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5화
시작부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아니.
그룹명과 팬덤명을 묻는 질문이야 당연한 거고, 그래서 준비도 했는데…….
‘진짜 물어보네여.’
‘그러게….’
진짜 물어볼 줄은 몰랐다.
그냥 헤일리와 함께 곡 작업한 외국 가수1 정도 비중으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Blue Moon은 어떻게 쓰게 되었고, 작업하는 동안 어떤 비하인드가 있었으며, 뮤비 속에 무슨 요소가 있는지 이런 것들을 물어볼 줄 알았는데.
‘뉴블랙’이라는 그룹 자체에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
「뉴블랙의 뜻이요?」
동생들과 시선을 교환하며 웃었다.
예상과 다르긴 했지만 좋은 일이었다.
「‘뉴블랙’이란 팀명은 우리가 데뷔 준비하던 시절에 쓰던 팀명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데뷔 후에도 굳어지게 됐죠.」
치킨 이즈 더 뉴블랙이란 맨투맨 표어로 팀명이 정해졌다고 절대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플레라는 팀명은…… 으음.」
「답변을 망설이고 있네요.」
「제 말실수로부터 비롯된 팬덤명이거든요. 뉴블랙이라고 해야 하는데 수플레라고 말이 헛나와서…….」
방청객들이 작게 웃을 때, 앨런 데일이 우리 뒤편을 가리켰다.
「마침 영상도 있으니 함께 감상하시죠.」
「영상까지 있다고요?」
Allen Dale이라는 글자가 있던 스크린에 영상이 흘러나왔다.
PBS의 음악 방송 뮤직On.
2년 전의 내가 갸륵한 표정으로 썸씽 1위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저희 수플레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 받는 사랑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란 영어 자막에서 ‘Souffle’가 강조되면서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나온 ‘저희 태블릿…!’에도 또 한 번 웃음이 흘러나왔다.
화면 속에서 빵 터져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태현이가 오늘따라 얄밉다.
「저렇게 탄생한 팬덤이… 오늘날 이렇게 커진 거군요. 어마어마한 스노우볼이 굴렀어요.」
「네. 그런 셈이죠.」
미국 지상파 방송에 본격 출연하자마자 이렇게 수치스러운 과거를 오픈하게 될 줄은 몰랐다.
동생들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으아아, 촌스러워.’
‘으아아아아!’
데뷔하기 전이라 그런지 지금과 비교하면 묘하게 촌스러운 느낌이 났다.
방송 클립에 대해 으아아 하는 멤버들의 반응을 가지고 앨런 데일이 무어라 농담을 했다.
그리고, 오들오들 떠는 2년 전 우리를 바라보던 헤일리가 물었다.
「써니, 저건 언제야?」
「2년 전이요.」
「2년 전?」
「……왜요?」
헤일리가 오 하며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 ***하게 빨리 성장했구나.」
팝스타의 거침없는 발언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질문들을 시작으로 토크쇼 녹화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 * *
스튜디오 컨트롤룸.
뉴블랙 멤버들과 앨런 데일, 헤일리 블루의 얼굴이 다양한 각도로 모니터에 흘러나오고 있다.
조용히 바라보던 인물이 마이크에 입을 올렸다.
“3번 카메라 조금 더 위로.”
현장 카메라맨이 바로 위치를 조정했다.
아까보다 더 각도빨을 잘 받는 우주의 모습에 책임 프로듀서(showrunner)인 비비안 스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화면빨 잘 받네.’
한국 최고의 셀럽이라는 말에 걸맞게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이 능수능란하다.
미국 토크쇼는 처음일 텐데도 멤버들의 시선 처리나 앉아 있는 자세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사원증을 목에 건 스탭 하나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긴장될 법도 한데. 하나도 안 떨리나 보네요.”
“자기 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연예인이라잖아.”
“바베큐 파티 한다고 수만 명이 모였다고 하지 않았어? 한국 추수감사절 시즌인데도 고속도로가 마비됐다더라.”
묘하게 왜곡되어 퍼진 헬평 사건이었다.
“하긴, 그 정도면 몇백 명 모인 토크쇼 방청객에 떨 리가 없지.”
“바깥에 팬이 수천 명인데 뭐가 떨리겠냐? 실수해도 팬들 동원해서 바로 다 묻어 버리면 되는데.”
“……그런 농담 하지 마. 진짜 무섭다니까.”
그들이 방송국에 출근할 때부터 이미 진을 치고 있던 팬들이었다.
활짝 웃으면서 쿠키 등을 나눠 주는데, 그 미소와 달리 눈빛들이 강렬했다.
‘뉴블랙을 잘 부탁해요!’
‘…무, 물론이죠.’
우리 애들한테 헛짓거리 하면 죽는다… 하는 듯한 속마음이 읽힌다고 할까.
게다가 아침에만 해도 수십 명이었던 팬들이 지금은 거의 수천 명에 이르는 수준으로 모였다.
뉴블랙이 돌격! 하고 외치기만 해도 오늘 뉴욕의 유명 토크쇼 하나가 사라질 기세였다.
“이 정도면 온라인상에서도 반응 기대할 만한데요? 여기 트윗 수치를 봐요. 압도적이에요.”
“대박이네. 이 정도일 줄은…….”
“그만큼 팬층이 두텁다는 거죠.”
젊은 세대에게 좋은 평을 받기 위해 온갖 컨텐츠를 만드는 앨런 데일 쇼 입장에선 좋은 일이었다.
심야 토크쇼 시청률 6위인 앨런 데일 쇼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바로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말 그대로 뉴블랙이 유행(the new black)이네요.”
누군가의 드립에 컨트롤룸에 웃음이 흘러나올 때.
모니터 속에서는 앨런 데일이 뉴블랙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미국 연예인들이 인기가 있나요? 예를 들면 대중들이 앨런 데일을 안다든가.
-음… 잘 모를 것 같은데요.
-한 명도요?
-있긴 할 텐데…….
미적지근한 반응에 앨런이 슬퍼하고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
지호가 자신 있게 웃었다.
-그런데 이제 알게 될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자신감이 지나치다고 놀렸을 텐데, 오늘은 정말 진담 같아서 무섭네요.
그 말과 함께 미리 준비한 자료 화면들이 나왔다.
휴게소에서 바베큐를 팔고 있는 뉴블랙이라든가. 꽉 막힌 한국의 추수감사절 고속도로 풍경 등등.
게다가 그들이 파는 빵의 매출이 지상파 뉴스에도 보도되고 있었다.
“방청객들 표정 잘 잡아.”
한국에서 뉴블랙이 어떤 인기 스타인지 보여 주는 장면들에 방청객들이 적나라하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앨런 데일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당신들은 한국에서 신(god)과 같은 위치군요. 방금 봤어요? 뉴블랙이 만든 바베큐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달려들고 있어요!
내셔널 슈퍼스타라는 말에 뉴블랙이 민망하게 웃고, 헤일리 블루도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화면을 본다.
“저럴 만하지.”
“우리도 처음에 딱 저랬으니까.”
현장에 운집한 팬 수천 명의 힘 덕분에 뉴블랙에게 토크 기회가 주어졌지만.
예정보다 더 많은 분량을 받은 이유는 바로 본토에서의 열렬한 반응 때문이었다.
외국인인 그들이 보기에도 한국에서 뉴블랙의 위상이 만만치 않아 보였으니까.
“시간이 적은 게 흠이네요. 이야깃거리가 엄청 많은데…….”
작가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대박인 것들이 진짜 많은데.’
일단 리더인 우주가 뉴블랙에 합류하게 된 계기부터가 한 노인을 구한 영웅적인 행동 덕분이었다.
또한 부친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피아니스트기도 하고.
그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한국 유명 푸드 컴퍼니의 CEO를 부친으로 둔 리치 보이도 있고,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인물도 있고.
‘웃긴 것도 많지.’
단추를 터뜨리거나 테이블이 바퀴벌레처럼 살아 움직인다거나 하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잠시 고용한 한국계 알바생들이 통역해야 할 자료가 너무 많다며 하소연했을 정도였으니까.
“노인 구한 영웅 스토리는 꼭 내보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그게 진짜 대박인데.”
어느 작가의 말에 비비안 스톤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중을 위해 아껴 둬.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써먹을 날이 분명 있을 거야. 그리고…….”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슈도 빌드업이랑 타이밍이 있는 거야. 그건 대중들이 알아야 써먹는 이슈고. 지금은 뉴블랙이 누군지 소개해야 할 시간이지. 비하인드를 알릴 때가 아냐.”
지금 공개해 봐야 대중들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프로듀서로서 낯선 외국 가수를 소개하고, 매력 포인트를 잡아 주는 쪽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군.’
그들이 기획한 대로 처음에 낯설어하던 방청객들의 눈동자가 지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있다.
비비안 스톤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절반의 성공이야.’
그들의 목표는 될성부른 떡잎의 미래에 투자해 혹시 모를 인맥을 얻고자 하는 것.
방송은 순조롭게 잘 흘러가고 있으니, 이제 나머지 절반은 뉴블랙에게 달려 있었다.
“악기 세팅 준비해.”
“네!”
그들 모두 오늘의 투자가 미래의 잭팟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 * *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뮤비 비하인드 토크 시간.
Blue Moon의 뮤직비디오를 같이 감상하며 특정 장면마다 멈춰 달라고 요청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헤일리 블루가 말했다.
“그거 알아? 저거 다 CG야.”
“전부 다요?”
“사람 빼고는 다 CG라고 보면 돼.”
“와…….”
현재 1억 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Blue Moon의 뮤직비디오.
그에 얽힌 비하인드가 공개되면서 방청객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저게 다 CG였어?’
할로윈 배경이 전부 다 CG라는 소식에 놀라고 있을 때.
뱀파이어, 좀비, 흡혈귀 등의 캐릭터들을 하나씩 둘러보던 앨런 데일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OK. 이제 알았어요. 써니, 당신은 뱀파이어고. 리혁은 좀비, 지호는 늑대인간, 그리고 중현 당신은 프랑켄슈타인.”
하나씩 대칭되는 캐릭터를 읊던 앨런의 시선이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귀공자에 향했다.
퇴폐적인 스모키 화장을 하고 있는 의문의 인물.
“B, 여기서 당신의 역할은 뭔가요? 도리안 그레이?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방청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저건 뭐지?’
다른 캐릭터들은 다 뭐가 뭔지 알겠는데 비주만 유독 파악이 안 됐다.
“아.”
활짝 웃던 B가 상냥하게 말했다.
“바이올리니스트요!”
엉뚱한 대답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앨런 데일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지금 좀비, 뱀파이어, 늑대인간,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란 말이네요.”
“네.”
“세상에,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직업인지는 처음 알았네요.”
방청객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뉴블랙 멤버들이 ‘이게 웃긴가?’ 하는 표정으로 살짝 갸웃하고 있을 때, 중현이 손을 들었다.
“사실 저도 프랑켄슈타인이 아니에요.”
“아닌가요?”
“네. 머리에 못 꽂은 인간이에요.”
“방금까지는 귀여운 프랑켄슈타인이었는데, 갑자기 살벌해지네요.”
그 말을 하던 앨런 데일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혹시 너네도 이상한 거 아니냐는 질문을 한 후.
웃음 가득한 뮤비 토크 시간이 얼마 안 가 끝났다.
진행 카드를 슬쩍 흘깃한 그가 물었다.
“가장 놀라운 건 이 노래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는 거예요. 그것도 방송 현장에서요.”
“맞아. 얘네랑 나랑 처음 만난 자리에서 썼지. 그게 아마 한국 팬들에게 날 소개하는 자리였는데.”
헤일리 블루의 말에 자료 화면이 짧게 흘러나왔다.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헤일리 블루에게 한 차례 환호가 나오고.
도련님들처럼 차려입은 뉴블랙이 덩실덩실 병맛으로 춤추는 모습에 2차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뉴블랙 멤버들이 손을 들어 눈가를 가릴 때.
“내가 다른 쇼에서도 얘기한 적 있지만, 얘는 진짜 천재야.”
헤일리 블루의 칭찬에 우주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헤일리가 과장하는 거예요. 천재라는 말을 들을 수준은 아니에요.”
“천재 맞아요.”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이 우우우 하는 말에 미소를 짓던 앨런 데일이 물었다.
“듣자 하니 써니, 당신은 즉석에서 노래 한 곡을 뽑는다고 그러던데요.”
“가능하긴 하죠.”
“그렇다면 한 번 이 자리에서 보여 주겠어요?”
“여기서요?”
진행자가 몸을 돌려 방청석을 향해 리액션을 유도했다.
“와아아아아아!”
잠입한 수플레들이 발을 쾅쾅쾅 구르는 동안 방청객들도 망설이는 리더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내 못 이기는 척하던 우주가 스탭이 건넨 기타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이거 너무 많이 보여 줘서 식상할 텐데…….”
“괜찮아요, 써니. 우리는 다 처음이에요.”
그 말에 웃던 미남이 물었다.
“주제로 뭘 하면 될까요?”
“음, 나는 어때요?”
“앨런, 당신을 주제로요?”
고민하던 우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요.”
그러고는 방청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국에서도 매번 이런 즉흥 작곡을 했는데 그때마다 많이 놀라더라고요. 조금 독특할 수도 있으니까… 재미로 봐 주세요. 진짜로 이런 식으로 작업하진 않아요.”
“명심하죠.”
“그럼 시작할게요.”
“좋습니다! 뉴블랙의 즉흥 작곡!”
박수 소리 속에서 기타 현을 튕기던 우주가 섬세한 눈으로 생각에 잠긴다.
앨런 데일이 물었다.
“준비 시간이 필요한가요?”
“아뇨.”
뉴블랙 리더의 손가락이 기타 현을 오르내렸다.
놀랍게도 방금 ‘준비 시간이 필요한가요?’ 했던 앨런 데일의 음성이 높낮이 그대로 기타 소리가 되어 흘러나왔다.
마치 오토튠으로 나오는 목소리 같다.
‘뭘 하는 거지?’
진행자의 목소리에서 소리를 따온 낯선 행동에 방청객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볼 때.
손이 부드러이 오르내리며 음률이 퍼져 나왔다.
부드러워졌다가 살짝 거세졌다가, 무언가를 시도하는 듯 짧은 시간 동안 변화무쌍한 변주가 지나갔다.
마치 물결처럼 소리가 이리저리 스르르륵 움직이는데…….
“이제 됐어요.”
우주가 어떤 멜로디를 연주했다.
조금 전 앨런 데일의 목소리에서 들었던 원본이 느껴지지만, 그와는 확실히 다른 음악 같은 멜로디.
방청객들이 눈을 크게 떴다.
‘뭘 어떻게 한 거지?’
소리가 바닷가의 파도처럼 왔다 갔다 하더니, 지금은 그 파도가 사라지고 촉촉한 모래 위에 진주가 남은 느낌이었다.
곧바로 변주를 시작한 우주의 손짓에 음악이 완성된다.
템포가 빠른 기타 연주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멤버들과 헤일리 블루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감초처럼 수플레들의 응원이 더해지고 방청객들도 손뼉을 치며 유쾌하게 리듬을 탔다.
그리고.
리더의 눈짓에 손가락을 터치하던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오오-
앨런 데일-
앨런 데일-
토크쇼 호스트가 빵 터져서 웃음을 터뜨리고, 뉴블랙 멤버들이 리듬을 타며 앨런 데일~ 하며 가사를 불렀다.
가사는 오로지 앨런 데일이었다.
마치 의미 없는 추임새처럼 앨런 데일이란 단어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뉴블랙.
평소의 뚱한 표정에서 벗어나 신나게 웃던 헤일리 블루도 바로 가세해서 음을 더했다.
“오, 그럼 나도…….”
같이 앨런 데일~ 하면서 부르려던 토크쇼 호스트에게 헤일리 블루가 냉정한 얼굴로 손바닥을 들었다.
“나중에.”
넌 저리 가, 하는 듯한 모양새에 호스트가 물었다.
“내 노래인데 날 따돌리는 거예요?”
“조용히 해! 집중해야 되니까.”
“……당신들 정말 별로인 거 알아요?”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동안, 사이비 컬트의 주문처럼 앨런 데일~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네……?’
이렇게 감미로운 아무 말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부르는 즉흥 노래에서 어쿠스틱한 팝 사운드가 느껴졌다.
말 그대로 노래 하나가 뚝딱 나오자 곳곳에서 감탄이 나왔다.
현지 수플레들도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캬, 앨런 데일 쇼 놈들.’
어떻게 뉴블랙을 띄워야 할지 고민한 그들보다 이 쇼가 한 수 위였다.
미리 이런 식으로 꽁트를 하기로 하고 앨런 데일이 그런 목소리를 내기로 약속한 모양이었다.
정말 자연스럽다.
그렇게 팬들이 감탄하고 있는 동안, 이른바 ‘앨런 데일 송’이 헤일리 블루와 5인의 화음으로 끝을 맺었다.
“와아아아아아-!”
방청객들까지 가세한 환호에 상기된 얼굴로 기타를 내려놓은 우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위한 노래예요, 앨런. 저작권은 제 거고요.”
“감사합니다. 거절할게요.”
“너무하네요,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문자 그대로 30초 만에 만들었잖아요. 무슨 고생을 한 건가요?”
어이없어하는 쇼 호스트의 반응에 방청객들이 즐겁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 뉴블랙 멤버들이 리더를 중심으로 모이고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연락 기다리고 있습니다~!”
“협업하고 싶은 사람들은 연락하세요!”
그런 반응에 헤일리 블루가 눈매를 좁혔다.
“얘들아, 우린 그런 식으로 카메라에 손 흔들지 않아.”
“아. 정말요…?”
“응.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리는 이들을 바라보던 헤일리 블루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너네는 다 꺼져. 얘네는 내가 독점할 거야.”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앨런 데일 송으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게스트들의 토크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쇼 마지막 순서로 준비된 시간이 찾아왔다.
“네, 빌보드 Hot 100 1위에 머무르고 있는 블루문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시죠!”
새파란 조명이 내리쬐는 가운데 R&B 풍의 음악 속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딱딱 군무 합을 맞춘다.
전형적인 보이밴드의 옷차림이었지만….
방금 전의 퍼포먼스 때문일까.
앨런 데일 쇼의 관객들은 묘한 감흥에 휩싸였다.
“와아아아아아~”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고 시원하게 음을 높이는 뉴블랙의 메인 보컬.
“…오와아아아아아앙….”
마이크 대를 붙잡은 채 몸을 빙글 돌리며 군무를 추는 모습들이 정확하게 일치하면서 쾌감까지 든다.
전문 댄서들도 아니고 이렇게 춤 잘 추는 보이밴드는 처음 보는 듯했다.
“우와아아아아……!”
드럼 연주와 공연장이 뒤흔들릴 정도의 함성.
그런 소리가 어우러져 뉴블랙의 Blue Moon 무대가 몽환적으로 다가오고, 무언가 굉장한 무대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와아아아아아!”
어느 순간, 함께 박수를 치며 대스타 뉴블랙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방청객들이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살피던 수플레들이 환호 소리를 조절했다.
“와아아아아아-!”
그에 호응하듯이 방청객들도 환호하며 무대를 바라본다.
수플레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다.’
‘너희는 지금 대스타를 보고 있다. 이 머글들아.’
‘더 환호해라.’
지난 며칠간 거리에서 목이 터져 나가라 그들의 가수를 환호하면서 이제는 적절한 추임새에 일가견이 생긴 현지 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