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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34)화 (53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34화

“후우…….”

왕지호는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희한하게 수능 날 되면 춥다고 그러더라. 따뜻하게 입고 가.

맏형의 말은 맞았다.

히터를 빵빵하게 틀고 있는데도 차량 안에 한기가 스미는 느낌. 라디오에서도 날씨가 춥다 하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도원석이 물었다.

“긴장돼?”

“아뇨.”

“표정이 살짝 굳어 있길래.”

“아, 왠지 연습해야 될 것 같아서요.”

왕지호가 뒷머리를 슥슥 긁적였다.

“이틀 뒤면 망고 차트 어워드 가서 무대 서야 되는데, 시험 보러 가는 게 맞나 싶기도 하구.”

“기왕이면 보는 게 좋지. 인생에 한 번뿐인 경험이니까.”

“그건 그렇긴 한데…….”

형들이 무대 연습하고 있을 때, 혼자서 편하게 시험을 보러 간다는 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자.”

편의점에서 사 왔는지 따뜻한 캔커피를 건네는 매니저였다.

잠시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 있던 왕지호가 캔커피를 따서 호로록 들이켰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긴 한데.”

“응.”

“제가 시험 보고 온 사이에 막 형들이 또 엄청 더 늘어 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든단 말이에여.”

“농담도…….”

그런 말을 하려던 도원석의 웃음이 멈췄다. 이내 그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너희라면 충분히 가능하긴 하지.”

“그죠? 미친 사람들이라니까여! 아니, 잠깐 연기 레슨 받고 돌아왔는데 또 늘어 있어…!”

“하하하.”

“죽어라고 뒤따라가는데 진짜… 우주 형이 막 뒤돌아보면서 에베베베 하고 달려 나가는 느낌이에요.”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고 묘기를 부리면서 뛰어나가는 듯한 리더를 떠올리니 절로 부들부들한 마음이 들었다.

비주 형은 맨 앞에서 축지법으로 뛰어가고 있고.

중현이 형은 쿵쿵, 리혁이 형은 느아아악 하며 뛰어가고.

“제가 왜 시험 보러 가면서 죽상인지 아시겠져…?”

“이해해.”

잠시 입을 비죽 내밀고 툴툴대던 왕지호가 이내 기지개를 쭉 켜면서 시트에 몸을 묻었다.

유쾌한 웃음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에이, 몰라. 이따 밤새면 돼요~”

그는 걱정이 많지만 굉장히 짧은 타입이었다.

유리창에다 Thursday의 스펠링을 써 보던 왕지호의 머릿속에 형들이 해 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쁜 시기이긴 한데, 그래도 시험은 한 번 보고 와.

우주 형이 그렇게 말했다.

-딱 한 번 치는 시험이잖아. 남들도 다 보는 거고. 너 그거 되게 중요한 거다? 이런 시험 보는 거.

-이게 왜 중요해여.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좋은 경험들 중에 하나거든. 시험이야 언제든 볼 수 있지. 근데 고3 때 보는 수능이랑 지나서 보는 수능이랑은 또 다른 거니까~

그러곤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중요한 건…….

-……?

-난 둘 다 못 봐서 무슨 느낌인지 몰라. 흐하하핫!

유쾌하게 웃다가 이내 눈가가 촉촉해서 ‘비주야아아~!’ 하며 달려가 꺼이꺼이 울던 맏형이 떠올랐다.

샤프도 못 받았다고 슬퍼하던데.

‘기념품이라도 갖다줘야지.’

그런 결심을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 다른 형들의 얼굴도 눈앞에 스쳐 갔다.

-연습 걱정은 너무 하지 말고.

-야, 그냥 보고 와.

-합법적으로 김비주의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날인데, 포기하면 안 되지.

마음 편하게 다녀오라고 이야기를 해 준 형들이 고마웠다.

이렇게까지 막내의 복지를 신경 써 주는 사람들은…….

-지호야아아아! 물.

-택배 받아와. 지호야.

-리모컨.

눈앞에서 형들의 얼굴이 빙글빙글 돌았다.

“……에잇.”

손을 휘휘 저어서 눈앞의 얼굴들을 치웠다.

이어서 책가방에서 영단어 책을 꺼내자, 도원석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공부하게?”

“네.”

“근데 책이…….”

“아, 어제 샀어여.”

영단어 책의 비닐 포장을 뜯는 그의 모습에 매니저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고사장 앞.

수험생들의 입장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고등학교 정문에 차량 한 대가 섰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비주얼의 밴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누구 오나?”

“사람들 엄청 모여 있네.”

“연예인이 시험 보러 오나 본데.”

“……또? 아까 한 명 들어갔잖아. 걔도 유명한 애라며.”

엄청 순둥순둥하게 생긴 아이돌이 들어갔기에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모여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과 바글바글한 팬들.

이내 문이 열리고 패딩을 입은 미남이 내리면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머.”

수험생들을 바래다 준 가족들이 눈을 크게 떴다.

“지호네. 지호야.”

조카를 본 듯한 반가움이 순간적으로 일었다.

번쩍- 번쩍-

카메라 셔터 속에서 품에 책 한 권을 챙겨든 뉴블랙의 막내가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여~!”

지호 와쪄요 하듯 쩌렁쩌렁한 목소리.

보고 있는 사람의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유쾌한 미소가 눈에 들어오면서 웃음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기자들에게 마이크 무더기를 받은 지호가 씩씩한 얼굴로 소감을 말하려고 할 때.

“수험표는 챙겼나요?”

“네! 당연하져~”

눈웃음과 달리 주머니에 넣은 손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이내 무언가를 집었는지 지호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보시다시피 여기 딱 있습니다! 사진 엄청 잘 나왔어요! 나름 인생샷인 거 같긴 한데, 보세요. 잘 나왔져~?”

“잘 나왔네~”

수험표 사진 부분을 자랑하며 발랄하게 웃던 지호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살짝 긴장한 것 같은데, 떨리시나요?”

“네.”

지호가 근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형들한테 잘 보고 올 거라고 호언장담했거든요……. 약속 지켜야 되는데. 그래서 오는 길에 공부도 했거든요! 잘 보고 싶습니다!”

품에 끼고 있던 영단어 책을 자랑하듯이 내민다.

반짝반짝.

수험생 가족들이 감탄했다.

“세상에…….”

“완전 새 책이네. 새 책이야.”

“책에서 빛이 나네.”

“건강하니까.”

마치 거울처럼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영단어 책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본다면 저걸로 로마군을 무찌르자고 할 듯한 느낌.

이내 팬들과 기자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지호가 무거운 도시락 가방을 기우뚱 들고 사라졌다.

“잘 봐!”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 외침에 지호가 고개를 돌려 손을 발랄하게 흔들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책가방과 함께 오른손에 든 도시락 가방이 굉장히 무겁게 흔들렸다.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건강하니까…….’

시험을 보러 가는 국민 아이돌 막내의 뒤로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   *   *

점심시간.

고사장이 겹친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조용히 도시락을 먹고 있던 수험생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와…….’

책상 하나를 두고 서로 마주 앉은 두 아이돌 때문이었다.

‘존나 잘생겼네.’

절로 감탄이 나오는 비주얼이었다.

짙은 눈썹과 그 아래로 선명해 보이는 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입매가 연신 웃고 있다.

뉴블랙의 막내, 지호였다.

‘미튜브에서 보는 거랑은 또 다르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미소년도 만만치가 않았다.

틴스피릿이라고 하던데. 누구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학교 여자애들이 엄청 좋아하는 아이돌 중 하나였다.

‘둘이 친한가 보네.’

주세한에서 친하다고 뭐 본 것 같기는 한데, 서로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모습이 진짜로 친해 보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보다는 실친 같은 느낌.

하지만, 난생처음 보는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선 돌려야지.”

“나도.”

뉴블랙의 지호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는 수험생들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올 때마다 머릿속에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꽃이 필 때 돌아오리- 돌아오리-

-Empire~

-Nine Nine Nine-

‘으아아아아!’

그야말로 인간 수능 금지곡의 등장이었다.

망고 일간 차트를 재생하면서 수능 공부를 했던 수험생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이래서 선배들이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지 말라고 했구나 하는 걸 느낄 때.

힐끔.

“대박…….”

“냄새 미쳤네.”

왕지호의 도시락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소곤소곤하는 수험생들이었다.

계란말이, 불고기, 소갈비, 제육볶음, 튀김 등으로 가득한 거대한 도시락 가운데 영롱히 빛나는 붉은 음식.

원조 뉴불백이었다.

헬평에서 사람들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불백을 외치던 TV 속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꿀꺽.

침만 삼키며 다시금 눈앞의 도시락을 바라볼 때.

“저기.”

나긋한 목소리가 그들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지호가 씩 웃고 있었다.

“저 조금 남는데, 한 입 드릴까여~?”

“엇.”

“아까부터 보시는 것 같길래.”

쭈뼛쭈뼛하는 이들에게 뉴블랙의 멤버가 쾌활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드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한 입 먹고 인터넷에 후기로 왕지호 인성 대박을 올려 달라는 말에 그들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맛본 뉴불백은.

‘대박.’

편의점에서 사먹는 뉴불백 도시락과는 깊이가 다른 맛이었다.

난생처음 맛보는 불백에 감격하고 있는 동안, 틴스피릿의 멤버 하현이 왠지 모르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웃집인 내가 승리자.’

그러다가 자신의 도시락을 보며 흥 했다.

‘이 새끼들은 잘 익히기라도 하든가.’

아침부터 시발시발하며 삼겹살을 구워서 도시락을 싸 준 멤버들이었다.

정성이 나름 고맙긴 한데.

살짝 덜 익거나 완전히 검게 타 버린 삼겹살에 혀를 끌끌 찼다. 그저 눈앞에서 진수성찬을 차린 지호가 부러울 뿐.

“나 반찬 먹어도 되냐.”

“먹어~”

“좋겠다.”

“뭐가?”

“형들 있어서.”

그 말에 지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소곤거렸다.

“너도 형들 있잖아.”

“있는데 없어.”

“있는데 없어?”

“어. 그 느낌적인 느낌?”

“아.”

틴스피릿 멤버들을 떠올린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상대의 말마따나 이럴 때는 막내라는 사실이 참 좋다.

히히 웃고는 물었다.

“근데 너 시험은 잘 봤어?”

“몰라.”

하현이 수험표를 꺼내며 말했다.

“뒤에 쓰긴 썼는데. 이거 뒤편에 정답 적는 거라며.”

“나도 적음. 근데 너 본명이 하…….”

“하지 마라. 경고했다.”

왕지호가 흐핫 하며 밥풀을 튀기며 웃는 걸 보며 하현이 눈매를 좁힐 때.

두 아이돌의 시선이 이내 수험표 뒤편으로 머물렀다.

진지한 시선 교환.

“너 이거 푼 거지?”

“뭐래. 당연히 풀었지.”

찍을 때도 진지하게 찍었다, 하는 하현의 말에 지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봐봐.”

밥을 먹고 있던 두 아이돌의 시선이 국어와 수학 영역의 정답지로 향했다. 그리고 숫자들을 읽기 시작했다.

“53124.”

“53124.”

“……!”

“……!”

눈을 부릅뜬 지호와 하현이 ‘대박인데?’ 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대박!’

‘각이다!’

1번부터 5번까지는 일단 정답이라는 확신에 희희낙락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청력이 좋은 두 가수의 귓가에 목소리들이 들어왔다.

“처음은 그거 아냐? 44445.”

“44445지. 나 4 계속 나와서 당황했다니까.”

44445.

53124와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은 가수들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맑았다.

어디선가 새가 짹짹 울고 있고, 세상은 평화로운데 그들의 마음에는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뭐 다른 건 맞았겠지~”

“그래. 그렇겠지.”

그들의 귓가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27번 뭐 했냐? 2?”

“2.”

“맞지?”

두 가수의 시선이 27번째 문항으로 넘어갔다.

4와 5.

“…….”

다시금 먼 곳을 바라보던 가수들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노래는 우리가 더 잘해.”

“춤도 잘 추고.”

“그만하자. 슬프다.”

“…….”

촉촉한 눈으로 도시락을 바라보던 두 아이돌이 이내 한숨을 후- 내쉬고는 눈을 마주쳤다.

그들의 입가에 금세 미소가 걸렸다.

‘그래도 문제는 풀었으니까.’

다른 멤버들이 들었다면 답답해서 가슴을 팡팡 쳤을 생각이었다.

*   *   *

연습실.

지호가 수능을 보고 있는 동안, 우리는 한창 망고 차트 어워드의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형, 여기서 조금 더 빠르게 들어가 볼게요.”

“반 박자 정도?”

“그 정도면 될 거 같아요. 따따단, 말고 따따 정도로.”

비주가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춰 주는 동안, 안무 동작을 수정해서 보여 주었다.

“어때?”

“좋아요.”

연습이야 한 달 전부터 쭉 해 왔으니 남은 것은 자잘한 동작들 위주였다.

지금은 컨디션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시기였다.

스트레칭을 하며 꽉 뭉친 다리를 풀어 주는 동안, 옆에서 물구나무 자세를 하고 있던 중현이가 말했다.

“슬슬 지호가 올 때가 된 거 같은데요.”

“벌써?”

연락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시계를 보니 슬슬 도착할 시간이 되긴 했다.

비주가 화사하게 웃었다.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우리 모두 따뜻하게 웃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래도 착하니까.’

리혁이가 걱정된다는 듯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

“리어카만 아니면 괜찮아.”

금방 올 거라고 말하는 것도 잠시, 정말로 문이 타악! 하고 열렸다.

연습실 문을 활짝 열어젖힌 그곳에는 뺨이 뽀얗게 변한 우리 막내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

“지호야!”

“형드으을!”

“잘 봤니!”

“아니여!”

지호가 명랑하게 웃으며 외쳤다.

“망했어여!”

“자랑이다!”

이내 패딩을 벗어 두는 막내에게 다가가 고생했다고 토닥여 주었다.

히히 웃던 지호가 주머니를 주섬주섬 하더니 내게 핑크색 샤프를 건네주었다.

“뭐야?”

“형 주려고 기념품으로 챙겨 왔어여. 올해 수능 샤프.”

“오……!”

리혁이가 선물로 주었던 작년도 샤프에 이어 17학년도 수능 샤프도 새롭게 컬렉션에 추가되었다.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건 없냐고 이야기를 할 때.

딩동, 하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휘연 [님들]

휘연 [점수 어떻게 되시나요]

그제야 연습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오전에 했던 내기.

중현이가 턱을 매만졌다.

“자신감 넘치게 먼저 톡을 하는 거 보니까 잘 봤나 본데요.”

“그래여? 보니까 저랑 도찐개찐 같던데.”

“도긴개긴이야.”

그 말을 하며 리혁이가 지호가 수험표에 써 놓은 답을 인터넷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자동 채점 프로그램을 돌리자 곧바로 점수가 딱딱딱 떠올랐다.

국어 영역.

“한국인이냐.”

“너 솔직히 말해. 어느 나라 사람이야?”

“지호야. 괜찮아.”

수학 영역.

“수학은 그럴 수 있… 1번을 틀려?”

“8 곱하기 4분의 1을…?”

“허어…….”

영어 영역.

“미국 진출 쉽지 않겠어.”

“그래도 한국어보다는 잘하네요.”

“영어 유치원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중간에 나갔어?”

우리의 말에 막내가 먼 곳을 바라보는 동안, 비주가 지호의 귀를 막아 주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한국사는 만점이네.”

“휴우.”

“오, 시험을 두 번 친 보람이 있네요.”

한국사 파트에 이르러서 막내가 브이 하면서 능청맞은 눈웃음을 보였다.

이어서 사회 탐구 영역에서는 다시금 다른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도 차마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리혁이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내가 특별히 과외까지 해 줬는데…. 이건 졌어요. 틴스피릿이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졌어요.”

“괜찮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가수는 무대로 말하는 거니까.”

“맞아여~!”

포기한 채로 막내와 손뼉을 마주치며 꺄르륵 웃어댈 때.

리혁이가 지호의 점수를 입력해서 보내 주었다. 곧바로 1이 사라졌는데 왠지 답이 없었다.

“왜 답이 없지?”

“그러게.”

그로부터 3분 후.

휘연으로부터 톡이 도착했다.

휘연 [ㄱㅏ수는]

휘연 [무대로.. 말을.. 하는 겁니다.]

동생들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겼어?’

‘이걸 이겼다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겼으면 된 거야~”

“맞아여.”

“축하의 의미로 오늘 맛난 거 먹을까? 뭐 먹고 싶어?”

“음…….”

지호가 이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벽에 붙어 있는 달력을 보며 묘한 기분을 느꼈다.

11월.

이제 한 달이면 올해도 끝이었다.

그리고 지호도 곧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

처음 만났을 때, 중학교 3학년이던 애가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의 끝 무렵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성장기도 끝나서 턱선도 점차 날카로워지고 있고.

어른의 태가 나는 막내의 모습이 불현듯 낯설면서도 좋다.

“이제 곡은 편하게 쓸 수 있겠다.”

“곡이요? 갑자기?”

리혁이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호가 미성년자라서 좀 시도하기 애매했던 컨셉들 그런 거 있잖아. 가사 쓸 때도 그렇고.”

“그런 제약이 좀 있긴 했죠.”

“다음 앨범은 좀 독특한 걸 해 볼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영감 비슷한 것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허깨비 혹은 도깨비 같은 무언가.

눈앞에서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무언가에 대한 착상이 머릿속에 떠돌아다닌다.

낮에는 새가 되었다가, 밤에는 쥐가 되었다가, 곧바로 또 사람으로 요사스럽게 모습을 바꾸는.

화르륵 타오른 도깨비불처럼 푸르른 빛이 허공에서 일렁이는 듯한 멜로디가 머릿속에 하나 그려졌다.

기존에 써 놨던 곡을 어떤 식으로 바꾸면 재미있게 나올지.

“무슨 생각해요. 형?”

비주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우리 스페셜 앨범으로 준비 중인 음원들 있잖아.”

“아하.”

“그걸 어떤 식으로 다듬으면 좋을지 떠올랐어.”

메뉴 골랐다고 떠들썩하게 외치는 막내와 다른 동생들을 바라보고는 비주에게 물었다.

“근데 지호가 수능 치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면 좀 그렇겠지?”

“좀 이상하게 들릴 것 같긴 해요.”

그렇긴 하다.

나중에 인터뷰 등에서 적당히 둘러댈 말을 지어 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저녁을 먹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 첫 시상식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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