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6화
“고생했다.”
“……고마워요.”
토크쇼 무대에서 내려오는 우리에게 매니저 형들이 손수건을 내밀었다.
땀을 닦으며 나도 모르게 긴 숨을 토했다.
“후우…….”
허벅지를 부여잡고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리혁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혁아, 나 뭐 실수한 거 없지?”
“없어요.”
잠시 고민하던 리혁이가 짤막하게 대꾸했다.
“잘했어요. 다들.”
그제야 우리 모두 안도의 숨을 토했다.
무대는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낯선 땅이라고는 하나 백여 명 남짓한 관객 앞에서의 공연 정도는 식은죽 먹기니까.
다만 토크를 하면서 엄청 떨었던 터였다.
말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내가 이 문화권에서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건 아닌가 하고 어찌나 긴장했는지.
“뭘 그렇게 떨어요? 긴장한 것치고는 말 엄청 잘하더만.”
리혁이의 말에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무사히 끝났으니 됐지.
기지개를 쭉 켜고는 땀을 훔치고 있는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들, 저 이거 봐여.”
막내가 셔츠 등짝을 보여 주며 말했다.
“긴장해서 옷이 다 젖었다니까여.”
“넌 말도 별로 안 했잖아.”
“그래서 더 무서웠어여. 갑자기 앨런이 말 시키거나 그럴까 봐.”
비주한테 달라붙어서 저 엄청 떨었어요오 하는 막내를 보며 웃고는 멤버들에게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형도 고생 많았어요.”
무사히 끝낸 기념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했다.
미튜브에 올릴 비하인드를 찍는 원석이 형의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 주고는 백스테이지를 나섰다.
복도에서 마주친 스탭 몇 명이 작게 박수 쳐 주며 잘했다는 류의 인사를 해 왔다.
“헤일리는 어디 갔어요?”
“다른 스케줄이 있다고 먼저 갔어.”
우리도 곧바로 짐을 챙기고는 스튜디오를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동안 석환 형이 핸드폰을 보며 빠르게 말했다.
“지금 인터뷰가 몇 개 잡혀 있거든. 인터뷰당 시간은 길지 않을 거야. 대신에 답변은 신중히 하고.”
“오케이.”
“난처한 질문이 날아오면 동문서답 해.”
“알겠습니다~”
매니저의 훌륭한 실전 조언에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석환 형이 말하는 ‘인터뷰’라는 것은 1층에 모여 있는 방송국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였다.
취재진에게 간단하게 몇 마디 코멘트 정도 하면 된다.
띵.
「와아아아아아아-!」
로비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인파가 환히 빛나고 있다.
“오, 수플레들이 빛…….”
“빛?”
“뭐야. 왜 빛나고 있는 거예여?”
분명 11월 저녁이라 어두컴컴해야 정상인데 바깥이 한낮처럼 밝았다.
브로드웨이의 화려한 조명 때문이 아니고….
“달봉이?”
수플레들이 들고 있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이내 바깥으로 나오자 싸늘한 겨울바람과 함께 현장의 열기가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바깥을 빠져나온 우리와 스탭들 모두 얼어붙었다.
“와…….”
내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모든 곳이 달봉이로 꽉 차 있었다.
심지어 왕봉이도 있는데, 경찰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그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흔들리는 수천 개의 달봉이를 보면서 입을 떡하니 벌릴 뿐이었다.
「뉴블래애애액-!」
「불배애액!」
「뉴블랙! 뉴블랙!」
환호해 주는 팬들을 바라보며 멀뚱멀뚱 눈을 뜨다가 이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예상치 못한 달봉이의 물결 때문인지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카메라맨과 함께 있던 리포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쇼비즈에서 나왔습니다. 한마디 가능할까요?」
연예계 가십을 주제로 하는 채널인 모양인데 석환 형이 눈빛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현지 에이전시가 미리 골라 준 뉴스 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카메라 앞에 서는 동안 뒷배경으로 수플레들이 열렬하게 달봉이를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Wow, 정말 팬이 많네요.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최고죠.」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소감을 말해 주고는 이어진 몇 가지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도 답을 해 주었다.
리포터가 물었다.
「현장에서 인기가 어마어마한데, 앞으로 미국에서 따로 활동을 할 계획이 있나요?」
「잘 모르겠네요, 아직.」
「이 나라는 많은 가수들에게 있어 꿈의 무대잖아요.」
리포터의 미소에 우리도 미소로 답했다.
「모든 나라가 다 의미가 깊죠. 우리 팬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러면…….」
추가 질문이 이어지려고 할 때.
「시간상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언제 붙었는지 현지 에이전시에 나온 직원이 웃으며 인터뷰를 끊고는 잘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바로 다음 인터뷰에 연결해 주었다.
처음에는 낯선 연예 가십 채널이라 생소했는데, 인터뷰가 이어지면서 우리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라?’
‘왜 우리 인터뷰하는 거지…?’
월스트리트 등 세계 경제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이라 그런지, 우리도 아는 TV 언론사들이 중간에 끼어 있었다.
인터뷰 중간에 리혁이가 속삭였다.
“나 너무 좋아요. 내, 내가 여기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하다니…….”
“행복의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네여, 이 형.”
아침에 늘 해외 뉴스를 챙겨 보는 리혁이가 감격해하는 얼굴로 눈을 촉촉하게 빛냈다.
그러는 동안 인터뷰는 무사히 잘 마쳤다.
대부분 ‘너희 팬들 뭐임?’, ‘미국 오니 어때?’ 같은 비슷비슷한 뉘앙스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팬들한테 얼른 인사하고 가자.”
우리가 나온 이후로 인파들이 더욱 흥분하면서 경찰들도 불안해하고, 주변이 엄청 혼잡스러워지고 있었다.
손을 잡을 때마다 왈칵 눈물을 흘리는 팬들에게 모여서 인사했다.
「여러분! 정말 고마워요!」
「이따가 Y앱 라이브로 또 찾아올게요!」
함성을 지르며 우리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곧바로 차량에 올라탔다.
곧바로 출발한 차량이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가운데, 양옆으로 수플레들이 달봉이를 흔들었다.
마치 빛으로 된 길을 가는 듯한 몽환적인 풍경.
“…….”
브로드웨이의 거리를 빠져나왔을 때.
동생들과 함께 다 같이 뒤를 돌아보며 수천 개의 별들이 흔들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약간 당황해하는 중현이의 목소리가 지금의 우리 심경을 표현해 주고 있었다.
* * *
뉴블랙이 현장을 떠난 후.
다음 날, 뉴욕에서의 소식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는 이 K팝 그룹은…]
[…NYPD 대변인의 말에 따르자면, 현장에서 수천 명이 운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캘리포니아 버뱅크에서 놀라운 결집력을 보여 준 이들 ‘수플레’는 전 세계적인…]
뉴욕의 언론사들 보도에 이어서 전국적인 뉴스에도 전파를 탔기 때문이었다.
메인으로 다루는 꼭지가 아니라 오늘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다루는 꼭지였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일 찍힌 수많한 영상들.
뉴블랙이 탄 차가 서서히 멈추면서 현장의 팬들이 함성을 질러 대고, 나중에는 응원봉으로 된 빛의 길까지 만들었다.
미튜브와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가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얘네는 누군대?”
“K팝 가수라는데… 근데 K팝이 어느 나라였더라.”
“누군진 몰라도 되게 핫한가 보네.”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검색을 하면서,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 트렌드 1위에 오른 뉴블랙이었다.
신기해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좋지 않은 반응들도 나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이민자들을 막아야 하는 이유임.
┕쟤네 외국인이야. 등신아
-꼴보기 싫다. 쟤네가 누군대?
-누군진 몰라도 내 비호감을 얻는데는 일조한 듯. 저렇게 환호하는 팬들이 미치광이들처럼 보여.
-왜 아시안들은 백인들에게 열광받고 싶어 하는 거지?
-이 나라에서 꺼져
SNS 등에 난무하는 차별적인 발언에 대해 수플레들이 출동해서 하나씩 박살을 내는 가운데.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런 식으로 스타가 된 케이스를 몇 번 본 것 같은데. 바람잡이들 고용해서 잘나가는 것처럼 띄우는 거지. 그러고 나서 떴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알아서 팬이 붙을 테니까.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냐는 소리였다.
뉴블랙이란 그룹이 누구인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저렇게 인기가 많은 것처럼 될 수가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네티즌들의 토론이 이어지면서 금세 해결됐다.
-Bro. 네 의문은 언뜻 보면 타당해 보이긴 한데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어.
-뭔데?
-계산을 해 봐.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버뱅크 2천명, 뉴욕 3천명 정도로 계산을 한다고 쳤을 때, 인당 최소 시간당 30~50달러는 줘야된단 말이지. 알바를 재껴야 할 만큼의 돈을 줘야 되니까.
-그렇지.
-5천명이면 시간당 15만 달러고, 저걸 7시간 정도 하면 105만 달러야.
-아.
-1M을 쓰는 건 그렇다 치고 저 정도 인원을 어떤 식으로 증거도 없이 섭외할 거야? 그리고 나중에 동원됐다고 밝히지 못하도록 입막음 비용도 더 들어갈 텐데.
-너 똑똑하다. 대학원생이라도 되냐.
-Yeap. 지금 교수를 어떤 식으로 암살할지 계획 세우던 중이야.
바로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간단한 반박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바이럴 마케팅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스케일이 오히려 그 진정성을 보여 주는 셈이었다.
바베이도스, 멕시코 등에서 왔다고 말하는 인터뷰 컷 등도 온라인에 올라오고.
뉴스나 온라인을 접한 미국 일반 대중들에게 ‘뉴블랙’이란 이름이 기억에 남게 되는 순간이었다.
‘앨런 데일 쇼에 나오나 보네.’
미튜브나 SNS에서 ‘뉴블랙’이 출연한다는 예고편을 올리고 있는 토크쇼 제작진이었다.
그러는 한편.
매일 이슈가 많은 나라답게 뉴블랙에 대한 기억은 금세 흐릿하게 변해 버렸다.
한국에서 온, 정체불명의 인기 많은 스타 정도로만 기억에 남고 있을 때.
“우와…….”
Blue Moon의 뮤비를 찾아보던 사람들이 금세 뉴블랙의 다른 컨텐츠를 한 번씩 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물웅덩이에 발을 담글까 말까 하면서 고심하는 일반인들의 모습에 팬들이 숨을 죽였다.
‘놀래키면 안 되니까.’
갑자기 등장해서 츄라이! 뉴블랙 츄라이 해 보세요! 하고 외쳐 대면 도망가기 십상이었다.
새롭게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입덕부정기에 접어들 즈음까지 기다리려고 결심한 팬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팬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사, 사진이 팔린다!”
바로 뉴블랙이 LA에 도착한 첫날, 멤버들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장면을 찍었던 파파라치들이었다.
* * *
미국에서 뉴블랙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동안.
뉴욕에서 달봉이로 보여 준 ‘빛의 길’은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었다.
“으으으음……?”
학원에 다녀오거나 회사에서 퇴근하는 등, 일과를 마치고 복귀한 수플레들이 커뮤니티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뉴블 와앱에 깜짝 등장한 토크쇼 호스트 앨런 데일
-실시간 뉴욕 현장 (feat. 응원김씨 32대손 김달봉)
-현재 미국 지상파 뉴스에까지 진출한 뉴블랙 (합성아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안이 벙벙했다.
LA에서 사람이 엄청 모였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뉴욕에 가더니 이번엔 사람이 더 많단다.
웬 모르는 외국 토크쇼 진행자도 ‘뉴블랙과 너무 즐거웠다’라는 트윗을 남기며 숟가락도 얹고 있고.
-이게 무슨 일이니 숯불들아
-우리도 몰라
-너네가 모르면 어떡해..
다른 아이돌 팬들의 말에도 뭐라고 답할 수 없는 수플레들이었다.
미국 친구들이 인터넷으로 ‘본진이시여, 저희 어땠습니까?’ 하고 보고하는데 무어라 할 말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이앱 댓글에서 낯가리는 거 왜일케 웃긴데
-뉴블랙은 해외 나가서도 진짜 한결같구나
-아이돌판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있다? 대체로 뉴블랙을 찍으면 99% 확률로 정답임
-ㄹㅇ강제 진출이네ㅋㅋㅋㅋ
-와 근데 다른건 몰라도 팬들 오프 화력은 진짜 부럽다.. 한국에서도 저 정도 인원 모으기 어렵지 않나?
그와 함께 미국인들이 당황해하고 있는 댓글 반응이 번역되어 올라오고.
늘 미국과 한국을 눈팅하고 있는 일본 언론에서 그 모습을 두고 한국 정부의 전략 성공이라며 하는 토크들이 올라왔다.
-저 새기들은 미튜브에서 뉴블랙 웃참 챌린지 영상 안 본 게 틀림없다
-정부가 키운 아이돌이라니,,
-근데 되게 설득력 있긴 하다ㅋㅋㅋㅋ 한국 정부가 키운 슈퍼 아이돌 김중현
-만우절에 CIA 공작원설 올라오는 우리 아이..
-아 그건 ㅇㅈㅋㅋㅋㅋ
-미국 애들 당황해 하는 게 왜일케 웃기지ㅋㅋㅋ
-뉴블랙 미국에서 뭐 활동한 거 없지 않나..? 되게 인기 많네
-뉴블 해외 팬덤 대체 어디있냐고 말한 놈들아.. 꼭 이런글에는 죽어도 안 나타나지
오늘만큼은 악플러들도 기운이 빠졌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와 함께 고화질로 된 현장 사진들이 올라오면서 수플레가 아닌 다른 아이돌 팬들도 묘한 감흥을 느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하거나 울컥하는 모습.
자신의 가수를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수플레들도 차분하게 감정을 정리했다.
‘잘 되면 좋은 일이지.’
미국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있긴 했지만, 해프닝 정도로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간 미국 진출과 관련된 연예계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엄청 잘나간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닌 경우도 많았기에 설렘은 지그시 눌렀다.
그저 새로운 유입이 더욱 늘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얘들아, 얼른 돌아와……!’
왜 이렇게 해외만 나가면 이렇게 보고 싶어지는지.
마치 여름철에 그리운 겨울 같은 그들의 최애였다.
* * *
미국에서의 일정은 금세 마무리되었다.
토크쇼를 촬영한 다음 날에는 빌보드 매거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버뱅크에서 소식을 접한 빌보드 측에서 인터뷰를 요청했기 때문인데, 마침 본사가 뉴욕이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반가워요.」
그간 우리에 대해 많은 기사를 썼던 K팝 담당 칼럼니스트와 간단하게 인터뷰를 나누었다.
그리고 LA에 돌아와서는.
“클레이…! 위 미쓰 유우우우!”
“히이이이이익!”
유명 댄서 부녀와 약속했던 식사를 마치고는 헤일리가 제공해 준 전용기에 다시 올라탔다.
“고마워요. 헤일리.”
-잘 가고, 나중에 또 보자고.
쿨하게 인사를 하는 헤일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영상통화를 종료했다.
푹신한 시트가 느껴진다.
“어으으으…….”
달달달달달달.
비행기에 설치된 안마의자가 뻐근한 몸을 주물러 주고 있었다. 어찌나 압력이 센지 온몸의 근육이 쫘악 풀린다.
“시원해요?”
“응.”
“저도 한 번 해 볼래요.”
중현이가 안마의자에 앉더니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웃었다.
“왜 그래?”
“간지러워서요.”
“…….”
이윽고 우리가 안마 의자에 억지로 앉힌 리혁이가 끄아아악 하며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노을이 지는 LA의 하늘.
비명을 배경음악 삼아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또 오게 되겠지.”
“아마도요.”
아련하게 ‘그리울 거다, LA’ 하며 바라보던 우리가 웃으며 말했다.
“아, 김치 먹고 싶다.”
“난 라면이요.”
“라면에 김치…….”
으으 하며 막내가 말했다.
“우리 너무 느끼한 것만 먹어서 그런가 봐여.”
“그니까. 꼴랑 4일 먹었는데 이렇게 질리나. 우린 미국 음식이 잘 안 받나 봐.”
“맞아.”
매니저들이 말했다.
“쟤네 뭐뭐 먹었죠.”
“인앤아웃이랑 쉑쉑버거, 파이브 가이즈, 고든 쇼 매점 핫도그, 앨런 데일 쇼 뷔페, 그리고 미국 사과랑…….”
“저렇게 먹으면 누구든 질리지.”
조용히 해 달라는 우리의 눈짓에 매니저들이 산뜻한 미소로 답했다.
한편,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한국에 갈 때까지도 우리의 한국 음식 릴레이는 계속되었다.
“지나가는 구름이 촉촉해서 그런가. 되게 비 오는 날 같구… 해물파전이랑 콜라 먹고 싶어여.”
“나는 보쌈이랑 보쌈김치.”
“한국 사과…….”
“군고구마에 김치 돌돌돌돌.”
“우아아아아!”
처음에 전용기를 탔던 서울 김포 비즈니스 항공 센터에 내려서도 마찬가지였다.
출발할 때와 다르게 삼각대까지 설치하고 기다린 연예 기자들이 우리에게 웃으며 말했다.
“미국 어땠어요?”
“좋았어요.”
“다들 기분 엄청 좋아 보이네!”
“네! 이제 저희 라면이랑 김치 먹을 거예요!”
요호! 하면서 환호하며 손을 흔드는 우리 모습에 기자들이 웃었다.
계속 영어만 쓰다가 편하게 한국말을 쓰게 되니 기분도 좋았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살던 데서 살아야 하나 보다.
“I say 라!”
“You say 면!”
“라면! 라면!”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환호성을 지르며 냄비와 김치를 꺼내던 우리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죽었다.
“없는데요.”
“…….”
“라면이 없어요.”
중현이가 숨을 멈춘 듯 눈을 크게 뜨다가 이내 후하, 후하 하면서 심적인 안정을 찾으려고 할 때.
부엌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라면은 나오지 않았다.
“김치는 있는데 왜 라면을 먹지를 못하니……!”
10시간 넘게 기대하면서 왔는데 막상 집에 오니 라면이 없었다.
먹으려고 한다면야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하나같이 시간을 좀 들여야 하는 것들이었다.
바로 그때.
“좋은 생각이 하나 있어.”
“뭔데요?”
* * *
환한 햇살.
살랑이는 커튼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에 6인조 미소년이 촉촉한 배추처럼 거실에 널어져 있었다.
“시발…….”
한 명이 중얼대자, 나머지가 합창했다.
“시발…….”
곧 있을 어워드를 앞두고 매일 연습에 열중해서 그런지, 요즘 들어 평소에는 물에 젖은 수건 같은 상황이었다.
다 함께 시발, 하며 광합성을 하고 있을 때.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야?”
“야, 아무나 일어나서 봐봐.”
“너나 봐.”
투덜투덜하던 이들 중에 가장 가까운 하현이 일어나서 초인종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행님들이다!”
“진짜?”
미국에 갔다던 그들의 이웃이 복귀한 모양이었다.
우르르르 일어난 틴스피릿 멤버들이 초인종 모니터 앞에 섰다. 며칠 만에 봐서 그런지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래?”
가식적일 만큼 활짝 웃고 있는 리더의 뒤로 다른 행님들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주가 [기념품 사 왔다] 하는 쪽지를 들고 있고.
[보고 싶었다 틴스피릿] 같은 전광판 앱을 띄우는 막내를 보던 이들이 눈매를 좁혔다.
“근데 왜 중현이 행님이 김치통을 들고 있지……?”
거대한 김치통을 들고 있는 중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미소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