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15화
수플레들은 가끔 너무 눈치가 빠르다.
“보통 팬들은 가수를 닮는다고 그러잖아여. 전 그렇게 빠른 편이 아닌 것 같은데, 왜 팬들은 눈치가 빠를까여?”
“뭐, 날 닮아서 그런가.”
“리혁이 형, 제가 봐도 형은 아닌 거 같아여.”
“난 눈치 빠른데 안 보는 거야.”
“저도 사실 안 보는 거예여.”
“따라 하지 마라.”
“뜨르흐즈 므르~ 베베베~”
“야!”
유치원생들이 한심한 눈으로 ‘ㅉㅉ’ 할 법한 대화를 주고받는 막내들을 무시하며 댓글창을 살폈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들킨 거 같아요. 형.”
“그러네.”
댓글창에서 ‘왜 뉴블랙 월드송이 연상되지?’ 하는 수플레들을 보며 훈훈하게 웃었다.
“괜찮아. 무대를 잘해서 우리가 수플레들을 현혹시키면 돼.”
“현혹? 유혹인가요.”
중현이가 지호와 빙글빙글 돌면서 깡총깡총 춤을 추었다.
앵무새들이 추는 구애의 춤 같은데, 당사자인 앵무새들도 띠발 하고 욕을 할 법한 춤이었다.
나와 비주가 따스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애들이 미쳐 가는 걸 보니…….’
‘컴백이네요.’
컴백이 다가올 때만 되면 다들 어딘가 나사가 열 개씩은 풀리는 것 같다.
리혁이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물을 지금 3리터 가까이 마시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초조해서 그래. 초조해서.”
계속해서 물을 마셔도 안에서 물이 증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속이 바싹바싹 탄다고 해야 되나.
정규 앨범의 컴백을 앞두고 나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
뮤직 비디오 반응들을 보면 엄청 좋기는 한데, 티저 반응과 노래에 대한 반응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라서.
더군다나 TNT나 틴스피릿도 쭉쭉 올라가다 정규 앨범 때 한 번 주춤한 적이 있기도 하고.
대개 미니 앨범이나 싱글로 잘나가다가 정규 앨범에서 힘이 확 들어가서, 노래가 대중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게 될 때 벌어지는 현상들이 있는데, 혹시나…….
“그거 말이에요.”
물을 벌컥 들이켜는 나를 바라보며 리혁이가 말했다.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그거 걱정 중독이래요.”
“중독?”
“온갖 걱정을 있는 대로 해 놓는 거죠. 이 걱정도 하고, 저 걱정도 하고.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 거예요. 이렇게 최악을 다 상상해 뒀으니까 난 위험에 대비했다, 이런 마인드로.”
“오…….”
내가 말했다.
“그거 딱 너잖아.”
“…….”
내 말에 다들 리혁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 끝이 분노로 살짝 달아오른 가운데 리혁이가 파르르 웃으며 말했다.
“좋은 말을 해 줘도 항상 이 인간들은…….”
“알아. 무슨 말인지는 알아.”
굳이 지금부터 걱정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정규 앨범에는 오히려 동생들보다 내가 더 긴장 상태에 빠져 있는 것만 같다.
반대로 내가 얘네를 챙겨 줘야 하는데.
“너희들은 괜찮아?”
“저야 뭐…….”
중현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형만 믿고 있으니까요.”
“오…….”
“방금 제가 생각해도 좀 흐뭇했는데, 그렇죠. 형?”
“응. 마지막 말만 안 했으면 그랬을 거 같다….”
우리들 사이의 감동스러운 순간은 마치 파도와 같다. 싸아악 해서 밀려오려고 하는데, 싸아악 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젖은 모래도 금세 햇볕에 바짝 마르고.
“아, 근데 진짜 컴백이네여.”
막내가 작업실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말했다.
오후 8시.
오늘은 컴백을 이틀가량 앞둔 날이다. 이제 내일인 일요일이 지나면 월요일이 오고, K-net 방송국에서 컴백 쇼케이스를 한다.
본래는 공연장을 하나 빌리려고 했는데. 석환 형이 말하기를 팬 쇼케이스를 하려면 적어도 체조 정도는 대관을 해야 된다나. 그리고 체조경기장은 얼마 전에 대규모 공사에 들어갔다.
고척돔은 쇼케이스 하나 하자고 빌리기에는 규모가 좀 부담스럽고.
“거기는 장충에서 쇼케한대여.”
“어디?”
“온더스여. 거기 데뷔하는 연습생들 이번에 장충 체육관에서 쇼케한다고 하더라구여.”
“대단하네. 처음부터.”
장충 체육관이면 4천 석 정도 되던가.
이번에 KM 엔터에서 데뷔하는 <온 더 스테이지> 출신의 연습생들의 인기를 생각하면 그럴 만했다.
내일인가 최종 순위 발표를 한다는데.
생방송 초반부터 인원을 데뷔조의 1.5배수를 솎아내고, 매 회차마다 한 명씩 떨어뜨리는 식이라서 정말 인터넷에서도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내일 떨어질 마지막 1명 때문에 난리도 아니라나.
“내일은 주세한이 밀릴 수도 있긴 하겠네요.”
“좀 그럴 수도 있겠다.”
연예 뉴스가 온통 온더스로 도배되어 있다.
온더스의 최종회와 함께 내일은 우리와 주세한이 콜라보로 진행했던 ‘장사합시다’의 4회이자 최종회가 방영될 예정이었다.
아마 연습 때문에 보진 못하겠지만 지난 주에 했던 3회의 헬평 휴게소 에피소드의 초반부가 반응이 좋았던 걸 보면 내일 회차도 반응이 괜찮을 것 같다.
모니터링을 담당해 줄 요원들이 있기도 하고.
한빈 [모니터링은 내가 대신 해줌]
한빈 [대신 곡 써 주셈]
휘연 [(속보) 뉴블랙 우주, ‘틴스피릿’ 앨범 수록곡에 참여한다..]
한조 [????]
휘연 [제 마음속 헤드라인입니다 행님]
은성 [여기 김칫국 파티인가요^^]
정말이지 쓸모없는 모니터링 요원들이었다.
어쨌거나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다시금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호흡을 하며 몸을 풀고는 천장에서 반짝이는 조명을 향해 다시 한번 소원을 빌었다.
이번 앨범도 잘되게 해 주세요.
“……?”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며 중얼중얼하고 있다.
“너네는 왜 날 보고 소원을 비는 건데……?”
“좀 가만히 있어 봐요. 소원 비는 중이잖아요.”
“…….”
하여간.
내가 이내 불상의 표정을 따라 하며 포즈를 취하자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일요일 저녁.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TV가 두 채널로 나뉘었다.
-온더스 한다ㅠㅠㅠㅠ
-이기후 절대 데뷔해
-선거운동하는 사람들 심정을 알 거같음.. 제발 저희 아이에게 한표를 주세요
-ㅅㅂ 1명떨구는 건 개양아치 아니냐
-막판에 1명 추가합격으로 하기로 했습니다ㅎㅎ 하면 뒤진다 진짜
하나는 아이돌 팬들과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온 더 스테이지>의 파이널 무대였고.
다른 하나는.
-주세한 하네요ㅎㅎㅎ
-오늘 회차 끝나면 이제 뉴불백 출시되는 거 맞나요ㅠㅠ
-우주네 할머님이 한다는 군산 백반집 다녀왔는데 못먹고 돌아옴. 대기자 순서가 수강신청급이던디요
-헬평 휴게소장 멘탈 터진 표정 개웃기네요ㅋㅋㅋㅋㅋㅋ
현재 뉴블랙과의 콜라보로 다시금 일요 예능 시청률 1위에 등극한 주세한이었다.
-다들 근데 시청률 어케 보시나요??
-오늘은 주세한이 밀릴 듯
-뉴블랙이 공중부양 정도 해야 이길거예요
-주세한 정도 되니 이만큼 나오는 거ㅋㅋㅋㅋ 케이블에서도 경연 파이널 하면 난리나잖아요
지상파 HBS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서바이벌 예능의 최종회.
폭발하고 있는 온더스의 시청률에도 저번 3회차와 비슷한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는 주세한이었다.
두 예능의 시청자층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러는 동안, 주세한의 시청자들과 수플레들은 TV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규호야 규호야
-울 아빠가 규호가 탑차 보낸거 보고 아이쿠야 하심
-장사 다 끝내놨는데.. 다 끝내놨는데ㅋㅋㅋㅋㅋ
-박규호 : 누구나에게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내가 재료를 더 보내기 전까지는
그중에서 소속사 대표 때문에 황당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팬들이었다.
재고 소진으로 장사를 종료하려던 뉴블랙이 공연까지 해서 민심을 달랬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대표가 보낸 탑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수플레들이 재미있는 드립을 치려고 할 때.
일반 시청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 바로 게시글이 올라왔다.
[표정 분석기 돌려 봤습니다]
(입은 웃고 있지만, 경멸과 분노가 반반으로 표시되어 있는 뉴블랙의 사진.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대표는 어찌 됐을까요
-눈으로 쌍욕함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이건 육성으로 욕 나왔어도 할 말이 없네요
-중현이 화난거 처음 보네요
-화난 곰 인형 같음
-저날 기억나네ㅋㅋㅋ 저 사람때문에 내 차가 그렇게 밀렸군..
부들부들하며 분노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하찮아 보이는 모습에 웃는 시청자들이었다.
그러는 한편.
[대한민국 연예 기획사 대표의 힘]
(박규호 대표가 엄지를 들고 있는 ‘뉴블랙의 ATM이 되겠다’ 제목의 기사 사진.jpg)
추석날 고속도로를 마비시킬 수 있음
레몬 엔터의 대표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는 가운데.
TV 속에서는 갑작스럽게 연장된 장사에 고통 받는 뉴블랙과 주세한 출연진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열심히 장사 하는 멤버들.
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볼까 하며 3초 정도 생각하게 되는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
‘근데 이거 괜찮을까?’
낙화나 불꽃놀이(16)로 입덕한 신규 수플레들이 인터넷 반응이나 뉴스 등을 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홍보가 너무 안 되는 것 같은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에 어마어마한 관심이 쏠리면서, 내일 컴백을 앞두고 있는 뉴블랙에게 관심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황이었다.
크게 불안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홍보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
신규 수플레들은 고인물들을 살폈다.
‘되게 평온하네.’
마치 다가올 것을 예감한 듯 우아하게 컨텐츠를 감상 중인 고인물들이었다.
그렇게 주세한의 방송이 끝날 무렵.
신규 팬들은 왜 오랜 팬들이 평온하게 방송을 시청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오……!’
전국의 무수한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주세한.
그 마지막 장면에 출연진과 함께 소감을 말하고 있는 뉴블랙의 리더가 카메라를 향해 환히 웃으며 말했다.
[네, 그리고 저희 뉴블랙은 다음 달 17일에 컴백을 앞두고 있는데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10월 17일.
친절하게 ‘내일’이라는 자막까지 달려 있는 방송을 보며 수플레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뉴블랙이 뭐 내일 노래가 나오나 본데?”
“어어, 또 노래 나오나 보네.”
전국에서 주세한을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어떤 기사나 예고편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홍보였다.
* * *
드디어 그날이 왔다.
“뉴블랙.”
“뚠뚠.”
“오늘도.”
“뚠뚠.”
“컴백을~ 하네~”
날씨는 맑음.
동생들과 함께 긴장을 풀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암동에 있는 K-net 방송국에 들어섰다.
항상 첫 주 음방의 시작이 이곳이어서 그런가.
음악 방송이 아닐 때면 그다지 방문하지 않는 방송국이어서 그런지, 정말 컴백을 한다는 게 실감이 난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멀찍이서 지나가다 멈추고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직원들에게 꾸벅 인사하며 대기실로 들어섰다.
스타일리스트 쌤들과 함께 쭉쭉 들어오는 행거들.
검은 천으로 우아하게 빚어 낸 듯한 제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소원 성취했어여. 형?”
“약간.”
늘 무대에서 입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교복은 아니었지만, 제복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한조에게 제복을 입는다고 자랑 톡을 보내니 부럽다는 답이 돌아왔다.
의상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동안, 곧바로 K넷 측 스탭들이 대기실로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순서부터 확인할게요.”
“네.”
“일단…….”
지금 시각은 정오.
쇼케이스가 시작하려면 거의 8시간 가까이 남았지만, 리허설 등을 생각하면 시간이 그리 여유로운 편은 아니었다.
친절하게 오늘의 순서와 이벤트 등에 대하여 안내를 받은 후.
“밥이다……!”
“밥!”
“어떡하져, 저 벌써부터 눈물이 나와여.”
마침내 다이어트를 모두 끝내고 원래의 우리로 복귀했다.
스타일리스트 김 실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네.”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예전에 행사 때처럼 밥 먹고 나서 허리 안 맞으면 안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이제 프로예요.”
위장 둘레 정도는 이제 잘 안다고 하는 말에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긴장을 풀면서 즐겁게 식사를 마쳤을 때.
“저, 뉴블랙 분들 VCR 촬영 진행할게요.”
“아, 네.”
매니저 형들이 따라오려고 하는데, 인터뷰룸에서 찍는 인터뷰 영상 같은 거라 공간이 협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저희끼리 얼른 다녀올게요.”
“비주 손 절대 놓지 말고. 오늘같이 긴장 많이 하는 날은 좌우도 헷갈려 하잖아.”
“걱정 마요. 형.”
민기 형에게 웃어 보이고는 K-net 측에서 준비한 인터뷰 룸에서 짧은 인터뷰 영상을 촬영했다.
제작진이 웃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인터뷰 룸을 나설 때였다.
“……?”
인상이 좋은 중년 남자가 문 앞에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우리가 방에서 나오자 굉장히 반갑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워낙에 여기저기서 ‘여!’ 하면 ‘네! 맞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게 습관이라 익숙하게 인사했다.
중현이가 꽃다발을 받아 들며 킁킁 하며 좋아하는 가운데.
“오늘 뉴블랙이 쇼케이스를 한다고 해서 한 번 내려와 봤어요. 하하하.”
“정말요? 감사합니다.”
내려왔다는 건 여기 직원 분이라는 뜻인가.
우리가 웃으면서 상대를 바라보자 중년인이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우리에게 명함을 척 내밀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꽃다발을 줘서 놀랐죠? 저는 여기서 이런 일 하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함필수.
K-net의 어느 부서 국장이라고 명함에 적혀 있었다. 동생들과 함께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네요. 국장님이 여기까지 내려오시는 줄은 몰랐는데…….”
“우리 회사의 귀한 손님인데, 당연히 한 번쯤 와 봐야죠. 안 그래도 우리 딸내미가 성화여서.”
어수룩하게 웃던 함 국장이 우리에게 사인을 해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건네받은 A4 용지에 감사 메시지와 사인을 적으며 건네주자 상대가 기쁘다는 듯 웃었다.
그동안 동생들과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뭘까여?’
‘이상한데.’
갑자기 인터뷰를 당일에 또 찍는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아무리 우리가 요새 잘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쇼케이스 응원해 주겠다고 국장급이 내려올 리가 없었다.
신규 예능이라거나 뭔가 우리에게 바라는 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할 때쯤.
“뉴블랙이 올해 제일 잘나가는 가수잖아요.”
“아유, 아니에요.”
“그래서 기대가 커요. 올해 KMA에서도 우리 뉴블랙이 공연하고 그러면 외국인들도 그렇고, 해외 팬들도 난리 나고 뒤집어질 것 같은데.”
“……?”
함 국장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K넷 뮤직 어워드 담당자거든요. 총책임은 따로 있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아, 네.”
“올해 KMA 무대도 그렇고,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하하.”
왠지 모르게 상대가 이야기할 본론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는 것 같다.
여전히 꽃향기를 스읍스읍 하는 중현이를 제외하고 나머지와 눈빛을 교환할 때였다.
“KMA 하면 글로벌한 시상식 아니겠어요? 그래서 올해도 해외 가수들과의 콜라보를 기획하고 있거든요.”
“재미있는 무대가 많이 나오겠네요.”
“네, 그런데 이게… 홍보가 잘 되려고 하면 큰 건수가 필요하단 말이죠.”
그가 우리에게 비밀 이야기를 해 주듯 말했다.
“우리가 이번에 헤일리 블루를 초청하려고 합니다.”
“정말요?”
“네, 현재 추진하고 있고, 긍정적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요.”
“그렇군요.”
금시초문인데요.
헤일리에게 소식이 들어갔다면 우리한테 바로 메시지를 보내 물어봤을 거다. KMA는 뭐냐고.
함필수 국장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우리 뉴블랙 분들도 블루 씨와 콜라보도 진행한다죠?”
“네, 맞아요.”
“기왕 하는 김에 그것도 KMA에서 한 번 선보이면 반응이 엄청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어때요?”
“좋을 것 같아요.”
“그렇죠? 엄청 대단할 거예요.”
그러더니 본론을 꺼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해 보는 건데… 헤일리 블루 씨에게 뉴블랙이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어떤가.”
“저희가여?”
막내가 화사하게 웃으며 묻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까 친분이 대단한 것 같은데. 그래도 친구가 이야기해 주면 헤일리 블루 씨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고.”
“아하…….”
“물론, 부탁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요. 그냥 혹시나 해서 꺼내 보는 말입니다. 하하하.”
나중에 빠져나갈 구석까지 완벽하다.
그냥 뭐 이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에 잠시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동생들과 웃으며 눈을 마주쳤다.
‘어이없네.’
‘뭐져. 이 역대급 김칫국은.’
게다가 이런 일은 회사나 에이전시끼리 소통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본인들 섭외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으니, 우리 입을 빌려서 어떻게 추진이라도 해 보겠다는 심산인 듯싶어 웃음만 나왔다.
말로는 우리에게 이득이 될 거라고 은근히 말하는데.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내 판단으로는 헤일리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큰 실익이 없었다.
그걸로 홍보하게 될 KMA만 잔뜩 신날 뿐.
어쨌거나.
눈앞의 상황을 먼저 다루기로 했다.
지금의 당황스러운 상황은 매니저에게 전달해 따져 물어야 할 일이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는 이런 일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만한 직급이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 항의할 만한 일도 아니기도 하고.
그저 우연히 만나서 그냥 어워드 얘기를 잠깐 한 거니까.
그러하기에…….
“먼저 회사 분들과 한 번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아….”
표정이 설핏 굳으려던 함 국장이 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재빠르게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겠지만, 따로 이렇게 말한 이유는 음… 긍정적인 이미지. 그래요. 프라이빗한 대화로 헤일리 블루 씨에게 KMA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낸 거니까.”
“네.”
내가 웃으며 답했다.
“만약에 기회가 생긴다면 헤일리한테 이야기를 해 볼게요.”
“그래요? 그래 줄 수 있겠어요?”
“네, 근데… 워낙에 독특한 분이라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아유, 말만 해 줘도 고맙죠. 하하하!”
그걸로 용건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상대가 연신 밝은 얼굴로 우리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사라졌다.
“…….”
“…….”
잠시 적막이 감도는 복도.
리혁이가 핸드폰을 꺼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단 녹음은 해 놨어요.”
“잘했다. 4호기.”
인간 불신이 디폴트인 넷째의 투철한 녹음 정신에 박수를 보낼 때, 당사자가 까치발을 들어 속삭였다.
“아니 근데… 저 사람은 우리 쇼케이스 하는 날에 와서 저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나 지금 너무 당황스러운데.”
“그러니까여.”
멘탈 관리해야 되는 중요한 날에 저런 일을 부탁하고 가느냐는 동생들의 말에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케이넷이잖아.”
“아…….”
리혁이가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을 때, 막내가 속삭였다.
“근데 형, 진짜 헤일리한테 얘기해 줄 거예여?”
“아마도?”
날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웃어 보였다.
“근데 어떻게 얘기해 줄 거라고는 얘기 안 했어.”
“……!”
눈을 동그랗게 뜨던 동생들이 이내 푸근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헤일리는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그동안 한국어 욕이 많이 늘었을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