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1)화 (54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1화

헤일리네 가족과의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곧바로 미리 섭외해 둔 연습실을 방문했다. 바로 클레이 타일러가 운영하는 댄스 스튜디오였다.

[CLOSED]

‘장사 안 합니다~’ 하듯 현관의 불까지 꺼져 있는 댄스 스튜디오의 모습에 우리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닫혀 있네요.”

“그래도 서프라이즈로 기다리고 있진 않았을까 했는데…….”

비주가 살짝 시무룩한 얼굴을 하는 동안, 중현이가 근처에 놓여 있는 화분으로 다가갔다.

“찾았어요. 열쇠.”

클레이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에는 현재 아무도 없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예정하고 있어서 잠시 쉬고 있다나.

-그럼 클레이는 현장에 올 수 있겠네요!

-어…? 어, 나는 여행을 갈 건데?

-조이는요?

-조이도 같이 갈 거야. 그렇지? 그렇대.

클레이는 도망갔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

“밥도 먹이고, 과자도 주고, 돈도 주고…….”

“너무해여.”

흥 하며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리혁이가 말했다.

“솔직히 우리가 많이 힘들게 하기는 했잖아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시계 떼자는 아이디어 제시한 게 누군데.”

“…….”

자기가 심리학 책에서 봤다면서 백화점에 시계가 없는 이유를 신나게 설명하던 리혁이었다.

머쓱했는지 헛기침을 하던 리혁이가 스튜디오 로비의 보드에 다가갔다.

“진짜 리모델링 공사 들어가긴 하나 보네요.”

“오.”

“근데 리모델링 시작일 공고 올라온 게 우리가 온다고 한 날이에요.”

멈칫.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하하 웃었다.

“아니겠지.”

“맞아여. 아무리 우리가 싫어도 그러겠어여? 이런 건 자의식 잉… 오잉, 도 아니고 뭐였져?”

“과잉. 멍청아.”

“멍청이라고 하지 마여. 저도 올해의 가수인데.”

어쨌거나 우리에게 일용할 연습실을 선사해 준 클레이에게 고마움의 메시지를 전하며 진입했다.

수십 명이 연습해도 넉넉한 연습실 공간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반가운 얼굴을 못 만나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긴 한데, 클레이 부녀와는 LA 떠나는 날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때 되면 우리가 이것저것 못 물어볼 거라고 생각하나 봐.”

“흐흐흐흐흐…….”

껄껄껄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이내 다 같이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푸는 동안, 비주가 안무 영상을 확인하며 미리 준비를 했다.

Blue Moon의 무대는 내일 오전에 헤일리와 한 번 합을 맞춰 보기로 했고.

일단은 올해 홍콩에서 열리게 될 KMA 무대 준비가 우선이었다. 당장 다음 달 2일이 어워드인데 2주도 안 남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럼 시작할까요?”

“고고고!”

박수를 치거나 기합성을 지르면서 흥을 돋우고는 곧바로 어워드 무대의 연습에 들어갔다.

Empire부터 시작해서 낙화로 끝나는 음원.

살짝 다른 댄스 브레이크 구간 등을 연습하면서 연습실 바닥이 땀으로 반짝일 때까지 연습을 이어 갔다.

“후우…….”

한 번 할 때마다 체력 소모도 심하고, 앞으로 남은 기간도 얼마 없고.

평소라면 이런 어워드 준비 기간에 프로모션 일정이 잡혀서 스트레스가 있었을 텐데.

희한하게 괜찮았다.

아마 이번 미국 프로모션이 우리 예상보다 더 큰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월드 뮤직하고 계약을 마쳤어.

미국에서 가장 큰 레코드 회사 중에 하나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코드 회사랑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쪽에서 우리의 미국 진출 가능성을 높게 치고 있다나.

한 번 제대로 뚫리기만 하면 다른 해외 시장과 비교를 불허할 만큼 규모가 큰 곳이 미국이었다.

정말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만 거둬도 일본 다음가는 큰 시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중현이가 말했다.

“우리 나가는 토크쇼 두 개 있잖아요.”

“응.”

“둘 다 되게 큰 거라고 했죠?”

“응. 두 개 다 지상파라고 하더라고.”

미국에는 지상파 방송국이 6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송국마다 심야 토크쇼가 하나 있는데, 이게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TV 프로그램들이라고 했다.

“예능 같은 건 안 보나 보네여.”

“그니까. 심심할 텐데.”

이런저런 쇼 프로가 많기는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이 토크쇼들이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고 했다.

많은 방송 작가, 코미디언들의 최종 목표가 토크쇼의 호스트일 만큼.

유명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면 이 나라 최고의 셀럽에 등극하는 바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영화를 개봉하면 토크쇼에 나가고, 노래가 나오면 토크쇼에 나가는 식으로, 대부분의 홍보가 토크쇼에서 시작해서 토크쇼에서 끝난다고.

그리고.

“래리 고든 쇼랑 그리고… 뭐였죠?”

“앨런 데일 쇼.”

둘 다 지상파에서 잘나가는 쇼라고 했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티셔츠를 펄럭이며 땀을 말리던 지호가 물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주세한이랑 미프 같은 느낌일까여?”

“잘 모르겠네…….”

“인기 프로라곤 하는데, 한국이 아니니까 무슨 느낌인지를 모르겠어여.”

“그치.”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어쩌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맞아요. 뭐, 괜히 더 떨릴 수도 있고.”

리혁이가 웬일로 내 말에 동의해 줬다.

“근데 너 왜 이렇게 떨어?”

“……느아읍, 차!”

몸을 일으키려다 복근 통증 때문에 실패한 메인 보컬이 굼벵이처럼 기어와서 내게 속삭였다.

“두 개 다 엄청 유명한 쇼예요…….”

“아.”

“나 지금 심장 터질 것 같은데, 다들 걱정할 거 같아서 말 안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왜 나한텐 말해 주는 건데.”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재단사가 구멍에다 대고 눈 썩었다! 그러고 외치잖아요. 약간 그런 느낌으로.”

“…….”

“아, 좀 시원하다.”

리혁이가 살짝 눈이 풀린 미소를 짓고는 다시금 꾸물꾸물 제자리로 기어갔다.

그동안에도 메아리처럼 내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엄청 유명한 쇼예요. 엄청 유명한 쇼예요.

귀를 긁었지만 떨쳐지지 않았다.

하필이면 목소리도 엄청 낭랑해서, 리혁이의 얼굴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유명하다… 유명하다… 하고 있었다.

눈을 흘겼다.

‘너 진짜.’

‘뭐, 어쩔 건데요.’

‘중현아…….’

‘하지 마, 이 사람아. 하지 말라고 했어, 내가.’

내 눈빛에 반응한 중현이가 램프의 요정처럼 그윽한 미소를 짓는 모습에 손을 내저어 보였다.

요정이 램프 안으로 들어가듯이 중현이가 콩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무대나 합시다. 팬들한테 좋은 무대 보여 준다는 생각으로.”

“왜 이렇게 떨어여. 형?”

“수전증이야.”

달달 떨리는 손을 등 뒤로 감추며 웃었다.

*   *   *

캘리포니아 버뱅크(Burbank) 시.

LA 시내에서 북쪽으로 가면 나오는 이 도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사, 미디어 그룹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곳이다.

유명 토크쇼 <래리 고든 쇼>의 녹화가 이루어지는 스튜디오 또한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뭐야……?”

점심시간에 바깥으로 나온 근처 회사의 직원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사람일 만큼 바글바글했다.

테마파크에 놀러 온 것처럼 활기찬 표정으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최소 수백 명.

커피를 들고 회사로 돌아가던 직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저기.”

“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뺨에 빨갛고 파란 태극무늬를 그린 팬이 외쳤다.

“뉴블랙을 기다리고 있어요!”

뉴블랙……?

“드라마요?”

“아뇨. 뉴블랙이라는 가수가 있어요!”

“아하.”

그러자 의문이 들었다.

‘그게 누군데.’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가수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미디어 업계의 첨단을 달리는 그들이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있긴 한 것 같다.

래리 고든 쇼가 녹화를 시작하는 시간이 보통 오후 5시 즈음인데, 몇 시간 전부터 이런 인파라니.

“뉴블랙이 누구인데요?”

“K팝 가수예요.”

“아…….”

매니아가 많은 외국 가수인 모양이다.

해외에서 방문한 가수라 얼굴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다들 발걸음을 옮겼다.

The New Black이라고 되어 있는 위키피디아 문서를 검색해 보면서.

그동안 인파는 계속 불어났다.

“누구 온대? 영국 배우라도 오나?”

“K팝 가수라는데.”

“……이 동네에 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은 건 처음 보는데.”

멀찍이 빌딩의 유리창 근처에 모여 수군거리는 사람들.

그들이 흥미롭다는 듯 구경을 하고 있는 동안, 버뱅크 시 경찰서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몇 명?”

“지금 계속 불어나고 있어서 추산이 힘든데, 이대로 가면 근처 일대 거리가 사람으로 꽉 찰 것 같습니다.”

이대로 쭉쭉 가면 천 명에서 이천 명 사이가 모이지 않을까 싶다는 관측에 경찰서장이 눈을 깜빡였다.

“우리 순찰대가 93명인데?”

“…….”

외국 가수를 보러 온 팬들이라고 하긴 했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두려움이 절로 드는 숫자였다.

‘뭔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인데…….’

토크쇼를 방문한 스타들을 직접 보겠다고 팬들이 스튜디오 앞에 죽치는 거야 매번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본다.

거의 무력시위를 해도 될 만한 인파가…….

“인근 회사들에서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무섭다고.”

“순찰차들은 보냈나?”

“네, 일단 보냈습니다.”

경관들로부터 현장 사진이 속속 도착했다.

열정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노래만 해. 우리가 꽃길 깐다.]

[올해 가수상 축하해!]

[김비주는 나를 봐 달라]

모두 다 한글이라 경찰들에겐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글자를 들고 성난 사람들처럼 웃는 이들의 모습이 몹시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현장에서 최대한… 자극하지 말라고 해.”

“그렇게 조치하죠.”

현지 경찰들이 화들짝 놀라서 움직이고 있을 때.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현장에 모여 있는 수플레들도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어머.’

분명히 나의 작고 소중한 가수를 응원하기 위해 모였는데.

이 많은 사람들은 대체 뭘까.

연예인을 직접 보기 위해 현장에 찾아올 정도로 열정 넘치는 팬들은 어느 연예인에게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라이트 팬을 제외하고 열정 있는 팬들 중에서도 일부인 사람의 수가…….

“몇 명이나 모인 거지. 우리?”

“몰라…….”

도로를 빼고 거리를 꽉 채운 인파.

플래카드와 깃발까지 합쳐져 마치 대통령이 카 퍼레이드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다.

현장에 모인 팬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인파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연예인 차량으로 보이는 SUV가 토크쇼 스튜디오 앞에 멈춰 섰다.

달칵.

문이 열리고 파란 머리카락를 흩날리는 미녀가 내렸다.

“헤일리!”

“헤일리 블루다!”

현장에 가득한 인파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헤일리 블루가 선글라스를 슥 내려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 누구 기다려?”

“뉴블랙이요-!”

“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헤일리 블루가 자신의 팬을 알아보고는 사인을 가볍게 해 주었다.

그러곤 수플레들에게 손을 들었다.

“난 뉴블랙이랑 노래 부른 사람임.”

“와아아아아아-!”

“수고.”

하품을 쩍쩍 하던 헤일리 블루가 경호원들을 이끌고 휘적휘적 들어가면서 작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몇 분 후.

이번에는 뉴블랙이 탄 걸로 보이는 차량이 왔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구수한 음악 소리.

열린 창문 너머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으아아아아아아~!”

일대가 흔들릴 만큼 격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몰랐는지, 창문을 연 채로 늘어져 있던 뉴블랙 멤버들이 차 안에서 벌떡 일어났다.

차량이 멈춘 후.

“……?”

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다섯 고개가 빼꼼 내밀어졌다.

정찰을 나온 미어캣처럼.

“와아아아아아아-!”

“…….”

화들짝 놀란 뉴블랙 멤버들이 쏘옥 들어갔다.

‘엇. 이게 아닌데.’

마찬가지로 당황한 수플레들이 멈칫하고 있을 때, 다섯 고개가 다시 한번 쏘오옥 하고 내밀어졌다.

“와아아아아-?”

다시 들어가려는 모습에 환호성의 높낮이가 바뀌었다.

“와아아아…….”

시무룩하게 변하려는 팬들의 모습에 그제야 뉴블랙 멤버들이 차에서 내렸다.

모두 다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우주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헤일리 팬들인가요?”

그 말에 화답하듯 수플레들 사이에서 고립되어 있던 헤일리 블루의 팬들이 손을 흔들었다.

겁에 질린 표정들이었다.

그걸 보며 웃던 뉴블랙 멤버들이 와- 하며 팬들을 둘러보았다.

“정말 우리 팬들이에요?”

“그렇다—!”

“전부 다…?”

“맞다!”

“…….”

잠시 멍하니 입을 벌리던 뉴블랙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우아아아! 하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세상에!」

「마상에!」

「형들, 이게 다 우리 보러 온 팬분들이래여!」

「다들 호들갑 떨지 말고 진정해요! 진정하란 말이야! 이런 거에 막 떨고 그러면 안 돼요!」

「리혁아, 괜찮아. 진정해.」

익숙한 모습에 팬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이내 뉴블랙 멤버들도 팬 서비스를 시작했다.

훈훈하게 변한 분위기에 경관들도 긴장을 풀었다.

‘하찮아 보인다.’

위험 요소가 될 만한구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우리도 가서 인증샷 찍을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웃음소리가 가득해지는 거리를 보면서 유일하게 웃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튜디오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토크쇼 직원들.

“바꿔.”

“네?”

“대기실… 바꾸라고. 큰 곳으로.”

유례없는 인파에 겁에 질려 버린 래리 고든 쇼의 제작진이었다.

*   *   *

세상에.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이 거리를 팬들이 꽉 메우다니.

“우와…….”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번외편 격으로 온 해외 활동이라 처음에는 부담이 없었는데, 막상 현지에 오니 긴장되고 있던 터였다.

잠깐 무대를 서게 된 한국 예능이 주세한이나 미프인 걸 깨달은 외국 가수의 심정 같다고 할까.

게다가 모르는 나라라서 더 긴장되고.

그런 우리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현지에 헬평 휴게소를 재현해 준 수플레들이었다.

「고마워요!」

일일이 다 악수하거나 그럴 수는 없었지만 사진을 찍는 수플레들 곁으로 가서 손도 흔들고.

사인지에 사인도 해 주고.

「내 몸에다 사인해 줄 수 있어요?」

「그건 안 돼요. 지호가 그러는데 매직으로 몸에다 뭐 쓰면 수명이 준대요.」

「줄어도 괜찮은데!」

「제가 오래 살 거라서 그래요. 우리 오래 봐야죠.」

응원 플래카드를 들어 주는 팬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했다.

예상치 못했던 환영 인파라 그런지, 가슴이 뭉클하고 자꾸 여기 있다 보면 눈물이 고일 것 같다.

입을 틀어막고 왈칵 눈물을 터뜨리는 팬들 때문에 더 그랬다.

「여러분, 정말 최고예요.」

계속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는 우리에게 응원하듯이 환호성이 들려왔다.

어찌나 열기가 뜨거운지 콧잔등에 땀방울이 성글성글 내려앉아 있다.

“대박…….”

“와, 저, 저, 아직도 얼떨떨해여.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팬분들이 왜 여기 다 있는 거예여?”

“그러니까. 우리 보려고 모인 건가…?”

“잠깐만요.”

너무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는지 리혁이가 잠시 벽을 짚었다.

버리고 가기로 했다.

“치사하게!”

“대상 그룹에게 약한 자는 필요 없다.”

중현이의 근엄한 목소리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스튜디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비원이 우리의 신원을 확인했다.

바깥을 바라보던 경비원이 살짝 질렸다는 얼굴로 말했다.

「유명한가 봐요, 당신들.」

「그냥 우리 팬들이 마중 나온 거예요.」

「마중이요? 마중 두 번 나왔다가는 스튜디오가 점령당할 거 같은데요.」

너스레를 떨던 상대가 환영한다며 우리를 들여보내 주었다.

이윽고 도착한 스튜디오 3층.

복도에서 시끌벅적하게 돌아다니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할 때마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그래도 팬분들 덕분에 좀… 뭔가 그런 게 좀 있다. 그치?”

“좀 으스대게 되는 느낌이 있어여.”

강력한 건 우리 팬들인데, 왜 우리 걸음이 위풍당당해지는 걸까.

“팬의 성공은 가수의 성공인 거니까.”

“맞아요.”

안내를 나온 인턴 직원으로부터 정중하게 대기실을 안내 받았다.

“오오……!”

인지도 없는 가수들 엄청 무시한다고 헤일리로부터 들었던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널찍한 대기실.

푹신해 보이는 소파 위로 멋진 그림이 걸린 액자가 있고, 테이블에는 알록달록한 과일과 함께….

“한국 과자들이 있네?”

“우와.”

LA 인근이라 그런지 한국 과자들도 구비되어 있었다.

인턴 직원이 잇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고마워요!」

미국 토크쇼는 그래도 노래만 부르고 가는 뮤지컬 게스트에게도 잘해 주는구나 싶을 때.

소파에 앉아 꺄르륵 웃고 있던 우리에게 시선이 느껴졌다.

「…….」

열린 문 사이로 헤일리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뭔가 생각에 잠겼는지 ‘헤일리!’ 하고 부르는 우리의 인사에도 응답이 없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상대가 대기실 팻말에 붙은 ‘The New Black’을 보고는 물었다.

「여기가 너희 대기실이야?」

「네!」

「……?」

「왜 그래요?」

헤일리가 미간을 모았다.

「이 새끼들 나한테는 왜 그랬지.」

「……?」

「대기실이 구릴 거 같아서 내 방으로 오라고 하려고 했거든. 근데 내 방이랑 비슷하네.」

그러더니 납득했다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하긴… 방송국을 불태울 수 있는 인파 앞에서는 누구나 친절해질 수밖에 없지.」

「흐하하하!」

정말이지 명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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