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26화
뉴블랙이 약방의 감초처럼 야구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을 때.
유일하게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
바로 뉴블랙의 안티들이었다.
나노 단위로 깔 거리를 찾고 있던 이들의 눈가에 허탈한 빛이 감돌았다.
‘텄네.’
뉴블랙이 시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눈에 불을 키고 트집 잡을 준비를 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헤어나 메이크업, 혹시 인터뷰 멘트에서 실수는 없는지.
앨범 홍보에 대한 멘트만 했어도 ‘앨범 홍보하러 나왔냐’ 하는 글을 준비 중이었는데.
‘틈이 없네. 진짜.’
깔끔하게 팬 서비스 멘트를 하고는 시구 준비를 하는 뉴블랙이었다.
이윽고 중현이 강속구를 던지고 우주가 따아악! 하며 안타를 쳤을 때 그들은 쾌재를 불렀다.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보통 시타는 헛스윙이 관례 아닌가요..?
-또 오버하네
-관심 받으려는 건 알겠는데 과하다ㅋㅋㅋㅋ 중계 카메라랑 마스코트도 있는데 왜 위험하게 공을 치는 거임?
-저러다 누구 하나 맞으면 어쩌려고
-야덬인데 시타에서 헛스윙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선수도 아니고 일반인이 관심 받겠다고 위험하게 시구를 치려고 하느냐, 저러다 사고 일어날 뻔한 거 모르냐 등등.
…의 반응을 준비하고 있던 안티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잘 날아가네.’
거의 홈런을 할 것처럼 공이 넘어가면서 게시판이 ‘ㅋㅋㅋㅋ’, ‘와’ 등의 글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센스 있는 플레이를 펼치면서 야구팬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한 안티들이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렸다.
‘병크. 팬덤 병크 없나?’
뉴블랙이 시구를 마치고 팬들이 우르르 떠났다거나, 장내에서 관중들의 경기 관람을 방해했다거나.
가수의 시구, 시타가 반응이 압도적으로 좋으니 남은 깔 거리는 극성팬들이었다.
적당히 익명 사이트 같은 데서 ‘저기 팬들 개민폐..’ 하는 글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써치를 했지만.
“…….”
몰이용으로 써먹을 만한 떡밥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현시각 잠실구장 간달프.gif]
(뉴블랙의 팬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왕봉이를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다.)
-뭐야 어케 반입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큐리티 : 어?
-저걸로 빠따 대신해도 될 거 같은데
-쥰내 영롱하다.. 성스러운 빛이 나오는 거 같음
-근데 경기력이 왜 이러냐
-이 새기들은 버프 걸어도 튕겨냄 경기력이 디버프수준임
-불백스 굿즈 좋네
-ㅋㅋㅋㅋㅋㅋㄱ1회초부터 누가 저렇게 응원하냐고
아이돌 팬들이라서 잘 모르지만 일단 응원하는 모습이 웃음을 줄 뿐이었다.
‘날조하기엔 무리고.’
보통 이런 몰이는 쪽수로 밀어붙이는 건데, 뉴블랙의 팬덤 숫자가 만만치 않아 이런 허술한 걸로는 먹히지도 않았다.
여기저기서 일반인들이 글을 올리고, 그게 기사화가 될 정도는 돼야 써먹을 수 있을 텐데.
대부분이 이건 무리라며 털고 떠나는 가운데.
일부는 악착같이 남아 무언가가 없나 살피고 있었다.
‘……이거 좀 먹히려나?’
유효타를 줄 수 없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근데 뉴블랙은 왜 kg 드래곤스 시구로 나온 거야?
-구단들 좀 연고 있는 연예인 불렀으면 좋겠음ㅇㅇ 진짜 그 팀 팬을 데려오든지 해야지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까려고 쓴 댓글이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별로 효과도 없었다.
인지도가 작은 연예인이었다면 먹혔을 만한 공격이었지만 뉴블랙의 현재 인지도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반응들이 많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뉴블랙 정도 급이면 한국 시리즈에서 시구하고 그럴 급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죠.
-저도 보고 깜놀ㅋㅋㅋㅋㅋ 보면서 한국 시리즈가 아니고? 했네요ㅋㅋㅋ
-이게 작년부터 좀 트렌드가 바뀌어서 그래요ㅋㅋ 요즘에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사람들 부르는 추세라서
-이게 맞습니다, 작년도 라인업 보면 40년차 팬, 소년야구단, 은퇴 선수들이었어요
-아깝네요ㅋㅋㄱㅋ 다른때엿으면 얘네도 코시에서 시구했을 텐디
플레이오프가 아니라 결승전인 한국 시리즈에서 시구, 시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경기를 직관하는 뉴블랙의 짤방이 퍼지면서, 안티들이 시도했던 공격도 더욱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ㅇㅇ는 김중현도 화나게 한다]
(수비 실책에 손에 쥐고 있던 콜라캔을 우그러뜨려서 동전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현.gif.)
(3루까지 꽉 차 있던 상황에서 점수 못 내고 이닝이 끝나면서 고개를 번쩍 들고 후- 하- 하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흔드는 중현.gif)
(연이은 실책에 치킨을 먹던 나무젓가락을 의자에 탁 내려놓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는 중현.gif)
짜잔~
그것은 바로 앵그리 중현을 만들어 내는 K야구의 위엄이고요
-얼굴 왜일케 빨갛게 됐냐
-ㄹㅇ 앵그리버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쟤 저렇게 빡친거 처음본다
-존나 호감ㅋㅋㅋㅋㅋㅋㅋ
-그래 야구는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들어라! 넌 자랑스러운 드래곤스의 팬이다..!! 고개를 들어라! 넌 자랑스러운 드래곤스의 팬이다..!!
-근데 중현인 빡ㅊ칠수밖에 없지ㅇㅇ 자기가 들어가도 저거보다 잘할 텐데
그와 함께 ‘이때 와서 보는 과거 인터뷰’ 등에서 KG 드래곤스를 좋아한다고 밝힌 중현의 멘트가 주목 받고 있었다.
-그래서 성격이 보살이었구만..
-해탈의 경지ㅋㅋㅋㅋㅋㅋㅋ
-이해함 진짜 경기보다보면 에지간한걸로는 이제 안빡침 어ㅓ 아 씨발!!! 또놓쳤어!!
-희로애락에서 로애만 가득함
-드래곤스 우승이 언제였더라 중현이 태어날때 거의 그때 아님??
-학생,, 팩트 폭행 멈춰,,,
-그래도 우리 드래곤스는 봉사활동도 잘하고 팬 서비스도 잘하고.. 야구를 못해서 그렇지
-(n년후 미국) ??? : 제 멘탈의 비결이요? KG드래곤스덕입니다
-너 인마 중현이 파이팅이야 형이 응원한다
진짜배기 팬밖에 보일 수 없는 표정들에 KG 드래곤스의 팬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저 기분 알지…….’
오늘따라 유독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뉴블랙의 멤버였다.
그러는 한편.
대부분이 아이돌 팬이라 야구에 대해 잘 몰랐던 안티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었다.
어떠한 선동과 날조를 들고 와도 오늘 뉴블랙에 대해 몰이를 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겼다ㅊㅊㅊㅊㅊㅊㅊ
-휴 이럴줄 알았지ㅋㅋㅋㅋㅋ(덜덜덜)
-강하다 드래곤스
-누가 약팀이라고 했지?
-그거 우리
-모터스,, 네놈들이 진정 우리 드래곤스를 이길 거라고 생각했나?
이기기만 하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야구팬들의 특성 때문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 1대1에서 2대1이 된 KG 드래곤스의 팬들이 승리를 자축하는 가운데.
오늘의 승리 요정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것 봐. 스네이프 교수가 마법을 쓰고 있어..!]
(드래곤스의 타자가 안타를 치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중얼중얼하고 있는 중현.gif)
(또 다른 안타 장면 전에 중현이 중얼중얼하고 있다.gif)
입모양 분석결과 1) 파이팅파이팅 2) 시발시발 3) 젤리젤리 로 갈리는 중
-겨스님ㅠ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중 교수님ㅠㅠㅠ
-새로운 승리토템인가
-캬 우리 교수님 버프 걸어 주시네
-남들이 승리요정이라 불러 주기 전에 본인이 먼저 승리요정이 되는 뉴블랙..
-마음에 들었다 너희 내 아이돌이 되라
-오늘따라 텐션 좋긴 했어ㅋㅋㅋㅋ
-사실 시구 시타하는 연옌들보다 못하면 ㅈㄴ 욕먹을 거 같아서 열심히 했다는 게 정설
-ㅋㅋㅋㅋㅋㅋ시구(130) 시타(홈런)
-뉴블랙 또 보러 와라
-역시 드래곤스 최고 아웃풋이다
-숟가락 얹지 말라고ㅋㅋㅋㅋ
마지막 우승이 97년도인 KG 드래곤스.
오늘의 승리 덕에 한국 시리즈까지 1승만 남아 잔뜩 흥분한 드래곤스의 팬들이었다.
* * *
경기가 끝난 후.
포털 스포츠 면에서 KG 드래곤스의 승리에 대한 본격적인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그중에는 뉴블랙의 시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정말 뉴블랙스럽다’.. 잠실구장 뒤흔든 뉴블랙의 이색 시구
-“공 굴러가유~”.. ‘불백스’ 1점 얻었다
-뉴블랙 우주, 시타로 ‘그라운드 홈런’.. 선수들 “저게 되네”
TBC 스포츠에서 발 빠르게 올린 편집 영상이 올라오면서, 소식을 뒤늦게 접한 이들도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130에 홈런…?’
전혀 일반인 같지 않은 구속에 놀라는 것도 잠시, 거의 홈런에 가깝게 타격을 한 우주의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어찌나 놀랐는지 현장 캐스터들도 ‘두 선수 아주 좋은 플레이였습니다!’ 하며 무의식적으로 선수라고 부를 정도.
자연스럽게 해당 소식은 지상파 방송에서 스포츠 뉴스로도 흘러나왔다.
[국민 아이돌 뉴블랙이 플레이오프 3차전의 시구, 시타자로 나섰는데요. ‘태릉선수촌이 빼앗긴 인재가 아니냐’ 하는 말이 나올 만큼, 정말 예상치 못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월요일 밤 스포츠 뉴스였습니다!]
스포츠 뉴스 BGM과 함께 강속구로 공을 던진 중현의 모습과 따악-! 하며 공을 치는 우주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
평소처럼 뉴스를 틀어 놓고 있던 시청자들이 눈을 비볐다.
“쟤네는 왜 저기서 나와?”
“뭐, 안 나오는 데가 있나.”
“그건 또 그러네. 어유… 잘 던지네.”
어마어마한 장면이긴 한데 왠지 모르게 뉴블랙을 한 스푼 끼얹으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한편, 오늘의 시구는 경기를 직접 시청했던 어느 가족들에게도 화제였다.
“저저 봐.”
“어휴, 애를 제대로 먹이기는 하는 거래? 중현이 삐쩍 곯은 거 봐. 애가 피골이 상접했네.”
“하여튼 몸도 허약한 것이 가수를 하겠다고…….”
TV 속에서 왠지 모르게 비틀거리는 듯해 보이는 중현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있는 본가의 가족들이었다.
중현의 할아버지가 엄지를 튕겨 병맥주의 뚜껑을 딸 때.
“어유우우우우우!”
강속구로 날아가는 공에 중현의 식구들이 기겁했다.
“야야야!”
“우주한테는 살살 던져야지!”
“쟤 어디 맞으면 중현이는 아이돌 생활 끝이야.”
뉴블랙의 보배이자 김씨 집안의 막내아들을 먹고 살게 해 주는 은인의 목숨이 위험해 보이는 모습에 기겁하던 순간.
따악-!
담장까지 멀리 공을 날리는 우주의 모습에 다들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중현의 할아버지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저 정도는 해야 대장을 해먹는 것이지.”
껄껄 웃는 가족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몸 성하면 됐지.’
여전히 보약을 먹어야 할 만큼 허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손자, 아들, 조카의 모습이 흐뭇했다.
그렇게 어느 집안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는 한편.
경기가 끝나면서 오늘의 명짤들이 곳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야구팬 vs 일반인 차이.gif]
KG 드래곤스가 이기고 있는 상황.
중현이 수비 실책에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가운데, 전광판에 나온 자신들의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알못은 그럴수 있다ㅋㅋㅋㅋㅋ
-남편이랑 딱 저럼ㅋㅋㅋ 남편이 오 놓쳤네! 하고 웃는데 나 혼자서 빡쳐 있음
-귀여워
-애들 와아아 하면서 중현이 눈치 살피는 거 왜일케 웃겨ㅋㅋㅋㅋ 눈빛으로 ‘뭐 잘못했나?’ 하는 게 보임
-원래 모든 덕질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존나 비극임
-빡친 건 팬들인데 용서는 머글이 한다는 돌판의 명언이 여기도 적용되는 거였구나
-일반인: 그럴 수 있어 / 야구팬: 이새끼들이?
야구팬들과 마찬가지로 열이 잔뜩 오른 중현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곳곳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뉴블랙의 시구에 주목하는 것은 한국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메이저 리그 홈페이지의 메인에도 해당 뉴스가 떠 있었다.
[K-POP Superstar가 시구에서 홈런을 선보이다]
‘한국의 가수이자 배우, 사업가, 코미디언, 미튜버를 겸하고 있는 K팝 스타 뉴블랙’이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는 소식이었다.
「찾았다!」
「내가 ‘뉴블랙’ 검색해 보라고 했잖아! 주마다 한 번씩 뭐가 나온다니까!」
「이번 주는 이걸로 가자.」
방송 소재가 고갈될 때 미스터리 프로그램들이 히틀러, UFO 떡밥을 찾듯이, 해외 언론이 좋아하는 검색어가 바로 ‘뉴블랙’이었다.
해외 뉴스 토픽감을 찾기 위해 분주히 검색하던 각국의 언론들이 쾌재를 부르는 가운데.
미튜브의 해당 영상이 외국인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잘했어 알고리즘
-미튜브 : 여기 네가 원하던 영상 / 나 : 뉴블랙? / 미튜브 : Yeap.
-또 보는군 뉴블랙. 점점 스며들고 있어
-한국은 가수만으론 먹고살기가 힘든가?
-나 연관 동영상에서 이상한 거 봤어. 휴게소에서 한국인들이 광신도처럼 요리에 몰려들고 있어. 렉스 루터 같은 대머리 남자가 현수막에 걸려 있고.
┕안녕. 나 한국인. 그건 ‘뉴불백’이라고 해.
┕뉴블랙과 뉴불백의 차이가 뭐야?
┕사람과 음식의 차이야
┕Oh. 일리 있어.
┕역시 미튜브야. 침대에 앉아서 온 세상의 바보들을 만날 수 있지.
-128km면 80마일인가. 와우.
여기저기서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지는 동안.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똑똑. 미국 수플레다. 이건 또 무슨 Ddeok-bob이야? 한국어 덕질하는 너희 부럽다
덕질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최애가 야구장에서 홈런을 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 뉴블랙의 팬들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그런 외국 수플레들을 보며 한국 수플레들이 웃었다.
-우리도 잘 몰라.. 그냥 애들이 해 버렸어
-Aha. 이해했엉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지만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그것이 뉴블랙이니까’로 하나 되는 팬덤이었다.
* * *
야구 직관이 끝난 후.
“흐어어…….”
숙소에 들어온 우리가 거실 바닥에 널브러졌다.
“힘들구나. 야구라는 거.”
“엉덩이 엄청 배겼어여. 리혁이 형은 괜찮아여?”
“느어어어….”
“괜찮대여.”
바닥을 뒹굴뒹굴 구르며 내가 말했다.
“이거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하네.”
“힘들어요.”
비주가 초점이 풀린 눈으로 말했다.
“경기는 선수들이 뛴 것 같은데.”
처음에 치킨 먹고 우아앙 할 때만 해도 ‘야구장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신났는데.
경기가 생각보다 엄청 길었다.
끝까지 함성을 터뜨리며 응원하는 야구팬들이 대단하다고 할까.
물론 이 정도 스케줄로 힘이 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우, 뺨…….”
하도 웃어서 뺨이 파르르 떨렸다.
어워드와 마찬가지로 사방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기도 하고, 표정 한 번 잘못 지었다가 잘못 찍힌 사진으로 난처해질 수도 있어서.
다 같이 바닥에 드러누워서 얼럴럴러러 하며 뺨을 풀었다.
그러곤 여전히 상기되어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중현아.”
“네.”
꿈결 같은 표정으로 웃는 중현이가 보였다.
“좋아?”
“행복해요.”
“그래. 행복하면 됐다.”
아까 거의 얼굴 터져 나가는 줄 알았는데.
세상 태평하던 중현이도 야구 앞에서는 평정심을 잃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현이가 뺨에 손을 올린 채 허허허헛 하며 좋아할 때.
-아웃 됐습니다! 병살타~!
아까 경기 중에 있었던 해설진의 멘트에 중현이가 자리에서 스스슷 일어났다.
리혁이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효과 확실하네요. 중현이 형 깨울 때 쓰면 되겠어요.”
“형은 내일이 없어여?”
“야!”
드러누워서 서로 발로 밀어 대는 막내들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스케줄이었다.
그동안 공연 같은 것만 많이 해 봤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행사는 처음이었던 터라 새롭고 재미있었다.
-내년에는 한국 시리즈 시구하러 올지도 모르겠는데?
현장 분위기가 좋았던 덕인지 매니저 형들도 엄청 흥분했다. 내일 모닝 뉴스는 우리로 도배가 될 거라고.
안 그래도 인터넷을 켜 보니 우리 이야기가 여기저기 나와 있다.
저마다 뉴스를 살피며 키득거리는 한편, 내일의 스케줄을 위해 하나둘 취침 준비에 들어갔다.
“자, 오늘 마무리 들어갑시다.”
거실에 모여서 오늘 스케줄에서 어떤 점을 피드백하면 좋을지, 미흡한 부분은 없었는지 체크한 후.
스마트폰을 보던 막내가 물었다.
“중현이 형, 형은 근데 왜 야구 안 하고 어쩌다가 여기로 오게 된 거예여?”
“음.”
나도 궁금한 거긴 했다.
잠시 무언가를 고심하듯 뺨을 긁적이던 중현이가 말했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감독님 같은 분들이 안 붙잡았어여?”
“붙잡긴 했는데. 내가 안 붙잡혔어.”
“아…….”
왜 추격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나 말고도 리혁이와 비주가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중현이가 하하 웃었다.
“옛날 일이라서.”
대충 넘어가려는 눈치이기에 우리도 웃으면서 넘어갔다.
야구 엄청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까 시구를 연습할 때도 그렇고, 오랜만에 만난 송윤호 선수와 대화를 나눌 때도 신이 나 보였고.
“…….”
다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핸드폰으로 아까 본인의 시구 영상을 계속 돌려보는 중현이의 모습이 신경 쓰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 때문이었다.
“저 그럼 이제 잘게여~! 다들 잘 자여! 꿈에서 저 나오는 꿈 꾸고!”
“뭐래. 난 악몽 안 꿀 건데.”
“저는 꿈에 리혁이 형 나오면 되게 기분 좋던데.”
“…왜?”
“꿈속에서는 형이 제 하인……!”
“야아아!”
계단을 퉁탕탕탕 올라가는 녀석들을 보며 지금이 몇 시인데 그러냐고 조곤조곤 말하던 비주가 날 바라보았다.
안 올라가냐는 눈빛.
‘잠깐 중현이랑 얘기 좀 할게.’
‘아.’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흔들며 방으로 향했다.
나도 1층에 있는 중현이 방으로 향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거나 했던 것은 아닌지 한 번 확인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험상 주변 사람을 가장 신경 써야 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이 말이 적어질 때다.
“중현아….”
그런 말을 하며 방문을 열 때였다.
“……?”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내가 눈을 깜빡였다.
“너 거기서 뭐 해……?”
테라스 밖에서 새우처럼 옆으로 누운 채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던 중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형, 왔어요?”
“뭐 해?”
“새우로 살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 보던 중이었어요.”
그러곤 날 반기듯이 퍼덕퍼덕하며 새우처럼 움직인다.
‘어때요?’ 하듯 푸근한 미소.
“…….”
탁.
나도 모르게 다시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