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35화
고척돔.
서울 구로구에 있는 돔 야구장으로, 공연장으로 쓰일 때는 대략 2만에서 3만 정도 들어가는 곳이다.
텅 빈 객석들을 둘러보던 리혁이가 말했다.
“여기가 구송 모터스 홈구장이래요.”
“오오.”
저번에 우리가 시구자로 나섰던 KG 드래곤스와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던 팀의 홈구장이라고 했다.
연말 무대나 행사로 몇 번 와 본 곳이긴 하지만, 저번이랑 보는 느낌이 다르다고 할까.
중현이가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우리 팀보단 약해요.”
최강 KG, 하고 주먹을 쥐어 보이는 중현이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시구를 했던 KG 드래곤스는 플레이오프의 연이은 승리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했다.
막내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우승했으면 좋았을 텐데.”
“괜찮아.”
중현이가 푸근하게 웃었다.
“원래 우승하고 그러는 팀 아니야.”
다 같이 웃었다.
지금이야 중현이가 평온하게 답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푸콱!
이번 달 초에 있었던 한국 시리즈를 보면서 중현이가 리모컨을 쥐다가 부쉈다는 것을…….
내가 말했다.
“야구는 위험한 스포츠야.”
“동의해요.”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런두런 대화를 하면서 긴장을 푸는 동안, 무대 위에서 한창 춤을 추고 있던 걸그룹 멤버들이 내려왔다.
프레피룩을 개량한 무대 의상을 입은 이들이 우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박수를 치면서 화답해 주자, 상대 쪽도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했다.
“수고하세요~!”
곧바로 레드카펫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떠나는 이들이었다.
세레니티.
우리와는 14년도에 함께 데뷔한 동기로, 작년 중순부터 올라와 지금은 사람들이 걸그룹 중에 최고로 치는 그룹이다.
올해 초에 히트한 REALITY라는 곡이 노래상 후보에 유력했다.
“오늘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많네.”
“그러게요.”
어워드 시즌이라서 그런지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이 정말 다 오랜만이다.
기지개를 쭉쭉 켜며 몸을 푸는 동안, 무대 위에서 바쁘게 세트 정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따 7시에 열릴 어워드를 앞두고 막바지 리허설이었다.
큐시트대로 리허설도 세레니티-뉴블랙-틴스피릿으로 이뤄지는 순서였다.
-뉴블랙 분들, 올라오실게요!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빠르게 진행했다.
작년의 체조보다 공연장은 더 커졌는데 어째 무대 규모는 조금 더 작아진 느낌이라 동선이 조금 갑갑하다.
돌출 스테이지로 나가는 루트도 이상하고.
그래도 금세 적응하긴 했다.
돌발 상황이 하나 있었을 뿐.
“어어……!”
무대가 끝나고 내려갈 때, 지호가 계단에서 미끄러질 뻔한 것을 중현이가 붙잡아 주었다.
순간적으로 슬로우모션처럼 눈앞의 광경이 지나갔다.
비주와 나, 리혁이가 놀라서 손을 뻗고 있는 동안 중현이가 후, 하며 양손으로 잡아 든 지호를 내려놓았다.
“……!”
막내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저, 지금 큰일 나는 줄 알았어여.”
“괜찮아?”
“네, 네… 뭐, 괜찮은 거 같은데여? 아, 깜짝이야.”
심호흡을 하는 막내를 걱정스럽게 살피고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계단의 미끄러운 부분을 살폈다.
현장 관리 측 실수였다.
곧바로 달려온 민기 형이 성난 얼굴로 어워드 측에 항의를 하는 동안 내려와서 막내를 살폈다.
중현이가 쪼그려 앉아서 막내의 발목을 문질렀다.
“발목은? 접질리거나 하진 않았고?”
“잠시만여.”
빙글빙글.
발목을 요란하게 돌리던 막내가 브이를 했다.
“멀쩡해여.”
“이따 대기실 가면 마사지 좀 충분히 해 둬. 그러다 무대 올라가서 근육이 결릴 수도 있으니까.”
“네, 근데 걱정하지 마여. 형들~”
생글생글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는 막내였다.
“가끔 보면 형들이 저를 너무 그 뭐지, 과… 과실? 그 온실효과 같은 거 있잖아여.”
“과보호?”
“과보호 하는 거 같다니까여. 저도 이제 온실 속 파채가 아니라 성인인데.”
혹시나 괜찮다고 말만 그러는 게 아닌가 싶어서 살폈는데, 다행히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단체로 쪼그려 앉아서 막내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에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뭔 일 났어요?”
고개를 돌아보니 뚱한 얼굴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말해 주니 연후가 혀를 찼다.
“큰일 날 뻔했네요.”
자기 일처럼 분개하던 이들이 자기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도 어제 조뗄 뻔했거든요. 무대에서 갑자기 미끄러질 뻔해 가지고.”
“존나 아이스링크인 줄.”
“행님들도 조심하세요. 특히 우주 행님은 허리 시큰거리실 나이니까.”
“…….”
우리 동생들이 으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연후가 딴청을 피웠다.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근데 너네 그제 수능…….”
단체로 표정이 변했다.
지호에게 패배한 하현이 먼 곳을 바라보며 외쳤다.
“어씨, 우리 부른다! 수고염~!”
“갈게요! 가세요!”
모른 척하며 단체로 무대를 향해 뛰어가는 이웃집 소년들을 보며 웃었다.
“리허설 잘해!”
“안 들려요! 안 들리-!”
내가 뭐라고 놀린다고 생각을 했는지, 귀를 막는 이들을 보며 웃을 뿐이었다.
리혁이가 말했다.
“근데 오늘 조심 좀 해야 되겠는데요.”
“그러게.”
올 때도 희한하게 차가 안 막히는 구간에서 막히고. 비주가 요리하려고 깬 계란 상태가 영 그렇고.
리혁이의 신발 끈이 자꾸 풀어지고.
중현이가 먹으려고 꺼낸 지렁이 젤리에서도 가장 긴 젤리가 없었다.
당사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콜라 맛이라서 그게 핵심이거든요.”
“콜라 맛은 중대사항이지.”
어쨌거나 그런 날들이 있다.
평소에는 한산하던 곳이 어마어마하게 붐비고, 안 막히던 길이 막히기 시작하는 그런 날들.
내가 TJ 엔터에서 탈락 통보를 받았던 날도 좀 그랬다.
“액땜한 셈 칩시다.”
내가 수능을 못 본 것이 지금 멤버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듯이, 자잘한 불운이 큰 행운으로 이어질 거라 믿었다.
동생들에게 씩 웃으며 어깨를 툭 쳤다.
“가자.”
레드카펫 행사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 * *
매년 시상식 시즌은 아이돌 팬들의 희노애락이 극대화되는 시기였다.
그만큼 예민하고, 사람들이 미쳐 가고.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에 남는 건 기록이다.
어느 아이돌 팬이 남긴 명언.
여행을 다녀오고 남는 건 사진이라고 하듯이, 마지막에 가서 남는 것은 수상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상 여부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이다.
상은 한 번뿐이고.
그해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고 해도, 미래 시점에서는 누가 상을 받았는지만 기억에 남기에.
‘으아, 떨려.’
그런 면에서 수플레들도 며칠 전부터 싱숭생숭하는 중이었다.
[현재까지 2016 망고 차트 어워드 대상 부문 점수]
음원 사이트에서 진행하는 네티즌 투표가 종료된 이후.
음원 점수를 포함해 투표 점수까지 자체적으로 합산한 도표가 SNS와 커뮤니티에 돌아다녔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상을 주는 음원 사이트 ‘망고’의 내부 데이터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추정치로선 정확했다.
그리고 그 수치에서는…….
‘대, 대박 났다!’
뉴블랙이 잭팟을 터뜨린 상황이었다.
상을 주는 곳이 음원 성적을 기준으로 수상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앨범상과 가수상 부문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거두고 있는 뉴블랙.
-와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앨범상은 뉴블랙 무조건 확정인 듯ㅋㅋㅋㅋ
-낙화 앨범 스밍이랑 다운 미쳤네
-머글픽이랑 투표 합치니까 못 막는구나..ㄷㄷ
-뉴블랙 뉴블랙 세레니티 이렇게 줄듯
-불꽃놀이가 올해 음원이 아닌게 아깝긴 하다ㅋㅋ 올해 음원이었으면 무조건 후보 각인데
-올해 연간 1위 어텐션 아냐??
-ㅇㅇ 근데 프로젝트성 음원이라 대상 안 줄거임,, 성적대로 세우면 리얼리티 아님 낙화나 장소원 OST인데 상3개 몰아주긴 안할듯
여기에 심사위원들이 주는 점수까지 합산하여 상을 주는 방식이었는데.
심사위원 점수로도 차이를 메우지 못할 만큼 2위와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는 뉴블랙이었다.
그야말로 올해 음원 대박을 터뜨린 상황.
하지만.
‘아오, 이거 왜 불안하지.’
수플레들은 왠지 모르게 찝찝할 뿐이었다.
데이터대로 하면 올해 앨범상과 가수상은 무조건 뉴블랙이 따 놓은 당상이긴 한데…….
-근데 모름ㅋㅋㅋㅋ
-이새기들은 눈치를 안보기 때문이다(팩트)
-그냥 지들 맘대로 주던데
-작년에 텐티랑 틴스 개판 났던거 기억하면..ㅋㅋ
-뉴틴세 이렇게 나눠먹을삘
-앨범 뉴블랙 가수상 틴스 이렇게 줄듯
-근데 모르는 게 작년에도 저런 거 순위에서 4위 7위인 그룹들이 심사위원 점수 역전으로 먹었음
-뉴틴세 각일걸. 니네가 주최 측인데 틴스를 무관으로 보낸다? 가능하겠음?
-어워드 대상은 보통 그해 제일 짱센가수 3인방이 나눠먹음ㅇㅇ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상은 언제나 주최 측에서 마음대로 주기 때문이었다.
‘몰라.’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자료들은 항상 만드는 사람이 누구 팬이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저 유력하다고 알려진 앨범상과 가수상, 두 개의 대상을 무사히 수상하기만을 바랄 뿐.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하늘을 향해 간절하게 기도하는 팬들이었다.
그리고.
쏴아아아아-
“…….”
그 말에 화답하듯 하늘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웹서핑을 하거나 TV를 틀어 놓은 수플레들이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어어! 비 온다!”
“어우씨, 왜 갑자기 비가 와!”
기상 예보에도 없던 비가 내리면서 레드카펫 현장의 취재진과 팬들이 당황하며 우산이나 우비를 찾을 때.
척.
자연스럽게 빵 색깔 우비를 걸치는 이들이 있었다.
‘중현이가 비 온다고 했으니까…….’
기상청보다 정확한 최애의 일기예보에 흐뭇하게 웃는 수플레들이었다.
* * *
“비가 오네.”
다행히 레드카펫 행사장까지 가는 길에는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경호원 분들이 씌워 주는 우산 아래서 걷다가 레드카펫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그리고.
“와아아아아-!”
길목을 틀어 레드카펫에 입장하자 환호성이 우릴 맞이했다.
우비를 입은 수플레들이 손을 흔들어 주는 가운데, 우리도 손을 흔들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카메라 셔터들이 정신없이 번쩍인다.
빛으로 눈알을 팡팡팡팡 얻어맞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어워드 시즌이 되긴 했나 보다.
저번에 참석한 종방연은 약과였다.
-네, 올 한 해 어마어마한 인기를 기록했던 팀이죠! 뉴블랙이란 세 글자에 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MC를 맡은 분의 능청맞은 소개가 이어졌다.
-올해 초의 스페셜 앨범 겨울잠, 그리고 낙화와 Empire라는 걸출한 곡들. Attention의 프로듀싱과 헤일리 블루와의 콜라보인 Blue Moon, 그야말로 다양한 음악 활동이 있었고요.
멀찍이서 마이크를 들고 약장수처럼 이야기하는 MC와 눈이 마주쳐서 웃음이 나왔다.
모범주.
안경을 쓰고 체구가 자그마한 미남은 미스터 프로듀서에서 감초 역할을 맡고 있는 예능인으로, 우리와는 구면이었다.
-예능으로는 미프와 주세한, 그리고 드라마의 연기 활동까지.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국민 아이돌’에 등극한 뉴블랙입니다!
소개가 마무리될 때쯤에 우리가 MC 앞에 도착했다.
꾸벅 인사하는 우리에게 모범주가 마이크를 내려놓고 씩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우리 선생님들. 우주선 작곡가님도 잘 계시죠?”
“그분 소식은 저희도 잘…….”
“성격이 안 좋잖아여~”
우리의 대답에 상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곧이어 사진 기자들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익숙하게 취해 주고는 마이크를 하나씩 받았다.
모범주가 물었다.
-오늘 시상식에 참석한 소감이 어떠세요?
“벌써 시상식 시즌이 됐나 싶어요. 작년에 참석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습니다.”
큐카드에 있는 질문들이 빠르게 쏟아져 나온다.
몇몇 개는 스킵을 하는 것 같은데, 좀 예민할 수 있겠다 싶은 질문은 모범주 선에서 정리가 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지호 씨가 수능을 쳤다죠. 얼마 전에 뉴스에서 소식 봤어요.
“네, 맞습니다.”
-지호 씨. 잘 보셨나요~?
우리 막내가 히히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당…….”
“얼마 전에 저희한테 배웠거든요. 노코멘트.”
모범주가 웃었다.
동생들이 적당히 쳐낼 질문은 쳐 내고 진지하게 답할 질문은 진지하게 답하는 동안.
내게도 질문이 하나 왔다.
-정말 올 한 해 음악적으로 왕성한 작업량을 보여 줬던 우주 씨잖아요. OST, 콜라보 음원, 스페셜 앨범….
모범주가 물었다.
-혹시 앞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습니까?
“프로젝트요?”
-네, 제가 들어가려고요.
기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웃으며 답했다.
“선배님이 오시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대신에 이제 또 프로듀싱을 저희한테 받으셔야 하는데….”
-…그냥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우주선 작곡가는 전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모범주의 말에 사람들이 웃는 동안 내가 답했다.
“준비 중인 게 하나 있습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인데요.”
며칠 전에 지호로부터 영감을 얻은 새로운 스페셜 앨범 프로젝트.
이전부터 미리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것이라 곧바로 착수에 들어갔다.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된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자세한 건 비밀입니다.”
-아~ 아쉽군요.
이내 멘트를 마무리하며 기자단과 팬들에게 꾸벅 하고는 마이크를 다시 반납했다.
마이크를 내린 모범주가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파이팅.”
“감사합니다.”
“이따 대기실에 놀러 갈게. 기석이 형이 너네 주라고 한 게 있어.”
짭플레라고 자칭하는 추기석 씨가 무언가 선물을 보낸 모양이었다.
간만에 들은 이름들이라 왠지 반갑다.
엄청 긴장되지만, 어워드 시즌에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었다. 동창회처럼 그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
“어머! 야!”
고척돔으로 다시 돌아오자마자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검은 드레스를 우아하게 걸친 장소원 선배.
올해 발매한 앨범이 음원 차트에서 대박 나기도 했고, 최근에는 온더스의 멘토로 활약했었다.
“안녕하세요!”
“그 사이에 별일 없었어? 이번에 음원 나온 거 좋더라.”
“감사합니다. 원더풀 나잇 라디오에서 틀어 주신 거 들었어요.”
가수 이름 맞추는 퀴즈에도 참여했다는 말을 하며 웃는데 비주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에요. 화장실이 어디지? 이쪽인가?”
“대박, 비주 형이 방향을 맞혔어여!”
엄청 당황했는지 올바른 방향을 찾는 비주였다.
왜 저러지.
그동안 장소원 선배와도 반갑게 안부를 나눴다.
“요즘에 엄청 바쁘시다면서요.”
“응, 팔자에도 없는 애들 가르치는 걸 하다 보니까. 걔네도 이제 데뷔가 얼마 안 남았거든.”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보람 있더라. 애들이 쑥쑥 늘어.”
경연으로 선발된 <온 더 스테이지>의 연습생들에게 데뷔를 앞두고 보컬 레슨을 한다는 듯했다.
장소원 선배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끔 가다가 어디 물들었는지, 애들이 누구를 떠올리게 하긴 하는데.”
“그, 그렇군요.”
모른 척하는 우리의 모습에 상대가 픽 웃었다.
그렇게 장소원 선배를 시작으로 복도에서 지나치는 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I say 민!”
“We say 초!”
“민초!”
“민초!”
무대에 별도로 마련된 가수석에 올라와서는 9인조 아이돌과 안부를 나눴다.
‘할리우드 맨~’ 하며 주먹 인사를 하는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의 멘트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곧바로 다른 가수들이 줄줄 올라오면서 긴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대박…….”
LB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우리가 선배야.”
“선배라니…!”
확실히 시상식 분위기가 작년이랑은 또 확 다르긴 했다.
그래도 작년에는 약간 5형제 중 넷째 같은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둘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개별로 참가한 대선배들을 제외하고, 시상식에 참여한 그룹들의 데뷔 시기가 대체로 비슷하거나 우리보다 늦기 때문이었다.
시상식에서 메인 라인업인 우리, 스보, 블링크, 세레니티가 동기고. 에노티와 하이컬러 등은 1년 후배.
올해 데뷔한 TJ 엔터의 보이그룹도 있다.
“……허전하네.”
태현이한테 미리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TNT는 올해 시상식 등에 불참으로 알고 있었다.
회사 방침이라는데 대략 짐작이 가는 이유였다.
-상 받으면 우리한테 제일 먼저 전화해. 아, 할머니 다음으로.
얼마 전에 통화로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묘한 기분을 느낄 때였다.
레드카펫 마지막이었던 틴스피릿 멤버들까지 가수석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상식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천장의 조명이 반짝이며 돌아가고.
널찍한 고척돔을 채운 수많은 응원봉들이…….
“저거 다 달봉이 같은데요.”
중현이의 말을 보니 사방이 달봉이 천국이었다.
‘성공했구나, 우리 김달봉…!’
‘달봉아!’
시선이 향할 때마다 마구 흔들리는 달봉이의 물결이 흐뭇하다.
영혼(soul)을 상징하는 것인지 구름 모양으로 된 틴스피릿 팬들의 영혼봉과 함께 반반으로 흔들리고 있다.
-존나 뻐큐 모양 같지 않나요. 팬분들이 뻐큐봉이라고 하던데.
-개딴딴해요. 영혼분쇄기임.
불현듯 나오려는 웃음을 고개를 내려서 꾹 참고는 헛기침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 조명이 꺼졌다.
“어, 시작한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대형 앰프에서 울리는 BGM에 온몸이 들썩이는 것 같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동생들과 어깨를 맞대고 펭귄 떼처럼 뭉쳤다.
마침내 시작한 2016년의 첫 시상식.
“와아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잦아들면서 우리가 보고 있는 전광판에 오프닝 VCR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눈을 깜빡였다.
반짝반짝.
‘대표님?’
오프닝 VCR에 박규호 대표님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