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2)화 (52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2화

우다다다다.

-이히히히히!

-흐이익!

2층 복도에서 벌어지는 소란에 리혁이 안경을 고쳐 쓰며 책을 읽었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전간기에 대한 존 키건의 설명에 다시 한번 집중하려고 할 때.

-이히히히히!

-히익! 저리 가여!

-히호햐!

우다다다다.

“…….”

탁.

책을 덮은 리혁이 심호흡을 길게 했다.

‘화내지 말자.’

원래 이런 인간들이다.

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남의 방 근처에서 와다다다 하는 이런 몰상식한…….

“후우.”

심호흡을 하며 내면의 평화를 중얼거리는 리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추격전은 멈추지 않았다.

-흐악! 흐아악!

-히호햐!

안경을 벗은 리혁이 침대로 다가갔다.

베개에다 얼굴을 파묻고 으아아아! 하며 분노를 분출하고는 이내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투다다다다다!

“지호야아! 잠깐만 서 봐!”

“아, 뭔데여!”

1층에서 막내와 맏형이 소파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리혁이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내려갔다.

“무슨 일인데 이 밤에 소란이에요?”

“리혁아, 잘 왔어!”

“…….”

눈이 희번덕거리는 리더가 피를 입가에 묻힌 채 웃고 있었다.

드디어 지구인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우주가 말했다.

“아니, 지호한테 잠깐 서 보라고 하는데, 얘가 절대 안 서잖아. 잠깐 얘기할 게 있다니까.”

“입가에 피 좀 닦고 와여! 와, 나 이 형 미친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여!”

어지간히 놀랐는지 여전히 게이밍 헤드폰을 낀 채 서 있는 막내였다. 헤드폰 줄이 허리춤에서 대롱대롱 움직인다.

‘어쩌다 내가 이런 바보들이랑 팀이 된 걸까.’

스스로의 팔자에 대해 기구함을 느끼던 리혁이 티슈를 뽑아 리더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입부터 좀 닦아요.”

“아, 그래.”

그러는 동안 거실에서 벌어진 소란을 들었는지 비주와 중현도 각자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우주 형이 갑자기 입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 제 방에 뛰어 들어왔어여. 막 히호야! 히호야아아! 하면서.”

“…….”

눈을 깜빡이던 비주가 괜찮아요, 형? 하면서 다가가고 있을 때.

소파에 둘러앉은 졸개들에게 리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전해 왔다.

“석환 형한테 우리 초동 판매량 얘기 전달 받았거든.”

“초동이요? 아…!”

그러고 보니 일요일 밤이었다.

‘초동’이란 단어에 그들의 가슴이 콩닥거리고 있었다. 비주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어때요, 형? 우리 저번보다 잘 나왔어요…?”

“응.”

“와, 다행이다아…….”

가슴을 쓸어내리던 비주가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그와 함께 멤버들 모두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저번보다 좋다는 이야기는 확실하게 들었는데.

대체 얼마나 나왔기에 저 평정심의 달인이 이 야밤에 흥분한 걸까.

“우리 앨범이 이번에 얼마나 팔렸냐면…….”

리더가 이윽고 그들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일단 숫자의 개수가 눈에 들어온다. 몇십만 장 단위를 표시하는 6자리의 숫자가 있는 가운데.

“어……!”

맨 앞자리에 써 있는 6에 심장이 덜컥 멈추는 듯한 기분이었다.

[613,8**]

중현이 입을 멍하니 벌리며 말했다.

“이거 육십…….”

“육십일만…….”

막내가 맏형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을 뺏어와 눈앞에 가까이 댔다. 나머지 셋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을 발견한 구석기인들처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61만?’

일주일 동안 앨범이 61만 장이 팔렸다는 소식이었다.

막내가 소파를 팡팡 치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 그! 그 뭐져. 우리 낙화 때 얼마나 팔렸어여?”

“그때가 우리 36만장이었어.”

이번에는 그래도 40만 정도면 어느 정도 선방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건 처음 본다.

어느 정도 좋았다면 와! 하고 반응이 나왔겠지만, 압도적인 숫자에 찌르르한 소름이 목줄기를 타고 등에 쫘악 퍼진다.

네 명이서 침을 꿀꺽이는 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울려 퍼졌다.

“…….”

얼이 빠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멤버들.

리혁이 물었다.

“틴스피릿이 저번에…….”

“56만 장인가 그랬을 거야.”

“…….”

이게 말이 되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얽혀 들었다. 올해 여름에 틴스피릿의 초동 판매량을 보면서 흐어어 했던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래도 괜찮나?

기쁨이 몰려오기 전에 일단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왔다. 전례 없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어…….”

그러고 있을 때.

눈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서 있는 리더가 그들에게 팔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졸개들아.”

“…….”

“우리 대박 났다.”

그 순간 긴장이 착 풀렸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서리혁은 멤버들과 함께 와아아아 하면서 방방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으아아아아아!”

“와아아아!”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한 채 와아아아 하면서 카페트 위를 방방 뛰었다.

행복이라고 해야 할지 쾌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무언가가 몸을 강하게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앨범 등에 있어서 이런 진짜배기 1위를 해 본 것이 처음이었다. 혹시나 하며 가끔 상상하기만 했던 순간이었는데.

“리혁이 형, 또 울어여?”

“아닌데.”

킁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와아아아 하던 멤버들 사이에서 비주가 헛! 하며 말했다.

“근데 아랫집 사람들 자고 있을 시간이에요.”

“아……!”

어깨동무를 한 채 카펫 위에서 방방 뛰던 이들이 아차 하며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

왠지 모르게 자꾸 씰룩씰룩 미소가 나오는 기분.

그로부터 10초 후.

“……!”

“……!”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며 펭귄처럼 꿈틀꿈틀거리는 다섯 멤버들이었다.

*   *   *

역대급 성적표에 가수들이 기쁨을 표현하고 있을 때.

수플레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와, 와…….”

육성으로 ‘와’ 하면서 감탄이 나왔다.

[뉴블랙 정규 1집 ‘DEEP BLACK’ 앨범 초동주 마감]

총판 : 613,8xx

61만 3,800여장.

올 여름에 컴백한 틴스피릿의 정규 앨범이 기록한 56만 장보다 5만 장 더 높은 수치였다.

‘진짜 60만을 뚫었어…?’

초동 6일차까지만 해도 이번에 틴스피릿 기록을 뛰어넘나, 하며 은연중에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날이 되더니 훌쩍 뛰어넘어 60만 장까지도 돌파했다.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지금 1위가 된 61만 장에 이어 틴스피릿이 56만 장을 기록했지만, 바로 그다음이 올해 나왔던 ‘별 : Into the Black’의 36만 장이었으니까.

그 아래는 또 20만 장 대.

-ㅁㅊ..

-미친 존나 ㅈ라 팔앗어

-와 미쳤네ㅋㅋㅋㅋ 61만장

-기대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ㄷㄷ

-ㄹㅇ 천상계네

-와ㅋㅋㅋㅋㅋㅋ 50만장 넘기는 게 가능하냐 마냐로 얘기나왔던게 엊그제 같은데; 다이나믹하다 돌판

-저기서 중국 공구가 얼마인지를 봐야될 거 같은데

-ㅊㅋㅊㅋ 이번에 솔직히 터질거 같았음

여기저기서 놀라고 있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반응들을 보고 있는 한편, 수플레들끼리도 여기저기 뭉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해 냈다ㅠㅠㅠㅠㅠㅠ 해냈어

-우리 이제 귀여운척 못해..?

-그건 진즉에 못했어

-하.. 너무 좋아서 잠이 안 와

-근데 이 정도로 잘나올줄은 몰랐어;;

무엇이든 까 봐야 안다는 말이 통하는 업계인 만큼, 팬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얼떨떨하면서도 기쁠 뿐.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일 났네.’

뻔히 예측되는 반응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SNS나 아이돌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어가자, 게시글이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었다.

‘진짜 일 났네…….’

열이 오를대로 오른 틴스피릿 팬들이 폭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네 ㅅㅂ 1위 축하하고요 존나 대스타세요

-솔직히 61만장 말이됨????

-뉴블랙 초동 수치 지금 이상하다고 말 나오는 이유.jpg (스샷 추가)

-해외팬덤 해외팬덤 ㅇㅈㄹ하는데 ㄴㅂㄹ은 뭐 도쿄돔 입성이나 할 수 있냐ㅋㅋㅋㅋㅋ

-날때부터 1위인 것처럼 구는 거 ㅈ같네

-비교질 작작해

-이건 솔까 수사감인 듯

이런저런 수치 등을 근거로 뉴블랙 초동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하는 댓글부터 시작해서 그야말로 폭주 중이었다.

사실상 모든 지표에서 뉴블랙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름 최후의 보루였던 앨범 판매량에서조차 뉴블랙이 1위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그간 대중성은 뉴블랙이지만, 실제 아이돌판에서는 틴스피릿이 1위다 하며 선을 그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1등이란 자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올해 연말에 나오기로 예정된 틴스피릿의 앨범은 리패키지 앨범.

정규 앨범 등에 타이틀곡 한두 곡을 추가해 새로운 포장지로 판매하는 것이 리패키지 앨범인데.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리패키지 앨범은 정규 앨범보다 확연히 판매량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하기에 내년 정규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올해의 초동 1위는 뉴블랙이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때 가서 또 틴스피릿이 압도한다는 보장도 없고.

‘흐름이 중요한 거니까.’

미스터 프로듀서나 주세한 같은 국민 예능에 이어서 정규 앨범까지 아이돌판에서 대박이 터진 상황.

아무리 ‘뉴블랙은 대중성, 틴스피릿은 팬덤’이라고 견제를 하려고 해도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팬들이 댓글 등을 살피며 눈매를 좁혔다.

‘와, 선 넘네.’

아예 날조까지 하면서 루머를 퍼뜨리고 있는 모습에 반박 댓글을 달거나 증거 자료를 남기는 팬들이었다.

일단은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여기에 싸움을 부추기는 듯한 이들까지 얽혀들면서 게시판이 순식간에 개판이 됐다.

-그럼 뉴틴텐임?

-와 뉴블랙이 이제 원탑이네

-투탑 아님?? 솔직히 이제 와서 뉴블랙이 틴스랑 비슷해진 거지

-시발 탑탑탑 이 새기들 다 집에 다보탑 세워야됨

-가수들끼린 사이 좋은데 팬들은 왜 이러냐ㅋㅋ..

때 아닌 격한 논쟁이 오가고 있는 한편.

틴스피릿의 팬들이 일당백으로 논리를 펼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반응은 뉴블랙이 우위가 아니냐는 평이었다.

-개싸움날까 봐 말 안 얹기는 하는데 솔직히 지금까지 해투 규모나 초동만 가지고 돌판 1위 이런 건 좀 글치 않나..?

-솔직히 미프나 주세한 같은 국민 예능나오고 차트도 ㅈㄴ 씹어먹는데 여기서 쟤네가 뭘 더 증명해야 될지 모르겠음

-기준이 다를수있기는 한데ㅇㅇ 일반인들한테 아이돌 1등 누구냐고 하면 요새는 뉴블랙 나올걸

-대중성만 좋다고 조롱하다가 음판 뛰어넘으니 태세변환하는 거 소름ㅋㅋㅋ

그러자 곧바로 댓글 분위기가 또 바뀌기 시작했다.

-원탑 논쟁 같은 거 지긋지긋하고 환멸난다 진짜ㅋㅋㅋ

-애초에 초동 따지고 그런 것도 기괴함;

-아니 텐티랑 틴스 초동 신기록 세울때는 잘만 1위 어쩌구 하더니 왜 갑자기 분위기 이럼

-극성 애들이야 워낙 극성이고 너네도 좀 자제해

-ㅇㅇ 양쪽 다 그만했으면 좋겠다.. 이게 뭔일이야

-둘 다 좀 자제해; 돌판 1위하면 뭐 어쩌려고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어

순식간에 너도 나쁘고 나도 나쁘다는 양비론으로 끝나 가는 흐름에 수플레들이 눈을 깜빡였다.

‘아니, 쟤네가 먼저 때렸다니까…?’

갑자기 때리기에 맞대응을 했더니 ‘거 조용히 좀 하고 삽시다’ 하며 나오는 듯한 분위기였다.

상대측이 그런 분위기에 가세했기 때문이었다.

뉴블랙이 현재 꼭대기에 올라갔다는 흐름을 막을 수 없으니 팬들을 극성으로 몰아가려는 전략인 듯했다.

‘와, 장난 아니네…….’

지금까지 들어왔던 견제는 장난이었던 것처럼 미친 듯이 전면전으로 들어오는 상대 측이었다.

‘연말까지 시끌시끌하겠네.’

어찌 보면 한 번은 겪어야 할 진통이긴 했다.

TNT와 틴스피릿의 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기도 했고, 이 바닥에서 평화로운 교체기는 없으니까.

그렇게 소란이 조금 잠잠해졌을 때.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제대로 주목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 신기하긴 하다ㅋㅋㅋㅋ (뉴블랙 초동 추이)]

2015 : 7만장(바람꽃) → 12만장(나인)

2016 : 22만장(겨울잠) → 36만장(낙화) → 61만장(엠파이어)

성장세 미친 듯ㄷㄷ

첨부된 그래프에서도 기울기가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7만에서 61만으로, 거의 10배 가까이 성장한 수치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특히나 올해는 1년 새에 거의 3배 성장.

-규호야 레몬 상장 안 하냐

-이렇게 보니까 더 미쳤네ㅋㅋㅋㅋㅋㅋ

-예전에 뉴블랙 앨범은 무슨 피보나치처럼 오르냐고 누가 그랬던거 떠오른다

-8 13 21 34 55.. 찐이었나

-다음 앨범은 그럼 80만 장인가ㅋㅋㅋㅋㅋㅋ 개웃겨

-근데 뉴블랙 앨범은 늘 이전 두 앨범 합친 것보다 다음 앨범 초동이 더 높은 거 알아?

-어 진짜네

-전체적으로 K팝 파이가 커진 느낌이 있는 듯ㅇㅇ 작년만 해도 20만장 돌파하면 탑이었잖아

더군다나 모두가 놀라고 있는 것은 현재도 뉴블랙이 성장세를 멈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국내, 해외 팬들도 그렇고.

완숙기인 5년차나 6년차가 아닌 3년차답게 현재 거의 탑을 찍은 상황에서도 쭉쭉 올라가는 상황.

‘여기서 또 뭐가 어떻게 되는 건가…?’

조정 기간이 있겠지만 수플레들 모두 오늘로서 뉴블랙이 진짜 1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이런데도 여기서 또 올라간다니.

“…….”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되면서 가슴이 설렜다.

현실감이 없는 듯하면서도 뿌듯한 느낌.

여러모로 가수에게도 팬들에게도 잠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   *   *

거의 날밤을 샌 것 같다.

“어으어…….”

거의 새벽 5시까지 가슴이 들뜨고, 현실감도 없고.

바보 같은 생각이긴 한데 마치 잠이 들면 모든 게 날아갈 것만 같아 잠을 못 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동생들과 소파에 널브러져 있었다.

“일어났어요. 형?”

“어…….”

샤워를 마쳤는지 츄리닝 차림의 중현이가 수건으로 머리를 북슬북슬하게 말리고 있었다.

“넌 잤어?”

“아뇨. 다들 자길래 운동 방에 가서 운동했어요.”

“체력 진짜 부럽다.”

여전히 그 열기가 남아 있는지 중현이의 몸에서 허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듯한 착시가 들었다.

비주가 자는지 흘끔 확인한 중현이가 냉장고에서 꺼낸 물병을 그대로 높이 들었다.

“신기한 거 보여 줄까요. 형.”

“아니.”

마치 웨이터가 잔에 물을 따르듯이 허공 높이 솟은 물병에서 물줄기가 쪼르르르 중현이 입으로 들어간다.

뿌듯해하는 눈빛을 외면하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음원 차트에 정규 앨범이 까맣게 뒤덮여 있고, Empire가 1등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니 축하 문자들이 도착해 있고.

……그중에서 조 이사님은 대표님이 눈을 비비며 훌쩍훌쩍 울고 있는 사진을 보내 주셨다.

“근데 이거 뭐라고 답장해야 되지?”

“대표님의 우시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감사 인사와 이모티콘으로 때웠다.

근데 여전히 현실감 없네.

물론, 이런 앨범 판매량이 잘 나왔다고 이제 우리가 1등이다아아 그런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우리 재작년에 데뷔할 때 막 상상으로 했던 얘기들이잖아. 이런 게.”

“그렇죠.”

중현이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렇게 둘이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머지 굼벵이들도 침을 스읍 하며 일어났다.

여전히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막내를 흔들었다.

“일어나, 굼벵아.”

“저는 더 잘 거예여. 새나라의 어린이 할 거예여.”

“일어나요, 지호 형.”

“…….”

막내까지 잠이 확 깬 표정으로 일어났다.

오전 10시.

초췌한 얼굴로 아침 식사를 빠르게 처리하고는 스케줄을 하기 위해 샵에 들러 메이크업을 마쳤다.

오늘의 목적지는 잠실.

어제 면세점 콘서트를 위해 들렀던 주경기장 옆에 있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스케줄 장소였다.

“힘내여. 형.”

차에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막내가 어깨를 두드렸다.

“중현이 형이 던진 공 맞는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여.”

“조용히 해…….”

“흐하핫! 아 너무 재미있다!”

2016년 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의 시구와 시타.

중현이가 시구를 하고 나면, 그 뒤에 빈 허공에다가 방망이를 후웅 하고 휘두르는 게 내 역할이었다.

공을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지.

“그동안 즐거웠어요.”

리혁이가 내게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거예요. 함께 해서 즐거웠고.”

“조용히 해.”

“음? 어디서 유령이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 막내와 깔깔깔 웃는 넷째였다.

“형, 이거 먹어요.”

“어?”

“사과예요.”

비주가 락앤락 통에 담긴 사과를 내밀었다.

“…….”

비주야. 넌 또 왜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데.

마치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사람처럼 대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눈가가 촉촉해질 뿐이었다.

그동안 어깨를 붕붕 돌리는 중현이를 바라보았다.

“중현아. 살살해.”

“저 야구 잘해요. 형.”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야구부였잖아요. 그때도 사람은 한 번도 맞춘 적 없어요.”

그러더니 아 했다.

“제가 공 던지면 포수 형들이 좀 아파했던 거 같긴 한데.”

“…….”

“괜찮을 거예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막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근데 중현이 형, 오늘 기분 되게 좋아 보이네여.”

“응, 오랜만에 야구 하니까 재미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구단에 아는 사람도 하나 있거든.”

“아, 그래여?”

“요즘은 연락 없긴 한데, 그래도 꽤 친했어서.”

오늘 우리가 시구를 맡은 KG 드래곤스의 선수 하나가 중현이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듯했다.

“저 진짜 물어볼까 봐여. 초등학교 때도 정말 중현이 형이 허약했던 건지 물어봐야겠어여.”

막내의 호기로운 결심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으면서 멀찍이 눈에 들어오는 ‘서울종합운동장’이라는 팻말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바사삭.

중현이가 먹으려고 손에 쥐었던 사과가 가루가 되어 흘러내렸다.

“어, 터졌다.”

“…….”

나도 모르게 운전석에 있는 원석이 형을 불렀다.

“형, 차 돌려 주세요. 저 이 스케줄 취소할래요.”

“이미 늦었어.”

동생들이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내 눈앞은 뿌옇게 변해 갈 뿐이었다.

진짜 오늘 괜찮은 거 맞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