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2)화 (54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2화

헤일리의 말이 맞았다.

본래 모르는 외국 가수에게 이런 대접을 해 주는 곳이 아닌데, 우리가 특별 대접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무대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멋진 무대였습니다!」

「고마워요.」

리허설 무대를 끝내고 손뼉을 쳐 주는 스탭들에게 웃으며 화답했다.

토닉 워터를 들이켜던 헤일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이 새끼들, 나한테는 박수 안 쳐 줬는데.」

다채롭게 이어지는 영어 욕설에 웃음을 흘렸다.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미국에도 동물 종류가 참 많다는 건 알았다.

아르마딜로가 미국에도 사는구나.

「근데 헤일리는 왜 우리 대기실로 와요?」

「심심해서.」

우리 대기실 소파에 뛰어들듯이 벌러덩 드러누운 미국의 가수가 테이블 위의 한국 과자를 뜯기 시작했다.

하하 웃으면서 우리 몫의 과자를 다급히 챙겼다.

그때, 스탭이 노크를 하더니 고개를 들이밀었다.

「더 필요한 건 없나요?」

「네.」

상대가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문을 닫았다.

헤일리가 비죽 웃음을 흘리는 동안, 동생들과 내가 살짝 민망한 기분으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부담스럽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안 해 주는데.’

동시에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금 저 사람들이 잘해 주는 이유가 우리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토크쇼 출근을 보기 위해 팬들이 수천 명 넘게 모인 정체불명의 외국 가수.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주면서도 쉴 새 없이 곁눈질로 우리를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자꾸만 느껴졌다.

“명품진품에 출연한 기분이에여. 근데 제가 상품인 기분.”

“딱 그거네.”

그런 장면들을 본 적이 있다.

아니 이 도자기는…! 하면서 진행자와 패널들이 우와아아! 하면서 상품 가치를 딱 띄우는데.

귀중품 박사님들이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이것은 상품 가치가 없습니다’ 말하는 장면들.

리혁이가 말했다.

“지금이야 뭐,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까 저렇게 해 주는 거 같은데. 알면 태도가 바뀔 수도 있고.”

“마음의 준비는 해 둬야지.”

그래서 들뜨거나 그러진 않았다.

자세히 알아보고는 별거 없다며 금세 태도가 바뀔 수도 있고.

신인 시절에도 ‘오늘 썸씽을 부를 거라고?’ 하면서 대접해 주다가 장소원 선배가 없이 우리만 있다는 걸 알고 매몰차게 대우한 행사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으니까.

「무슨 얘기해?」

헤일리가 물었다.

우리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듣고 있던 헤일리가 빵 터졌다.

파란 머리카락이 흔들릴 만큼 폭소였다.

「……왜 그래요?」

「이 귀엽게 생긴 멍충이들아.」

귀엽다는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우리에게 그녀가 말했다.

「너네는 저기 모인 사람들의 의미를 모르나 보네.」

「의미요?」

「이 나라에서 셀러브리티 하나 보겠다고 수천 명 넘게 모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야.」

「……?」

무슨 뜻인지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하니 한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어……!”

호감 가는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는 수트 차림의 남자.

래리 고든.

오늘 우리가 출연하는 쇼의 호스트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들어왔다.

「헤일리~!」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인물에게 헤일리가 손을 들어 막았다.

「난 허그 안 해.」

「아, 맞다. 잘 지냈어? 크리스는?」

「그럭저럭. 남편은 요새 영화 준비 중이야.」

「크로프트 감독 신작?」

「맞아.」

웃는 낯에 침은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이, 격하게 반기는 상대에게 헤일리도 적당히 대꾸를 해 줬다.

헤일리와 안부 인사를 나누던 래리 고든이 이내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뉴블랙!」

「안녕하세요.」

「밖에 팬이 어마어마하게 많던데, 2천 명? 시청에 있는 소식통이 말해 줬는데 세다가 포기했다더라고.」

그러고는 우리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인기가 대단한가 봐.」

「아.」

「이따 무대 기대할게.」

힘 있게 악수를 하던 래리 고든이 중현이 차례에서 ‘워우’ 하며 놀라더니, 이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메이크업 준비를 하러 가는 모양이다.

다시금 뚱한 얼굴이 된 헤일리가 턱짓으로 그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쟤가 다른 건 몰라도 성공하는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 나 신인 때도 잘해 줬고.」

「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말란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비주가 물었다.

「그런데 헤일리는 왜 저 사람을 안 좋아해요?」

몇 마디밖에 안 나누긴 했지만 딱히 어디 가서 미움을 살 만한 성격으로 보이진 않았다.

헤일리가 답했다.

「잘나갈 것 같은 사람들한텐 엄청 친절한데 그 밖의 사람들한테는 뭣 같거든. 그래서 더 꼴 보기 싫어.」

그 말이 나오고 있을 때.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는 래리 고든에게 비서가 간식 통 비슷한 것을 건네는 게 보였다.

그리고.

「망할!」

버럭 하는 음성이 들려온다.

「이 샌드위치가 아니라고! 터키가 아니고 치킨이라고 말했잖아!」

샌드위치 하나 잘못 사 왔다고 온갖 짜증을 부려 대는 토크쇼 호스트를 보며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연예계 돌아가는 건 한국이나 여기나 비슷한 거 같다.

그러는 동안.

우리에게 찾아온 래리 고든의 첫인상은 ‘샌드위치맨’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래리 고든 쇼>의 프로듀서, 방송 작가들은 현재 머리를 맞대고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화면에 떠오른 건 래리 고든 쇼의 트위터였다.

헤일리 블루와 뉴블랙이 함께 하는 Blue Moon의 무대를 녹화할 거라고 예고하는 트윗.

그런데 거기 찍힌 좋아요의 숫자가 남다르다.

프로듀서가 물었다.

“이 트윗이 올라온 게 언제였지?”

“며칠 됐어요.”

“흐으으음…….”

다른 가수들의 무대 예고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지표상으로 10배 이상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제작진들 또한 눈여겨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헤일리 블루의 열성 팬덤인 블러버(Blover)들 때문인가 싶었는데.

-뉴블랙 때문인 것 같네요. 한국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한 그룹이래요.

-아. 그렇게 된 거였네.

해당 트윗을 올린 당시에는 K팝 가수인 뉴블랙의 한국 팬들이 눌러 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터였다.

그런데.

‘저 바깥의 인파는 그럼 뭔데…….’

유리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인파가 이 거리에서 저쪽 거리 끝까지 늘어서 있다.

주차장 쪽에도 바글바글하고.

버뱅크 경찰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천 명은 돌파했고, 이제는 몇 명인지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다.

방송 작가 하나가 말했다.

“만약 2천 명이라고 하면 버뱅크 인구가 10만이니까… 이 도시 인구의 2%가 모인 셈이네요.”

“…….”

“겁나 무서운데요. 이거.”

물론 버뱅크에 있는 팬들은 아닐 것이다.

아마 미국 각지에 있는 이 K팝 가수의 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 분명했다.

그걸 감안해도….

“이런 사례가 있었나?”

“없었죠.”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고 해도 그 가수를 직접 보러 올 만큼의 열성적인 팬층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오늘 뉴블랙의 토크쇼는 콘서트처럼 관람할 수도 없이 그저 먼 거리에서 출근길만 구경하는 것 아니던가.

순수하게 얼굴만 보러 온 팬들이 최소 천 명은 된다는 이야기였다.

공연을 한다면 이보다 더 규모가 커질 것이고.

이런 것들까지 감안해서 구매력을 비롯해 행동에 나설 팬들의 숫자를 고려하면…….

“이건 확실해요.”

제작진 중 하나가 말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친구들은 돈이 됩니다.”

그게 핵심이었다.

돈이 될 수 있다는 것.

“여기서 특별하게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팬이 이만큼 모였다는 건… 잠재력이 있다고 봐야 해요.”

프로듀서도 그 말에 동의했다.

‘월드 뮤직하고 계약을 했다고 했나.’

세계적인 레코드사도 그들과 비슷하게 낯선 외국 가수의 가능성을 본 게 분명했다.

프로모션이 없는 상태인데도 이미 팬이 모여 있는 상황.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홍보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중간에 불러서 토크라도 좀 해 볼까요?”

“그건 어렵지.”

“하긴, 누군지 아무도 모르니까…….”

문제는 그들도 당일이 돼서야 알았다는 거였다.

지금 와서 토크에 불러내자니 자료조사를 하지 않아서 토크 거리를 이끌어 내기가 힘들고.

헤일리 블루 측과도 이미 풀타임으로 협의해서 일정을 바꾸기 어렵다.

‘아까운데.’

돈이 될 수 있는 미래 투자자산을 다른 방송국에게 넘겨주는 기분이라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짧은 코믹 영상 같은 코너로… 아니야. 힘들어.’

오늘 녹화를 하고 방송이 될 때까지 5~6일가량 시간이 남아 있지만 무언가를 하기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프로듀서가 말했다.

“조금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지금으로선 그저 가능성일 뿐이다.

헤일리 블루라는 훌륭한 아이템을 가진 상황에서 딱히 무리수를 둘 이유는 없었다.

“그냥 대우만 잘해 줘. 나중에 아쉬운 말 안 나오게.”

프로듀서의 말과 함께 회의가 끝났다.

이제 조금 있으면 토크쇼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   *   *

토크쇼 녹화가 시작되는 5시 30분.

스튜디오 현장이 대기실에 있는 TV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여기도 한국이랑 비슷하네요. 사전 MC도 있고.”

땅콩을 우물거리던 중현이가 가리킨 화면에는 야구모자를 쓴 젊은 코미디언이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합니다! AMA 최고의 퍼포머로 선정된 헤일리 블루가 빌보드 넘버 원, Blue Moon으로 찾아왔습니다!

사전 MC의 소개에 방청객들이 환호한다.

외국 TV 쇼라고 해서 뭔가 다른 점이 있을까 했는데, 사람들이 낯설 뿐 돌아가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곧이어 라이브 밴드의 연주에 맞춰 래리 고든이 수트 차림으로 익살맞게 등장했다.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게스트가 등장해서 토크가 바로 시작되는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우리가 모르는 미국의 시사 이슈나 화젯거리에 대해 뭐라고 막 농담을 하는데, 사람들이 그때마다 정신없이 웃는다.

“뭐라고 하는 거예여?”

“얼마 전에 대선 얘기하는 거야.”

리혁이가 설명을 해 주었다.

내 생일에 있었던 미국 대선을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민주당이 어떻고, 공화당이 어떻고.

당 얘기가 나오니 당이 땡겨서 우리도 과자를 우물거렸다.

“이렇게 하다가 반응 약한 건 편집하나 봐요.”

“녹화하는 이유가 다 있구만. 계속 웃기는 건 아니네.”

한국 예능과 마찬가지로 노잼인 파트는 방송에 안 내보내는 듯했다.

2시간 분량을 찍어서 30분 정도 추리고, 거기에 자잘한 재미있는 코너 등을 더해서 방송 분량 40~50분을 채우는 모양이다.

우리가 잘 못 알아듣는 시사 농담들이 지나간 후에 본격적으로 게스트를 부르는 시간이 이어졌다.

-오늘의 게스트는 올해 AMA에서 Tour of the Year을 수상한 최고의 가수. 최근에 빌보드 핫 100 1위의 Blue Moon으로 찾아온 팝스타입니다.

팻말에 인쇄된 ‘Blue Moon’의 디지털 싱글 커버를 들어 올린 MC가 유쾌하게 웃으며 외쳤다.

-Please welcome, Haley Blue!

방청객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서 가죽 재킷을 걸친 헤일리가 휘적휘적 걸어와 악수를 나누더니.

“……!”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헤일리가 머, 멀쩡히 앉았어여.”

“대단한 쇼구나, 여기.”

“와, 근데 진행 되게 잘하네요, 샌드위치맨. 영어도 잘하고.”

남편 크리스, 딸 써머 등등 가족 이야기나 요즘 고민거리 같은 다양한 화젯거리가 나오는 가운데.

중간에 우리 언급도 있었다.

-이번에 Blue Moon은 합동 작업이었잖아요. 뉴블랙이란 K팝 가수와…….

그리고 그 순간.

-와아아아아!

객석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100명 중에서 열댓 명 정도 우리 수플레들이 침투한 듯했다.

방청객들이 술렁이며 뒤를 돌아보거나 하는 모습이 보인다.

“강하다.”

“저래야 수플레지.”

거대하고 강한 우리 수플레들다웠다.

잠시 말을 멈춘 래리 고든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인기가 대단한 그룹 같더라고요. 심지어 미국에도 팬이 있는 것 같았어요. 여러분도 오늘 봤죠? 길거리에 팬들이…….

-맞아. 존나 팬들이 많은 친구들이지.

헤일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중에서 우주라는 친구랑 작곡을 같이 했거든. 나는 써니라고 부르는 앤데, 개쩌는 작곡가야.

“우아아아!”

동생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꺄르륵 웃어 대는 동안 헤일리가 말했다.

-남들 ABC 배울 때, 걔는 SONG를 먼저 배웠다니까.

“S.O.N.G!”

난리법석을 피워대는 동생들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언급된 후에 쭉 토크가 이어지고 있을 때.

똑똑.

“Ready in 5!”

인터컴을 낀 직원이 5분 뒤에 나오라고 말을 해 줬다.

오늘의 무대를 할 시간이었다.

*   *   *

토크쇼 현장.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조명 아래서 데스크와 소파에 앉은 두 셀럽이 호감 가는 대화를 나누고.

-지금까지 헤일리 블루였습니다!

래리 고든과 악수를 한 헤일리 블루가 머릿결을 정돈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무대로 자리를 옮긴다.

방청객들의 시선이 암전된 무대로 향했다.

악기를 조율하는 라이브 밴드 앞에서 마이크를 든 다섯 명이 여유롭게 몸을 풀고 있다.

‘쟤네가 뉴블랙인가?’

스튜디오 앞에 웬 대통령 카퍼레이드 같은 환영 인파가 모여 있어서 깜짝 놀란 방청객들이었다.

알 수 없는 글자로 된 팻말을 든 팬들.

어둠에 잠겨서 그런지, 어딘가 신비로워 보이는 듯한 분위기에 호기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자, 오늘의 음악 게스트입니다.

다시금 ‘Blue Moon’의 앨범 커버를 손에 든 호스트가 목청을 높이며 외쳤다.

-헤일리 블루, 그리고 한국의 인기 그룹 뉴블랙이 Blue Black이란 이름으로 뭉쳤습니다.

객석에서 잠입한 팬들의 환호가 들려오는 가운데.

-100개 이상의 국가 차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빌보드 Hot 100 1위의 인기곡 Blue Moon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곧바로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암전된 무대가 밝아 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헤일리 블루.

그리고 얼굴이 뽀얀 5인조 보이밴드가 마이크를 들고 서 있다.

‘오…….’

귀여운 외모에 여성 관객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가운데, 남성 관객들이 흐음 하며 팔짱을 꼈다.

하지만 눈빛에 깃든 감정을 떠나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있었으니.

“…….”

얼굴에서 유난히 빛이 나는 것 같은, 보랏빛 헤어밴드를 착용한 멤버였다.

저쪽이 바로 헤일리 블루가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얘기한 써니인 모양이다.

-걔는 얼굴에서 빛이 나. 내 입에서 절로 ****이 나오는 성스러운 광채가 난다니까.

곧이어 낯선 동양의 악기가 띵, 띵 하는 듯한 BGM 속에서 헤일리 뒤에 선 5인조가 몸을 꺾는다.

“와아아아아-!”

십수 명의 팬들의 응원하는 가운데, 관절인형처럼 뚝뚝 꺾는 동작을 선보이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보이밴드라고 하지 않았나…?’

방청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이 상상하는 보이밴드는 되게 장발의 미소년들이 덩실덩실 춤추며 노래 부르는 이미지인데.

댄서들처럼 합이 척척 맞는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잘하네.’

헤일리 블루의 곁에서 춤을 추던 멤버들이 하나씩 나와 노래를 부르는데 듣기 좋았다.

어떤 부분은 음원보다 더 좋게 들리기도 하고.

헤일리와 마찬가지로 가죽 재킷 등의 락밴드 의상을 걸친 뉴블랙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오…….’

그리 복잡한 안무는 아니었지만, 동작의 각도가 똑같이 맞아 들어가는 장면이 눈에 잔상처럼 남는다.

처음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는데 개성이 뚜렷하다.

음을 높이 올리다가 카메라와 눈을 마주치며 찡긋 웃는 얼굴에 시선이 갔다가.

선이 굵은 멤버가 저음으로 랩을 하는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면 새하얀 얼굴이 노래를 시원하게 부르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작곡가 멤버에게 시선이 또 가고.

그리고.

자꾸만 춤에 시선을 빼앗기는 곱상한 얼굴의 멤버까지.

‘이래서 그렇게 팬들이 많은 건가.’

스튜디오에 올라오기 전에 수많은 팬들을 봐서 무대가 더 신비롭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잘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꽤 인상적인 무대였다.

Blue Moon의 마지막 소절을 마친 블루블랙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쿨하게 퇴장했다.

“와아아아아아-!”

다시금 들려오는 객석의 환호성.

뭔가 대단한 가수의 무대를 본 듯한 기분에 휩싸인 방청객들의 모습에 현장 수플레들이 더욱 박수 소리를 높였다.

‘세뇌 작전으로 간다.’

‘뉴블랙은 대단한 가수… 대단한 가수…….’

‘우리가 스타로 만든다.’

본토의 원조 수플레들로부터 배운 Seo-Dong-Yo 기법을 손수 실천하고 있는 북미 팬들이었다.

*   *   *

녹화가 끝난 후.

스튜디오를 나온 뉴블랙이 퇴근하면서 군중들이 해산하고, 비로소 경찰들도 한숨을 놓았다.

하지만 소란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취재진까지 나오면서 캘리포니아 지역의 이브닝 뉴스에 뉴블랙이 등장했다.

-와아아아아아!

5인조 보이밴드가 나오면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환호성으로 거리가 들끓는 장면들이 각 방송국 뉴스에 나왔다.

[오늘 한국에서 온 5인조 K팝 그룹 ‘뉴블랙’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가 이곳 버뱅크 스튜디오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헤일리 블루와의 콜라보 ‘Blue Moon’을…….]

[경찰 추산 수천여 명이 되는 이 인파와 함께, 오늘 놀라운 인기를 보여 준 이 그룹은…….]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무슨 소요 사태가 난 게 아닌가 싶은 기분을 들게 하는 광경이었다.

광기에 찬 눈빛들.

-우린 뉴블랙을 원한다!

-뉴블랙! 뉴! 블랙! 뉴블! 랙!

-우아아아아아!

시청자들이 침을 삼켰다.

‘뭐야. 누군데……?’

캘리포니아 지역의 검색 트렌드에서 ‘뉴블랙’이란 이름이 쭉쭉 올라가기 시작했다.

본토인 한국에도 이 소식이 퍼지기 시작하는 한편.

이 소식을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거 돈이 되겠는데.”

“우리가 선점해야죠.”

뉴블랙과 헤일리 블루가 출연을 앞두고 있는 토크쇼.

뉴스 화면을 보면서 눈을 빛내고 있는 <앨런 데일 쇼>의 제작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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