나고 내얼굴이 보이기 전까진 완벽했다

-우주가 쓰는 기름은 온리유

“푸핫!”

마지막 댓글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왜 그러냐는 민기 형에게 댓글을 보여 주니 같이 웃음이 터졌다. 그런 우리의 모습에 스타일리스트 쌤들이 고개를 슥슥 저었다.

“흠흠…….”

스토리 필름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댓글창 열 때까지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고 떨렸는데, 반응이 좋으니 뭘 봐도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앨범을 세상에 내보일 때는 언제나 이런 기분이다.

‘이거 우리만 괜찮은 거 아니야? 알고 보니 팬분들은 별로인 거고.’

‘별로인데 좋다고 말해야 되고…!’

‘알고 보니 우리만 신난 거였고.’

컴백이 코앞에 오면 발생하는 증상이었다.

5분 전에는 ‘절망, 이 세상엔 절망이 가득하다…!’ 하며 비명을 질렀다가, 5분 뒤에는 ‘이야! 세계 최고의 앨범이다…!’ 하며 자신감에 차고.

대체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면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식이어서 늘 연습에 매진하는 이유기도 했다.

“앨범도 반응이 좋기를 바라야겠어요.”

“좋을 거야.”

민기 형이 웃으며 말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너희는 지금 흐름을 탔어.”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하고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쭉쭉 기지개를 켰다.

김우주의 전용 패션인 공무원 정장을 입고 있었기에 큰 동작은 할 수 없었지만, 몸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다.

이곳은 <우리 가족은 외계인>의 스튜디오 촬영이 이루어지는 TBC 방송국.

오늘이 내 마지막 촬영이었다.

“우주 씨!”

“네!”

조연출의 부름에 스튜디오 정중앙으로 다가서자, 다른 씬을 찍고 있던 배우들이 손뼉을 치며 나를 맞아 주었다.

“이야, 우리 막내 마지막 촬영이다!”

“쟤 오늘 마지막이에요? 부럽다…….”

“벌써 마지막이야?”

아쉬움과 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외계인 가족들에게 내가 양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동시에 평소처럼 놀리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오늘 내가 마지막으로 찍어야 할 씬이 조금 난이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이네.”

“네, 감독님.”

황정구 감독이 웃으며 동선을 설명해 줬다.

“저쪽에서 가족들이 오면 네가 천천히 다가가서 포옹을 할 거야.”

“네.”

오늘 찍어야 할 장면은 김우주가 마침내 잃어버렸던 가족과 수십 년 만에 재회하는 씬이었다.

UFO의 광선에 의해 구슬로 변해 버린 가족들.

그들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요원 김우주가 그들과 재회하며 감동을 주는 그런 장면이었다.

“중요한 씬이라서 촬영을 좀 오래 하게 될 수도 있어. 그만큼 서사에 중요한 장면이니까.”

“네, 감독님.”

“……잘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어요.”

상대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눈물 연기라는 게 아무래도 연기 초보에게는 힘든 면이 있으니까. 안 되겠으면 인공눈물을 써도 되고.”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마지막 씬의 촬영을 앞두고 선배 연기자들이나 지호에게 눈물 연기에 관해 조언을 여럿 듣기도 했다.

그리고.

미튜브를 보면서 표정을 열심히 따라 하면서 연습하기도 한 터라…….

“일단 해 볼게요.”

“그래.”

파이팅 하며 주먹을 쥐어 주는 감독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주선이~!”

“얘, 내가 스태프들한테 양파라도 갖다 달라고 할까? 나 신인 때는 그렇게 해서 연기했다니까.”

여기저기서 나를 부르는 연기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아……!”

감독님한테 물어봤어야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   *   *

총총총.

배우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우주가 방향을 틀어 다시금 황정구 감독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왜 그러지?’

무언가 중요한 질문이 있다는 표정으로 돌아온 우주.

“저, 감독님.”

“응.”

“눈물 연기에 관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응.”

차분히 질문을 기다리는 황정구 감독에게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어느 쪽으로 울까요?”

“응……?”

“어느 쪽으로 울어야 할지를 안 여쭤본 것 같아서요. 왼쪽이랑 오른쪽, 그리고 양쪽 가능해요.”

“…….”

“어느 쪽으로 울까요?”

신인 연기자의 질문에 황정구 감독은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 그…….”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일순 말문이 막힌 황정구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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