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9화
마주치면 안 될 사람을 만난 것처럼 움찔하는 원더 차일드에게 우리가 웃으며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어, 그.”
비행기 통로 쪽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원더 차일드 멤버들.
마치 외나무다리 건너편에서 굶주린 곰이 쮸쀼쮸쀼 하며 곰발바닥을 들어 올리는 걸 본 인간들 같다.
“이리 와요.”
“……!”
“뒤에 사람들 오잖아요.”
“아!”
허둥지둥하던 원더 차일드 멤버들이 저마다 티켓을 확인하고는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근처였다.
내 앞자리에 앉는 기후, 선용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서바이벌 때 보고 오랜만에 만나네요.”
“네, 자, 잘 지내셨습니까?”
“네.”
쭈뼛쭈뼛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웃으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었다.
더 말 시키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신인 보이그룹의 멤버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는 동안 우리 동생들도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를 해 주었다.
나 [우리가 멘토를 해서 그런가]
나 [부담스러워들 하네;]
동생들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비주 [멘토-멘티 사이여서 어색해하나 봐요ㅠㅠㅠㅠㅠ]
비주 [저 인사했는데 외면당하는 줄 알았어요]
중현 [그거 외면임]
비주 [ㅗ]
중현 [오타야?]
비주 [ㅗㅗ]
중현 [너 절교]
지호 [싸워라 짝 싸워라 짝]
톡방에서 투닥투닥대는 동생들을 보며 어이구 하는 동안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기내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승무원들이 제지를 하는데도 원더 차일드의 사생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우리도 나름 사생에 제법 시달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쪽은 우리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심해 보였다.
계속해서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어 대는 모습에 제지가 들어왔지만 별로 신경도 안 쓰는 기색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저기에 우리 사생들이 떠밀릴 정도였다.
“…….”
잔뜩 긴장한 원더 차일드 멤버들의 모습에 리혁이가 눈매를 좁히는 동안.
같은 비행기에 탄 원더 차일드의 사생들을 곁눈질로 둘러보고는 발로 신발끈을 슥 풀었다.
리혁이가 물었다.
“……던지게요?”
“넌 날 뭘로 보는 거야.”
너털웃음을 보이며 신발끈을 묶기 위해 몸을 숙였다.
* * *
원더 차일드의 멤버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아씨…….’
‘뭐야. 이거 어떡해.’
사생에 대해서는 KM 엔터의 베테랑 매니저들로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다.
무조건 무시하라고.
그런 대처 방법을 배우기도 해서 그동안은 어떻게 대처를 해 왔는데, 비행기까지 같이 올라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
좌석에 앉아 몸을 뉘이고 있지만 편하지가 않다.
“기후야. 너 왜 말 안 들리는 척해? 내 말 들리잖아~?”
“야, 너네 사람 말 무시하냐?”
“대답 좀 해 봐. 방송에선 말 잘하잖아. 너네.”
실실 웃으며 부르기도 하고, 다정하게 부르기도 하고, 정말이지 혼비백산한 상황이었다.
그러고 있을 때.
기후와 선용이 앉아 있는 좌석 뒤편에서 작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크기였다.
“저기.”
뉴블랙 리더의 목소리였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려는 이들에게 바로 낮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고개 돌리지 말고 들어요. 티 나니까.”
“ㄴ…….”
“대답도 말고.”
차분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표정 관리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이어폰이라도 끼고 노래 크게 들어요. 저 사람들은 긴장하는 반응 즐기는 거니까.”
그들이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그리고….”
살짝 웃음기가 배어 있는 목소리가 꽃잎처럼 부드럽게 흩날려 왔다.
“노래 잘 듣고 있어요. 파이팅.”
뒤에서 어떤 자세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멀어져 가더니 사라졌다.
원더 차일드의 두 멤버는 바로 이어폰을 꺼내 들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지만,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니 목소리들이 사라진다.
“…….”
창가에 앉은 선용은 창문 밖을 보고, 그 옆의 기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도피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어둠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잠깐 눈을 떠서 다른 멤버들에게 톡이라도 보낼까 할 때.
[메시지: +999]
사생들에게서 쏟아지는 메시지들 때문에 핸드폰 자체를 만질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KM 엔터의 매니저들이 조치를 취하면서 기내의 소란은 잦아들었다.
주변의 다른 멤버들을 슬쩍 둘러보던 이기후가 눈을 다시 감았다.
‘……선배님들은 어떻게 태연할 수 있는 거지.’
뉴블랙 멤버들은 평온해 보였다.
자신도 연차가 차면 그리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멘토들은 여전히 여유롭고 선배다워 보였다.
부러움과 동경을 잠시 느끼던 신인 아이돌의 귓가에 리혁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여행용으로 준비한 BGM인 뉴블랙의 Winter Trip이었다.
잠시 쉬어도 괜찮아
그러기 위한 겨울인걸
며칠 동안 밤을 새워서 그런지, 잠에 빠져드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깨어나 홍콩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지나갑니다! 비키세요!”
“지나가요!”
한참 동안이나 또 아수라장을 겪은 후에야 원더 차일드의 멤버들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KMA 어워드 때문에 모인 인파를 우려해서인지, K팝 가수들을 위해 VIP 통로를 준비한 공항 측 배려 덕분이었다.
어두컴컴한 통로에 도착해서야 그들은 정식으로 상대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Wonders on the stage! 안녕하세요! 원더 차일드입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 멤버들이 웃으며 반겨 주었다.
“잘 지냈어요?”
“네! 저희 잘 지냈습니다.”
“반갑다, 진짜. 온더스에서 보고 거의 몇 달 만인 거 같은데 맞죠?”
캐리어를 드르륵 끌고 가면서 말을 걸어 주는 뉴블랙 멤버들에게 그들이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아까보다는 낫긴 했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미친 선배들…….’
성과적인 측면에서 미친 선배들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서바이벌에 출연하던 연습생 시절에만 해도 ‘TV 나오는 선배님들’ 하며 눈을 반짝이는 정도였는데.
데뷔를 하고 나서야 이 선배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성적의 소유자들인지 알게 되었다.
-너희 초, 초, 초… 대박 났다!
대표님이 그들을 얼싸안았던 기억이 났다.
데뷔 앨범의 초동 판매량으로 스트릿 보이즈의 턱끝까지 올라온 그들이었다.
그 때문에 음악 방송이나 여러 예능에 출연해서도 좋은 대접을 받고 있고, 내년도 최고 대세 그룹으로 꼽히고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성적.
그런데.
‘꺄르르르르륵!’
뉴블랙은 저 구름 너머에서 꺄르륵 날개를 퍼덕퍼덕하고 있었다.
연습생 때만 해도 우와 했던 것이 지금은 다른 의미로 경외감을 느끼고 있는 신인 보이그룹이었다.
쭈뼛대는 그들에게 뉴블랙이 이런저런 팁을 알려 줬다.
“레드카펫 갈 때, 함부로 손 뻗는 거 잡아 주고 그러면 큰일 나요. 확 잡아당기는데…….”
“저번에 중현이 형이 그런 분을 풍차처럼 돌려 버릴 뻔했거든요.”
“흐하하하하!”
중현이 흐뭇하게 웃는 가운데 원더 차일드 멤버들이 어어 하고 눈을 깜빡였다.
‘농담이시겠지?’
이내 아하하 웃는 이들에게 지호가 팁을 알려 주었다.
“굳이 잡고 싶으면 엄지 접은 상태에서 잡아요.”
“그럼 괜찮은가요?”
“뺄 때 손 부분만 쏙 빠져요. 이게 엄지 하나 차이가 은근히 커서….”
행사 때도 써먹을 수 있는 좋은 팁에 눈을 빛내는 원더 차일드 멤버들이었다.
그동안, 기후는 우주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선배님,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인데요, 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젓는 이에게 연신 고맙단 인사를 하자,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씩 웃던 뉴블랙의 리더가 이내 다른 멤버에게 다가갔다.
TJ 엔터에서 한때 연습생이었던 모영훈에게 다가온 그가 웃으며 말했다.
“형, 데뷔 축하해요.”
“감사…….”
“말 편하게 하세요. 태현이랑 며칠 전에 통화했는데, 데뷔한 거 축하한다고 전해 달래요.”
“고마워.”
“진짜 축하해요.”
그 말을 하던 뉴블랙의 리더가 출구 근처에서 멈췄다.
바깥에서 경찰들이 호위하고 있는 가운데, 어마어마한 수의 수플레들이 모여서 방방 뛰고 있었다.
선배 아이돌이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데뷔한 거 진짜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따 리허설할 때 봐요.”
해바라기 선글라스를 걸치는 모습까지 멋있었다.
각자 곰 선글라스, 사과 선글라스 등을 걸치던 뉴블랙 멤버들이 씩 웃으며 바깥으로 나선다.
곧이어 쏟아지는 플래시와 공항이 터질 듯한 어마어마한 환호성에 입이 떡하니 벌어진다.
“우와아아아…….”
그들보다 2년 일찍 데뷔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대선배처럼 보이는 뉴블랙이었다.
* * *
“선배 코스프레 대성공!”
“으하하하하하!”
동생들과 함께 차에서 손뼉을 마주치며 꺄르르 웃었다.
“아까 봤어여? 제가 손을 사악 빼면 된다고 알려 주니까 다들 우와아아 했어여.”
“이 맛에 선배 노릇하는 거구나.”
“가끔 너무 재미있는 거 같아요. 우리 본모습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이런 식으로 사기 치는 거……!”
비주도 좋다면서 물개 박수를 쳤다.
차에 탄 매니저 형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는 동안, 우리끼리 즐거움을 만끽했다.
“우리 좀 간만에 멋있었다.”
“흐하하하하!”
민기 형이 중얼거렸다.
“걔네가 이걸 봐야 되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몇 번 정도 마주치고 난 뒤에는 저쪽도 우리가 안 신기할 거예요.”
“효과가 오래 안 가긴 하죠.”
처음에는 우리를 우와아아 하고 보던 아이돌 그룹들도 얼마 지나면 ‘뉴블랙이구나…’ 하면서 아련하게 웃곤 했다.
잠깐의 즐길 거리였다.
“이번에도 같은 데서 하는 거져?”
“응.”
한자로 된 간판들이 지나가고, 오토바이나 자동차들의 낯선 번호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안 가 홍콩 월드 아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년에도 KMA가 열렸던 곳으로, 장비나 차량으로 시끌벅적한 주변 분위기가 어워드 느낌을 물씬 풍겼다.
주차장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서자, 카메라들이 따라붙었다.
“안녕하세요, K넷 비하인드 팀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기분이 어떠신가요?”
“몹시 좋네요. 떨리기도 하고, 항상 어워드 나올 때마다 느끼는 그런 기분 같습니다.”
K-net 제작진과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대기실로 들어섰다.
곧바로 메이크업을 하고, 리허설도 진행하고, 중간에 K넷 측에서 요청한 컨텐츠 촬영도 하고.
현지 시각으로 오후 7시 시작인데도 정신없이 바빴다.
“근데 저기 번쩍거리는 대기실은 뭘까여?”
“배우 대기실인가?”
유독 눈에 띄는 방이 하나 있었다.
거의 미니 뷔페에 가까운 수준으로 다과가 차려져 있었는데 아주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뭐, 누가 오나 보네.”
한편, 홍콩에서 열리는 KMA에 와서 좋은 점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라인업 숫자가 적은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동료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거였다.
“오빠드으으을-!”
폴짝폴짝 뛰어 오는 하얀 얼굴의 미소녀.
반가움을 표시하듯 데이지가 환히 웃으며 우릴 찰싹찰싹 때렸다.
“이게 얼마 만이야!”
“아야! 아야… 공사 구분합시다. 나윤 씨.”
“우주 씨.”
차분하게 말하는 데이지에게 내가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예,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흐하하하!”
이내 양쪽에서 빵 터져서 웃었다.
멀찍이서 다가온 아라를 비롯해 스칼렛 멤버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살짝 차분해 보이는 세레니티, 신인 보이그룹 트릭스터 등과도 지나가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은성아아아아아-!”
에이플비의 리더 하루가 비주를 보고 도망치는 가운데, 내 부름에 은성이가 쫄래쫄래 달려왔다.
“병장니이이임!”
“은성아아아아-!”
활짝 웃으며 다가온 은성이를 붙잡고 말했다.
“은성아. 은성아.”
“왜요?”
“망고에는 왜 안 나왔니?”
“무슨 소리예요. 불러 줘야 나가죠.”
어이없다는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던 은성이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며 말했다.
“그거 아니.”
“네?”
“나 올해의 가수다.”
“……아, 몇 번이나 말하는 거예요. 대체. 맨날 대상 가수의 셀카, 이러고.”
올해의 가수다~ 하며 지호와 덩실덩실 춤을 추는 내 모습에 은성이가 보기 싫다는 듯 외면했다.
“자랑할 거면 저 갈 거예요.”
“기다려 봐.”
“뭐 줄 거 있어요?”
새초롬하게 묻는 은성이에게 주머니에서 기념품을 꺼내 내밀었다.
“미국에서 사 왔어. 너 닮은 키링.”
“또가스 같이 생겼는데요.”
“내 생각엔 또도가스랑 비슷한 거 같긴 한데…… 어어 어디 가! 너 주려고 다른 것도 사 왔는데!”
더 놀려 먹으려고 했는데 탈주해 버린 군 후임이었다.
* * *
홍콩 아시아 월드 아레나.
“와아아아아아아-!”
레드 카펫의 열기가 뜨겁게 느껴지는 가운데, 차에서 내린 우리가 펜스 너머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곧이어 입장한 내부 행사장에서도 뜨거운 환호가 터져 나왔다.
-네, 정말 열기가 뜨겁습니다! 올해 빌보드 차트를 비롯해 정말 뜨거운 한 해를 보냈던 뉴블랙이죠?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분과 짧게 Q&A를 나눴다.
-오늘의 의상 컨셉은 무엇인가요?
“네, 오늘의 컨셉은 블링블링한 느낌입니다!”
반짝이는 재질로 된 수트를 입은 동생들과 웃으며 답했다.
내가 중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다시피 중현이 옷이 이렇게 초록색으로 반짝이잖아요?”
-그러네요.
“이게 움직일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색이 바뀝니다.”
앞으로 나온 중현이가 시범을 보여 줬다.
꿀렁꿀렁한 웨이브를 타면서 환호가 터져 나오고, 정장 상의 반짝이들이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빛났다.
나름 진지하게 설명했는데 MC분들은 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그, 그렇군요!
이번에 미국에서 나갔던 토크쇼 현장이 화제라면서 영어 인사를 요청하기에 바로 응했다.
카메라에다가 전 세계의 팬들에게 KMA 킹왕짱이에요, 한 후.
-이제 12월이잖아요. 한 달만 있으면 2017년이 되는데, 올 한 해 뉴블랙이 정말 열심히 달려왔잖아요.
“맞습니다.”
-내년도에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특별하게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스포일러를 할 게 있으면 여기서 살짝 흘려 달라는 이야기였다.
비주가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가 이번에 아주 스페셜한 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래요?
“네, 지금 저희 프로듀서님과 함께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정말 들으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내년 초에 발매할 스페셜 앨범의 타이틀 ‘도깨비’에 대해서 살짝 스포를 하자, 기대 가득한 환호성이 돌아왔다.
비주가 말한 대로 이번에 정말 만족스러운 퀄리티로 뽑힌 곡이었다.
그 외에 수록곡들도 좋고.
‘세상의 기이한 존재들에 대한 곡’이란 컨셉으로 준비한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 현재 프로듀싱 팀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우주야. 너 갈씨로 개명해라. 사람을 잘 가니까.’
‘선우주는 선을 넘어서 선우주인 건가. 하하하하! 이게 우리가 할 작업량이니, 우주야?’
‘나 친구 안 하면 안 될까…….’
머릿속에서 맴도는 아우성들을 고개를 살짝 흔들어 떨쳐 냈다.
어워드 끝나고 돌아가서 확인하기로 했는데, 그때 또 한 번 맛있는 걸로 직원 분들을 현혹시켜야겠다.
-오늘 많은 부분에 노미네이트됐잖아요. 수상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고 계시나요?
“네, 기대하고 있습니다.”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뉴블랙!
짤막하게 마무리하고는 MC들에게 인사하면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상…….”
막내가 말했다.
“오늘도 상 탔으면 좋겠네여. 크게.”
“그래, 그럼 좋겠다.”
레드카펫에서 뒷순서로 입장해서 그런지, 공연장 내의 가수석에 벌써부터 온 가수들이 가득하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에노티입니다!”
선배, 후배 가수들과 인사를 하고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널찍한 공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략 1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의 객석에는 벌써부터 팬들이 가득히 자리 잡고 있었다.
번쩍-! 번쩌어억-!
화려하게 빛나는 달봉이들의 물결이 객석에서 4분의 1은 뒤덮은 것 같다.
“강하다….”
“우리만 약해여. 우리만.”
그러는 동안 가수석으로 오는 스트릿 보이즈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무대 컨셉이 강렬해서 그런 건지, 껄렁껄렁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걸어오는 동기들이었다.
“하이.”
한조가 웃으며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앗, 따가!”
따끔한 정전기가 일었다.
한조가 머쓱한 얼굴로 장갑을 벗은 손을 내밀었다.
“이게 정전기가 잘 오르더라고.”
“이거 이 형이 일부러 인터넷에서 정전기 잘 오르는…… 읍!”
LB가 뭐라고 깐족대려는 말을 한조가 손을 덥석 뻗어 막았다.
양쪽 동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나와 한조가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마주쳤다.
“…….”
“…….”
“아니지?”
“아니지~”
이내 훈훈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 그랬다고 저런 정전기 잘 오르는 장갑을 일부러 산 건 아닐 거라고 믿었다.
나무의 농담이겠지.
“과연 농담일까여?”
막내의 말을 무시하면서 마지막으로 입장하는 틴스피릿과도 인사를 나눴다.
세레니티 쪽과 시선을 안 마주치려고 요상한 각도로 목을 꺾은 이웃들이 괴상하게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세상 친절한 미소년들처럼 화사하게 웃는 얼굴을 끝으로 얼마 안 가 조명이 암전되었다.
가수석에 가수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는 가운데.
무대 조명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가면서, 무대 화면에 떠오른 VCR과 함께 마침내 2016 KMA가 시작됐다.
“호오…… 호오…….”
근처에서 털장갑에다가 입바람을 호호 불어 대고 있던 한조가 눈이 마주친 내게 웃어 보였다.
나도 웃었다.
“너 일부러 샀지. 그거.”
“호오오오……. 호오…….”
“하지 마.”
“호오오…….”
은근하게 밉상인 동갑내기 친구였다.