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3)화 (52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3화

49장. 공 굴러가유

잠실야구장 앞.

“왔다!”

“도착했다!”

야구장 앞에 모여 있던 사진 기자들과 홈마들이 우르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검은색 밴.

오늘 시구, 시타를 맡았다는 뉴블랙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연예부 사진기자들과 홈마, 팬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아아아아! 밀지 마요!”

“내 카메라!”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진 가운데, 드르륵 하고 밴의 문이 열리면서 뉴블랙 멤버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나올 때마다 커져 가는 환호성.

“안녕하세여~!”

사교적인 미소를 띠며 인사하던 막내를 시작으로 리혁, 비주가 차례대로 내렸다.

그리고 등장한 중현.

“안녕하세요.”

푸근하게 인사하는 중현의 모습에 카메라 찰칵이는 소리들이 촤라라라 울려 퍼졌다.

사진 기자들이 오 했다.

‘오늘 표정 좋네!’

평소의 온화한 미소와는 조금 다르게, 오늘따라 중현의 기분이 몹시도 좋아 보였다.

이따 사진을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유독 오늘따라 눈에 띈다.

그러는 한편.

“음……?”

마지막으로 내린 리더, 우주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얼굴이 붓기 쉬운 이른 오전이나 새벽 시간대가 아니면 보통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쓰지 않아 기자들이 좋아하던 뉴블랙이었다.

무의식적으로 꽃무늬 옷을 피하기 위해 얼빡샷으로 줌을 땡겼던 이들이 다급하게 백스텝을 했다.

‘맞다! 이제 안 입지!’

회색 후드티에 청재킷을 걸친, 늘씬한 체격의 리더가 긴 다리를 쭉쭉 내뻗으며 중현의 뒤를 따랐다.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들고 몰려드는 이들의 인파에 소란이 벌어질 때.

“안녕하세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는 우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KG 드래곤스 구단 직원들의 안내를 받은 뉴블랙이 관계자용 출입구 안으로 사라졌다.

출입구 안까지 뛰어든 대포 카메라들이 제지를 받고 쫓겨날 때.

“이야…….”

사진 기자들이 혀를 내두르며 카메라를 확인했다.

“사진 한 장 찍기가 힘들다. 정말.”

“얘네는 갈수록 따라붙는 애들이 더 많아지는 거 같아요. 아까 나 카메라 놓칠 뻔했잖아.”

“이번에 틴스피릿 초동도 넘었다면서. 그럼 말 다한 거지.”

예능 등을 통해서 한창 흐름을 타기도 했지만, 이번 앨범으로 이제는 국내 톱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냐는 평이 나오는 뉴블랙이었다.

“그래도 사진은 잘 나왔네.”

“근데 우주는 오늘 선글라스 왜 썼대요?”

“그러게. 평소에 선글라스 별로 안 좋아하더만.”

그런 말을 하던 사진 기자들이 빠르게 인터넷에 업로드할 사진을 셀렉하기 시작했다.

‘근데…….’

선글라스로 가리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사진 속 우주의 표정이 슬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그때 누군가 말했다.

“오늘 시구랑 시타는 그래서 누구래요? 회사에선 뉴블랙 사진 찍어 오라고만 해서.”

“시구가 중현이고… 시타가 누구더라.”

일단 리혁이는 빼고.

나머지 셋 중에서 누구였더라 하던 사진 기자가 아 하며 말했다.

“시타가 우주일걸.”

“아.”

그 말에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떨리겠네. 헛스윙만 하면 되는 시타라고 해도, 김중현이 공을 던지는 거잖아요. 눈앞에서.”

“시속 백 몇 나오는 거 아냐?”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뉴블랙의 래퍼가 보여 주는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대해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전투용 흑염소를 제압하기도 했고, 돌림픽에서는 골킥으로 슛을 넣기도 하고. 얼마 전엔 주세한에서 차량이랑 나란히 달렸다.

농담이지만 공보다 빨라서 축구를 잘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게 중현이 아니던가.

보통 시타라는 게 헛스윙으로 후웅 하고 끝내는 것이지만, 그런 중현의 공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당연히.

“엄청 떨리…… 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셀렉하고 있던 사진에서 우주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

눈치 빠른 사진 기자들이 ‘!’ 하는 표정을 짓고는 인터넷에 올릴 기사 제목을 빠르게 작성하기 시작했다.

-[포토] 중현 “시구해요”, 우주 “시타…….”

-잠실야구장 찾은 뉴블랙, 우주 ‘중현이 공 받아야 합니다..’

-[포토] 중현 “오늘 우주 형한테 공 던져요~”

누가 보기에도 그럴싸한 제목이었던 터라 네티즌들도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주 표정 왜일케 불쌍해

-제목에 시타 왜이렇게 ㅅㅂ 같나요ㅋㅋㅋ

-나같아도 중현이 공 받는다고 하면 멘붕온다ㅋㅋㅋㅋㅋㅋ

-기억할게

-중현아 살살해.. 살살.. 우주는 아가야 뼈가 뽀각돼

-근데 왠지 우주가 받아칠 거 같음

-뉴블랙TV 단골 멘트 ‘여러분! 이게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

-구독자 열 받게 하는 멘트 1위ㅋㅋㅋㅋㅋㅋ

-다들 걱정 ㄴㄴ하세요 저래 놓고서 또 칩니다

이제는 멤버들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대중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야구하나?’

야구에 별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뉴블랙의 시구 소식이 퍼지면서, 플레이오프 3차전에 대한 관심이 평소보다 소폭 오르고 있었다.

*   *   *

건물 안쪽으로 들어와 바깥의 소음이 잠잠해졌을 때쯤.

비주가 웃으며 말했다.

“형, 이제 선글라스 벗어도 돼요.”

“응…….”

동생들이 잔뜩 기대를 품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윽고 내가 선글라스를 벗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하하핫! 아 대박이다!”

“흐하하!”

촉촉하게 변한 내 눈가에 세상에서 제일 신난 사람들처럼 웃는 망나니들이었다.

진짜 꼴 보기 싫다.

원석이 형까지 배를 잡고 웃는 모습에 우리를 안내하던 KG 드래곤스 홍보팀장님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무슨 재미난 일이 있었나 봐요?”

“아, 이제 중현이 형 공 날아오는 걸 눈앞에서 봐야 된다고, 아침부터 엄청 긴장해 있어여.”

“아! 하하하하.”

사람 좋게 웃던 홍보팀장님이 농을 던졌다.

“중현 씨한테 지금부터 잘 보이셔야 되겠네.”

“…….”

내가 중현이에게 손하트를 보내며 웃자, 리혁이가 중현이의 귀에다 뭐라고 속닥속닥거렸다.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내 하트에 대해 어색하게 ‘퉤’ 하고 쑥스러워했다.

“흐하하하!”

“야, 서리혁. 너 이리 안 와!”

“느아아~는 당신보다 빨라요~”

메아리처럼 느아아 하고 앞으로 사라지는 리혁이의 뒷모습에 가소롭게 웃을 뿐이었다.

막내가 물었다.

“안 따라가여?”

“쟤 어차피 멀리 못 가.”

“아. 맞다.”

아니나 다를까.

20미터쯤 앞에서 헥헥 하면서 무르팍을 붙잡고 있었다.

“치타도 몇 분은 달린다던데. 넌 그거 달리고 지치냐.”

“으어! 흐…어!”

“수중 생물 출신이라 그런가 봐여.”

“으허어어!”

나와 막내의 주고받기에 리혁이가 가슴을 팡팡 치며 환장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난 리혁이가 숨 찰 때가 제일 좋더라. 대꾸도 못하고.”

“저두여. 이때가 제일 좋아 보이긴 해여.”

그런 말을 하고는 우리 옆에서 따라붙고 있는 KG 드래곤스 측 비하인드 캠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희 사이 엄청 좋습니다. 그죠, 리혁 씨?”

“아……!”

“아, 맞다. 라고 하네요. 하하하.”

내가 어깨동무를 하며 웃자, 카메라 뒤편에서 구단 홍보팀 직원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홍보팀장님이 말했다.

“우리 이 대리가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에 보네. 저번에 이견우 씨 왔을 때 딱 저 표정…….”

“팀장님.”

“응, 그래. 내가 입에 지퍼 채울게.”

그러곤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뉴블랙이 온다고 하니까 우리 직원들도 난리가 나 가지고. 저 봐요. 저기, 다들 사무실 밖으로 나와 가지고.”

그러고 보니 복도에 사람들이 진짜 많았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우와아아 하며 자기들끼리 눈을 크게 뜨고 뭐라고 하거나, 핸드폰 카메라를 든 직원들도 있고.

중간에 의자에 앉아 있는 선수들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어, 안녕~!”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다시금 동료와 대화를 하던 야구 선수.

그에게 다른 야구 선수들이 야야 하면서 툭툭 치자, 당사자가 ‘어?’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우! 안녕하세요!”

허둥지둥해서 모자를 벗고 꾸벅 하는 모습에 우리도 마주 웃으며 손을 튕겨 주었다.

우리를 아는 사람이라 착각해서 인사한 야구 선수의 모습에 주변 선수들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머쓱했던지 그 선수가 ‘팬이에요!’ 하며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이쪽으로.”

KG 드래곤스 홍보팀장님이 우리를 널찍한 대기실로 안내했다.

비닐에 싸인 유니폼과 모자를 건네주던 관계자들이 나가고, 빠르게 상의를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오오오오……!”

대기실 거울 앞에 서자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야구 유니폼 자체가 좀 예쁜가?”

“우주 형, 이제 우리 다음 앨범 컨셉은 야구 소년들이에여.”

“나쁘지 않네.”

원석이 형도 핏이 좋다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진짜 야구부 소년들이 된 것처럼 내가 보기에도 핏이 굉장히 좋았다. 이대로 야구 드라마를 찍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현이 형은 진짜 야구 선수 같아여.”

“그래?”

야구 모자를 머리에 슥슥 눌러쓰던 중현이가 씩 웃었다.

워낙 훤칠하고 어깨가 넓어서 그런지, 중현이는 정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렸다.

눈썹이 짙고 선이 굵은 인상이라 내가 처음 봤을 때 운동부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게 떠오른다.

“잘 어울리나.”

중현이가 중얼거리며 거울 속에서 야구 선수복을 입은 스스로를 빤히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은근히 미묘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내 씩 웃은 중현이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형도 잘 어울려요.”

“그래?”

하기사 옛날부터 스포츠와 엄청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운동을 못해서 문제였지만.

‘우주는 너네가 가져!’, ‘아니야! 너네가 가져!’ 하던 군산초 2학년 1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세상에, 내가 운동복을 입다니.”

“그, 감동 포인트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리혁이의 말을 무시하며 등 뒤에 써 있는 ‘선우주’ 라는 이름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자, 같이 사진 찍자.”

다 같이 중현이를 중심으로 브이 하면서 SNS에 올릴 셀카를 찍고는 구단 관계자들에게 준비가 다 끝났다고 말했다.

이제 시구, 시타를 연습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구장 안에 이런 연습실이 있구나.”

“신기하네요.”

우리가 안내 받은 곳은 그물망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공간이었다.

보통 야구장 하면 객석이랑 무대….

“그 뭐라고 하지. 야구장 무대를?”

“야구장이 야구장 아니에여?”

“필드일걸요.”

리혁이의 말에 오오 했다.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드래곤스 홍보팀장님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게 직업병이라…….”

맨날 무대에 서다 보니 다른 직업군들이 일하는 곳들의 호칭이 헷갈릴 때가 가끔 있다.

어쨌거나 우리가 있는 곳은 온통 초록색인 연습실이었다.

실제 야구장 같은 초록 바닥과 초록색 그물망.

뒤를 돌아보니 연습장 너머에서 KG 드래곤스의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원래 이렇게 많은가요?”

“뉴블랙 분들이 왔다고 하니까 그런가 봐요. 보통 여배우 분들이 와야 이 정도긴 한데…….”

마치 야구단 전체가 출동한 듯한 분위기였다.

중현이가 그 속에서 글러브를 끼고 목을 뚝뚝 꺾는 동안, 나는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방망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오…….”

내 생각보다 무게가 있다.

방망이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무게감을 익혔다. 그와 함께 내 몸이 저절로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미튜브에서 봤던 타자들의 동작들이 동기화되는 듯한 느낌.

방망이가 손에 익을 때쯤, 막내가 말했다.

“어서 그걸로 중현이 형을 공격해여!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여.”

“안 돼.”

내가 고개를 저었다.

“실패하면 내가 죽어.”

“그건 또 그러네여.”

중현이가 글러브를 낀 손을 꼼지락거리며 몸을 풀고 있는 동안, 이윽고 뒤편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처음 감상은.

“우와…….”

키가 굉장히 크다는 것이었다.

190 정도는 될 법한 키에 널찍한 어깨, 모자 아래로 드러난 북극곰 같은 인상의 얼굴이 보였다.

중현이 옆에 서니 갈색곰과 북극곰 듀오 같다.

“안녕하세요! 송윤호라고 합니다.”

“와아아아!”

쾌활하게 웃은 송윤호 선수가 이내 중현이와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냐?”

“뭐, 잘 지냈지.”

푸근하게 웃으며 안부에 답하던 중현이가 우리에게 말했다.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같이 야구부 했었던.”

“오, 이분이 바로……!”

“네, 중현이가 뭐라고 말했을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맞습니다.”

욕하진 않았죠? 하며 서글서글하게 웃는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성격 좋은 사람들 특유의 미소였다.

어떤 선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니폼은 엄청 많이 팔릴 것 같다.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야구 선수들이 말했다.

“뭐야. 동창이었어?”

“윤호야. 동창인데 우리한테 얘기도 안 해 줬냐!”

저쪽도 금시초문인 듯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던 송윤호 선수가 선배들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시구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하네요. 얘가 옛날부터 야구부 에이스였거든요.”

“오래전이니까.”

중현이가 몸을 풀며 말했다.

“다시 배워야지.”

“그런가?”

중현이를 위아래로 훑던 송윤호 선수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듯하는 모양새에 중현이가 마주 손을 잡았다.

“오…….”

야구 선수가 감탄했다.

“힘이 여전히 좋네. 속도 꽤 나오겠는데.”

“그래?”

“근데…….”

무언가 기분이 좋다는 듯 상대가 환하게 웃었다.

“내가 더 강하다. 이제.”

그 말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뒤에 있는 야구 선수들이 혀를 차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저저 일반인보다 힘 좋다고 자랑하는 거 봐라.”

“일반인보다 강해서 뭐 하려고?”

“저저… 어휴. 밥 먹고 운동만 하는 애가 노래 부르는 사람 이겨서 좋단다.”

선배들의 힐난에 송윤호 선수가 벌건 얼굴로 외쳤다.

“아니, 선배님들. 얘는 일반인이 아니라니까요!”

“우우우우!”

“와… 억울하네.”

엄지를 거꾸로 들고 놀려 대는 모습이 마치 군대에서 후임을 놀려 대는 짓궂은 선임들 같다.

송윤호 선수가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

“네, 뭐. 그럼 투구 동작 좀 알려 줄게요. 공 쥐시고.”

중현이가 척 쥐자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태로 이렇게 와인드업을 해서…….”

동작이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이뤄진다.

다리를 쭉 올린 190cm의 선수가 팔을 촤악 뻗자, 빠른 속도로 공이 휭 하고 날아갔다.

대충 던진 것 같은데도 속도감이 장난 없었다.

팡!

이내 쪼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의 글러브에 공이 안착한다. 다시 공이 이쪽으로 날아오면서 송 선수가 공을 탁 받았다.

“자, 이제 해 봐.”

뒤에서 다른 야구 선수들이 너무 대충 알려 주는 거 아니냐며 다시금 비난을 퍼붓고 있을 때.

중현이가 공을 쥐고는 자세를 잡았다.

“자세 좋고.”

옆으로 물러난 송윤호 선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중현이가 집중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 눈매가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진다.

곧이어 다리를 쭉 올리고, 공을 잡은 손을 쭈욱 뻗었다.

“…….”

우리 눈앞으로 중현이의 팔이 부웅-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잔상이 흐릿하게 남을 만큼 빠른 동작.

왠지 모르게 내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팡-!

궤적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날아간 공이 쪼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의 손에 안착했다.

“…….”

송윤호 선수가 눈을 끔뻑끔뻑하고, 뒤에서 농담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던 선수들도 말이 없었다.

홍보팀 팀장님과 비하인드 캠을 든 대리님도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고.

뒤에서 말이 들렸다.

“저거 몇이야.”

“느낌으로는 120 근처긴 한데. 100은 확실히 넘어.”

120이 빠른 건가?

야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터라 수군수군하는 소리들만 듣고 있을 때, 투구를 마친 중현이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어때요?”

이걸로 형을 죽일 거예요, 이제… 하는 듯한 속삭임이 귓가에 울리는 느낌.

다리에 힘이 풀린 내가 휘청거리자, 비주와 지호가 날 부축해 주고 리혁이가 대충 손을 얹어 주고 있을 때였다.

“윤호야!”

“예, 선배님!”

뒤에서 선수 중 한 명이 말했다.

“사회인 야구라도 하시냐고 좀 물어봐!”

중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야구는 다시 처음 해 보는 거예요.”

“오랜만에 해 보는 거라고요?”

“예, 초등학교에서 야구부 활동을 하긴 했는데…….”

“……!”

그 말에 야구 선수들이 구경을 멈추고 우르르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신기한 생명체를 발견한 듯한 모습이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선배님들.”

송윤호 선수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야구 선수들의 눈이 진귀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물었다.

“몸무게가 어떻게 돼요?”

“저 지금은 70 정도…….”

“아니, 이 얄쌍한 몸으로 어떻게 이 힘이 나오지?”

다들 중현이를 둘러싸고 신기한 것을 바라보는 표정을 짓는 동안, 내가 홍보팀장님에게 물었다.

“이거 빠른 건가요?”

“말도 안 되는 거죠.”

팀장님이 말했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거의 최고속이에요. 사회인 야구에서도 110~120 정도 되는 사람들은 드무니까.”

“아…….”

“연예인 중에서 이 정도 나오는 분들은 정말 드물거든요. 사회인 야구 하시는 분들이 가끔…. 근데 중현 씨는 뭐 운동 같은 거 했나요?”

가끔 엘리트 체육인들이 시구할 때 나올 법한 힘이라며 놀라는 분에게 우리가 말했다.

“춤추는 것만 해요.”

“아… 근데 저 힘이.”

“원체 힘 자체가 좀 좋아서요.”

혀를 내두르고 있는 팀장님에게서 시선을 뗐을 때, 중현이의 팔을 만져 보는 야구 선수들이 보였다.

“다시 던져 볼래요?”

이윽고 중현이가 다시 던졌다.

속도는 비슷했지만 아까보다 더 안정된 폼이었다. 일직선으로 날아가 글러브에 꽂히는 공.

파앙-!

흔들리는 글러브에서 먼지가 터져 나오는 것 같다.

“저게 형이에여.”

“조용히 못해?”

속삭이는 막내를 밀어내고 있을 때, 어허허 하며 기분 좋게 웃던 야구 선수들이 중현이를 보며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다시금 중현이의 몸을 바라보았다.

“이 체격에 나올 수 있는 힘이 아닌데, 병원은 가 봤어요?”

“예.”

“뭐래요?”

“몸이 좀 이런 몸이래요.”

선수들이 오오 하고 있는 동안,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송윤호 선수에게 우리가 물었다.

“저 선수님, 저희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아, 네.”

“중현이가 자꾸 초등학교 때 자기가 약골이었다고 그러던데. 그거 진짜인가요?”

“푸훕-.”

상대가 마시던 물이 분무기처럼 허공에 흩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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