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4화
KG 드래곤스의 유망주로 꼽히고 있는 투수 송윤호에게 언젠가 그런 질문이 날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인터뷰어는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로 활동했을 시절이나 고교 야구에서 상을 휩쓸었을 때,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을 때 등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듯했다.
“가장 강렬했던 기억이요? 으음…….”
하지만 정작 그가 떠올린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전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야구부 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왜냐하면 그때 같은 팀에 어마어마한 친구가 하나 있었거든요.”
“어마어마한 친구요?”
“네, 초등학생 수준이 아니었어요. 친선 경기만 하면 상대 팀에서 왜 중학생을 데리고 왔냐면서 난리가 났거든요.”
남들이 공을 통 하고 던질 때 혼자 파이어볼을 던졌던 미친 자가 하나 있었다.
인터뷰어가 호기심을 느낀 듯 재차 물었다.
“다른 것도 많은데, 왜 그때 기억을 강렬하다고 하신 건가요?”
“아, 전 사실 그냥 야구를 진지하게 시작한 게 아니었거든요. 학교 감독님이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운동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했는데, 같은 학교에 그야말로 벽을 느끼게 하는 인간이 있었다.
“별로 연습도 안 하는데 너무 잘하니까. 제가 약이 올라서 악착같이 연습을 해서 따라잡으려고 했거든요. 그때 이후로 야구에 진심이 된 것 같아요. 쟤 한 번 이겨 보자 하고.”
“그래서… 이기셨나요?”
“아뇨.”
송윤호는 고개를 저었다.
“이기기 전에 걔가 야구부를 관둬서.”
“아.”
“그것 때문인지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씩 웃으며 한 대답에 인터뷰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송윤호 선수 하면 중학생 시절부터 엄청 유명했잖아요. 그런 송 선수가 따라가기 벅찼을 정도면…….”
“걘 진짜 차원이 달랐어요.”
“그분도 지금 야구 쪽에 종사를 하고 있을까요?”
“아뇨.”
그가 뺨을 긁적이며 답했다.
“다른 일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생뚱맞은 직업이기는 한데.”
“그런가요?”
궁금해하는 눈빛으로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에 대해서 적당히 끝맺음을 했던 송윤호였다.
‘괜히 말 얹지 말아야지.’
당시 TV에서 명곡단으로 한창 뜨고 있던 뉴블랙을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그러는 한편, TV를 볼 때마다 의아한 기분을 느꼈다.
‘쟤는 왜 저걸 하고 있지…?’
초등학교 때도 종이에다가 시 같은 걸 끄적끄적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아이돌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프리미어 리그 그런 데 가 있을 줄 알았는데.
게다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지망 농부, 2지망 농사꾼, 3지망 어부를 적어 냈던 녀석이 아니던가.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연락이 없었던 중고교 시기에 무언가 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초등학교 동창의 선택은 옳았다.
-윤호야! 빵 먹어라!
-감사합니다. 선배님! 어…?
구단 선배가 간식으로 던져 준 빵에서 ‘테디베어 중현이는 행복해요’ 하는 스티커가 나오지를 않나.
일본에 전지훈련을 갔더니 호텔 TV에서 친구가 독립군 역사를 설명하는 장면이 ‘반일’이란 한자와 함께 나오고 있었다.
외국에서 만난 현지 선수들과 이야기할 때도.
-너네 한국인이면 뉴블랙 알아?
-너네가 어떻게 알아…?
-내 여자 친구가 광팬이다……. 난 걔네가 밉다.
게다가 요즘에는 어딜 가든 보이는 게 뉴블랙 얼굴일 만큼 대성공을 거둔 친구였다.
‘크게 될 애라고 그러긴 했는데.’
초등학교에서도 모두가 쟨 뭘 하든 크게 될 것 같다고 했던 말이 정말 그대로 이뤄졌다고 할까.
학창시절에도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는데 김중현이 바로 그런 과였다.
직접 친분이 있었던 그는 더더욱 그런 편이었다.
‘진짜 강렬했지.’
태어나서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임팩트가 강했다.
“다시 던져 볼까요?”
선수들에게 둘러싸여서 그들이 알려 주는 투구 폼을 연습하는 김중현의 위로 과거의 기억이 겹쳐 보인다.
교실 맨 뒷자리, 정수기 옆자리에서 쉬는 시간만 되면 종류별로 다른 한약을 쭙쭙 하던 소년.
살짝 통통한 뺨이 한약을 먹을 때마다 오물오물 움직였다.
-넌 그거 왜 먹냐.
-우웅… 할아버지가 먹으래. 나 너무 약하다고.
난 너무 약한가 봐, 하던 중현이 도라지즙을 쭈웁쭈웁 하고는 새로운 즙을 꺼낼 때였다.
탁.
정수기 물통 뒤편으로 넘어간 보약 팩.
-으음, 넘어갔네.
그러더니 한 손으로 20리터짜리 정수기 물통을 가볍게 들어서 옮기고는 그 뒤편에 떨어진 보약팩을 집어 들었다.
-야. 네가 약해?
-으응, 그런가 봐.
-너네 집 혹시 집안 대대로 장사 출신 그런 거야?
-아니, 우리 집 장사 안 하는데. 농사 지어.
-……됐다.
-으응.
대체 어떻게 생긴 오해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안에서 어화둥둥 약골 막내로 취급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기장에다 세상이 멸망하면 난 저 집으로 갈 거다, 하는 문장을 적었던 게 새록새록 기억났다.
“…….”
다시금 회상에서 벗어나 현실로 벗어난 송윤호가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디가 허약한 건데?’
체중 감량이 빡세다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도 120 가까이 되는 구속을 던지는 게 말이 되던가.
그랬기에 다음 질문이 들렸을 때, 그는 물을 뿜을 수밖에 없었다.
“중현이가 자꾸 초등학교 때 자기가 약골이었다고 그러던데. 그거 진짜인가요?”
“푸훕-.”
분무기처럼 허공에 물을 흩뿌린 송윤호가 입가를 훔치며 눈앞의 미남에게 고개를 홱 돌렸다.
“예? 누가 허약하다고요?”
* * *
아니었나 보다.
“또 본인이 그래요? 자기가 약골이었다고?”
“네.”
“허, 참.”
비하인드 카메라 앞이라는 것도 까먹고 표정 관리에 실패한 야구 선수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렇지.’
‘중현이 형이 약골이었을 리가 없어여.’
송윤호 선수가 다시금 목을 축이더니 말했다.
“뭐, 없는 일은 아니에요. 가끔 운동선수 중에서도 그런 케이스가 있거든요. 운동은 잘하는데 몸은 약한.”
그러더니 중현이를 보고는 우리에게 속삭였다.
“근데 중현이는요.”
“네.”
“휴식 시간에도 나무 꼭대기 올라가서 그 위에서 쉬고, 남들 안타 칠 때 혼자 홈런처럼 달리는 애라니까요. 그거 보고 상대 팀이 몇 년 꿇은 애냐고 난리도 완전 난리…….”
1루부터 베이스까지 그냥 달리기만 했는데 득점을 했다는 일화까지 나왔다.
그걸 시작으로 송윤호 선수가 입가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야구부 때도 맨날 자기 허약하다고 그러고…!”
“저, 선수님. 진정하세요.”
“제가 그만큼 황당해서 그래요. 밥에 들어간 돌도 씹어먹던 애가.”
“어떤 돌이었나요?”
“되게 굵은 돌이었어요.”
원석이 형은 왜 저렇게 웃지.
어쨌든, 그동안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나, 몹시 허약했다’ 했던 중현이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던 순간이었다.
속이 다 후련하다고 할까.
콘서트를 끝내고 나면 중현이네 가족 분들이 몰려와서 우리 아이 허약한데 괜찮냐 하며 물어보실 때마다 당혹스러웠으니까. 그분들은 진심으로 아들, 손주, 조카가 허약하다고 믿는 듯했다.
“그 기분 이해해요.”
“감사합니다. 제가 이거 가지고 어렸을 때 하도 속앓이를 해서.”
북극곰을 닮은 이목구비가 살짝 침울해져 있었다.
그렇게 송윤호 선수와 공감대를 이루고 있을 때, 멀찍이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중현이가 날 불렀다.
“형!”
“응?”
“얼른 와 봐요.”
“왜, 왜?”
또 뭘 하려고.
뒷걸음질 치면서 거리를 벌릴 때,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시타 안 배울 거예요?”
“아.”
공포심 때문에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뒤에서 막고 있던 삼인방에게 눈을 슬쩍 흘기고는 중현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선수들이 중현이에게 물었다.
“그게 진짜라는 거죠?”
“네.”
“어휴, 그게 절반만 사실이어도…….”
나를 굉장히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관찰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내가 중현이에게 몸을 기울였다.
“야, 너 뭐라고 한 거야?”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더니 다들 저런 반응이에요.”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선수들이 주변을 배회하면서 방망이를 든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타자로 보이는 선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려울 거 없어요. 어차피 시구 하고 나면 부웅 하고 헛스윙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때 막내가 손을 들고 활기차게 물었다.
“그럼 맞추면 안 되는 건가여!”
“흐하하하!”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넉살 좋은 표정으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아유, 맞추면 좋죠. 재미있지.”
“하고 싶으면 해요. 아무도 안 말리니까~ 흐하하!”
“그럼 기사 나겠네.”
기사 난데여! 하면서 외치는 막내에게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자상하게 웃어 주고는 방망이를 들었다.
나에게 말을 걸었던 타자가 손동작을 보여 주었다.
“대충 한 번 요렇게 해 봐요. 둘 다 연습은 좀 해 왔다고 했죠?”
“네.”
“한 번 봐 볼 테니까 해 봐요.”
내가 방망이를 든 채로 정면을 응시했다.
자세를 잡고.
양발을 어깨 넓이로 맞추고 방망이를 부드럽게 쥔다. 각도는 약간 눕혀서 45도.
그다음에 스윙 준비.
“오, 자세 좋으셔.”
며칠 전부터 타격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한 덕분인지,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내 몸에 맞도록 최적화된 동작.
곧이어 위로 올라간 배트가 빠르게 앞으로 쏘아지듯 나간다. 팔을 타고 강한 힘이 퍼져 나가는 느낌.
마치 요리 게임에서 최적의 경로로 야채 썰기를 한 것처럼, 정확한 루트를 지나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렇게 스윙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자.
“…….”
야구 선수들이 단체로 눈을 깜빡깜빡 하고 있었다.
드래곤스의 홍보팀 직원들이 멍하니 입을 벌리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웅성거리던 선수들이 물었다.
“중현 씨는 초등학교 때 야구부 활동을 한 거고. 우주 씨는 그러면…?”
“아, 처음입니다.”
“야구 자체가 처음?”
“네, 이번에 미튜브로 보고 연습했어요.”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놀란다.
“초심자가 저렇게 타격 자세가 좋을 수가 있나? 완벽한데…….”
“메쟈에 그 누구냐. 존스랑 똑같지 않냐? 표정도 똑같아.”
“존스, 진짜 존스 같네.”
뜨끔.
모르는 척을 하며 으흠흠 하며 방망이를 손에 쥐는 동안 중현이가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엄지를 척 들었다.
“봤죠? 저 형이 다 잘해요.”
“그러네.”
한 선수가 말했다.
“우리 윤호랑 트레이드해야겠네.”
“아, 선배님!”
막내 선수가 아! 하며 심술궂은 표정을 짓는 동안 선배들이 깔깔 웃으며 놀려 대고 있었다.
그때 제일 고참으로 보이는 선수가 나와 중현이를 보고는 말했다.
“이야, 근데 이 정도 하면 아이돌 말고 야구 선수를 지망하시지.”
“이 형이 TV랑 담을 쌓아서 이런다니까.”
선수 중 하나가 말했다.
“형님, 메이저 간 용수 형이 고른 노래 있잖아요. 등장곡으로 고른 거. 그게 이분들 거라니까.”
“아, 그래?”
우리도 처음 듣는 이야기긴 했는데.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등번호와 연관 있도록 등장곡으로 ‘Nine’을 선택했다는 모양이었다.
그 말에 누군가 덧붙였다.
“요새 아이돌 중에 대장이야. 대장.”
“그래? 그럼 아이돌 하셔야지. 1등이시면~”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우리가 다급하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원석이 형에게 눈짓을 하니 알았다는 답이 나왔다. 비하인드에 안 올라가도록 잘라야 하는 부분이었다.
예민한 시기니까.
“아유, 재미있었다!”
시구와 시타 연습을 마치자 선수들이 껄껄 웃으며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의 셀카, 사인과 함께였다.
오히려 연습보다 사진 찍고 사인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갔다고 할까.
“이거 톡 프사로 해도 돼요?”
“네, 좋아요.”
그에 대한 답례로 우리도 사인볼 등을 받았다.
유명인이랑 이야기한다며 신이 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구석에서 송윤호 선수와 대화하며 웃는 중현이가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워 보인다.
한참 동안 뭐라고 말을 하던 중현이가 송윤호 선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다가왔다.
“무슨 얘기했어?”
“잠깐, 옛날 얘기 했어요. 초등학교 야구부할 때 얘기.”
“아.”
그러더니 품에 잔뜩 들고 있는 사인지들을 보여 주며 말했다.
“저 너무 행복해요, 오늘. 저희 가족이 다 KG 드래곤스 팬이거든요. 저도 그렇고.”
“아, 연고지가 KG 드래곤스 쪽이구나.”
“네.”
‘To. 누구에게’ 하는 곳에 중현이네 가족들 이름이 잔뜩 적혀 있는 걸 보며 웃었다.
“이따 시구까지 하면 진짜 최고의 날이 될 것 같아요.”
“그래…….”
너는 행복하구나. 나는 항복할 거 같은데.
그런 말을 삼키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 동안,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렌즈가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있는 3인방이었다.
“왜 갑자기 찍어?”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추억하려고요.”
“……너네 오늘 다 끝나면 두고 보자. 진짜.”
이를 바득 가는 내 모습에 다들 꺄르륵 웃었다.
오늘따라 듣기 싫은 웃음소리들이었다.
* * *
오늘의 일정은 간단했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플레이오프 3차전의 시구/시타를 하고 그다음에는 경기를 직관하는 거였다.
“치킨! 치킨!”
“전 치킨 말고 딴 거 먹을 거예여~!”
치킨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치킨집 막내아들이 경기장 내의 먹을거리를 검색하고 있는 동안.
나는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들을 재생했다.
“뭐 봐요, 형?”
“다른 연예인들 시구 영상.”
미리 보았던 영상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재생해서 관찰했다.
비주가 이어폰 한쪽을 나눠 끼며 웃었다.
“스윙만 하면 되는 건데, 많이 떨려서 그래요. 형?”
“음, 그것도 있긴 한데 멘트 같은 거 참고하려고.”
“아하.”
중현이에게 듣기로 시구와 시타는 경기를 보러 온 야구팬들을 위한 이벤트라고 한다.
본 경기 전의 눈요기 같은 느낌.
그래서 어떻게 해야 이분들이 더 즐거워할지, 더 재미있어 할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한태현입니다!
2014년도 한국 시리즈에서 시구를 했던 TNT의 영상.
주홍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태현이가 능글맞게 멘트를 하고 있는 영상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아이돌들의 시구 영상.
그러다가 못 본 영상도 하나 발견했다.
-네, 스칼렛의 리나 씨가 오늘의 시구를 맡았습니다.
스칼렛의 메인 댄서인 리나가 길쭉한 다리를 촤악 뻗더니 거의 메테오처럼 공을 날렸다.
-이야! 빠르네요.
-우스갯소리로 걸그룹 전체 육류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게 스칼렛이다 하는 말이 있을 만큼 먹성 좋은 친구들이거든요.
-괜히 나온 힘이 아니군요.
장면이 전환되며 팔짱을 낀 아라, 봄, 데이지가 장군들처럼 껄껄 웃고 있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영상은 아닌 것 같아요.”
“그, 그러네.”
범상치 않은 소속사 선배들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구단 측으로부터 준비가 다 됐다는 말이 들려왔다.
“후우…….”
거울 앞에 서서 야구 모자를 제대로 눌러쓰고는 심호흡을 했다.
대기실을 나가 구장으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 동안, 바깥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던 소리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벌떼가 붕붕- 하는 듯한 소리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안녕하세요!”
KG 드래곤스의 마스코트,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청룡이가 우리에게 손을 반짝반짝 흔들었다.
아. 왜 이렇게 입이 바싹바싹 마르지.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입구 경계에 서서 둘러보았다.
“오늘이 3차전 맞지?”
“네. 맞아요.”
구송 모터스와 KG 드래곤스가 1 대 1 스코어라나. 여기서 두 번을 더 이기는 팀이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다고 들었다.
잠실야구장은 KG 드래곤스의 홈구장.
그런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동안, 청룡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듯 여의주 물은 입을 도리도리 저었다.
-네! 박수와 함께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멀찍이 전광판으로 우리 모습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객석으로부터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예상한 것보다 더 큰 함성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객석에 들어선 야구팬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투수 자리 부근에 서 있는 MC분에게 다가갔다.
-다시 한번 환영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폰카를 든 채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MC가 마이크를 들며 말했다.
-네! 열기가 정말 뜨겁네요. 인사 한 번 부탁드려 봐도 될까요?
“네!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마이크를 타고 경기장 전체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소리에 다시 한번 환호성이 돌아왔다.
뭔가 신기하다.
콘서트장에 처음 서 볼 때처럼, 엄청 큰 조명들이 우릴 내리쬐고 있기도 하고. 야구장 객석을 선수 시점으로 보는 것도 처음이라.
-네, 국민 아이돌 뉴블랙이 왔습니다! 오늘 우주 씨와 중현 씨가 시구와 시타를 맡아 주셨는데, 대표로 우주 씨의 한마디 듣겠습니다!
준비했던 멘트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고는 동생들과 함께 ‘파이팅!’ 하면서 주먹을 쥐고 끝을 맺었다.
나머지 셋이서 박수를 치고 있는 동안, 나와 중현이가 마스코트 청룡이의 안내를 받아 이동했다.
헛스윙만 하면 된다.
헛스윙만…….
주변을 향해 환히 웃으면서 타자석에 섰다.
“긴장 풀어요~”
아까 만났던 포수 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그동안 투수석에 서 있던 중현이가 모자를 벗고는 여러 각도로 공손하게 꾸벅 인사했다.
중현이가 웃으며 자리를 잡을 때.
아까 배운 대로 배트를 한 손으로 들어 투수석 부근을 가리켰다가 타격 자세를 취했다.
“후우…….”
날 보며 눈을 찡긋하던 중현이가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활짝 웃으며 공을 던졌다.
슬로우 모션처럼 보이는 공.
마치 그간의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
이게 이 정도로 빠른 거였나?
시속 120km으로 달리는 차를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 쏴아아-! 하면서 들어오는 공.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고. 나 죽는다!
그렇게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눈을 질끈 감고 있을 때.
“……?”
나도 모르게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따아아악-!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