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7화
탱글탱글.
윤기 나는 면발과 맛깔나 보이는 국물, 그리고 적당히 풀어진 계란이 3박자를 이루고 있다.
“우와아아아아…….”
거대한 냄비에 대용량으로 끓인 라면.
라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뿌연 연기 뒤편으로 6인조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때요?”
“너희 라면 진짜 잘 끓이는구나.”
“드셔 보세요, 행님덜.”
중현이가 행복하게 웃으며 국자로 국물을 펐다.
집게로 각자 라면을 푼 가운데 곧바로 우리가 라면을 한 젓가락씩 먹었다. 얼큰한 국물이 달게 느껴졌다.
“……!”
한입 먹는 순간, 내 몸에 남아 있던 미국 음식의 느끼함이 사아아악 하고 내려갔다.
연후가 김치 접시를 내밀며 말했다.
“행님들 김치도 맛있겠지만 요거도 먹어 봐요. 울 엄마가 직접 마트에서 사 온 김치인데 진짜 개맛있어요.”
“오, 어머님이 직접… 어? 마트?”
웃음을 터뜨리고는 김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삭- 하는 감촉과 함께 짭쪼롬하고 담백한 맛이 날 행복하게 했다.
“으아아아…….”
입술에 라면 기름이 번들거리는 막내가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
“진짜 맛있다. 저는 이제 여기서 쓰러져도 여한이 없어여.”
“뭐야. 우리 집에서 쓰러지지 마라.”
쓰러질 거면 너네 집에서 쓰러져라 에베베 하는 틴스피릿 멤버들에게 지호가 눈을 슥 흘겼다.
잠시 동안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했다.
미국에서 4, 5일 정도 있는 동안 이 라면이랑 김치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이거 근데 수돗물이야, 정수기야? 난 정수기 물로 끓이는 거 선호하는데.”
리혁이의 물음에 틴스피릿 멤버들이 상냥하게 웃었다.
“형제님.”
“……?”
“군말 말고 걍 드세요. 열 받으니까…….”
리혁이가 투덜대는 동안 우리가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라면을 먹는 동안, 틴스피릿 멤버들은 우리가 사 온 기념품을 꺼내거나 과자들을 우물거렸다.
“맛있네.”
“이거 그거죠? 미국 영화 보면 막 소파에서 치즈 과자 먹잖아요. 손가락에 주황색 가루 존나게 달라붙고.”
“오. 자유의 여신상 초콜…… 이거 중현이 행님이 포장했죠. 대가리가 뽀각 났네.”
연령대와 취향을 고려해서 대부분 간식으로 사 왔는데 예상한 대로 만족도가 몹시 높아 보였다.
우리가 사 온 기념품을 매만지던 휘연이 물었다.
“보니까 이번에 미국에서 제대로 터뜨리고 왔다면서요. TV 틀어 보니까 행님들 뉴스 나오던데요.”
“그게 뉴스도 나왔어?”
“네, 뭐 뉴욕에 팬분들이 존나게 많았다고.”
“…진짜 많긴 했어.”
며칠이 지난 것도 아닌데 마치 꿈결에 봤던 것처럼 그때의 광경이 몽롱하다.
그만큼 현실감이 없었다.
얼마 전 지호와의 수능 배틀에서 장렬하게 패배했던 하현이 물었다.
“미국은 어때요? 토크쇼 나갔다면서요.”
“우리도 이번에 처음 나가 본 거라 잘 모르는데… 한국이랑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던데.”
내 말에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부르는 대로 나가서 얘기하고, 노래 부르고. 그러고 나니까 끝나더라고.”
“여, 영어로요? 그거 안 떨렸어요?”
“아니, 엄청 떨리던데…….”
오들오들 떨었다고 말하니 이웃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정색했다.
“찢고 온 거 다 압니다.”
“이 행님들은 맨날 떨었다고 하는데 본방 보면 존나 느긋해.”
이내 토크쇼 방송이 언제냐고 하는 물음에 우리가 말했다.
“아마 다음 주 월요일이랑 수요일이었던가?”
“미튜브에 자막 뜨면 볼래요. 분명 어떤 사람이 빨간 글씨로 뉴블랙 국뽕 쩐다, 하는 썸넬 올릴 거니까.”
연후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틴스피릿의 막내 우빈이 말했다.
“근데 어차피 못 보겠네요. 금요일이 KMA니까.”
“맞네.”
다음 주 금요일이 바로 KMA가 열리는 날이었다.
어워드 얘기가 나오면서 서로 준비 잘 되어 가고 있느냐는 말을 주고받을 때.
“근데 행님들.”
“응?”
“저희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무언가 진지한 이야기가 있는 듯 고심하던 틴스피릿 멤버들이 우리에게 물었다.
“좀 껄끄러운 사이인 사람들 있으면 어떻게 대처하세요?”
“안 만나면 되지.”
“안 만날 수가 없는 사이면……?”
내가 답했다.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러고는 웃으며 물었다.
“왜, 껄끄러운 사이인 사람들이 있어?”
“아… 그게 좀, 세레니티랑.”
“세레니티?”
“이번에 노래상 탄 것 때문에 좀 껄끄럽거든요. 뭐, 걔네가 회사에서 만나면 선배님들 하면서 웃고 그러긴 하는데.”
틴스피릿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뭔지 아시죠? 저쪽은 별말 없는데 괜히 내가 존나 머쓱하고 그런 거.”
“잘못한 건 아닌데 내가 나쁜 새끼인 느낌적인 느낌? 저희가 국어 조빱이라 표현은 좀 힘든데.”
“아무튼 대충 그런 느낌인데, 완전 껄끄럽거든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들을 보며 웃었다.
난 또 무슨 심각한 고민이 있나 싶었는데, 회사에서 마주치는 후배 그룹과의 어색한 사이가 고민인 모양이다.
중현이가 말했다.
“근데 너희가 잘못한 건 없지 않아?”
“우주 행님이 쓴 노래인데 행님한테 저작권료가 들어오고 상도 받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좋은데……?”
턱을 쓰다듬는 중현이의 반응에 틴스피릿 멤버들이 말을 잃고 적절한 예시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 시발 국어 더 배울걸. 어케 설명하지…….”
“국어가 아니라 대가리의 문제 아니냐.”
“위키에 문장 고쳐야 됨. 틴스피릿은 2012년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6인조 빡대가리 그룹이다.”
거친 말들이 오가는 이들에게 뭐라고 조언을 해 줄까 생각했는데, 적당한 게 안 떠올라서 관뒀다.
당장 스칼렛에게 가야 할 상이 우리에게 왔다고 하면 우리도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모르겠으니까.
하현이 말했다.
“이런 건 아무래도 어른인 행님들한테 좀 물어보고 싶어서…….”
“너희도 어른 있잖아.”
휘연을 가리키는 내 손짓에 멤버들이 물었다.
“이 새끼요?”
“형이라고. 이 미친놈들아…….”
이를 악물던 휘연이 내게 웃으며 말했다.
“보다시피 저도 어른이라고 하기가 힘들어서. 얘네랑 있다 보면 어른이 될 수가 없어요.”
“지가 말 놓자고 했으면서. 겁나 서운하네…….”
“맨날 맏형이라면서 리얼리티에서 흉가 체험할 때도 제일 먼저 토껴요. 팬들도 런휘연이라고 부른다니까요.”
“런?”
“Run휘연이요.”
누군가의 얼굴이 찌그러지는 동안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틴스피릿의 고민에 대해 3초 정도 생각하던 막내가 라면에 밥을 넣으며 말했다.
“어쨌든 결론은 그거네. 망고가 잘못한 거.”
“그거 맞다.”
망해라, 고생해라 하는 2행시를 하는 급식 친구들을 보며 열심히 라면을 마저 먹었다.
그렇게 식사와 설거지를 마친 후.
현관에서 우리를 배웅해 주던 이웃들이 말했다.
“그리고 저희 12월 되면 리패키지 나오거든요. 그거 꼭 사 주세요. 저희도 엠파이어 샀으니까.”
“오케이.”
“여섯 장 사셔야 합니다. 여섯 장.”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할 때, 틴스피릿 멤버들이 우리 어깨를 붙잡고 상냥하게 웃었다.
“사세요…….”
“좋은 말할 때 여섯 장 사요…….”
첫날 초동의 1장 차이가 어지간히 뼈아팠던 모양일까.
눈을 부릅뜨는 미소년들의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 * *
K넷 뮤직 어워드,
매년 연말에 열리는 대중음악 시상식의 개최를 앞두고 아이돌 팬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올해 KMA 대상 예측 (+자료 첨부)]
앨범상 : 틴스피릿
가수상 : 뉴블랙
노래상 : 세레니티
성적이랑 투표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3그룹으로 현재 예측 나오고 있음
-세레니티 투표수ㅋㅋㅋㅋㅋㅋ 노래상은 백퍼 탈거 같다
-걸그룹 팬들 단체로 빡쳐서 몰표줘서 저래
-이렇게 딱 3그룹 받는 게 젤 깔끔하긴 하네
-알못이라 그런데 초동은 뉴블랙이 더 나오지 않았나..?
-ㅋㅋㅋㅋㅋㅋㄹㅇ알못이네
-전체 음반 판매량이 기준이라서 저럼ㅇㅇ 뉴블랙 정규는 10월 말에 나와서 집계기간에 안 들어옴
-이대로 수상하면 k넷 재평가 각이네
-애들 아직도 순진하네ㅋㅋ 방송국놈들을 다 믿고
수플레들도 인터넷에 올라오는 반응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수상이 유력하긴 하지.’
음원만 고려하는 망고 차트와 다르게 실물 판매까지 고려하는 어워드.
K넷에서 상을 주는 앨범상의 심사기간은 10월 말까지인데, 이번 정규 앨범이 나온 것이 10월 중순이었다.
올해 여름에 발매한 정규 앨범으로 압도적인 누적 판매량을 보이는 틴스피릿의 앨범상 수상이 유력했다.
‘이번에는 한숨 덜긴 했네.’
억지로 상을 짜내기 위해 무리수를 뒀던 망고와 다르게 KMA 쪽은 어떤 식으로 수상할지 결과가 명확하게 보였다.
물론, 방심하지는 않았다.
‘언제든 조질 준비를 해야…….’
이번에 미국 지점이 일으킨 사건을 두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 수플레들이었다.
험지에서 덕질하는 이들도 저렇게 오프라인을 불태우는데, 그들도 마찬가지로 방송국을 불태워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Cute_Bbozack_Souffle
(뉴욕 ‘빛의 길’에 참여하고 있는 팬의 셀카.jpg)
사랑하는 한국 팬들아.
너희 말이 맞았어! 오프라인을 조지니 방송국도 같이 조져지더라.
팬들의 가슴을 깊이 울렸던 명문이었다.
한 번 하는 덕질, 방송국을 부술 각오로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는 요즘이었다.
그만큼 미국에서 있었던 일은 수플레들에게도 큰 활력을 주고 있었다.
‘……여기서 더 올라갈 수 있을까?’
지금의 위치도 어마어마한데,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팬들이었다.
올라왔으니 이제는 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방어적인 태세로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해외에서 새로운 루트가 뚫린 듯한 느낌이었다.
-미국 애들이 화력 요청한다!!!
-어디야 어딜 조지면돼
-앨런 데일 쇼 공계에 애들 관련 트윗 올라왔다
-규호야 지금 뭐 하냐 노 안 저어?
-ㄴㄴ 그냥 돈만 내주는 게 젤 조아,, 규호가 뭘 하기 시작하면 그게 더 문제임
-지금 일단 SNS에서 인종 차별 날조 퍼뜨리려고 하는 애들부터 잡아야 할듯
미국 웹에서 화제가 된 것 때문일까.
정확히 어느 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뉴블랙에게 인종 차별 루머를 덧씌우려고 하는 이들이 보였다.
주로 뉴블랙 TV에서 교묘하게 캡처한 장면를 이용해 날조하려는 것이었다.
인종 차별 이슈로 뉴블랙이 화제가 되기도 전에 묻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초장부터 그런 루머들을 잡기 위해 낯선 영어들을 살피며 고군분투하는 팬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강하다. 미국 지점..
-인도네시아 지점도 강력한 듯
-태국 지점도 잘 패네,, 누가 저쪽 팬덤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어
-우리 역할은 뭘까
-우리는 전 세계 수플레들의 정신적인 지주..?
-영연방의 영국 같은 거임
-귀여움 담당 아닐까 (당당)
덕질을 하기 위해 기본으로 영어를 장착한 해외 팬들이 신나게 루머들을 부숴대고 있었다.
다른 나라 팬들과 연계하여 하는 덕질.
낯선 경험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새로운 떡밥이다……!’
래리 고든 쇼에서 Blue Moon의 무대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뉴블랙 사진을 SNS에 올리고 있었다.
곧바로 좋아요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 뉴블랙의 방송국 퇴근길을 다룬 동영상이 미튜브에도 올라오고 있었다.
‘좋아, 좋아.’
팬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이런 컨텐츠를 제공할 때마다 쉴 새 없이 박수를 치거나 좋아요를 눌러서 관심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열렬한 관심을 처음 받아보는지 토크쇼 제작진들이 신이 난 게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느껴졌다.
[Haley Blue & The New Black - Blue Moon]
이윽고 현지에서 래리 고든 쇼가 방영되고 나서 올라온 Blue Moon의 클립도 공들인 티가 가득했다.
-우주는 덮은 머리도 좋지만 깐머리도 좋구나
-얘들아 기억나? 너희 루브르 박물관에서 신고 들어왔다며,, 조각상 깼다고,,
-아니 이게 아닌데
-블루문 무대 좋다ㅠㅠㅜㅠ
-헤일리 쑥스럽게 춤추는 거 귀여워ㅋㅋㅋㅋ
-여러분은 지금 빌보드 1위 가수 뉴블랙의 무대를 보고 계십니다
-곧 있으면 한글 댓글이 묻힐 테니 열심히 한국어 댓글 써놓겠읍니다
그 외에 헤일리 블루가 뉴블랙의 노래와 작곡 실력 등을 칭찬하는 클립이라든가.
래리 고든 쇼 제작진이 버뱅크의 현장에서 뉴블랙 팬들에게 매력 포인트를 묻는 클립 등이 올라오고 있었다.
‘뭐, 특별한 건 없네?’
무언가 열심히 보여 주고 싶어 하는 느낌이 있긴 한데, 특별하게 무언가 찍은 컨텐츠는 없는 듯했다.
부랴부랴 준비한 티가 난다고 할까.
어쨌거나.
‘이걸로 영업 좀 됐으면 좋겠다.’
새로운 팬들이 유입되기를 바라는 가운데.
래리 고든 쇼에 이어 모두가 기다리던 앨런 데일 쇼의 본방송이 다가왔다.
* * *
밤 11시.
평소처럼 심야 토크쇼를 보기 위해 TV를 튼 미국인들이 하품을 했다.
‘오늘은 뭐 하나.’
대개의 TV 프로그램이 그러하듯이 이제는 습관처럼 유명 토크쇼들을 시청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평소보다는 조금 더 높은 시청률이었다.
“오늘 누구 나온대?”
“헤일리 블루 나온다더라고.”
“헤일리 블루? 웬일이래.”
TV 토크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셀럽의 등장 때문이었다.
최근에 음원 사이트 등에서 노래가 1위를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가 광고가 끝나고 <앨런 데일과 함께 하는 아주 멋진 밤>이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게스트가 하나 더 있는데.”
“뉴블랙?”
헤일리 블루와 뉴블랙이 오늘 함께 합니다! 하는데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밴드 이름 같네.’
락 밴드의 이름 같다는 생각을 할 때.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 등을 다루며 모놀로그를 이어 가던 앨런 데일이 첫 게스트를 소개했다.
-환영해 주시죠! 헤일리 블루입니다!
화면 속에서 파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미인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좋아했다.
패션 아이콘으로도 유명한 팝스타는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타였다.
가식 없이 할 말 다 하는데 왠지 모르게 밉지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무례하다는 평도 많았지만, 그게 1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원래 그런 캐릭터로 굳어졌다.
-이번에 새로운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잖아요. 오늘 토크쇼는 그걸 위한 출연인가요?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내가 왜 얌전히 앉아 있겠어?
-…솔직히 말하죠. 당신 앞에 앉아 있으면 좀 무서워요.
-걱정 마. 그 시절은 지나갔어.
유명 토크쇼 진행자의 무례한 질문에 흥분해서 멱살잡이를 할 뻔했던 시절을 회상하는지 헤일리 블루가 친근하게 웃는다.
최근에 남편과 딸은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하던 팝스타의 이야기는 최근 유명한 싱글 Blue Moon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토크쇼 호스트가 새로운 게스트를 소개했다.
-인기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TV로 보고 계실 시청자 분들을 위해 잠깐 현장을 같이 보시죠.
브로드웨이라는 자막과 함께 어마어마한 광경이 펼쳐졌다.
“흐어…….”
“저게 뭐야? 핸드폰이라도 새로 나왔나…?”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나 신형 핸드폰 판매를 앞두고나 볼 법한 인파였다.
브로드웨이를 꽉 채운 이들이 빛나는 몽둥이를 들고 있거나, 낯선 문양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앨런 데일 쇼의 코미디언 중 하나인 글렌이 마이크를 들고 돌아다닌다.
[애니 윌킨스] 내브라스카 주 링컨에서 왔어요! 저는 뉴블랙을 보기 위해 전날부터 Um-Mak까지 지었어요.
[글렌] Um-Mak이 뭔가요?
[애니 윌킨스] 뉴블랙의 굿즈인데… 가벼운 노숙을 할 때 쓰는 아이템이거든요. 펼치기도 쉬워요.
미저리의 캐릭터와 동명이인인 열성팬.
그런 팬이 움막을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설명해 주는 모습에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이번엔 체크 남방을 걸친 중년 남자에게 마이크가 갔다.
[글렌] 여긴 어떻게 온 건가요?
[프레디 왓슨] 딸내미 때문에 왔수다. 하도 뉴블랙을 보고 싶다고 극성을 부려 대서…….
[글렌] 사는 지역이?
[프레디 왓슨] 텍사스요. 대체 누군진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이 아빠를 툭 치며 눈을 부라렸다.
프레디 왓슨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프레디 왓슨] 뉴블랙은 세계 최고의 보이밴드요. 됐지?
[티파니 왓슨] 잘했어.
다시금 방청객들의 웃음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글렌이 이번엔 거대한 몽둥이를 든 팬에게 다가갔다.
[글렌] 이건 뭔가요?
[캐시 스콧] King-Bong이에요. 뉴블랙을 응원할 때 쓰는 무기, 아니 라이트스틱인데.
[글렌] 빛이 나오나요?
[캐시 스콧] 잠시 눈을 가려요.
[글렌] 왜요… 으아아악!
화아아아아악!
…하면서 잠시 주변 일대가 사라지는 듯한 마법에 방청객들과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경찰이 다가와 제지한다.
“뭔진 모르겠지만 저거 되게 사고 싶은데.”
“재난 상황에서도 쓰면 딱이네.”
30~40초 정도 되는 유머러스한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멀리서 차량이 다가오는 장면이 찍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카메라맨이 움찔하는 게 느껴질 만큼 격한 환호성이었다.
‘요즘 뜨고 있는 스타인가?’
브로드웨이에 모인 수천 명의 인파가 시청자들에게 그런 착각을 주고 있을 때.
뉴블랙이라고 하는 그룹의 멤버들이 탄 차량의 문이 열리고, 그들의 발이 카메라로 잡히면서 영상이 끝났다.
“아…….”
마치 호러 영화에서 악당의 뒷모습만 보여 주거나 어둠 속에 가려서 얼굴을 감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관심이 없었던 시청자들의 눈에 호기심이 깃든 가운데.
데스크에 앉아 있던 앨런 데일이 소품으로 들고 있는 달봉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소개하죠. 브로드웨이를 우드 스탁 페스티벌처럼 만들어 버린 오늘의 주인공들입니다. 뉴블랙!
어딘가 독특한 등장음악이었다.
라이브 밴드가 ‘뉴블랙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못 나갑니다’ 하는 미국인들이 모르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
촤악- 하고 커튼이 열리면서 뉴블랙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