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4화
“우주야.”
“네.”
“그… 자연스럽게 울면 돼, 그냥.”
그 말을 하던 감독님이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지금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며 껄껄 웃는 모습에 내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눈물이 그렇게 막 나오니?”
“네, 되더라고요.”
숙소에서 막내와 함께 연습을 했다.
‘자, 지금부터 저랑 대결을 하는 거예여. 먼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간식을 쟁취하는 거져.’
‘좋아.’
‘그럼 시… 뭐, 뭐예여? 눈에 물 넣고 있었어여?’
나도 내가 신기했다.
‘어? 되네…?’
‘그 말 좀 그만해여! 으아아,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감정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얼마나 잘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술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연기는 잘 됐다.
“그래, 그러면 한번 해 보자.”
“네.”
다시 파이팅 해 주는 감독님에게 살짝 웃어 보이고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기자들에게 다가갔다.
서노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눈물 연기는 처음이지?”
“네.”
“우리가 적당히 감정 이입하게 도와줄 테니까. 한번 자신 있게 해 봐.”
그 말에 양옥분 쌤도 물었다.
“양파는 안 필요하니?”
“선생님…….”
“빨리빨리 찍어야 되니까 그러지. 양파 한 번 쓰면 눈물이 뽁 나와요.”
원로배우의 너스레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다들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응원을 보내 주었다.
“안 되겠으면 이등병의 편지라도 한 번 듣고 와. 내가 이 나이에도 그거 들으면 눈물 나더라.”
“집 떠나와~ 열차 타고~”
단체로 놀려 대는 모습에 야속하다는 눈빛을 보내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여전히 깔깔대는 선배 배우들.
하지만 내가 조금 거리를 두고 눈을 감자, 방금 전까지 떠들었던 것이 거짓말인 양 조용해졌다.
계속해서 부드럽게 다독여 주는 것도 그렇고, 내가 감정을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
오늘 연기해야 할 장면은 김우주가 구슬 상태에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가족들과 재회하는 씬이었다.
황정연 작가님이 구상한 설정에 따르면 거의 20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20년 만에 가족을 만나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굳이 특별하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우주야. 넌 또 거기서 뭐 하고 있냐.’
‘그냥 있어.’
어릴 적에 할머니와 함께 살 때,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어쩌면 부모님이 살아 계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사실은 어디 무인도에서 기억을 잃은 채로 생활하고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외부인들에게 발견되고. 기억을 되찾은 이들이 다시 아들을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런 상상.
중학교 때쯤 가서는 그런 상상을 멈추긴 했지만 초등학교 때는 그랬다.
도서관에서 무인도에 관한 책을 뒤적여 보기도 하고, 캐스트 어웨이 같은 영화도 비디오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 보기도 하고.
그랬기에 다시금 가족을 만나는 게 어떤 기분일지에 대해서는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준비됐어?”
멀찍이 서 있는 배우들의 뒤로 부모님의 모습을 그리며 심호흡을 했다.
이게 상상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준비됐어요.”
감독님에게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슛 들어가는 소리에 나는 김우주가 되어 눈앞의 가족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황정구 감독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스튜디오의 카메라가 정장을 입은 김우주의 전신을 담고 있었다.
저벅저벅.
평소와 다름없이 흐트러짐 하나 없는 걸음걸이가 천천히 느려지더니, 우뚝 하고 멈췄다.
[우주야.]
드라마 상으로는 김우주의 가족들이 정면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 장면이 아련하게 들어갈 장면이었다.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가족들.
스튜디오 현장에서는 김우주가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며 잠시 멍한, 몽롱한 표정을 짓는다.
[어…….]
살짝 벌린 입과 함께 두 눈동자의 초점이 풀린다.
자연스러운 연기에 황정구 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로만 가자.’
한동안 가족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김우주의 얼굴이 모니터상으로 클로즈업되어 나왔다.
동시에 다른 모니터에선 우물쭈물하는 발이 보였다.
마치 다가서면 사라질 신기루를 바라본 사람처럼, 혹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무지개를 바라보듯이 망설인다.
[우주야.]
원로배우 양옥분의 목소리가 현장의 김우주를 부른다.
[뭣해. 얼른 안 오고.]
그 말에 앞뒤로 움찔거리던 김우주의 발걸음이 우뚝 멎는다.
동시에 커다래지는 두 눈.
눈앞에 있는 것이 신기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김우주의 입가가 더 크게 벌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 성큼성큼 한 걸음으로 다가가다가.
[……!]
이내 그 걸음걸이가 서서히 빨라져 마지막에는 거의 뛰어가듯이 가족의 품에 안겨들기 시작했다.
카메라 감독이 황정구 감독에게 시선을 보냈다.
황 감독은 손가락으로 OK를 그리며 계속 촬영을 이어 가라고 했다.
‘일단 두고 보자.’
원래 이쯤에서 한 번 멈췄다가, 다른 테이크로 찍어 볼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배우들이 보내는 신호도 그렇고.
자연스러운 연기의 흐름에 일단 장면을 맡겨 보기로 했다.
정확히 무슨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흐름을 깨면 같은 느낌이 또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황정구 감독을 사로잡았다.
[우리 손주, 그새 많이 컸네.]
김우주의 할머니가 품에 안긴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부모님도 마찬가지로 그를 품에 안았다.
[아들.]
[왜 그렇게 울어, 뚝.]
입술을 질끈 깨문 김우주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쁨.
감사함.
행복.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김우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동안, 다른 가족들이 그를 안아 주며 어깨를 토닥토닥했다.
작중에서 늘상 회색빛으로 건조한 태도를 보였던 김우주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큰 감정을 드러내는 씬.
그리고.
[김우주? 너 김우주야…?]
11살인 상태로 헤어졌던 소꿉친구와도 성인이 되어 재회하게 된다.
본래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11살인 상태 그대로 등장시킬 생각이었으나, 제작진과 출연진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성인이 되어 등장한 김우주의 여자 친구였다.
황 감독이 훈훈하게 웃으며 황정연 작가를 떠올렸다.
‘누나가 뭐 어떻게 설정을 잘 짜놨겠지…….’
설정 구멍을 작가가 잘 메웠으리라 믿으며, 황정구 감독은 호쾌한 목소리로 ‘컷!’ 하고 외쳤다.
“휴우…….”
한창 몰입해 있었던 배우들이 눈가에 맺혔던 눈물을 털어 내며 심호흡을 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감정이 격해지는 연기를 하고 나서 잠시 빠져나오는 시간.
1분도 되지 않아 원래 얼굴로 돌아온 배우들이 시끌벅적하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김우주의 마지막 촬영이기도 했지만, 사실상 출연진들에게도 마지막 촬영과도 같았던 장면이었다.
그 외에 찍을 장면은 몇 개 없었으니까.
다들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막내!”
“우리 막내 어디 갔어?”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이었던 인물을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조명 뒤편에 숨은 우주가 보였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막대기 같은 조명 뒤에서 널찍한 등을 등진 채 숨은 모습이 마치 눈을 가리고 숨은 사슴 같이 때문이었다.
“막내야!”
“네.”
외계인 가족들이 쪼르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멈칫했다.
‘우네…….’
코를 훌쩍이며 벌건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삭이는 모습에 배우들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이 장면이…….’
상대의 개인사를 떠올리고 나니 어떤 기분인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갔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황정연 작가와 우주가 함께 떠올린 설정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당사자도 찍고 싶었던 장면이었을 수도.
“야, 너 울어?”
아라의 물음에 우주가 말했다.
“저 안 울어요. 누나.”
“우는데?”
“몰입이 좀 과하게 됐나 봐요. 눈물 연기는 처음 해 봐서 그런지…….”
여전히 먼 산 보듯 천장을 바라보는 미남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호랑 연습할 때는 딱히 별 느낌 없었거든요. 근데 현장에서 처음 해 보니까 이게…….”
“그럴 때가 있지.”
양옥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연기하면 그럴 때가 있어. 눈물 연기하려고 떠올린 것 때문에 자꾸 눈물 나고.”
배우들도 공감했다.
저마다 슬픈 연기를 하기 위해 떠올리는 기억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기도 하고, 영영 떠나보내기도 하고.
지금에야 울고 나서 바로 30초 만에 다시 웃지만, 처음에는 눈물 연기를 하기 위해 쓴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 힘들 때도 있었다.
우주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할 수 있어. 선우주. 할 수 있어.”
“뭘 할 수 있어…?”
선배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보석 같은 눈망울에서 눈물을 슥 흘리던 수려한 미모의 청년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덮었다.
그로부터 10초 후.
“극복.”
평정심을 되찾은 우주의 모습에 다들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얘 때문에 진짜 미치겠다.’
아라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너 방금 전까지 울었잖아. 어떻게 한 거야?”
“울어요? 누가요, 누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우주를 보며 다들 으이구 하며 웃었다.
그렇게 다들 고생했다며, 그리고 잘했다며 신인 배우에게 말을 해 주는 동안.
“어?”
외계인 가족에서 철없는 아들 역할을 맡은 배우 정인우가 황정구 감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이거 촬영 끝난 거 맞아요?”
“어……?”
컷- 하긴 했지만 이 씬의 촬영이 끝났다고 한 말은 없었다.
배우들이 눈을 깜빡였다.
‘왜 끝났다고 생각했지?’
너무나 당연하게 이 씬은 더 찍을 필요가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로배우 송훈이 물었다.
“이보게, 황 감독!”
“네, 선생님.”
“우리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 씬은 다 찍은 거야?”
“제가 말을 안 했나요?”
감독마저도 너무나 당연하게 한 큐에 다 찍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서노을이 말했다.
“막내가 너무 잘해서 그렇게 생각했나 봐요.”
“그러니까. 끝났다는 말도 없었는데 지금 다들 끝났다고 난리 치고 있었네.”
그 말에 황정구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예, 이것으로 스튜디오 촬영은 모두 끝이 났고요.”
“와아아아!”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의 요원 K, 김우주를 맡았던 우주 씨는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고요.”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고생했다, 우주야.”
“감사합니다!”
배우들이 웃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게 원테이크로 되네.’
앞으로 어디로 가서 연기를 하든 간에 대성할 거라는 판단을 하며 배우들이 감탄하고 있는 동안.
우주가 그들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고맙지.”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은 외계인>이라는 드라마의 시청률을 견인해 준 장본인이 우주였다.
초반 홍보와 함께 헤일리 블루를 카메오로 섭외하기도 하고.
더군다나 지금에 와서는 우주가 아닌 사람이 연기하는 김우주는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이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어……? 저건 뭐예요?”
서로 공치사를 하고 있던 뉴블랙의 리더와 출연진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돌아갔다.
슬로건이 달려 있는 수레차가 돌돌돌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4인조가 자기들이 각자 제일 잘 나오는 각도로 찍은 셀카가 담겨 있는 슬로건에 문구가 적혀 있다.
[수고했다 김우주!]
[돌아와라 선우주!]
작은 문구로 ‘집에 언능 와요. 맛난 거 준비할게’ 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간식과 음료들이 담겨 있는 수레를 보면서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커피다! 하며 반겼다.
당사자도 그걸 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서노을이 제안했다.
“그 전에 우리 저거 배경으로 사진이나 같이 찍을까요?”
모두가 동의했다.
* * *
@Sunset_seo
(쑥스러워하는 우주를 두고 외계인 가족들이 짜잔 하고 있는 셀카. 뒤에 졸개들의 사진이 아련하게 ‘훌륭한 배우가 되었구나…’ 하는 것만 같다.)
우리 막내 너무 고맙고 고생했다
외계인 가족♡
#막내_곧_앨범출시 #대박나세요
* * *
비주의 I MOVE 촬영 종료 소식과 더불어 우주의 시트콤도 촬영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올 때.
막판 준비에 열을 올리는 그들의 가수와 마찬가지로, 수플레들도 현재 컴백을 준비하는 모드였다.
‘안티들이 뭐가 이리 많아…….’
추석 때 합동 라이브 방송을 한 이후에 조금 잠잠한가 싶었더니 금세 원래대로 돌아와 창궐한 안티들이었다.
그리고.
조금 난감한 문제도 있었다.
‘우린 안티가 이중으로 있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현재 어마어마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보니, 일반 댓글러도 악플을 다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었다.
뉴블랙의 독특한 포지션 때문에 그런지 팬덤 탑인 보이그룹과 대중성 탑인 걸그룹을 동시에 덕질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물론, 일반 안티들은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중요한 문제는…….
‘견제하는 거 보소.’
앨범을 앞두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는 까들이었다. 아마도 틴스피릿의 악성 팬들로 추정되는 이들.
팬들보다 그들이 더 앨범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우리 애들을 제발 놓아줘…….’
예상 성적이 얼마가 될 거라고 벌써부터 정해 놓지를 않나. 스토리 필름이 싸구려 티가 난다고 하지를 않나.
뉴블랙 TV에 올라온 스토리 필름의 조회수 성적까지.
-컨셉 개오글거려;
-스토리 필름 보면서 레몬이 특정 멤 하나 차별하나 하는 생각 좀 드는 듯..?
-얘네도 좀 방방뛰고 그런 거 해야 되는데 이번에 나올 거 좀 축축 처지고 그런느낌인 듯
-얘네 팬들은 돌을 앓는 게 아니라 성적을 앓음
-뭐만 하면 아무말도 못하게 눈치주는 거 ㄹㅇ 별로다ㅋㅋ
평소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이들에게 마찬가지로 대응을 해 주던 팬들이었지만 큰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얘네가 좀 화력이 줄었나?’
아니었다.
그들이 커진 거였다.
전에는 후 불면 으아아 하며 날아갈 것 같았는데, 지금은 후우우 부는 이들이 도리어 날아가는 듯한 느낌.
더군다나 성공의 징조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스토리필름 조회수 봐봐ㅋㅋㅋㅋㅋ 유입 쩐다
-아직도 유입이 꾸준히 되네
-낙화 때가 24시간 얼마였음??
-뉴블랙은 대중들이 그냥 눌러보는 것도 감안해야 됨ㅇㅇ 타 아이돌과 실제 비교하기엔 경우가 애매
다른 아이돌 조회수를 보고 기겁할 만큼, 뮤비 티저도 아닌 스토리 필름이 저번 낙화의 뮤비보다 상승 속도가 더 빨랐다.
더군다나 계속되는 신규 팬들의 유입으로 빠르게 1억 뷰를 향해 다가가는 낙화.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음악이긴 했다.
‘이번에도 좋겠지……?’
우주선의 솜씨야 믿음이 갔지만 현재 음원 차트에서 뉴블랙이 거두고 있는 성과가 신경 쓰이는 상황이었다.
현재 연간 1위로 유력하게 꼽히고 있는 에이텐의 Attention.
그리고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불꽃놀이와 낙화, 그리고 리혁이 부른 OST ‘Walk Again’ 등등.
보통 전작보다 더 잘 되어야 성공했다고 인식하는 연예계 상황에서, 비교군인 전작이 너무 성공해서 생긴 문제였다.
그렇게 컴백을 기다리며 두근두근하면서도 조마조마하고 있을 때.
‘컨셉 포토 떴다!’
정규 앨범의 컨셉 포토가 떴다.
그리고 수플레들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제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복이라고 보기는 애매했다.
검은색 옷.
어딘가 판타지 세계의 황자들이 입고 다닐 법한 옷을 조금 더 무대와 어울리도록 트렌디하게 개량한 의상이었다.
검은 제복을 입은 뉴블랙이 어두운 배경 속에서 모델처럼 서 있는 사진.
-ㅇ<-<
-존나 좋아ㅠㅠㅠㅠㅠㅠㅠ
-울 애들 진짜 뭐든지 소화력이 대박임 밥도 잘먹고 옷도 잘받고
-제복은 옳다 일단옳다
-규호 까방권 30초
-아니ㅋㅋㅋㅋ 댓 쓰고 있는동안 끝났겠다
-분위기 개쩐다.. 망국의 왕자들 같음
-무대 볼때까지 언제 기다리지ㅠㅠㅠ
누가 뭐라고 하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컨셉 포토에서 풍기는 오묘한 분위기가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컨셉 포토를 기점으로 뮤직 비디오의 티저가 하나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멤버 개인별 티저.
‘지호부터 시작하는 건가?’
붉은빛으로 가득한 배경 속에서 제복을 입은 지호가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탁자에 놓인 왕관을 쓰며 정면을 바라본다.
흑발에 붉은 귀걸이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저번 앨범보다 더욱더 성숙하게 변한 막내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잠시.
“음……?”
수플레들은 뮤비 티저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음악의 변화에 주목했다.
‘뭔가 바뀌는 것 같은데.’
비주얼에 정신이 팔려서 눈치채지 못했던 음악의 변화.
다시금 재생하자, 티저에 어울리는 편곡 버전으로 흘러나오던 ‘Masquerade’의 한 소절이 조금씩 바뀌더니 다른 식으로 변주되었다.
원본과 전혀 다른 소절이지만 왠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
-티저에 마커는 왜 나온 거야??
-마커랑 연장선인건가???
-내 추측인데 마커에 나왔던 멜로디가 이번 정규 타이틀에서 저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 같음
그리고 추측은 정확했다.
매일매일 차례대로 비주, 중현, 리혁, 우주까지.
바람꽃과 Nine, 겨울잠, 낙화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서 마치 진짜 정규 앨범이 나온다는 것을 암시하듯.
그리하여 마지막에 단체 뮤비 티저가 나왔을 때.
“음……?”
귀가 밝은 수플레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주 짧게 나와서 전체 곡이 어떤 느낌일지 감이 안 왔지만, 어딘가 익숙한 멜로디가 느껴졌다.
‘이거 꼭… 뉴블랙 월드 송 같은데.’
무의식적으로 그 멜로디가 떠올랐지만 뮤비 티저에 나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아니겠지.’
수플레들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얼마 안 가 난초에게 물을 주며 랩을 해 주는 중현의 영상이 자동재생으로 나오며 생각이 끊겼지만.
은연중에 무언가를 눈치챌 듯 말 듯한 수플레들이었다.
-뜬금포긴 한데 갑자기 뉴블랙 월드 떠올랐음ㅋㅋ
그리고 그런 댓글들이 올라올 때마다 무수한 추천과 함께.
‘뭐야. 누가 자꾸 비추를 하는 거야?’
자꾸만 붙는 비추 1에 팬들이 눈매를 좁혔다.
* * *
같은 시각.
“묻혀라…….”
“얼른 묻혀라…….”
“눈치 챙겨여, 수플레…….”
노트북 앞에 앉은 뉴블랙 멤버들이 소심하게 비추 1을 누르며 얼른 묻히라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